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론◎

두루미 2019. 6. 10. 06:10

다작? 되작!  

 

                                   김 영(김제예총회장)

 

 

. 시작하며

 

  세상에서 가장 나중까지 우리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것은 학교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니고 책입니다. 글을 읽는 것이지요. 책 속에는 모든 일에 대한 정보와 해결책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책을 읽어야 하고, 책을 읽되 잘 읽어야 합니다.

 또한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책입니다. 책이란 다 아시다시피 작가가 자기의 생각을 글로 표현한 것이지요. 몇몇 전문인들이 독점하던 글쓰기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요즈음은 SNS 등의 발달로 전문작가가 아니어도 글로써 자기 생활을 표현하고 타인의 삶에 글로써 공감하는 일이 아주 쉬워졌습니다. 오히려 만나서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하는 것이 더 익숙하게도 느껴질 정도입니다. 멋진 글을 쓰고 싶으세요? 창의성이 있어야 한답니다. 또 자기 생각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표현력도 뛰어나야 한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주제는 구양수의 삼다인 다독(多讀)과 다작(多作)과 다상량(多想量) 중에서 다작(多作)입니다.

 

. 나만의 어휘 사전

 

 독서를 잘한다는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할 수 없다면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책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그 내용을 소화할 수 없다면 잘못된 독서지요. 독서를 통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도 없고 자기 자신의 정보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책을 읽고 잘 소화시키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어휘입니다.

 우리들이 읽는 책은 수천수만 개의 어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휘의 뜻들을 모르면 읽은 책의 내용도 모르는 것입니다. 내용을 모르면 새로운 정보도 얻을 수 없고, 얻었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정보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오면 대개의 사람들은 대충 문맥의 흐름으로 그 뜻을 짐작하거나, 아니면 그냥 접어두게 됩니다. 그런데 어휘의 뜻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입니다. 개인의 맘대로 어휘의 뜻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들이 나오면 먼저 그 어휘의 뜻을 짐작해 보는 것도 좋지만, 반드시 사전을 찾아서 확인하고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 어휘실력이 좋아지고 어휘실력이 좋아야 책을 읽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만의 어휘사전을 만들어 봅시다.

 먼저 책 제목을 맨 위에 쓰고 그 다음에는 책을 읽으면서 잘 몰랐던 단어들을 조사해서 써봅니다. 그 다음에는 그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봅니다. 자기 자신이 미루어 생각했던 뜻과 사전에서 찾은 뜻을 비교해 보고 그 단어를 활용해서 짧은 글을 써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휘 사전이 완성됩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책 읽을 만한 환경이나 신체적인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우리의 도처에 널려 있는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은 어휘사전 만들기의 첫 걸음은 미디어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신문이나 TV에서 나오는 말 들 중에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 어휘사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전 만드는 일도 번거롭다면 그냥 그 뜻을 알아보는 정도도 아주 훌륭한 어휘공부가 됩니다. , 우리들이 매일 사용하는 생활용품의 상표나 간식의 이름들이나 가전제품, 자동차 등의 이름을 조사하여 그 뜻을 알아가는 것도 어휘공부에 대한 훌륭한 한 방법이 됩니다.

 

.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어휘훈련의 마지막

 

 위의 제목을 보면서 마음이 부드러워지지는 않으셨습니까?

부안댐의 펼침막에 있는 말입니다. 이 펼침막을 보고 나오면서 정말 ‘어떻게 살면 아니 온 듯 다녀갈 수 있을까?’ 를 하루 종일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이름과 흔적을 남기기에 급급한 그런 사람 말고 때로는 바람처럼, 때로는 물처럼 살다가고 싶다고 하루 종일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이런 명문을 내건 수자원 공사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일반 관광지나 공공장소에 가면 우리가 흔히 보는 문구가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나 ‘쓰레기는 되가져 가시오.’ 라는 명령어입니다. 살짝 기분이 나빠지는 말인데도 하도 그런 세상에 젖어 사니까 기분 나쁜 줄도 모르고 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수자원 공사에서 내건 이 펼침막은 전국에 보급해야 할 아주 아름다운 표현이었습니다. 실제로 전국에 강의 다니면서 위의 문장을 예로 들어 많이 활용하기도 합니다. 국민들의 의식도 높아졌고, 교육수준도 높아졌는데 아직도 군대식 용어로 명령을 받거나 준범법자 취급을 당하거나, 아니면 멍청한 시민으로 인식 받고 살다니요.  

 

 혹시 들어 보셨나요? 말을 이쁘게 하는 사람에겐 은행에서 천만 원까지 빚을 탕감해 준다네요. 그렇다고 당장 은행에 달려가진 마십시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니까요. 같은 뜻이라도 다르게 표현하면 아주 엄청난 효과가 납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저는 이 말을 볼 때마다 한심합니다. 이런 막무가내의 말들이 아직도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말을 볼 때마다 저는 항상 속으로 투덜거립니다.

‘도대체 관계한 사람만 들어오라는 말이여. 아니면 관계하고 싶은 사람도 들어오란 말이여?

‘그렇다면 저 말 뒤에 있는 사람은 남자여? 아님 여자여?’ 물론 그런 뜻이 아니란 것을 지금까지 강요받아서 잘 알고 있지만 이런 말들이 아직도 일반적인 것이 참 씁쓸한 거지요.

 ‘초보운전’ 도 상당히 선언적인 말이지요. ‘아장아장’은 어떨까요? 그리고 ‘담배를 피우지 마시오.’ 나 ‘금연’처럼 살벌한 지시 말고 ‘맑은 공기 고맙습니다.’ 란 권유와 감사는 어떻습니까?

 우리 주변에 있는 선언적이고 강제적이고 군대적인 용어들을 고쳐보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우리가 어휘훈련을 하는 것도 말을 잘하자는 것이지요.

 ‘잔디밭 출입금지’ ‘조용히’ ‘깨끗이 사용하세요.’ ‘다 쓴 컵은 반드시 수거함에 넣으시오.’ 이런 말들을 한 번 찾아서 열거해 보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 이 말들을 어떻게 고치면 좀 더 부드럽고 참여적이고 호소력 있는 말이 되는지 고쳐 보십시오.

 아참, 부안 들머리 동진강변에 이런 표지판도 서 있네요.

 ‘속도를 줄이시면 변산반도의 아름다움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 비평적 관점을 가지고 읽는 동화들

 

  1. 백설공주가 나쁜 여섯 가지 이유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그냥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개비다’ 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오늘은 그 예로 ‘백설공주’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른들은 그 책 속에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좋습니다. 그런 대단한(?) 효과가 있다는 걸 저는 간신히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런 효과 뒤에 숨어 있는 비교육적이고 비인도적인 부분은 어찌 하지요?

첫째, 여자들은 자기보다 얼굴 이쁜 사람은 살려두지 않습니까?

   - 저는 지금까지 저보다 이쁜 여자들을 무수히 살려두었습니다.

둘째, 계모는 전처소생을 항상 죽이려고만 합니까?

    -지금처럼 가족해체가 많은 시기에 어린 아이들이 그 책을 읽으면서 계        모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질까요? 요즘처럼 가족해체가 심한 시기에          과연 이 책을 비판 없이 읽는다면 그 결과가 어떨까요?

셋째, 여자는 예뻐지기 위해서는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매번 저지릅니까?

넷째, 이쁜 여자는 이쁜 것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됩니까?

    - 백설공주는 난장이들에게 해 준 것이 하나도 없어요.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공주병만 들어있었어요.

다섯째, 백설이어야 이쁜 겁니까?

    - 여자 피부가 백설이어야 한다면 우리 같은 황인종은 어찌 하지요?

      아니 흑인들의 흑진주보다 더  빛나는 미모는 어찌 설명해야 합니까?

여섯째, 난장이는 남자가 아닙니까?

    -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글을 읽는 남자어른들은 스스로

      자문해 보십시오. 남자만 일곱 명이 사는 집에 정말 이쁜 여자가

      하나 들어왔다면 남자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난장이라는 이유로 백마 탄 왕자가 백설공주를 구하러 올 때까지 얌          전히 기다리기만 할까요? 절대 아닐 겁니다. 안될망정 데이트 신청이         라도 하고 아닐망정 허풍을 떨어서라도 꼬드겨 보겠지요. 그런데 백설        공주라는 책에서는 이런 시도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자라는 아이들이 난장이는 남자, 아니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        . 이건 잘못된 독서과정에서 자연스레 얻어지는 편견이지요. 이런           부분에 대한 토론과 함께 독서지도가 이루어져야 한다면 백설공주는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중학교 아이들이 읽어야 되는 책입니다. 이런 책        한 권의 영향으로 우리 마음에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쌓아가          고 있는 것입니다. 뒤늦게 이런 점을 보완한 패러디물이 나왔습니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라는 뮤지컬이었지요. 전주에서도 공연을         했고 저도 아이들 데리고 가서 감동하며 본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도 여자를 수동적이고 약간 뻔뻔스럽게 그려낸 점은 흠이었           습니다. 교보서적에 가서 보니 ‘흑설공주’라는 책이 나와 있더군요.           책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날씨도 좋고 책 읽기 딱 좋은데 가까운 서점에 들르셔서 가벼이 한           권 사 읽으시죠?

     원래 놀기 좋은 때가 책 읽기도 좋은 때입니다요.

 

  2. 토끼와 거북이

 

 오늘은 거북이랑 눈 맞추고 토끼랑 발맞춰 보겠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토끼와 거북이’는 억지와 강요일색이었습니다.

‘토끼처럼 재능만 믿고 잠자다가는 택도 없는 거북이한테 당한다, 그러니 잠자지 말고 열심히 생활해라’ 이런 류의 교훈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경쟁 중심, 혹은 속도 중심의 교육이 과연 낡지 않았을까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아이들이 현실감이 없게 받아들입니다. 어른들이 말하는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겁니다. 거북이가 이긴다는 말에 엇박자를 놓고 토끼가 잠잔다는 말에도 엇박자를 놓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결과나 교훈만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면 아이들은 학교라는, 혹은 어른이라는 상대에게 마지못해 따라갑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어른에 대한 불신이 자리를 잡는 거지요. , 학교와 사회의 이질성을 배우게 되지요. 그런 걸 체득한 아이는 돈 천원을 주우면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답을 잘도 써서 도덕시험은 백점 맞는데 실제로 돈을 주우면 가게로 달려가겠지요.

  지금 아이들이 토끼와 거북이라는 동화를 읽는 방법을 몇 가지 말씀드리  지요.

  첫째, 토끼는 육지에서 생활하고 거북이는 물에서 생활하는데 왜 육지에서        시합을 열었느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거북이를 위해서 물에서 시합을 하       자는 겁니다. 아무리 잘 뛰는 토끼도 뾰족한 수가 없겠지요. 게임의 룰이       처음부터 공정하지 못한 것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무효라는 거지요.

  둘째, 토끼는 일부러 자기보다 못한 거북이에게 져 주었다는 겁니다. 자는        척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게임에서는 거북이에게 졌지만 평상시 의기소침       해 있는 그 친구에게 기회를 준 것을 진정으로 토끼가 기뻐한다는 겁니       . 거북이에게 한 번 져 주었다고 토끼가 토끼 아닐 리가 없잖습니까?

 

  셋째, 거북이도 잠자고 있는 토끼를 깨워서 같이 가고 싶었지만 토끼가 자존       심상해 할까봐 그냥 갔다는 거지요. 게임에서는 승리했지만 거북이는 하       나도 기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깨우지 않고 혼자 온 자책감 때       문이랍니다.

  넷째, 거북이가 게임에서 이기기는 이겨도 도핑테스트에 걸려 선수자격을 박       탈당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월드컵 때 많이 나온 의견인데요, 아이들이        책을 아주 건강하게 읽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요. 수생인       데다가 원래 천성이 느린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려면  (!) 맞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다섯째, 왜 경주를 시키냐는 겁니다. 거북이는 느리지 않고 그냥 원래 그런       거랍니다. 속도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는 거북이지요. 그런 거북이는 토끼       와 경쟁할 수가 없다는 것이고 토끼도 속도경쟁을 하려면 말이나 타조하       고 해야지 속도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북이를 왜 경쟁상대로 하냐       는 거지요. 아이들의 개성도 다 다른데 왜 다른 사람과 나를 경쟁시키냐       고 마지막에는 강변하는데 참 미안했습니다.

     그냥 넘어가지 마시고 이 시대의 토끼와 거북이를 위해서 잠시 묵상하시       지요.

 

  3. 베짱이는 라이브무대에서 빛납니다.

 

 개미처럼 일만해야지 베짱이처럼 공부 안하고 다른 것 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얼핏 보면 만고의 진리인 것 같은 이 구조에 엄청난 폭력과 배타가 숨어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보면 개미가 일을 열심히 하는데 일 안하고 놀기 만한 베짱이와 굶어 죽게 생긴 베짱이를 엄동설한에 몰인정하게 내몰아 버린 개미 중에서 누구의 죄가 더 무거울까요? 개미 죄가 훨씬 더 무거운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 베짱이 같은 사람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일 안한 베짱이는 굶어죽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몰인정하기 짝이 없는 개미에 대해서는 거의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나하고 다른 사람, 나하고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못하도록 훈련받은 것은 교육의 이름을 빌린 폭력인 것입니다. ,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나중에 공부 잘했던 학생보다 더 출세하거나 돈을 많이 벌면 ‘저눔스키 핵교 댕길 때 나보다 더 멍청했다’고 반드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땅을 파는데 적합한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은 베짱이는 평생 개미네 집에서 걸식하거나 아니면 문전박대를 당해야 할까요? 비록 땅을 잘 파지는 못하지만 노래를 잘 부르는 베짱이는 라이브무대에서는 황제입니다.

개미가 베짱이의 concert를 보면서 여가를 즐기고 베짱이는 라이브 무대에서 번 돈으로 생활해 가는 것이 윈 앤 윈(win & win)의 방법입니다. 세상에는 열심히 연구해서 자기 분야에서 최상의 기반을 구축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기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도 있고, 두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양한 부류가 다양하게 연결되어서 사는 것이지요.

 세상에 노래가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노래 부르는 것도 공부하는 것 못지않게 힘든 일입니다. 공부와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끊임없이 시도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가수가 노래 한 곡으로 평생을 벌어먹고 살지 않습니다. 친구들도 베짱이 같은 아이도 있고 개미 같은 아이도 있고, 모두가 다 다릅니다. 나와 다른 아이들의 개성과 적성을 인정하고 서로 격려해 주는 일, 기존의 틀을 뒤집어야 할 수 있습니다.

 

  . 토끼의 99%와 거북이의 1%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 는 아주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아무리 영리해도 99%의 노력이 없으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1%의 영감이 없으면 제 아무리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녀석도 성공할 수 없다는 말로 다시 이해해야 합니다. 아주 좋은 예로 토기와 거북이의 이야기가 있지요. 토끼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거북이는 모든 사람이 믿는 그대로 99%의 노력으로 달리기 방면에서는 자기보다 뛰어난 토끼를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식의 가르침이 있는 한 우리는 절대 세계 강국이 될 수 없습니다. 거북이의 승리는 토끼의 실수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떳떳하지도 못합니다. 달리기 잘하는 아이들은 달리기 잘하는 아이들끼리 경쟁하게 해야 합니다. 토끼는 같은 토끼와 경쟁해야 기록을 갱신하려고 노력도 하고 달리기 기술도 개발합니다. 그러나 달리기에서는 누가 봐도 토끼보다 못하는 거북이를 경쟁상대로 붙여놓으니까 토끼도 성취동기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쟁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토끼는 거북이를 이길 정도의 달리기 실력으로 만족해 버립니다. 실력하향평준화가 된다는 말입니다. 토끼보다 달리기를 못한다는 것이 확실한 거북이가 토끼의 실수를 이용해서 성공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교육이 계속되면 거북이는 달리기에 관한 한 유전자적으로 열성이라는 사실을 뻔히 아는데도 생애의 모든 시간을 달리기를 잘하는 토끼를 이기기 위한 노력을 하는 데 바칠 것입니다. 토끼를 이기려는 거북이의 노력이 얼마나 값없는 일입니까? 토끼가 실수하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거북이는 얼마나 불쌍합니까? 잠자는 토끼 옆을 그냥 스쳐 지나가는 거북이야말로 감성 제로인 것입니다.

 

신다윈주의 교육철학에서는 우성과 열성 중에서 열성을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던 기존의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타고난 IQ 보다는 감성인 EQ를 개발하자고 합니다. 늦었지만 바람직한 일입니다. 우리 뇌는 대두엽이 두꺼울수록 기억력이 증진되는데 이 대두엽이 두꺼워지려면 감성적으로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성적으로 행복한 사람이 기억력이 좋으며 결과적으로는 공부도 잘하고 인간성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육과 오락을 합한 에듀테인먼트라는 말도 생겨난 것입니다. 즐거운 강의는 사람들의 기억력을 증진시키고 감성을 자극합니다. 독서도 열성을 제거하는 대신 우성에 99%의 도움이 되도록 유도하고 성공을 위한 1%의 영감을 위해 하는 것이 좋습니다.

. 맺으며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책을 읽는 일은 일생을 두고 한 순간도 놓지 않고 해야 할 유일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 읽는 일이 재미있어야겠지요? 지금 이 자리에는 글을 쓰고 있거나 쓰고 싶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재미있게 써야 재미있게 읽겠지요? 재미는 어디에서 느낄까요?

 다른 사람이 한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누구나 하는 생각을 글로 써서는 아무도 여러분이 쓴 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물론 재미있는 글이 다 좋은 글은 아닙니다. 그러나 국민 한 사람당 독서량이 아주 낮은 이유는 책이 재미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유익한 이야기도 읽는 사람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읽지 않으면 그 책은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지요. 쉽고 편안하고 독창적인 생각을 글로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읽혀지는 글을 쓰기 위한 것이랍니다. 사람들이 잘 읽고 사람들에게 유익한 글을 쓰려면 먼저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이 써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깊이 있고 독창적인 사고가 꼭 필요합니다.

 

 

<참고자료>

 

 0. 김영자, 『쥐코밥상』, 공익사,

 0. 김영자, 『베짱이 지혜독서』, 성림출판사,

 

 0. 김영자, 『즐거운 문학수업』, 성림출판사,

 0. 김영자, 『활동 중심의 독서교육』,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0. 김영자, 『퍼즐로 읽는 현대소설퀴즈』, 성림출판사,


 
 
 

◎수필이론◎

두루미 2019. 5. 5. 18:44

유튜브 레볼루션(YouTube Revolution)과 수필의 적극적이고

다양한 독자 수용방법

 

최시선

 

1. 들어가며

 

  어느 날 나의 평상심은 여지없이 깨졌다. 주제가 유튜브 시대의 수필을 말하고 있다. 적잖이 당황 되었다. 흔히 좋은 수필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써야 하나 등 수필가호서의 역량 강화 방법 등을 제안할 줄 알았는데, YouTube Revolution’ 이라는 영문 개념을 내미는데 생소했다.

  알고 보니, 이는 미국의 로버트 킨슬과 마니 페이반이 공동 저술한 책 이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5개월 만에 초판6쇄까지 발행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나는 당장 쿠팡으로 이 책을 구입했다. 부가제가 시간을 지배하는 압도적 플랫폼 이라고 되어 있다. 도대체 유튜브 시대와 수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유튜브가 수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수필은 유튜브에 기대어 뭔가 변화를 모색할 수 있을까? 몇 몇 가지 질문이 화두가 되는 순간 나의 뇌는 혼란해지기 시작 했다.

 

2. 유튜브 레볼루션 시대와 수필

 

  책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 했다. 프롤로그 그 제목이‘모두가 모두와 연결되는 세상’이다. 저자는 “3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가 보고 일고 듣는 모든 활동을 정부나 독점기업들이 아닌 바로 우리 손으로 만들어 가는 세상이 됐다.··· 어느 순간엔가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전 세계의 모든 사람과 영상을 공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대표 주자가 유튜브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거리를 두는 것보다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부언했다. 한마디로 유튜브는 사람들에게 재미와 정보를 제공하는 산업 분야의 규칙을 재정립 했다는 것이다.

  유튜브는 접근성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언어와 국경, 남녀노소, 세대를 초월하는 힘을 가졌다. 초등학생의 미래 직업으로 유튜버를 꿈꿀 만큼 아이들도 스스로 영상을 제작하고 소비하면서 발전 하고 있다. 매달 15억 명이 언제 어디서나 접속하여 한순간에 세계적으로 유명인이 될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한다. 그들은 순전히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재능 있는 크리에이터, 이른 바 Z세대이다.

  저자는 이 책의 첫 장을 ‘스트림 펑크(Streampunk)의 부상’ 이라고 명명하면서 이에 대하여 설명 하고 있다. 스트림 펑크는 유튜브에서 ‘크리에이터’(Creator)’라고 하는 새로운 계급을 말한다. 말 그대로 ‘물줄기를 바꾸어 놓는 괴짜들’이라는 뜻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콘텐츠를 제작하여 세계인의 이목을 끌어내어 대단히 성공을 거둔 선구자 들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이 책의 서두뿐 아니라 제5장에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다. 강남스타일이 5개월 만에 유튜브 최초10억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 것은, 그만큼 노래와 어우러진 영상과 춤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있었기에 가능 했다. 결국 저자는 유튜브 시대라는 것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가 문제다. 수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수필인도 스트림펑크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하여 즉시 답하기란 어렵다. 답을 잠시 뒤로 미루고, 주제 발표자로서 수필에 대한 생각을 먼저 밝혀 보겠다.

  나는 중학교2학년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호랑이 한 마리 쯤 나올법한, 하늘 아래 첫 동네 같은 시골에서 태어나 십리가 넘는 중학교를 다녔다. 그때 배웠던 국어책은 나에게 신선한 감동 이었다. 교과서에 실린, 시나 소설, 수필은 그야말로 금과옥조로 다가왔다.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턱을 고이며 밤하늘의 별을 보곤 했다. 도랑가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이따금 땡감이 스레트 지붕을 강타할 때 부스스 눈 비비고 일어나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시를 끄적거렸다. 그때의 시는 시랄 것도 없이 그냥 나오는 글이었다. 지금 읽어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가 생각나서 좋다.

  수필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도 했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수필이 아니라 산문이다. 이상하게 각종 대회에서 시를 쓰면 떨어지는데, 산문을 쓰면 거의 최우수상이었다. , 그렇구나. 글도 적성이 있구나 하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심지어는 군에 가서도 무슨 글쓰기에 응모를 했는데 초우수상을 받아 상금을 두둑이 받은 적이 있다. 그때도 수필이었다. 하여 나중에 혹시 본격적으로 글을 쓴다면 수필을 써야지 마음먹었고, 2006년에 문단에 데뷔하여 지금까지 줄곧 써오고 있다.

  나는 수필을 사랑한다. 참 좋은 문학 장르라고 생각한다. 최근 직장에 국어선생님 출신 교감선생님이 오셨기에 슬쩍 물어봤다. 수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랬더니, 수필은 문학의 5대 장르 중에 하나이고, 요즈음은 수필이 대세라고 힘주어 말했다. 내가 직장 상사라서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수필의 분량까지도 말했다. 길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럼 얼마 정도가 적당하냐고 물으니, 10매정도가 좋다고 했다. 그렇다 수필에 대해서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누구든지 자신의 입장에서 말할 테니까 다양한 수필 론이 있을 수 있다.

 

3. 수필의 적극적이고 다양한 독자와의 소통 방안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날을 고민하다가 그제야 글이 나오니 말이다. 나는 글 쓰는 일을  ‘생각의 집을 짓는 일’ 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뭔가 깨달음이 있다거나, 부딪히는 장면에서 감동이 일어났을 때 이걸 표현하고 싶다. 사람에 따라서 이것은 그림으로, 또는 음악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글로 표현한다.

  생각이 일어났지만 아무렇게나 쓰면 그것은 잡문에 불과하다. 질서가 없고 생명력도 없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그런 글들 말이다. 따라서 이런 글은 감동도 없고 생명력도 없다. 문제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형상화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문학적 형상화다.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어야 하고 알맞은 비유와 상징을 넣어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고, 무슨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사색한다. 주로 걸으면서 생각의 집을 지었다 부쉈다 한다.

  김우현 수필가는 “수필은 느낌과 생각이 마음에서 우러나 고이고 고여 절로 넘쳐서, 참을 내야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안 에서부터 굽이쳐 일어나, 드디어 신들린 듯한 상황이 되어 쓰여 진 수필이라야 참 수필이 될 수 있다. 이런 수필은, 필자는 담담한데 독자가 열을 올리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접하고 무릎을 쳤다. 어쩌면 그렇게 수필을 명징하게 정의했는지. 그러면서 그는 문학 중에서 수필만큼 작가의 개성을 요구하는 장르는 드물다고 덧붙였다.

 

  앞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뒤로 미룬 것이 있다. 수필을 어떻게 쓸 것이고, 수필인도 스트림펑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유튜브 레볼레이션 시대에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독자와의 소통 방안을 고심해야 할 때가 왔다. 아무리 좋은 수필을 써 놓고 컴퓨터에 저장하고 있으면 소장품에 지나지 않고, 발표를 해도 독자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냥 빛나는 옥에 불과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독자들이 읽게 만들어야 한다. 꽃만 피워 놓고 가만히 앉아 벌과 나비 찾아오도록 기다릴 것이 아니라, 꿀을 발라 향기라도 나게 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독자들에게 접근 하는 적극적이고도 다양한 시도일 것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 배경음악과 함께 수필을 낭송해서 영상으로 올려놓는 것은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사실 나는 요즘 유튜브에 빠져 있다. 주로 강의, 노래, 연주 등을 많이 보고 있다. 실제로 유튜브에 없는 것이 없다. 주제 발표 제안을 받고 유튜브에 수필 낭송은 없는지 검색해 보았다. 쾌나 있었다. 최민자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수필은 물론이고,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수필을 자막으로 띄우며 낭송하여 올려놓았다. 물론 조회 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비하면 초라하다.

  충북수필문학회에서는 임형묵 작가가 자신의 수필을 낭독해서 올려놓은 것이 쾌나 있다. 그 중에는 유명 성우 황인용 씨가 라디오에서 낭송하여 전국 방송을 탄 작품도 있다. 임형묵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나름 잘 편집하여 유튜브에 올려놓았다. 이 작품은 ‘고추잠자리와 아버지’라는’수필인데 2010년 모 대회 공모전 당선작 이다. 아마도KBS 라디오 제2FM<임백천의 7080> 이라는 방송에서 낭송 할 만 한 수필로 선정 된듯하다. 바로 이런 것이 적극적이고 다양한 독자 수용 방식이다. 그냥 방송으로 끝내지 않고 유튜브 라는 플랫폼을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더 다가가고자 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 수필문학회에서는 세미나를 하면서 수필 극을 하기도 했다. 회원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회원들이 역할극을 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유튜브에 올려져있는 것도 참 신선하다. 수필을 그냥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수필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 작가 정신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또한 수필의 좋은 단락을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랩이나 판소리로 제작하여 독자에게 다가갈 수도 있다. 유튜브는 아니라도 자신의 수필을 오디오 북 으로 엮어낼 수도 있다.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솔직히 유튜브에 영상으로 제작하여 올려놓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 영상 편집 기술을 익혀 해 볼 작정이다. 대신 나는 수필을 발표하면 꼭 SNS에 올린다.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 말이다. 사람들이 종이 신문이나 인터넷 스크랩을 통해서도 읽겠지만, 페이스북이나 카스는 불특정 다수가 접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인터넷에 떠 있는 것을 SNS에 공유 하는 방식인데, 올려놓으면 적어도 120명 이상이‘좋아요’를 누르고 2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린다. 나 나름대로 독자와의 소통 방식이다. 참고로 페북의 내 친구는 최근 3천명이 훨씬 넘었다.

 

4. 나오며

 

  수필 시대라 한다. 내가 수필가라서가 아니라 그럴 만하다. 시는 난해하여 뭔지 몰라 읽지 않고, 소설은 길어서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기에 수필은 요즘 시대에 딱 맞는 문하 트렌드다. 중요한 것은 수필이 스트림펑크가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 한다.

 

 

  첫째, 좋은 수필을 써야 한다. 수필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닌, 쓰기 힘든 장르로 인식시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우현 작가의 수필에 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

둘째, 손바닥수필 같은 ‘짧은 수필을’을 시도하여 유튜브 등 인터넷 플랫폼에 올리면 좋겠다. 좋은 수필을 엄선하여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에서 영상으로 제작하여 올리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하다. 영어로 번역하여 함께 자막으로 올리면 세계인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수필이 많으면 좋겠다. 꼭 교과서에 실려야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서 소문이 나 젊은이들이 스스로 책방으로 달려가 주저 없이 수필집을 사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 <>

 

 

2006년 월간 문예사조 수필등단

CJB청주방송 제5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저서《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소똥 줍는 아이들》《내가 묻고 붓다가 답하다》

수필집《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진천 광혜원고등학교 교장

 



 
 
 

◎수필이론◎

두루미 2019. 5. 3. 06:42


주제: 유튜브 혁명(yootube evolution)과 수필의 역학성
 
유튜브 시스템과 수필의 발표매체장으로서 기능
-원 소스 멀티(One Source Multi)시대의 문화콘텐츠 상품으로서의 수필
유한근
 
  지금을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으로 자동화와 연결성이 극대화되는 산업 환경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을 실제와 가상이 통합되어 사물을 자동적 또는 지능적으로 제어하는 산업혁명을 말한다. 유튜브 혁명도 이제4차 산업혁명의 범주 속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이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기계와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때문에 인간이 두뇌를 써서 수행하는 일을 미래에는 인공지능에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인간의 일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시점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견해치를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컴퓨터는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우리들은 문학만은 인공지능이 능가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본다. 창의성과 인간이 지니고 있는 정서와 인간성 때문이다.
  다만 문학작품의 발표장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은 가능해진다. 문학의 발표장이 구전문학에서 인쇄매체문학으로 이제는 인터넷매체문학으로 그 발표매체가 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유튜브 매체문학도 발표매체로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스타가 된 싸이(PSY)의 ‘강남스타일’과 방탄소년단이 ‘불 타오르네(fire)’로 주목을 받으면서 ‘빌보드챠트 200’에서 1위 영광을 차지한 것도 유튜브 마케팅 덕분이다. 싸이 가 월드스타가 된 배경에는 바로 유튜브를 활용한 마케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수필과 유튜브 혁명과 역학성에 대해 탐색해보려 한다.
 
  1. 유튜브(yootube)는 매일 1억 개의 비디오 조회 수를 기록하는 세계 최대의 동영상 웹사이트(http://WWW.youtube.com)이다. 이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서 전 세계 네티즌들은 동영상 콘텐츠를 공유한다. 채드 헐리(Chad Hurley), 스티브 첸(Steve Chen), 조드 카림(Jawed Karim)이 캘리포니아 산 브루노(San Bruro)에 2005년 2월에 공동으로 창립해서 11월부터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었다고 한다.<타임>지에 의하면, 이 웹사이트는2006년 최고 발명품으로 꼽히는 등 웹2.0의 선두주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유튜브(youtubu)는 당신(You)과 브라운관(Tube, 텔레비전)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2006년 구글이 유튜브사를 인수하여 운영하는 동영상 공유 서비스로 유저들이 동영상을 업 로드하고 시청하며 공유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2015년 기준으로 54개 언어를 지원하는 다국어 서비스이다. 일부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동영상이나 사용자에게 댓글을 달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소셜 미디어 서비스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유튜브에 업 로드하는 사용자의 대부분이 개인이지만, 방송국이나 비디오호스팅 서비스들 또한 유튜브와 제휴하여 동영상을 업 로드하기도 한다.
 


  업 로드 되는 파일 형태는 비디오 클립, 뮤직비디오, 학습 비디오 등과 같은 동영상 형태로 된 파일이다. 단순 음성 파일은 업 로드 할 수 없다. 동영상을 보는데 에는 회원을 가입하지 않아도 되지만 동영상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회원 가입이 필요하다. 유튜브 서비스는 회원이 자신의 채널을 편집하고 설정할 수 있도록 하며, 게시된 동영상을 평가하고 재생 기록 등을 기반으로 추천 동영상을 표시하기도 한다.
  유튜브의 전망(장점)은 전 세계 유저들이 1일 트래픽 20억의 동영상을 시청한다는 점이다. 전 세계의 모든 시청자가 동일한 플랫폼에서 동일한 영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웹 사이트의 플랫폼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유튜브에 동영상 등록만 하면 전 세계의 유저들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영상 콘텐츠이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을 해소할 수 있는 점이다. 유튜브 마케팅은 다른 SNS 매체에 비해 언어 장벽이 적다. 그러나 언어 매체로 전달해야 하는 수필 문학은 이 부분에서 장점을 살릴 수 없다. 다른 외국 유저들을 위한 자막 등을 따로 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타 SNS 매체와 손쉽게 연동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 동영상은 트위터, 페이스 북, 블로그 등의 SNS 매체와도 연동이 매우 간편하다. 이 점은 수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짧은 내용은 효과적으로 전달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경우에도 수필의 경우에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제한 요소는 있지만, 짧은 내용이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전달이 가능 하다는 공통점을 공유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유튜브의 한계(단점)는 영상 콘텐츠 제작비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 등의 SNS 매체에 비해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점이다. SNS 마케팅에 비해 휘발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영상이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면 시청자들의 뇌리 속에서 금새 잊혀지고 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 타겟층을 겨냥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유튜브는 타겟층을 딱 잘라 선정하기 어렵다. 전 세계의 다양한 연령층에게 노출이 되기 때문에 특정 타겟을 설정하여 마케팅하기가 저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결국 타켓층을 포괄적으로 잡고 마케팅을 해야만 한다. 이 점도 수필에서는 고려할 점이다.
 
  2. 오늘의 주제인 유튜브 혁명(yootube revolution)과 수필의 역학성은 한국 수필의 현황에 비추어, 미래의 수필 문학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혹은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담론하는 자리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예측되는 미래 수필의 신경향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하는데 유튜브 혁명과 관련해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가야 할 문제가 있다.
 


  21세기 수필문학의 새 지평에 대한 담론은 다양하고 다원적으로 탐색 되고 있다. 수필문학 전문 문예지를 중심으로 하여 수필가들, 그리고 수필 연구가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장르 수필의 특성에 관한 연구이지 근본적인 연구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들어 수필의 종류를 장르적 특성에 따라, 개재에 따라, 혹은 형식에 따라 서정 수필, 테마 수필, 영상 수필, 문화 수필, 기행 수필, 명상 수필, 퓨전 수필, 실험 수필, 아포리즘 수필, 시사 수필, 철학 수필, 아방가르도 수필 등등으로 나누고 있지만, 이런 명칭들은 작품 내용에 따른 혹은 작품의 표현 구조에 따른 편의상의 명칭일 뿐이다. 수필의 전체적인 톤이나 감성이 서정적이라 할 때 그러한 수필은 서정수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데, 그 내용이 지성적인 이성 수필 혹은 지성 수필, 그리고 종교적이면 종교 수필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장르 수필의 명칭은 중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과거 20세기 후반에 문학의 경향을 본격문학, 민중문학(사회참여문학), 실험문학으로 분류하듯이 수필을 본격 수필, 민중 수필, 실험 수필로 나눈다고 할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경향은 실험 수필일 것이다. 실험 수필은 다양성을 다각적으로 다원적으로 그 지평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험 수필의 영향력에서 미래 수필의 경향을 탐색해야 한다.
  수필이 문학의 한 장으로 위상을 차지하기 시작할 때부터 수필은 ‘실험성’을 함유하고 있었다. ‘에세이’(essay)의 어원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불어로는 ‘에세’(essai)로 시도(試圖) · 시험(試驗)의 뜻이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도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시험한다. 실험한다는 의미를 태생부터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실험 수필은 미래 수필의 지평을 여는 장르 수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실험 수필이라 총칭되는 수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이다.
  위에서 열거한 장르 수필 중에서 실험 수필에 속하는 것은 영상 수필, 퓨전 수필, 그리고 아포리즘 수필이다. 퓨전(fusion)은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을 섞어 새롭게 만든 것을 의미한다. 일반 사람들은 이 용어를 ‘퓨전음식’이라는 말을 통해서 익숙해졌다. 또 경제적 용어를 사용될 때 사용될 때는 “다수의 회사가 경쟁을 피하기 위하여 큰 회사로 합병하는 일”을 퓨전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 퓨전 수필은 기존의 수필 양식에 시, 소설, 희곡 등 각 장르적 표현 구조를 사용해서 새로운 형식으로 만드는 수필을 말하는 것으로 나는 안다. 이런 경향은 이미 21세기에 들어 문학 장르 해체 경향이 심화하기 시작할 때부터 있어온 흐름이다.
  그리고 ‘아포리즘 수필은 아포리즘(aphorism)이 의미하는 바, ‘격언, 금언, 잠언, 경구 따위’처럼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하는 수필을 말하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이 경향의 수필은 이 시대를 반영한다. 컴퓨터 모니터와 쉘폰의 액정 크기에 맞추어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을 선호하는 현대인 젊은이들의 무언(無言)의 요청에 의해서 독자들에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지혜와 언어를 가장 짧게 표현하는 수필은 아포리즘 수필이라 부르는 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다음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영상 수필이다. 일반적으로 영상 수필은 감성적인 수필에 이미지 혹은 그림을 보기 좋게 삽입하여, 책을 출판하든지 혹은 인터넷에 탑재 할 때 배경음악으로 넣고, 영상을 애니메이션화 한 수필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수필의 전달 매체에 대한 효율성을 고려한 것일 뿐 근본적인 영상 수필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영상 수필은 영상적인 요소를 수필 속에 차용해서 쓴 수필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영상적인 요소가 무엇인가가 문제가 된다. 여기에서 유튜브라는 매체가 필요해진다.
 


  20세기를 규정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영화’ 그리고 ‘컴퓨터’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유튜브 혁명이 일어난 현재도 이 키워드는 유효하다. 여기에 문화적인 측면에서 ‘콘텐츠’라는 키워드로 첨가하게 될 때, 이야기 형태로 쓰여 지고 비교적 원고지 분량이 적은 수필이 대두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의 경우에는 문제 될 것이 없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문화는 고부가가치의 원천이 되고 새로운 경제적 부의 척도가 되고 있다. 특히 문화콘텐츠는  미래 산업 혹은 문화전략 산업으로 대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위기 국면으로 하강하고 있다. 사업 간의 유기적 연관성의 증대로 여러 산업을 부흥시키는 원 소스 멀티유스(One Souce Multi-Use)시대에 핵 이 되고 있는 문학은 폐기 처분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졸고 <문학과 문화콘텐츠> 월간 문학) 지금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인쇄매체 문학이 존립을 함께한다는 전제하에서 문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영상성을 문학에 차용할 수는 없을까 궁리해왔다. 그 방법의 하나가 유튜브 매체를 이용하는 경우이다. 그렇게만 되면 수필문학은 또다시 각광까지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몽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것이 곧 영상 수필이며 문화콘텐츠 수필이라는 명칭으로 편의상 지칭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유튜브 수필이라 이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콘텐츠학과 관련해서 유튜브 혁명과 수필의 역학성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유튜브는 영상 매체이다. 그리고 문화콘텐츠 상품의 마케팅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수필을 문화콘텐츠 상품으로 만들어 그것을 업 로드하는 장(場)으로서의 역할을 유 튜브가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필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 있다. 유튜브에 적절한 수필의 길이와 작가의 영상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예컨대 수필을 유튜브에 업로드 할 수 있는 분량은 3-5분 정도라 할 때, 3-5분에 해당되는 원고 분량 200자 원고지로 5-7매 정도인 손바닥 수필이나 아포리즘 수필이 적당하다. 그리고 영상으로 만드는데 적절한 수필을 써야 할 것이다.
  ‘영상 시대에 문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감히 스크린과 제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은 미국의 비평가 레슬리 피들러(Leslie A. Fiedler)였다. 피들러는 이미 1960년 초에, 문학이 영상매체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답적이고 귀족적인 패각에서 벗어나, 영상매체가 갖고 있는 대중문화적 요소들을 적극 수용해야 된다고 과감히 제안했다.  그리고 요하임 패히는 “영화와 문학은 서로 다르게 그리고 모순적으로 반응해 왔다. 두 매체의 아방가르드들은 기존의 제도화된 문학과 예술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영화의 경우 문학적인 영향들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그리고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문학적 아방 가드의 경우 전통적인 문학 개념에 반하는 문학적인 실제, 즉 도식적이고 역동적인 삶의 형태를 가진 현대성을 표현할 수 있는 문학적 실제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자신들을 ’영화적‘이라 자처했다”(요하임 패히,<영화와 문학에 대하여>에서)고 말한다. 레슬리 피들러가 말하고자 하는 요체는 영상매체의 대중문화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점이고, 요하임 패히의 핵심은 ’영화적‘이라고 불리워지는 “도식적이고 역동적인 삶의 형태를 가진 현대성”을 문학에서는 아방가르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을 일단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상’은 이미지(image)이다. 영호, TV, 비디오, 광고, 사진 등과 같은 시각 기호를 말 한다. 움직이는 이미지 일 때 언어로 정착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기호이다. 프랑스 학자 마르틴 졸리(Martine Joly),의 말에 따르면 이미지는 ‘거울이나 거울과 동일한 재현의 과정을 차용하는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영상은 상(像)을 지닌 총체를 의미한다. 시각적인 재현물인 회화, 그림, 일러스트레이션, 판화, 사진, 영화, 비디오 합성 이미지까지도 포함된다. 이처럼 영상은 기본적으로 재현(再現,representation) 과정의 산물이다. 이렇다고 할 때 영상이라는 개념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미 아주 먼 옛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모방과 재현이라는 개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의 이미지의 재현 매체는 ‘렌즈’라는 점, 그리고 나아가서는 컴퓨터와 디지털을 통해 역동적인 이미지를 만든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수필을 포함한 문학의 ‘상상 모드’가 영화의 ‘영상 모드’로 인해 상상력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문학과 영화를 함께 꿈꾸는 비평가 및 연구가는 ‘영상 모드’속에 숨겨 저 있는 코드와 기호를 찾아내 영상 모드 속에서 인간의 문학적 상상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김성곤의 《문학과 영화》에서 참고) 언어는 상상력을 촉발하고 확대시킬 수 있는데 영상은 시각 기호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약화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지난 세기말에는 영화라는 모티프를 소설로 끌어와 하나의 구성으로서 차용하기도 했다.
  모든 내러티브 예술 장르는 스토리, 플롯, 그리고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학 장르에서 내러티브 예술 장르는 소설, 희곡, 그리고 수필이다. 수필에도 스토리가 있고 플롯도 중요하다. 플롯(plot, 구성)은 스토리와 달리, 사건들과 극적 행위들을 화자가 제시하는 대로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플롯의 경우, 작가는 많은 스토리의 가능성 가운데 중요한 사건과 극적 행위를 선택, 배열함으로써 가장 바람직한 정서적 예술 미학을 산출해 내려고 하는 데에서 구조 미학이 발생하게 되는데, 플롯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갈등 구조이며 복선이다. 수필에서도 이 복선을 효과적으로 구성하여 독자나 관객의 관심을 유지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수필은 분량적 제한성 때문에 소설의 긴 이야기라도 핵심적인 에피소드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구성 미학이 더욱더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수필이 원 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 시대에 문화콘텐츠 문학 장르로서의 가능 지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그보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과거, 소설이 영화의 원작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TV 드라마, 연극, 만화 등의 원작으로, 지금의 ‘원 소스 멀티’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역할을 만화, 애니메이션에게 다 내주었다. 인터넷 매체로 인해서 다 넘기게 되었다. 오히려 이제는 영화와 만화로부터 그 소스를 문학이 빌어 와야 할 판이다.
 


  이런 점에서 이젠, 미래의 수필은 소설이 해왔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한편의 수필이 ‘원 소스 멀티’가 되어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뮤직비디오나 CF 영상 광고의 원작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서는 유튜브라는 영상매체를 통해 동시에 전세게에 유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한글을 외국어로 번역되어 영상과 같이 올라오든지 아니면 나레이터를 통해서 한국어와 외국어가 같이 들리는 콘텐츠로 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상성을 담보로 해야 한다. 영상적 요소를 수필 창작의 내적 외적 요소로 차용하여야 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이며 화두다.
  최근 의사이면서 에세이스트인 이국종의 에세이<골든 아워 1,2>가 드라마화하기로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제작사는 스튜디오 드래곤으로 이국종 작가와 영상화 판권 계약 이 완료되어 2020년 상반기에 방송 목표로 제작에 돌입한다고 한다. 이국종 교수는 최고의 중증외상치료 권위자로 의료팀이 맞닥뜨리게 되는 냉혹한 병원의 일상과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의 사연을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에세이 초유의 영상화로 기대되는 일이다, (뉴스엔 김예은 기자 기사 참고)
  이 시대는 크로스오버 시대 또는 하이브리드시대이다. 크로스오버(crossover)의 사전적 의미는 “활동이나 스타일이 두 가지 이상의 분야에 걸친 것” 즉 교차와 융합을 의미한다. 음악에서는 퓨전음악, 또는 뉴에이지 음악을 크로스오버 음악이라 지칭된다. 이러한 현상은 음악에서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도 진행되어왔던 현상이기도 하다. 나아가서는 각자 독립된 영역을 지켰던 문화, 학문의 경계가 무너지고 혼합되고 융합되어 오기도 했다. 수필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오래전부터 수필도 그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교차 융합의 현상을 보여 왔다. 학문 간에도 학제간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사업도 변형된 형태의 새로운 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그 경계를 넘어 서로가 융합되어 가고 있는 것도 이 시대의 특별한 현상 때문이다. 하이브리드(hybrid)는 오디오 용어로 잡종, 혼성물을 의미한다. IT 용어로서의 사전적 의미로는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두 개 이상의 기능이나 요소를 결합한 것”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요소의 장점만을 선택해 합친 것으로 성능이나 경제성이 뛰어난” “대표적인 하이브리드 제품으로서 일안 반사식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카메라”등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예로 들어왔다. 이러한 하이 브리드적 접근 방식이 정치·사회적 통합 코드로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기 때문에 이 용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용어이다. 다양성과 다원성이라는 기초 위에서 소수 의견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통합해 나가고 있는 이 시대, 이 시대는 디지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적 방식이나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수필 계에서 오늘의 주제로 ‘유튜브 혁명과 수필의 역학성’을 대두시킨 것은 발 빠른 문화적 발상이다.
 


  물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소용된다. 그리고 유튜브 시스템이 발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문단적으로 혹은 정책적으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작가들의 디지털 문화와 영상에 대한 관심이 더욱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한근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당선 《현대불교문학의 이해》《한국수필 비평》《원 소스 멀티 유스, 문학이야기》《인간,불교,문학》등 다수. 명상언어집 《별과 사막》. 시집 《사랑은 흔들리는 행복입니다》등. 동화집《무지개는 내 친구》등 저서 논문 다수. 만해불교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신곡문학상 대상, 여산문학상 대상, 동국문학상, 월산문학상 등 수상, SCAU대교수. 학생처장 교무처장 역임. <인간과문학>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