▣성령강림주일

공 상희 2010. 9. 25. 12:47
성령이 임하시면
(마5:1-12)

요약
산상보훈에 나오는 팔 복은 성령이 임하실 때 나타나는 마음의 복된 현상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마음이 가난해지고, 마음을 쏟아 놓으며, 온유한 마음이 되고, 의를 갈망하며,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여지며, 평화를 위해 일하며, 의와 주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며 박해 받음도 거절하지 않는다. 그 결과 마음의 천국과 위로를 받고 지지를 받고 만족하며 긍휼히 여김을 받으며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며 천국의 상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경외하여 은혜를 받자.


이 시간 [성령이 임하시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귀한 복이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성령의 복보다 더 귀한 복은 없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성령이야말로 없으면 그 무엇도 불가능합니다. 성령 없이 중생도 없고, 성령 없이 회개도 없고, 성령 없이 믿음도 없고, 성령 없이 주의 일도 불가능하고, 성령 없이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도 승리도 천국도 누리지 못합니다. 이렇게 귀하고 귀하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런데 또 성령이 임하시면 되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심령의 복입니다. 이 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복을 말씀하신 후에 바로 세상의 빛과 소금 이야기를 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복을 받지 않고서는 세상의 빛도 소금도 그 무엇도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다면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더욱 충만히 받아야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럼 성령이 임하시면 어떤 복이 옵니까?

1. 주님만 사모하는 겸손한 심령이 됩니다.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자신의 부족을 알고 겸손하며 주님만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받으면 자신도 놀라울 만큼 겸손해집니다. 이 성령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나게 하시고 또 십자가에 죽기까지 되도록 주장하시고 인도하신 영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을 받으면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자기를 낮추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높이고 남을 섬기고 싶습니다. 그 결과 그 마음에는 천국이 있습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그러나 마귀는 교만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2.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위로가 임합니다.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마음에 고통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 때문에 슬퍼하고 그 고통 때문에 애통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냥 애통은 되는데 은혜를 받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애통하려 해도 애통이 안됩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기 전에는 애통해도 위로를 받을 수 없고 치료와 해결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마음의 중심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쏟아 내어놓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기뻐하면서 찬송하고 어떤 때는 눈물로 호소하기도 하고 자기 마음을 모두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응답을 주시고 위로를 주십니다. 이것이 놀라운 위로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신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9:1-3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했던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이런 눈물이 존재하는 것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가능합니다.

3. 성령이 임하시면 온유한 자가 됩니다.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 온유는 갈 5장에도 나와 있듯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모세가 받은 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는 그 온유함이 모든 지면에 있는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면 사람이 그렇게 친절하고 따뜻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 하셨습니다.
이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이 큽니다. 그것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입니다. 이 땅은 여러 가지겠지만 우선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정복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이 내 친구가 되어진다는 것은 큰 성공을 암시합니다.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했으나 실패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온 세계를 정복하시지 않았습니까?

4. 성령이 임하시면 거룩하게 살고 싶어 견딜 수 없습니다.

6절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사람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 배고픔과 갈증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으면 의에 대한 이러한 갈망이 일어납니다. 바로 살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갈망입니다. 은혜란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도덕과 교양과 철학과 종교와 그 어떤 것이 있다해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지 못하면 육신의 욕망에 대한 갈망을 갖습니다. 그래서 범죄하고 넘어집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노아가 죄악 세상을 이기고 거룩하게 살았던 것도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의를 갈망하는 자에게 영생의 생명수와 하늘의 양식으로 배부름을 주십니다.

5. 성령이 임하시면 긍휼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생깁니다.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여기 긍휼이란 자비, 사랑, 동정이라는 뜻입니다. 이 긍휼히 여김은 곧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사랑입니다. 아무리 용서할 수 없는 대상이라도 성령을 받고 보면 그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사랑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 손양원 목사님도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자기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은혜를 받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원수도 용서하고 죄인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이 받는 복은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약2:13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했습니다. 또 마18:35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6. 성령이 임하시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이것이 다 성령이 임하실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각인에게는 다 장점과 약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 깨끗한데 어떤 부분이 약합니다. 혹은 어떤 사람은 그것은 깨끗한데 다른 것에 약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이 더럽고 추한 마음이 비단결 같이 깨끗하여집니다.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은 나아만 장군의 몸이 어린이 새 살처럼 깨끗해 진 것처럼 스스로도 놀랄 만큼 청결해 집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대면하고 만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지 않고 자기를 성전 삼고 함께 하신 것을 경험합니다. 사58:9에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7. 성령이 임하시면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됩니다.

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했습니다.
여기 화평케 하는 자를 원문을 보면 화평을 만들어 가는 자로 나와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화평을 이루셨던 것처럼 은혜 받은 사람은 화평을 이루고자합니다.

8. 성령을 받은 심령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기쁘게 받습니다.

10-12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남에게 핍박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 조금만 궂은 소리를 들으면 싫어서 노발대발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박해를 받아도 기쁩니다. 도리어 그 박해가 더 은혜가 됩니다. 특히 예수님의 복음 때문에 당하는 핍박이라면 더 기쁩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는 성령 받으면 주를 위해 충성한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으면 마 5장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온갖 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기름칠하지 않는 기계가 삐꺽이는 것같이 은혜 받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이듯 은혜 받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죄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모하는 자에게 가장 귀한 성령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경외하십시다. 사랑하십시다. 예배하십시다. 기도하십시다. 그래서 은혜 받아 하나님의 가장 큰복을 받는 8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2
(단2:31-35)

요약
바벨론의 신상은 문자적으로는 세계 역사 속에 이루어질 제국의 행렬을 시사함이요, 영적으로는 세상을 묘사함이다. 뜨인 돌에 의해 신상이 부서지고 사라졌듯이 예수의 공로는 세속을 처리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실 때 가치관의 변화가 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가치관의 변화로 세상을 숭배하지 않게 되며, 세속을 철저히 배척하게 되며, 세상 욕망이 아닌 거룩한 욕망을 품게 되며, 세상에 의해 짓밟히지 않고 도리어 세상을 밟게 되며, 세상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게 된다


오늘 이 시간에도 [성령이 임하시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강림, 혹은 성령이 임하시는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령강림은 우리에게 무수한 변혁과 축복을 몰고 왔습니다. 지난 시간에 그 중에 하나 성령이 임하시면 팔 복의 복 받는 아름다운 심령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성령이 임하실 때 오는 세상 가치관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신상은 바벨론에서부터 마지막 재림까지 나타날 제국의 행렬입니다. 그런데 이 신상이 점점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변해가다가 갑자기 나타난 뜨인 돌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고 타작 마당에 겨와 같이 바람에 날려 간 곳이 없고 오직 우상을 친 돌만이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 느브갓네살 왕의 꿈은 이 땅에 적그리스도의 제국이 존재하지만 장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흔적조차도 없이 사라지고 온 세상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지금부터 2600년 전의 예언이지만 역사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져서 바벨론 다음에 메대 파사, 헬라, 로마, 그리고 동서로마, 그리고 현재 그 땅 위에 유럽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여주는 또 다른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과 여러 제국들은 세상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 신상을 깨뜨린 뜨인 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예수 안에서 날로 그 가치를 잃고 사라지게 된다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성령께서 임하실 때 우리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가치의 변화를 계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성령이 임하시면 어떤 가치의 변화가 있을까요?

1. 세상을 사랑하거나 숭배하지 않게 됩니다.

여기 신상의 머리는 금이었습니다. 금의 의미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신성의 상징입니다. 이 숭배 받는 신상이 머리가 금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처럼 은혜 받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세상을 신처럼 숭배하고 사랑함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빌3:19에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했습니다. 골3:5에도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이 우상의 금 머리를 깨뜨려 버리사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 정도는 성령 충만의 정도에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할수록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신자의 죄는 예수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요 신자의 가장 큰 죄는 성령 충만 받지 않는 것입니다. 전에 아름답던 세상도 예수 안에 성령 안에서 무가치함을 보게 됩니다.

2. 성령이 더 임하시면 세속을 철저히 배척하게 됩니다.

이것이 은의 의미입니다. 신상의 가슴과 팔은 은이었습니다. 은은 본래 화폐로 가장 많이 통용되던 귀금속입니다. 그런데 신상의 가슴과 팔이 은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가슴은 마음이 머무는 품이요 팔은 일이나 취함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뜨인 돌은 이 은의 가슴 팔 부분도 부수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더 충만히 임하시면 더 이상 세상을 품지 않고 삶에서 철저히 분리시키게 됨을 보여줍니다. 더 이상 바벨론 상품 즉 속된 것을 사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고후6:17-7:1에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고 했습니다.
이 세상과의 분리가 은혜 받아야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더 이상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더 이상 세상을 취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성령으로 심령을 씻어 주십시오. 우리의 행실을 성령응로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성령 감화를 받은 사람들이 "우리가 어찌할꼬"(행2:37-38)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3.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면 근본적인 욕망의 변화가 찾아옵니다.

32절 하반절에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랬습니다. 여기 배는 욕망이요, 넓적다리는 힘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놋은 강한 쇠입니다. 신상이 이러한 놋신상이기도 했다는 것은 세상이 얼마나 강력한 욕망의 그 자체였는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을 세상 정욕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놋 배와 넓적 다리가 뜨인 돌에 의해 산산조각이 납니다. 은혜를 받으면 이 세상 정욕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요일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을 받으면 욕망의 변화가 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2:20-21) 했습니다.

4.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에 더 이상 짓밟지 못합니다.

33절에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랬습니다. 종아리는 짓밟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철은 성경에서 무자비하거나 강함의 상징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세력은 강하고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립니다. 그래서 무수한 사람들을 미혹시켜 복을 잃게 하고, 심령으로 상하게 하고, 죄악으로 지옥으로 끌고 가려 합니다. 세속은 온갖 거룩한 것까지 다 짓밟아버립니다. 우리의 심령도 깨여 신앙생활하지 않으면 그만 짓밟아놓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경고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24:15-16) 경고하셨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 세상을 이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더 이상 짓밟힘을 당하지 않고 도리어 세상을 짓밟게 됩니다. 그래서 말4:3에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가치관에 변화가 옵니다. 우리가 아는 사도 바울, 예수를 만나고 얼마나 가치관이 변화했습니까? 바울은 빌3:7-8에서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발바닥의 재보다 못한 배설물로 여겼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큰 은혜 가운데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마지막,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여기 신상의 발의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진흙이란 저주의 상징입니다. 창3:14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신상의 마지막 모습은 무자비한 철에다가, 저주의 진흙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인간의 영혼을 저주와 진노와 지옥으로 끌고 가려 합니다. 그래서 잠7:21-27에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했습니다.
겔47:11에 보면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 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이 세속적 죄악은 고쳐서 쓸 성질이 아닙니다. 오로지 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을 십자가에 못박게 됩니다. 갈6:14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이 본 이 환상은 역사의 종말에만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도 이루어질 환상이란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 바벨론은 금에서 은으로, 은에서 놋으로, 놋에서 철로, 철에서 흙으로 점점점 가치를 잃고 결국 뜨인 돌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그리고 대신 그것을 깨뜨린 뜨인 돌로 가득하듯 예수로 충만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심령에 멸망의 가증한 세상 죄악이 있습니까? 이 죄악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서 복 받지 못합니다. 이 죄악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만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늘 하나님을 경외하십시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십시다. 가치관의 변화를 받으십시오. 바쁠 때나 한가할 때나 어떤 때라도 자나깨나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온전히 주님만 사랑하는 복 있는 심령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3
(막16:16-18)

요약
성령이 임하시면 여러 가지 표적이 따라온다. 귀신이 물러간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심은 성령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새 방언을 말한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방언을 말했다. 영을 분별하는 은사가 온다. 그래서 시험을 미연에 막게 하신다. 심령 치유의 은사가 온다. 그래서 평안과 용서의 사람이 된다. 그리고 육체 치유의 은사가 온다. 그래서 기도하면 치유의 기적이 나타난다. 성도에게는 성령이 계시지만 더욱 충만해야 한다. 성령 충만하려면 하나님을 잘 경외하여 기도에 힘써야 한다.


오늘도 [성령이 임하시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성령이 임하시면 되는 일 중에 성령이 임하시면 믿는 자에게 표적이 따른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7절의 "믿는 자들에게는"이란 16절대로 예수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물세례는 누구에게 줍니까? 예수 믿고 성령세례 받은 사람에게 줍니다. 그러므로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성령세례를 전재한 것이므로 이 역시 성령론으로 풀어가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나깨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성공이요 인생의 성공이요 만사의 성공입니다.

그럼 성령이 임하시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 귀신이 물러가는 역사가 있습니다.

17절에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라고 했습니다.
이 귀신이 쫓겨남은 성령 임하심의 중요한 표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마12:28) 낸다고 하셨습니다. 마치 창문을 열면 새 공기가 들어오고 헌 공기가 나가듯 성령이 임하시면 악령은 물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의 영이 맑아지는 것을 봅니다.
이 귀신을 쫓아내신 모범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서 온갖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거라사에서 군대귀신도 쫓아내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일곱 귀신도 쫓아내 주셨습니다.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도 고쳐주셨습니다. 간질하게 하는 귀신도 쫓아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이 일을 동일하게 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성도는 귀신에서 자유함을 얻을 뿐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 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하면 귀신이 물러갑니다.

2. 성령이 임하시면 방언을 말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17절 하반 절에 "새 방언을 말하며" 했습니다.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할 때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지금 많은 성도들에게 알게 모르게 방언이 임해 있지만 열심히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사에 관해서 고전12:7 이하에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분명히 나타난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나타난다는 것은 이미 있던 것이 표출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은사는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은사 받은 사람도 게으르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열심히 기도해서 아홉 가지 은사를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방언을 왜 주십니까? 고전14:2에 방언은 그 영으로 비밀을 하나님께 말함이라 했습니다. 즉 기도하라고 주십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미처 내가 구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구해주십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는 예배 순서에 방언 순서가 있었는데 고전14:22을 보면 불신자들에게 하나님 살아 계신 표적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방언하고 통역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 살아 계심을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3. 영을 분별하는 은사가 옵니다.

18절 상반 절에 "뱀을 집으며" 그랬습니다.
여기 뱀이란 마귀를 가리킵니다. 마귀는 꼭 뱀처럼 몰래 들어옵니다. 그래서 온갖 시험을 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사단의 시험인줄 모르고 힘껏 싸웁니다. 분별이 필요함은 마귀 시험은 방심하는 순간 몰래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뱀을 집는다는 것은 영 분별의 은사를 가리킵니다.
즉 성령을 받으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깨달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여러 가지로 옵니다. 영감으로도 알아지고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도 알아집니다. 혹시 꿈에 무슨 꿈을 꾸었는데 그대로 되는 것을 보았다면 영 분별의 은사가 임했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시험이 올 것을 대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알게 되었다면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알게 하셨을 때는 대책을 주시기 위함이십니다.
어떤 때는 자신의 질병에 대한 예고를 주시며 조심하라고 경고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알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영의 파수꾼으로 삼아 주신 것을 감사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서 조용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시험이 오더라도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런 영 분별 은사자들이 많아서 늘 기도하게 될 때 가정과 교회는 평안해지고 교회는 더욱 건강해지게 됩니다.

4. 성령이 임하면 심령 치유의 은사가 옵니다.

18절 중반 절에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이 독은 육체를 죽이는 독일 수도 있고 나아가 심령을 죽이는 독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멜리데 섬에서 불을 지필 때 나무 속에서 독사가 나와 손을 물었지만 아무 상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게 되어지는 경우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그런 독사보다 영혼을 죽이는 독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그것이 악한 말입니다. 남에게 좋지 않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얼마나 상합니까? 그 때는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아직 성령 충만하지 못했구나, 그런데 성령이 충만하면 무슨 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 분 아니라 성령이 임하면 오랜 마음의 상처도 다 치유됩니다. 그래서 출15:26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잘 경외하면 달리 표현하면 성령 충만하면 애굽 즉 세상 사람들이 걸리는 병은 걸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슬픔 좌절 낙심 절망 우울 미움 교만 두려움 의심 무절제 이런 마음의 질병이 오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치유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받으면 무시를 받고 핍박을 받을수록 더 기뻐합니다. 사도들이 그랬습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5. 성령이 임하면 육체 치유의 은사가 임합니다.

18절 하반 절에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손 얹고 기도하면 병이 낫습니다. 우리가 아프면 보통 병원을 갑니다. 하나님께서 치유의 기관을 내셨으니 이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기도하게 하십니다. 손을 얹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살아 계신 표적을 보이시려는 것입니다. 이 때 손을 얹고 기도하면 병이 낫습니다.
다른 교회 서 집사님이란 분 예수 믿기 전에는 수십 년 불교에 지성을 드리던 사람입니다. 몸에 병이 들어 병원과 절에 다니며 지성을 들였건만 죽을 사람으로 내 놓았습니다. 그런 분이 전도 받아 교회에 나왔는데 손을 얹고 기도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받고는 씻는 듯이 다 나아버렸습니다. 이가 아파 치통으로 고생하시는 어느 여 집사님도 기도해 드렸더니 나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간증 들어보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가정에 돌아가서 가족들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모는 가정의 제사장과 같습니다. 자녀들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슨 능력이 있더냐 하지 마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성령을 받아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쳤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시 독 노회에서는 오늘날은 이런 기적은 없나니라고 결정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사실을 믿은 제자들은 나가서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냅니다. 새 방언을 말합니다. 영 분별을 하고, 해를 받지 않으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여 이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4
(행1:6-8)

요약
성령이 임하시면 정결함을 입게 된다(사4:4, 고전6:11). 어떤 악인도 새 사람이 된다. 성령이 임하시면 열납 되는 예배를 드린다(요4:24, 엡5:18). 그러므로 예배를 위해 기도 많이 해야 한다. 성령이 임하시면 진리의 가르침이 있다(요16:13, 사30:20). 성경을 알게 하시고 삶에서 구체적인 지도가 있다. 성령이 임하시면 능력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행1:8, 고전1:25). 그리고 성령이 임하시면 부흥운동이 일어난다(눅12:49). 그러므로 성령 충만과 부흥운동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오늘도 [성령이 임하시면]이라는 제목입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 최고의 복된 사건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오심입니다. 그럼 각인에게 최고의 복된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임해야 예수 믿게 되고 약속하신 말씀과 천국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하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소원과 우리의 소원이 다 이루어집니다. 오늘도 성령이 임하시면 되는 귀한 진리를 통해서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성령이 임하시면 또 어떻게 됩니까?

1. 정결함을 입게 됩니다.

사4:4에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고전6:11에도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했습니다.
어떤 죄인도 어떤 구제불능의 마음을 가진 사람도 성령이 임하면 바꾸어집니다. 이 정결케 하는 기능 때문에 성경은 성령을 물로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던 사울도 성령이 임하자 변화되었습니다. 깡패 김익두도 성령이 임하자 회개했습니다. 이 성령으로 씻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제주도에 가보니까 이기풍 목사 기념관이 있었는데 제주도 사람들은 이기풍 목사가 최초로 복음 전헤 준 것을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이기풍도 선교사에게 행패를 부리던 깡패였지만 성령 받고는 그렇게 변화되었습니다. 문제의 사람들이란 다른 원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은혜 못 받아서 그렇습니다. 아직 죄 중에 방황하고 있다면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2. 성령이 임하시면 열납 되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요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셨습니다.
성령의 은혜 없이는 마음 바쳐지지 않습니다. 설교도 찬송도 기도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엡5:18에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여기 신령이란 용어가 '퓨뉴마'인데 성령을 뜻합니다. 기도로 준비 많이 해야 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가인의 제사는 이 두 가지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구별하여 드리는 정성도 없었고 피도 없었습니다. 즉 신령과 진정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하고 예배를 드릴 때 구약시대 제사에 불로서 응답하시는 것처럼 오늘날도 성령으로 불로서 열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잘 드리고 나면 마음이 훈훈하고 시원하고 기쁩니까? 성령께서 불로서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3. 성령이 임하시면 진리의 가르치심이 있습니다.

요16:13에 예수님께서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를 가르쳐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그래서 성경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삶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게 하십니다. 다니엘만 하나님의 지도를 받는 것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의 지도가 있습니다. 요셉만 꿈의 지시를 받는 것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영몽을 주십니다. 다윗만 하나님께 여쭈는 특권 있는 것 아닙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 여쭈면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십니다. 울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30:20에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치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들려 주셔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영감이 발달하여 느껴지고 알아지고 들려집니다. 타인의 영적 상태도 내게로 전달이 와서 알아집니다. 사람은 속여도 성령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밀을 가르쳐 주시니 어떻게 속입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사도들을 속이려 했지만 성령은 속이지 못했습니다. 자녀들도 성령 받은 부모를 못 속입니다. 어떻게 속입니까?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데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면 그대로 해야 합니다. 그게 최고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면 하고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시면 하지 말고 순종하면 더 큰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4. 성령이 임하시면 능력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행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오늘날은 능력 위주의 세상입니다. 능력을 받아야 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3년 반 동안 가르치고서도 능력을 받기 전에는 나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론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능력 받기 전에는 안 됩니다. 핍박을 받아도 능력 받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습니다. 대인관계도 능력을 받으면 완전히 변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고 뛰어나고 강해도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보다는 못합니다. 그래서 고전1:25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신다"(고전1:26-29) 했습니다.
분명히 아세요. 하나님의 영을 받으면 이 세상에 그 어떤 천재 수완가가 있다 해도 그보다 10배는 낫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보세요. 하나님의 영을 받으니 바벨론의 천재들보다 십 배나 나았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 옵니다. 지금 곧 일본 문화도 전면적으로 개방하지 않습니까? 지금 사이버 상에도 지금 안티 예수, 안티 기독교 즉 반 예수 반 기독교 사이트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 성도들도 능력 받아서 그들에게 사이버 상에서 전도해야 합니다. 성령 받고 잘 훈련된 사이버 선교사 1,000명만 있어도 100만 군대 못지 않은 위력이 있습니다. 사이버 1만 명만 뭉치면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성령이 임하시면 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눅12:49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했습니다.
오늘 날 부흥이 정지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흥은 하나님이 주시지 사람이 만들어 내지 않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성도들은 부흥을 하나님 앞에서 구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사람들은 방법론만 찾으러 다니지 엎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흥은 정지되고 세상에 짓밟힘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이 임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정결하게 됩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립니다. 가르침이 있고, 능력 받으며, 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한 생활을 사모하시어 하나님의 큰사랑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5
(고전12:6-11)

요약
성령이 임하시면 9가지의 은사가 임한다(고전12:8-11). 은사는 신앙과 사역을 돕는 없어서는 안될 귀한 도구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9가지 열매가 맺는다(갈5:22-23). 이 열매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리스도를 닮은 아름다운 마음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여러 가지 역사가 따라온다(고전12:6-7). 이 역사는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는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도들이 귀한 지체임을 느끼게 된다(고전12:13-14). 성령 충만할 때 비로소 한 몸 의식이 자각된다.


6월은 성령의 달입니다. 그래서 계속하여 성령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성령이 임하시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성령이 임하시면 되는 아름다운 축복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럼, 성령이 임하시면 또 어떻게 됩니까?

1. 성령의 9가지 은사가 임합니다.

고전12:8-11에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은사란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은사는 구원이 아닙니다. 은사는 생명도 아닙니다. 은사를 받았다고 인격이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은사는 우리의 신앙과 사역을 위해 돕는 귀한 것입니다. 은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은 은사가 없다는 사람이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은사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할 때 사도들과 수많은 백성들에게 이 은사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방언을 말하고 병을 고치며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약하고 무식했던 그들이 갑자기 강하고 유식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로 변했습니다. 은사란 선물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어디 다녀올 때 선물을 가져오듯 성령께서도 오실 때 그냥 오시지 않고 선물을 가지고 오십니다. 그것이 바로 은사인 것입니다.

2. 성령이 임하실 때 9가지 열매가 맺힙니다.

갈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마치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을 때 열매가 맺는 것처럼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예수님 마음과 같이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다른 종교들은 자력종교지만 기독교는 은총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자력종교는 스스로 살길을 찾고 스스로 의로워지려는 것이 때문에 그것은 수양이나 요가이지 종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스스로 찾아가지나 그런 소리에 현혹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은 성령이 임하심으로 오는 새로운 생명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에서 고민하지 말고 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받으면 죄에서 자유함을 받습니다. 고후3:17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또 롬8:2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자의 가장 큰 죄는 예수 믿지 않는 것이고 신자의 가장 큰 죄는 은혜 받지 않는 죄입니다.

3. 여러 가지 역사가 따라옵니다.

본문 6-7절에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역사는 도우시는 은혜입니다. 막16:20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했습니다. 우리 나라 초대 교회에도 얼마나 표적이 많았습니까? 이것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예수의 복음을 확실히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감추인 비밀과 같이 신비합니다. 그래서 다른 성령의 은사나 열매는 구체적인 명시가 있지만 이 성령 역사는 구체적인 명시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길이 때를 따라 어떻게 나타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신비하게 임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에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히11:33-34) 라고 했습니다.
혹은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이태 동안 하나님께서 얼마나 강하고 희안하게 역사해 주시는지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했습니다. 손수건만 갖다 놓아도 병자가 낫고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렇게 역사하신 것이지 항상 그렇게 역사해 주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제도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혹은 반대로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각양 신비한 역사가 있습니다. 외국에서 신유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날 때 사람들은 암을 토하여 그 토한 암만 해도 수레로 실어 나갔다고 합니다.
오늘날 영서가 성경적이냐고 묻는다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논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냐입니다. 즉 아무리 그걸 듯 해도 성령으로 된 것이 아니면 반대해야 하고 이해하기 힘들어도 성령으로 된 것이면 그래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교리적인 산물이 아니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열매이기 때문에 이것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권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4.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서로 귀한 지체임을 느낍니다.

고전12:13-14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 아니오 여럿이니" 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믿을 때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비로소 한 몸 의식이 생겨납니다. 몸의 지체도 피나 신경이 통하지 않으면 붙어 있어도 내 몸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성령 충만치 않으면 한 몸 의식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예수 믿는 사람처럼 귀한 것이 없고 서로에게 은혜가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한 몸이기 때문에 생명적인 흐름이 있습니다. 이 생명의 흐름은 서로에게 흘러가서 은혜를 끼칩니다. 이 생명을 말씀을 통해서 흐르고 찬양과 기도를 통해서 흐르고 안수를 통해서도 흐릅니다. 모이기만 해도 흐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성령 충만한 모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셀 목회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 셀 목회는 지체들의 은사의 원리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도적 구역이나 분반 조직이 아니라 은사적 조직으로 바꾸어서 더 역동적이고 더 효율적이고 모두가 서로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성령이 충만히 임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성령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성령이 임하시면 은사가 임합니다. 열매가 맺습니다.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서로 간에 귀한 지체임을 느낍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모든 것이 성령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귀한 은총을 덧입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