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서 향기로운 시들

조찬용 2011. 12. 23. 11:02

 

 

 

 

 

늙은 구두 수선공의 기술 /배한봉 

 

 

닳은 구두 뒤축을 갈기 위해

구둣방에 갔는데, 늙은 수선공이

뒤축 대신 사과나무를 심어놓았다.

걸음 걸을 때마다

사과꽃 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음산 옆구리의 산골짜기가 고향이라던 늙은 수선공은

4월이 되면 늑골 깊은 곳에서 사과꽃이 핀다고 했다.

그러니까 늑골 깊은 곳은, 이제

돌아갈 수도 없는 옛집 마당.

늙은 수선공은, 이 도시 거리를

천진한 웃음이 사과꽃 향기로 퍼지는 마당으로 만들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뒤축 대신 사과나무를

구두에 심어놓는 불가해한 기술을 보여줄 리 없다.

 

그런데 내가 거리를 걷는 동안

아무도 사과꽃 피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만개한 사과꽃 향기를 느끼지도 못했다.

시내를 뒤덮고 있는 벚꽃과 분명 다른 향기였는데도.

얼른 집에 돌아와 보여주었지만, 아내도

구두에 뒤축 대신 사과나무가 심겨져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늙은 수선공의 불가해한 기술보다

더 감쪽같은 이 도시의 변화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내 구두에 사과나무를 심던

늙은 수선공의 이마에서 촉촉하게 굴러 내리던

나뭇잎 위의 이슬 같던 그 맑은 땀방울을.

그는,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는

가슴 속의 성전을 수선했던 것이다.

 

기억의 꼬리를 잡고

돌담집과 뒷골목과 대밭을 순식간에 돌아 나오는 늙은 수선공을

천 개의 눈을 켜고 바라보던 사과나무.

지금도 걸음 걸을 때마다 내 구두에서는

왈칵 왈칵, 피는 사과꽃 소리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