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20. 1. 3. 05:46

소금꽃 / 이용호 - 2020년 전라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꽃’이라 불리지만, 식물의 꽃이 아닌 꽃이 있다. ‘소금-꽃’이다. 이 소금-꽃이 피어나는 곳이 특별하다. 먼저, 바닷가 염전(鹽田)이다. 사각형의 소금밭 위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열을 받은 함수 표면이 팽팽하게 당겨지면, 무채색 소금밭 함수 속이 꿈틀, 꿈틀거린다. 작은 결정들이 하나 둘 물 위로 떠오르고, 그것들이 서로 엉겨 붙으며 햇빛에 반사되어, 마치 꽃처럼 반짝인다. 그것을 염부(鹽夫)들은 ‘소금-꽃’이라고 부른다.

  또 한 곳은 사람의 몸이다. 인간의 몸에서도 소금-꽃이 피어나는 것. 몸에서 배출된 땀이 말라서, 하얗게 보이는 것을 ‘소금-꽃’이라 칭하는 것이다. 뙤약볕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얼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삶의 꽃인 셈이다.

  그 ‘소금-꽃’이 가장 뚜렷하게, 집중적으로 피어나는 곳이 있다. 곧잘 인생(人生)-길에 비유되는 마라톤(Marathon)이다. 42.195㎞를 달리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이라는 스포츠 종목이다. 마라톤 참가자들의 몸에서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땀이 솟는다. 온몸이 땀에 젖어버릴 정도이다. 그 땀의 결과물이 ‘소금-꽃’이다.

  ‘마라톤(Marathon)은 한 발 한 발 땀으로 쓴 시()!  이 문장을 신문에서 발견하는 순간, 나는 무릎을 딱 쳤었다. 98%의 공감을 이룬 결과였다. 위 문장은 ‘마라톤-대회’를 보도하려는 신문의 기사 제목이었다. 마라톤을 표현하는 그 어떤 은유보다도 구체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 문구였다. 한 발 한 발 내딛어, 약 오 만(50,000)번의 발걸음을 해야 다다를 수 있는 마라톤의 결승점. 42.195, 100(?)의 길이다. 수많은 땀방울이 요구되는, 그 고행(苦行)-길이 바로 한 편의 시()란다. 땀으로 쓴 시란다. 참으로, 명문장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마라톤(Marathon)에게 결승선(성취감)을 요구한다. 이에 비해, ‘마라톤’은 사람들에게 ‘땀’을 요구한다. 마라톤은 꾸밈과 거짓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 누구의 도움도, 그 어떤 편법도 허락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 어느 한 곳이라도 이상이 있는 자는 마라톤에 도전할 수 없다.     마라톤은 체력과의 싸움이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오버페이스(over-pace)가 되어, 달리는 도중 길-바닥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 마라톤 출발선 위에 서면, 나는 신() 앞에 선 인간(人間)처럼 두려움을 느끼고, 진솔해진다. 동시에, 가슴은 짙푸르게 설레기 시작한다.

 

  나의 마라톤 입문-(入門-)는 특별했다. 서른아홉(39)살 되던 해 봄, 나는 직장에서 해직(解職)되었다. 죄목은 괘씸죄였다. 나는 소위 ‘양심-선언’을 했다. 그 직장 내부의 부정부패를 막아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내부-반역자’로 취급하여, 그 조직에서 추방해 버렸다. 비로소, 세상의 낭떠러지 앞에 서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잿빛 우울증 뒤에 곧이어 뽀얀 불면증이 밀려왔다. 약을 먹지 않고는 하루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살 충동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라톤(Marathon)을 알게 되었다. 그때가 막 마라톤의 붐(boom)이 일던 때였을 것이다. 무조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초등학교 운동장을 홀로 달렸다. 세상에 대한 불만을 허공에 외쳐대며, 외롭게 달렸다. 타원형의 트랙을 수백, 수천 바퀴 돌았을 때, 비로소, 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시나브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마라톤’이 낭떠러지 앞에 서 있던 나를 붙잡아 주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나의 마라톤에 관한 이력은 아직까지는 초라하다. 10여 차례의 <10-달리기><하프(half)-마라톤> 5회 완주. 그리고, 그것들을 기초로, -코스(full-course) 5회 완주가 전부이다. -코스(42.195) 완주기록은 3시간 43분이다. 초라한 기록이지만, 내 나름으론 최선을 다한 결과이다.  마라톤을 완주(完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오버-페이스(over-pace)’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란다. <초보자를 위한 마라톤 입문서>에서 배웠던 것.  # ‘기록을 단 1초라도 단축해야만 한다.  # ‘나는 남자다. 고로, 여성()에게는 절대 지지 않아야 한다.

  이런 얄팍한 욕망에 ‘오버-페이스(over-pace)’란 늪에 빠지면, 완주는 거의 불가능하다. 마라톤-길 위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 그렇다면, 나이 39살 때, 내가 감행했던, <양심-선언> 행위도 일종의 ‘오버-페이스’가 아니었을까…!?

  인생길에 곧잘 비유되는 ‘마라톤-길’에 대해서 논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도 마라톤(Marathon)을 사랑한다. ‘마라톤은 땀으로 쓴 시()’라는 신문기자의 의견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마라톤(42) 길 위에서도 ‘35㎞’지점에 애착을 느낀다. 그 공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했던 것.‘마()35!

  사람들은 이곳을 그렇게 부른다. 전문 마라톤 선수가 아닌 이상, 이곳에 이르면, 대부분 참가자들이 체력의 고갈로 기진맥진하게 된다. 이곳은 사람들이 진솔해지는 공간이다. 이곳에 이르면 대부분의 마라톤 참가자들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모두 땅에 내려놓고, 엉덩이에 흙을 묻히는 것이다. 이곳은 마라톤이란 인생-길에서 마지막으로 쉬어가는 ‘간이역’이다.

 

  이곳은 ‘땀’의 공간이기도 하다. 땀에 전 옷이,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왠지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얼굴에서 빛나는 그 눈빛은 바로 앞 사람에게 보내는 최고의 경의(敬意)일 것이다. 이곳은 ‘타인과의 경쟁’이라는 의미마저 잠시 소멸되는 곳이기도 하다. , 땀의 미학(美學)이 발현되는 곳.

  ‘마()35㎞지점’. 이곳은 가슴속의 모든 상념을 땀으로 배출하고 무아경(無我境)이 되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사람의 몸에서 특별한 ‘꽃’이 피어나는 장소이다. ‘소금-꽃’.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목덜미에서, 등에서 ‘소금-꽃’이 피어난다. ‘소금-꽃’이 핀 얼굴로 서로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지만, 대부분 말이 없다. 기진맥진한 탓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눈빛으로, 가슴으로 소통을 하는 것.

 나: 고맙습니다, 이 고행(苦行)의 길에 동행(同行)해 주셔서.

 너: 자랑스럽습니다, 내가 당신의 동행자라는 것이.

 나: 정말, 마라톤(Marathon)은 인생(人生)-길을 닮았어요.

 너: 마라톤의 가치는 기록보다 완주(完走)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처럼.

 나: , 당신의 눈썹 위에 ‘소금-꽃’이 피어났군요.

 나: , 당신의 이마에도 ‘소금-꽃’이 피었네요.

  처음 대하는 사람들끼리도 땀의 결실인 ‘소금-꽃’으로 소통이 되는 마법(魔法)의 공간인 것이다. 불립문자(立文字)의 시공간…?!

 ‘마의 35㎞’지점, 그곳은 나에게도 특별한 공간이었다. 잠시 쉬어 가는 간이역이었으며, 사색의 공간이었다. 특히, 검붉은 추억들이 여울져 흐르는 곳이었다. 이윽고, 이곳을 떠날 때면, 검붉은 추억이 발효되어, 새하얀 그리움이 밀려오곤 했었다.

  첫 번째, 두 번째까지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널브러져, 체면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누워서 자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세 번째 ‘마라톤-길’부터는 달랐다. 몸의 피로-도는 비슷했지만, 뭔가 달랐다. 마라톤에 대한 내공(內功)이 쌓인 결과였을까. 마음의 여유였을까. 길가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곳 주위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논과 밭 속의 작물들이 보이고, 강변 마을이 보이고, 성당의 첨탑도 보였다.

 

 동행자들의 뒷모습이 보이더니, 내 뒷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달려온 길이 보이고, 앞으로 달려갈 길도 보였다. 그리고, ‘땀’이 보였다. 내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과 동행자들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 그리고, 땀이 말라 형성된 ‘소금-꽃’도 보였다.

  세 번째 마라톤-길 위에서, 그 ‘마()35㎞’지점에서 나는 그들을 용서했다. 괘씸죄라는 명분으로, 나를 세상의 낭떠러지 앞에 세웠던 사람들, 5년 동안이나 나를 불면증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사람들, 내 머리카락을 반백으로 만들어 버렸던 사람들. 그 옛 직장 동료들을, 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용서했다. 결국 나는 그들을 ‘땀’의 이름으로, ‘땀’의 권위로, ‘땀’의 진실로 용서했던 것. 그들을 용서하고 나자, 내 가슴속에는 ‘소금-꽃’ 한 송이가 함초롬히 피어나고…!

  ‘마라톤은 한 발, 한 발 땀으로 쓴 시()

  하지만, 나는 이 신문기자의 절묘한 표현에 짙푸른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마라톤은 시()보다는 수필(隨筆)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수필 문학의 특성은 픽션(fiction)을 가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와 소설(小說), 그 내용에 있어서, 얼마든지 픽션(fiction)을 가미할 있다. 무엇이든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다는 것. 수필-문학의 또 하나의 특성은 작가 자신이 그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주인공 자신이 한 발-한 발 내딛고, 한 땀-한 땀 흘리며, 4시간 동안 주어진 ‘외-길’을 달려가야만 완성이 되는 마라톤은, 바로, 생생한 수필(隨筆)이다. 인생(人生)이 마라톤(Marathon)에 비유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마라톤이 한 편의 수필이라면, <()35㎞지점>은 한 편의 시(). , 마라톤은 <()35㎞지점!>이라는 한 편의 시()를 씨앗처럼 품고 있는 수필(隨筆)인 것. 그 수필의 주제는, 땀의 미학(美學), 바로 ‘소금-꽃’이다.​​

 

[당선소감]

​나는 오늘도 시내 천변-길을 따라 달린다. ‘땀’과 ‘소금-꽃’의 새로운 미학(美學)을 발견하기 위하여 달리는 것. 그리고, 내게 주어진 ‘생()’이란 ‘마라톤(Marathon)’을 완주(完走)하기 위하여 달린다. 민들레, 쑥부쟁이, 코스모스, 억새꽃들과 참새, 까치들과 고추잠자리, 나비들이 내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의 눈빛을 보내주고 있다.​당선되었다는 통보를 받는 순간, 나 때문에 떨어진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신춘문예-공모전에서 낙선의 고배를 수없이 마셔 본 사람으로서, 당선의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낙선의 고배를 마신 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민주주의(民主主義)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것. 문제는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민법(民法) 678조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현상(懸賞)공모의 심사 결과에 대해서는 이의(異議)를 하지 못한다.’나도, 신춘문예에서, 셀 수도 없을 만큼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대부분 그 심사-결과에 수긍을 했지만, 그 심사결과를 인정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당선된 작품이 내 응모작품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신춘문예는 작가의 등용문 중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제도이다. 그런 만큼, 그 권위에 걸맞은 심사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민주적인 심사 절차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우리 문학-()만이라도 이런 민주적인 절차를 도입해 보자. 이것이 바로 나의 당선소감의 핵심이다. 이것이 삶의 진실을 추구하려는 작가의 자세, 즉 작가정신이며, ‘산문정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심사평]

전체적으로 사유의 전개들이 활발한 편이었다. 너무 힘이 들어가 교훈적으로 전개된 작품들이 더러 있었다. 사건 내용이 너무 많으면 주제가 흐려질 수도 있다. 또한 대상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대상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감정이 앞서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수필이 꼭 지나간 추억을 과거형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에 대해 직접적인 접근 방식, 현재형인 접근 방식이 아쉬울 때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최은숙의 「빨래집게」는 박진감이 있는데 비해 많은 장면의 연갈이가 심해 맥이 끊어지는 것이 흠이었다. 김선자의 「조락을 읽다」는 서정성은 우수하나 사실적인 내용 전개가 빈약한 편이었다. 곽혜순의 「내 양심, 바람났던 날」은 진정성은 있으나 함께 보낸 작품에서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희경의 「키다리 아저씨」는 비유적 사유가 탁월하지만 이야기 전개를 설명으로 하다 보면 지루하게 느낄 수 있다. 이용호의 「소금꽃」은 마라톤을 통해 불면증에 시달리게 했던 사람들을 용서해주는 인내심이 사실감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이용호의 「소금꽃」에 기꺼이 합의했다. 당선을 축하한다. 이구한 문학평론가, 박지연 시인

 

망월굿 / 김애자-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강 가운데 생긴 섬마을이다. 태백산에서 태어난 내성천(乃城川)과 소백산에서 출발한 서천(西川)이 만나 마을을 휘돌아나가면서 물돌이동을 만들었다.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수도리 모래사장에는 일 년 중 가장 달이 크게 보이는 정월대보름 달집이 세워진다. 달집을 태우면서 한 해를 시작하면 바라던 일들이 잘 이루어 질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설날보다 대보름이 더 신났다. 농한기의 쉼을 얻은 어른이나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명절이라는 이유로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다. 낮에는 연날리기와 지신밟기로, 밤이면 쥐불놀이로 마을은 온통 축제로 들떴다.

 절정은 달집태우기였다. 타오르는 불 앞에 소원을 걸어놓고 이루어지기를 빌고 다짐하는 것은 한 해의 농사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청년들은 긴 막대로 기둥을 세우고 달집의 뼈대를 만들었다. 집 안에는 불씨가 잘 살아나도록 솔가지며 마른나무, 관솔을 넣고, 밖에는 생솔가지를 쌓아 이엉을 얹어 새끼줄로 감는다. 아이들도 자기주먹 만한 꿈 하나씩 품고 땔감을 보태기 위해 고사리 손을 모았다. 집이 다 만들어지면 달이 보이는 쪽으로 문을 내고 보름달 모양을 만들어 달집 가운데 새끼줄로 매달아 놓았다.

 “망월이야!

 환호성과 함께 불길이 솟아오른다. 붉은 너울의 끄트머리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자 농악대의 꽹과리소리가 자지러진다. 달집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도 불꽃의 춤사위와 풍악에 맞추어 몸을 흔든다. 보름달의 꼬리가 산 능선을 박차고 둥실 떠오르자 구름이 물러나면서 길을 터준다. 달은 온 세상에 환한 빛을 흩뿌린다.

 불이 점점 무섭게 타 오른다. 선홍의 불빛이 검붉은 색이 되어 하늘로 사라진다. 거센 기세로 솟구치는 불길과 강 건너편 숲이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더한다. 나무에 달아놓은 액막이 부적과 소원들도 활활 타 올라간다. 잡아먹을 듯 널름거리는 불의 혓바닥을 빠져나온 불똥이 탁탁 소리를 지른다. 마음속에 쟁여둔 사악함을 몰아내라고 죽비를 치며 호령하는 것 같다. 반백년이 지나는 동안 불뚝한 뱃가죽만큼 쌓아 둔 분노와 욕심의 찌꺼기를 서둘러 내 놓았다. 한기가 뼈마디를 쑤시는 겨울밤의 매서운 추위지만 불 앞에 있으니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따뜻하다.

 검붉은 구름이 치솟는다. 땅의 소망을 신에게 전하기 위해 연기에 올라탄 불기둥이 하늘 길을 터준다. 농사의 풍요와 생명력을, 물과 여성을 품은 달이 이루어 주리라는 믿음 때문인가. 여인들은 고쟁이나 저고리 동정을 뜯어 불 속으로 던지며 다산을 기원한다. 풍악 소리가 더 크게 울리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인 이들은 일제히 달집 주위를 빙빙 돌며 목이 터져라 강강술래를 불렀다. 불가에 쪼그리고 앉았던 내 어깨도 저절로 들썩거린다. 아랫도리가 후줄근하도록 아낙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붉은 달빛이 흥건하다. 한껏 부풀어 오른 바다의 밀물처럼 내 안의 무엇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비릿한 냄새와 축축한 느낌이 께름칙하다. 젖은 속옷을 보자 두려움과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부끄러움에 온 몸이 오그라든다. 빨강 꽃잎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름적거리며 엄마 눈치만 살폈다. 낌새를 알아챈 엄마가 책상 밑에 숨겨 둔 흔적을 찾아냈다. 엄마는 달거리가 시작된 거라며 작은 소창 생리대를 만들어 주었다. 며칠 동안 선홍의 달빛을 경험한 나는 못할 짓을 한 것처럼 후미진 곳으로 숨어 다니며 식구들의 눈을 피했다.

 가뭄이 심할 때 옛사람들은 붉은 빛이 선명한 소녀의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지냈다. 당신도 딸의 첫 생리를 신성하게 여겼는가. 엄마는 지저분하게 구겨진 개짐을 정성스럽게 신문지에 쌌다. 뒷마당 한쪽 진 곳에 땅을 파고 왕겨로 불을 피워 성인식을 치르듯 찬찬히 딸의 증거물을 태웠다. 달빛의 흔적이 다 탈 때까지 지켜보는 당신의 얼굴은 달보다 더 붉게 물들었다. 씨알을 품을 딸의 밭에 나쁜 기운은 재가 되고 막 피어나는 여체女體는 옥양沃壤이 되기를 염원했으리라.

 달은 생명의 집이다. 씨를 품는 여인의 몸이며 땅이다.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차고 기우는 달의 정기를 받은 여인들의 몸에는 창조의 기운이 서려있다. 달집을 태워 액을 없애고 농사가 번성하기를 기원한 것처럼 여성은 생산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치르면서 자신의 몸을 정화시켰으리라. 보름달에서 완숙한 기운을 받은 여자가 달거리로 생명을 불러 후손을 얻으려는 것은 잉태의 근원이 달과 여인의 신비로운 조화에 있음이 아니던가. 여자의 힘이 달을 닮은 자궁에서 비롯된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땅의 소원이 달에 닿도록 풍악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너울거리는 불꽃 뒤로 보름달이 둥두렷이 떠올랐다. 달집 속에 매놓았던 달이 언제 뛰쳐나갔는지 동쪽 하늘에 성큼 올랐다가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간다. 광기어린 꽹과리소리에 기죽은 듯 안팎으로 보이는 달의 모습이 처연하다. 시끄러운 소리 속에 표현 할 수 없는 적막감이 감돈다. 생명을 받고 헤어지는 모녀처럼, 뜨고 이우는 달처럼 생과 사의 비밀을 품은 이 땅의 여인과 농민들의 아픔을 다 끌어안느라 힘든 때문일까. 땅을 품고 사는 이들의 몸을 밟고 춤추는 세상사가 올해도 뾰족한 수를 보여줄 수 없는 듯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깽 깨갱 깨갱 깽 하늘을 가르는 꽹과리소리가 천둥을 부르자 둥 두둥 구름떼가 몰려든다. 딱 따닥 딱 장구재비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져 무아지경에 이르니 장대비가 쏟아진다. 지잉 지잉 천지의 기운을 한데 모은 바람이 파문을  그리며 골짝으로 퍼져나간다. 꽹과리, , 장구, 징의 사물四物을 앞세운 농악소리가 산천을 누비며 하늘로 올라간다. 불과 물과 달에 만취한 아녀자와 남정네, 늙고 젊고 높고 낮음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달집을 돌고 돈다.

 

 “올해도 풍년이고, 내년에도 풍년일세. 쾌지나칭칭나네 쾌지나칭칭 나아 네에.” 땅의 함성과 하늘의 자비가 공중에서 얼싸 안고 춤을 춘다. 절정으로 치 닿는 망월굿의 오르가즘을 맛보며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땀으로 흠씬 젖은 육신이 땅의 품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개운하고 편안하다.

 타오르던 불길이 사그라진다. 가물거리던 연기도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남은 불똥 몇 개가 튀어나가 어둠속에서 별처럼 반짝인다. 풍악도 시들해지고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하나둘 발길을 돌린다. 불길에 몸을 사르며 사라져간 달집의 흔적은 다시 어미의 품인 토양으로 돌아가 생명을 키우는 거름이 될 게다.

 아직 다 못한 소원이 있는가. 모닥불 옆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불야성의 도시로 향한다. 달집을 빠져 나온 보름달이 차창에 올라앉아있다. 더러운 것은 모두 태웠고 액운도 거두었다며 싱긋 웃는다. 달집에 달아놓은 소원은 다 들어주겠으니 안심하라며 성큼성큼 앞장선다. 돌아오는 밤길이 훤하다.

 

[당선소감]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고단한 즐거움입니다. 뼈대를 세우고 옷을 입혀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려면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단어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몇 달을 전전긍긍하며 앓기도 했습니다.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기가 죽었습니다. 타고난 글재주도 없이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밀어 넣고 어정거리며 빠져나갈 틈만 엿보았습니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되도록 제자리에 머물러 그럴듯한 열매 하나 맺지 못했어요. 캄캄한 벽에 부딪혀 좌절할 때마다 그만하자고 중얼거리지만 자꾸 뒤돌아보느라 결단하지도 못했습니다.

 십여 년의 미련을 접기보다 한해만 더 해보자고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묵정밭을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작정하고, 때마다 거름을 주며 열심히 가꾸었습니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이란 낭보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세상에 대충이란 것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피와 땀을 쏟은 만큼의 결실이 신의 조화고 섭리였습니다.

 

 몇 번씩 주저앉아도 늘 묵묵히 지켜봐 주던 가족이 울이 돼 주었기에 튼실한 열매를 얻는 즐거움을 맛봅니다.

 함께 격려하며 서로의 허물을 감싸고, 때로는 쓴소리 아픈 소리로 날카롭게 평해준 포곡수필의 글동무들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게으름 부릴 때마다 열정을 쏟지 않는다고 죽비를 내리치듯 꾸지람하다가도, 의기소침해 있으면 어느새 위로와 격려로 다독여 주시던 스승님께 이 영광을 올리고 싶습니다.

 쳐진 어깨를 다시 추스를 수 있도록 제 글에 눈 맞춤 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선으로 선해 용기와 격려를 주신 뜻이 헛되지 않도록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봅니다. 장미꽃이 아닌 잡초라도 나름의 존재가치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으니, 더디고 힘들지만 한 걸음씩 저만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애자 작가는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구 계명대, 경북 경운대 교수를 지냈다.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부문 은상을 받았다.

 

황동나비경첩 / 이상수 - 2020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화초장 위에 황동나비가 고요히 앉아있다. 흡밀吸密이라도 하듯 미동이 없다. 철심鐵心이 박힌 나비의 반쪽은 몸판에, 다른 쪽은 문짝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황금빛 날개가 팔랑거린다.  

  친정 안방에 놓인 화초장은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왔다. 두 칸짜리 문판에 단아하게 매화가 그려져 있고 황동나비 세 마리가 돋을새김 되어있다. 안쪽엔 해충의 침입을 막으려 한지를 덧발랐다. 위 칸엔 모시적삼을 비롯해 두루마기와 유건이 걸리고, 아래 칸엔 치마저고리며 처녀 때 손수 수놓은 베갯잇이 포개져 있다.  

  친정 부모님이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육십 년 전이었다. 열다섯에 가장이 되어 책임감 강한 아버지와 놀기 좋아하던 철없는 막내딸 어머니는 초례청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엔 으레 연애 기간을 갖지 못한 동갑내기 부부의 성격은 판이했다. 아버지는 섬세하며 꼼꼼했고 어머니는 대범하고 쾌활했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아버지와 싫증이 나면 바로 그만두는 어머니의 동상이몽이 시작되었다.  

  두 분이 일하는 방식은 매우 달랐다. 어머니는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편이었고 아버지는 몸보다 머리가 부지런했다. 아버지가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호미를 들고 논밭으로 내달렸다. 어머니가 보기에 아버지는 지나치게 굼떠 보이고 아버지가 보기에 어머니는 너무 조급해 보였다. 농촌에서 몸을 쓰지 않는 일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어 식구들을 편안하게 해주겠다며 대처로 나가 옷가게를 차렸다. 머릿속으로 셈해 본 이익은 컸겠지만 날이 갈수록 손해를 보게 되었다. 한 번 시작한 일이라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다급히 논밭을 팔아 그 손해를 메우려 했다. 그럴수록 밑 빠진 독처럼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머니가 눈물로 아버지를 말렸지만 본전 생각은 아버지를 깊숙한 늪 속으로 끌어당겼다. 결국 마지막 남은 땅마저 넘기려하자 논바닥에 드러누웠다. 차가운 비는 어머니의 몸을 파고들었고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 마음에 파고들었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우리를 보더니 결국 아버지는 가게를 정리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사업에 대한 아버지의 꿈은 쉽사리 접히지 않았다. 어느 해,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땅을 세내어 시멘트 블록 공장을 차렸다. 건물 한 채 없고 직원은 달랑 어머니뿐이라 딱히 공장이랄 것도 없었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어머니는 혼자서 젖은 블록을 나르고 있었다. 갓 찍어낸 블록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귀퉁이가 무너져 쓸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어머니의 두 손에 들린 것은 젖은 블록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업인 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미수금을 거두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사고로 몸을 다쳐 일 년도 못 넘기고 공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농부의 삶으로 돌아왔다.  

  육십여 년, 온갖 풍상을 겪은 화초장에는 세월의 더께가 앉아있다. 문짝은 헐거워지고 나비는 녹이 슬어 빛이 바랬다. 군데군데 갈라진 틈을 메운 흔적이 우툴두툴하다. 손바닥으로 쓸어보면 쓸쓸함이 묻어난다. 한사코 밖으로만 떠돌던 아버지와 그걸 말리려던 어머니의 시간이 아릿하게 전해져온다.  

  신혼 때 우리는 아귀가 잘 맞았다. 언제나 그러리라 의심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과 나의 관계는 헐거워지고 말았다. 갑자기 찾아온 실직과 그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쌓인 피로로 집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가 많았고 실적 때문에 괜스레 짜증을 부린 적도 있었다. 아귀가 잘 맞지 않고 자꾸 삐거덕거렸다.  

  그즈음이었을까, 친정집 윗목에 묵묵히 앉아있는 화초장이 새삼 눈에 들어온 것이. 그 전에는 낡고 색이 바래 별로 대수롭잖게 보았다. 친정에 들를 때마다 하도 낡아서 새것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며 괜히 어머니를 핀잔했다. 하지만 당신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어릴 적, 잠결에 무슨 기척이 느껴져 눈을 떠보면 어머니가 화초장에 기대앉아 있곤 했다. 아버지와 고성이 오간 날이었을 것이다. 입으로는 무언가를 되뇌며 화초장을 연거푸 문지르고 있었다.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사람 같아 보여 엄숙하기까지 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경첩에서는 반짝반짝 윤이 났고 어머닌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도시락을 쌌다.  

  여닫는 문은 물론이고 안경다리를 접었다 펴거나 피아노 뚜껑을 여닫는 데도 경첩이 쓰인다. 만약 그것들이 풀이나 노끈으로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쉽게 망가질 것인가. 사교댄스에서 회전하는 축을 어느 한쪽 발끝에 두고 체중을 옮기면서 회전하는 것도 경첩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어느 한쪽이 자신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은 모두 경첩이라 할 수 있겠다.    반백 년을 함께 산 친정 부모는 이제 서로가 단단히 연결되는 방법을 안다. 헐거워진 화초장 문짝처럼 어느 한쪽이 떨어져 나가려 할 때 다른 한쪽은 그것을 단단히 붙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상대방을 신뢰하며 끝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는 안정된 가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벌였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절망도 했고, 그대로 주저앉아 일어서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때마다 아버지를 잡아주었다.  

  그동안 밖으로 나돌며 나는 여러 가지 일을 전전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하는 탓에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적응하는 동안 온 힘을 쏟았다. 그만큼 집안일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땟거리며 아이들 챙기는 일까지 도맡아 했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변화를 싫어하고 질서정연한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 어질러진 집안을 견디고 나의 빈자리를 메우면서 늦은 귀가를 할 때도 남편은 반갑게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아버지의 잦은 사업실패로 헐거워지려 할 때마다 어머니가 붙들어 주었고 내가 돈을 번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돌 때 붙들어준 것은 남편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경첩이 되어주었기에 화초장처럼 든든하게 가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기와가루를 가져와 나비의 날개를 닦는다. 세 마리 황동나비는 여전히 단단하게 문짝을 붙잡고 있었다. 녹슬어 있던 황동나비가 날갯짓을 한다. 매화나무 위에 앉았다간 팔랑팔랑 안방을 날아다닌다. 나비가 날아간 자리마다 매화향이 가득 퍼진다.​​

 

 [당선소감]

​초겨울 들판에 검은 천이 일렁이고 있었다. 천 자락은 바람을 타고 하늘로, 다시 아슬아슬 땅바닥에 닿을 듯 오르내렸다. 자세히 보니 이맘때면 늘 찾아오는 까마귀 떼의 군무였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춤사위를 보고 있자니 내 안에서도 형언할 수 없는 갈망이 넘실거렸다. 그러다 문득, 기쁜 소식을 들었다.​수필을 만난 지 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나간 일을 써놓고 들여다보면 일기 같았고 머리로 이끌어낸 글은 논설문 같았다. 감정의 힘과 삶의 경험이 잘 어우러진 후에야 비로소 피기 시작하는 게 수필이라면 나는 이제 가지 속에 작은 꽃봉오리 하나쯤 숨겨두었을까. 어쩌면 활짝 핀 모습은 생전에 볼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희망 하나쯤 갖고 쓰다보면 작은 꽃잎 몇 개는 펼치기도 하리라.​부족한 글 뽑아주신 영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세계를 향해 마음껏 타고 오르도록 지지대가 되어주는 가족에게 사랑을 보낸다. 늘 응원을 보내는 벗들의 이름에도 애정을 담는다.​​

 

 

[ 심사평]

# 오랜 성찰을 통해 나온 글은 깊이가 있고 격이 다르다.​이번 영주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공모에서 백 서른 한 분이 오 백 이십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보내왔다. 세 편에서부터 무려 아홉 편을 보내온 분도 있었다. 응모자 모두가 수필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품고 있음이다.​수필은 작가가 바라본 그 어떤 것(소재)에 대하여 어떻게 사유하고, 해석하고, 감정이입을 하느냐에 따라 글이 달라질 수 있다. 표현 방식도 다양하다. 그만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보편성이라는 것이 녹아있어야 한다. 즉 공감을 불러오거나 마음을 움직이는 촉수가 있어야 함이다. 성찰이나 관조가 없으면 공감을 얻기 힘들다. 오랜 성찰을 통해 나온 글은 깊이가 있고 격이 다르다.​우선 수필로서의 요건을 생각하며 심사위원들은 우수작 몇 편을 선정하였다. 김서연 님의 ‘배냇저고리’, 강미란 님의 ‘합방(合邦), 김장배 님의 ‘군새’, ‘꽁뚜뱅이’, 김경아 님의 ‘페이지터너’, 서민교 님의 ‘에밀레’, 김애자 님의 ‘양반탈’, 이성아 님의 ‘편지’, ‘이어폰’, 이상수 님의 ‘도린자기’, ‘황동나비경첩’이다.​한 편만 선정해야 하는 안타까움을 안고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다.​이번에는 이성아 님과 이상수 님으로 좁혀졌다. 이성아 님의 ‘이어폰’은 늘 이어폰을 하고 다니다가 어느 날 이어폰을 두고 출근을 하면서 타인을 향해 귀를 막았던 자신을 성찰하고 있는 글이다. 이상수 님의 ‘ 황동나비경첩’은 육십 년 전 부모님이 쓰던 화초장의 경첩을 깊이있게 관조하여 가정을 지탱하는 것은 서로 경첩과 같은 역할을 해온 누군가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글이다. 두 작품 모두 소재를 통해 주제 전달에는 성공했으나, ‘황동나비경첩’이 문장의 함축성과 문체의 간결성에서 부족함이 없어 최종 선정하였다.​최종 선정되신 분께 축하를 드리며, 응모한 모든 분들에게도 그동안의 노고에 격려를 보낸다. [대표집필 김순신 수필가]

 

 

아버지 게밥 짓는다 / 김옥자 - 2020년 매일신춘문예 당선작

 

 달무리 속으로 언뜻언뜻 구름이 흘러들다 사라지는 밤, 정월대보름 놀이를 하느라 한껏 들뜬 여흥이 가시기전 경광등을 켠 경찰차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제복을 입은 경찰이 차에서 내리더니 보호자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농한기를 맞아 도시에 사는 지인들과 관계의 밥을 짓고 집으로 돌아오다 아버지는 속도의 바퀴에 무참(無慘)하게 부딪쳤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오빠와 언니에게 당부의 말도 일러 둘 겨를도 없이 그 분들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위중했던 병세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어른들의 말이 적응되고도, 1년여의 투병생활이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진 대퇴부까지 석고 깁스를 하고 목발에 의지한 채 집으로 오셨다. 한 집안의 대들보이자 기둥처럼 튼튼했던 몸이 사고의 후유증 때문인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왼쪽 어깨가 앞으로 치우치면서 게가 걷는 형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걸음이 빠르면 빠를수록 게걸음은 더욱 더 심하게 나타났다.

  서식환경과 외향적인 특성이 다양한 게는 한 쌍의 집게발과 네 쌍의 다리로 종횡무진 갯벌을 오고 간다. 아버지 역시 푹푹 빠지는 세상 속에서 마른 곳과 젖은 곳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의 파고와 맞서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파도가 지나간 자리엔 그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사고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과 육체적인 상처를 지닌 채 당신의 건재함을 보이려는 듯 세상의 파고 속에서 잠시도 자신을 풀어 놓는 일 없이 게걸음을 치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까치발을 든 민꽃게처럼 수게의 기개(氣槪)를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게딱지의 단단함 속에 자신의 가장 여린 부분을 감추고 도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썰물을 밀어낸 너른 벌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게가 숨구멍을 오가며 무기물을 걸러 내거나 갯지렁이 바다 생명의 사체를 먹이로 찾고 있는 중이다. 게가 먹이를 찾는 것이나 아버지가 세상의 바다에서 필요한 양식을 얻기 위해 게걸음 치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불편한 다리로 분주히 걷는 모습에선 언제나 인내의 짜디짠 냄새가 배어 있었다.

  일 년 농사를 준비하며 관계의 밥 짓기를 하는 과정 속에서 품앗이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방식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듯, 주위 사람들에게 지청구를 주며 완고함을 보이기 위해 게걸음은 지속되었다. 게가 옆으로 기어가다 길이 아닌 곳에 처박힐망정 당신 사전엔 굽힐 줄도 모르고 포기도 없었다.

 

  게는 위험을 감지하거나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싶을 때 빈 소라껍질을 자신의 은신처로 삼거나 뻘 구멍 속으로 자신의 몸을 숨긴다. 하지만 아버진 그러지 않았다. 게는 몽글몽글 밥을 짓고 있었다. 뻘과 모래밭에 수 천 수만 개의 밥을 지어 놓았다. 연신 앞발 두 개를 얼굴에 비벼대며 거품을 물었다 뱉어 낼 때마다 게밥의 숫자는 늘어났다. 너울성 파도 한 번이면 와르르 쓸려나갈 저 밥들, 아버지가 지어 놓은 밥들은 수시로 파도에 쓸려 나갔다. 하우스 세 동의 배추 농사가 그랬고, 천오백 평 감자 농사가 가격 폭락으로 거센 파도에 휩쓸려 나갔다. 한우 값 폭락으로 반도 못 건진 비용들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의 다리에 족쇄를 채우며 더욱 더 절름거리게 만들었다. 어린 게들의 왕성한 식욕을 위하여 아버지의 게걸음은 오금도 펴지 못한 채 세상의 바다에서 게걸음을 치며 내달려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몸은 옆으로 치우치며 점점 더 빠른 게걸음이 되어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분명 당신은 똑바로 걷는다고 생각하셨을 게다.

  게는 열 개의 다리중 하나라도 부러지면 게로서의 능력을 잃는다. 아버지는 교통사고 이후 다리만 와지끈 부러지고 깨진 것이 아니었다. 속도의 바퀴에 다리가 깨진 순간, 당신의 꿈과 희망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아픈 다리와 함께 상실되었음을 철이 들고서야 알았다. 나와 가족들은 "아버지! 다쳐서 아픈 다리는 괜찮으시냐"고 묻지도 못했다. 아니 그 얘길 입 밖으로 꺼내질 못했다. 마치 금기사항이라도 된 것처럼 모두가 함구했다. 여러 번의 수술로 인해 살가죽 속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다리를 어루만져 드리지도 못했다. 한쪽 어깨가 옆으로 치우치며 게걸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긴 시간을 아버진 묵묵히 혼자서 감내해야만 했다.

 철이 없어 아버지가 지어 놓은 보리 섞인 밥이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소금기에 절은 짠내가 싫어 아버지의 고단함을 외면한 적이 많았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서야 삶은 짭조름 간을 맞추며 살아내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터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감추듯 어떤 상황이나 낯선 변화에 집게발을 번쩍 들어 대항하는 게처럼 단단한 날을 세웠던 아버지였다. 게는 늘 까치발을 들고 짠물 가득한 세상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그가 뻘 구멍을 아지트로 삼고 쉬는 시간 역시도 마른 곳이 아니듯 아버지의 쉼터 역시 그랬다. 게가 생존을 위해 밥을 짓느라 집게발로 연신 얼굴을 비벼대며 게거품을 무는 것처럼 아버지는 삶을 위해 고군분투 했다.

  누구나 세상의 바다에서 게걸음을 걷는 형상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세상을 향해 똑바로 걸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비틀거리며 게걸음을 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매사 어긋나버린 꿈을 향해 비틀거리는 모습은 보였어도, 아버지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우리 가족을 지켜내었다.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온전치 못한 다리를 짜디짠 물에 담금질을 하며 게밥을 짓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게는 집게발로 연신 얼굴을 비벼대며 거품을 물며 몽글몽글 밥을 지어 놓을지언정 흔들리며 걸어 온 발자국은 남기지 않는다. 아버지가 평생을 일궈 놓은 밥을 퍼 먹고 있는 오늘, 여덟 형제가 그 자식을 위해 다시 세상의 파고를 넘나들며 또 다른 밥을 짓고 있는 중이다.

 

 

[당선소감]

자기 자신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매사에 까칠함이 많아 모서리 몇 개쯤은 지니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는 또래의 친구와 어울려 놀기보다는 땅 바닥에 풀잎을 그리거나 친구의 이름 내지는 마음속엣 말을 썼다가 지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밖에 나가 놀 수 없다는 핑계로 다락방을 어린 소녀만의 공간으로 삼았지요. 벽지대신 순서 없이 천장과 벽면에 붙여진 빛바랜 신문의 깨알 같은 활자와 책보다는 박을 타서 만든 바가지들이 놓여 있었지요. 바느질에 필요한 천조각과 털실뭉치, 인두와 소소한 잡동사니가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기도 했다. 호기심에 몇 번은 이런 것들을 만져보다 이내 관심 밖에 두었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거나 엎드려 뭔가를 궁리하듯 가만히 있다 무료한 시간에 답답증이 일면 단어의 의미나 군데군데 섞여 있는 한자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띄엄띄엄 천장의 글자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우연찮게 글을 쓰게 되었다. 어떻게 써야 된다는 것도 모른 채 사색의 창고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꺼내 지면으로 옮겨 적는 것조차 새록새록 하던 일이 생각난다.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글쓰기에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괴감 내지는 혼란스러움의 연속된 나날들이었다. 삶의 희 노 애 락을 겪을 만큼 겪고 나서야 문 하나를 열수 있는 기회가 제게 주어졌습니다. 지연희 교수님을 만나 시와 수필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시름과 희열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방황하고 있을 때마다 아낌과 격려, 채찍을 함께 주셨습니다.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매일신문이 제게 안겨준 영광스런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고 아버지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3월 친정어머니를 먼 곳으로 보내드린 후라 그런지 더 그랬던 같습니다. 제 글을 읽고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 하나의 문을 열어주신 것임을 알기에 더욱더 정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아직까지도 미덥지 못한 구석이 많습니다. 또 다른 나를 알아가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창작에 임하겠습니다.그동안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했던 문파 문인협회 신시 가족이었던 장명순선생님 정이춘선생님 한복선선생님 강근숙선생님 류성신선생님의 사랑과 아낌없는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문인협회 파주지부 여러 선생님들의 격려와 따뜻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늘 한 마음으로 응원해준 친구 동숙, 화숙, 영순, 은숙1, 은숙2 효숙아 정말 고마워. 서투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박수를 보내준 오빠내외 언니들 동생아 많이많이 사랑해. 내 곁에서 여름휴가 때마다 친정 부모님과의 여행을 계획하고 동행해준 남편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더 전하며, 딸내외(태형 다람), 아들내외(현주 동주)와 함께 이 영광의 기쁨과 행복을 같이 하고 싶습니다. 미처 다 얘기 하지 못한 많은 지인들에게도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심사평]

​아쉬운 심사였다. 무슨 연유인지 응모작이 예년에 비해 3분의 1이나 줄어 450여 편에 머물렀다. 60세 이상의 시니어 응모자가 대다수를 이룬 현상이야 굳이 되짚어볼 것까지는 없겠으나 삼사십 대를 비롯한 젊은 작품이 눈에 띄지 않은 지독한 세대 편중이 마음을 우울하게 했다. 애써 뽑아 올린 본심 10여 편 중에 응모자격 검증 과정을 통과하지 못해 두어 편 배제된 것도 불편했다.결국은 고만고만한 작품들이 남았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틀을 갖춘 글들이었다. '힘돌'과 아버지 게밥 짓는다', '속긋을 긋다', '꽃의 숨' 등이 그들이다. '속긋'은 시제가 뒤틀려 있지 않은가 살펴보기 바란다. '꽃의 숨'은 함께 묶은 작품이 따라주지 못했다.최종 경합을 이룬 작품은 '힘돌'과 아버지 게밥 짓는다'였다. 이 두 작품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힘돌'은 안정적이었으나 눈에 익숙했다. 함께 제출한 '쳇불'과 더불어 사물수필이다. 힘돌과 쳇불이라는 사물로써 인간의 삶을 의미화하려는 정형화된 교과서적 수필이다. 우리 수필에서 특히 공모전에서 사물수필이 서정수필에 비해 호의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작품속의 시간과 공간의 배치를 새롭게 하고 1인칭 시점에서 주인공을 너무 멀리서 찾지 않았다면 해볼 만했다. 하지만 무난하다는 평가, 거기까지였다.'아버지, 게밥 짓는다'는 신선했다. 제목은 물론 소재의 질료까지 산뜻했다. 묶어서 제출한 '문밖에서''통과합니다' 역시 선명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다. 혹시 시적 심상이 풍부한 응모자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일게 했다. 하지만 문장이 거칠었다. 은유와 상징어로 의미를 모호하게 하는 부분도 있어 입문자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게 했다. 그러면서 두 심사자는 오히려 초보이면 좋겠다고 했다. 이만한 감각이면 스스로 끊임없는 교술과 자득으로 충분히 신춘의 새로운 촉이 되겠다고 뜻을 모았다. 그래서 '아버지, 게밥 짓는다'를 그의 '문밖에서''통과합니다'와 묶어 당선작으로 밀었다.심사위원 : 김종욱(수필가)·홍억선(수필가)

 

 

댓돌 / 우광미 - 202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그곳은 성전의 들머리다. 저마다 순례길 같은 일상에서 지고 온 남루들을 벗어놓는다. 하루치의 자잘한 삶의 편린들을 정화시킨 후 비로소 맨발을 방으로 들인다. 또 날이 새면 어김없이 새로운 다짐을 찍으면서 나선다.

   돌은 연장이 되기도 하고 염원을 담아 얹으면 탑이 되기도 한다. 성벽의 돌처럼 우러러봐야 할 정도로 높이 쌓은 것도 있고, 보일듯 말듯 나지막이 집 담장으로 둘러진 경우도 있다. 그 쓰임새가 다양하나, 집채를 오르내리도록 만든 계단인 댓돌은 유난히 살갑다.

 비상하는 새들도 머무르며 쉼표를 찍듯이, 생각이 흐트러질 때엔 시골집에 와서 댓돌을 바라본다. 칼에 베인 시간처럼 빈집의 공허가 창백하다. 내 시간의 긴 침도 모 닳은 댓돌 위에 멈춰 있다. 각이 서 매사 반듯하던 젊은 날의 성정도 유연해졌는지 제 몸에 이끼꽃을 피웠다. 바닥의 애환을 알고 있는 듯 묵묵히 세월을 받아낸 낙수의 결마저 간직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고요에 든다. 이렇듯 자신을 잘 바라볼 수 있을 때는 멈추어 있는 시간일 것이다.

  해가 설핏해지자 산 그림자가 마당에 내려앉는다. 감나무 끝에 서성이던 바람이 댓돌 위로 먼 기억의 풍경들을 부려놓고 간다. 우듬지 까치 소리가 여명을 깨울 때부터 들리던 자분자분한 어머니 발걸음 소리. 뻐꾸기 울고 스무날만 지나면 풋보리를 먹을 수 있다던 외할머니 말씀이 문득문득 생각난다던 어머니. 보릿고개를 넘어가며 했다던 그 말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주문인 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힘겨운 시집살이에 속울음을 삼키며 친정으로 향하고픈 발걸음을 몇 번이나 여기서 바장였을까. “이별이 꼭 죽음뿐이랴.” 하시며, 집 나간 자식 흉몽이라도 꾸는 날이면 하얀 소금을 한 줌 댓돌 주변으로 뿌려 놓으시곤 했다. 아랫목 이불 속에 밥그릇이 따뜻하면 객지에서도 배곯지 않는다는 믿음, 신발이 가지런하면 어디를 가든 발걸음이 어긋나지 않는다는 믿음, 그것은 어머니 불변의 동종주술이었다.

 

 하루의 일과 중 무시로 눈보다 정갈히 씻은 시어른 고무신을 섬돌에 올리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의식이었다. 가족의 밥이 되고 자식의 책이 될 벼를 돌보기 위해 산모롱이 돌아 물꼬 트는 아버지의 흙고무신. 안쪽 바닥에 우산대 달궈서 눌러놓은 낙인은 끝까지 닳지 않는 바코드였다. 덤벙대며 마루로 뛰어오르곤 하던 오빠의 운동화는 사선으로 놓이거나 한쪽이 뒤집히기 일쑤였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조용히 챙겨놓았다. 마치 댓돌이 나의 영역이라고 무언의 주장이라도 하듯이. 어떤 허물도 절대 발설치 않는, 주소를 잡고 떠날 줄 모르는 정착의 의지가 굳건하다.

 옆구리 맞대고 길게 늘어섰던 신발들. 그런 댓돌이 휑하니 비는 밤이 한 해에 꼭 하루씩 있었다. 음력 정초가 되면 날마다 무슨 금기가 그리도 많았던지. 그 중 신일(申日)에는 밤중에 귀신이 와서 신발을 하나씩 신어 보고, 그 중 딱 맞는 신 임자는 그 해에 병치레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래서 초저녁이 되면 방 윗목에 신문지를 깔고 온가족의 신발을 나란히 늘여 세웠다. 늘 보던 신발을 방안에서 보면 색다르게 보였다. 아침에 나와서 말끔히 비어 있는 댓돌을 볼 땐 마치 새집에 온 듯이 낯설었다. 그만큼 댓돌은 신발이 놓여야 생명을 가지는 공간이다.

 큰 건물의 댓돌은 마당에서 기단으로 오르는 계단이기도 하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도와 주는 디딤돌이다. 불국사의 연화교에 디딤돌마다 연꽃이 새겨진 이유도 그 위가 부처의 세계라는 암시이다. 진흙에 뿌리를 내린 채 티없이 향기를 피우고, 물 위에 잎을 펼치고도 젖지 않는 연화처럼 청정한 세계로 걸어가라는 뜻이리라. 대궐의 조계()에는 용이 새겨져 있다. 용이 통치자의 권위를 내보이기도 하지만 구름을 몰고 다니는 신성한 존재이기도 하니, 백성을 다스리는 이는 우로(雨露)를 골고루 내려 풍족하게 한다는 다짐일 터이다.

 그에 반해 속계에 사는 서민의 집 댓돌은 조붓하다. 장식이 없고 밋밋하다. 화장기 없고 수수한 시골 아낙과 같다. 비록 열반을 향해 오르는 연꽃이나 세상을 다스리는 용 문양의 돌은 아닐지라도 댓돌의 적요는 본성이 지닌 포용력에 있다. 울타리 허술하게 치고 사는 서민들 정 붙이고 살아가는 속내야 어찌 연화장 세계나 대궐보다 덜하겠는가.

 유년시절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두 장의 흑백 필름이 있다. 팔남매의 막내인 나에게 기억될 정도면 할아버지는 수를 하신 셈이다. 한 장은 누워 계신 모습이다. 이불을 잔뜩 당겨 덮은 까닭에 얼굴만 드러났다. 얼굴보다는 숱 많은 수염과 한 번도 벗지 않던 탕건만 기억난다. 또 한 장은 댓돌에 앉은 모습이다.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다리에 행전을 두른 채, 마루를 배경으로 댓돌 위에 앉아 계셨다. 그분에게 댓돌은 일생 다스려온 영토를 내려다보는 성루이자, 피안을 바라보는 차안의 나루터였을지도 모른다.

 

  댓돌은 밤이 되면 도량의 정례석처럼 정()하다. 하루를 돌아보고 나쁜 기운은 별빛에 우려낸다. 고된 노동 후에 밥은 달고 잠은 깊은 법. 깊은 잠 속에서도 생의 무게에 신음하는 부모님의 숨소리마저 거두어 달빛에 씻어내는 정화수 막사발이다. 어제의 삶에 오욕이 달라붙었을지라도, 뉘우침으로 밤이 길었을지라도, 아침이 되어 신발을 꿰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부여해준다.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댓돌 위에는 지난 삶이 남아 있다. 돌아봄과 되새김의 시간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하루의 노동을 끝낸 달뜬 걸음이든, 일용할 양식에 매인 비루한 걸음이든, 끝내는 댓돌에 닿아서 멎는다. 내려간 만큼 삶을 절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바닥의 의미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낮은 자세로 좌정하고 있다. 가족들 차례로 떠나고 종내에는 어머니 혼자 오르내려도, 생각 속 신발만은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던 댓돌이다. 이제 어머니의 신발도 정물이 되었다. 걷고 걷다 온 제자리.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날들이 채도를 잃은 가족들의 신발과 함께 저기 놓여 있다.

  이 모든 희로애락을 듣고 갈무리한 댓돌에 앉아 지난 세월을 되작여 본다. 걸을 때에는 나아가는 일에만 전념했다. 바라보았던 건 앞쪽과 남은 거리뿐이었다. 멈추어 돌아본다. 인지한다는 것은 관찰하고 그 깊이를 가늠하는 일이다. 신발을 잘 벗어 놓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듯, ‘지금 여기’ 자신이 서 있는 마음자리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겸허한 마음을 지니고 하심(下心)을 닦는 일이기도 하다.

 마음 허허로운 날엔 댓돌에 올라 볼 일이다. 우리의 뒷모습이 저기 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가족들의 온기가 새겨져 있다. 시간을 거슬러 표정들이 살아나고, 귀 기울이면 속삭임이 들려온다. 모 닳은 댓돌은 우리집 호적등본이다. 칸이 부족해 너덜너덜한 우리 삶의 이야기가 깨알처럼 씌어 있다. 나 또한 언젠가는 하나의 정물로 들어앉을 것이다. 그날이 언제이건, 오늘도 이 제단을 조용히 쓸고 오른다.​​

 

[당선소감]

제게 글이란 풍경의 소실점 같았습니다. 다가서면 물러서고 다시 바라보는 혼잣말이었지요. 잠든 기억을 깨우고 시간의 페이지를 넘기며, 텅 빈 공간에 섰을 때 비로소 자신과 독대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글쓰기를 일상의 일보다 큰 의미로 여긴 나머지, 본질을 부풀려 생각할까 늘 경계합니다.사물을 관찰해보면 무엇 하나 외따로 존재하지 않고, 시간의 흔적으로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 시간을 자아올려, 시공간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다시 소환하고 관계를 재편하곤 합니다. ‘댓돌’은 그러한 삶의 의미를 담아보았습니다.글을 쓰면서 회의를 떨칠 수는 없었습니다. 공들이는 작품이 허방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몇 걸음 앞의 길도 못 본채 돌아서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나올 길을 향한 이중성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젠 소실점을 향해 묵묵히 길을 가겠습니다.문득 깃든 시절 인연입니다. 저의 작품에 가능성을 부여해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몸을 낮추어 삶을 관조하겠습니다. 따뜻한 글을 쓰라는 격려와 과제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매년 문학의 장을 열어주는 경남신문사와의 인연도 소중하게 여기며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심사평]

​수필 당선작은 우광미의 ‘댓돌’로 선했다. 이 작품의 구성이나 문장력을 보면 서슴없이 결정해야 될 글이었지만, 당선작으로 올리며 약간의 숨고르기가 있었다. 다른 많은 응모작품들처럼 농경기의 체험에 바탕을 둔 소재가 걸림돌이었다. 그냥 한 편일 때는 빛날 수 있는 글이지만, 너도나도 비슷한 배경과 소재로 글을 쓰게 되면 돋보일 수가 없다. 300편이 훨씬 넘는 수필작품 속에서 ‘하나’로 선택되려면 참신함, 즉 자신만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 ‘댓돌’이라는 제목부터가 경쟁을 뚫기에는 밋밋하다 못해 고루하기까지 하다. 제목 때문에 외면당할 수도 있었다.비단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작품뿐이겠는가. 센스 있는 제목이 독자의 시선을 잡아두기도 하는 것이니, 제목을 붙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겠다.다행히 우광미의 ‘댓돌’은 밋밋한 제목과 낡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구조가 짜여있고, 마음의 경지에 이르는 전개와 서술이 예사롭지 않았다. 댓돌에 닿은 시선을 확장하여 사유의 세계로 나아가는 자신만의 발견과 성찰이 감동의 문장을 만들어 놓았다. 자칫 의례적인 넋두리에 빠지지 않으려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움이나 가르침을 진부하게 표현하지 않으려는 섬세한 노력도 엿볼 수 있었으며 주제를 일관성 있게 끌어가는 힘도 느껴졌다. 오랜 수필쓰기의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탄탄한 문장이 심사위원의 심경을 건드렸다. 이 작가가 장점을 한층 발휘하여 새로운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기를 기원하며 큰 박수를 보낸다.수필쓰기에 여념이 없는 작가지망생이나 이미 길에 들어선 작가들에게도 다시 말하지만, 시대에 맞는 삶의 모습과 발견, 그리고 깨달음이 있는 수필의 전개가 요구된다. 수필은 체험을 통해서 탄생하는 진솔함이 깃든 문학작품이다. 체험이라고 해서 주변에서 손쉽게 얻는 소재를 글에 옮겨놓으면 독자를 사로잡는 ‘작품’에 이르기가 쉽지 않다. 희소한 수석을 찾아서 눈을 부릅뜨듯, 희귀한 난을 찾아 산지를 헤매듯 글의 참신한 소재를 찾는 노력이 절실하다. 옛날에 먹혔던 글감에 안주하게 되면 식상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심사위원 정목일·

 

 

/ 조혜은 - 2020년 한경 신춘문예 당선작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새를 보고 새를 볼 수 없을 땐 새를 상상해 왔다. 여덟 살 때부터 치기 시작한 피아노마저 건초염으로 오년 전 그만둬버리고 내게 취미라고는 새를 보고 새를 상상하는 것이 유일하다.

  눈앞에 있지 않은 새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무실 내 옆자리의 후배는 신기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유독 새빨간 입술이 백문조를 쏙 빼닮았다. 뭐 때문인지 매사에 부루퉁한 얼굴로 혼잣말이 잦은 세탁소 주인아저씨는 새카만 까마귀를, 아파트 근처 편의점의 스물 남짓한 야간 알바생은 검푸른 눈매가 도드라진 동고비를 닮았다. 세상에는 새를 닮은 사람이 아주 많다. 개나 고양이를 닮는 것처럼 사람들은 새를 닮기도 하며 특별하거나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 하필 새를 보는가 하면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캠핑을 가고 맛집 탐방을 다닌다면 나는 새를 본다. 하필 새가 아니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번식기나 월동기가 되면 주말을 이용해 순천만 습지나 남해 강진만, 창원 주남저수지, 강화도, 낙동강 하류 을숙도, 충남 태안 천수만 등 전국을 돌아다닌다. 아무리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직 새를 볼 수 있다면 거리는 상관없다. 새를 보러 가는 길은 실제로 새를 보는 것만큼이나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새를 볼 때는 그냥 본다. 무슨 대단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잠시 생각을 멈추고 오롯이 새 자체에 집중한다. 새를 보기 전에 애써 걱정이나 고민을 내려놓을 필요는 없다. 뭘 하려거나 억지로 누군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눈앞의 새를 보면 된다. 숨죽인 채 새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비워져있다. 새를 보는 동안 나는 서서히 가벼워진다. 비어 있을 때 나 자신은 아주 가볍고 가벼운 것은 늘 옳다. 나는 끓어 넘치는 것을 혐오한다. 넘치는 것은 모자란 만 못하고 하등 무용하다. 화가 나거나 슬플 때 나는 새를 본다. 긴장했을 때도 새를 보고 황당하거나 창피할 때도 새를 본다. 새를 볼 수 없을 땐 새를 상상한다. 상상까지 새를 보는 일의 포함인 것이다.

 

 사람들은 새를 보는 일을 일면 생소해하면서도 마뜩찮게 여기는 구석이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새를 보는 일을 굉장히 수고롭게 생각한다. 일례로, 내가 주말에 새를 보러 간다고 하자 사수는 비꼬듯 말했다. ‘뭐? 새를 보러 간다고? 뭐 하러? 새를 보면 떡이라도 나와?’ 새를 보는 것을 하찮게 여기니 새를 보는 나도 하찮아 보였던 걸까. 떡이 나오냐니.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뭘 바라고 새를 보는 것이 아니다. 새를 봐도 내가 얻는 건 없다. 새를 보는 일은 지극히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새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문외한은 아니다. 새라고 다 같은 새가 아니라는 것을 새를 보고 구분할 정도는 된다. 그렇다고 또 자랑할 만한 수준도 아닌 것은 지구에는 팔천육백여 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칠백여 종이 한반도에 서식하고 있는 걸 고려하면 그저 협소한 나의 생활 반경 내에서 꼭 필요한 만큼 보일 뿐이다.

  봄이 되면 한반도에 날아와 번식하는 여름 철새, 겨울철에 머무는 겨울 철새, 봄이나 가을에 잠시 들렀다 가는 나그네새, 늘상 볼 수 있는 텃새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꾀꼬리, 뻐꾸기, 찌르래기, 제비, 소쩍새 등은 여름철새다. 겨울 철새로는 기러기, 고니, 두루미, 양진이, 말똥가리 등이 있고 노랑딱새, 흰눈썹지빠귀, 촉새, 긴발톱할미새 등의 나그네새와 박새, 딱새, 까마귀, 까치, 참새, 황조롱이 등은 텃새다. 가끔 나는 지구에 서식한다는 팔천육백여 종의 새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싶은데 이내 그것들을 다 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좀 억울하고 허무해진다.

  가만히 새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다. 새가 있고 새를 보는 내가 있다. 단출하고 홀가분하다.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새를 보고 있으면 지구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는 오로지 새를 기다리고 새가 있으면 보고 또 기다리고 다시 본다. 저물녘, 녹아내리는 듯한 하늘을 무리 지어 비행하는 풍경 앞에서 자연스레 겸허해진다. 어떤 순간은 감히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고 담으려는 찰나 지나가 버린다. 마치 인생의 가장 눈부셨던 순간을 잡아둘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다. 탐조용 스코프나 망원렌즈 같은 전문적인 장비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새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새를 본다는 건 저장이 아니라 비움이다. 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이다.    내가 새를 보러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걸 아는 지인은 내게 새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 약속도 취소할 만큼? 사람보다 더? 나는 거의 평생 새를 봐왔으며 새와 견줄 비교대상은 없다. 때때로 사람들은 너무나 무심코 타인에게 가혹하게 군다. 새는 내가 가장 부서지기 쉬웠을 때 내게 왔다. 나의 최초의 새에 관한 기억은 열 살 때로 외할머니의 집 마당에 자그마한 새가 날아든 일이다. 눈 위를 디디며 자그마한 발자국을 남기던 녀석은 몸의 윗부분이 붉은 갈색이었다. 동작이 재빠르고 움직일 때마다 꽁지를 좌우로 쓸어댔다. 그것은 몹시 부드러울 것 같았으나 손에 쥐기엔 너무 작고 연약해 보였다.

 

  그해 겨울, 나는 인천의 외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아버지의 수술과 장기 입원 생활로 엄마가 나를 보살필 여력이 안됐기 때문이다. 나는 겨울의 눈 덮인 한적한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새를 쫓아다녔다. 지치는 줄도 모르고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푸르스름한 바닥위로 짙게 기울기 시작하면 슬금슬금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는 얌전히 앉아 공기놀이나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숨이 다 넘어갈 정도로 달리고 몸을 움직여 혼을 빼 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만히 있으면 외롭고 슬프고 우울한 생각들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 나는 그 추운 겨울을 헤집으며 새를 쫓았다. 그러는 동안은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두려운 상상과 망상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었다. 바짝 언 몸으로 돌아가면 외할머니가 상기된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어루만지고 차가운 몸을 품에 보듬고 가만가만 어르고 달래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 달 남짓 머물렀지만 때때로 나의 시간은 여전히 그때에 멈춰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해 겨울을 생각하면 하얗게 눈밭을 이룬 마당을 찾아들었던 그 작은 새와 함께 했던 풍경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겨울은 새에게 치명적인 계절이다. 헐빈한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새들을 위한 안식처는 찾아볼 수 없다. 마땅히 몸을 숨길 수 없기 때문에 창공을 휘저으며 먹이를 찾는 포식자의 표적이 되기 쉽다. 천적들의 위협과 추위, 허기로부터 몸을 숨기려 날아든 녀석을 외할머니는 정성스레 거둬주었다. 아마도 나의 시간이 여전히 그해 겨울에 멈춰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온했던 그 순간에 영원히 머물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날 차갑게 얼어붙었던 내 마음 위를 디디고 간 작은 발자국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추락하는 새를 본 적 있다. 새를 볼 때는 그저 새를 볼 뿐이므로 새가 추락하는 동안 그저 지켜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날개를 뒤집은 채 빠르게 추락하던 새는 능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나는 이따금 그 추락하는 새를 떠올리고 무기력함에 젖는다. 내가 어쩌지 못한 일들. 부정하고 불합리한 일에 대해 침묵을 강요당함으로써 부당함을 감내해야 했던 지난날. 세상은 참으로 불가해한 현상들로 끓어 넘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새를 본다. 새를 생각한다. 가벼워져라. 가벼워져라. 주문을 외운다. 날아가라. 날아가라. 훨훨. ​​

 

 

[수상소감]

‘비로소 마주봄의 순간.’​새를 보는 것은 지극히 수동적인 행위다. 소통이 불가능하고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때때로 나는 새를 볼 때 혼잣말을 하기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주변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들이다. 나도 안다. 새를 보는 것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자극점도 없고 구미를 당길 만한 거리도 없다. 하지만 덮어두고 지루하고 따분하게 여기기엔 너무나 살아있지 않나. 살아 흘러넘친다. 명백히 살아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나는 살아있는 그것들을 볼 때 살아있다고 느낀다.​얼마 전 새를 보러 갔다. 자꾸만 흘러넘치는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였다. 쉬이 비워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꾹꾹 눌러 담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힘이 들었다. 새를 보는 일이 힘에 부쳤다. 글을 쓰는 것과 새를 보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차오른 것들이 깃든 자국을 남길 때 마음의 생채기가 하나둘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썼다. 묵묵히. 그러다 보면 어떤 순간에 도달하기도 한다. 기적이라고 믿는 순간. 지금 기분이 꼭 그렇다. 늘 수동적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새와 눈이 마주친 기분. 글을 써 온 이래로 비로소 우리가 마주본 듯하다. 심사위원과 가족들, 그리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심사평]

수필 부문에는 총 391편의 작품이 응모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글쓰기의 욕망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놀랍고, 한편으로 반가웠다.이런 욕망이 좋은 수필을 쓰는 데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물론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은 소중하기 그지없고, 그 인생을 반추하고 회고하고 정리하면서 얻는 기쁨과 깨달음은 글쓰기의 가장 큰 보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만으로 수필은 완성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응모작이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는 점이,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타인을 새겨 넣지 못한다는 점이 심사 과정에서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세 명의 심사위원이 응모작을 나눠 읽고, 그중 본심에서 논할 만한 작품을 추렸다. 최종적으로 논의된 응모자는 김영옥, 고안나, 조혜은이었다. 김영옥의 ‘인간 모루, 깜씨’는 ‘깜씨’라는 인물의 형상화가 돋보였다. 그러나 ‘깜씨’라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인물이 화자의 자기중심적 서술 때문에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아버지의 신용카드 / 곽흥렬 - 2020년 경제신춘문예 가작

 

  습관은 낯설던 것도 익숙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는가보다.

  이십여 년쯤 전의 일이다. ‘신용카드’라는 말이 처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무렵, 카드를 만져보기는커녕 구경조차 하기가 힘이 들었었다. 카드란 것이 마치 무슨 특권을 부여받은 특정계층의 사람들이나 사용하는 물건인 줄 알던 때였다. 이를테면 지금으로부터 불과 이삼 십여 년 전 자가용이 보편화 되지 않았을 시절,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검은색 세단을 보면 우리 같은 샐러리맨들과는 상관없는 별세상의 사람들만 소유하는 물건인 양 생각되던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나 할까.

 ​  어쨌든 자가용은 보통사람들로서는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엄청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언제 저런 걸 한 번 가져 보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요 막연한 동경의 상징물일 뿐이었다. 아니,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허황한 망상 같았다. 하지만 그 꿈만 같았던 자동차를 이제 용기만 내면 가질 수 있게 된 것처럼,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신용카드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신용카드가 사람들의 평등지수를 끌어올리는 데 톡톡히 한몫을 한 셈이다.

 ​  요즘 세상에 신용카드 한두 장 갖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내남없이 지갑 속 깊숙한 곳에 예쁘게 디자인이 된 신용카드가 신줏단지처럼 모셔져 있다. 물론 카드회사들의 과열경쟁으로 말미암아 애초 발급받아서는 아니 되는 미성년자들이나 신용불량자들까지 카드를 소지하여 말썽을 일으키는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이것이 카드가 통용됨으로 해서 얻어지는 순기능에 비하면 그다지 큰 문제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  세상만사 그 무엇이든 빛과 그림자는 항상 공존하게 마련이어서, 카드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얼마간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하여 그 심각성 운운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격이 된다. 인간사에는 완벽하게 긍정적인 면만 가진 것도 없으며, 그렇다고 완벽하게 부정적인 면만 지닌 것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좋은 선약일지라도 거기에는 필시 부작용이 있으며, 설사 비상(砒霜) 같은 극약일지라도 극미량으로 적절히 사용하기만 한다면 고질병의 치료에 특효약이 되기도 한다.

 신용카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일상생활에 더없이 편리한 이 신용카드도 제 분수를 모르는 무절제한 사용으로 인해 작게는 한 개인 또는 가정의 파탄을 불러오고, 크게는 국가 경제를 좀 먹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에 반해 절도 있는 알뜰한 사용은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고 갖가지 편리함과 이득을 선사해 준다. 지갑 속에 항시 두툼하게 현금을 보관하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운 상황에 비해 간편하기가 그만이고, 예기치 않게 급전이 필요한 경우가 생겼을 때 지갑의 두께가 얇아도 낭패감을 느끼지 않아 보디가드를 둔 것처럼 든든하다. 거기다가 요즘처럼 온갖 범죄가 득시글거리는 어수선한 세상에서 현금을 소매치기 당할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은 또 얼마나 마음 푸근한 보너스인가.

 

 ​  소매치기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어김없이 시골집에 홀로 계신 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소싯적부터 줄곧 시골서 살아오신 까닭에 도시의 물정에 어두웠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 출타를 해도 안주머니 간수에 그다지 신경을 쓰시지 않는 편이다. 덕분에 이따금 친지의 예식이 있거나 아들집에 방문하는 따위의 일로 도시에 나와서는, 붐비는 버스 간에서 양복 안주머니를 털리는 일이 여러 차례였다.

 ​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그러니까 내가 열두어 살 초등학생 시절에 벌어졌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때 아버지는 황소 몇 마리를 사 키우기 위해 대구 사는 막내고모 댁에 돈을 빌리러 가신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도 오래 전의 일이라 분명치는 않지만,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그때 잃어버린 돈이 오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오만 원이란 요즘의 금새로 따지면 꽤나 큰돈이었다. 아마도 오백 만 원 가량은 넉넉히 됨직하다.

 ​  아버지는 필요한 돈을 구해서 서부정류장행 시내버스를 타셨고, 그 안에서 그만 소매치기를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런 사실을 당신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까마득히 모르고 계셨던 것 같다. 어머니가 겉옷을 받아 걸면서 양복 안주머니에 난 면도칼 자국을 확인하고 거의 실신할 지경으로 놀라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물론 떠나기 전에 어머니는 도시 나가거든 어떻든지 주머니 조심해서 택시를 타고 다니라며 신신당부를 잊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쌀에 뉘처럼 귀하던 택시 삯이 당신 생각으로는 심히 부담스러웠던 게 틀림없다. 쪼들린 집안 형편을 먼저 생각하셨을 아버지였다. 그래서 당신 자신만 믿고 ‘뭐 어떻기야 하려고’ 이러면서 태연스레 버스로 귀가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만 주머니를 털리고 만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한동안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말문을 닫아버렸다. 식음을 전폐하고 구들목에 드러누워 누구와도 접촉을 끊었다. 어머니는 잃어버린 돈은 고사하고 저러다가 사람까지 버리겠다며 아버지를 붙들고 통사정을 했다. “그 돈 잃어버린 사람은 발 뻗고 자도 훔쳐간 놈은 발 뻗고 못 자니 그만 잊어 버립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간곡한 설득에 근 열흘 만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며 잃었던 의욕을 되찾아 갔다. 아버지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오는 데는 하 많은 세월의 약이 필요했다. 이제는 옛이야기 삼아 담담히 꺼내 놓으실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도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때 신용카드란 것이 있었더라면 아버지는 분명 그날의 참담한 낭패는 당하지 않으셨을 게다. 빌린 돈을 가까운 은행에 입금시켜 놓고 집으로 돌아와 얼마든지 안전하게 찾아 쓸 수 있었을 일이 아닌가.

 ​  한 집에 한 집 꼴로 전화가 널리 보급된 십여 년 전, 실로 전화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만 같이 우리는 생활의 편리를 누렸다. 몇 날 며칠씩 걸리는 편지 대신 단 몇 분 만에 이런저런 소식을 전할 수 있으니 여간 신통방통한 물건이 아니었다.

 ​  그 무렵 하나둘 휴대전화란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지난날의 자가용처럼 강한 호기심은 두면서도 선뜻 가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시 금액으로 몇 백만 원 하던 휴대전화가 서민들에게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조금씩 보급이 늘어나면서 단가가 낮아지자 너도나도 휴대전화를 가지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이렇게 된 것이 불과 몇 십 년 안짝의 일이다.

 ​  일전에 어느 일간지에서 이 땅의 휴대전화 보급률이 벌써 오천만 대를 넘어섰다는 통계자료를 얼핏 본 적이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노인, 학생, 주부들까지 휴대전화의 편리함을 만끽하고 있다고 했다. 일반전화가 처음 보편화되었을 때 전화 없이는 살지 못할 것 같았는데, 이제 휴대전화 없이는 하루도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말하자면 생활필수품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셈이다.

 신용카드 역시 거기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만일 어떤 힘센 권력자가 나서서 지금 당장 우리가 소지한 신용카드를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회수해 버리겠다고 을러댄다면, 사람들은 우리더러 원시시대로 돌아가라는 말이냐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설 것이 뻔하다. 신용카드는 그만큼 우리들 생활의 필수소지품으로 자리 잡았다. 아니, 현대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분신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옳을 것 같다. 신용사회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이 아닌가. 이러한 세상의 건설에 신용카드는 그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물론 세상에는 신용카드로 해서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경우가 심심찮게 인구에 회자된다.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무조건 쓰고 보자는 식의 막무가내식 소비는, 활발히 꽃을 피우고 있는 신용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다. 그러나 앞서도 잠깐 짚고 넘어간 이야기이긴 하지만 세상만사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 그림자도 있게 마련인 법, 신용카드라고 해서 빛만 있고 그림자가 없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럴 경우 설사 그 그림자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 농도를 보다 엷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게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밝은 빛을 더욱 밝히려는 우리의 각오 하나에 달렸다. 각자 지갑에서 뽑아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알뜰하게 관리만 한다면 신용카드만큼 간편하고 쓰임새 있는 물건도 다시없을 듯하다. 자동차며 휴대전화가 비록 아무리 편리하다 해도 때로는 불편함도 그에 못지않다. 자동차는 어쩌다 고장이 나거나 만에 하나 불의의 사고라도 일어나는 날이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고, 휴대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불필요한 광고성 전화에 오히려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 비해 신용카드는 자기만 살뜰하고 계획적이면 이런저런 성가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 자동차며 휴대전화 따위에 비길 바가 아니다.

  얼마 전, 나는 가까운 은행에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당신 명의의 신용카드 한 장을 만들었다. 팔십 줄을 넘어선 노인이기에 여러 장의 카드는 번거로울 것 같아 딱 한 장만 마련해 드렸다. 아버지는 병원에 가실 때나 뭘 사 드시고 싶거나 하는 일로 지출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신용카드를 사용하신다. 그러면서 “이 편리한 걸 왜 진작 쓸 줄 몰랐을꼬?”라며 어느새 신용카드 예찬론자가 되셨다.

 ​  내 지갑 속에도 석 장의 신용카드가 신줏단지처럼 모셔져 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숫자다. 오천 원 이상을 결제해야 할 때면 언제나 신용카드를 내민다. 나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 경제를 투명하게 한다는 나름의 자부심도 은연중에 작용하고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알뜰하게 쓰자’, 이 한마디를 늘 마음속 깊이 돋을새김으로 새겨 넣고서.

 

[수상소감]

동지가 지난 다음날 걸려온 수상 소식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민족의 4대 명절 가운데 하나로 이 땅의 백성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 온 세시풍속임에도 한 해 두 해 나이테가 감겨 갈수록 밤의 기운이 가장 승한 이 절기가 점점 싫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 댓바람에 받은 수상 소식이기에 차츰 길어질 낮만큼이나 반갑고 설레었습니다. 하필이면 이제부터 차츰 낮이 길어지면서 양이 승해 가기 시작한 날 수상 소식까지 듣게 되니 시너지 효과를 가져와 가슴이 희열로 차오릅니다.​처음 경제신춘문예 공모 소식을 접했을 때 참 의미 있는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서적 가치가 생명인 문학이 실용적 가치를 생명으로 하는 경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고민하게 만드는 머니투데이 공모전이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문학과 경제, 어쩌면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전혀 낯설어 보이는 두 가치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문학의 경제화 혹은 경제의 문학화라는 명제가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유익하게 만들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져 봅니다.​문학이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 주신 머니투데이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글에 힘을 실어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도 고개 숙여 감사 인사 올립니다. 앞으로 실생활의 작은 부분에서라도 문학을 어떻게 하면 경제 활동에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심사평]

​일반문예에 출품해도 뛰어난 작품…한편의 단편영화 보는 듯​머니투데이가 우리나라 최초로 경제신춘문예를 시작한 지 15년이 됐다. 초기엔 출품작이 많지 않아 당선 작품도 일반문예와 조금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에 대한 문예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작품의 응모수나 당선작 수준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산문 부문은 소설과 수필(수기)를 구분해 최종 심사 대상 작품을 뽑았다. 먼저 소설에서는 ‘여왕개미의 하루’, ‘디트로이트에서 길을 묻다’, ‘점 선 면’ 3편을 골랐다. ‘여왕개미의 하루’는 증권에 매달려 사는 한 개인의 모습을 그렸지만,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지나친 설정에 의한 작위성 때문에 일찍이 배제됐다. ‘디트로이트에서 길을 묻다’는 국내에서 문을 닫은 자동차 회사의 중견 간부가 거래처의 지인을 따라 디트로이트로 진출하지만 그곳에서 역시 일이 여의치 않아 국제미아처럼 주저앉게 되는 이야기인데 전체적으로 미숙하고 시간상 흐름을 잘 파악해 나가기 어렵다.​대상으로 뽑은 ‘점 선 면’은 점으로 표시되는 일반회사원과 선으로 표시되는 기업 소유주 사이의 서로 다른 생각을 갈등의 대결이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할 것이 많은 우화 형식으로 아주 잘 그려냈다. 특히나 결말에 이르러 많은 점들이 모여 선을 만들어내 면을 만들어 보여주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경제문예가 아니라 일반문예에 출품해도 단연 뛰어나 보이는 작품이다.​수필과 수기 부문에서는 ‘나를 바꾼 한 마디, 통장잔고 0원에서 경제멘토로!, ‘나의 경제교육’, ‘아버지의 신용카드’가 결선에 올라왔다. ‘나를 바꾼 한마디’는 돈이 들어올 때마다 써버리는 주인공이 ‘통장 쪼개기’를 통해 자신과 동생이 함께 계획성 있는 소비를 통해 저금의 즐거움을 아는 이야기인데 공감 면에서 조금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나의 경제교육’은 경제 전문연구원의 강연내용을 압축해 잘 정리한 글이지만 문예적 측면의 감동이 덜하다. ​가작으로 뽑은 ‘아버지의 신용카드’는 예전에 목돈을 들고 버스를 탔다가 소매치기 당한 아버지가 실의에 빠졌다가 다시 일어난 일에서부터 그런 아버지가 신용카드 사용법을 배워 이용하는 일상의 이야기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잔잔하게 그려졌다. ​시 부문의 응모작품 양이나 수준은 예년과 비슷했다. 올해는 특히 감각적인 시들이 많아 흥미를 더했다. 종종 예년에 이미 출품해 최종심까지 올랐다가 낙선한 작품으로 계속 도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작품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게 더 빠를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양파꽃 지폐’, ‘바다의 옆방’, ‘아침을 갈아타다’, ‘춘자’ 등 4편이었다. ‘춘자’는 상상력이 좋고 시적 구조 또한 탄탄했으나 동반 작품들이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다. ‘아침을 갈아타다’는 시는 아주 감각적이고 섬세한 표현들이 눈길을 끌었다. 문장력도 뛰어났으나 주제를 더욱 살려내기 위해 분산보다는 집중이 더 필요해 보여 다음 기회를 보기로 했다. ‘바다의 옆방’은 동해 구룡포항 어느 바닷가 횟집을 운영하는 어머니가 거동을 못 하는 40대 아들을 보살피는 장면을 손님의 눈으로 별 감정 개입 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냥 무덤덤한 표현이 오히려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무게감이 당선작으로 하기엔 좀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양파꽃 지폐’라는 다소 생경한 제목의 시가 남았다. 무안군 성동리 임금례 할머니 집에 불이 났던 것 같은데, 그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과 동네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한편의 단편영화처럼 리얼하고도 짠하게 그려져 있다. 이 내용이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양파의 알싸한 향 같은 시인의 가슴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다시 갯벌’ 등 동반 작품들도 이 작품을 우수상으로 결정하는데 큰 믿음을 주었다. 입상자들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그리고 응모하신 모든 분들에게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분발과 정진을 당부 드린다.이순원(소설가)·이희주(시인)

 

 

불씨 / 제은숙 - 2020년 전남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장작이 탄다. 불이 붙기 시작하면 확확 타오른다. 마른 나무가 몸을 뒤채며 터지고 끊어진다. 치솟을 땐 다가 갈 수도 없게 뜨거웠던 것이 잦아들면 은은한 열기와 함께 옆자리를 내어준다. 숯불은 불길을 제 속에 불러들여 스스로 발광한다. 온전히 붉은 것이 아니라 노랗거나 빨간 빛이 쉴 새 없이 꿈틀거린다. 심장이 뛰듯 두근대기도 한다.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고 있으면 어디 먼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불기운이 주는 나른함 때문이리라.     어느 가을 우리 가족은 캠핑을 시작했다. 한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줄기차게 짐을 꾸렸다. 소꿉놀이하는 듯한 기분도 좋았지만 밤이 이슥하도록 화롯불 옆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즐거움이 그만이었다. 아울러 불향이 밴 고기까지 먹으니 캠핑의 진수를 맛 본 것 같았다. 내가 불을 지핀 날이 있다. 대중없이 던져 넣었더니 불길은 날름거리며 서너 시간 만에 장작 한 꾸러미를 삼켜 버렸다. 나무가 그렇게 빨리 타는 줄 알지 못했다. 내가 어릴 적 어머니는 그 많은 땔감을 어떻게 구했을까.

 

 ​  나를 낳고 일주일 되던 날에도 어머니는 나무하러 갔다고 한다. 고등어잡이 배를 탔던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나는 가끔 아이를 키우는 내 일상에 어머니를 비추어 본다. 외롭게 해산하던 날의 쓸쓸한 마당과 집안일 농사일에 하루가 빠듯했던 나날들이 겹쳐진다. 주어진 일이 형벌인 듯 당신의 의지로는 끝낼 수 없었던 삶이었다. 하지만 땔감을 구하던 모습은 떠올리지 못한다. 지금의 생활과 동떨어져 아득하고 그 시절엔 누구나 그렇게 살았던 것이라고 흘려버린다.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기엔 내 속을 흐르는 강이 너무 얕다고 자책한다.

 ​  불길을 따라 옛집 부엌에 들어선다. 겨울 저녁, 비가 내리고 있다. 눅눅해진 솔가리를 잡히는 대로 아궁이에 집어넣고 후우후우 불며 불을 살리고 있는 어머니. 연기에 기침을 해댄다. 궂은일에 가꾸지 못한 손등은 갈라져 있다. 비 오는 날은 더 빨리 추워지는 법이어서 마음이 바쁘다. 급하게 차려낸 늦은 밥상에 어린 삼남매와 어머니가 둘러앉는다. 찬밥 한 덩이에 목이 멘다. 저녁이 내려앉은 얼굴은 아침의 어머니보다 더 늙어 보인다. 어머니는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것은 잠이라기보다 차라리 하루가 사그라지는 의식에 가깝다. 내일이면 다시 불씨를 살려야 한다.

 언제나 땔감은 어머니 몫이었다. 삭정이나 팔뚝 굵기의 나무를 모아서 이고 왔다. 굵은 것은 못하니 산에 자주 가야 했다. 해 온 나무는 마당에 풀어놓고 손도끼로 자른다. 이 또한 어머니 일이다. 바싹 마른 솔가리는 갈퀴로 긁어 지게에 져 날랐다. 싹싹 긁는 소리가 재미있어 나도 해 본 적이 있다. 갈퀴를 만져보지 못하는 날에는 고사리손으로 한 움큼 쥐다가 솔잎 끝에 찔리기도 했다. 솔가리는 불쏘시개로 썼는데 화르르 타고는 금세 사라졌다. 나무하는 것은 고되지만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다녀가신 날에야 어머니는 땔감 걱정을 잠시 접어둔다.

 

  어머니는 나무하러 갈 때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내가 따라 다니기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가자고 했던 적이 많다. 저녁답에 서둘러 한 짐 이고 올 때는 컴컴해지는 산이 무서웠다. 어슴푸레한 나무 그림자에 놀라 운 적도 있다. 어머니도 무서워했는지는 모르겠다. 일찍 결혼한 어머니는 내가 한참 클 때까지 이십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냥 어리고 예쁠 나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를 메우느라 한 번도 그 나이로 살지 못했다. 그 생각을 하니 울컥 가슴 안이 뜨거워진다.

 ​  바닷바람이 무시로 불어오는 언덕 위에 살았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과 돌담이 둘러쳐진 위태로운 집이었다. 바람이 거세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파도에 쓸리는 몽돌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창호지를 바른 방문은 허술했으며 외풍이 심해 코가 시렸다. 그런데도 방바닥은 뜨끈했고 늘 따뜻한 물에 씻었다. 시금치를 데친 물에 세수하고 군불 넣을 때 끓인 물로 차례차례 목욕을 했다. 불길은 밤새 방고래를 지나갔고 부엌은 냇내로 훈기가 돌았다.

 아궁이는 겨우내 타올랐다. 어머니는 밥을 짓고 남은 숯불에 생선을 구워 상에 올렸다. 객지에 있는 아버지의 고봉밥은 아랫목에 묻어 두었다. 부엌 한편에는 자식들 입에 들어갈 끼니만큼 땔감이 쌓인다. 밤새 방을 덥힐 온기도 쟁여 놓는다. 어머니는 하루하루 되살아나는 불씨였고 우리 삼남매의 입은 아궁이였다. 계속 채우고 지피지 않으면 식어버리는 어둠이었다. 그것을 덥히는 일은 힘들고 때로는 무서웠겠으나 어머니는 기어코 불꽃을 피워냈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일이 어머니 삶의 전부였던 까닭이다.

  저녁 아궁이를 떠올리면 어린 시절의 맛이 따라온다. 밥을 지을 때 부뚜막에 앉아서 먹는 콩이나 누룽지는 고소했다. 아버지의 자반고등어도 숯불에 구워 먹으면 달았다. 어쩌다 아버지를 만나는 꿈은 인동 꽃향기처럼 달콤했다. 밤에는 순수한 군불만이 남는다. 어머니는 새벽에도 불씨를 다스려 어린 자식들의 잠을 빈틈없이 다독였다. 어머니가 지핀 불은 자식을 향한 사랑이 되고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되어 피어났다. 그것은 내 유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꽃이었다.

 ​  숯불이 마지막 말을 하는 듯 느리게 깜빡인다. 두근거림이 잦아들면 생을 다할 것이다. 몸을 푼 지 얼마 안 되어 산에 올랐을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어머니도 어려서 모든 것이 서툴고 힘겨웠음을 마흔이 넘어서야 깨닫는다. 철없었던 나의 이십대와 누군가의 목숨을 짊어진 어머니의 그때를 생각한다. 겨울이면 피가 났던 어머니의 손등과 따뜻했던 아랫목, 그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새긴다.

 

 ​  오래 전 어머니의 아궁이는 사그라졌지만 내 안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다. 넘겨받은 그 불씨를 감싸 안는다. 나는 지금 누구의 아랫목에 불꽃을 피우려 하는가.​​

 

[수상소감]

종일 흐리다 기어이 비가 내리던 날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전화기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습니다.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다가도 멍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주위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작품을 보냈으나 덜컥 당선되고 보니 부담감에 걱정이 앞섭니다. 영광의 순간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수필을 배우면서 어머니 품에 안긴 것 같은 푸근함을 느꼈습니다. 삶에 지치고 조급했던 저에게 수필은 여유를 가지라고, 모든 삶에 의미가 있다고 다독여주었습니다. 다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손놓아 버린 시간을 자책하고 있을 때 수필은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더 작은 것과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겨울비가 내렸으니 숲 바닥이 조금 부풀어 오를 것입니다. 지난 가을 내려앉은 망개잎과 으름나무 열매껍질이 부숙될 시간입니다. 구멍이 생긴 자리에 곰팡이가 피고 푹 삭아서 한 덩어리로 뒤섞일 것입니다. 이전의 흔적은 모두 문드러져 흙과 함께 숨쉬는 법을 익히게 될 것입니다. 바닥에 내려앉은 것들이 그보다 낮은 것들을 먹여 살리고 땅속 깊이 스며들면 이른 봄 메마른 산 끝자락에 연분홍 진달래꽃 한 송이가 피어날 것입니다. 저에게 봄은 아직 멀리 있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동안 제 삶도 곰삭기를 고대해 봅니다. 언 땅을 뚫고 나올 연한 목숨의 뿌리에 닿고 싶습니다. 어디서도 당당할 수 있도록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첫 독자가 되어주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부족한 글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고 따끔한 충고도 더해주시는 수필반 선생님과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허점이 많은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항상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응모자 중에서 ‘아, 이것이 문학수필이구나!’ 말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작품 한 작품 살폈다. 수필 장르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쓴 작품이 나타나, 당선작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대부분의 수필가들은 수필은 ‘사실대로 진솔하게 쓰는 글’이라고 믿고 있다. 현대문학 이론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실만을 기록한 것은 문학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된다. 문학은 생각과 느낌을 상상의 힘을 빌려 언어로 표현한 예술인 까닭이다. 문학이 상상의 힘을 빌린다는 말은 ‘허구화’와 같은 뜻으로 이해해도 좋다. 상상과 허구는 손바닥의 앞뒤처럼 한 몸이기 때문이다. 현대수필은 문학수필이어야 한다. 찰스 램적 수필을 쓰자는 말이다. 그 대표적 작법은 ‘삶의 이야기에 빗대는 비유적 작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심에 올라온 네 분의 작품 중에 제은숙 님의 ‘불씨’보였다. 이 분의 작품 중에는 ‘경계’도 있었으나 주제를 잘 살려낸 ‘불씨’를 제1회 당선작으로 뽑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축하를 드리며 앞으로 그 불씨를 잘 살려 수필산문의 창작적 변화에 불을 댕길 것을 기대한다.문학수필(문학에세이)의 시대를 여는데 신춘문예 골드 문학상으로 앞장선 전남매일에 감사드리며, 당선자에게는 건필을 빈다.

 

 

  붉은사슴이 사는 동굴 / 서정애 - 2020 제주보 신춘문예 당선작

 

  붉은 불빛 한 줄기가 게슴츠레 눈을 뜬다. 확대기에 필름을 끼우고 적정 빛을 준 인화지를 바트에 넣고 흔든다. 마지막 수세를 거치면 흑과 백의 피사체가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  액체 속의 인화지를 살짝 흔들어준다. 비로소 필름 속에 갇혀있던 사물이 제 존재를 드러낸다.

  중국 윈난성에는 ‘붉은사슴동굴’이 있다. 동굴 벽면에 붉은사슴이 그려져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만 오천 년 전쯤의 벽화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슴은 큰 뿔을 들이밀며 금방이라도 벽을 박차고 나올 듯 뒷다리를 앙버티고 있다. 빙하기에 살았다는 붉은사슴동굴인은 어떤 연유로 캄캄한 곳에서 벽화를 그렸던 것일까. 주술이나 신앙의 표현이었겠지만 자연의 위대함을 빌려와 자신의 소망을 거기에 투영한 게 아니었을까.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날카로운 돌도끼로 음각을 하며 동물의 윤곽을 그리고 마침내 붉은 안료를 입혀 완성할 때까지.

  네 살 때부터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났다. 객지에서 맞벌이를 했던 젊은 부모님은 나를 돌볼 수가 없었다. 봄가을 추수와 명절에만 왔던 엄마가 떠나고 나면 좁고 어둑신한 다락으로 숨어들었다. 어둠과 햇살이 반반 섞인 천장 낮은 그곳은 나의 유일한 위안처였다. 엄마 보고 싶은 마음을 인형처럼 껴안고 잠이 들었다. 꿈속에선 언제나 엄마가 등을 보이며 떠나고 있었다.

 ​  도시는 유약한 아버지에게 설 자리를 쉬이 내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거리를 찾아 도시 변두리를 헤맬 동안 엄마는 내 키만큼 쟁인 마늘 접을 머리에 이고 나가 난전 한 귀퉁이에 부렸다. 때글때글한 햇볕을 헤진 머릿수건 하나로 받아내며 마늘 접이 줄어들길 기다렸다. 꼬챙이처럼 말라가는 당신 몸에선 늘 마늘냄새가 났다. 네 명의 가족이 살기엔 단칸방은 구겨진 종이상자처럼 좁기만 했다. 젖먹이 동생을 업고 행상을 나선 엄마가 돌아올 때쯤이면 언제나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  문간방, 찌그러진 쪽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었다. 한기 가득한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조막만한 손으로 쌀을 씻고 설거지를 했다. 여름이면 빛이 들지 않아 습기 때문에 늘 축축했으며 몸에는 자꾸 붉은 습진이 생겼다. 나의 유년은 동굴 같은 반 지하에 담겨 흘러갔다.

 ​  나는 동물사진을 즐겨 찍는다. 최대한 근접촬영을 해야 하므로 매번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른다. 언젠가 산 너머 목장에서 탈출한 사슴이 동네 과수원에 내려오기 시작했다. 가족인 듯 네 마리가 무리지어 다니던 그들은 며칠 간격으로 눈에 띄었다. 사슴을 찍으려고 과수원 비알에 숨어 한 나절을 기다렸다. 마침내 녀석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먼 산을 응시하는 눈, 미세한 벌레들의 소리를 감지하려는 듯 쫑긋하게 오므린 귀, 바람의 냄새까지 맡으려는 듯 실룩이는 코, 호흡을 멈추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 카메라에 붙잡혔다 싶은 순간 녀석들은 덤불 저쪽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어릴 때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성장했기 때문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서툴렀다. 외톨이가 된 나는 스스로를 가두었다. 때로는 경계를 넘어 내게로 오는 선의의 사람까지 배척 했다. 세상 사람들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했고 조금이라도 비켜섰다 싶으면 자책하고 불안해했다. 그럴 때 사진이 내게로 왔다. 사진은 양철북의 오스카처럼 제대로 자라지 못한 유년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굴 속에 칩거하고 있는 나를 불러내어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고 토닥여주었다. 오랜 어둠을 뒤로 하고 세상 밖으로 한 발짝 내밀던 날의 그 눈부심을 기억하고 있다.

 ​  창문을 닫고 불을 끄고 커튼을 내리면 암실엔 붉은 불빛만 가늘게 비친다. 붉은 빛은 파장이 길어 인화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암등이라는 그 불빛에만 의지해서 인화작업을 시작한다. 원하는 색감을 얻을 때까지 노광량 조절을 반복한다. 약품 속에서 인화지를 흔들다보면 손가락이 갈라지곤 했다.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물에 투영된 나였고 외부세계와의 소통이었다. 동굴 속에 갇힌 ‘어린 나’를 동굴 밖으로 이끄는 매개체였다.

  언젠가 TV영상을 통해 몽골 흡스굴 호수 근처의 산악에 살고 있는 붉은사슴을 본 적이 있다. 몸무게 사백 킬로그램에 달할 정도로 덩치가 크고 암수가 따로 무리지어 살며 짝짓기 때만 만난다고 한다. 동네에 간간이 내려오던 사슴보다 더 컸다. 해발 삼천 미터의 눈 덮인 산에서 고립을 즐기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붉은사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언젠가 흡스굴을 찾아가 보리라.

 

  사이토 다카시는 혼자일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 시간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정신적인 성장을 가져온다고도 했다. 사진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촘촘히 시간을 채집하며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세계이다. 또한 내가 해석한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강력한 매체이다. 자신과 마주하는 그 순간은 함께 있을 때 깨닫지 못한 내면의 더 큰 나와 만날 수 있었다.

 ​  인간은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온갖 상처를 받으며 성숙해 가는지도 모른다. 장수잠자리가 애벌레에서 몇 번의 탈의를 통해 성충이 되어가는 것처럼. 삶이 마디마다 상처와 지혜가 정교하게 얽혀있는 퍼즐 판이라면 혼자만의 견고한 시간은 그것을 완성해줄 수 있는 열쇠는 아닐는지.

  어느덧 내 어릴 적 엄마의 나이 곱절 가까이 되었다. 자식들에게 아픔을 답습시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르겠다. 직장 일로 소홀히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도 이제 다 내 곁을 떠났다. 딸 둘은 제 삶을 찾아 일찌감치 이국으로 나갔고 아들마저 뒤따라 객지로 갔다. 아이들 셋이 모두 떠난 집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 같다. 적막 속으로 바람소리만 윙윙거린다. 나는 또다시 어둠에 갇힌 걸까. 잠시 밀쳐두었던 카메라를 새로이 꺼내든 것도 그즈음이었다.

 ​  인화된 사진을 집게로 줄에 건다. 가느다란 빛이 허공을 음각한다. 어제 찍은 이슬 접사사진이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같다. 문득 암실 한켠에서 붉은사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저벅저벅 빙하기의 사람이 어둠을 밀치며 걸어 나오고 있다. 시원의 아득한 저 너머에서.​​

 

[당선소감]

누군가의 지나가는 말 한 마디에도 마음이 쉽게 베이거나 구겨지곤 했다.할머니 댁에 어린 나를 맡겨놓고 도회로 나가야했던 엄마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을, 늦깎이 입문한 상담심리학에서 알았다.뒤늦게나마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어머님의 아픈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아이들이 모두 떠난 집엔 어둠이 일찍 찾아온다. 어두컴컴한 현관에 들어서는데 당선을 알리는 전화벨이 울렸다. 어둠을 쓸어내는 빛줄기였다. 백 촉 전등이 환히 켜지는 것 같았다.수필에 대한 외사랑이 없었다면 수년간 고배를 마시면서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봄이면 낡은 타이즈 위로 허연 살비듬이 떨어지던, 마른버짐 핀 일곱 살 상고머리 계집아이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낸다. 웅크리고 있는 내 속의 그 ‘어린 나’에게 손을 내밀고 두 팔로 어깨를 감싸 안아준다. 자라지 못한 ‘그 아이’를 이젠 떠나보낼 수 있지 않을까.부족한 작품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친정어머님께 제일 먼저 당선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기뻤다. 늦은 밤까지 진심어린 합평을 해주신 가족 같은 윤슬 문우들께 감사드린다.습작의 한계에 맞닥뜨릴 때마다 다독이며 일으켜주던 도반인 남편과 지구 반대편에서 응원을 보내주던 두 딸들, 든든한 지원군인 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첫 회 당선작으로 뽑혀 영광이다.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크다. 함축미와 운율이 흐르는 수필을 쓰고 싶다. 문장이 곧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심사평]

1회 수필 신춘문예에 총 300여 편의 작품이 접수되었다. 낙선작들은 대체로 소재 통찰이 미진하고 평범한 구조에 교훈적인 주제를 담는데 머물렀다. 1, 2차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붉은사슴이 사는 동굴>, <>, <돌챙이> 3편이었다. <><돌챙이>는 안정된 문장으로 따뜻한 서정세계를 담아냈으나, 소재에 대한 깊은 철학적 해석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당선작인 <붉은사슴이 사는 동굴>은 이중액자 속에 원시의 동굴 모티프를 작가의 삶의 동굴들과 중첩시켜 다층적으로 구조화하였다. 특히, 붉은사슴을 객관적상관물로 도입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동굴탈출 욕망을 상징화하고, 자신을 동굴 밖 세상으로 이끈 사진작업을 치열한 실존탐구와 깨달음의 방법으로 형상화하였다. 그 상징처리가 압권이다. 결말에서 공감각으로 들려주는 종유석의 물방울과 붉은사슴의 울음소리, 빙하기인들의 발걸음 소리 등도 동굴탈출의 본성을 환기시켜 주는 매력적인 울림장치이다. 소재의 심오한 철학적 통찰과 미적 구조화, 개성 있는 문장력 등은 예술수필이 지녀야 할 핵심 미덕이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당선작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비평은 20203, 수필전문지 『수필오디세이』 창간호에 게재한다. 일독을 권한다. (문학평론가, 안성수)

 

마당도배 / 박노욱 - 2019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필 당선작

 

 

  귀찮기만 했던 마당을 도배하던 일이 그립다. 이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럴까.

  마른 마당은 늘 평온하다. 비가 내리면 사정이 달라진다. 며칠을 마다하지 않는 비나 모다깃비가 쏟아지면 진흙탕이 된다. 비온 후 울퉁불퉁해진 마당을 삽이나 널빤지로 평평하게 고르는 일을 마당도배라고 불렀다. 옛날 마당은 요즘의 아파트 주차장보다는 우리 가족만의 공간인 거실과 더 가까웠다. 거실을 도배하듯 마당도배가 필요한 시절이었다.

  갖가지 이유로 마당은 곰보가 된다. 아이들의 발자국은 나무랄 수 없다. 들일하고 돌아온 삼촌의 리어카 바퀴자국도 어쩔 수 없다. 수탉이 광기를 부린 자리와 강아지나 고양이 발자국까지도 봐 줄 수 있다. 막걸리에 건들 취하신 아버지가 남긴 갈지자 흔적은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고삐를 하지 않은 송아지가 날뛴 자국은 더 깊게 파인다.

  비오는 날 마당은 재미가 쏠쏠하다. 우두커니 쳐다보아야 맛이 더 진하다. 몇 방울 우두둑 떨어지는 빗물에 개구리는 앞발로 세수부터하고 춤을 춘다. 개미한테도 맥을 못 추던 지렁이가 제 세상을 만난듯하다. 두꺼비는 어디에 숨어서 비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논두렁에서나 보던 땅강아지도 가끔 얼굴을 내민다. 이들은 모두 첫 비를 즐기고 사라진다.

  미꾸라지는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활개를 친다. 미꾸라지가 비를 타고 하늘을 오르내리는 줄로 알고 있었을 때다. 빗줄기를 타고 승천을 시도하는 모습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의 천성이다. 마당에서 조금만 나가면 농수로가 있다. 비가 내리면 미꾸라지가 물을 타고 마당으로 올라와 하늘까지 넘보는 것이다.

  비꽃이 피어나면 마당은 바빠진다. 제일 먼저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 뛰쳐나온다. 장독대 뚜껑을 닫고 나물 소쿠리를 처마 밑으로 옮긴다. 어머니의 비설거지가 끝날 때쯤,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챙기는 옆집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모이를 쪼던 닭들도 날개를 털면서 횃대에 오른다. 강아지도 꼬리를 내리고 하늘을 쳐다보며 걱정을 한다. 거름무더기 옆에서 쇠똥을 말던 말똥구리도 자취를 감춘다. 채 다 말지 못한 쇠똥이 풀려 흔적이 사라질 때쯤이면 빗소리만 남는다.

  비오는 날은 성가신 일도 있다. 위채와 아래채를 오르내리는 일이다. 마당을 밟고 다니면 비를 맞고 도배거리도 늘어난다. 아래채 문간방에 거처하는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위채를 오갈 일이 생긴다. 마당 중간에 납작 돌로 된 징검다리가 놓여있지만 폭우가 쏟아지면 무용지물이다. 비를 피하려면 처마 밑을 이용해야 한다. 위채 대청마루를 내려와 부엌 앞에서 아래채 댓돌로 내려선다. 그 부분만큼은 하늘이 뚫어져있어 한 달음에 뛰어야한다. 도장과 뒤주를 지나고, 디딜방앗간과 외양간 앞을 거친다. 소여물솥 아궁이를 넘으면 사랑방 툇마루가 나온다. 무척이나 긴 여정 같지만 눈 감고도 다닐 정도였다.

 

  마당은 많은 일을 감당했다. 보리타작을 하고나면 도리깨가 콩을 두드린다. 벼가 고개를 숙이고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잦아들면 볏짚 낟가리가 쌓여 겨울을 난다. 무와 배추도 마당으로 옮겨진 후에야 김장독에 들어갈 채비를 마친다. 누나가 시집가던 날은 왕겨위에 얹힌 단술 독에서 온종일 가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은 마을 사람들이 밤새도록 장작불을 지폈다.

 마당을 가로 질러 빨랫줄이 있었다. 디딜방앗간 시렁과 반대쪽 돌배나무에 걸린 철사 줄이다. 빨래를 널 때마다 어머니는 녹을 닦아내기 위해 마른 걸레로 빨랫줄을 훔쳤다. 중간쯤 자리한 바지랑대는 빨래를 널고 걷을 때 높이를 조절하고 무게를 견딘다. 아버지의 나뭇짐이 들어오면 어머니가 부엌에서 달려 나와 장대를 들쳐 올린다. 웃음 반 걱정 반이던 어머니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할아버지 제삿날은 대문을 열고 마당을 깨끗이 쓴다. 깜빡하고 빨랫줄을 걷지 않으면 할머니가 서운해 했다.

  게으름을 피워도 상관없다. 아버지나 송아지 발자국은 제때 도배를 못해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땅이 마르면서 자연 도배가 된다. 땅따먹기 놀이판은 지워져도 쉽게 그릴 수 있다. 하지만 구슬치기 구멍 다섯 개는 여간 까다롭지 않다. 내 멋대로 구멍을 파 놓으면 친구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전체적인 방향과 구멍 간 간격과 개별 구멍의 넓이를 꼼꼼히 따져야한다.

  폭우는 마당에 깊은 골을 만든다. 골 따라 모여든 빗물이 바다를 이룬다. 바다에 떠다니던 가랑잎배가 멈추면 십중팔구 대문간 옆 돌담아래 물구멍이 막힌 것이다. 삽이나 물괭이로 물줄기를 뚫어주면 체증이 금방 내려간다. 새마을운동 때 현대식이라고 콘크리트 관을 묻어 만든 골목 하수구가 50여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막히지 않는 게 신기하다. 마당을 지나온 빗물이 바로 땅으로 스며드는 게 아닌가 싶다. 땅은 많은 걸 품어준다.

  마당에는 사연도 많다. 여름날 저녁 할머니 무릎에는 오싹한 이야기가 많았다. 난리를 피해 100여일 피난을 다녀온 후란다. 625일부터 서울수복인 928일 전후쯤일 게다. 잡초가 우거져 밀림인 마당에, 홍시가 떨어져 박힌 게 석류 알 같더란다. 뱀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윗마을 과수원 흙더미 속에서 정체불명의 시체가 나왔는데 우리 집 마당 구석에도 흙더미가 있더란다. 며칠간 속병을 앓다 파 보니 옷가지와 이불이었고, 뒤따르던 피난민이 묻어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은 흙바닥을 깔고 있는 마당을 보기가 어렵다. 그때 면서기를 하던 아저씨 집부터 시작된 콘크리트 포장이 마을에 유행을 불러왔다. 편리한 만큼 운치가 사라졌다. 잘게 부순 자갈이 깔리고, 강변 오리식당은 재첩껍질로 갈아입기도 했다. 잔디가 깔린 별장은 마당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다행히 우리 고향집은 아직까지 흙 마당이 살아있다.

  마당에는 그만큼이나 기억도 넓게 깔려있다. 기어 다니던 시절에 흙을 주어먹고 놀던 마당이고, 다쳐서 생채 기라도 나면 마당 한 구석의 깨끗한 흙을 찾아 발랐다. 오줌을 내갈기다가 삼촌에게 들켜 혼이 난 곳도, 동생과 티격태격하다가 꿇어 앉아 벌을 서던 곳도 눈 쌓인 마당이다. 말더듬이 친구가 발로 땅을 굴리며 학교에 가자고 외치고, 이등병 계급장을 단 첫 휴가 때 큰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던 곳도 마당이다.

  요즘도 가끔 마당도배를 한다. 물론 꿈속에서다. 높은 곳의 흙을 떠서 깊은 데를 메우고, 빗물을 한 삽 끼얹고 도배질을 하면 울퉁불퉁하던 흔적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며칠 햇빛을 받고 바람을 쏘이면 비 온 뒤의 굳은 땅으로 탈바꿈한다. 마음속의 상처도 세월에만 맡기지 말고, 단번에 도배질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비오는 날은 눈을 감는 버릇이 생겼다. 빗소리가 거세질수록 고향 마당은 더 또렷해진다. 아이 하나가 처마 밑에서 쏟아지는 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비가 그치자 제 키만한 삽자루를 들고 마당도배에 열중이다. 이윽고 구름 속에 있던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당에서 온기가 피어오른다.​​

 

[심사평]

  전국에서 61(126)이 응모했다. 이 중에서 3편을 골랐다.   ‘렉스씨와 함께 춤을’은 ‘렉스’라는 차를 의인화 시켜 마치 반려인양 서로 보듬으며 학원을 운영해가는 이야기로, 외롭고 슬프고 아플 때 차안에서 노래를 부를 때면 꿀렁꿀렁 춤을 춰주는 렉스와 평생을 같이 하겠다는 내용이다.   ‘푸른 수의’는 어머니 생존 시 당신이 손수 마련해놓았다는 수의가 불현듯 생각나 빈 시골집으로 달려가 창고 다락에 있다는 수의함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모본단으로 지은 푸른색의 치마저고리가 아닌가. 이는 자식이 첫 취직해서 어머니께 해드린 옷감으로 자식이 해줘야 할 걸 대신 마련했을 거라는 생각에 오열한다는 내용이다.   ‘마당도배’는 비온 후 울퉁불퉁해진 마당을 삽이나 널빤지로 평평하게 고르는 일로, 비온 뒤의 갖가지 사연으로 패인 마당을 도배한다는 내용이다.   색의 삼베수의가 아니고 모본단으로 된 푸른색의 치마저고리라는 점 그리고 방과 벽이 아니라 마당을 도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다른 작품들을 견주어보았다. 그런데 ‘푸른 수의’를 쓴 최상근 씨의 다른 작품 ‘화()’는 수막새의 전설을 소개한듯하고 그 과정에서 허구(虛構)를 느낀 반면, ‘마당도배’를 쓴 박노욱 씨의 다른 작품인 ‘숨’은, 현재의 아파트 공용화단을 만들고 돌보는 갖가지 일을 재치 있는 유머를 섞어 실감나게 피력하고 있다. 하여 박노욱 씨의 ‘마당도배’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수준 있는 작품들이 많아 흐뭇했다.

 

 

 

 

 

 

 

 


감사합니다. 2020년 신춘문예 당선 수필 모음을 경주수필 문학회까페에서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