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20. 5. 9. 18:03

동학농민혁명을 돌아보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동학농민군이 봉기한지 126년을 맞이하여 추모하는 마음으로, 농민혁명의 과정을 살펴보려니 벅찬 느낌이 들었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그 순환 과정이 복잡하고 주관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다. 따라서 최초 농민운동의 발발 동기나 역사적 배경도 지역마다 조금은 다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따라서 농민운동의 봉기원인과 과정은 이미 알려진 부문을 떠올리며 나름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농민봉기는 최초 정읍 고부에서 18943월에 일어난 민주화운동의 효시였다. 그동안 구한말 지배세력에 대한 폭동으로 알려지며 아쉽게도 ‘동학란’ 등으로 전해져 왔으나, 2019511일을 ‘동학농민혁명기념일로 제자리를 찾아 기념하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지 125년 동안 표류해오던 순수했던 농민운동이 ‘민주화의 상징이요 자주독립국가 주체성의 발로였음’ 을 만천하에 알리는 뜻 깊은 날이다.


 


 지난해 고창 무장 농민봉기기념식에 다녀왔다. 그 동안 정읍 고부 기념관을 다니며 의미를 새겨 왔지만 행사에 참여하여 겪은 현장 체험은 처음이었다. 농민봉기 125년을 자축하는 행사로 고창무장 일원에서 베풀어지는 군민 행사였다. 최초 정읍 고부에서 봉기하여 관군에 패한 농민군이 이웃 고창 지역의 접주들과 협심하여 1차 봉기 성공을 기념하는 자리에 진북농악동아리가 초청되었다.


 


 흰 보장에 대나무 죽창을 들고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밀집모자를 눌러 쓴 농민군 대오가 공음 구수분교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파랑새 노래를 합창하며 무장읍성을 향해 출발했다. 선두에는 전봉준을 필두로 좌우에 김개남 손화중의 깃발을 앞세우고 유채꽃이 만개한 비포장 황토길에 풍악을 울리며 행진하는 기분이 남달랐다. 앞뒤로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곳곳에서 관군과 교전해 가며 읍성에 다다르니 수많은 군중들의 열렬한 환영에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읍성을 마주하며 밀고 밀리는 싸움 끝에 현감을 비롯한 탐관오리들을 포박하고 전봉준이 성루에 올라 “사람이 인간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다. 사람이 나라의 근본이요 근본이다. 인간이 무너지면 나라도 무너지는 것이다.” 인내천의 동학이념을 설파하고 4대 강령을 정립한 선언문을 낭독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선언문은 농민혁명의 대의명분을 함축한 격문이 되었다. 그 동안 오합지졸이었던 농민군은 이 격문이 파급되면서 소규모로 투쟁하던 농민군이 대규모로 세를 규합하고 지휘체계를 갖춘 농민혁명군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였다.  


 


 언론사들의 취재경쟁 속에 경내는 음악이 흐르고, 흥에 취한 우리 동아리도 멋진 풍악을 울리며 함께 자축했다. 읍성 후원에 마련된 푸짐한 먹거리 장터에서 행사에 참석한 요원들이 정담을 나누며 흥겨운 뒤풀이로 마무리를 지었다.


 


 농민 봉기를 되돌아보면, 지정학적인 취약점을 지닌 조선은 중국대륙의 침략과 노략질을 견디며, 왜구의 음흉한 대륙진출의 야욕을 막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에 국력을 모아 외세를 물리치고 민심을 안정시켜야 할 조정의 위정자들은 상호 명분론으로 나뉘어 당파싸움으로 날밤을 지새노라 속절없이 국력이 무너지고 있었다. 당시 사회는 신분제도의 고착화로 대다수인 농민들은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생계수단으로 국가나 개인으로부터 농토를 빌려, 조세를 바치고, 별도로 부과되는 공납이나 노역에 참가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가운데, 극심한 혼란 속에 매관매직이 일상화 되면서 탐관오리들의 수탈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부패한 관리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세금 이중장부를 만들어 착취하는 것은 물론 납부를 못하는 사람에게는 체형이나 노역에 처하는 만행이 비일 비재했다. 따라서 농민들의 원성은 쌓여가고 있었다. 당시 장안의 양반들은 벼슬살이를 농지가 많은 호남지방에서 하기를 선호했다고 한다. 관리들의 착취를 가름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당시 사회적 혼란기에 나라의 주체사상인 주자학이 자리를 잃게 되며 인내천을 주창한 최재우 선생의 동학이 서민의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곳곳에서 핍박에 시달려온 백성들은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동학계몽운동에 스스로 동참하게 되었다. 이는 곧 사람 위에 사람없다는 인내천 사상으로 서민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정신운동으로 승화되어, 부패한 관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였고,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고자하는 순수한 욕구였다.

 익히 교과서에서 배운 바와 같이 정읍 고부에서 조병갑의 만행에 지친 농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여 분을 참지 못한 백성들이 전 봉준을 필두로 관에 저항하는 최초의 저항이요 봉기의 시작이었다. 이어 무장 부안으로 이어지며, 18944월 27일 전라감영 전주성을 점령하고 잠시 조정과 화친조약을 맺어 소강상태에 있었으나 왜구의 간계로 화친이 파기되고 말았다. 다시 농민들의 소요는 늘어나고 조정 스스로 진압하지 못하고 외세에 의지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으며, 이를 빌미로 왜구가 청일, 러일전쟁에서 승리로 이끌며, 사대문을 폭파하고 고종을 인질로 삼아 친일내각을 수립하는 경술국치의 근인이 되고 말았다.

 

 점점 나라의 전역이 청과 왜구의 전쟁터로 변하자,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농민운동은 부패한 관에 대한 항거에서 항일구국운동으로 전열을 가다듬게 되었다. 전라도 53개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근대적인 폐정개혁을 추진하던 농민군은 완주 삼례에서 재결집하여 전국에 격문을 보내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반일 항전을 전봉준이 선두에 나서며 전국적으로 확산해 나갔다.

 

 당시 전투에서 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게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라는 노래의 가사다드라마로 소개된 녹두꽃에서 신출귀몰하며 왜구를 무찌르는 전봉준 장군을 응원하던 노래다. 녹두밭은 농민군을 뜻하며 녹두꽃은 전봉준 장군을 추앙하며 농민군을 응원하는 백성들의 응원가였다. 용감무쌍히 싸우던 농민군은 겨울의 찬바람을 맞으며 북상하던 중 안타깝게도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과 왜군의 협공에 고귀한 생명들이 무참히 쓰러졌고,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동학 지도자들은 줄줄이 왜놈들의 심판대에서 고초를 겪으며 패전으로 마감하게 되었으니 비통한 마음뿐이다.

 

 1894년 12월 포로가 되어 서울로 압송된 전봉준은 왜놈 신문관에게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역적이라 칭함은 가당치 않다. 탐관오리를 징벌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왜놈들을 몰아내려는 게 무슨 죄가 되는가?” 라고 일갈한 뒤 최후 진술로 “광화문 네거리에서 내 목을 베어 사대문에 피를 뿌리라” 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니, 그 기개가 대단함을 엿볼 수 있다. 그 동안 곳곳에서 희생된 무명의 농민군 유해가 구천을 헤매고 있었으나 지난해 완산칠봉에 신설된 녹두관에서 영면하게 되었으니, 농민군들의 원혼을 달래 줄 수 있어 다행이다.


 


 동학농민혁명은 126년 전에 우리 고장 정읍에서 관리들의 학정에 경종을 울리고 외세침략에 앞장선 서민들의 구국충정운동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숭고한 서민정신으로 3.1운동, 4.19, 5.18 민주화운동의 효시가 되어 사람다운 사람을 위한 나라가 세워지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이제 나라의 고비마다 밝은 빛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당시 상황에 못지않은 난제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 미국 등의 외세에, 동족상잔을 촉발한 북한이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 변수다. 순수한 이성과 지성으로만 헤쳐 나가기엔 가로 막고 선 난제들이 너무 높고 험하다. 더욱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 창궐로 세계 경제가 한치 앞을 볼 수 없으니 모두의 불안은 커가고 있으니, 해법을 찾기가 묘연해질 뿐이다.

 지금처럼 동서로 갈려 이념의 대결을 치닫게 된다면 나라의 안녕이 매우 불안하다. 126년 전 우매한 농민들의 절절한 절규를 잊지 말아야할 시기다. 이제 총선으로 힘을 모았으니 반대를 포용하며 파당적 이념을 배격하고 국가의 불안을 해소하는 장의 마련에 앞장 서야 한다. 형 만한 아우가 없다는 격언을 되새겨 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2020.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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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0. 5. 9. 17:25

5월에 만난 친구들


                                       안골노인복지관 수필반 소종숙


 


 


 


  사방이 연둣빛 정원이다. 그동안 코로나19로 눅눅해진 감정을 꼬들꼬들하게 일광욕을 시키려는 듯, 두 친구와 함께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창밖에는 산과 들이 잔잔한 미소를 보내며 연초록 잎들이 왈츠를 추고 있었다. 하루에 3번밖에 버스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산속마을에 도착했다.


 


   사방이 숲과 나무들로 둘려있고 바람소리. 새소리. 계곡의 물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마을이 온통 연둣빛에 담겨 있다. 깊고 깊은 산속이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란 동요를 혼자서 가만히 불러보며 아이들과 같이 부르던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참 고요한 마을이다. 우리 세 사람을 반겨주는 듯 맑은 햇살이 미소를 보낸다. 같이 간 친구가 아들네 펜션이 그 마을에 있다며 우리를 펜션으로 안내했다. 펜션이 아담했다. 도심에서의 잡다한 생각을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펜션 뒤에 연푸른 신록이 덮인 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앞마당은 잔디가 깔려 있으며, 그 앞으로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앞에는 시선을 보내기에 적당한 거리로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사계절 숲과 나무들이 아름답게 장식해 줄 것 같았다. 펜션에서 친구가 마련해온 간단한 점심과 커피를 마시고 정원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를 오롯이 축복해주는 듯 씻기듯 푸른 하늘에 창공을 날고 있는 산새들이 머리 위에서 배회한다. 인적은 보이지 않고 우리들만의 세상같았다. 한 친구는 아들네 펜션에 머물고, 둘이서 산속물이 좋을 것 같아서 찜질방을 찾기로 했다. 계곡을 따라 산속 길을 걸었다. 아직 꽃 잔치가 막을 내리지 않은 듯 연푸른 신록사이로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루고, 아카시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를 뿜어냈다.


 


  한참 후에 황토찜질방에 도착했다. 조용하고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찜질방 창가에 닿을 듯 휘어진 연푸른 신록이 시야로 들어와 눈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수다를 떨 겨를도 없이 연둣빛 자연에 도취됐다. 물이 비누처럼 매끄러웠다. 갑자기 나선 길이라 오래 머물 시간이 많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부지런히 짐을 꾸려 가벼운 베랑을 등에 메고 찜질방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표지판을 보니 장파마을이었다. 아마도 모악산 자락인 듯싶었다. 처음 와 보는 곳이라서 생소하지만 가을이면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상상에 잠겨보았다. 버스가 도착했다. 멀리 온 것 같은데 시내버스요금이었다. 도심에서 시내버스 한 번만 타면 이렇게 좋은 휴식처가 있음을 느끼며 다시 찾고 싶었다.


 


  이곳으로 안내해준 친구가 고마웠다. 오늘 하루지만 온갖 시름을 내려놓고 5월의 자연을 오롯이 만끽할수 있어서 기분이 상쾌했다. 우리 세 사람은 죽마고우는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시청에서 같이 봉사도하고 젊은날의 추억이 서려있는 사이다. ‘김소월의 시 한절을 읊어 봤다. ’임은 사랑에서 반갑고/ 벗은 설움에서 좋아라’ 설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행복하다이 세상에 없는 다른 계절이 나에게 찾아와도 그곳에서 다시 만날 영원한 우정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 함께했던 시간을 서로 감사해 하며 헤어졌다.

                                                                     (2020.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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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0. 5. 9. 10:04

자운영(紫雲英) 꽃 필 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우리나라의 이른 봄 산야에 돋아나는 새순들은 대부분 독성이 적어, 생채무침이나 데쳐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춘궁기를 때울 반찬이되었다. 쌀이 귀하던 보릿고개 시절 논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독새풀(뚝새풀) 종자로 죽을 쑤어 밥 대신 먹었고, 연한 자운영 줄기는 나물이나 생채물김치로 만들어 허기진 배를 채워 부황(浮黃)에서 모면하도록 하느님이 내려주신 생명의 음식이었다.



 시골 부상마을 앞 논에는 자운영꽃이 만발하여 온 논이 자운영 양탄자로 변했다. 학교 운동장 외에는 놀이 시설이 없던 때라 친구들과 그 양탄자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자운영논을 뭉개면서 놀았다. 한참을 놀다 보면 옷에 자운영 풀물이 퍼렇게 들었고, 등이 따끔하여 보면 자운영 꿀을 따던 꿀벌까지 뭉개버려 꿀벌은 화가 났는지 내 등에다 벌침을 박아놓았다. 그 침은 그때까지 살아서 꿈틀거렸다. 자운영 꽃밭에서 여자 친구에게 꽃반지나 꽃목걸이, 손목시계를 만들어 건네주며 각시와 신랑 역할분담의 소꿉놀이는 나에게는 동화마을에서 보낸 신혼시절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자운영 꽃잎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아랫부분은 하얗고 끝부분은 분홍색으로 적셔져 있다. 석류를 쪼개어 알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떼어보면 역시 아래쪽은 하얗고 윗부분은 빨간색으로 투명한 작은 보석처럼 보여 어린 시절 나에게 자운영꽃은 쩍 벌어진 석류알을 연상하는 보석 같은 꽃이었다.


 


 옛날 농사짓는 비료는 화학비료가 아닌 퇴비(堆肥)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봄의 녹비작물(綠肥作物)로는 일부러 심는 자운영과 자연 발생의 독새풀이 농작물의 거름 노릇을 했다. 자운영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根瘤菌)가 기생(寄生)하면서 식물이 직접 이용할 수 없는 공중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질소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화학적으로 제조된 질소비료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농사에는 매우 중요한 질소공급수단이었다. 자운영 추출물은 청열(淸熱), 풍담해수(風痰咳嗽), 인후통(咽喉痛), 화안(火眼-결막염), 대상포진(帶狀疱疹), 외상출혈(外傷出血) 등을 치료한다. 어쩌다가 이웃집 아저씨가 자운영 논에 소를 매어 놓으면 소는 겨우내 굶주렸다는 듯이 자운영을 긴 혀를 내밀어 휘감아 뜯어서 우두둑우두둑 맛있게 먹는 소리가 군침을 돋게 했다. 이렇게 자운영은 녹비용, 사료용, 식용, 그리고 약용으로 버릴 것 없이 모두 사용했다. 자운영꽃 들판은 이른 봄 굶주림과 추위에 떨던 유년시절 꿈과 희망을 채워줬던 동화속의 삽화다.


 


 어머니는 자운영의 연한 줄기로 물김치를 만들어 주셨다. 자운영의 줄기가 아삭아삭 씹히면서 줄기가 터질 때마다 자운영 향이 입속 전체를 가득 채웠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어머니의 걸쭉하고 시원한 물김치가 인이 박혀 있다. 아내는 나의 물김치 식성을 알고 제철에 알맞은 재료로 물김치를 만들어 언제나 식탁의 단골 메뉴로 올려놓는다. 아버지는 모내기 전에 모두 세어버린 자운영을 수확하여 마당에서 며칠 동안 뒤적거려 말려 도리깨로 타작하여 씨앗을 털어냈다. 씨앗과 뭉개져 버린 줄기를 바람에 날려 씨앗을 골라냈다. 자운영은 콩과식물이어서 씨앗은 앙증맞게 아주 작은 콩 모양이었다. 자운영 씨앗은 단방약으로 쓰거나 가을에 종자로 쓰기 위해 아버지는 오쟁이 속에 넣어서 처마 끝에 매달아 두셨다.


 



 자운영 꽃의 전설은, 옛날 어느 산골에 마음씨가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결혼한 지 오래 되었지만,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간절한 소망은 바로 자식을 갖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가 밭에서 일하고 있을 때 한 나그네가 와서 하는 말이 저 산을 두 개 넘어 들어가면 폭포가 있는데 그곳에서 천 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기원을 드리면 아기가 생길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천일의 기도 후 세월이 지나서 그토록 소망하던 아이를 갖게 되었다. 아이를 붉은 구름이 깔린 듯 아주 멋진 풍경을 만들어 준 폭포에서 얻게 되어 자운영(紫雲英)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자운영은 날이 갈수록 아주 예쁜 처녀로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총각 임금이 사냥하러 왔다가 길을 잃어 자운영이 있는 마을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자운영의 예쁜 모습에 자운영과 임금은 서로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임금은 궁궐로 돌아가면서 나중에 다시 돌아와 왕비로 맞이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궁궐로 향했다. 자운영을 왕비로 삼으려고 했는데, 부모님과 신하들의 반대가 너무 강하여 고심을 했다. 한편 자운영은 임금이 돌아올 날을 기약하며 하루하루 애간장을 태우다가 임금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자, 그만 상사병을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임금은 부모님과 신하들에게 간절히 설득하여 기어코 자운영을 왕비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꽃마차를 준비하여 자운영이 있는 마을로 왔는데, 이런 임금을 본 자운영의 부모님은 임금이 야속했지만, 돌아와 준 것이 고마워 자운영은 임금님만 기다리다가 상사병이 심하여 결국에는 죽고 말았다고 이야기했다. 임금은 망연자실하여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운영의 무덤으로 가서 무덤을 쓰다듬고 눈물을 흘리면서, "조금만 빨리 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라고 탄식을 하면서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애틋한 임금의 눈물이 떨어진 곳에 진분홍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예쁜 꽃이 피어났는데 이 꽃이 바로 자운영(紫雲英) 꽃이라고 했단다.


 


자운영꽃의 전설을 보니 어쩌면 신분의 벽 때문에 새순처럼 청순하고 풋풋하게 피어나는 사랑의 싹을 인간들이 꺾어버려 절규를 토하는 핏물 들인 입술로 착각되어 애처로운 사랑이야기가 가슴에 피멍을 남긴다. 자운영의 영혼은 밤에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가 낮에는 들밭에 내려와서 이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있다. 그래서 자운영 꽃말은 누구에게나 골고루 사랑을 주는 관대한 사랑이었나 보다. 자운영은 비록 슬픈 전설을 안고 있지마는 살아서는 꽃으로 식자재로 그리고 가축 사료로 죽어서는 모든 식물의 비료로 생을 마감하는 자운영 영혼에 숙연해진다.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태양이 숨어주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자운영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자줏빛 구름 같은 꽃으로 환생했는가 싶다.


                                                                               (2020.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