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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05. 5. 5. 07:16
해마다 여름이 오면
김학

앞으로는 비단결 같은 냇물이 흐르고,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초록색으로 감싸여 병풍 마냥 둘러쳐진 빼어난 절경, 몇 걸음만 나서면 펑퍼짐한 바위가 이끼로 치부를 가린 채 누워있고, 그 바위 틈새에서 묘하게도 뿌리를 내린 노송(老松)들이 허리를 꺽고서 금방 세수를 하려는 듯한 자세, 그 바위가 발을 뻗고 있는 곳에 조그마한 정자가 서 있으니, 이름하여 호연정(浩然亭)이다.
그 호연정에 앉아 있으면 여름날에도 부채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산바람 강바람이 한데 어우러져 삼복더위도 아랑곳없이 한기(寒氣)를 느낀다. 숲 속에서는 이름 모를 산새며 매미들의 간드러진 노래 소리가 메들리로 들려오고, 도란거리며 나들이를 떠나는 시냇물 소리가 꿈결처럼 감미로운 곳, 내 고향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후천리 광제 마을의 정경이다.
청자 빛 하늘엔 흰 구름이 한가로이 노닐고, 냇물 건너 들녘에선 여물어 가는 벼가 따사로운 여름 햇살을 끌어안고 탱고를 춘다. 빨간 고추잠자리가 잊혀져 간 유년시절의 추억을 실어 나르면, 나는 슬며시 꿈에 잠긴다.
개구쟁이 꼬마들은 잔잔한 냇물 속에서 물놀이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코밑이 시컴시컴해진 아이들은 낚싯대를 드리운 채 점잖을 피운다. 아낙네들은 음식을 장만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남정네들은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느라 땀에 젖는다. 노인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옛날 옛적의 추억을 되새기느라 바쁘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고향에서 펼쳐지는 우리 집안의 피서풍경이다.
직장따라 뿔뿔이 흩어져 살다보니 피붙이끼리도 마주할 기회가 드물었다. 새로 시집 온 며느리들, 집안 딸네들을 아내로 맞아간 사위들, 새로이 태어난 아이들이 남남처럼 여겨졌다. 더구나 한가로이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얼굴을 익힐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다 보니 세월의 흐름에 떠밀려 피붙이로서의 정마저 약해져 가는 걸 어쩌랴. 그리하여, 궁리해 낸 것이 10촌 이내의 일가친척들이 여름이면 고향의 호연정에 모여 함께 피서를 즐기기로 한 것이다.
20여 년 전, 처음 모였을 때는 서로가 서먹서먹했었다. 아저씨와 조카, 형님과 동생의 구별도 어려웠다. 그러나, 노인들이 얽힌 실타래를 풀 듯이 촌수와 항렬을 따져 가르마를 타주시는 바람에 잊고 살던 위계질서가 바로잡히게 되었다. 만나는 횟수가 거듭되면서 주고받는 인사도 정다워졌다.
머리만 꾸벅 숙이던 인사가 손을 마주잡으며 다정스런 인사말까지 곁들이게 되었다. 아무리 가까운 일가친척이라 해도 서로 지내기 나름이라던 선인들의 가르침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아빠! 우리 언제 고향에 가지?"
여름방학이 가까워 오면 아이들은 언제 고향에 가느냐고 안달이다. 그들은 어느새 고향에서의 집단 피서에 맛을 붙이게 되었다. 날마다 튜브를 꺼내 손질하는가 하면, 물안경을 써보기도 하고, 수영복을 꺼내 입어보는 등 야단들이다. 서울의 재종동생의 아이들도 그럴 것이고, 광주에 사는 내종형님의 아이들도, 울산 사는 오 서방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스팔트 거리, 시멘트 건물 틈바구니에서 민들레처럼 자란 아이들에게 고향의 흙 냄새를 일깨워 줄 수 있다는 것도 산 교육이다. 벼가 익어갈 무렵, 뙈기를 치며 우여! 우여! 새를 쫓던 일, 논고랑의 미지근한 물 속에 땡감을 담가놓았다가 우려먹던 일, 얼굴이 까맣게 그은 줄도 모르고 메뚜기를 잡으러 논두렁을 헤집고 다니던 일을 경험토록 할 수는 없어도, 고향에서의 하루 물놀이는 의미가 크다. 성묘도 곁들일 수 있으니 고향에서의 피서는 그 더욱 좋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에게 쌀 나무(벼)나 갖가지 채소 그리고 토종 과일 나무를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보너스가 아닌가?
맞벌이인 막내아들의 쌍둥이 손자를 돌보시느라 서울의 아파트에 사시는 큰 당숙모의 모발(毛髮)은 얼마나 은백색으로 물드셨을까?
여름이 오면, 나도 아이들처럼 고향에 갈 날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고향의 정, 조상의 숨결, 어린 날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으니 어찌 기다려지지 않으랴. 한 여름에도 손이 시리던 호연정 그 옹달샘의 물맛은 시방도 변함이 없을까?
고향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산다. 눈을 감으면 고향의 산하가 앨범처럼 펼쳐지고, 고향 사투리가 귀에 잡히면 잊고 살던 고향의 그리운 얼굴들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다가선다. 꺼지지 않는 불시처럼 고향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기 마련이다.
내 고향은 전라도의 가운데 토막인 임실(任實). 높낮은 산들이 강강수월래에 맞춰 원무(원무)를 추고, 산허리를 감돌아 흐르는 냇물이 도란도란 밀어를 속삭이며 섬진강으로 합수되는 곳이다. 산수가 그림같이 아름답고, 인심이 순후하며, 명당이 많아 박사를 많이 배출한 고장이 내 고향 임실이다.
여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게 될 일가친척의 얼굴들이 필름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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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향에 향수가
절로 느껴 짐니다
고운 글 잘 보구 감니다.
故鄕!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련해옴니다
유년의 기억속에 떠도는 한무리의 잔흔들이
햇살에 부서지기도하고...
제삶의 고삐를 풀지 못하게하는...옥쇄 같은것...

제가 살다가 살다가 힘이들때면
저는 마을이 내려다 뵈는 뒷산 언덕배기에서
날이 저물때까지 그렇게 하염없이 앉아있곤 했슴니다.

고향집 창가에 밝은 불빛이 무척 그리운 밤임니다.

항상좋은나날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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