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루미 2006. 4. 14. 17:45

벚꽃에 관한 명상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강용환

 
 나는 날마다 전주에서 군산까지 벚꽃 길로 출퇴근을 한다. 아마도 섬진강과 쌍계사 주변에는 만개했을 듯 싶은데 이곳 번영로는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다.


 2,3일 뒤에는 화사한 몸짓으로 꽃봉오리를 터뜨릴 듯 싶은데 변덕스러운 봄 날씨가 시샘하는지 날씨가 우그러지는 것으로 보아 비라도 뿌릴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비가 며칠만 참아 준다면 이번 주말에는 만발한 벚꽃을 구경할 수 있을 듯싶은데 조금은 염려스럽다. 

 
 벚꽃이 피는 모습을 보면 야릇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벚꽃이 피는 과정은 흡사 어린 여자아이가 성인이 되어 인생을 마감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는 것 같다. 며칠 전에 보니 사춘기 소녀의 젖꼭지처럼 앙증맞은 모양으로 보일락 말락 꽃눈이 움트는 듯 싶더니만 이제는 성숙한 여인네의 젖꼭지처럼 소담스러워졌다. 2,3일이면 완전히 농익은 여인의 젖꼭지처럼 부풀 듯싶다. 


 벚꽃이 피는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나무에 물이 올라 윤기가 자르르 돌기 시작하면 희미한 연분홍 빛의 꽃눈이 보일 듯 말듯 약간 부풀어오른다. 꽃눈이 보이는가 싶으면 금세 부풀어오르는데 흡사 사춘기 이전의 어린 여자아이의 청순한 젖꼭지 모습으로 맺기 시작하면 며칠사이에 급속하게 커진다. 처녀가 성숙한 여인이 되듯 꽃봉오리가 돌출하며 완숙미를 더해 가다가 마침내 농익은 여인네의 젖꼭지처럼 봉우리가 터지며 꽃이 활짝 피게된다.


 꽃이 활짝 피면 온갖 벌 나비들을 불러들여 열매를 잉태하고 화사한 꽃잎을 바람에 날리며 떨어진다. 그리고는 자신의 분신인 열매를 소중하게 키워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다시 새로운 생을 맞을 준비를 한다. 찰라 같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과정이지만 자연의 섭리인 생의 윤회를 보는 듯 숙연한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처럼 활짝 피기 전의 꽃봉오리가 가장 보기 좋다. 활짝 피기 전의 꽃봉오리에는 사랑하고 싶은,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또 화산의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분출하려고 용트림하며 환성을 내지르는 것 같다. 터질 듯한 열정적인 몸짓을 느낀다.
 
 마음은 언제나 벚꽃이 피면 여유를 가지고 한가롭게 즐겨 감상하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이제 피는가 싶으면 감상할 겨를도 없이 어느 사이에 져버려 아쉬웠었다. 올해는 꼭 여유를 가지고 벚꽃을 감상해야겠다.
 

 
 
 

◆아름다운 시◆

두루미 2006. 4. 13. 16:33

숲 속의 향기
  槿岩/유응교

 



아무도 없는 어둠의 땅 속에
천년의 세월을 뿌리 내린 채
고운 향 길어 올린 그대여!
그대의 의지는 참으로 의연하오.

밤을 지새우는 비바람 속에
비록 흔들리는 가슴일망정
맑은 향 간직해온 그대여!
그대의 가슴은 한없이 청량하오.

늘 푸른 자태로 별빛아래서
누군가를 위하여 손을 흔들며
푸른 향 피워내는 그대여!
그대의 손길은 끝없이 순결하오.

 
 
 

★수필♡

두루미 2006. 4. 12. 19:34

청소와 청소놀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조 내 화

 

  행사를 준비하려고 다목적 교실로 들어가려다 뜻밖의 장면을 보았다. 다목적실을 청소하고 있는데 기름걸레를 선생님은 앞에서 끌고 어린이들은 그 걸레 위에 매달려 가는 것이었다. 순간 그 광경을 본 나도, 놀이에 열중한 선생님도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교육과 작업을 항상 구분하는 입장이었다. 호미를 들고 같은 일을 할지라도 작업일 수도 있고, 교육일 수도 있다. 거기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절차에 따라서 이루어지느냐를 가지고 이야기하곤 했다. 마찬가지로 청소도 작업이 아닌 교육적 행위의 하나로 생각하고 어린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하는 그런 행태로 내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청소가 청소놀이로 바뀌어버리니, 아하 그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이미 일부 학교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청소를 요구하지 않고, 학부모들도 자녀들의 청소활동을 반대하는 입장이 많다고 들었다. 우리 애는 청소하고 살지 않을 것이니 지금부터 청소는 할 필요가  없다는 그런 메시지인 것이다. 어쩌면 다음 세대에는 내 스스로 청소할 필요가 없는 그런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욱 청소라는 것은 쓸모 없는 교육행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청소를 어린이들과 신나게, 즐겁게 하고 있으니 이 어린이들에게 청소도 지겹거나 쓸모 없는 행위가 아니라 즐거운 놀이가 된 것이다. 그 순간만은 어린이들의 얼굴에 행복이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도구는 장난감이 되고, 요령에 따라 구석구석, 빈틈없이 이루어지는 청소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걸레를 들고 빠진 곳을 닦고 정리하면서 갑자기 교원평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교육은 만남에서 이루어지고, 교사의 순간적인 말 한 마디나 행위 하나로도 어린이에게는 큰 힘이 될 수도 있고,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이에는 교사와 어린이 그리고 학부모의 신뢰가 밑거름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교육의 언저리에는 어린이들의 욕구를 무조건 수용해주는 그런 면보다 오히려 갈고 닦아야하는 측면도 많이 존재한다. 즉 어린이들과 어울려 청소놀이를 하는 측면도 필요하지만 청소를 하는 이유를 알고, 용구 사용법을 알며, 청소를 절차에 따라 하게 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어린이들은 자신과 같이 놀아주는 교사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가며 갈고 닦으려 하는 선생님은 구별하게 된다. 항상 자신의 곁에 있으며, 언제나 자신의 편인 그런 선생님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선생님이 모두 그런 존재가 되면 그 어린이에게 필요한 교육적 측면은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지려나…….

  갑자기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한창 재미있던 다목적실이 적막한 모습으로 변할 때 어린이들은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어린이들이 이제 교사를 평가하면 내년에 당장 내 모습은 어떻게 평가될까? 가장 인기 없는 선생님, 아니 가장 무능한 선생님으로 뽑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오늘부터 항상 어린이들과 놀아주고, 같이 행동하는 그런 선생님으로 바뀌어야하지 않을까? 무척 고민스럽다. 그리고 무척 교육이 힘들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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