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

공 상희 2012. 5. 22. 16:35

성령이 오셨네 (14:16-20)

 

 

이 시간에 성령이 오셨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목회자라는 직분 때문에 늘 여러 가지 소식을 많이 듣게 됩니다. 소원이 있다면 성도에게 늘 웃을 수 있는 기쁜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생각해 볼 때 성도는 이미 기쁘고 기쁜 일을 크게 만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 가장 기쁜 일은 바로 바로 성령이 오신 일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찬송가에도 나오지요?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세 큰 환난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주 믿는 성도들 다 전할 소식은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이것은 복음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오신 일이 왜 기쁜 일일까요?

 

 

1. 더 이상 외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14: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성령이 오심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20) 하셨습니다. 성령 강림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성령을 오해해서 성령이 임한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은 항상 뜨겁고 요란스럽게 임하시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실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고 또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었고 모두가 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했습니다. 요란스러웠습니다.

 

 

우리 어릴 때 부흥회 분위기도 그랬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도 있었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으며 귀신이 나가고 병든 자가 낫고 능력을 견디지 못해 쓰러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은혜를 받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갈망했습니다. 부흥회가 끝나면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기대한 것을 받지 못해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임하심의 모양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습니다. 표적이 필요할 때는 요란하게 임하시지만 그렇지 않으면 와 계신지 모를 만큼 조용히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모양이 어떠하시든지 성령은 믿는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신다고 성경 말씀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체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믿으면 체험이 따라옵니다.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요란하시기만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란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받지 못해서 요란하는 그 요란이 아니라 받은 것을 믿고 감사해서 기뻐하고 찬송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그런 요란입니다. 우리가 요란해야합니다. 이것은 믿음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은혜의 풍성함을 가져다주는 귀한 행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만난 요한의 제자들에게 믿을 때(19:2) 성령받았느냐? 물음으로 성령을 예수 믿을 때 받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1:13에도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아무런 체험과 표적이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에게 성령이 함께 하신 것을 믿고 감사하고 날마다 찬송하며 살아갈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자기를 나타내십니다. 그럴 때 성령과 함께 하시는 체험이 시작됩니다. 더 이상 우리는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이 오신 일이 기쁜 것은

 

 

2. 우리 곁에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성령께서 우리의 보혜사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이며 '곁에서 도우는 자'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씀을 보니 예수님도 보혜사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얼마나 잘 도와주셨습니까?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사람들이 만나기 어렵다든지 여러 가지 제약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영으로 임하셔서 우리 곁에서 도우시기 때문에 아무런 제한 받을 일이 없습니다. 각종 은혜와 은사로 임하셔서 도우십니다. 전능자의 도우심이니 얼마나 잘 도우시겠습니까?

 

 

어느 가정에 탈옥한 무장강도가 침입하였습니다. 남편은 무서워 떨고 있는데 아내는 침착하게 손님 대하듯이 그 무거운 총 놔요, 서 있지 말고 앉아요, 맛있는 아침 식사 준비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하고 그를 안심시켰습니다. 그 행동이 너무나 태연하였습니다. 강도가 생각하니까 너무 이상하였습니다. 그래서 소리 지르며 너는 내가 무섭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믿어요. 나는 당신이 죽이면 천국에 가니 무서울 것 없어요. 당신도 나의 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요.”하고 태연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새벽 3시에 침입한 이 강도와 아침 10시까지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침내 이 강도가 자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침착함과 평안함 성령이 아니고 누가 주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령께서 함께 하신 줄 믿고 늘 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무슨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실망하지 마시고 성령님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씀해 보세요. 기도해야 할 제목들이 생각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8: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하셨습니다.

 

 

성경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기도하세요. 성령께서 성경을 깨닫게 해주시고 나의 말씀으로 다가오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이 오신 일이 기쁜 것은

 

 

3. 구원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도 악령을 물리치고 성령의 도우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8:3-6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에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셨습니다.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령께서 우리를 육체까지도 온전히 완성시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일거수일투족 성령님의 도움을 받을 때 여러분에게 세상을 살아나갈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늘의 온갖 아름다운 것을 다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4. 우리를 귀히 사용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4:18~19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예수님에 대한 예언이지만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쓰임 받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자세가 중요합니다. 겸손히 성령님께 쓰임 받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쓰시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나서지 말고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를 사용해 주세요.” 이렇게 겸손하게 쓰임 받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너무 나서지 마세요. 내가 하는 것으로 생각하니까 캄캄합니다. 전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할 결심과 준비는 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주시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전도할 결심만 가지면 자연스럽게 주님이 주장해 주십니다. 성령과 동거 동행 동역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데이비드 브라이언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교회는 매주일 많은 사람들이 출석하고 있지만 그런데 그중에 50%는 구원의 확신이 없고, 그 중 95%의 신자는 성령의 인격과 사역의 내용도 모르고 있으며, 미국 신자의 2%만 전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한국교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어떻게 성령 받고 어떻게 충만 받고 어떻게 동행하며 동역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성령은 성령이고 나는 나, 분리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부분을 목회의 과제로 생각하고 잘해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 찾아오셨지만 자기 백성 유대인들은 예수를 무관심하고 배척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하신 성령님에 대해서 모르거나 무관심한다면 예수 믿은 자녀일지라도 그 구원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이 오셨다는 이 놀라운 사실 앞에 매사에 성령님을 의식하고 성령님과 함께 동거 동행 동역하므로 은혜와 승리의 풍성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