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20. 2. 15. 10:13

한 개인의 영화사

                                                                              한성덕

 

 

 

  나의 첫 영화감상은 중학생 때였다우리 동네 초등학교운동장에 가설극장이 들어섰다. 지금도 ‘김희갑의 청춘고백’(1964)이라는 제목이 생생하다. 기억되는 명장면(?), 들판에서 벌어지는 대변사건이다. 참다 참다 도무지 참을 수 없어 변을 보는 장면에서, 김희갑 만의 특유하고 어눌한 몸놀림이 연출되었다. 눈은 껌벅껌벅, 카이젤 수염은 실룩샐룩, 마음은 안절부절, 눈치를 보느라고 앉았다 섰다하며 둘레둘레 사방팔방을 살피는데서 폭소가 터졌다.  

  그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는 학교강당에서, 고등학생 때는 심심찮게 극장에서 단체관람을 했다. 그것으로 양이 덜 차 친구들과 함께 몰래 극장으로 숨어들었다가 들켰다. 오전 내내 교무실 앞 복도에서 손들고 있었으니 단단한 기합이었다. 한 때 영화배우가 되려고 했던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배우나 연출가의 자질은 세 번의 시연에서 빛났다. 한 번은 울릉도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탐라에 들어가 6개월가량 있었다. 교회 중고등부 십여 명을 데리고 3개월 동안 연극을 준비했다. 손수 시나리오를 작성해서 연출과 형사부장 역까지 소화했다. 주기철 목사님의 생애를 담은 1시간 10분짜리 연극이었다. 150여 명의 교인들이 눈물을 쏟아내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대 성황리에 마쳤다.  

 총신대학교 재학생 시절이다. 일 년에 두 번(봄 소풍과 축제) 실시하는 반별 촌극대회에서 연출을 맡았다. 10분 이내의 촌극에서 얼마나 웃겼던지, 심사하는 교수님들도 웃음이 터져 어쩔 줄 몰라 하셨다. 그 바람에 번번이 1등이었다. 이때, ‘배우가 되든지 연출가가 되라’는 충고를 많이 받았다. 그래도 일편단심 목회자의 길을 추구했다. 이제는 틈틈이 아내와 함께 영화를 즐긴다.

  대학동아리 학회에서 무주로 수련회를 갔었다. 무주읍내 교회에서 ‘돌아온 탕자’로 30분짜리 극을 무대에 올렸다. 그때에도 연출과 아버지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비록 짧고 보잘 것 없어도 내 개인의 영화사다.

  어느 누구든지 개인의 영화사가 있기 마련이다. 봉준호 감독을 보면서 그 영광에 탄복했다. 이보다 더 값진 게 어디 있겠는가? 허나 그 뒤안길에서는 눈물 젖은 빵이 많았을 터, 공감하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작게 시작했을 개인의 영화사가, 대한민국 영화의 역사를 바꾸었으니 그것은 대사건이다. 그 어떤 수식어가 필요할까? 대관식(戴冠式)만큼이나 화려하고 위대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말과 글이 찬사를 쏟아내며 봉 감독을 칭찬했다. 한 자 한 자 열거하면 지구를 몇 바퀴쯤 돌 듯하다. 미력한 나까지 그럴 거 있나 싶어서 개인의 영화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역사의 탄생소식이 들린다. 거액의 돈과 명예와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다. 자신의 품격도, 대한민국의 국격도, 그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할 만큼 존재감이 도드라졌다.

 

  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빈부차가 심하다. 개봉초기에 ‘기생충’을 감상하면서 그 간격을 걷어내자는 소리로 들었다. 물론 간단치는 않지만 해야 한다. 이번 수상으로 탄력을 받았으면 좋겠다. 전 세계인들도 영화를 통해서 공감대를 이루었다. 결국은 기생충이 가슴을 파고들어 그 어렵다는 아카데미상을 4개나 휩쓴 게 아닌가? 지난 9, 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수상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빛날 국보급 영광이다.  

  인생 선배랍시고 잔소리한다며, 입을 삐쭉빼쭉 하는 것 같아 주뼛거리면서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자칫, 높은 자리에 오르면 순수함이 두리뭉실하다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만과 독선, 오만과 욕심, 교만과 난체’가 차지한다. 고로 이 ‘3 만’을 삼가 조심하고, ‘초심을 잃지 마시라’ 권하고 싶다. 자랑삼아 한 내 작은 영화사도 오래 남거늘, 봉준호 감독의 영화사야말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2020. 2. 14. )


옛날일들 기억에 다시살아나는 계기가되는 친구의글 참 감명을 받았고 나이들어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