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선지서

공 상희 2020. 10. 4. 06:15

희망은 강물처럼 (겔 47:1-5)

 

이 시간에 “희망은 강물처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930년대 초 미국은 심각한 대공황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클레어린스 목사가 공장이 밀집된 지역의 한 흑인교회를 방문했는데 교인들은 대부분 극빈자들이고 60% 이상이 실직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은 힘과 희망이 넘쳤습니다. 그들의 표정에서 절망의 빛을 찾을 수 없었다. 클레어린스 목사는 설교 중에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지금은 대공황입니다.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이 그리 즐겁습니까” 그때 한 교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밝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곁에 계신다는 사실이 최고의 희망입니다” 참으로 적중한 정답입니다. 예수님께 희망을 갖고 있으면 육신의 희망도 우리에게 다가올 줄 믿습니다.

 

그것이 오늘 읽은 본문의 배경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그 징계로 1차 2차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이스라엘 성읍은 초토화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혀갔으며 시드기아 왕은 눈이 뽑혀 잡혀가는 비극을 당하였습니다. 성전도 사라졌습니다. 조국도 없어졌습니다. 돌아갈 땅도 없습니다. 백성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선지자 에스겔의 아내까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에스겔마저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리 봐도 절망, 저리 봐도 절망입니다. 그러한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생명수의 환상으로 희망을 부어주신 말씀이 바로 본문입니다. 희망은 강물처럼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환상입니다. 성령님이 희망이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영육간에 살고 교회의 희망과 세상복음화의 희망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어떻게 오시는 걸까요?

 

1.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십니다.

 

1절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랬습니다. 성경에서 동쪽은 하나님 쪽을 상징합니다. 시84:11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했습니다. 계7:2을 보면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인을 칩니다. 다니엘도 동편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동편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성령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계22:1-2에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장 3절에도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요1:14)고 했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자에게 성령이 오십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면 성령이 임합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처럼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더 열심히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십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한국교회의 예배와 활동이 위축되어 있는데 예수님 승천 직후 초대교회는 이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 가운데서 숨어 신앙생활하고 복음전도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분부하신 대로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하고 찬송하다가 성령이 임하여 예루살렘이 복음화 되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아가 증인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답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모두가 삽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 도다”(시62:5-8) 찬양했습니다. 절망 가운데 있다면 예배하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날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정규예배는 물론 생활 속에서 예배로서 사시기 바랍니다.

 

2. 겸손할 때 나오십니다.

 

다시 1절에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그랬습니다. 수원이 성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하나님이 수원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스며 나오더라.’는 용어 ‘파카’는 강력한 힘으로 분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댐의 수문에서 분출되듯 물보라를 일으키며 분출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문은 니카놀의 문이라 해서 놋으로 된 문입니다. 이 문은 남자들만 이스라엘의 뜰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데 장정 20명이 움직여야 열리는 크고 육중한 문입니다. 이 문은 안식일 축제일 그리고 왕이 나타날 때 등 특별할 때만 열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문도 아니고 문틈도 아니고 문틀인 문지방 밑에서 힘차게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문턱 아래는 성전의 기초입니다. 이사야가 성전에 나가 기도할 때 천사들이 찬양하는데 문지방의 터가 요동했던 것처럼 바로 그 터의 기초와 문지방 사이에서 물이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지점으로 이는 겸손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낮은 곳으로 흐르십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회개하고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약4:6-7절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평탄한 길을 주십니다.

 

교회의 문지방도 낮추면 부흥이 옵니다. 문지방조차도 없애버리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올 수 있는 교회를 넘어 누구든지 올 수밖에 없는 교회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기사와 이적으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것처럼 모여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적 뿐 아니라 사회를 향한 다양한 섬김을 가져야 합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고 이적만 바라다가 많은 세월을 허송하고 말았습니다.

 

3. 용서하고 사랑할 때 더욱 충만해집니다.

 

1절에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성전뜰 앞 제단을 돌아 남편으로 흘렀습니다. 여기 제단은 번제단으로 만민을 위해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거기서 물이 커브를 꺾어 남편으로 흐릅니다. 남쪽의 최종 목적지는 아라바로 내려가서 사해였습니다. 사해는 세상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번제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이웃을 용납하고 기도하고 봉사할 때 더 넘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죄를 사하지 않으신다 하셨습니다. 3-5절을 보면 나아갈수록 물이 더욱 풍부해집니다. 참으로 신기한 강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남을 위해 용서하고 축복하면 할수록 더욱 은혜가 넘칩니다.

 

이웃을 위해 살면 내가 살고 이웃도 살지만, 나만 위해서 살면 자기 쓰기에도 부족합니다. 이것이 갈릴리호수와 사해의 차이입니다. 갈릴리호수는 물을 받으면 아래로 흘려줍니다. 그러니까 물이 맑고 생물이 삽니다. 그러나 사해는 물만 받고 내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주라 그러면 넘치게 주리라.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4. 강하고 활발한 믿음 가운데 크게 임하십니다.

 

2절에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성전의 동문은 특별한 행사가 아니고는 항상 닫혀 있으므로 북문으로 나가서 반 바퀴를 돌아 동쪽의 바깥문에 이르렀습니다. 바깥문으로 나가는 물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물의 흐름에 대해서 다시 설명하면 문지방 아래에서 분출한 강물은 성전뜰의 번제단을 돌아 남으로 꺾어 흐르다가 다시 바깥문 쪽인 동으로 흐릅니다. 성전의 바깥뜰 안에서 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물이 바깥문의 우편에서 그렇게 강하게 스며 나오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성령의 역사는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른 편에서 스며 나왔듯 이 물은 하나님의 강한 사랑과 보호와 권능을 암시합니다. 오른 편은 하나님의 강한 사랑과 보호와 권능의 상징입니다.

 

이것을 우리 편에서 보면 하나님에 대한 열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 그만큼 강하고 활발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미지근하고 침체된 믿음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에스더와 같이 하나님의 강한 팔이 움직이려면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기도와 합심기도가 필요합니다. 큰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내 기도가 부족하다면 누군가의 기도라도 동원되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의 응답은 기도하는 즉시 내렸지만 그 응답을 가진 천사가 내려오다 바사군에 막혀 내려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금식이 죽으면 죽으리라식으로 계속되자 천군장 미가엘이 도와 그 군대를 물리치고 응답을 가져옵니다. 천군장이 도왔는데 우리 편에서 보면 강한 기도를 암시합니다. 우리의 강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 있는 팔이 움직입니다. 침체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강하고 활발한 믿음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5. 그리고 버릴 것은 온전히 버리시기 바랍니다.

 

11절에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그 생명수를 받고도 변화되지 않는 땅이 있었습니다. 진펄과 개펄입니다. 진펄 개펄은 우리의 옛사람입니다. 은혜운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버릴 것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자들과 가룟유다의 차이입니다. 그러면 발전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며 그 약점으로 말미암아 크게 넘어지게 됩니다.

 

성경 보면서 악의 모습 다 죽이시기 바랍니다. 아담 안의 옛사람은 죽일 것이지 변화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서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음을 믿고 성경을 읽는 대로 믿음과 감사로 자기에게 적용하고 끝까지 복음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못한 것을 가슴을 치며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버릴 것 다 버려야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래서 고후6:14-18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섬기면 그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그래서 시144:12-15에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절망밖에 없는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성령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곳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땅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을 더 열심히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고 악을 철저히 회개하므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삼아 우리의 삶에 희망의 성령이 강물처럼 넘실거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