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두루미 2020. 8. 5. 12:19

달님은 나에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해와 달은 우주 질서의 어버이시다, 생명체들에게는 따뜻한 빛과 에너지를 주시어 만물이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위대한 힘이다. 이 세상 어디를 가나 누구에게나 편애하지 않고 사랑과 희망을 골고루 나누어준다. 그래서 해와 달이 사라진다면 암흑의 동토(凍土)에서 모든 생명체도 함께 사그라질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은 해와 달의 고마움을 알면서도 때로는 잊고 살고 있다. 하늘에 달이 없다면 내 가슴에 희망도 없다, 희망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달님은 내 삶의 희망이다.

 

해님은 온종일 이글거리게 달구어진 얼굴을 밤에는 깊은 바다물속에서 식혔다가 동쪽 바다로 기어올라 또 하루를 이글거리며 세상을 비춘다. 달님은 사람들이 낮에 일하고 밤에는 편히 쉬면서 곤히 잠자라고 아주 조심조심 나오셔서 작은 호롱불 같은 빛을 비춘다. 해님과 달님은 하늘나라 어느 마을에서 서로 오순도순 사시지만, 낮과 밤에 우주의 삼라만상을 위해 하시는 일이 서로 달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실 겨를도 없는 것 같다. 때로는 벌건 대낮에 또는 깊은 밤중에 꼭 할 말이 있는지 다정히 부둥켜안고 속삭이면서 시간 가는 것도 잊으셨는지 해와 달님의 그림자는 온 세상을 순간 암흑의 세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조금 기다리면 될 것을 사람들은 하늘의 해님과 달님한테 시기하는지 고함을 지르면 깜짝 놀라 부둥켜안았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시면 세상 또한 서서히 밝아진다.

 

달님은 아무래도 여성스러움이 많으신지 너무 환한 불빛보다는 아늑한 호롱불을 좋아하시는 것 같고, 많은 사람이 우글거리는 광장보다는 한적한 쉼터를 좋아하실 것 같다. 언제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마음씨 고운 시골 큰누나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작은 소망이든 큰 소망이든 해님보다는 어쩌면 달님이 더 살갑고 소망도 잘 들어줄 것 같은 선입견으로 언제부터인가 달님 앞에 애절하고 간절하게 비는 모습이 내려오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어머니도 새벽에 일어나셔서, 부상마을 앞 시대산에 떠올라 집 뒤 작은 동산으로 넘어가시는 달님을 향해 우물에서 제일 먼저 정화수(井華水)를 길어다가 장독 위에 올려놓고 달님께 기도드렸던 모습을 줄곧 보아왔다.

 

나는 군대 생활은 의정부 쪽 모 군단 본부에서 근무했었다. 군대 입대하기 전 사회에서 마무리를 못 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입대 무렵에는 수세미 속같이 헝클어진 마음을 그대로 안고 입대했었다. 겨울밤에 보초 군장(軍裝)을 차리고 연병장을 걸어가면 바스락바스락하면서 얼음 조각 깨지는 소리뿐 적막한 전선의 밤이었다. 오늘도 부모님과 동생들은 어떻게 지냈는지, 나와 관련된 입대 전의 일들은 잘 마무리되어 가는지, 혼자 묻고 혼자 답하다가 초소에 도착했다. 사람 냄새는 없고 총기 청소 때 바르고 닦았던 총기 기름 냄새와 총구에 남아 있는 화약 냄새, 그리고 군 장비와 전투복에서 나는 군대 특유의 냄새가 전부였다. 그런 냄새를 전우라 생각하고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가끔 삭풍은 철모를 윙윙거리며 지나갔다. 그런데 구름 속에 숨었던 달님이 둥근 얼굴을 내밀면서 병사를 위로해 준다. “연식아, 걱정하지 마! 내가 낮에 살짝 너희 집에 다녀왔어. 가족들도 잘 있고 나머지 일도 잘되어 가고 있어.그때부터 나는 달님한테 밤마다 고향 소식을 듣는 것이 군대 생활의 낙이었다. 으레 취침 전에는 연병장에 나가 웃어주는 달님의 얼굴을 보고 막사로 들어왔다. 그때서야 안심하고 침상에서 나팔수의 취침 나팔소리에 군대 모포로 눈시울을 닦으면서 잠을 청하곤 했다. 내일 새벽에 어머니는 장독대 정화수에 비친 달님한테 이 자식의 소식을 듣고 안심하시면서 식구들의 조반 준비를 위해 부뚜막에서 군불을 지피실 것이다.

 

언제인가 직장 상사와 언쟁이 있어 사무실에서 심하게 다툰 적이 있다. 퇴근 무렵에 다툼의 경유를 떠나서 나이 어린 내가 잘못했다고 느껴 상사를 모시고 저녁 식사 겸 못 마시는 반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상사를 모셔다 드렸다. 집에 휘청휘청 걸어가는데 길이 살아서 움직였다. 도저히 걸을 수 없었다. 여름날이라 밤공기가 후텁지근하여 잠깐 비포장도로에 앉아있으니, 촉촉한 땅 온도가 시원하여 그대로 누우니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잠자리였다. 노상에서 얼마나 잠을 잤는지 깨고 보니 달님이 서쪽 하늘에서 측은한듯 나를 바라보며 내려가지 못하고 그때까지 서 있었다. 달님한테 미안하여 정신이 번쩍 들어 몸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갔다.

 

특히 지금도 보름날 외지에서 집에 늦게 돌아올 때는 자동차의 차창을 내리고 긴 호흡을 하면서 달님과 얼굴을 꼭 마주치면서 안부를 묻는다, 아파트에서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보름달을 보거나, 한밤중에 화장실을 갔다 올 때 거실이 유난히 밝아 달림의 얼굴이 비치면 나 때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달님을 위로하고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 사회생활 중에도 일이 잘 안 풀리고 속이 상할 때는 밖에 나가 하늘의 달님한테 하소연하면 속이 후련하다. 달님은 속상할 때만 와서 푸념만 하지 말고, 좋은 일 있을 때도 와서 기쁘게 해 달라고 한다. 달님은 언제나 내 편이었다. 달님은 시골에 가면 시골로,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그곳까지 따라온다. 아마도 철부지 동생이 못 미더운가 보다.

 

당나라 시선(詩仙) 이태백은 달은 어둠을 밝히는 이상의 빛이자 낭만적인 미신(美神)이기도 하여 양자강 뱃놀이 중 술에 취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물속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1969720일 미국 닐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 달 착륙선 '이글호'에서 달 표면 고요의 바다에 인류 최초 발을 내디뎠다. 그래도 달님은 이태백도 닐 암스트롱도 다 싫고 나만 기다린다. 이런 우주과학 시대에도 청춘남녀들은 태초의 혼돈시대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사랑의 징표인 달님을 보며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미래를 약속한다. 얼마나 멋지고 의미 있는 청춘들인가? 나는 갑순이와 갑돌이의 노랫말처럼 슬픈 결말로 끝나더라도 그렇게 못 해봤던 청춘이 너무나 야속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 소꿉친구도 나처럼 저 달을 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나를 붙들어 놓는다.

달님은 나에게는 영원한 어버이시다. 달님은 나에게는 평생 동반자이다. 달님은 나에게는 소꿉친구다. 언제인가는 옥황상제께서 하늘의 무지개 사다리를 내려 주시어 달님 나라에서 돌아가신 부모님도 만날 것 같고, 평생 동반자 그리고 소꿉친구들도 같이 살 것 같은 달님은 먼 훗날의 내 고향이다.

(2020. 음력 5월 보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