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20. 5. 11. 15:30

생명줄

꽃밭정이 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반 전 용 창

 

 

 거리마다 하얀 쌀밥이 꽃으로 피어났다. 그것도 고봉밥으로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팝나무꽃을 보면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른다. 보리밥에 쌀은 조금만 있었고 고구마나 무채가 가득 들어있었다. 보리가 나오기 전인 이맘때는 보리밥도 귀해서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그 시절의 배고팠던 추억을 이팝나무꽃이 눈요기로 달래주고 있다. 가로수 이팝나무꽃을 보니 ‘쌀나무’라고 부르던 형님이 그립다. 형님은 지금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면회가 안 된다. 얼마 전에 질부와 통화를 했는데 호스로 식사를 하신다고 했다. 가족도 면회가 안 되고 요양사를 통해 근황을 들었다고 했다. 너무도 측은하다. ‘코로나 19’로 3개월 가까이 통제되고 있으니 온종일 열린 문만 바라보며 얼마나 외로우실까? 밤이 되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절대로 요양원에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는데 거동이 불편하니 별 수 없었다.

 

 내일은 어버이날이다. 혹시 특별 면회가 될지 몰라서 질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병원에 알아본다고 하더니 한참 뒤에 답신이 왔다. 점심시간에 1시간만 특별면회가 된다고 했다. 그것도 환자당 가족 2인만 된다고 했다. “질부, 나는 꼭 좀 보게 해주어!” 그렇게 면회가 이루어졌다. 질부와 11시 반에 H병원 로비에서 만났다. 장손자도 와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곧바로 프런트에서 면회 절차가 이루어졌다. 직원에게 체온측정을 받았다. 36.3도라며 잊지 말고 기록하라고 했다. 손 소독을 한 뒤 비망록에 환자 이름, 면회자 인적사항 및 관계, 체온, 연락처를 기재하고 713호 병실로 올라갔다. 형님께서는 얼마나 반가워하실까? 이산가족 상봉이 떠올랐다. 병실에 도착하니 우리 모습을 본 형님은 “허어”하시며 반가움에 손을 흔드셨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모습이었다.


 


  “형님, 얼마나 외로우셨어요? 우리는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했어요.

  “나도 알아.

  “카네이션은 누가 달아주었어요?

  “병원에서 달아 주었어.

  “아버님, 카네이션 받으세요."

 질부는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시아버지께 건넸다. 머리카락은 짧게 하시고 연신 웃는 모습이 하회탈을 쓴 동안(童顔)처럼 보였다.    

 “형님, 간호사가 손을 잡지 말라고 해서 악수를 못 해요.

 “무슨 소리야?

 하시며 형님은 덥석 나의 손을 잡으셨다. 나도 두 손으로 형님의 손을 꼬~옥 잡았다. 형님의 체온이 나의 손을 통하여 가슴에 도달하니 울컥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개를 돌렸다. 질부에게 핸드폰을 건네주며 형님과 함께 있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했다. 형님과 나는 카네이션 바구니를 함께 잡았다.

 “형님, 예쁘게 웃으세요!

 “알았어.

형님은 왼손으로 바구니를 잡고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며 ‘바이 바이!’하는 것 같았다.

 

 쌀가마니도 불끈불끈 들어 올리시던 손이 어쩌면 이렇게 뼈마디만 앙상하게 남으셨을까! 내가 울적해지자 질부는 얼른 말한다.

 “아버님, 한석이도 왔어요. 조금 있다 아비와 같이 올 거예요.

 “한석이?

 형님은 대를 이을 장손 ‘한석이’한테 예법을 가르치신다고 혼낸 적도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 예뻐하셨다.

 “형님, 조금만 있으면 면회가 자유롭다고 했어요. 그때까지 마음을 편안히 가지시고 건강하세요.

 불과 십여 분 남짓 면회한 것 같은데 간호사는 벌써 시간이 다 됐다며 나가야 한다고 했다. 정신 기운이 또렷하신 형님께서 일어서지 못한 채 병상에만 누워 계신지도 어느덧 일 년이 되어가고 있다. 구순을 앞둔 지난해 7월 초까지만 해도 힘이 넘치셨는데. 치매로 형수님이 몇 년 전부터 요양원에 계시니 홀로 지내는 삶이 지루해서 빨리 죽고 싶다고만 하셨다.


 


  밤마다 뜬눈으로 지새우기가 일수였고, 무료함을 달래려 술을 과음하게 되고 수면제를 드셔야만 잠을 잘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전기장판에 큰 화상을 입으셔서 하룻밤 사이에 이리되셨다. 형수님 보고 싶지 않느냐고 하면 이런 모습으로 만나면 뭐 하겠느냐며 잘 있냐고 만 물으셨다. 사실 ‘코로나 19’ 사태가 오기 전만 해도 다시 일어서실 줄 알았다. 질부가 영양식을 준비하여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섬기는지 날로 기력이 좋아지셨다. 그런데 3개월 사이에 저토록 몸이 밭으셨다. 음식을 삼킬 기력도 없으시니, 코에 호스를 끼워서 영양식을 공급하고 있다. 호스로 연결된 ‘생명줄’로는 생명을 오래 연장할 수 없다. 가족이 자주 찾아뵈어 효도를 다 하는 ‘사랑의 생명줄’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형님, 약한 마음 가지시면 안 돼요. 또다시 올께요.

 좀 더 있다 가라고 하는 형님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하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내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정철의 ‘훈민가’가 떠오른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성경 말씀에도 십계명 중 오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다. 효도가 백약보다 ‘생명줄‘을 길게 하는 명약이라는 것을 알고도 불효한 삶을 살아온 것 같아 후회가 막심하다.

 “아버지, 어머니, 편안하신지요? 어버이날에 산소는 못 갔지만, 형님 뵙고 왔어요. 곧 찾아뵐게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창밖에서는 ’쌀나무‘가 잘 가라며 고봉밥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2020. 5. 8.)


 
 
 

★수필♡

두루미 2020. 5. 11. 13:38
나의 부모님는...





​저는 정년퇴임을 한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긴 시간 교단에 서 있으면서 잊지 못할
특별한 제자가 한 명 있습니다.

제가 거의 초임에 가까웠던 옛 시절
어버이날을 맞아 아이들에게 '나의 부모님'에 대해
발표하는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이들은 차례대로 나와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저희 아빠는 무역 회사에 다니십니다.
간혹 유창한 영어로 전화 통화를 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입니다."

"아빠가 집에서 엄마를 부르는 호칭이 있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지
'왕비님'이라고 부르십니다."

아이들의 발표에 교실은 웃음이 번졌고
저도 같이 웃었습니다.
자기 부모님을 자랑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발표하러 나오는 걸 보고
제 가슴은 철렁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발표하러 나온 그 아이는 부모님 없이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모든 아이에 대한 배려가 모자란
저를 계속 질책했지만, 아이는 발표를 시작했고
저 때문에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남을 것
같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다른 친구들 앞에서
조용하게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돌봐야 할 자녀들이 많습니다.
저희 때문에 항상 바쁘시지만, 밤에 불 끄고 누우면
잘 자라, 사랑한다고 큰소리로 말씀해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잠들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제아무리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상황이어도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불행에 빠지지 않습니다.

지금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누어 주십시오.


# 오늘의 명언
사랑은 가장 가까운 사람,
가족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마더 테레사 –


 
 
 

★수필♡

두루미 2020. 5. 11. 03:49

잔디밭과 마음 밭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제철

 

 

 

  제초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잡초 때문에 답답했다는 듯 파란 잔디가 얼굴을 내밀었다. 원래의 그 자리는 잔디가 주인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별별 잡초씨앗이 날아와 자기들의 자리인 양 둥지를 틀고 세를 넓히더니 잔디밭을 점령해버리고 말았다.

 

 잡초란 인간에 의해서 재배되지 않고 저절로 나서 자라는 잡다한 풀로서 어찌 보면 귀찮은 존재다. 하지만 먼 옛날에는 잡초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숨은 가치가 발견되어 인정을 받거나 집단 재배를 하기도 한다. 웰빙식품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귀리나 간에 효능이 있어 건강식품으로 대우를 받고 있는 엉겅퀴나 민들레 등은 대표적인 예이며 잡초도 잘만 태어나면 대우를 받는다. 전체 식물의 5%정도만 식용과 관상용이며 나머지 95%는 잡초라고 한다.

 

 잡초는 내버려두면 강한 생명력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덮어 버리고도 남을 것 같은 기세로 종족을 번식 시킨다. 단단한 콩크리트 바닥이나 아스팔트 바닥도 잠시만 사용하지 않으면 점령하고, 아무리 좋은 집도 방치하면 제일 먼저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잡초다. 같은 식물임에도 사람으로부터 천대받고 밟히다보니 어떻게든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존의 본능일 것이다. 그뿐 아니다. 사람의 보호를 받는 식물을 싫어하고 시기까지 하는 모양이다. 사람이 필요로 하는 5%의 식물은 사람의 보호 없이 잠시만 방심하면 강한 잡초가 흔적조차도 없게 만들어버린다.

 

 잡초를 없애려면 뿌리까지 뽑아야한다. 옛날 우리어머니들은 콩밭의 잡초를 매고 아버지들은 논매기도 했다. 나 어릴 때는 농약이 없었다. 기껏해야 벼논에는 모래에 폐유를 섞어 뿌리고 긴 장대로 벼를 털고 다닌 것이 전부였다. 칠갑산이란 노래에는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라는 노랫말이 있다. 베적삼이 흠뻑 젖을 만큼 힘들게 콩밭의 잡초를 맸기 때문에 나온 노래다. 하지만 지금은 베적삼이 젖을 일도 없다. 잔디만 살고 다른 잡초는 다 죽는 농약이 있는가하면 콩밭에 뿌리면 콩만 남고 잡초는 다 죽는 농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잡초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잡초가 내 마음속에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원래의 내 마음엔 양심(良心)이라는 마음밭이 있다. 이 밭을 일러 심전(心田)이라 하며 원래 내 마음의 주인이다. 그럼에도 잡초가 잔디밭을 덮어버리듯 내 마음 밭에도 잡초가 난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나쁜 마음의 잡초가 나기도 하고 남을 해치려는 마음의 잡초가 나기도 한다.


 


  공원의 잔디밭은 관리사가 제초기로 잡초를 말끔히 깎아 버리거나 농약을 살포하여 잔디만 보호할 수도 있다. 보이지도 않는 마음의 잡초는 어떻게 없애야할까? 양심인 심전(心田)을 관리하려면 어머니들이 콩밭 매듯 잡초의 뿌리까지 뽑아내는 수밖에 없다. 잠시만 마음을 챙기지 않고 방심하면 나고 또 나는 것이 심전의 잡초다.

 

 성자(聖者)들은 사람이 지켜야할 계문(戒文)을 내놓았고, 형사법을 비롯한 수많은 규제법은 본래의 내 심전인 양심을 지키고 잡초는 자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잔디가 자기의 본래 자리를 잡초에 빼앗기고 있다가 제초기의 힘을 빌려서 얼굴을 내밀듯, 내 마음속의 잡초도 시원하게 제거하고 양심이라는 심전(心田)만을 오롯이 갖고 싶다. 요란한 굉음을 내는 제초기에 잡초는 힘없이 잘려나간다. 잡초 속에 숨도 못 쉬던 잔디는 그 굉음이 행복하고 즐거운 노래로 들릴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런 굉음을 행복의 노래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는지 조용히 생각해 본다.

                                                    (202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