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린 이 설 교

공 상희 2011. 7. 22. 14:10

감사/

고마움, 마음, 보답, 은혜.

 

## 생명에의 감사

 

어떤 사람이 중병으로 장기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했다. 때는 4월 초순, 나무마다 새 움이 돋아나고 있었다. 나무 밑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깐 쉬는데 머리와 나무 사이에도 생명력이 가득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병상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 들던 일을 생각하면서 이 사람은 자기가 생명을 지니고 이렇게 생명들 사이에 둘러 싸여 있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 사람은 이것을 “생명에의 감사”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생명에의 감사”를 상기하며 극복해 나가고 있다.

 

## 범사에 감사하라

 

미국 어느 병사의 아내가 이혼을 결심하고 목사를 찾아왔다. “남편이 이 몇 해 동안 알콜 중독으로 술에 녹초가 되어 방에서 쓰러지고, 알몸으로 뒹굴기도 해요. 저는 도저히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어요. 그러니 목사님의 다른 어떤 말씀도 달게 받겠지만, 제발 그 사나이와 함께 살라는 말씀만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목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성서의 가르침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함께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자 그녀는 “믿습니다”하고 말했다. 2주일 후에 목사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녀가 말했다. “목사님, 참으로 신기해요. 남편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어요. 그 사람은 이 2주일 동안에 술이라고는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어요. 이제 비로소 저는 하나님께서 세밀한 일까지 살펴 역사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어요”하며 흐느껴 울었다.

 

## 일요일의 성찬

 

19세기 프랑스 낭만파의 시인 쥬르 비블은 같은 시인인 친구 페트류스 보렐과 함께 자취를 했다. 그들은 너무나 가난하여, 식사는 거의 번번이 감자로 때웠다. 그런 가운데서 일요일이 되면, 비블은 “오늘은 성찬이야!” 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감자에 소금을 뿌려 맛좋은 듯이 먹는 것이었다.

 

## 손양원 목사의 감사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감동적이다. 그가 자기의 두 아들 동인, 동신을 죽인 원수(안재선)를 양아들로 삼은 이야기는 인간으로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두 아들의 영결식 때 손양원 목사께서 “내 느낀 바 은혜 받은 감사의 조건을 들어 답사를 대신하겠습니다”며 자그마치 아홉 가지의 감사문을 다음과 같이 읽어갔다.

①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②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 어찌 이런 보배를 내게 맡겨 주셨는지 감사하며

③삼남 삼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합니다.

④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두 아들이 순교하게 해 주심을 감사하고

⑤예수 믿다가 누워서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가 총살 순교함이리요.

⑥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함이며

⑦내 사랑하는 두 아들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⑧내 두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감사합니다.

⑨이와 같은 역경 속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기쁜 마음, 여유있는 믿음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 감사의 조건

 

감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은혜가 충만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서 그 사람이 감사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면 감사를 하여야 하지만 세상 사람의 마음은 그러하지가 않다.

북가좌에 한 교회가 있다. 그 교회의 권사 중에 손00 권사가 있다. 이 분은 모든 일에 불만이 없는 분이었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도 기쁜 일을 만날 때에도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변화가 없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즐거운 일을 만나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운다. 그분의 인생살이 속에는 불만의 여지가 전혀 없다. 병이 들어서 고생을 하였으나 그러한 중에서도 오히려 자신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하나님께 감사를 하였다. 집안의 딸이 사기 결혼에 의해서 초혼에 실패하였지만 손 권사는 그러한 여건 중에서도 불만이 없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면서 기도가 있을 뿐이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 기도하는 당신의 여종의 뜻을 헤아려 주옵소서.”

기도마다 간단하지만 이는 바로 감사의 절규였다. 역경 중에서 감사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기쁨 중에서 감사하기보다는 역경 중에서 감사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감사 생활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신다. 감사는 하나님에 대한 약간의 작은 성의의 표시이다.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더욱 더 역경 속에서 감사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 지금 감사해야

 

한 국민학생이 이웃집 아주머니를 따라서 기도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신유은사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학생은 그곳에서 양발에 발가락이 없어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은 걷는 것을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 발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온 몸이 뒤흔들거리면서 균형을 잃었다. 그 모습은 차라리 다리를 쓰지 못해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보다도, 그리고 소아마비로 절뚝거리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힘들게 보였다. 이 모습을 본 학생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자신도 늑막염에다, 여기에서 생긴 합병증으로 말미암은 좌반신 불수 때문에 제대로 걸음을 걸을 수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병고침 받는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기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나마의 자기처지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발가락이 있지 아니한가? 하며 감사했다. 그 후 이 학생은 “주여, 발가락보다 소중한 삶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자신의 어려움을 한탄하거나 여기에서 벗어나려고하기 보다, 자기보다 못하거나 자기보다 더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 결심을 이루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그 준비를 착실하게 해 나아갔다. 그는 지금 불편한 몸을 가지고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하는 모 신학대학의 3학년 학생이 되어 있다.

 

## 하루의 감사

 

위장을 떼어내고도 감사하는 분, 우리 교회에서 자라서 참 좋은 믿음으로 활동하며 수고하다 목사의 아내로 출가한 분이 있다. 그분이 수술을 하였다기에 병실을 찾았더니 두 가지 주사가 꽂혀 있는 채 미소 지은 얼굴로 맞이한다. 그 날은 그저 위장을 일부 잘라냈겠지 하고 위로하고 기도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 남편 목사에게 들었더니 암이 심해 위장 전체를 들어내고 식도와 장을 직접 연결했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 원목이 수술전에 상담하고 기도로 준비하며 진행중이라고 한다.

아 ! 놀랍다. 그런데도 어쩌면 그 사모는 그렇게도 침착하고 태연했을까 !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수술하지 않으면 곧 끝날 일인데 그렇게 원인을 찾아내어 수술했기에 최소한 3년은 더 연장되었으니 본인도 식구들도 감사하며 잘 다루어 나가면 더 살 수도 있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한다.

오늘 아침에 다시 찾아갔더니 링겔 주사를 꽂은 채로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웃으며 목사님 또 오셨느냐고 인사하는데, 나는 속으로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든지 나를 통제하느라 무던히 애를 썼다.

기도를 마치고 병실을 나서 층계를 내려오면서 ‘그렇지. 주님이 준비하신 다음 세계가 있음을 확신하며 3년이면 약 1,100일을 더 허락 받았다고 생각하기에 저들 내외는 웃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한 시간 한 시간 하루 하루를 귀하게 살며, 특히 위를 가지고 산다는 것을 감사하며 살기로, 또 그 위에 주님이 다음 세계를 준비해 주셨음을 감사하며 살기로 다짐하면서 병원 문을 나섰다.

 

## 설거지하는 일이 감사해요

 

미국에 볼크 돌이라는 여성 저술가가 있었다. 돌 여사는 많은 책과 잡지의 기사를 쓰는 문필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언제나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돌 여사가 더욱 깊이 감사하는 것은 그런 유명한 일에 대해서 보다는 자신이 부엌 설거지를 할 수 있는 데 대해서였다. 이는 돌 부인이 일생 중 오랜 세월을 맹인으로 지냈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어려운 수술 후에, 겨우 조금이라도 볼 수 있게 되자 부인은 그만 감격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의 부엌 작은 창문으로 작고 푸른 조각 하늘이 보입니다. 또 비누거품에 나타나는 영롱한 무지개 색깔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아요. 암흑뿐인 긴 세월이 지난 후, 이렇게 집안 일을 돌보며, 눈으로 보는 갖가지의 아름다움은 그칠 길없는 감사의 원천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행사 끝에 치우는 일은 으레 가난한 신자이거나 낮은 보수의 직업을 가진 부인들의 차지이다. 사회적 지위가 좀 있거나 돈 푼이나 있는 소위 배운(?) 여자들은 손에 물 묻히는 일은 애써 피하려 한다. 이에 비하면 돌 여사가 갖는 겸허한 신앙이야말로 모든 여성 신자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궂은 일에 대한 감사를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 작은 감사

 

언젠가 우리 집에 생수를 생산하는 공장의 영업소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리고 우리 집을 확인하더니 하는 말이, ‘어느 분이 전하라고 하는 말인데 그분은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수십년 동안 하노라고 했지만 은혜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교회에 다녔었는데 갈보리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듣는 중에 은혜를 받고 너무 감격스럽고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은혜를 무엇으로 어떻게 감사의 표시를 할까 생각하다가 심령의 해갈을 얻게 해주신 목사님께 육신의 생수를 드리고 싶다면서 누구인지 이름도 밝히지 말라며 이번 주 토요일부터 생수를 배달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생수를 받는 것 때문이기 보다는 한 심령이 수십년 동안 예수님이 문을 두드리시는데 모른 척하고 있다가 그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데 대하여 한없이 감사했고, 부족한 사람이 그 기구 노릇을 한데 대하여 영광스럽게 생각했다.(목사, 박조준)

 

## 유치장에서의 감사

 

일정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가혹한 박해가 있었다. 더구나 기독교 신자는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라 하여 외면하였기 때문에 감옥에 가는 일이 예사로웠다. 어떤 한 목사님도 기독교 박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경찰서 유치장에 끌려가게 되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게 되니 오히려 영광스럽고 고마울 뿐이라고 하였다. 그는 도적질을 했거나 강도질을 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예수 이름 때문에 핍박받고 유치장 신세가 됐으니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직 “감사하다. 감사하여라”는 말뿐이었다. 간수를 붙들고도 계속 감사하다고 되풀이 하였다. 간수는 주임에게 목사가 정신이 돌아버렸다고 보고하였다. 주임은 이 목사를 경찰서장에게 끌고 갔다. 이곳에서도 이 목사는 “백배 천배 감사하다. 이런 영광이 어디 있는가”라고 소리 질렀다. 결국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고 이 목사는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예수 이름 때문에 유치장 신세가 되어도 감사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으니 감사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니 더 감사했던 것이다.

 

## 플라톤의 감사

 

소크라테스의 사랑하는 제자였던 희랍이 낳은 세계적 철학자인 플라톤(B. C. 427-347)은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약관 28세의 청년이었다. 스승의 죽음을 몹시 애석해 하던 플라톤은 스승을 가리켜 말하기를,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지혜롭고, 가장 정의로우며, 가장 선한 사람이었다!”라고 찬탄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존경하는 스승을 잃은 슬픔에 그는 12년이나 긴 세월을 실의와 절망과 허무에 싸여서 이집트로, 시실리로, 이탈리아로 돌아다니며 방황하였다. 나이 40이 되어서야(B. C. 387)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철학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가운데 잊을 수 없는 한 마디를 소개한다.

“나는 하나님께 세 가지를 감사합니다. 첫째는 내가(야만인이 아닌) 희랍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이요, 셋째는(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 보다도 하나님께 더욱 감사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소크라테스 시대(age of Socrates)’에 태어난 사실입니다!”

 

## 감사생활

 

시인 에머슨은 “우리 눈 앞에 피는 아름다운 꽃들과 향기롭고도 고운 연한 풀과 새들의 노래와 별들의 역사와 그밖에 우리가 보고 듣고 아름다운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노래했다. 또한 트렌취 감독은 감사시 중에서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가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길이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춰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로운 빛이다 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고 노래한다. 뿐만 아니라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인생이란 왜 이리도 괴로우며 기쁜 일이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리며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딱지 같은 오두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는 이가 있다”고 했다.

 

## 맹인의 감사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 여사, 앞 못보는 그녀가 사흘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첫째날에는 삶의 보람을 느끼도록 해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오랫동안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친구들 속에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모습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싶다고 했다. 오후에는 서늘한 숲속을 거닐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눈에 듬뿍 채운다. 그리고 황홀한 저녁 노을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 날 밤 그는 한 잠도 이룰 수없을 거라고 했다.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일어나서 밤이 낮으로 바뀌는 기적을 맞이한다. 잠든 대지를 깨우는 햇빛의 장엄한 광경을 경건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 세상의 과거와 현재를 두루 살펴보는 데에 시간을 바친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 깊숙한 곳을 들여다 본다. 밤에는 영화관이나 극장을 간다.

셋째 날은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찾아간다. 미소 띈 얼굴을 바라보며 행복할 것이다. 진지한 결단의 표정 앞에서는 긍지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고통스런 모습을 보고는 연민의 정을 품을 것이다.

마지막 날 저녁에 또다시 영화나 연극을 보면서, 인간의 정신이 한낱 우스개짓으로 물들어 버릴까봐 겁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끝으로 이런 말을 남긴다.

“나는 눈이 먼 사람이다 눈먼 내가 눈이 멀지 않은 당신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당신의 눈을 사랑하라. 눈만이 아니다. 귀가 먹어버리고 벙어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상상해 보라. 그러니 신비로운 자연이 마련해 준 여러 가지 접촉을 통해 세계가 당신에게 보여준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확신한다. 볼 수 있다는 이 시력이야말로 모든 감각 중에서도 가장 값지다는 것을.”

 

## 벼룩을 주심을 감사

 

코리는 폴랜드의 한 아름다운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런데 독일 나치에 의해 나라가 정복되자 유태인을 숨겨준 죄목으로 온 가족이 포로 수용소에 잡혀가게 되었다. 코리는 언니 벳시와 함께 감금되어 온갖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어느 날 신체 검사를 받는 도중 한 그리스도인 간호원이 코리에게 “가장 갖고 싶은 것을 말씀하세요”라고 속삭였고, 코리는 그 간호원을 통해 작은 성경 하나를 얻게 되었다. 코리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코리는 들키지 않게 갖은 애를 써가며 성경 말씀을 삼키듯이 읽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도 소중한 생명의 말씀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코리는 데살로니가전서 5:18말씀을 읽었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 말씀은 코리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런지 얼마 안되어 코리는 언니 벳시와 함께 감방을 옮기게 되었다. 옮겨진 감방으로 오자 코리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마음이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비참한 곳에 있었지만 이곳은 더욱 비참했다. 게다가 벼룩까지 들끓어서 견딜 수 없는 곳이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지만 코리는 도저히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언니 벳시가 눈을 감고 나즈막하게 기도드렸다. “주님 우리에게 벼룩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할 수 없이 코리는 아멘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코리는 벼룩을 인하여 감사해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벼룩 때문에 그 감방 주위에는 간수도, 독일 군인도 얼씬을 하지 않았고 그들은 자유롭게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코리와 벳시는 매일 성경 말씀을 가르치게 되었다. 온종일 강제 중노동에 시달리고 굶주린 여인들과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아픈 곳을 만져주고 양보하며 기도하는 놀라운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나누게 되자 그곳에는 천국의 교제권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벼룩 때문에 가능했음을 코리는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 에디슨의 감사

 

미국 오하이오주 밀런이 낳은 에디슨은 무선 전신기, 활동사진기, 축음기, 백열전구 외에도 수많은 기계를 발명하여 인류 세계에 크게 공헌한 대발명가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발명하기 전 벌써 젊은 날에 귀머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불행에 처하여서도 조금도 낙심치 않고 분발분투했다. 그리하여 그는 인류문화에 크게 공헌한 위대한 과학자가 된 것이다. 아니, 그는 도리어 불행을 불행으로 생각지 않고 그 불행을 유익하게 이용했다. 그는 그 불행을 도리어 감사했다. “참으로 내가 귀머거리가 됨을 감사하는 것은 연구에 몰두할 때 잡음이 들리지 않아서 많은 도움이 된 것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모든 것은 감사히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감사치 않을 것이 없는 것이며, 그런 사람에게는 또한 모든 것이 감사할 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것이다.

 

## 감사의 기도

 

6. 25사변으로 공산군에게 점령되었던 수도 서울을 UN군(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뛰어난 작전으로 9월 28일 탈환하게 되었다. 맥아더 장군의 9월 29일 우리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서울 환도를 축하하는 메시지의 일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서 인류의 최대 희망과 인스피레이션의 상징인 국제 연합기 아래서 싸우는 우리들의 군대는 한국의 고도를 해방하게 되었습니다.” 하반에 가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각하와 귀국 정부 당국자가 자선과 정의의 정신에 의하며, 여러 가지 곤란에 대처하는 예지의 힘을 얻는 동시에 한국인민의 과거의 노고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희망에 찬 새벽이 찾아 올 것을 나는 갈망하여 마지 않는 바입니다. 나는 우리 군대에게 금번의 결정적인 승리를 주신 하나님 앞에 우리들의 겸손 경건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자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을 거룩하게 …,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아멘” 승리의 영예를 하나님께 돌리며 주기도로 끝낸 메시지. 그것은 참 감사의 기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골 4:2-3).

 

## 12억환의 자본가

 

한국 기독교사에 있어 부흥사로 널리 알려진 바 있는 이성봉 목사는 다음과 같은 감사를 한 일이 있다. “나는 나의 밑천을 영(靈)으로 치고 사니까 가난뱅이가 될 것 같으나 도리어 부자가 되었다. 놀라지 말라! 내 자본이 얼마인가 하면 12억환이다. 이 말은 실없고 허황된 말 같으나 이는 사실이요 진실한 말이다. 왜? 내가 쓰고 있는 이 몸을 물자를 들여서 기른다고 하면, 독일같이 과학이 발달된 나라에서도 2억환이 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내 몸값이 2억환이요. 또 2억환짜리 아내를 맞았으니 합이 4억환이다. 거기서 딸 4형제를 두었으니 도합 12억환 재산가가 아닌가? 나는 집에 들어가면서 막대기를 휘둘러도 무엇하나 거칠 것이 없지만, 그러나 12억환의 자본을 가진 재벌이다. 그러다가 만일 또 하나님이 데려가신 대도 내게 손해볼 것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밑져야 본전이니까? 나는 이러한 인생관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내 생애는 항상 평안하고 감사할 뿐이다.”

 

## 추수감사절의 유래

 

미국에서는 11월 네번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있다. 이것은 영국의 청교도 120명이 1620년 11월 11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프리머스에 상륙한 지 2년째 되는 해에 인디언으로부터 재배법의 가르침을 받은 옥수수가 많은 수확을 올린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 데서 비롯된 명절로, 우리나라 교계에서도 해마다 이 명절을 기념하고 있다.

 

## 밀레의 만종

 

프랑스의 화가 밀레의 「만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희끄무레한 저녁 햇살이 넓은 밭을 비추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프랑스의 어느 시골에서 농부 부부가 기도를 올리고 있다. 남편은 괭이를 짚고 서서 모자를 손에 잡고, 아내는 바구니를 발치에 놓고 오른쪽에 작은 손수레를 세우고 있으며 교회에서는 저녁 종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11세 시대에 아침, 낮, 저녁 일정한 시간에 교회에서 기도의 종을 울릴 것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 종소리는 기도의 신호였다. 하루 종일 땀을 홀리며 일한 농부가 멀리 교회에서 저녁 노을을 통하여 들려오는 만종을 신호로 일손을 놓고, 하루의 일을 마친 기쁨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가난했던 밀레가 오늘 우리나라 돈으로 5,000원에 팔았던 이 그림은 그 후 30년이 지났을 때에는 200만원을 호가하고 오늘날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프랑스의 국보가 되었는데, 이 그림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그림은 없을 것이다.

 

## 끝없는 감사

 

어느 날 웨슬레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학교 수위와 우연한 기회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저씨, 집에 가서 옷 좀 갈아 입고 오지 그래요?”

“나는 옷이라고는 이것 한 벌 밖에 없는 걸.”

“그래요. 거 참 안됐군요.”

“안되다니?… 나는 하나님 앞에 감사할 뿐이야.”

“어서 가서 저녁을 먹어야 하지 않아요?”

“응, 그러구 보니 나는 오늘 점심은 물로 때우고 여태 저녁을 먹지 않았군.”

“저런, 아저씨 딱하기도 하네요.”

“딱하기는… 그래도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네.”

“아니, 아저씨, 덮어 놓고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한 거예요?”

“암!”

“그밖에 또 무엇을 감사할 게 있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목숨을 허락해 주시고, 또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섬길 수 있는 믿음을 주셨으니 감사하지”

웨슬레는 수위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고, 신앙에는 아직 자기가 미처 발을 들여놓지 못한 경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못생김의 감사

 

옛날 어느 마을의 한 여인이 자신의 못난 얼굴을 놓고 부모를 원망하고 자신을 심히 학대하며 잘 생긴 친구의 모습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때로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할 정도로 그 여인에게 자신의 못생김은 대단한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외세의 침략으로 그 마을이 점령당했고 마을의 처녀들을 잡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순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이구 어머니 아버지 저를 못생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고 한다.(목사, 이신구)

 

## 오로지 감사

 

한 번은 매튜 헨리가 강도에게 돈지갑을 빼앗겼었다. 그 때에 그는 말하기를, “나는 남의 것을 도적하지 않았으니 감사하다”라고 하였다.

부래드포드는 말하기를, “왕이 나를 놓아주면 감사하겠고, 나를 감옥에 가두어 두어도 감사하겠고, 나를 태워 죽여도 감사하겠노라”고 하였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 표준으로 생각하게 되므로 감사해야 된다. 기쁜 일이 있으면 주님께 찬송할 기회가 되었으니 감사해야 되고, 괴로운 일을 당했으면 하나님께 기도할 기회가 되었으니 감사해야 된다.

 

## 기회의 선용

 

서울의 찻길이 자동차의 물결로 홍수를 이루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욱이 출퇴근 시간의 러시아워에는 교통지옥이란 표현들을 흔히 쓴다.

어느 날 택시를 타고 퇴근하던 중 퇴계로 길에 서 있었다. 차선 도로를 꽉 메운 자동차의 행렬은 심한 체증으로 말미암아 좀처럼 빠져 나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오른편의 운전기사는 신경질을 부리며 얼굴을 창밖으로 내밀더니 누군가를 증오하는 목소리로 소리친다. “웬노무 자동차가 이리도 많아서 우리같은 놈 일당도 못채우게 하노! 자가용차 반으로 줄여야 해 !”

그런데 우리를 태운 택시 운전기사는 빙긋이 웃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손님, 저는 이러한 때 가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사생활하면서 언제 따로 시간내서 기도할 수 있습니까? 어차피 차는 막힐거고 신경질낸다고 차가 빨리 빠질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손님이 없으면 기도하고, 손님을 모셨으면 전도도 하지요. 손님, 예수 믿으세요?”

나는 그의 말을 더 듣고자 대답 대신 빙그레 웃음을 보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저는요, 운전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돈 벌면서 전도하고, 어떤 때는 손님들의 대화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지요. 그리고 금년에 우리 딸이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예수 믿고 보니 모든 것이 감사한 것 뿐이예요.” 여의도의 00교회에 나간다는 그 기사의, 웃음을 머금은 환한 얼굴을 되뇌이면서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의 일에 힘쓰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해본다.(장로, 김기찬)

 

## 헌혈 통한 사랑 나눔

 

며칠 전 수요일 밤 11시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목사님, 목사님 !”

방금 교회에서 돌아와 쉬려고 하는데 누가 찾아와 “내 딸좀 살려 주세요. 내 딸좀 살려 주세요”하는 것이었다. 사정인즉 올해 5살난 딸 아이가 한달 전부터 손발이 차고 입술이 파랗게 되어 대학병원에 입원했는데 수혈해야 할 형편이어서 피를 구하려고 하루종일 뛰어 다녔지만 구하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교회 가면 목사님이 구해 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들어 밤늦게 체면을 무릅쓰고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급할 때 목사에게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고맙고, 감사하였지만 참으로 난감하였다. 그때 지역내에 있는 군부대가 생각나 연락하였더니 내일 아침까지 사람을 보내주겠다는 중대장님의 응답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사랑한다는 것, 사실은 피곤한 것이 아니라 새 힘을 얻는 생수이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이 얼마든지 있으니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주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심을 확신하며 감사드린다.(목사, 김동환)

 

## 다 잃어도 감사

 

중국의 유명한 선교사 왕 박사는 동남아를 여행하던 중에 자기의 소유물을 도둑에게 모두 잃었다. 잃어버린 물건들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하여, 신문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코트와 양복과 셔츠를, 잃어버렸지만 아직도 나는 예수님의 의의 옷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나는 돈을 다 잃어 버렸지만 하늘나라 은행에 예금해 둔 나의 재산은 아무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나는 성경책도 잃어 버렸지만 아직도 나의 기억속에 넣어둔 성경구절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는 나의 설교 원고를 다 잃었지만 아무도 나의 속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는 절대로 도적해 갈 수가 없으니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기독교 유모어)

 

## 감사하는 자에게 주어진 은전

 

어느 해, 독일에서는 무서운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었다. 그런데 한 마을에 착한 부자 할아버지가 살았는데, 매일 아침 동네의 어린이들을 불러 빵 1개씩을 나눠 주기로 약속을 했다. 어린이들은 할아버지가 매우 고마웠다. 아침마다 어린이들은 할아버지의 빵 바구니를 기다렸다. 어린이들은 빵 바구니를 보자 벌떼처럼 달려들어 빵 1개씩을 갖고 갔다. 힘센 어린이가 먼저 가장 큰 빵을 집어갔다. 그런데 그린첸이라는 소년은 다른 어린이들이 다 집어간 후, 맨 나중에 제일 작은 빵을 집고는 할아버지에게 가서 “할아버지 !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집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린 후 나누어 먹는 것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아침이 되자 어린이들이 나와 빵 1개씩을 갖고 갔다. 그린첸 소년은 여전히 할아버지에게 가서 맨 나중의 가장 작은 빵을 갖고 “할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하고는 집으로 가서 어머니와 빵을 나누는데, 그 빵안에서 은전 한 닢이 나왔다. 소년은 얼른 할아버지에게 달려가서 그 은전을 돌려주었는데, 할아버지는 “감사할 줄 아는 어린이에게 주려고 빵 속에 넣은 것이니 그 돈은 네 것이다”라고 하며 돌려주었다.(목사, 김학복)

 

## 어떤 감사

 

“여보, 바쁘지만 한 숟갈만 뜨고 가세요.”

지구 반대편까지 여행할 남편을 굶겨 보내기가 안쓰러웠던지 이른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조반을 준비해 놓은 아내가 말했다. 나는 국에 밥 말아 후루룩 먹어 치우고 차에 올랐다. 별다른 문제만 없다면 공항에 도착하여 20분쯤은 여유가 있으리라. 약 15분쯤 운전을 했을 때다. 길이 꽉 막히더니 차가 꼼짝을 안한다. 대형사고가 난 모양이다. 한 자리에서 무려 3시간이나 서 있었다. 여행 스케줄을 다음날로 조정하고 방송국에 가서 미처 끝내지 못한 녹음을 마무리지었다. 교통사고가 없었다면 녹음이 마음에 걸려 여행기간 내내 언짢은 기분이 되었겠지? 감사한 일이다.

다음날 새벽, 공항에서의 일이다. 항공사 직원이 말한다.

“어떤 좌석을 드릴까요?”

“가능하면 통로쪽 좌석을 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여권을 보여 주십시오.… 아니, 이건 당신 부인 거군요.”

되받아 보니 아내 것이 분명하다. 내 여권을 넣어두는 서랍에 얼마 전 여행을 다녀온 아내가 자기 것도 넣어 두었던 모양이다. 그걸 알리 없는 나는 으레 내 것인 줄로만 알고 들고 나왔던 것이다. 이런 실수는 처음이다. 그것도 이틀씩이나 비행기를 못 타다니. 씁쓸한 기분으로 발길을 되돌리면서 문득 얼마 전 처형을 여의고 홀아비가 된 동서를 머리에 떠올렸다.

“그래, 집사람이 있기에 이런 실수를 한거야.”

건강한 아내가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목사, 노의일)

참으로 힘들었어요 영아부 설교를 하고 있는데 제가 너무 부족하여 자꾸만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