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20. 5. 3. 15:08

밤을 잊은 그대에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최 상 섭

 

 

 교직생활 중에서 모든 교사가 흠모하는 학교장(學校長)을 지낸 L 친구는 새벽잠이 없어 4시가 되면 기상을 하게 되고 샤워를 한 후 지금 근무하는 직장에 출근하면 5시가 된다고 한다. 이러한 생활을 매일 반복하며 성실함과 원만한 성격으로 정년퇴임 후 지금 근무하는 직장에서도 학교장이 되었다. 책임과 운영의 묘수를 조화시키려 애써 노력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는데 그런 생활이 5년째 접어든다.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데 나 역시 가끔 3- 4시에 잠이 깨면 이 시간에 무엇을 해서 조화롭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군대시절 기상나팔 소리가 그렇게 싫었고, 깨소금 같은 잠을 단 30분 만이라도 더 자고 싶어 하면서 아쉬워했었다. 무심코 박차고 일어나 온몸에 찬물을 끼얹는 샤워부터 하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야말로 호기(好期)를 잡았다 싶고 글쓰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사방이 까만 밤이고 고요가 엄습해 온다. 그러면서 초롱초롱해지는 정신은 머릿속에서 탱글탱글해져 무수히 많은 상념이 푸른 파도처럼 넘실댄다. 마치 빨랫줄에 매달려 봄바람에 춤을 추는 빨래처럼 대롱을 타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화두만 무성하고 정작 몸통을 찾지 못하고 한없이 깃털만 나부낀다. 이럴 때 나는 내 몸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측은한 사고들을 정리하지 못하는 글재주를 한탄하며 몇 번이나 절필하려 했는지 모른다.

 

 어제 두 번째 수필집 <청동화로>를 받았다는 O 친구는 허울 좋은 칭찬 몇 마디를 늘어놓더니 “요즈음은 울림의 메시지(Message)가 없는 수필은 독자들이 읽지 않습니다.”라며 고전 음악이 향을 발하는 내용이거나 건축의 예술성에 도전하여 미켈란젤로의 창작성이 글 속에서 굴뚝의 연기처럼 피어나는 수필을 쓸려고 준비 중이란다. 얼마나 수사가 풍부하고 멋진 말이며 정작 현대 수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그런데 『울림의 메시지』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뜻대로 쉽게 나타날 수만 있다면야 누가 문사(文士)가 되려 하지 않겠는가 되묻고 싶다. 내 딴에는 다른 수필가들이 쓰지 않은 독특한 소재를 찾으려 혼신(渾身)의 노력을 다한다. 항상 호주머니에는 메모 수첩이 들어있고 사소한 것들도 다 놓치지 않고 기록해 둔다. 무엇에 쓰려는가는 나중 문제다. 그 별 것 아닌 것들을 밤이 되면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며 내 안의 보석으로 저장해 둔다. 특별히 오랜 기간 나는 우리 '풀꽃'을 무척 좋아해서 보는 족족 HP로 촬영해 두고 풀꽃의 생태를 조사하며 공부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우리 풀꽃에 관한 수필을 여러 편 쓰게 되었고, 인터넷상의 내 필명이 '야생화'다. C 시인의 독특한 소재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더욱 심취하고 야생화에 대한 글감을 찾도록 분주히 노력할 생각이다.


 


  첫 번째 수필집 <청동 주전자>에 나오는 “돌쩌귀의 아름다운 조화”라는 글을 발표할 때 내게 수필을 전수해 주시는 K 교수님은 처음으로 “최 선생 이제야 제대로 된 글감을 하나 찾았구먼.” 하시고 칭찬해 주셨다. 돌쩌귀는 한옥집에서 문을 달 때 여닫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진 장석이다. 문틀과 문짝에 한 번에 박아서 달아야 되고 도목수만이 할 수 있는 뛰어난 기술이다. 이 돌쩌귀의 조화가 한옥집의 섬세하고 사용하기 편리한 빼어난 진수의 하나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두 번째 수필집 <청동화로>에서는 서정적 수필을 쓰려고 노력한 내용의 수필들이 대부분 상재되었다. 김제에서 오랜 기간 문단 활동을 같이 한 J 시인은 “한 편 한 편이 시를 읽듯 정감이 넘쳐요.”라고 과분한 칭찬을 해 주셨다. 나 듣기 좋아라고 한 말이 틀림이 없지만 내가 의도한 부문은 상당한 효과를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일말의 다행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도 그렇게 시를 쓰듯 감칠맛 나는 서정수필을 쓰고 싶다. 자연 친화적인 내용으로 쓴 수필들이 꾀꼬리와 후투티, 독수리의 비상, 새봄을 알리는 풀꽃들, 매화꽃의 고고한 맛, 난심은 얼마인가? *상선약수(上善若水), 풀꽃 천지, 풍경소리 등을 상재했다. 그리고 사람이 질병 앞에서는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 싶어 평소 *신외무물(身外無物)의 주장을 많이 했었다. 과학과 의술이 크게 발달한 현대에서 세계의 재앙이 된 팬더믹((pandemic)한 ‘코로나19’ 앞에 우리 인간이 얼마니 무기력한 존재인가 싶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국가의 총력 저지와 국민의 협조로 선진국으로부터 가장 피해를 적게 본, 의료 기술이 뛰어난 나라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 모든 국민의 자부심이 고무되는 대목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그 무서운 재앙의 질병이 사그라드는 느낌이어서 천만다행이다. 이제 바라는 것은 하루빨리 이 지구상에서 그 전염병이 사라져 모든 나라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재크린의 눈물'이란 수필을 상재해서 인간애를 승화시키려 노력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실고추 가루' 등 나름대로는 새로운 소재를 찾기에 분주했었다.


 분명한 것은 뼈를 깎는 각고(刻苦)의 노력 없이 좋은 작품이 쓰여질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 숙연하며 내 남은 인생 전생의 업보(業報)라고 여겨 진력할 것을 다짐해 두고 싶다.


 

  밤을 잊은 그대, 문곡(文谷)! 아직도 갈 길이 멀었음을 크게 새기며 고지(高地)를 향해 전력투구(全力投球)하게나. 그 길이 문곡이 걸어야 할 사명이요, 존재의 가치라 믿네.

(2020. 4. 30.)  

 

*상선약수(上善若水) : (원문 : 흘러가는 물같이 사는 것이 최고의 선이다. 의역 : 흘러가는 물같이 사는 삶이 기장 이름다운 인생이다.)

* 신외무물(身外無物) : 군대 생활이 막 시작된 19713월 소위 봉급 27,400 원을 받아 집으로 송금했더니 선친(先親)께서 직접 편지로 화답해 주셨고 첫 서두로 쓰신 글이며 지금도 마음속의 보감(寶鑑)으로 여기는 사자성어(四字成語). 건강이 없는 만물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

         


 
 
 

★수필♡

두루미 2020. 5. 3. 06:00

나도 확찐자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일기예보와 상관없이 맑은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진다. 소나기는 예로부터 남의 집 처마 밑에 들어가 잠시 피하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멈추었는가 싶던 소나기가 다시 또 쏟아지고 있다. 온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뇌성벽력(聲霹靂)을 치고서야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중국 우한(武漢) 코로나소식이 전해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잠시 피하고 기다리면 멈추고 지나갈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잦은 소나기는 엄청난 물난리를 알리는 예고편(豫告篇)에 불과했다. 코로나 바이러스19의 위력은 확진자(確診者)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나 시시각각으로 우리를 욱조여 오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가급적 외부활동을 자제하라는 권고사항을 들어 방콕생활이 시작되어 원치 않게 나도 확진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確診者)는 처음에는 하나 둘, 넘버를 달고 서서히 등장했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중국인 여성이 최초의 감염자로 확인되자, 우리나라 정부는 감염병의 수준을 구분하여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정한 경보단계를 ‘주의’에서 ‘경계’수준으로 격상시키고 코로나19 증상 사고수습본부를 설치했었다. 그런대로 염려 반 기대 반으로 바라보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는데, 확진자 30번에 머무르면서 소강상태(小康狀態)를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31번 환자로 인한 대구, 경북, 신천지가 나타나면서 환자 수는 상상을 초월하여 기하급수적으로 하루에 몇 백 명씩 불어나며 사망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정부는 숨가쁘게 위기 단계 중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각 급 학교 학사일정 조정과 기업 원격근무를 장려하며 발병과 예방에 대한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당분간 종교, 체육, 연예 등 집회자제가 요청되고, 외출자제와 부득이한 외출 시 마스크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손 씻기, 기침예절 준수, 눈과 코 입 안 만지기, 발열 기침 증상 시 보건소나 지역+120, 1339 콜센터로 상담 연락을 바람란다는 문자가 쉬지 않고 들어왔다.  

 

  2월 들어 활동이 잠시 중단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두를 필요 없어 늦잠을 푹 잘 수 있어 좋았다. 하루이틀 집에서 딩굴다 보니 싫지 않았다. 그러나 외출금지가 길어지다 보니 나만 허송세월하는 것 같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귀한 시간을 무의미하게 버릴 수는 없지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집안을 둘러보니 눈길 닿는 곳마다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한 일들이라 급히 서둘지 않아도 되는 일거리를 찾아 수북이 쌓아놓았다. 그러나 첫 2주간의 활동중지 기간이 지나고 낼 모래 활동이 개시될 수 있음에 다시 활력을 되찾기도 전, 우리지역 확진자 1, 2, 3호가 연이어 발생되면서 지역 내 감염위험이 확산될 우려가 있어 초긴장상태가 되었다. 장기간 활동중단과 함께 외출금지에 발목이 붙들렸다. 첫 활동자제기간은 2주라는 기다림이 있었는데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로는 기한도 예측할 수 없는 무기한 자가격리 생활이 시작되고 말았다.

 

  몇 해 전, TV드라마에 등장한 배우 나문희씨가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야!” 하던 대사가 떠올랐다. 그렇다고 이 난리를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치료제도 백신도 아직 개발되지 않아 정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주의사항을 지키고 예방차원으로 생활 수칙을 잘 따라 지키는 도리밖에는 없었다. 기약 없는 집콕 생활에 싫증이 났다. 살아있는 자의 생활이 아니다. 식욕도 떨어지고 삶의 의욕도 상실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이대로 사라지고 말 것만 같은 두려움과 답답함이 몰려왔다. 우울증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러나 이를 두고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며 미워하고 두려워 할 문제도 아니었다.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고,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소일거리를 찾기로 했다. 기왕 대처해야 할 재앙에 위축되지 말고 분연히 맞서 일어서야 한다. 겁내지 말자. 나를 다독이며 방역시스템에 적응하면서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았다.


 


 마침, 이심전심으로 통했는지 친정동생이 햇 푸성귀들을 한 짐 내려놓고 갔다. 커다란 자루 속에는 내 머리통만한 무 3개와 햇마늘, 쪽파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엊그제 유정란 한 박스와 어린 상추, 아욱, 쑥갓, 부추를 보낸 것도 아직 그대로 있는데, 내친 김에 부지런을 떨어 파김치를 담고 무생채와 무나물을 만들어 놓았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언제 넣어 놓았는지 조차 모를 것들이 답답한 내 속처럼 꽉 들어차 있었다. 부산 여동생과 진해 시동생 집에서 보내준 생선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깨끗이 손질한 전복을 비롯하여 왕새우, 고등어, 가자미, 코다리, 삼치, 대구포, 조기, 대합 등 이름 모를 생선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대책 없이 용도에 따라 굽고 찌고 끓여 놓고 보니 많아도 너무 많다. 9첩 반상이 훌쩍 넘어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았다. 혼밥을 시작한 이래 이렇듯 많은 상차림은 없었다. 코로나19 덕에 내 이성을 잃고 내키는 대로 하다 보니 도를 넘어 부작용을 일으키고 말았다. 애써 만든 음식을 그대로 버릴 수는 없어 며칠을 먹어 치우다보니 내 몸은 과식으로 확진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외출을 금지하고 조용히 집콕하고 있던 친구들이 무료함을 달래며 서로를 위로하는 문자들이 왔다. 왜 무섭고 혐오스러운 ‘확진자’라는 문자를 겁도 없이 보내는지 불쾌했었다. 그러나 자세히 내용을 읽어본즉 나와 같은 과정을 거쳐 ‘확찐자’가 된 것을 희화화(戱畵化) 한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나도 평소보다 4~5Kg은 더 찐 상태이니 우리 아이들에게 ‘나도 확찐자’라는 문자를 보냈다. 놀라는 아이들에게 설명으로 마무리하고, 얼마 후, 서울에 올라가니 막내손녀는 나를 보자마자 방에 들어가 체중계를 먼저 들고 나왔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제 어미가 부탁했다는 것이다. 살이 좀 확찐들 어떠랴.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지나갈 소나기성이 아니던가? 코로나바이러스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은 언제나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다. 겁내지 말고 방역시스템에 적응하면서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 상책일 것 같다.  

 

 참고 기다리는 인내(忍耐)는 비생산적으로 무작정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할 일없이 시간을 낭비하거나 허비하는 것도 아니다. 인고(忍苦)의 의지력은, 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해 사생결단(死生決斷) 하고 노력하는 전략 못지않게 매우 유용한 전략적 전술에 속한다. 이보전진(二步前進)을 위해 일보후퇴(一步後退)가 필수조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현대인들이 겉으론 멀쩡해도 속으로는 엄청난 외로움과 나약함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대폭 증가할 것이라 한다. 허긴 지금도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이러한 시점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자아에 충실한 만족한 삶을 영위하면서 꿈과 비전을 향해 하루하루 열심히 열정을 불태우며 행복과 보람에 찬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2020. 5. 2.)

 


 


 


 
 
 

★수필♡

두루미 2020. 5. 3. 05:20

4월에 피는 풀꽃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최 상 섭

 

 

 

 삶의 희열을 찾아 나서는 일이 봄바람처럼 살갑게 불어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욱이 나이가 들어서 소망을 담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뜻대로 쉽게 이룰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사업성의 일로 경제력이 동반되고 모험이 서려 항상 큰 파고를 걱정해야 하는 그런 큰일이 아닌 평소 소소한 씨앗들을 뿌리고 작은 지도를 그려보려는 일조차 쉽지가 않다. 한 알 두 알 심은 알곡이 뿌리를 내리고 뽀드득 언 땅을 뚫고 새싹을 올리는 봄날의 신기함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작은 텃밭을 가꾸는 일조차 쉽지가 않으니 내가 나이를 조금 먹기는 먹었나 보다.

 

 나는 평소 우리 풀꽃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심고, 가꾸고, 새로운 품종을 찾아 진력한 지가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이 지났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권의 우리 풀꽃 서적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그 책들처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관리하지 못해 늘 아쉬워했었다. 재직시절에 우리풀꽃전시회를 6, 현 직장에서도 작년에 가을꽃과 다육식물 전시회를 가졌음에도 사진을 찍어두거나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는 정도였다. 특별히 2006618일과 19일에는 YTN 방송국에서 한나절을 촬영한 전시회 광경을 216초로 압축해서 뉴스 중간 타임에 18회씩 16회를 방송해 줄 때는 전국의 여러 학교에서 문의가 빛발쳤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Y 교수의 권유도 있었고 그 아름답고 깜찍한 우리 풀꽃들의 사진을 찍어 성장과정과 생육상태에다 문학성을 가미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솔직히 말하면 게으른 탓이 그 첫째이고 2년 터울로 시집과 수필집을 낸 내가 책값을 염려한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 절실하게 꼭 필요한 소중한 가치라는 판단이 적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던 중 책장을 정리하다 한국문인협회에서 발행한 월간문학의 재작년 호에서 우연히 박정자 시인이 집필한 『꽃탑』이라는 시집 광고면에 눈이 번쩍 뜨이면서 “이것인데!”하고 깜짝 놀랐다. 바로 전화를 해서 어렵게 그 책을 구입했고 저자와도 교감을 가지는 처지가 되었다. 꽃탑 시집의 내용은 우리 풀꽃을 촬영하여 칼라로 인쇄하고 작은 글씨로 풀꽃의 특징과 생육상태를 사진 밑에 표기했으며 오른쪽 면에는 박 시인의 그 꽃에 대한 시가 실려 있었다. 은연중 내가 제작하고 싶었던 그 책을 발견한 것이다. 평상시 예쁘고 기이한 우리 풀꽃을 보면 핸드폰으로 촬영을 했었는데 오늘은 큰맘 먹고 인공관절 삽입 수술을 한 한쪽 다리의 기능도 시험해 볼 겸 높지 않은 산에 오르기로 작정했다. 절친한 친구에게 함께 등산하자고 전화할까 생각하다가 아직은 내가 내 능력을 알 수 없어 혼자 등산을 하게 되었다.


 


  나는 12년 전 정년퇴임을 하면서 사진작가가 되려는 마음과 우리 풀꽃의 생생한 사진을 찍어 보관하려는 결심을 하고 D300 니콘 카메라에 망원렌즈와 접사렌즈 등을 세트로 갖추었다. 처음 2년간은 열심히 진력했지만 현 직장에서 주야로 근무해야 되는 환경과 조금씩 나태해지는 피로가 쌓이면서 *용두사미(頭蛇尾)가 되어 *초지일관(初志一貫)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시방은 다시 시작하려는 각오만 무성할 뿐 아름다운 꿈을 크게 꾸고 부지런히 생활하자는 뜻의 *‘붕몽의생’(鵬夢蟻生)의 사자성어를 가슴 깊이 새긴다. 이 글을 쓰면서 새롭게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또는 정월 보름날 태우는 달집이 하늘로 오르려는 기상(액운을 떨치고 복을 불러들임)의 화력(火力)같이 그리고 천둥 속에서 번득이는 칼날의 굳은 의지를 세우지만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더욱 한심하다. 무엇하려고 이 나이를 먹었을까?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온몸을 휘감고 돈다.

 

 정확하게 말하면 3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등산하는 큰 결심을 세우고 마침내 산에 오른다. 스틱과 물, 타올 등 기본으로 간략하게 준비한 배낭을 메고 몇 번 오른 적이 있고 춘란이 자생하는 그리 험하지 않은 산을 택했다. 등산하면서도 행여 산짐승이 나타날까 봐 목청이 떠나가게 ‘야호’를 외쳤다. 불안한 마음과 산에 오르는 기쁨을 함께 만끽하며 가시에 찔리고 넘어지기를 여러 번 하면서 천천히 오르다 보니 ‘아 뿔사’ 봄을 찬미하는 풀꽃 천지가 아닌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을까? 근무하는 학교 주변에서 봄까치꽃, 광대나물, 긴병꽃풀, 벼룩나물, 금년에 처음으로 발견한 산자고, 돌나물 등의 풀꽃을 볼 수 있었는데 야생화 천국에 온 느낌이었다. 좁살뱅이, 자주괴불주머니, 솜다리, 골풀, 오이풀, 개발나물, 고수 등의 풀꽃을 발견하고 HP로 촬영하여 갤러리를 만들었다. 전에 계곡에서 보았던 옥잠란은 철이 일러서인지 볼 수가 없었고 그 많던 춘란도 드물게 볼 수 있어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굳이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리라는 생각이 들어 밝히지 않는 게 오히려 궁금증보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는 믿음이 앞선다.

 


 제자가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산채정식으로 식사를 한 뒤 텃밭을 보니 여러 종의 채소를 심었고 울타리 가에는 더덕 줄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부지런함과 신선함을 함께 말하면서 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더덕 잎줄기가 제법 올라온 것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 향에 취해 있을 때 제자 K 사장이


 “선생님, 더덕 큰 화분에 심어도 잘 사는데 한 번 키워보시겠어요?

내가 우리 풀꽃을 선호함을 미리 알고 하는 말이다.

 “하이고 K 사장, 고맙지. 한 뿌리만 캐어 봐."

 K 사장은 줄기가 잘 올라온 두 무더기를 캐서 이끼와 함께 따로 조심스럽게 싸 주었다.

 ”야, 밥값을 톡톡하게 냈다. 참말로 고맙데이. 잘 심어 네 생각하며 키워 볼란다.

 하고 차 속에 안전하게 넣어두었다가 다음 날 공휴일인데도 새벽같이 출근해서 큰 화분에 정성스럽게 심고 부목을 대어 줄기가 오를 수 있게 해 주고 그늘에 가져다 두었다.

 

 만물이 새롭게 소생하는 잔인한 달 4월의 마지막 날, 산에 올라 상당한 수확을 했기에 몹시 기분이 좋다. 더덕 줄기도 잘 가꾸어야겠다. 마음속의 바람은 날마다 봄바람이 불거나 봄꽃의 해후(邂逅)로 얻는 기쁨과 향기가 오늘 같기를 소원해 본다.

(2020. 4. 30.)

 

* 용두사미(頭蛇尾) : 용의 머리와 뱀의 꼬리라는 뜻으로 시작은 거창하고 끝마무리가 부실함을 뜻함.

* 초지일관(初志一貫) : 처음 먹은 마음을 끝까지 밀고 나감.

* 붕몽의생(鵬夢蟻生) : 개미가 봉황새의 꿈을 꾼다는 뜻으로 부지런하게 살면서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것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