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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한국 고대사 체계 확실히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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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5.

한국 고대사 체계 확실히 바꿔야 한다
동북공정은 만주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중국 나름의 정치적 포석
 
윤내현 교수
 

1.고구려는 한국사에 포함될 수 있는가?
 
중국은 고구려사가 자신들의 역사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중국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으며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 연구결과이다. 이 사업은 “동북공정”이라는 약칭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 명칭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彊歷史與現象系列硏究工程)이다.

 

중국인들은 이미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 많은 연구결과를 축적하여 놓았으므로 굳이 한국의 움직임에 반응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동북공정은 그 명칭이 보여 주듯이 중국 동북지역의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시키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는 학술사업일 뿐만 아니라 동북지역 즉 만주와 한반도의 매래에 대한 중국 나름의 정치적 포석이기도 한 것이다.
 
그 가운데 고구려 역사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중국은 만주와 그 지역 거주민들에 대한 자신들의 연고권을 역사를 통해 확고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그러한 중국인들의 연고권 주장이 만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고구려가 중국사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는 고구려는 오늘날 중국의 영토인 만주에서 건국되었으며 대부분의 기간 그 중심부인 도읍은 만주에 있었으므로 중국의 동북 변방에 있었던 소수민족의 정권이며,

 

둘째는 한민족은 그 활동영역이 한반도를 벗어난 적이 없기때문에 만주에서 활동한 고구려인들이 한민족에 포함될 수는 없으며

 

셋째는 고구려는 서한 무제가 설치한 중국의 행정구역인 한사군 가운데 하나인 현도군에서 건국된 나라임으로 중국을 계승한 나라이다.

 

이 외에도 조공과 책봉 등 몇 가지를 더 들고 있지만 이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구려는 한민족의 영역인 한반도 밖의 만주에서 건국되었고 그 중심부도 오랜 기간 그 곳에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인들은 한민족이 아니며 고구려는 중국의 행정구역인 현도군에서 건국되었기 때문에 중국역사를 계승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불행하게도 한국의 고대사 체계는 이러한 중국인들의 주장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지난날 한국 학계통설을 따르면 한민족은 한반도와 만주를 통합한 적이 없다. 


 


 

그리고 한국사개설서에는 고구려는 현도군 지역에서 건국되었다고 서술되어있다. 근래에 고조선의 영토는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이었다고 보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청천강 이남지역으로 국한해서 보는 견해가 지난날 우리 학계의 통설이었고 지금도 그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있다.

 

고조선의 영토가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만주의 거주민을 한민족에 포함시킬 근거가없다. 민족은 지역을 단위로 한 정치공동체, 문화 공동체로서 일정한 지역의 거주민이 자신들이 구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집단귀속의식을 가짐으로써 형성되는 것인데 한반도와 만주가 하나로 통합된 적이 없다면 만주 지역 거주민이 한민족에 속한다는 집단귀속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따라서 고구려가 한민족의 나라라는 분명한 논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 두 가지 사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고구려 건국 이전에 한반도와 만주는 하나의 정치공동체를 이루어 그 거주민은 이미 하나의 민족으로서 한민족을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고구려는 중국의 행정구역인 현도군에서 건국된 것이 아니라 한민족이 건국한 단국조선을 계승했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고대사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한다.

 



2.한국 고대사 체계에 문제가 있다
 
한국고대사 체계에는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방치해놓고 있다. 현재 통용되는 우리의 고대사 체계를 보자.오늘날 통용되는 한국사 개설서에는 고대사 처계가 고조선ㅡ>준왕ㅡ>위만조선>한사군>ㅡ>여러나라ㅡ>삼국시대ㅡ>남북국시대 등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개설서들은 삼국시대부터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그 이전 고조선과 위만조선, 한사군, 여러나라에 대해서는 아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는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그 이전의 역사는 불확실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신화시대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그런데 고조선의 준왕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 사료에 의하면 그는 중국 망명객인 기자의 후손이다 중국 혈통인 것이다.
 
한민족이 세운 단군조선이 어떤 연유로 중국 망명객의 후손에게 정권이 넘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준왕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준왕을 한민족의 혈통으로 잘못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준왕 다음에 등장하는 위만도 중국의 망명객이다.

 

중국의 서한 초에 조선으로 망명한 위만은 준왕의 정권을 빼앗아 위만조선을 건국했다고 위략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 학계에는 위만은 중국에 거주하던 조선계통 사람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분명한 사료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를 중국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위만조선 다음에 등장하는 한사군은 서한의 행정구역이다. 서한 무제는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지역에 네 개의 군을 설치하였다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 등이 그것이다. 중국의 영토가 된 것이다. 한국사 개설서에는 임진강 유역까지 한사군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위만조선의 뒤를 이어 여러나라가 등장한다. 그들이 위치한 지역은 대체로 북만주에 부여, 연해주에 읍루, 남만주와 압록강 유역에 고구려, 함경도에 동옥저, 강원도에 동예, 한반도 남부에 삼한 등으로 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고구려가 북방을 통합하고 한반도 남쪽에서 고대사 체계를 보면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단군조선은 어떤 연유로 중국 망명객 기자의 후손인 준왕에게 정권을 넘겨주었을까 후대에 꾸며낸 이야기는 아닐까 실제로 이었다 해도 그것을 국가 수준의 사회로 볼 수 있을까.

 

둘째, 준왕은 중국 혈통 인물이고 위만은 중국 망명객이며 한사군은 서한의 행정구역이었다면 단군조선이 끝난 후 한민족은 중국인들의 지배를 받다가 중국에 통합되었다는 것이 된다. 만약 단군조선의 존재가 의심스럽다면 한국사는 중국인들의 지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셋째 한사군은 서한의 행정구역이었으므로 그 지역에서 한사군의 뒤를 이어 부여, 읍루, 고구려, 동옥저, 동예 등의 여러 나라가 일어났다면 중국인들의 시각에서는 그 나라는 중국을 계승한 나라로 볼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리고 만약 단군조선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 했더라도 좁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정치집단이었다면 한민족은 이 시기까지도 민족을 형성했다고 볼 수 없지 않은가.

 

중국인들은 지금 이러한 논리로 만주와 연해주에 있었던 부여 고구려, 읍루, 발해 등은 한국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오늘날 통용 되는 한국 고대사 체계는 중국인들이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준왕의 정권이나 위만조선 및 한사군은 한국사의 주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들이 위치했던 지역은 단군조선의 서부 변경이었다. 이들의 흥망성쇠는 단군조선과 중국의 국경지대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들은 지금의 요서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그리고 지금의 요동과 한반도 지역에는 단군조선이 계속 존재하고 있다가 중앙 권력의 약화로 지방의 정치세력들이 독립하여 부여, 읍루 고구려, 최씨낙랑, 동옥저 동예 삼한 등의 나라로 분열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나라는 한민족이 세운 단군조선을 계승한 나라로서 한민족의 국가인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사 개설서들은 이를 바로잡지 않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한민족은 주군을 빼앗아 중국계통 사람의 지배를 받거나 한만족의 영토가 중국에 통합된 적이 없는 것이다. 기자일족의 망명 위만조선의 건국 한사군 설치 등으로 인하여 단군조선 영토의 서부 변경에 다소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한국 고대사는 단군조선으로부터 여러나라를 거쳐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 등으로 끊어짐 없이 이어졌던 것이다. 단군조선 말기에 서부 변경인 난하(灤河) 유역에서는 몇 차례의 정변이 있었다. 그것은 중국에서 망명 온 기자 일족에 의한 정권 수립, 기자국의 정권을 탈취한 위만에 의한 위만조선의 건국, 위만조선의 멸망과 한사군(漢四郡)의 설치 등이다.

 

서기 전 1100년경에는 기자 일족이 고조선의 서부변경으로 망명해 왔다. 기자는 원래중국 상(商)왕실의 후예로서 기(箕)라는 땅에 봉해졌던 자(子)라는 작위를 가진 제후였다. 그런데 상나라가 주족(周族)에 의해 멸망되자 기자는 동북지역으로 이주하여 지금의 난하유역에 정착하였다. 기자일족은 망명정권을 세우고 고조선의 거수국이 되었다 그 후 서한 초인 서기 전 195년에는 위만이 서한에서 기자국으로 망명해 왔다.
 
위만은 준왕에게 국경 지대에 살면서 서한의 침략을 방어하겠다고 하므로 준왕은 그를 믿고 박사(博士)로 삼아 국경인 난하 유역에 살도록 하였다. 위만은 그곳에서 토착인들과 중국 망명인들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리고는 준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서한이 쳐들어오니 궁궐을 지키겠다고 거짓 보고를 하고는 무리를 이끌고 들어가 준왕의 정권을 빼앗아 위만조선을 세웠다.준왕의 정권을 탈취한 위만은 서한에 외신(外臣)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고조선을 침략하였다.

 

당시 서한은 건국 초로서 국력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였으므로 위만을 이용하여 고조선을 견제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고조선은 철기가 보급된 이후 종래의 경제구조와 사회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위만은 그 세력을 지금의 대릉하(大凌河) 유역까지 확장하였다. 고조선과 위만조선은 동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서한은 무제 때에 이르러 국력이 강성하여졌으므로 더 이상 위만을 이용하여 고조선을 견제할 필요가 없었다. 서한 무제는 서기 전 108년에 위만조선은 멸망시켰다. 그리고 그 지역에 서한의 행정구역으로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 등의 세 군(郡)을 설치하였다.
 
이어서 여세를 몰아 고조선 영토를 침략하여 지금의 요하(潦河)까지 차지한 후 앞의 세 군보다 1년 늦게 서기 전 107년에 요하 서부유역에 현도군을 설치하였다.이렇게 설치된 낙랑, 진번, 임둔, 현도의 한사군은 서기 전 82년에 진번과 임둔은 폐지되고 낙랑과 현도 두 개의 군만 남았다가 현도군은 오래지 않아 서기 전 75년에 고구려와 토착세력의 공격을 받아 난하 상류유역으로 이동하였고, 서기 106년에는 요동군(潦東郡)지역으로 이동하여 그 명칭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서기 206년에는 그 지역을 지배하던 공손강(公孫康)이 낙랑군의 남부를 분할하여 대방군을 설치하였으나 서기전 313~315년에 고구려의 공격으로 낙랑군, 대방군, 현도성 등이 모두 격파되어 한사군은 완전히 축출되었다.
 
그 결과 고구려는 난하 유역까지를 차지함으로써 고조선의 고토를 완전히 수복하였다.기자국, 위만조선, 한사군은 서로 연결된 사건으로서 지금의 난하 유역을 기점으로 하여 요서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즉 고조선의 서부 변경에서 일어난 사건으로서 이 기간에도 고조선은 지금의 요하 동쪽에 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 개설서들은 기자의 후손인 준왕을 고조선의 왕으로 서술함으로써 위만이 고조선의 정권을 빼앗았던 것으로 잘못 인식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위만의 정권 수립과 동시에 고조선은 멸망하였고 중국세력인 위만조선과 한사군은 고조선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잘못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3.고구려는 단군조선을 계승했다
 
단군조선은 많은 거수국을 거느린 국가였다. 『시경(詩經)』 「한혁(韓奕)」 편과 『제왕운기』는 고조선은 많은 소국(거수국(渠帥國)을 거느린 국가였음을 전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의 고대국가가 많은 제후국을 거느리고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고조선이 건국되기 전 각 지역에는 마을연맹체들이 있었고 이들은 종족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조선이 건국된 후 이들은 고조선의 지역 정치집단으로서 거수국이라 불리어졌고 그 우두머리를 거수(渠帥)라 하였다.

 

거수국은 대부분은 고조선이 건국되기 전부터 각 지역에 있었던 마을연맹체들이 성장한 것이었지만 고조선이 건국된 후 필요에 따라 새로 건설된 것도 있었다.당시에는 통치조직이 발달하지 못하였으므로 중앙에서 모든 백성을 직접 지배하지 못하고 각 지역 마을연맹체의 우두머리를 거수로 삼아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봉지를 다스리도록 하고 중앙의 단군은 거수들만을 다스렸다.
 
따라서 거수들 사이는 신분이 대등하였으나 모두가 단군을 그들 공동의 통치자로 받들면서 명령에 복종하고 동일한 법을 따르며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일정한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한국과 중국의 옛 문헌에는 고조선과 동시대에 고조선의 영토 안에 위치했던 작은 나라 또는 종족들의 명칭이 보인다. 이들은 고조선에 속해 있던 거수국이었던 것이다. 같은 지역에 독립국이 겹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들면 부여(夫餘), 고죽(孤竹), 고구려(高句麗), 예(濊), 맥(貊), 추(追), 기자국(箕子國), 진번(眞番), 낙랑(樂浪), 임둔(臨屯), 현도, 숙신(肅愼), 청구(靑丘), 양이(良夷), 양주(楊洲), 발(發), 유(兪), 옥저(沃沮), 진(辰), 비류(沸流), 행인(荇人), 개마(蓋馬), 구다(句茶), 조나(藻那), 주나(侏那), 한(韓, 三韓) 등이다.

 

고구려는 단군조선에 속해 있던 거수국 가운데 하나였다.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거수국이 많을 것이므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거수국이 있었을 것이다.

 

서기 전 1세기에 한반도와 만주에는 여러 나라가 건국되었다. 북만주 지역에 동부여가 있었고 그 동쪽 연해주 지역에 읍루, 평안북도와 지금의 요동을 포함한 압록강 유역에 고구려, 함경남북도 지역에 동옥저, 강원도 지역에 동예, 대동강 유역에 최씨낙랑, 한반도남부에 한(삼한) 등이 그것이다.
 
한은 신라, 백제, 가야 등이다. 동부여는 서기 전 59년 고구려는 서기 전 37년, 신라는 서기 전 57년, 백제는 서기 전 18년 이다. 한반도와 만주에서 일찍이 건국된 동부여, 고구려, 신라는 모두 건국 연대가 서기 전 1세기 중엽이다.

 

이 나라들이 독립했다는 것은 이 시기에 한반도와 만주를 그 영토로 아우르고 있던 단군조선이 붕괴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들 여러 나라는 모두 단군조선 영토 안에서 건국되었음도 알게 해준다. 단군조선을 계승한 나라들인 것이다. 고구려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자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 하고 있지만 고구려는 단군조선을 구성하고 있던 종족 즉 거수국이었는데 단군조선이 중앙통치력을 잃게 되자 독립한 나라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한사군의 현도군에서 성장한 나라가 아니라 단군조선에서 태어난 한민족의 국가인 것이다. 

 

 

식민사관과 싸우며 민족사학정립에 헌신한 윤내현 교수


[동영상1] 윤내현 교수의 한국고대사 체계 복원 

================================>[동영상2]보기


4.한국 고대사 체계 바꿔야 한다
 
현재 통용되는 한국 고대사 체계는 크게 잘못되어 있다. 단군조선의 뒤를 이어 중국 기자의 후손인 준왕과 중국 망명객인 위만이 한민족을 통치했고 위만조선의 뒤를 이어 서한의 행정구역인 한사군(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이 설치됨으로써 한반도 북부는 중국의 영토에 편입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를 이어 부여, 고구려, 읍루, 동옥저, 동예, 한(삼한) 등이 건국되었는데 고구려는 한사군의 현도군 지역에서 건국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한국 고대사 체계가 옳다면 고대에 한민족은 오랜 기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 된다. 고구려도 중국의 행정구역인 현도군에서 건국되었음으로 중국의 역사를 계승했다는 논리를 펼 수가 있게 된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의 고대 문헌에 의하면 이러한 한국 고대사 체계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준왕 정권과 위만조선 및 한사국은 한국사의 주류가 아니었다.고구려가 한국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 사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고구려가 건국된 요동지역이 고구려보다 앞선 단군조선시대에 이미 한민족의 영토에 속해 있어야 한다. 즉 단군조선의 강역이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그래야만 만주와 한반도의 거주민들이 하나의 국가에 속하여 동일한 정치공동체, 문화공동체를 형성하고 집단귀속의식을 갖게 되어 이 지역 거주민 모두가 한민족이 되는 것이다.

 

셋째, 고구려는 단군조선이 붕괴되면서 단군조선의 백성들이 세운 나라여야 한다. 그래야만 고구려는 한민족의 국가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고대 문헌은 이러한 점을 분명히 해준다. 단군조선은 북경에서 가까운 지금의 난하를 서쪽 경계로 하여 한반도와 만주 전지역을 그 영토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요서 서부 난하 유역에 기자국(준왕정권)이 서고 기자국의 정권을 탈취한 위만이 위만조선을 건국하여 그 영토를 대릉하까지 확장함에 따라 단군조선의 서부 영토에 다소 변화가 있었다.

 

다시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지금의 요하 유역까지 차지하여 난하와 요하 사이에 한사군을 설치함에 따라 단군조선의 서쪽 국경은 지금의 요하가 되었다.

 

요약하면 기자국(기자국),위만조선, 한사군 등은 지금의 요서 지역 즉 단군조선의 서부변경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교체되는 기간에도 단군조선은 서쪽 국경에 변화가 일어났을 뿐 요하 동쪽의 만주와 한반도를 그 영토로 삼고 건재하고 있었다. 고구려는 이러한 단군조선의 여러 거수국 가운데 하나였는데 단군조선 말기에 중앙의 통치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고구려와 부여, 발해 등 만주에 있었던 나라들은 중국변방사이고 한국사에 포함 될 수 없다는 중국인들의 주장은 계속될 것이다.

윤내현 교수/약력

단국대학교 사학과 학과장, 박물관 관장, 문과대학 학장, 부총장, 대학원장, 역임

문화관광부 문화재위원, 단군학회 회장, 남북역사학자 공동학술회의 남측단장 등 역임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소장, 고조선사 연구회 회장








2008/03/31 [00:29] ⓒ pluskorea

출처:플러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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