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20. 5. 4. 18:54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더니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금요반 박제철

 

 

 

 천당이란 살아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해야 죽어서 가는 곳이고, 지옥이라면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으로 알고 있다. 천당은 아무 걱정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곳이며, 지옥은 서로 싸우고 아귀다툼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죽어서 가는 것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천당과 지옥이 더 중요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지 않는가? 이승의 천당과 지옥의 원인은 내가 챙기지 못해서 일어나고 그 결과는 마음먹기에 달리지 않나 싶다.

 

 마지막 꽃샘추위가 강풍까지 몰고 왔다. 바람 끝이 제법 매섭지만 왠지 기분이 좋은 아침이다. 삼례시장엘 갔다. 코로나19에서 해방이라도 된 듯 시장이 활기를 찾았다. 완주군에서 긴급재난 지원금으로 1인당 5만원씩을 주었다는데 그걸 사용하는 모양이다. 시장경제가 곧 살아날 것 같은 마음이다. 시장에 온 손님들의 손에는 상품권이 쥐어졌으며 상품계산도 상품권으로 하고 있다. 아내도 봄나물 등 반찬거리도 사고 예쁘고 앙증맞은 화분도 3개나 샀다.

 

 귀가하여 아내는 반찬거리를 정리했다. 싱싱한 봄나물은 삶아서 냉장고에 넣고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 무국은 큰 냄비에 앉혀 전기레인지에 올려놓기도 했다. 내친김에 운암에 다녀 올 일이 있기에 그길로 차를 몰고 운암으로 달렸다. 막내 동생집에 들러 콩 씨앗을 전해주고 옥정호반 순환도로로 들어섰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은 다 떨어지고 그 자리엔 싱그런 나뭇잎이 자리 잡고 있어 보기에도 시원스러웠다.

 

 숨겨진 가보고 싶은 곳 10선이라는 국사봉 호반도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요산공원엘 갔다. 임실군에서 심혈을 기우려 만든 공원이다. 꽃잔디가 흐드러지게 피어 벚꽃의 아쉬움을 대신하기도 했다. 꽃밭을 매는 아낙들의 속삭임 속에서도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호수주변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구경하라는 듯 도로는 호반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져 속도를 낼 수도 없다. 옥정호 순환도로를 따라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다음은 모악산으로 달렸다. 모악산에 도착할 무렵 번개같이 생각이 났다. 전자레인지에 올려놓은 오징어무국이 생각난 것이다. 세 시간여가 지냈으니 다 타버린 것은 물론이고 불이나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 지금까지가 아내와 천당에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지옥이다.

 

 집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130에서140으로 달렸다.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화재가 발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제일 컸다. 그러면서도 화재가 났다면 관리실에서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니 연락할 텐데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화재까지는 나지 않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별별 생각을 다하며 집에 도착했다. 먼저 5층 우리 집 창문을 바라보았다. 연기가 밖으로 내뿜지 않았다.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현관문을 열고 보니 연기가 자욱했다. 얼른 불을 끄고 냄비를 들어냈다. 타버린 냄비에 물을 붙고 창문을 열었다. 음식물 타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심하게 자극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소뼈로 사골국을 끓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직에 있을 때 화재현장을 자주 간 일이 있다. 시골에서는 할머니들이 소뼈국물, 소위 사골국을 끓이다 화재를 일으키는 예가 종종 있었다. 큰 찜통에 소뼈와 물을 가득 채워 가스 불 위에 올려놓고 경로당에 놀러간다. 그곳에서 소뼈 올려놓고 나온 것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놀다가 화재를 만난다. 소뼈는 다른 것과 달라 소뼈가 타면서 소 기름방울이 안개형태 유증기(油蒸氣)로 변한다. 찜통속의 뜨거운 열기로 유증기에 불이 붙어 큰 화재로 변한다. 그럴 때면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내 정신머리 좀 봐!’ 하면서 울부짖었다. 화재조사를 하던 나도 어쩔 줄 모르고 할머니를 위로하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아내와 같이 외출할 때면 최종 점검은 내가 한다. 전깃불이 켜진데는 없는가? 가스는 안전한가? 수돗물 틀어진데는 없는가? 보일러는 문제가 없는가? 창문은 잘 닫혀있는가? 오늘도 확인하고 또 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도둑맞으려면 개도 안 짓는다더니 이럴 때를 두고 한 말인가 싶다.

 

 아무리 잘 챙기는 사람도 간혹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한마음으로 그 일이 끝날 때까지 잘 지키고 챙겨야 한다. 천당과 지옥을 오고감도 내가 일심으로 챙기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오늘 하루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깐의 방심으로 천당과 지옥을 경험한 하루였다. 나무 위가 생활터전인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는데 오늘의 나에게 딱 맞는 말인 성싶다.

                                 (2020.5.3.)


 
 
 

★수필♡

두루미 2020. 5. 4. 18:15

김상권 후배의 선종을 애도하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허망하다는 말인가? 넉 달 전에는 술잔을 나누기도 하고, 두 달 전에도 통화하며 멀쩡하던 사람이 불과 두 달 사이에 떠나버렸다. 부음을 듣고 너무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무엇을 먼저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아내와 같이 영전에 예를 올리고 상주와 대면했다. 접객 탁자에 나 혼자 앉아 눈물을 닦았다.


 K후배는 나와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7살 무렵 옆 마을로 이사를 했어도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형님, 동생 등 모두 가까이 지냈다. 초등학교도 같은 학교를 나왔고, 사범학교도 후배다. 교직에 들어서서는 모교에서 7년간 교사로 같이 근무하기도 했다. 그 때 모임을 만들어 5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교원 가족 세 집이 모여 식사를 같이 하며 즐기기도 했었다. 비록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나 형님 동생하고 정을 나누며 살았다.  


  K는 정의파다. 불의는 참지 못하고 저항하는 성격이다. 교사로 같이 근무하며 교장 교감의 부정을 지적하고 항의하는 일에 동참했다. 미움을 받아 쫓겨날 만도 했는데 모교이고 학부형이 인정하는 선생님이라 어찌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누구나 만나면 술 한 잔 같이 하자고 이끈다. 그런 성격이 안골은빛수필반에서 제3교실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많이 베풀었다. <한단고기> <열하일기> <목민심서> 등 여러 권의 책을 선물로 받았다. 내가 모교인 초등학교 총동창회장을 할 때는 총무를 맡아 2년간 수고하기도 했다.


  K는 분위기 메이커다. 알맞은 농담을 하여 웃긴다. 수필을 공부하면서도 쉬는 시간이면 ‘그만 끝내고 어서 가서 술 한 잔 합시다.’하여 웃기는 일이 가끔 있었다. 술좌석에서는 서로 웃기며 ‘상권은 나왔는데 하권은 언제 나와요?’ 하면 ‘하하’웃고 넘긴다. 문인화반에서도 오전 수업이 끝나면 몇이 모여 점심을 들며 웃고 즐겼다 한다. 평생 누구를 만나든지 즐기며 산 사람이다.


 장례식장에서 하루 종일 있으며 보았는데 그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범학교 동창생들이 줄을 이어 찾아왔다. 같이 모임을 갖는 조문객도 많았다. 코로나가 염려 되어 조문객이 별로 없을 것으로 알았는데 평소 맺은 정을 잊지 못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조문했다. 다만 야박한 사회인심이라 문인은 몇 몇에 불과했다.


  와병 중에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도록 했다. 아무도 문병 온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알게 되어 찾아가 보았다. 사후에도 알릴 사람의 전화를 미리 정해주고 이외에는 알리지 말라고 했다 한다. 청빈하게 살다가 가면서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다. 일생을 정의롭고 재미있게 살다가 갈 때도 나는 이미 틀렸으니 깨끗이 가자하며 선종에 들었다.  


 


 사람이 살았다고 누가 장담을 할 수 있을까? 후배 김상권 선생의 선종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병이 깊은 것을 알고 삶을 포기해서 그렇게 빨리 갔다. 삶의 끈을 놓으면 안 되는데 너무 빨리 놓아버렸다. 문병하러 가서 몇 사람의 폐암환자의 투병 이야기를 하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부탁했지만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제 다 부질없는 일이다. 이미 선종에 들었으니 저 하늘나라에서 먼저 가신 부모형제 만나서 영생을 누리기를 바랄 뿐이다. 부디 영면을 반다.

                                          (2020.5.1.)

 


 
 
 

★수필♡

두루미 2020. 5. 4. 06:12

마음의 거리와 사회적 거리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정석곤


 


 


 


  우리의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만은 곁에 있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이걸 '마음의 거리'라고 해야 할까? 코로나19로 생긴 변화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건강거리인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이 등장했다. TV는 어느 방송이나 자막에 '사회적 거리 2m 유지'라는 국민행동지침이 나온다.


 


  L47년 전 순창 강천산 근처 팔덕초등학교에서 졸업시킨 제자다. 강원도 홍천에서 목사인 남편의 목회를 내조하면서 지역주민과 자연이랑 어울려 살고 있다. 여태껏 소식을 주고받곤 했다. 다른 제자들 소식도 전해 줘 마음의 거리가 가깝다. 제자의 막둥이 딸을 결혼시키면 초대하기로 약속했다. 전화할 때면 딸 결혼 이야기로 끝나기가 일쑤였다. 예식장이 나라 안이라면 어디라도 가서 축복하려 벼르고 있다. 그런데 제자 남편이 보낸 부고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장모상, 순창보건의료원 장례식장’  


 


  부고를 보자마자 다음날 조문을 가기로 결정했다. 지난 2월 끝 무렵, 큰며느리 친정 조부님 상을 당했을 땐 코로나19로 하룻밤을 고민하다 조문을 다녀왔다. 이번엔 웬일인가? 장례식장이 가까운 순창이라 그런지 아니면 코로나19가 조금 수그러들어서일까? 확진자 수는 만 명을 치닫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려 강화된 행정명령으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등급을 높였다. 벌써 제 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장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끼고서 제식훈련처럼 앞사람과 1m 간격으로 줄을 서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조문을 가면 다른 제자들도 만나려나,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 코로나19라 불리는 작은 미생물이 온 세상을 뒤집고 있다. 그러나 자연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봄꽃 세상을 만들고 있다. 내 마음은 하얀 벚꽃과 더불어 집을 나섰다. 샛노란 개나리꽃이 되었다가 다시 벚꽃으로 달렸다. 멀리 저수지 둑 밑 왕벚꽃은 온 맘을 하얗게 만들었다. 산 속 진달래꽃은 옛 시골 새색시처럼 연분홍 맘도 더해 주었다.


 


  장례식장은 낮 시간이라 조문객이 적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하라는 국민행동지침을 지키느라 가족과 친·인척만 오고 있었다.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다는 속담같이 조문보다는 제자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몇 제자들과 만났으니까 16년 만이다. 제자 남편은 첫 대면인데도 죽마고우를 만난 듯 어찌나 반가와 하는지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손을 불쑥 내밀어 악수를 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두 팔을 벌려 끌어안았다. 머릿속엔 사회적 거리로 꽉 차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받아주고도 불안했다.    


 


  제자남편은 맞은편 식탁에 제자는 오른쪽에 앉았다. 식당에서 ‘(한일)’ 자형으로 앉고 그것도 옆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식사한 걸 TV방송에서 본 생각이 나 꺼림직했다. 식사만 하고 나오려 했으나 대화는 실타래가 풀어지 듯했다. 위로와 격려의 말은 잊고 타임머신을 타고 옛 팔덕 교정으로 날아가 제자의 휴대폰에 담긴 졸업사진을 봐 가며 이야기를 펼쳤다. 제자 남편도 아내의 소녀시절 이야기라 귀를 쫑긋 세우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듣는 게 아닌가? 전남 담양으로 시집간 S제자가 밭에서 일하다 말고 날 보러 온다고 하니, 기다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드디어 S제자가 세수만하고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왔다. 조문한 뒤에 KBS 1TV방송 ‘TV는 사랑을 싣고’ 장면이 벌어진 게다. 나에게 큰절을 받으라며 바닥에 엎드리려 했다. 말려도 기어코 하겠다는 게다. 유가족과 조문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마 오면서 다짐한 게 틀림없었다. 그 제자의 맘을 받으며 서서 인사를 하게 했다. 내가 순창읍내에 근무할 때 만났다며 사진까지 내밀었다. 졸업 땐 키가 크며 얼굴이 길쭉했고 웃는 모습이 예뻤다. 웃는 얼굴은 그대로였다. 만우절에 어여쁜 아가씨가 교문에서 기다린다고 해서 나갔다 왔다는 나도 모르는 추억을 이야기해 한바탕 웃었다. 농사지은 깨로 짰다며 참기름 한 병을 선물로 받았다.

 

  ‘코로나193월은 울게 했으나 4월은 벚꽃이 환하게 웃고 살자네요.

 지난 달 마지막 날, 지인들한테 보낸 문자 메시지다. 그 메시지가 내게 먼저 이루어질 줄이야. 장례식장에서 사회적 거리 생각보다 마음의 거리가 앞선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느라 두 시간이 넘었다. 나오다 또 전화로 Y제자의 목소리까지 들었다. 내 얼굴에는 올 때 본 벚꽃같은 미소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2020.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