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20. 5. 12. 18:33

5월은 사랑의 계절

 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최 상 섭

 

 

 

 어제 길을 걷다가 문득 흰 이빨을 내놓고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아카시꽃을 보았다. 어찌나 반갑던지 “어어, 저기 아카시꽃이 만개했네!”하고 소리쳤다. 어디 그뿐인가? 꾀꼬리가 날아와 예쁜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그 숲속에서 꾀꼬르 꾀꼬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향이 진동하는 *미스김 라일락 화분을 사무실에 가져다 놓았다가 퇴근할 때는 다시 밖에 내놓는다. 금년에는 참 잘 자라고 꽃을 많이 피워서 첫사랑 시절에 느꼈던 향이 진동한다. 나는 꽃 중에서도 5월의 여왕인 라일락꽃을 좋아한다. 꽃도 예쁘거니와 그녀의 향이 진동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가을에 있을 전시회를 대비해서 분경과 꽃 화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분경과 꽃 화분을 만드는 시간은 무아지경에 빠진다. 정신 집중이 그렇게 잘되고 내게는 최고의 행복한 시간이다.

 

 신록의 계절 5,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졸졸졸 시원한 물소리며 산들바람 스치는 이마에는 잔주름이 몇 개 서려 있어도 그냥 좋고, 외마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파란 하늘이 턱없이 밉다. 5월은 젊은이들에게는 결혼의 시즌이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들어 있어 가장 친근감을 주는 달이다. 그래서 5월의 별자리는 백양 자리이다. 5월의 양자리는 인내를 요구한다. 기다림의 미덕이 필요한 때라는 뜻이다. 타고난 내면의 순수함에 집중하고 여유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나면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한 중대한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 백양 자리라고 한다.

 

 이렇게 좋은 시절에는 사랑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내 인생의 계절은 어디쯤 흘러가고 있을까? 참 부질없는 생각이다. 봄도 여름도 훌쩍 지나버린 인생의 늦가을에 주책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뿐이다. 그래서 주말이면 역마 끼가 많은 나는 이 친구 저 친구 모아서 외지에 나가 식사와 문화탐방을 한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라는 슬로건은 옛말이고 삼식이 친구들 몇 명과는 주례행사가 되어버렸다. 인생의 겨울로 다가가는 우리 처지에 이것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서로 살기 바빠 잠시 만났다가 헤어진 후로 이렇게 긴 세월이 될 줄을 몰랐는데 그동안 다하지 못한 이야기보따리가 얼마나 많은지 만나면 만날수록 새록새록 정이 들고 조금 더 일찍 시작할 것을 하는 후회가 인다. 조금 더 저무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아직도 건강한 목소리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고맙고 반갑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직도 18세 소년의 풋풋함이 넘치고 학창 시절의 흥겨운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누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고 저축해 둔다 했는가? 황혼 역이 가까워지는 친구들! 그래도 역전의 용사답게 삶의 풍성한 소재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안타까운 순간도 잘 이기고 헤쳐나온 우리, 이제는 즐길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5월에는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위해 씨를 뿌려야 한다. 나는 어제 고추모 한 판을 사다가 여기저기 두럭을 만들고 비닐을 친 다음 정성스럽게 심고 물을 흡족하게 주었다. 작년에 오이고추를 심어 같이 근무하는 40여 분의 직원들에게 한 봉지씩 따서 준 기억 때문이다. 돈으로 치면 몇 푼 안 되는 것이지만 무농약의 크고 싱싱한 고추보다 정성이라는 마음이 더해서다. 벌써 무논에는 모를 심는 이양기 소리가 정겹고, 근방은 연초록의 들녘으로 변한다. 겨우내 인고하며 빙점에서 은근과 끈기로 이겨낸 마늘을 수확할 땐 참으로 뿌듯하다. 이 마늘을 팔아서 큰아들 양복 한 벌 사주고 고생으로 짠지가 되어버린 아내를 단풍놀이도 보내주어야겠다.

 

 이렇게 모든 것이 풍성하고 초록으로 가득한 호시절에는 온몸으로 사랑을 나누고,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 내 사랑을 라일락 향기로 꽃을 피우고 싶다.

                                                                      (2020. 5. 12.)

 

 * 미스김 라일락 : 미스김 라일락은 수수꽃다리속에 속하는 식물이다. 꽃봉오리가 맺힐 때는 진보라색, 점점 라벤다색으로 변하며 만개 시에는 하얀색으로 변하고 매혹적인 향을 낸다. 혹한 지방에서도 잘 견딘다.

 한국의 군정기인 1947년에 캠프 잭슨에 근무하던 미국 군정청 소속 식물채집가 엘윈 M. 미더(Elwin M. Meader)가 북한산국립공원내 도봉산에서 자라고 있던 털개회나무의 종자를 채취,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해서 ‘미스김 라일락(Miss Kim Lilac, Syringa patula "Miss Kim")’이라는 품종을 만들었고, 당시 식물자료 정리를 도왔던 한국인 타이피스트 미스 김의 성을 따서 붙였으며, 1970년대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가정용 관상식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