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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0. 8. 5. 14:56

작은 배려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정석곤

 

 

 

“대변(大便)을 참으면 약이 되고 소변()을 참으면 병이 된다.

어릴 때부터 자주 들어온 말이다. 옛날 어른들의 말이 틀린 게 없지만, 대변도 밖으로 나오면 약이 되는 수가 있으나 참으면 변비 등 심하면 직장암까지 유발할 수도 있다.

 

점심을 먹고 쉬었다가 은행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한참 걸으니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신호가 왔다. 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가 큰 볼 일을 본다. 보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간다. 이제는 습관이 돼 건강생활을 하고 있다. 어쩌다 한 번씩은 그 습관이 깨지기도 한다. 오늘 아침도 큰 볼 일을 봤는데 아침과 점심을 과식해서 그런 것 같다.

 

집으로 되돌아갈까? 전주공설운동장 앞 야외 화장실이 생각났다. 은행까지 가보려 발걸음을 재촉했으나 급하다는 신호가 빨라졌다. 장맛비는 그치지 않고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은 선진국 수준 이상이다. 화장지는 밖에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해 놓고 각 칸에도 걸어 두었으려니 싶었다. 두리번거리며 화장지를 찾았다. 없었다. 각 칸마다 두 번이나 열어 보았다. 아예 화장지를 안 걸어두었다. 급하긴 한데 화장지는 없고….

 

다행히 가운데 칸 양변기 위에 각() 티슈(tissue) 화장지가 낱장으로 구겨져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앞에 사용한 분이 두고 간 게다. 눈이 번쩍 띄며 절로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 가 나왔다. 볼 일을 마치고 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 같았다. 앞에 분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내 위기를 해결해 주었다. 사용하고도 남았다. 나보다 더 급한 사람을 생각해서 아껴 썼다. 그 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얼굴 없는 작은 천사가 분명하다. 만약 그 천사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찔했다.

 

그저께 받은 휴대폰 카카오 톡의 ‘따뜻한 실화’가 생각난다. 젊은 컴퓨터 상인이 어느 시골 아주머니의 부탁으로 서울에서 할머니와 6학년 딸이 사는 집에 중고 컴퓨터 한 대 설치를 주문받았다. 열흘 뒤에 쓸 만한 컴퓨터를 설치했다. 딸애는 환호성을 지르며 학원엘 갔다. 작업을 끝내고 나오는데 버스정류소에 딸애가 서 있었다. 학원이 자기 집과 반대 방향이지만 태워다 주기로 했다. 십 분쯤 가다 급히 화장실에 가고 싶어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조수석 시트를 보니 피가 묻었다. 첫 생리리라 짐작됐다. 당황할 아이가 생각나 청량리역 근처까지 가서 속옷을 사고 아내를 나오라 했다. 아내 말대로 생리대와 아기 물티슈와 치마를 샀다. 아내를 화장실로 들여보냈다. 아이는 그 때까지 울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아이가 아내와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아내는 엄마 대신 첫 생리를 축하해주며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컴퓨터 값을 22만원 받았는데, 다시 가서 10만원은 되돌려 주고 왔다. 두어 번 읽어도 콧잔등이 시큰하고 마음이 짠했다. 이런 젊은 부부가 있으니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싶었다.

 

P 문인이 쓴 수필을 읽었다. 병원에서 남편을 간호할 때였다. 옆 침대에는 아버지에게 간 이식수술을 해드린 아들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재우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자려고 해 엄마가 아들 뺨을 계속 때렸는데 혈관이 터져 출혈이 되는 줄도 몰랐다. 문인은 청년이 창백한 얼굴로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어 쇼크 상태임을 직감하고 곧바로 간호사들에게 알렸다. 청년은 바로 수술실로 이송돼 재수술을 받았다. 평소에는 남의 침대를 잘 기웃거리지 않는 성격인데 아찔한 순간이 자기 눈에 띄어 그 청년을 구한 것이라고 했다. 순간적인 배려가 큰일이 날 뻔했던 위기를 구한 게 아닌가?

 

세상에 홀로 피는 꽃이 없듯이 나 홀로 사는 사람도 없다. 누군가 나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 온 것도 수많은 얼굴 없는 천사들의 크고 작은 배려가 쌓인 거라 여기고 감사를 드린다. 청소년 시절부터 일일일선(一日一善)이란 말을 좋아하며 좌우명으로 삼고 싶어 했었다. 이웃을 배려하며 사는 걸 최고의 선으로 삼았다. 그렇지만 내 생활은 앨범 속에 있는 빛바랜 흑백사진 같아 마음이 아프다.

 

바둑 고수는 바둑알 한 개를 놓을 때 몇 수 앞을 보느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도 작은 행동 하나라도 이웃을 생각하고 몇 수 앞을 내다보며 결정하고 싶다. 그러면 내 작은 배려가 앞의 세 분처럼 언젠가 누군가에게 위기를 넘기게 했다는 이야길 들을 때도 올 것이다.

(202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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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0. 8. 5. 12:19

달님은 나에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해와 달은 우주 질서의 어버이시다, 생명체들에게는 따뜻한 빛과 에너지를 주시어 만물이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위대한 힘이다. 이 세상 어디를 가나 누구에게나 편애하지 않고 사랑과 희망을 골고루 나누어준다. 그래서 해와 달이 사라진다면 암흑의 동토(凍土)에서 모든 생명체도 함께 사그라질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은 해와 달의 고마움을 알면서도 때로는 잊고 살고 있다. 하늘에 달이 없다면 내 가슴에 희망도 없다, 희망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달님은 내 삶의 희망이다.

 

해님은 온종일 이글거리게 달구어진 얼굴을 밤에는 깊은 바다물속에서 식혔다가 동쪽 바다로 기어올라 또 하루를 이글거리며 세상을 비춘다. 달님은 사람들이 낮에 일하고 밤에는 편히 쉬면서 곤히 잠자라고 아주 조심조심 나오셔서 작은 호롱불 같은 빛을 비춘다. 해님과 달님은 하늘나라 어느 마을에서 서로 오순도순 사시지만, 낮과 밤에 우주의 삼라만상을 위해 하시는 일이 서로 달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실 겨를도 없는 것 같다. 때로는 벌건 대낮에 또는 깊은 밤중에 꼭 할 말이 있는지 다정히 부둥켜안고 속삭이면서 시간 가는 것도 잊으셨는지 해와 달님의 그림자는 온 세상을 순간 암흑의 세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조금 기다리면 될 것을 사람들은 하늘의 해님과 달님한테 시기하는지 고함을 지르면 깜짝 놀라 부둥켜안았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시면 세상 또한 서서히 밝아진다.

 

달님은 아무래도 여성스러움이 많으신지 너무 환한 불빛보다는 아늑한 호롱불을 좋아하시는 것 같고, 많은 사람이 우글거리는 광장보다는 한적한 쉼터를 좋아하실 것 같다. 언제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마음씨 고운 시골 큰누나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작은 소망이든 큰 소망이든 해님보다는 어쩌면 달님이 더 살갑고 소망도 잘 들어줄 것 같은 선입견으로 언제부터인가 달님 앞에 애절하고 간절하게 비는 모습이 내려오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어머니도 새벽에 일어나셔서, 부상마을 앞 시대산에 떠올라 집 뒤 작은 동산으로 넘어가시는 달님을 향해 우물에서 제일 먼저 정화수(井華水)를 길어다가 장독 위에 올려놓고 달님께 기도드렸던 모습을 줄곧 보아왔다.

 

나는 군대 생활은 의정부 쪽 모 군단 본부에서 근무했었다. 군대 입대하기 전 사회에서 마무리를 못 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입대 무렵에는 수세미 속같이 헝클어진 마음을 그대로 안고 입대했었다. 겨울밤에 보초 군장(軍裝)을 차리고 연병장을 걸어가면 바스락바스락하면서 얼음 조각 깨지는 소리뿐 적막한 전선의 밤이었다. 오늘도 부모님과 동생들은 어떻게 지냈는지, 나와 관련된 입대 전의 일들은 잘 마무리되어 가는지, 혼자 묻고 혼자 답하다가 초소에 도착했다. 사람 냄새는 없고 총기 청소 때 바르고 닦았던 총기 기름 냄새와 총구에 남아 있는 화약 냄새, 그리고 군 장비와 전투복에서 나는 군대 특유의 냄새가 전부였다. 그런 냄새를 전우라 생각하고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가끔 삭풍은 철모를 윙윙거리며 지나갔다. 그런데 구름 속에 숨었던 달님이 둥근 얼굴을 내밀면서 병사를 위로해 준다. “연식아, 걱정하지 마! 내가 낮에 살짝 너희 집에 다녀왔어. 가족들도 잘 있고 나머지 일도 잘되어 가고 있어.그때부터 나는 달님한테 밤마다 고향 소식을 듣는 것이 군대 생활의 낙이었다. 으레 취침 전에는 연병장에 나가 웃어주는 달님의 얼굴을 보고 막사로 들어왔다. 그때서야 안심하고 침상에서 나팔수의 취침 나팔소리에 군대 모포로 눈시울을 닦으면서 잠을 청하곤 했다. 내일 새벽에 어머니는 장독대 정화수에 비친 달님한테 이 자식의 소식을 듣고 안심하시면서 식구들의 조반 준비를 위해 부뚜막에서 군불을 지피실 것이다.

 

언제인가 직장 상사와 언쟁이 있어 사무실에서 심하게 다툰 적이 있다. 퇴근 무렵에 다툼의 경유를 떠나서 나이 어린 내가 잘못했다고 느껴 상사를 모시고 저녁 식사 겸 못 마시는 반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상사를 모셔다 드렸다. 집에 휘청휘청 걸어가는데 길이 살아서 움직였다. 도저히 걸을 수 없었다. 여름날이라 밤공기가 후텁지근하여 잠깐 비포장도로에 앉아있으니, 촉촉한 땅 온도가 시원하여 그대로 누우니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잠자리였다. 노상에서 얼마나 잠을 잤는지 깨고 보니 달님이 서쪽 하늘에서 측은한듯 나를 바라보며 내려가지 못하고 그때까지 서 있었다. 달님한테 미안하여 정신이 번쩍 들어 몸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갔다.

 

특히 지금도 보름날 외지에서 집에 늦게 돌아올 때는 자동차의 차창을 내리고 긴 호흡을 하면서 달님과 얼굴을 꼭 마주치면서 안부를 묻는다, 아파트에서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보름달을 보거나, 한밤중에 화장실을 갔다 올 때 거실이 유난히 밝아 달림의 얼굴이 비치면 나 때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달님을 위로하고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 사회생활 중에도 일이 잘 안 풀리고 속이 상할 때는 밖에 나가 하늘의 달님한테 하소연하면 속이 후련하다. 달님은 속상할 때만 와서 푸념만 하지 말고, 좋은 일 있을 때도 와서 기쁘게 해 달라고 한다. 달님은 언제나 내 편이었다. 달님은 시골에 가면 시골로,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그곳까지 따라온다. 아마도 철부지 동생이 못 미더운가 보다.

 

당나라 시선(詩仙) 이태백은 달은 어둠을 밝히는 이상의 빛이자 낭만적인 미신(美神)이기도 하여 양자강 뱃놀이 중 술에 취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물속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1969720일 미국 닐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 달 착륙선 '이글호'에서 달 표면 고요의 바다에 인류 최초 발을 내디뎠다. 그래도 달님은 이태백도 닐 암스트롱도 다 싫고 나만 기다린다. 이런 우주과학 시대에도 청춘남녀들은 태초의 혼돈시대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사랑의 징표인 달님을 보며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미래를 약속한다. 얼마나 멋지고 의미 있는 청춘들인가? 나는 갑순이와 갑돌이의 노랫말처럼 슬픈 결말로 끝나더라도 그렇게 못 해봤던 청춘이 너무나 야속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 소꿉친구도 나처럼 저 달을 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나를 붙들어 놓는다.

달님은 나에게는 영원한 어버이시다. 달님은 나에게는 평생 동반자이다. 달님은 나에게는 소꿉친구다. 언제인가는 옥황상제께서 하늘의 무지개 사다리를 내려 주시어 달님 나라에서 돌아가신 부모님도 만날 것 같고, 평생 동반자 그리고 소꿉친구들도 같이 살 것 같은 달님은 먼 훗날의 내 고향이다.

(2020. 음력 5월 보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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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0. 8. 5. 07:09

그날의 함성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운일암반일암’ 雲日巖半日巖 이름만 들어도 설렌다. 우리 고장 진안고원에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馬耳山)’이 있고, 바다 같은 ‘용담호’가 있다. 여기에 산과 천을 다 갖춘 천혜의 요새 같은 ‘운일암반일암’이 있으니 진안의 3대 관광명소이자 나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운일암반일암’만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관광명소가 어디에 또 있을까?

‘운일암반일암’은 운장산(雲長山 1,125m) 줄기, 명덕봉과 명도봉사이 약 5km에 이르는 ‘주자천’ 계곡을 일컫는다. 계곡 양 옆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오로지 하늘과 돌과 나무와 오가는 구름뿐이어서 ‘운일암’이라 부르기도 하고, 깊은 계곡이라 하루 동안 햇빛을 반나절밖에 볼 수가 없기에 ‘반일암’이라 부르기도 하여 두 이름이 힙쳐져 하나가 되었다.

 

‘1970년도 대학교 신입생 때였다. 친구들과 함께 배낭을 메고 이곳으로 피서를 갔었다. 계곡 상류에 텐트를 치고 코펠과 버너를 꺼내어 밥도 지어 먹었다. 저녁이 되자 반주로 시작한 술은 잔이 돌아가며 한 곡씩 노래도 불렀다. 미리 준비한 나뭇가지 더미에 불을 붙였다. 타오르는 모닥불 주위에 삥 둘러앉아서 장래 이야기도 하며 ’캠프파이어‘를 즐겼다. 통기타를 치며 계곡이 떠나도록 노래도 불렀다. 박인희의 ’모닥불‘ 노래를 불렀고, 윤형주의 ’조개 껍질 묶어‘ 노래도 불렀다.

 

‘랄랄랄랄라라~ / 랄랄랄랄라라~

조개 껍질 묶어 /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앉아 / 밤새 속삭이네‘(중략)

 

우리의 술 파티는 밤이 깊어도 멈추지 않았다. 산속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고성방가를 하니 화가 난 동네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다. 어둠 속이라 몇 명이나 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취하지 않았으면 정중히 사과했으면 해결될지도 몰랐다. 그런데 우리 중에 의협심이 강한 G 친구가 먼저 나가더니 그들과 시비가 붙었다. 그는 술을 들으면 ‘장진주사’를 읊으려 술도가니 바닥을 보려 한다. 아마도 ‘정철’ 선생의 술 ‘예찬론’ 영향이라고 본다. 정철은 자신만 술과 친구 하지 뭐하러 이 시조로 발표하여 친구까지 술꾼으로 만들었을까? 그가 미웠다.

 

‘한 잔 먹세 그려 / 또 한 잔 먹세 그려 /

곳 것거 산 노코 / 무진무진 먹세 그려 /(중략)

 

친구가 나간 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그들은 몽둥이를 들고 우리한테 오더니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텐트도 까뭉개고 기타도 박살을 냈다. 수적으로도 약세지만 칠흑 같은 밤에 술에 취해서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비틀거리며 우리끼리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제대로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한 채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고생한 추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했던가? 돌이켜 생각해봐도 우리가 너무 잘못했었다. 지금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다. 칠순이 된 친구 4명이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날리며 다시 ‘운일암’을 찾았다. K 친구가 엊그제 이곳으로 캠핑을 왔었는데 너무도 좋았다며 우리를 자기 차로 안내했다. ‘장진주사’를 즐기는 G 친구는 몸이 아파 합류치 못했다. 가는 길에 부귀 ‘덕봉정’가든에서 점심을 했다. 버섯전골에 소고기 샤부샤부였는데 오랜만에 맛있게 들었다. W 친구가 언제 나가서 계산을 했다. 그는 항상 친구를 위하여 먼저 지갑을 연다. 오디 농장을 경영하는데 올해에는 냉해로 오디 수확이 예년보다 30%나 감소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마음만은 풍요로웠다. 우리가 ‘운일암반일암’ 캠핑장에 도착하니 주말이 아닌데도 크고 작은 캠핑카가 20여 대가 있었다. 가족 단위로 와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렇게 남들처럼 살아보지도 못하고 아까운 청춘이 다 간 것 같아서 못내 아쉬웠다. 많은 사람이 와 있는데도 계곡의 물소리만 낮은음으로 들릴 뿐 주위는 조용했다. 우리는 계곡 데크 길을 걸었다. 비 온 뒤라 계곡물이 불어나서 물살이 세게 흘렀다.

 

멀리 광주에서 온 S 친구는 나의 건강을 염려하여 주었다.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면역력이 생긴다고 했다. 고마웠다. 그는 친구 중에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도 마음만은 가장 부자였다. 과학교재 분야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다. 전기·전자 분야에 기술이 탁월하여 그의 손만 거치면 폐품도 생명체로 거듭난다. 구름다리를 지나서 돌아오는 데크길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친구에게 계곡 물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물소리가 가장 편안한 자장가라고 하던데. 물은 일정한 주파수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나는 녹음을 했다. 녹음기록에 나타난 주파수는 일정하게 흐르다가 한 번씩 올라갔다. “너의 주파수는 얼마나 되니?” 음악가는 오케스트라의 기준 음이 ‘오보에’의 ‘라’음이라고 한다. 이 음에 모든 악사가 조율을 하는 것이다. ‘라’음은 440Hz로 피아노의 중간 건반쯤 음이라고 한다.

 

중간 음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일까? 그날의 함성 주인공들은 지금은 위치가 많이 달라져 있다. 건강도 부()도 다 이룬 친구가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던 친구도 있다. 평일 하루 업무를 포기하고 친구가 좋아 광주에서 온 친구가 고맙다. 그의 삶의 기준은 무엇일까? 새벽에 일어나 산책길에서 만난 들꽃이 친구이고, 자기 전에 드는 막걸리 한 병에 행복을 느낀다던 그가 아닌가? 그의 주파수는 한 옥타브가 낮은 ‘라’음이 아닐까? 인근에 딸과 사위와 손주가 있기에 행복하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사위와 대작한다며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친구의 세상 사는 이야기는 물소리와 함께 잔잔한 교향곡으로 들렸다.

 

“봉섭이, 그 옛날 우리의 함성이 계곡 어디엔가는 남아 있겠지?

그때는 우리가 똑같은 ‘라’음이었는데 말이야.

(2020.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