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화

공 상희 2011. 7. 22. 15:19

기도 예화 모음

한 농부의 소원

소련에 한 가난한 농부가 살았다. 그는 여러 모로 가난을 면하고자 노력했으나 그의 살림은 항상 어려웠다. 그의 소원은 천 평 정도의 자기 땅을 가지고 씨를 뿌려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하루는 그가 하나님께 그의 소원을 아뢰기로 결심하고 하나님 앞에 편지를 썼다. 천 평의 땅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을 보내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러나 이 편지(하나님 전상서)를 붙이는데 수신자의 주소가 문제였다. 그는 할 수 없이 모스크바의 크레믈린 궁으로 이 편지를 붙였다. 당시 서기장이던 흐루시쵸프가 이 편지를 받아 보고 농부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고자 500평 규모의 땅을 구입할 수 있도록 돈을 보내주었다. 그러자 이 농부는 하나님께 다시 편지를 썼다. '앞으로는 흐루시쵸프를 거치지 말고 직접 저에게 돈을 보내주십시오. 흐루시쵸프는 나쁜 놈이라 반을 떼어먹으니까요'

부모의 기도

미국 버지니아에 존 영이라는 흑인 농부가 살았다. 존 영 부부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녀를 열네명이나 낳았다. 한번은 집에 화재가 발생해 온 가족이 희생당할 위기를 겪었다. 또 열네명의 자녀가 모두 전염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는 일도 있었다.
이 부부는 무식했으나 신앙생활은 철저했다. 부부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하나님이 지켜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이 부부는 거실에 가훈이 적힌 커더런 액자를 걸어놓고 자녀들이 그것을 매일 묵상하도록 교육했다. 그 가훈은 '이 집의 뿌리는 하나님이시다'였다. 결국 존 영의 자녀들은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모두 대학을 졸업했다. 자녀 중 코넬대학 경제학 박사, 교사, 간호사, 음악가 등이 배출됐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정은 망하는 법이 없다. 부모의 기도는 자녀를 위한 행복의 자양분이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힌다.

사역자와 중보자

19세기 미국을 뒤흔든 찰스 피니목사는 1830년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그 도시 전 인구의 10퍼센트인 1천명을 단 몇 달 만에 구원하였는데, 이 역사는 찰스 피니의 중보자 아벨 클레리의 중보기도 때문이었다. 피니 목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클레리씨는 나의 모든 집회를 위해 기도했다. 내가 집회 장소를 떠난 후에도 남아서 기도했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타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나 그는 전 삶을 다 바쳐 나를 위해 기도했다."
우리가 잘 아는 무디 목사도 마리안 아드라르드라는 중보자가 있었다. 장애로 인해 침대에 누워 살아야했던 마리안은 시카고에서 무디 목사가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런던에 있는 그녀의 교회로 무디 목사를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결국 무디 목사는 1872년 영국 런던에 와서 단 10일 동안 4백 명을 회심시켰다. 그 기간동안 런던에 사는 마리안이 뒤에서 중보기도를 드렸음은 물론이다. 캐나다 선교사 조나단 고퍼스는 1909년에 중국 만주에서 집회를 할 때 성령의 특별한 능력이 그녀에게 임했다는 기록을 한 처녀의 기도노트에서 발견하였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중보기도의 결과이다. 영적 지도자가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최전방에서 싸우는 하나님의 종에게는 반드시 이 이상 중보기도로 헌신하는 후방의 기도 동역자들이 있어야 한다. 사역자와 중보자는 하나이다.

사랑의 기도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가 교회학교 부장으로 일할 때였다. 그 학교에는 '존'이라는 문제아가 있었다. 교사들은 모두 존에 대한 교육을 포기했다. 교사들은 존의 퇴학을 강력히 주장했다. "다른 학생들을 위해 존을 퇴학시켜야 합니다." 그때 한 여교사가 존을 맡겠다고 나섰다. 결국 존은 한 여교사의 반에 편입됐다.
한번은 여교사가 싸움을 하는 존을 훈계했다. 그러자 존은 욕설을 하며 교사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여교사는 얼굴의 침을 닦으며 존에게 말했다. "존, 우리 집에 놀러오렴. 너에게 줄 멋진 선물이 있단다"
존은 여교사로부터 예쁜 조끼와 편지를 선물로 받았다. 편지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존, 너를 사랑한다. 절대 우리 반을 떠나지 마라. 선생님은 너를 위해 매일 기도한단다."
이튿날 여교사의 집 앞에서 한 소년이 무릎을 꿇은 채 울고 있었다. 그는 존이었다. "사랑의 기도"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어윈 대령의 간증

벌써 30여 년 전에 우주선을 타고 처음으로 달나라에 다녀온 어윈 대령이 한국에도 와서 간증한 내용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달나라에서 지구를 볼 때 눈에 잡히는 광경은 우리가 여기서 달을 볼 때의 그것과는 판이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달을 보면 작아 보이고 흑백으로 보이지마는 달에서 지구를 보면 엄청나게 커 보이고 또 총천연색이라고 합니다. 좌우간 만리장성도 보인다고 합니다. 그 얼마나 장관이겠습니까! 이런저런 놀라운 이야기를 많이 한 그는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도 더욱 중요하고도 심각한 것이 있다고 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캡슐을 타고 지구를 향하여 떨어질 때 낙하산이 둘 펼쳐져야 합니다. 두 개의 큰 낙하산이 펼쳐져 공기 저항을 받음으로써 조용히 안착하게 되어 있는데, 낙하산이 하나만 펼쳐지고 하나는 펼쳐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비상 수단을 써 보아도 안되었습니다. 휴스턴 사령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그대로 떨어지는 날에는 아주 박살이 나고 맙니다. 그러나 모두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런 때였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늘과 땅 위에서 그들은 모두가 딱 한마디, "기도하자!"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 캡슐을 타고 지금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어윈 대령 그도 기도하고, 휴스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느닷없이 땅에서부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치솟아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바람을 맞으면서 낙하산 둘 터진 것과 같은 속도로 안전하게 떨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기적이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회오리바람은 난데없이 생겨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정녕 하나님께로서 난 것임을 그리고 우주선은 휴스턴 사령탑에서 조정하는 줄 알았는데 그 뒤에 하나님께서 계셨다는 것을 그 사건을 통하여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덧붙여 말하기를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이다 하면서 그는 울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인생의 구명로프

한 젊은 등산가가 몽블랑 정상을 정복했다. 그는 정상에 깃발을 꽂고 하산하던 중 베이스캠프에 들렀다. 알프스의 작은 마을인 샤모니에서 정상정복을 기념하는 축하파티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잠시 영웅심에 취해 긴장의 끈을 늦추었다. 갑자기 자신의 몸에 감긴 구명로프가 귀찮게 여겨졌다. 그래서 몸에 감긴 로프를 모두 벗어던졌다. 안내원은 무모한 행위를 거듭 지적했다. "로프 없이 하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나 그 등산가는 교만과 방심을 버리지 않았다. "산을 올라갈 때도 아무 일이 없지 않았는가. 내려가는 길은 훨씬 쉽고 안전하다." 등산가는 빙벽을 타고 내려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천길 낭떠러지 아래에 떨어지고 말았다. 안내원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긴장의 끈을 늦추면 절벽으로 추락한다. 기도는 인생의 구명로프다. 그것을 집어던지는 순간, 영혼은 사망의 늪에 빠진다.

그대들도 거지와 같소

어떤 왕이 신하들이 식사 때마다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자 그들을 교훈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하루는 거지 한 사람을 자기 식탁에 함께 초청하였다. 그런데 거지는 분수에 넘치는 식사를 마음껏 먹고 나서는 임금의 친절과 너그러움에 대한 한마디 감사의 말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는 것이었다.
이를 본 신하들은 거지가 은혜를 너무 모르는 데 대하여 기가 막히고 분통이 터져 거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왕이 신하들에게 엄숙히 말했다.
"그대들도 이 거지와 똑같소. 그대들도 모든 것을 거저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있지 않소."(패티슨)

식당에서 생긴 일

<아틀란타 콘스티투숀>지(紙)의 칼럼니스트인 셀리스트 시블리는 어느 날 아침 세 자녀를 데리고 조그마한 레스토랑에 갔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에 지각하지 않고 그녀 역시 직장에 늦지 않기 위해서 그곳에서 아치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식당은 만원이어서 할 수 없이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여덟 살인 메어리가 맨 끝에 앉았는데, 식사가 나오자 망설이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식사기도를 안 하나요?"
잠시 정적이 흘렀고, 엄마는 당황해 했다. 그녀가 메어리에게 입을 다물라고 주의를 주기도 전에 종업원이 대답했다.
"물론 하지. 얘야, 우리도 기도한단다. 네가 기도해 보렴."
메아리는 머리를 숙였다. 식당에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도 머리를 숙였고, 메어리가 기도하는 동안 침묵이 흘렀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선하세요. 오늘 우리들에게 음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아멘!"

기도하는 손

종교개혁 당시 독일의 유명한 화가인 알브레이트 듀러하는 화가가 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기도하는 손'이 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듀러는 그림공부를 위해 한 친구와 함께 도시로 나왔다.
두 사람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그림공부를 했다. 그러나 두 가지 일을 모두 수행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한 친구가 듀러에게 제안을 했다.
"친구여, 내가 일을 해서 돈을 벌겠네, 자네는 그림공부에만 전념하게. 그리고 자네의 공부가 끝나면 그때부터 자네가 내 그림공부를 돕게나"
친구는 노동현장에서 돈을 벌어 듀러의 그림공부를 도왔다. 듀러가 공부를 마쳤을 때 친구가 말했다. "이미 내 손은 노동으로 굳어져 버렸다네. 이제부터 자네를 위해 기도해주겠네" 친구는 밤마다 듀러를 위해 기도했다. 듀러는 이 친구의 거룩한 손을 모델로 명화 '기도하는 손'을 완성했다.
모든 위대한 것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얻어진다.

영혼의 호흡

일본의 한 기업체에서는 욕을 들어주는 화풀이 전화를 개설, 직원들의 정신적 압박감을 덜어 줘 작업능률을 향상시켰으며 미국에서는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고 무슨 말이든 5분씩 들어주겠다고 광고했더니 주문이 쇄도했다는 일화가 있다. 억울함이나 답답함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허심탄회한 대화는 치유의 기능이 있으므로 가정이나 직장 등 공동체에는 대화의 자리가 비상구처럼 늘 열려 있어야만 한다. 특히 성도에게는 영혼의 호흡이라는 축복된 기도의 자리가 있다. 삶의 비밀스런 이야기들을 그분 앞에 털어놓으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도 있고 넉넉한 마음가짐도 배울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스스럼없이 잘잘못을 고백하여 늘 투명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성도의 모습이다. 영육의 건강을 위해서도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요 축복된 자리임에 틀림없다.


 

▣ 응답받는 기도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조지 뮬러 목사님은 애쉴리 타운이라는 큰 고아원을 세워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고아원의 보일러가 갑자기 고장이 났습니다. 보일러를 고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려야 하므로 고아원은 온통 비상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조지 뮬러 목사님에게 뛰어와서 "목사님 목사님, 큰일났습니다. 영아들이 있는 동에도 보일러가 고장나서 아이들이 다 얼어죽게 되었습니다" 하며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뮬러 목사님은 일어나 성경책을 옆구리에 낀 채 교회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워가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 했습니다.
"날씨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 어린아이들은 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생명들입니다. 이 어린 생명들의 아버지는하나님이시고 저는 총무일 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시간과 때를 주장하시는 아버지께서 일주일 동안은 봄 날씨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 "
조지 뮬러가 부르짖어 간구하는 동안, 갑자기 동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영국 전체가 봄 날씨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기상 이변도 흔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조지 뮬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북풍을 중지시키고 동남풍을 불게 해서 영국 전체가 온실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보일러를 수리한 후 정상적으로 가동하자 다시 한 겨울의 세찬 바람이 쌩쌩 불어왔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 기도의 응답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시28:1)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요구를 즉각 들어 주지 않을 때 실망합니다. 고속도로 상에서 일가족을 태운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막내 딸은 자기 아버지의 차가 다른 차들을 제치며 앞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즐겁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우리 아빠 차가 제일 좋다. 우리 아빠 차가 이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다른 차가 그 차 앞에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빠, 빨리 저 차를 따라가요, 어서요!’ 하고 재촉했으나 아빠가 말을 듣지 않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가족은 얼마 후 충돌 사고가 난 차량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무리한 추월 경쟁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입니다. 만일 아빠가 딸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것은 기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나타나지 않을 때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하는 의문에 휩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신앙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응답을 유보하시거나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요, 기도자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기도: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게 하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 묵상집

▣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2차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한 부인이 식료품 가게에 와서 성탄절 만찬에 아이들을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식료품을 달라고 했습니다.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주인이 물으니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어서 기도 밖에는 정말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기도를 종이에 써주십시요. 그러면 그 무게만큼 식료품을 주겠소 놀랍게도 부인은 접혀진 노트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인에게 건내주면서 '우리 어린애가 지난 밤에 아파서 옆에서 병간호를 하며 기도를 적어 두었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읽어 보지도 않은 채 주인은 구식 저울의 추를 놓은 곳에 기도가 적힌 종이를 놓고는 '자 이 기도가 얼마치의 식료품무게가 되는지 달아봅시다'하고 중얼거렸습니다. 놀랍게도 빵 한덩어리를 놓았는데도 저울은 꼼짝을 않했습니다. 다른 식료품을 올려 놓았는 대도 저울은 움직이지 않자 주인은 더욱 당황했습니다. 드디어 저울에 더 이상 올려놓을 수 없으니 당신이 봉지에 담아가시요. 나는 바쁘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눈물 흘리고 감사하며 그 부인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저울이 고장난 것을 얼마 후 주인은 알게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주인은 가끔 의아했습니다. 그 일이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왜 그 부인이 미리 기도를 써 가지고 왔을까? 왜 그 부인이 저울이 고장났을 때 왔을까? 그때 그 부인이 적은 기도문은 주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양식을 주시옵소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祈禱)하고 구(求)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 기도하는 손

많은 성화(聖畵)들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다. 그림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위대한 설교일 수가 있다. 그런데 그 그림의 의미를 이해할 때, 또는 그 그림이 그려지게 된 배경과 동기를 알게 될 때, 더 큰 감동적인 설교가 될 수 있다. 그런 그림들 중 하나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도하는 손’이다. 거칠어진, 그래서 힘줄까지 눈에 뜨이는 손, 그러나 경건히 아름답게 포개진 채 위로 향해져 있는 손! 이 그림 자체만 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경건한 마음, 기도하고픈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일화가 있다.
한 마을에 두 소년이 살았다. 그림을 즐기는 같은 재간을 가졌기 때문에 피차의 나이는 서너 살 달랐지만 늘 좋은 친구였다. 어느 날 두 소년은 이런 의논을 했다. 즉, 도시로 나가 둘이서 힘을 모아 그림 공부를 하자는 것이었다. 두 소년은 드디어 도시로 나갔다. 둘이 다 함께 공부하면 밥을 먹을 수 없으므로 나이 많은 소년이, 자기가 일을 할테니 어린 소년이 먼저 공부를 하고 공부가 끝나면 서로 바꾸기로 했다.
먼저 공부하기로 된 소년은 열심히 공부하여 몇 년 후에는
그림을 팔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하루 저녁에는 대단히 기쁜 마음으로 처음으로 그림을 판 돈을 들고 다른 소년이 일을 하고 있는 식당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 소년은 창 밖에서 식당을 들여다보고 말문이 막혔다. 콘크리트 바닥에 자기의 친구가 꿇어앉아 빗자루를 옆에 놓고 기도드리고 있었다.
“하나님, 저는 심한 일을 오래 했기 때문에 뼈가 굳어져서 이제는 그림을 공부해도 훌륭한 화가는 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제 친구는 더욱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창 밖에서 소년은 이 기도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곧 종이를 꺼내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그렸다. 자기를 위하여 봉사한 그 거룩한 손, 비록 거칠지만 친구를 위하여 희생된 그 손을 그려 오늘날까지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 골방기도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시편102:2)

하이든은 독실한 신앙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저명한 예술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민'과 '고통'의 문제가 화제로 올랐습니다. 경제적 고통이나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 때의 고민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화제의 촛점이였습니다. 저마다 한 마디씩들 하는 가운데 하이든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이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작은 골방을 기도실로 정했습니다. 일에 지쳤을때나 고민이 시작되면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방에서 나올때는 작은 빛을 발견하고 나옵니다" 힘들고 지칠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생각하며 골방으로 들어가십니까? 가장 소극적인 방법처럼 보이는 골방기도가 가장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우리의 모든 고민과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은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으므로 어느 누구보다 잘 아시고 잘 도와 주실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골방에서 들어가는 것은 매일 매일의 훈련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행동으로 가장 잘 연결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 기도: 골방에 들어갈 때는 괴로움과 고통이나, 나올 때는 하나님의 빛을 보며 기뻐하게 하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묵상집(아가페)

▣ 우리 교회 발전소

‘설교의 왕자’라 불리는 스펄전 목사님이 사역하던 교회가 런던에 있다. 그곳은 한 때 6000명 이상 최고 2만명의 청중이 모였고,당시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으로 불타오르던 교회였다. 스펄전의 전기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그는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항상 교회 본당이 아닌 아래층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기도하는 성도가 많았는데 그는 성도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제 목회의 비밀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이며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탁월한 설교 때문만이 아니라 기도하던 성도들을 통해 그 교회는 황금기를 누리고 영국을 변혁시키는 변혁의 초점이 됐다. 그러나 스펄전 목사님이 떠난 뒤 교회가 비틀거렸다. 어떤 사람은 교회 몰락 원인 중 가장 큰 문제점으로 기도 운동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기도가 사라질 때 하나님은 영광을 그 교회에서 거두신다. 기도는 교회를 움직이고 발전케 하는 ‘힘’이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 하나님의 뜻을 품은 씨름기도

야곱은 에서와 만나기 전날 밤, 하나님과 밤새 씨름했다. 그 결과 환도뼈가 부러지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하나님께 간구할 것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한다. 하지만 진정한 씨름은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환도뼈가 부러지고, 우리 뜻이 하나님 뜻에 굴복되는 것이다. 잠시 잠깐, 우리의 뜻이 좌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후에 주어지는 “이스라엘”의 축복은 무한하다. 그야말로 백지 수표이다.
-그렉로리의 ‘하나님의 뜻을 품은 씨름기도’ 중에서-

나의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내가 되기를. 나의 기쁨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꺽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나의 뜻을 접는 내가 되기를.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에 신앙인의 모습을 잃지 않고 하나님이 주실 큰 상급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내가 되기를, 오늘 주께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새벽종소리

▣ 새 색시의 중보기도

아침 일찍 돌집에서 예배인도 부탁이 들어왔다. 그 집은 새 신자 가정이었다. 남편이 직장을 나가기 전에 예배를 드리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대견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가정에서 모든 상황을 이야기로 들어보니, 그것은 대견한 일이 아니라, 기적 같은 일이었다.
신부가 그 집에 시집을 올 때 남편은 불신자였다. 불신의 가정으로 시집을 와서 보니 하루하루 고통스럽고 숨막히는 삶이 되어갔다. 집 현관문 위에는 '게'를 매달아 놓았는데, 다 썩어서 냄새가 고약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번은 용기를 내어서 그 썩은 게를 떼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그 다음날 싱싱한 게를 사서 다시 달아놓았다. 물론 이것은 시어머니의 미신적인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새색시는 그 다음날 아침부터 밥을 풀 때마다 울면서 기도하였다.
"하나님, 이 밥을 먹는 사람이 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하여 주시고, 썩은 게 대신에 십자가를 달아놓고 귀신을 찾는 주문을 하는 대신에 찬송을 부르게 하여 주옵소서."
결국 새 색시의 2년정도의 눈물의 기도가 응답된 것이다. 이제 다시 그 가정에서 썩은 게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남편도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고, 첫 아들 돐이 되었을 때, 구역식구들을 전부 초청해서 남편이 직장을 가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 신발의 굽

굽이 없는 신발을 신고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 지혜로운 남자가 자신이 만든 신발에 수많은 벌레와 곤충이 밟혀 죽는 것을 알았다. 신발에 밟혀 죽은 곤충과 벌레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제 신발에 밟혀 죽는 벌레들이 많아요. 제 발바닥을 용서해주세요.그리고 제게 지혜를 주세요.” 그때 하나님께서 한 가지 지혜를 주셨다. 남자는 사람들의 발바닥 가운데가 오목한 것을 보고 신발의 뒤축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가운데가 오목한 신발을 만들고 보니 발도 편안하고 몸의 균형도 잡혔다. 그때부터 신발의 굽이 생겨났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시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상상을 뛰어넘는 지혜로 채워주신다. 기도하는 사람은 항상 지혜를 선물로 얻는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 조오지 6세의 기도

세계 2차대전 때에 프랑스가 독일 나치스 군대에게 패해 버리자, 영국에서 도와 주려고 건너갔던 29만 대군이 자기들만으론 불가능한지라 영국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도버해협으로 도망하기에 이르렀다. 히틀러는 베를린에서 도망하는 영국 군인들을 아주 전멸시켜 버릴 것을 명령하고는 태연히 있었다.
그 때에 영국왕 조오지 6세는 온 영국에 '어떻게 하든지 영국 군대를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기도의 날'을 선포하여 전 국민이 그 날 기도를 했다. 기도 후 이상한 기적이 일어났다. 그날 독일군 편에는 큰 폭풍우가 일어서 비행기 한 대도 뜰 수가 없었고 너무 비가 많이와서 탱크 한 대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영국군이 있는 도버해협은 어찌나 잔잔하고 고요한지 거울같이 맑아서 수많은 배가 29만의 영국 군대를 무사히 영국까지 옮길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영국군대를 비롯해서 온 영국국민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림으로 큰 힘을 얻게 되었다.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50:15).

애국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조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슬픈 노래를 불렀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애가이다. 예레미야 애가의 히브리어 원어는 '에카하!'이다. 이 말은 슬프다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라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할 때다.

▣ 중보 기도의 필요성

헤르만이 쓴 「창조적 기도」라는 책에 무도회의 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 주인공은 결혼식을 며칠 앞둔 미모의 처녀로 프랑스 리용의 거부인 비단 상인의 딸입니다. 그녀는 한 청년과 짝이 되어 춤을 추다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은 바로 ‘죽어 무너지는 세계’였습니다. 눈이 덮인 산이 폭풍에 무너지면서 자기 주위가 죽음의 구렁 속으로 굴러 떨어져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도로 지탱되어야 할 세계가 기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의 결핍으로 피조물들은 생명의 근원에서 단절되어 허무한 가운데 구렁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으나 어느 한 사람도 그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춤만 계속 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마침내 환상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결심한 듯이 자기 짝의 팔을 뿌리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기도의 결핍으로 죽어가는 세계를 위해 평생 중보기도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외면하고 죽음의 춤만 추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영혼의 호흡

호흡을 뜻하는 프뉴마는 영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신 뒤 코에 불어넣은 생기가 바로 프뉴마인 것이다. 우리가 공기를 들이마셔야 사는 것처럼 영혼도 호흡을 해야 살 수 있다. 이 영혼의 호흡이 바로 기도인 것이다.
숨이 드나드는 기관지에 장애가 생기는 병을 천식이라 한다. 들이마실 때는 문제가 없는데 공기를 내뿜으려 하면 잘 나가지 않고 소리만 요란하게 된다. 영혼의 호흡인 기도에 장애가 생기면 우리의 죄를 고백하지 못하게 되고 우리는 겉모습만 요란한 외식적인 삶에 빠지게 되고 만다. 중보기도를 통해 기도의 영역을 넓힌 분들의 삶을 보면 두려울 것이 없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든 새로운 뉴스를 접하면 먼저 기도의 무릎을 꿇는 것이다. 신문의 모든 이슈를 기도 제목으로 삼아 전세계를 품고 기도하는 후배 의사가 있다. 그는 이미 아버지의 마음을 품은 선교사이며 그의 영혼은 영의 호흡을 통해 늘 맑게 보존될 것이다.
/박상은 박사(샘안양병원장)

▣ 기도

목사 두 분과 스님 세 분이 지역 신문사 주관으로 오찬 기도회를 가진 적이 있다. 불교인 대표로 스님이 기도하고 기독교 대표로 내가 기도를 맡았다. 어색한 오찬 기도였으나 스님이 진지하게 국가와 시정을 위해 기도를 하고 마지막엔 “하나님과 부처님 이름 합하여 기도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때 ‘아멘’이라고 말할 뻔했다. 내가 기도할 차례가 되어 조국과 국가 안정을 위해 기도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했다. 그 후 스님들과 기도회 갖기가 두려웠다. 이것은 종교다원주의다. “누구 이름으로 기도한들 무슨 소용인가. 기도만 하면 됐지. 승려인 나도 하나님 이름 넣고 기도했으니 목사인 당신도 부처님 이름 넣고 기도하시오.” 마치 이렇게 요구하는 듯했다. 오직 구원은 예수 이름밖에 없다. 그분이 내 구주인 것을 감사한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은혜로운 예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