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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0. 8. 4. 04:44

아이와 어른의 생각




동심이 가득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래 문장을 보면 무엇이 생각나나요?"

1. 이건 작지만 들어있을 건 다 들어 있어요.
2. 아빠가 출장을 가도 계속 남아 있는 거예요.
3. 어른들이 어린이가 다 갈 때까지 보고 있어요.
4. 이건 딱 손가락만 해요.
5. 엄마랑 목욕하면 이걸 꼭 해야 해요.
6. 이게 있으면 물건을 못 버려요.
7. 우리 엄마가 기분 좋을 때 아빠한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무지 화나면 혼자서도 해요.
8. 엄마가 아빠랑 외출할 때 맨날 이걸 해요.
9. 차에 친구가 안 타면 안 탔다고 소리치는 거예요.
10. 엄마가 아빠에게 닭고기를 주실 때 그중
제일 맛있는 부분을 골라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 답들이 떠오르셨나요?
아이들은 아래와 같은 순수한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1. 씨앗
2. 걱정
3. 시골
4. 콧구멍
5. 만세
6. 정
7. 팔짱
8. 변신
9. 우정
10. 사랑





여러분이 생각한 답과 어떠신가요?
굉장히 많이 다르지 않나요?

이렇게 아이들과 어른들의 생각이
다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렇게요...

** 아이와 어른의 생각이 달라지는 이유 **
(아이-순수함)+이기심=어른



# 오늘의 명언
단순한 것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다.
어린아이와 동물의 세계에서 찾을 수 있는
매력도 그 단순함 속에 있다.
- 파스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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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0. 8. 3. 11:19

가요계의 트로트 열풍

김 학

요즘 가요계에서는 트로트 열풍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고 있다. 어린이도 어른도 트로트 가수가 되겠다고 도전하고, 방송사마다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에서 푸짐한 상품을 내걸고 노래 경연을 시킨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싫어할 수 없다. 나도 조금만 더 젊었다면 트로트 가수가 되려고 도전해 보고 싶을 정도다.

나는 매주 토요일이면 KBS-2TV에서 방송되는『불후의 명곡』을 즐겨 시청한다. 그 프로그램에서 인기 가수들은 물론 낯선 가수들도 많이 만난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노래가 마치 높은 소리 내기 시합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 구별도 없이 높은 음을 내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때로는 귀에 거슬린다. 남성 가수들의 테너나 바리톤 음성은 들을 수 없고 오직 여성의 소프라노 음성만이 최고인 양 평가되는 것 같아서 아쉽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 가수들도 목소리를 갈고 닦아서 가늘고 뾰족하게 만들어 여성의 목소리를 이기려고 하는 느낌이 든다. 남자 가수들조차 여자 가수들의 높은 소리 내기 경쟁에 뛰어드는 것 같아 호감이 가지 않는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트로트가 가요계를 주름잡고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판소리 소리꾼인 송가인이 트로트 가요계에 뛰어들어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성악가인 김호중도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여 사랑을 받는다. 굵은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트로트 가수가 되니 그들이 출연하는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에 호감을 느낀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트로트 가수들의 목소리는 굵고 투박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나름대로 감미로운 목소리로 듣는 이들의 감정을 사로잡는다. 요즘은 트로트가 대세라서 그렇겠지만, 방송사마다 새로운 음악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 프로그램을 맡은 PD들은 시청률 때문에 얼마나 고뇌가 클까?

요즘 트로트 가수로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이들은 거의 모두가 KBS전국노래자랑과의 깊은 인연을 내세운다. 어릴 때부터 KBS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여 상을 받은 이들이 많다. 어떤 트로트 신인가수는 무려 네 번이나 출연하여 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90대 중반의 KBS전국노래자랑 MC 송해 선생과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KBS전국노래자랑은 트로트 가수의 산실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 같다.

가요계를 보면 오랜 세월 무명가수로 살다가 어느 날 노래 한 곡이 히트하면 인기가수로 떠올라 스타가 되곤 한다. 대표적인 트로트 가수가 우리 고장 정읍 출신 송대관이다. 그의 히트곡은「해 뜰 날」이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 단다.’라는 가사처럼 이 노래 때문에 송대관은 인기 가수가 되었다. 그 노래 때문에 송대관은 오랜 무명시절의 슬픔을 씻고 가요계에서 제왕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런 스타가수가 되면 이 방송 저 방송에 출연하노라 바쁘고, 전국 방방곡곡의 크고 작은 행사에 초대를 받는다. 그러면 언제 배고픈 시절이 있었느냐 싶게 호주머니도 두둑해진다. 지금도 그런 대박을 기대하며 가요계를 기웃거리는 이들이 많다.

KBS는 또 『트롯 전국체전』이란 프로그램을 신설했다고 예고를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단 한 사람의 가수가 금메달을 받고 트로트가수로 혜성처럼 등장하게 될 것이다. 전국 8도의 대표가수에서 글로벌 K트로트의 주역이 될 새 얼굴을 찾으려는 KBS의 대형 프로젝트 프로그램인 셈이다. 과연 어떤 트로트가수가 태어날지 자못 기대가 된다.

우리나라 문단(文壇)을 보아도 가요계나 크게 다를 바 없다. 해마다 신문사의 신춘문예에서 당선의 기쁨을 누리려고 노심초사하는 문학청년들이 많다. 신춘문예에서 당선을 하지 못하면 각종 문예지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여 문인으로 등단하기도 한다. 문예지에서 시인이나 수필가, 소설가, 평론가 등으로 등단하면 문인으로 대우를 받는다. 가수가 히트작을 남겨 대박을 터뜨리듯 문인들도 대박을 터뜨리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문인들은 날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를 굴리며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그리 쉽게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도 수필가로 등단한 지 40년이 되었고 1,000여 편의 수필을 발표했지만 아직 송대관의「해 뜰 날」처럼 대박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가요계보다 문학계가 대박을 터뜨리기에 더 어려운 것 같다.

가요계에서 트로트 열풍이 불듯 문학계에서도 수필열풍이 불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글을 쓰는 맛도 쏠쏠하다.

(2020.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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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0. 8. 3. 05:52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일요일 아침은 언제나 김치볶음밥이었다. 여학교 졸업 후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에 요리를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일요일엔 내가 김치볶음밥 요리사! 신 김치를 잘게 썰어 푸라이 팬에 넣어 달달 볶으며 흥겨워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시절에는 정년이 빨랐다. 아버지가 정년퇴임 후에도 동생들이 학생이어서 어머니와 같이 전주역 앞에서 조그마한 중국집을 경영하셨다. 지금은 고속버스 또 승용차로 왕래를 하지만 그때는 기차가 주요 운송수단이었다. 주로 밤에 이용하는 손님이 많았기에 아버지 어머니는 가게에서 밤샘 하시는 날이 많았다. 동생들은 이불을 둘둘말아 자고 있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배고픈 일요일 아침, 가족들보다 일찍 일어나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일은 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먼저 일어난 나는 달궈진 푸라이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신 김치와 참치를 달달 볶다가 찬밥을 넣고 고슬고슬 볶았다. 대파와 양파, 감자를 썰어 간을 하고 돌김을 잘게 부수어 뿌려 준다. 그리고 그 위에 달걀을 풀어 푸라이 해 꽃잎처럼 볶음밥 위에 올려 내면 볶음밥 완성! 그렇게 볶음밥이 완성되면 우리는 푸라이 팬 주위로 동그랗게 모여 앉아 숟가락을 부딪치며 밥을 먹었다. 하얗게 끓인 콩나물국을 곁들여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푸라이팬을 비우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뒤집어 쓴 이불 사이로 고개를 삐죽 내밀고 엎드려 텔레비전을 봤다. 김치 냄새를 빼려고 열어 둔 문사이로 불어 들어온 상쾌한 바람이 방안 깊숙이 쏟아지던 노오란 아침 햇빛, 햇살 사이로 먼지들이 동동 떠 다녔다. 나는 그것을 일요일의 공기라고 했다. 일요일의 공기는 동생들과 나의 체온으로 적당히 데워진 따뜻한 방안의 온기와 고소한 김치볶음밥 냄새, 시끄러웠지만 경쾌하게 들렸던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일요일은 평화로웠다. 그리고 행복했다. 일요일은 짧기에 더 행복했고 아름답게 빛났다.

젊음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붙잡아도 언제까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잠깐 머물다 사라진다.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기에 더 마음껏 누리려고 했었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김치볶음밥을 그리워 했다. 지금은 다들 결혼하여 손자손녀를 본 동생들도 나처럼 그때의 김치볶음밥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혼자일 때는 덩그러니 앉아 텔레비전도 끄고 조용한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그것도 귀찮아 몸을 움직이기 싫어 거실 가운데 멀뚱히 앉아 김치볶음밥의 일요일을 상기했다. 세상에서 김치볶음밥이 가장 맛이 없다고 하며 먹기 싫어하는 남자와 일생을 함께 살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일요일 아침이었을 게다. 신경통이 심해 날이 찌푸린 날이면 늦게까지 자리에 누워 들썩이는 나에게 그가 불렀다.

"이게 뭐야? , 김치볶음밥 좋아 하잖아? 내가 만들어봤지."

 

접시 가득 김치볶음밥이 담겨져 있었다. 고맙기도 하고,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감동했지만 갑작스러워 어리둥절하고 감동한 티를 내려니 수줍고 부끄러웠다. 한 숟가락 떠먹었다. 기대로 가득찬 눈이 반짝 빛났다. 쌍까풀진 큰 눈이 더 커 보였다. 별 맛은 없었지만 감동해 턱이 움직이고 입안에 가득 침이 고였다. 고기는 싫어하고 냄새 지독한 김치를 좋아한다고 핀잔을 주던 남편이 아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진지했다. 아삭한 김치가 씹히고, 잘게 부서진 참치가 혀를 간질이고, 기름진 밥알이 요리조리 입속에 굴러다녔다. 입안 가득히 퍼지는 향긋한 김치 향!

‘무슨 맛이지?’ 남편도 한 숟가락 떠먹었다. 얼굴이 살짝 찡그려지더니 큰 코 평수가 서서히 넓어 졌다. 나오는 웃음을 참고 맛있게 먹었다. 실망해 하며

"어떡하지? 맛이 없네!"

"왜, 맛이 없어? 맛있게 먹었는데."

김치국물을 퍼 부운 빨간 김치볶음밥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나를 위해 만든 정성이기에 정말 맛있는 김치볶음밥이었다고 칭찬해 주었다.

장마로 한 달이 넘도록 폭우를 퍼부었다 멈추었다 반복하고 있다. 올해의 휴가는 아들네와 함께 했다. 강원도엘 갔다. 산속의 여름은 장대비가 쏟아지려는지 공기는 낮게 가라 앉아 내 허리춤쯤에 머물러 있었다. 그날 나는 일요일의 공기를 선물했다. 40년이 훌쩍 지나 잊혀진 추억의 공기를! 새벽 일찍 일어나 김치볶음밥 대신 카레볶음밥을 했다. 서로 대화를 나누며 먹었다. 식성이 까탈스러운 아들은 불평이 가득했다. 며느리는 소리 없이 먹으며 맛이 있다고 했다.
식성이 더 까칠한 손자는 삼겹살을 구워 주었다. 샤워하고 닦지 않은 것처럼 땀이 줄줄 볼을 타고 흘렀다. 더워서 숨을 쉴 수 없었지만 웃었다. 행복했다.

"아들, 아무말 하지 말고 맛있게 먹어."

"엄마, 처녀 때 외삼촌과 이모의 추억이 나네요."

카레향은 호텔 거실을 떠 다녔다. 손자는 떼굴떼굴 구르며 노래를 부르다가 엎드려 만화책을 읽었다. 아들내외와 커피를 마셨다. 거실은 적당한 온도였다. 잊혀져 사라졌을까? 그리워 할 때마다 꺼내어 주는 일요일의 공기, 거실 밖에는 장맛비가 그칠 줄 모르고 산속의 공기는 우울한 듯했지만 우리 가족은 부른 배를 두드리며 큰대 자로 누워 노래를 부르며 행복했다. 진짜 맛이 없어 구역꾸역 먹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하지만 눈가에는 행복이 그득했다. 그날은 많은 비가 내렸다. 비내리는 날은 언제나처럼 행복을 선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