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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0. 8. 5. 07:09

그날의 함성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운일암반일암’ 雲日巖半日巖 이름만 들어도 설렌다. 우리 고장 진안고원에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馬耳山)’이 있고, 바다 같은 ‘용담호’가 있다. 여기에 산과 천을 다 갖춘 천혜의 요새 같은 ‘운일암반일암’이 있으니 진안의 3대 관광명소이자 나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운일암반일암’만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관광명소가 어디에 또 있을까?

‘운일암반일암’은 운장산(雲長山 1,125m) 줄기, 명덕봉과 명도봉사이 약 5km에 이르는 ‘주자천’ 계곡을 일컫는다. 계곡 양 옆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오로지 하늘과 돌과 나무와 오가는 구름뿐이어서 ‘운일암’이라 부르기도 하고, 깊은 계곡이라 하루 동안 햇빛을 반나절밖에 볼 수가 없기에 ‘반일암’이라 부르기도 하여 두 이름이 힙쳐져 하나가 되었다.

 

‘1970년도 대학교 신입생 때였다. 친구들과 함께 배낭을 메고 이곳으로 피서를 갔었다. 계곡 상류에 텐트를 치고 코펠과 버너를 꺼내어 밥도 지어 먹었다. 저녁이 되자 반주로 시작한 술은 잔이 돌아가며 한 곡씩 노래도 불렀다. 미리 준비한 나뭇가지 더미에 불을 붙였다. 타오르는 모닥불 주위에 삥 둘러앉아서 장래 이야기도 하며 ’캠프파이어‘를 즐겼다. 통기타를 치며 계곡이 떠나도록 노래도 불렀다. 박인희의 ’모닥불‘ 노래를 불렀고, 윤형주의 ’조개 껍질 묶어‘ 노래도 불렀다.

 

‘랄랄랄랄라라~ / 랄랄랄랄라라~

조개 껍질 묶어 /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앉아 / 밤새 속삭이네‘(중략)

 

우리의 술 파티는 밤이 깊어도 멈추지 않았다. 산속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고성방가를 하니 화가 난 동네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다. 어둠 속이라 몇 명이나 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취하지 않았으면 정중히 사과했으면 해결될지도 몰랐다. 그런데 우리 중에 의협심이 강한 G 친구가 먼저 나가더니 그들과 시비가 붙었다. 그는 술을 들으면 ‘장진주사’를 읊으려 술도가니 바닥을 보려 한다. 아마도 ‘정철’ 선생의 술 ‘예찬론’ 영향이라고 본다. 정철은 자신만 술과 친구 하지 뭐하러 이 시조로 발표하여 친구까지 술꾼으로 만들었을까? 그가 미웠다.

 

‘한 잔 먹세 그려 / 또 한 잔 먹세 그려 /

곳 것거 산 노코 / 무진무진 먹세 그려 /(중략)

 

친구가 나간 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그들은 몽둥이를 들고 우리한테 오더니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텐트도 까뭉개고 기타도 박살을 냈다. 수적으로도 약세지만 칠흑 같은 밤에 술에 취해서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비틀거리며 우리끼리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제대로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한 채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고생한 추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했던가? 돌이켜 생각해봐도 우리가 너무 잘못했었다. 지금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다. 칠순이 된 친구 4명이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날리며 다시 ‘운일암’을 찾았다. K 친구가 엊그제 이곳으로 캠핑을 왔었는데 너무도 좋았다며 우리를 자기 차로 안내했다. ‘장진주사’를 즐기는 G 친구는 몸이 아파 합류치 못했다. 가는 길에 부귀 ‘덕봉정’가든에서 점심을 했다. 버섯전골에 소고기 샤부샤부였는데 오랜만에 맛있게 들었다. W 친구가 언제 나가서 계산을 했다. 그는 항상 친구를 위하여 먼저 지갑을 연다. 오디 농장을 경영하는데 올해에는 냉해로 오디 수확이 예년보다 30%나 감소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마음만은 풍요로웠다. 우리가 ‘운일암반일암’ 캠핑장에 도착하니 주말이 아닌데도 크고 작은 캠핑카가 20여 대가 있었다. 가족 단위로 와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렇게 남들처럼 살아보지도 못하고 아까운 청춘이 다 간 것 같아서 못내 아쉬웠다. 많은 사람이 와 있는데도 계곡의 물소리만 낮은음으로 들릴 뿐 주위는 조용했다. 우리는 계곡 데크 길을 걸었다. 비 온 뒤라 계곡물이 불어나서 물살이 세게 흘렀다.

 

멀리 광주에서 온 S 친구는 나의 건강을 염려하여 주었다.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면역력이 생긴다고 했다. 고마웠다. 그는 친구 중에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도 마음만은 가장 부자였다. 과학교재 분야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다. 전기·전자 분야에 기술이 탁월하여 그의 손만 거치면 폐품도 생명체로 거듭난다. 구름다리를 지나서 돌아오는 데크길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친구에게 계곡 물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물소리가 가장 편안한 자장가라고 하던데. 물은 일정한 주파수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나는 녹음을 했다. 녹음기록에 나타난 주파수는 일정하게 흐르다가 한 번씩 올라갔다. “너의 주파수는 얼마나 되니?” 음악가는 오케스트라의 기준 음이 ‘오보에’의 ‘라’음이라고 한다. 이 음에 모든 악사가 조율을 하는 것이다. ‘라’음은 440Hz로 피아노의 중간 건반쯤 음이라고 한다.

 

중간 음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일까? 그날의 함성 주인공들은 지금은 위치가 많이 달라져 있다. 건강도 부()도 다 이룬 친구가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던 친구도 있다. 평일 하루 업무를 포기하고 친구가 좋아 광주에서 온 친구가 고맙다. 그의 삶의 기준은 무엇일까? 새벽에 일어나 산책길에서 만난 들꽃이 친구이고, 자기 전에 드는 막걸리 한 병에 행복을 느낀다던 그가 아닌가? 그의 주파수는 한 옥타브가 낮은 ‘라’음이 아닐까? 인근에 딸과 사위와 손주가 있기에 행복하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사위와 대작한다며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친구의 세상 사는 이야기는 물소리와 함께 잔잔한 교향곡으로 들렸다.

 

“봉섭이, 그 옛날 우리의 함성이 계곡 어디엔가는 남아 있겠지?

그때는 우리가 똑같은 ‘라’음이었는데 말이야.

(2020.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