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20. 4. 8. 06:22

손편지 / 정근식

 

 

 

  아내에게 손편지를 쓴다. 말로서 하지 못하는 마음을 전한다. 어른에게 무슨 손편지냐고 하겠지만, 애정 표현이 서툰 내게 손편지는 마음을 전달하는 중요한 끈이다. 손편지는 입으로 전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할 수 있어 좋다.

 처음 아내에게 손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 일 년쯤 지날 무렵이었다. 부모님 댁을 다녀오면 자주 말다툼을 했다. 서로에게 불만이 있었다. 아내는 부모님께 잘 한다고 하는데 매번 잔소리를 한다고 불만이고, 나는 아내의 행동에 불만이 있었다. 심하게 말다툼을 한 어느 날, 늦은 시간에 손편지를 썼다. 마음 편하게 생각나는 대로 아내의 고마움과 내 바람을 적어 싱크대 위에 두고 잠을 잤다. 아내가 손편지를 읽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손편지를 쓴 다음 주말에 부모님 댁에 일을 도우러 갔는데 아내는 내가 불만을 가졌던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 뒤부터 아내뿐만 아니라 가끔 아이들에게 손편지를 쓰곤 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로, 요즘엔 큰아이의 직장으로 손편지를 보낸다.

 나는 손편지 마니아다. 자녀나 부부관계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손편지로 풀어보라고 권한다. 손편지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던 관심 사병이 엄마의 손편지 한 통 덕분에 건강히 병역의무를 마치기도 하고, 손편지 한 통으로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얼마 전, 지인에게 손편지를 권했다. 식사자리였는데 옆자리에 앉은 그녀와 자녀 이야기가 나왔다. 서로 아이가 셋이라서인지 동질감이 있어 대화가 잘 풀렸다. 그녀는 둘째아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심리상담사도 아닌 내가 상담하기에는 어려운 숙제였지만, 내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손편지를 권했다.  

 그녀의 둘째아이는 어린 시절 남들보다 뛰어나 기대를 많이 했는데, 요즘엔 대화조차 안한다고 한다. 눈길조차 맞추지 못하고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자녀에 대한 기대가 많았는데 자녀의 나쁜 행동으로 실망한 이유였다. 십년 가까이 서먹한 생활을 하다 보니 요즘엔 아이에게 애정표현조차 하지 못하겠다며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빠하고는 사이가 좋아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다고 한다. 첫째는 처음이라 사랑을 많이 했고, 셋째는 막내라서 사랑을 많이 주었지만, 둘째에게 사랑을 쏟은 시간이 적었다고 느꼈다.

 그녀는 둘째아이와도 잘 지내고 싶은데 수 년 동안 대화가 부족해서인지 둘째가 부담스럽다고 한다. 둘째아이의 방에 몇 년 동안이나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이가,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만 하니, 자꾸 정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는 핏줄로 이어진 특수한 관계이다. 조금 실수하고 지나쳐도 용서가 되는 관계이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임은 분명하다. 간혹 자신의 아들이나 배우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본다. 내가 낳은 아이니까. 나와 함께 사는 배우자니까.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내가 낳은 아이도, 함께 사는 배우자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다. 내 아이와 배우자도 친구를 사귈 때처럼 잘 해주는 만큼 대우를 받는 것이다. 물론 가족이라는 울타리라서 조금 부족하거나 넘쳐도 용서가 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임은 분명하다.

 명절 때 혼자 사시는 독거 어르신이 방송에 가끔 나온다.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다. 자녀는 명절뿐만 아니라 생신에도 부모를 찾지 않는다. 자녀만을 탓할 수는 없다. 자녀와 사이가 멀어진 이유가 본인의 잘못이 더 있을 것이다.

 나는 자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를 그녀 탓이라고 했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아빠와 딸의 관계보다 더 돈독하다. 아이가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관심을 받기 위한 행동일 수 있음을 설명했다. 모든 것이 엄마인 당신 탓이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물을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손편지를 권했다. 솔직한 엄마의 마음을 전달하면 잘 풀릴 것이라 격려하며 손편지를 권했다. 그녀는 주말에 둘째아이를 만나 손편지는 아니지만 카톡으로 아이에게 안부를 묻고 봉투에 용돈까지 넣어 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아이는 반가워하며 이번 시험에 영어성적이 높은 점수가 나왔다며 자랑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잘 했다고 칭찬을 하며 계속 소통을 위해 노력하라는 격려를 했다. 혹시 가족이나 친구와 서먹한 관계가 되었다면 마음을 담아 손편지를 써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