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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0. 9. 29. 11:13

3. 왜곡된 국민의 명령

이인철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던 지난 21대국회의원 선거 당시, 민주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매일 종로거리에서 확성기를 들고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경제를 파탄내고 국민의 뜻과는 달리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라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해 종로에 출마를 결심했다며 연일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자고 외쳐댔다. 민주당은 압도적 승리를 명분으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지도부는 상임위원장직 모두를 민주당이 차지하는 것은 국민의 명령이라며 연일 야당을 압박했다. 그러나 정작 선거를 둘러싼 국민들의 표심을 보면 국민의 뜻과 국민의 명령과는 거리가 먼 말임을 알 수 있었다. 경제를 파탄내 국민들이 더이상 살기가 힘들다던 통합당의 주장과는 달리 선거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상임위원장 자리 모두를 차지한 민주당은 오히려 국민들의 불안감을 사고 있다. 국민들이 협치보다는 일당 독재로 치우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더구나 민주당 상당수 지지자들마저 계파정치로 몰락한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지않을까 우려 목소리가 더 크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1-2위간 표차가 그리 크지 않은 접전인데다 대부분 야댱의 득표율이 40%를 넘어서면서 오히려 보수층의 표심은 더욱 결집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여당 하기에 따라 표심은 언제든 변할수 있다는 얘기다.

요즘 틈만 나면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말은 "국민의 뜻이다, 국민의 명령이다."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오직 자기당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볼모로 잡는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정치인들의 아같은 말잔치는 이제 상당수 국민들이 기억조차 하기 싫어하는 것은 물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는 사실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정치인들의 막말 역사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옛말에 염라대왕이 거짖말을 많이한 사람의 입을 봉한다고 했는데, 공업용 미싱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해 집권당의 심한 항의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는 한나라당 의윈 상당수가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연극을 연출해 여야간 상당기간 냉각기를 가졌다. 박근혜 대통령 당시에는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태어나지 않아야할 사람을 뜻하는 귀태라는 말로 구설수에 올랐고, 이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해 격한 항의를 받았다.

이같은 막말은 지지층 결집이라는 정략적인 측면에서 어느정도 성괴를 얻겠지만 결국 분노와 갈등이라는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더욱 심각한 현상은 정치 냉소주의로 이어지면서 고스란히 피해는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왜곡된 국민의 뜻과 국민의 명령. 정치선진화를 위해서는 특권의식을 고집하는 이들 국회의원들이 하루 빨리 국회를 떠나 주는 것이 진정한 국민의 뜻과 국민의 명령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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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0. 9. 29. 08:24

 



<김학철 수필집 발문>

늦깎이 수필가 南村 김학철의 첫 수필집 출간을 축하하며 -김학철 수필가의『완행열차의 기적소리』출간에 부쳐-

三溪 金 鶴(수필가, 신아문예대학 교수)

1. 南村 김학철과 수필의 만남

南村 김학철은 늦깎이 수필가다. 또 종합문예지 계간『대한문학』2013년 봄호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여 수필가로 등단했다. 그는 등단 7년 만에 첫 수필집을 출간하게 되었으니, 등단도 늦깎이요, 첫 수필집 출간도 늦깎이다. 늦깎이이니 만큼 수필가로서의 능력은 단단히 여물었으리라 믿는다.
南村 김학철은 1946년 10월 17일 전주시 인후동 1가 안골마을에서 경주김씨 아버지 김시산(金詩山)과 어머니 유점순(劉点順)의 4남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지금은 본인과 여동생 등 남매만 생존해 있다.
南村 김학철은 우리 고장의 명문 전주북중과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하여 만기 제대를 한 뒤 경찰공무원 시험에 응시, 전북에서 1등으로 합격했다. 4개월간 교육을 받고 무주, 순창, 진안, 전주 등지에서 30년간 근무하다 경위로 정년퇴직을 했다.
南村 김학철은 진안 상전면 출신 아내 김순이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두었다. 큰딸 김미정은 대한항공 통제본부 과장으로 근무 중이고, 사위 조동성은 약사로서 제약회사에 재작중이다. 둘째딸 김윤정은 인천국제공항 아시아나항공 서비스지점 과장으로 재직 중이고, 사위 이용석은 서울에서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 큰아들 김진국은 삼양사에서 근무 중이고, 둘째아들 김재국은 취업을 준비하면서 아버지를 도와 아버지 빌딩을 관리하기도 한다. 南村 김학철은 중학교 2학년 때 춘원 이광수의 소설 『흙』『원효대사』, 심훈의 『상록수』등을 감명 깊게 읽고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南村 김학철은 경찰관 생활을 마치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서양화반에 들어가 2년간 미술공부를 했고, 이어서 예원예술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4년 동안 공부를 하여 학사학위를 받았다. 미술공부 역시 늦깎이다. 그 뒤 서양화가인 전주교대 홍순무 교수로부터 3년간 개인지도를 받았다. 그리하여 각종 미술공모전에 응모해서 특선과 입선을 하는 등 몇 차례 수상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南村 김학철은 그림그리기 외에 문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샘터』나 『좋은생각』등 소책자에서 보통사람들의 감미로운 수필을 읽으면서 나도 한 번 수필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2012년 3월 12일부터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에 들어와 수필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열심히 수필 쓰기에 정진한 결과 1년이 지난 2013년 3월에 종합문예지 계간 『대한문학』봄호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여 수필가로 등단하여 문단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소설가를 꿈꾸었던 김학철이 드디어 수필가가 된 것이다. 南村 김학철은 울산광역시 매일신문사가 주관한 ‘가족사랑 에세이 공모전’에 도전하여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南村 김학철이 출간한 이번 첫 수필집 『완행열차의 기적소리』에는 그가 쓴 56편의 수필을 8부로 나누어 싣고 있다. 이제 南村 김학철의 수필 속으로 들어가 보자.

2. 南村 김학철의 수필세계

문장의 4대 요소는 서사, 수식, 설명, 대화이다. 이 4대 요소를 잘 버무려야 좋은 문장이 되고 또 멋진 수필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써야 좋은 수필이 될 것인가?
주제가 선명하고 그 주제와 내용이 잘 맞아야 한다.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문장이 간결하고 짧아야 한다. 멋과 재치가 넘치며 재미가 있어야 한다. 강렬한 인상, 잔잔한 충격, 감동을 주어야 한다. 진솔해야 한다. 착상이나 표현이 기발하거나 뛰어나야 한다. 자만이나 자기 과시가 배제되어야 한다. 그렇게 글을 써야만 좋은 수필이 될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 어느 수필가의 아프리카 기행수필 「세네갈 무명화가의 그림 한 점」을 감명 깊게 읽은 일이 있었다. 그 수필 내용 중에는 15,6세기 당시 유럽 전역의 급격한 산업화로 필요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유럽 각국의 백인들은 앞을 다퉈 아프리카 전역의 흑인 2천만 명을 붙잡아 유럽이나 미국에 노예로 팔았고, 이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질병이나 구타 등으로 죽었다는 슬픈 역사적 사실이 나온다. 세네갈의 수도이자 항구도시인 ‘다카르’에는 그 당시의 노예시장과 노예들의 임시 수용소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곳을 개발하여 관광 상품으로 개방하여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의 참혹성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나는 그 시절 백인들이 저지른 잔학성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공분을 금할 수 없었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서두

수필가 남촌 김학철은 이처럼 다른 사람의 수필 한 편을 읽고 그 수필에서 새로운 소재를 찾아 자기의 수필을 빚을 줄 안다. 아프리카 흑인들의 비극을 보고 화자 김학철은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의 아내는 창세기 편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읽도록 권유한다. 그 성경구절을 읽은 南村 김학철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진실은 사실에다 사랑을 보탠 것’ 이란 기독교적인 해설을 듣고, 진실한 행동을 한 ‘샘’과 ‘야벳’에게는 축복이, 사실행위를 한 ‘함’에게는 저주가 내려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화자는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차후로는 남의 흉이나 허물일랑 덮어주고 감싸주는 대신 남의 잘한 일, 좋은 일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자세와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한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 결미

그래서 수필은 자기반성의 문학이라고 한 것이다. 독자가 한 편의 수필을 읽고 무언가를 깨닫고 자기반성을 할 수 있다면 그 수필은 수필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심한 세월은 물처럼 바람처럼 흘렀다. 어언간 내 나이도 고희 고개를 훌쩍 넘겼다. 나는 엉뚱하게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생을 열차로 친다면 내가 탄 열차는 지금쯤 어디까지나 왔을까? 한 70%? 아니면 80%? 하여튼 온 거리보다 남은 거리가 짧은 것만은 분명할 것 같다. 이젠 내 인생의 열차도 이쯤에서 옛날의 완행으로 갈아타고 싶을 때가 있다. 천천히 가고 싶다. 한 번 가면 다시는 못올 그런 길이 아니던가! 무엇이 바빠서 그리도 빨리만 가려고 서두른단 말인가!
간이역에도 쉬면서 역시 주변의 코스모스나 해바라기 얼굴도 바라보고, 열차 안의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며 지방 사람들의 정겨운 토속어로 말하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역시 인생열차는 말리는 내 마음의 고향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완행열차의 기적소리」중에서

수필은 독자에게 느끼고 생각할 여지를 남겨놓은 글이라야 좋다. 일찍이 수필가 김규련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수필은 시로 쓴 소설이요, 소설로 쓴 철학이며, 언어로 그린 명화요, 뜻으로 부르는 노래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수필은 거짓 없는 자화상이다. 미래문학의 주류는 수필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南村 김학철 수필가는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2010년 3월에 법정스님의 산문집이 불티나듯 잘 팔린다는 뉴스를 듣고 한 달 안에 스님의 산문집 15권을 가까스로 구해 꼼꼼히 읽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 정도의 열정이면 능히 좋은 수필을 쓸 자질을 갖추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미리 쓰는 유서」에서 밝혔듯이, ‘육신을 버린 뒤에는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에 가 계실까? 또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라고 썼는데 다시 환생하시어 이 땅 어디에선가 글을 쓰고 계시는 건 아닐까? 화자의 상상력이 그럴 듯하다.
누가 나에게 스님에 대해서 묻는다면 나는 감히 이렇게 한마디로 대답할 것이다. ‘스님은 자연을 사랑하셨고, 세상을 가장 자유스럽게 살다 가신 분이라고.’ 삼가 스님의 명복을 빈다. 스님, 부디 평안하소서.
「법정스님 입적 4주기에 부쳐」결미

일찍이 수필가 박양근 교수는 ‘수필은 인간의 결점을 들추어내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비난하기보다는 결점을 교정하여 사회를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 라고 했다. 그러기에 일반 독자들이 수필을 많이 읽어야 할 것이다.
南村 김학철 수필가는 관찰력이 뛰어난 수필가다. 그가 빚어낸 「달챙이 숟가락」도 그런 관찰력이 찾아낸 소재다.

찬장에서 찻잔을 찾다가 우연히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숟가락을 보았다. 어머니가 생전에 애용하시던 그 숟가락은 놋쇠로 만들어진 것인데 닳아빠져 흡사 초승달 모양이다. 옛날 우리 집에선 그 수저를 ‘달챙이 숟가락’이라고 불렀다. 이걸 꺼내보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탓인지 푸른 녹마저 더덕더덕 슬어 있었다.
「달챙이 숟가락」서두

그냥 보아 넘길 수 있는 사소한 물건인데도 그것을 끄집어내어 글감으로 삼아 의미 깊은 한 편의 수필로 빚어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달챙이 숟가락은 밥솥에서 누룽지를 자주 훑으면 숟가락 바닥이 닳게 되는데 그걸 달챙이 숟가락이라 부른다. 그 숟가락은 누룽지를 훑거나 감자껍질도 벗기는 등 집에서 유용하게 사용한다. 그런데 시골 아이들은 동네에 엿장수가 찾아오면 엄마 몰래 그 달챙이 숟가락을 훔쳐다가 엿과 바꾸어 먹기도 했었다.
南村 김학철 수필가는 수필의 의미화에도 능수능란하다. 화자는 어느 날 개인 미술전시회를 구경한 일이 있었다. 화가는 놀랍게도 30대 후반의 여성인데 뇌성마비를 앓아서인지 웃는 입모습이 달챙이 숟가락과 흡사해 보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방명록에 ‘오늘 나는 작가님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계속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보여주소서!’ 라고 격려의ㅡ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다.

어쩌다 밤하늘에 떠있는 초승달을 볼 때가 있다. 그 달을 보면 그 옛날의 달챙이 숟가락이 보인다. 그리고 누룽지를 긁어 주시던 어머니의 얼굴도, 전시장의 자기 작품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웃던 그 뇌성마비 여성화가의 얼굴도 보인다.
「달챙이 숟가락」결미

수필은 삶의 문학이며 정의 문학이다. 삶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서, 문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글이다. 南村 김학철 수필가는 남의 수필을 읽을 때는 늘 공부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는다. 배우는 자세로 꼼꼼히 읽는다. 선배 수필가 피천득의 「오월」이란 수필을 세 번이나 읽으면서도 배우는 자세를 버리지 않았다.

피천득님은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는 기발하고도 참신한 표현으로서 오월을 한마디로 정의했다. 또 님은 그 수필을 쓸 당시 나이 지긋한 연세로 그간 오랜 삶을 살아오면서 산전수전 겪어온 인생에 할 말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 나이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라고 일축했는데 이 대목을 읽자니 옛날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양지 바른 담벼락 밑에서 옷을 벗어 이를 잡고 있을 때 이곳을 찾아온 알렉산더 대왕이 소원을 묻자 그 철학자는 “대왕이시여, 저는 지금 양지바르고 따뜻한 담장 밑에서 이를 잡고 있나이다. 제 소원은 햇볕을 잘 쪼이게 대왕님이 그 자리를 비켜주시는 것입니다.”라고 했다는 대목을 연상케 했다. 피천득님도 청명하고 따뜻한 오월이면 만족하지 다른 욕심은 없다는 뜻 같기도 하다.
「피천득의 수필 ‘오월’을 읽고」 중에서

수필은 주제를 형상화시켜야 하고, 사상과 언어가 일치되어야 하며, 문장이 간결하고 선명하면서도 독창성과 구체성을 갖추어야 한다. 또 좋은 수필을 쓰려면 참신한 소재를 찾아서 참신한 해석을 하고 마침내 참신한 표현을 할 수 있어야 좋다.
南村 김학철 수필가는 언제 어디서나 눈을 크게 뜨고 수필 소재를 찾는다.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파는 사람도 그에게는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다. 일거수일투족이 글감으로 다가선다.

빵 부스러기를 거리에 뿌린다. 아까부터 주위를 어정거리던 비둘기들이 몰려든다. 용두산 공원의 비둘기 같은 진풍경이 벌어진다. 오가는 사람들과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서서 바라보기도 한다. 그의 눈에 잔주름이 잡히고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오른다.
언제부턴가 거리의 비둘기들이 눈에 들어왔단다. 요즘의 비둘기들은 거리를 헤매며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도시의 남루한 새가 되었다. 어디 거리에서의 삶이 붕어빵 아저씨뿐이겠는가? 비둘기도 거리에서 생존해야 하는 또 다른 생명체가 아닌가? 아마도 비둘기들의 삶의 모습이 자신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리라.
모여든 잿빛 비둘기들은 언뜻 보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르다. 어언 7년째 비둘기들과 지내다 보니 그는 비둘기들 하나하나를 마치 사람처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중 목에 흰 목도리 같은 띠를 두르고 있는 어미 한 마리와 새끼 두 마리를 유독 마음에 걸려 했다. 어미 새가 다리와 한쪽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가련한 비둘기 가족을 세심히 보살폈다.
「날지 못하는 비둘기」 중에서

사람의 등에는 일만 마디의 언어기 숨어 있다고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은 일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것이다. 수필의 소재도 그렇게 무궁무진하다는 의미이리라.
글쓰기에는 네 가지 표현방식이 있다. 무언가를 알리고 싶으면 설명적인 글을, 주장하고 싶으면 논증적인 글을, 느낀 것을 드러내고 싶으면 묘사적인 글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면 서사적인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알고 글을 써야 좋은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南村 김학철 수필가는 어느 신문광고에서 세계적인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을 만났다. 세계적인 구호단체 유니세프에 출연한 광고에서였다.

벌써 8~9년이 지난 것 같다. 중앙일간지 맨 뒷장 전지에 실린 광고를 유심히 본 일이 있었다. 늙고 깡마르고 눈이 들어간 주름진 얼굴의 서양 할머니 한 사람이 역시 눈이 뀅하게 들어가고 굶어서인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네댓 살짜리 흑인 어린애를 품에 안고 허공을 응시하며 서있는 커다란 사진이었다. 그 아래에는 명함판 크기의 20대 젊고 예쁜 서영 여자 사진이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오드리 햅번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였습니다.’라는 간단한 글과 맨 아래 우측에는 광고주인 S기업체 마크가 인쇄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이렇게 큰 광고를 내려면 거금의 광고료가 들 텐데 기왕에 광고를 하려면 자기 회사의 제품 품질이 좋다는 등 직접적인 광고나 낼 일이지…’라며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광고는 사흘이 멀다고 계속해서 20여 차례나 게재되었다. 그러자 나는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하, 바로 이런 생각이었구나!’ 그로부터 여러 해가 흘렀다. 그 기업체는 날로 발전하더니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오드리 햅번의 정신이 바로 우리 기업의 정신입니다.’라는 무언의 홍보를 한 것이리라. 이것을 간접광고의 효과라 하던가?
「머리에서 가슴까지」서두

사진을 버린다고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사진이 사라지더라도 기억 속에 추억이 머물고 있으면 사라질 수가 없는 법이다. 아름답고 유익한 추억을 많이 가진 사람이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다. 그러기에 저승사자조차 빼앗아갈 수 없는 게 글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고 하지 않던가? 옳은 말이다. 또 수필은 인류에 대해서 쓰는 게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해서 써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수필을 체험의 문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南村 김학철 수필가는 눈썰미가 매섭다. 무엇이나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개망초는 산이나 들녘, 묵정밭 같은 곳에서 흔히 자주 볼 수 있는 잡초다. 그런데도 南村 김학철 수필가는 그 개망초에서 한 편의 수필을 건졌다.

나는 잡초예요. 어렸을 때는 그냥 풀이라 하기도 하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개망초’라 부르기도 하지요. 지난 5월 초 어느 날 밭주인 할머니는 트랙터 기사를 시켜 밭을 갈고, 관리기로 두렁을 만든 다음 놉 3명을 얻어서 고구마 순을 심었어요. 그 며칠 후 나도 고구마 순 사이로 세상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지요. 작년 늦가을에 밭에 떨어진 씨앗이 발아된 것이었어요. 하늘은 파랗고 옆에는 부드러운 고구마 잎사귀가 너울거려 좋았어요.
내 뿌리가 땅속으로 두 달 가까이 뻗고 있을 때였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나 같은 개망초는 물론이고 냉이, 꽃다지, 쇠비름, 바랭이, 제비꽃, 봄맞이꽃, 고들빼기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이때 밭주인 할머니와 동네 할머니들 목소리가 들려 왔어요. 이들은 한쪽부터 밭고랑 한 두렁씩을 맡아 풀을 매어 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땀을 뻘뻘 흘리는 주인 할머니는
“이놈의 풀 때문에 못 살겠어. 웬수야 웬수….” 하니까 또 한 할머니는
“풀 잘 없애는 게 일류 농사꾼이래….” 하며 나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어요.
「개망초의 꿈」서두

개망초를 의인화하여 빚은 수필이다. 풀을 매며 다가오는 할머니들의 대화를 엿들은 개망초는 어떤 심정일까? 그 개망초는 하얀 접시꽃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박 씨의 비닐하우스 앞에 피어서 이른 아침마다 일터로 나올 그 아저씨의 얼굴을 보며 활짝 웃어 보이고 싶고, 가뭄으로 고구마농사를 망친 밭주인 할머니 대문 옆에도 피어나서 할머니를 위로해 드리고 싶다고 했다. 개망초의 곱고 순수한 마음이 독자를 감동시킬 것이다.
南村 김학철 수필가는 외국 나들이도 많이 한 편이다. 중국을 비롯하여 일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하와이 등을 두루 다녔고 적도 남반부에 위치한 호주도 다녀왔다. 호주를 두루두루 구경하다가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쵤영지를 찾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영화 빠삐용 역으로 열연한 스티브 맥퀸과 드가 역의 더스틴 호프만이 등장하는 무대로서, 두 번째 탈옥하다 실패한 뒤 세 번째로 깎아지른 절벽에서 시퍼런 남태평양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어서 감회가 깊었다. 이때 바다로 뛰어내린 주인공은 야자수 뗏목에 누운 채로 “나는 자유인이다. 이 자식들아!” 하고 외치던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축복의 땅, 호주 여행기」중에서

호주는 한반도 면적의 78배나 되는데 인구는 고작 2천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볼거리가 얼마나 많겠는가?
수필은 마음의 예술이다. 그 마음은 무지개 색깔 같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 화가라면,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 수필이다. 수필을 써보면 그 마음의 색깔을 알 수 있다. 마음을 문자로 표현하여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 수필이다.
南村 김학철 수필가는 다양한 형식의 수필을 빚을 줄 안다. 우리나라 수필 1세대라 할 수 있는 윤오영 선생에개 편지글 형식의 수필을 빚었다.

60대 중반에 늦깎이로 수필공부를 시작할 무렵, 선생님의 수필집『방망이 깎던 노인』과『곶감과 수필』 그리고 이론서인 『수필문학 입문』등을 읽었습니다. 모든 작품이 주옥같은 글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 중 제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는 작품은 역시 선생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방망이 깎던 노인』입니다.
「윤오영 선생님을 기리며」중에서

南村 김학철 수필가는 남의 수필도 건성건성 읽지 않는다. 꼼꼼히 분석하며 읽는다. 그리하여 그 작품에서 자신이 배워야 할 점을 족집게처럼 찾아내어 가슴에 담는다.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기에 그의 수필이 일취월장할 수 있었다.
南村 김학철 수필가는 수필이 있는 곳이면 가깝고 먼 거리를 가리지 않고 찾아 나선다. 그가 지리산 청학동서당 수련원을 찾는 것도 바로 거기에 수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리산 청학동서당 수련원에는 전국에서 모인 아이들로 방학 때면 약 200~400명씩 교육을 받는데 그간 20년간 수료한 학생도 대략 5,000명 이상이라고 했다. 이들은 사회에 나가 각 분야에서 보람되고 모범적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곳 청학인들은 여기를 거쳐 간 사람 중에 청학처럼 국가사회의 훌륭한 일꾼이 되기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청학동서당 수련원을 찾아서」중에서

南村 김학철 수필가가 사랑하는 ‘수필의 역할’은 무엇일까?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자기 표출의 기능이요, 둘째는 삶의 깨우침을 얻는 기쁨이며, 셋째는 감동을 느끼는 기능일 것이다. 이 세 가지 기능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 때라야 진짜 수필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김학철 수필은 어깨너머로 익힌 솜씨가 아니다. 수필이론이 몸에 밴 뒤 빚어낸 수필이다. 구성이 짜임새 있고, 내용 전개나 결미도 함축성이 담겨있어서 독자의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3. 수필가 南村 김학철의 가야할 길

일찍이 미국의 화가이자 작가인 모리스 그레이브스(Moris Graves)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린다. 무엇이든 제대로만 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화폭에 옮길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이 말을 수필에 빗대어 이렇게 패러디하면 어떨까?
‘수필가는 손으로 수필을 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쓴다. 눈은 눈이로되 육체적인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다. 무엇이든 마음의 눈(心眼)으로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원고지에 입체적인 수필로 옮길 수 있다.’
南村 김학철 수필가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바로 이 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알아야 더 매끄러운 수필을 빚을 수 있을 것이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 멋진 수필가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南村 김학철 수필가의 제2, 제3 수필집이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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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0. 9. 29. 06:00

 



심령이 가난한 자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오늘은 9월의 마지막 주일이다. 어느새 3/4분기도 다 갔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코로나 정국’에 애간장이 탄다. 오늘도 가정예배로 드렸다. 내가 예배를 인도하고 아내와 두 아들이 성도다. 매주 예배를 준비하면서 가족에게 보이는 나의 몸과 마음을 청결하고 노력했다. 오늘의 말씀은 마태복음 5장이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왔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말씀하셨다.



복 있는 사람은 ‘삼령이 가난한 자요’, ‘애통하는 자요’, ‘온유한 자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요', ’긍휼히 여기는 자요', ’마음이 청결한 자요', ’화평하게 하는 자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라고 하셨다. 그 가운데 ‘심령이 가난한 자’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하셨다. 비록 내가 살아온 삶이 죄와 허물로 가득함에도 설교 준비를 하면서 복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한 주일이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가족은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아 ~ 멘‘으로 화답했다. 나도 건강이 약해지니 매사에 자신감과 의욕이 떨어지고 심령이 가난해지고 있었다.



“진정 누가 가장 ‘심령이 가난한 자’일까?” 투병중인 ‘K’ 친구가 떠올랐다. ‘K’ 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내가 중매를 한 친구다. 그는 2년째 병상에 누워있다. 친구 아내에게 전화하여 근황을 물었다. 이번에도 동탄병원에서 큰 수술을 하고 그곳 아들집에 있다가 보름 전에 집으로 왔다고 한다. 또 수술을 했단 말인가? 조금 뒤에 집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친구의 집과 우리 집은 그리 멀지 않아 아들이 밖에까지 마중을 나왔다. 집에 들어서니 “희정이 아빠 오셨어요!”라며 어서 올라오시라고 반겼다. 응접실에는 손자와 며느리도 와 있었다. 안방으로 갔다. 친구는 침대에 누워서 보름달처럼 환한 모습으로 손을 내밀었다. 반갑게 악수를 했다. 친구의 따뜻한 체온이 내 손을 통하여 심장까지 전해졌다.


“용창이 왔구나. 반갑다!”

“우리 정기도 왔구나!”



친구는 몸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힘에 부쳤다. 몸이 제대로 안 따랐다. 친구아내는 침대를 조금 세웠다. 금년에는 친구를 처음 만났다.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나눴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걱정이 되는지 응접실에 있는 엄마와 할아버지 곁을 뛰어다녔다. 오랜 투병 중에 몸은 무척이나 쇠하였으나 얼굴은 동안으로 변해있었다.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발끝 부딪치기를 하면 근력도 생기고 혈액순환도 잘 된다며 양발 사이에 수건을 넣고 시범을 보여 주었다.



“부부가 서로 소중함을 느끼며 ‘생명줄’을 꼭 붙잡고 있으면 빠르게 회복이 된다고 해요.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친구 아내는 친구들의 소식을 물어 보았다. 나는 친구들의 사는 이야기를 하며 모두가 한 가지씩 근심과 걱징이 있나 보다고 했다. 나도 지난 2월부터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모두가 ‘코로나19’로 집에 갇힌 채 살고 있으니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가 봐요. 찻상을 내왔다. 그런데 생과자와 떡이 있었다.



“오늘이 언상씨 칠순이에요. 집에서 조촐하게 생일잔치를 했어요.”

“이곳에 사는 친구들만이라도 초대를 하려고 했었는데 ‘코로나19’로 초대하지 못하고 가족만 간소하게 했어요.”

“참 잘했어요. 정말 축하해요. 내가 오늘 잘 왔네요.”

“친척들도 왔다가 조금 전 다 갔어요.”

“용창아, 내 칠순 생일에 와주어서 고맙다.”

비록 몸은 침상에 누워있어도 친구는 고맙다는 말로 지난날 나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는 듯 보였다.

“언상아, 식사를 잘해야 빨리 낫는다.”

“그리고 이번에 회복하면 아내랑 손자랑 손잡고 꼭 성당이나 교회에 나가렴.”

가져온 수필집을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언상아, 이 책 속에 내 글도 한 편 있다. 읽어봐라.”

“고맙다.”

친구의 쾌유와 가족을 위하여 기도를 드렸다. 친구의 모습은 무척이나 심령이 가난한 자로 보였다. 그는 병환 중에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오늘 친구의 생일을 모르고 방문했다. 이 일이 내 의지일까? 주님께서는 한 주일 동안 경건한 생활을 한 나를 ‘심령이 가난한 자’로 덧 입혀주셨을까? 친구와 악수를 하고 나오는데 온 가족이 배웅해 주었다. 정기는 ‘충성’하고 인사를 한다. 밖에 나오니 가슴속에서는 기쁨이 차오르고 있었고, 아파트 화단에서는 코스모스꽃이 하늘거리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2020.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