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선지서

공 상희 2020. 9. 23. 06:07

이사야가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6:1-13

 

이시간에 이사야가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때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입니다. 웃시야왕은 남유다의 10대 왕으로 52년간 통치하며, 경건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섬겼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군사와 외교 면에서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웃시야 왕은, 평소에 준비성이 뛰어났고, 평안할 때에 망대를 세우고, 샘을 만들며, 병기구들을 준비하여 전력을 정비했으며, 주변의 적들을 치고, 승리를 거두어서 조공을 받았습니다. 웃시야 왕의 통치 기간은, 태평성대를 누리던 때입니다. 그런 민족의 영웅이 죽었으니 유다는 국가적인 위기였습니다.

 

웃시야 왕의 죽음은, 이사야에게도 위기였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의 사촌이었으며, 궁중 제사장으로 정치적인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기는 했지만, 고난은 몰랐고, 배가 부르고 편안한 사역자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웃시야 왕이 죽었으니 이사야에게도 위기상황이 닥친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적인 어려움과, 개인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이사야는 문제를 푸는 열쇠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해답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그 옷자락은 하나님의 성전에 가득하였고, 천사들은 하나님을 모시고 서서 찬양을 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 가운데서 자신의 부정함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입술의 부정함을 고백합니다.

그 때에 스랍 천사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핀 숯으로 이사야의 입술을 지져서 정결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하십니다, 그때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며 사명을 자원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통치하시는 하나님(1)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다가 놀라운 광경을 봤습니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가 없으신 순수한 영이시기에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계시를 주시며, 이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 시각적 형상으로 나타나시기도 하는데 본문 역시 그러한 경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 왕인 웃시야는 죽었으나 하나님은 영원한 왕이시고, 이 세상 통치자로서 자신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시편 47:8.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왕이 가졌던 보좌보다, 높은 보좌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국가의 지도자들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지도자들은, 사실은 국가의 통치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에 불과합니다. 국가의 진짜 통치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국가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한민국을 자기가 하나님인양 다스립니다. 남남 갈등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막는, 북한 공산주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코로나를 통해서는 교회예배를 힘들게 하고 있으며,

반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국가의 지도자들이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의 대리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함께 하시는 하나님(1)

하나님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데, 하나님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만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니고, 온 성전을 그의 옷자락으로 덮음같이 온 우주에 계시는 분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죽어서만, 만나는 신앙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 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승천 직전에 마태복음 28:20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전 삼으시고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십니다.

 

유태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하시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어머니가 자기의 아들을 랍비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랍비가 아이에게 질문을 합니다. “얘야, 하나님은 어디 계시니? 네가 나에게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말을 해 준다면 동전 한 개를 주겠다.” 이 랍비는 아이가 설마 이처럼 어려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대답합니다. “선생님, 제가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해 주시면 저는 선생님께 동전을 두 개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하나님이 어디에 안 계신가를 말해줄 수 있습니까?” 이 아이가 보기에는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만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이나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을 의식하고 사는 것이 코람데오의 삶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신전의식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전의식을 가지고 살면 두 가지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깁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붙들어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운 일을 만나도 능히 극복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두렵게 할 대상과 사건과 사고 등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두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경건하게 삽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며 동침을 요구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의식했기 때문에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하고는 유혹의 장소에서 도망쳤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교회에서의 모습과, 세상에서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신전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가정에는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믿으면, 교회생활과, 가정생활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회사에는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믿으면, 교회생활과, 회사생활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3. 찬송 받으시는 하나님(2-4)

이사야는 스랍 천사들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여섯 날개가 있는데,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렸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렸고, 두 날개로는 날며, 서로 화답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찬송의 내용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찬송하는 사람에게도 큰 은혜가 됩니다.

그래서 찬송과 말씀은, 교회의 생명과 같고, 우리 신앙의 토대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귀는 찬송과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싫어합니다. 초대교회 이후에 오랫동안 마귀는 교회에서 찬송과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의 예배에는, 회중이 함께 부르는 찬양시간이 없었습니다.

4세기에 열린 라오디게아 총회에서, 회중들의 찬양을 교칙으로 금지했기

때문에, 예배시간에 모인 성도들은 찬양대가 부르는 뜻도 모를 찬양을 듣고, 성직자들이 읽어주는 라틴어 말씀을 멀뚱멀뚱 듣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러니 로마교회가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고, 그래서 종교개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찬송과 말씀이 회복 되었습니다.교회는 찬양과 말씀이 충만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4.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5-7)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동시에 자신을 알게 됩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니, 자신이 부정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5절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때에 스랍천사 중에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 숯불을 집어서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입술을 정하게 하시고,

이사야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죄는, 제단 숯불을 가지고 사해주셨는데,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은 인류의 죄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택하신 자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십니다. 그 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으시는 죄를 우리가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할렐루야입니다.

우리의 과거의 죄는 없어졌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때때로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실수합니다.

그 죄도 하나님 앞에 자백하면 다 용서하시고 기억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 입니다.

5.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8)

하나님은 죄사함의 은혜를 받은 이사야가 듣도록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사야야 나를 대신해서 내 백성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실 때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에 순종해서 사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사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사명입니다. 보편적인 사명은 누구나 받는 사명입니다.

예배의 사명 전도의 사명 섬김의 사명입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하며, 복음을 전하며, 서로 사랑으로 섬기도록, 하신 것 입니다

개인적인 사명입니다. 지구상에 78억의 인구가 있지만, 생김새가 다 다릅니다. 기가 막힌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모든 사람이 독특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각 사람마다 하나님이 주신 개인적인 사명이 다릅니다.

 

우리는 사명이라고 하면 큰일만 생각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사야처럼 특별한 사명을 주어 쓰시는 사명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서 주어진 일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면, 그것도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강철 왕 카네기는, 늘 철공 중에 한 사람을 마음 한구석에 생각해두었습니다. 카네기는 저 사람에게 회사를 맡긴다면 틀림없이 잘 경영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진지했고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늘 자신의 일을 즐겁게 했습니다. 카네기는 그 철공에게 공장장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철공은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사장님, 전 다른 일은 못합니다. 평생 해본 일이라고는 쇳물에서 철관을 뽑는 일뿐입니다. 철공 일만은 제가 대통령이지요. 그러나 다른 일은 사양하겠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철공 일만 계속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카네기는 철공의 진실한 마음을 알고는 내가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말해서 참 미안하오. 신 말이 맞소. 당신은 철공 일에 대해서는 대통령이오. 그러니 오늘부터는 대통령 봉급을 주겠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카네기의 회사에서 봉급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철공은 자신의 사명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며 즐겁게 산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사명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하나님께 충성합시다. 그리고 인생을 가치있게 복되게 삽시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통치하시고, 늘 함께 하시고, 찬송을 받으시며, 죄를 사하시고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이 나와 여러분의 왕이신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말씀 하시고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시고 우리를 높이시고 영생의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사명 감당하게 하십니다. 이 은혜 누리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