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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한국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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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겨레력사와 문화/우리 겨레 가락과 세움과 만듦

2008. 10. 1.

 판소리 (한국 음악)

민속악의 한 갈래.

개요
 
판소리

/판소리, 조상현과 고수 김명덕

 

 
부채를 든 1명의 창자(唱者)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창(소리) · 아니리(사설) · 발림(몸짓)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극적 음악이다. 본래는 〈춘향가〉·〈심청가〉·〈수궁가〉·〈흥보가〉·〈적벽가〉·〈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옹고집타령〉·〈강릉매화타령〉·〈무숙이타령〉(왈자타령)·〈장끼타령〉·〈가짜신선타령〉(또는 〈숙영낭자전〉을 들기도 함) 등 12마당이었으나, 현재는 〈춘향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흥보가〉 5마당만이 전한다.

기원

판소리의 기원에 관해서는 ① 무가(巫歌) 기원설, ② 광대 소학지희(笑謔之戱) 기원설, ③ 중국 강창문학(講唱文學) 기원설, ④ 독서성(讀書聲) 기원설, ⑤ 육자배기토리 기원설, ⑥ 판놀음 기원설 등이 있다. 무가 기원설은 판소리가 일반적으로 육자배기토리권(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남부, 경상도 서부)의 무가와 유사한 점이 많은 데 근거한다. 특히 무가의 담당층, 음악적 특성, 소재, 삽입 가요 등에서 광범위한 동질성이 발견되기 때문에 대개 판소리의 음악은 무가에서 발생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반면

판놀음 기원설은 무가와 판소리의 계면조가 육자배기토리라고 하는 선율의 공통성은 인정되지만, 판소리의 공연양식적 특성을 더욱 중요시해, 판소리의 선행 공연양식을 찾으려는 노력 속에서 제기된 것이다. 판놀음은 조선 후기에 전문적인 놀이꾼들이 돈을 받고 벌이던 놀이인데, 판소리는 바로 이 판놀음의 주요 구성 주체인 창우(倡優) 집단의 광대소리와 성음(聲音)·장단·조(調)·공연방식·공연자편성·사설양식·사설 율조 등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판놀음 기원설은 무가기원설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면서 이를 더욱 구체화시킴으로써, 무가기원설에서 설명할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하여 유력한 가설로 여겨지고 있다.

발전과정

판소리의 형성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17세기경 남도지방에서 서민 청중들을 대상으로 서서히 부상했을 것으로 짐작되며, 적어도 18세기말까지는 판소리가 제 모습을 완전하게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대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소리꾼은 하한담(하은담)·최선달·우춘대 등이다. 19세기에 판소리는 양반 청중들을 대상으로 전성기를 맞았는데, 19세기 전반기를 '전기 8명창시대'라 하고 19세기 후반기를 '후기 8명창시대'라고 한다(→ 명창). 권삼득·모흥갑·김성옥·송흥록·염계달·고수관·신만엽·김제철·황해천·주덕기·방만춘·송광록 등 전기 8명창들은 각기 특색 있는 창법과 선율을 개발하여 양반들의 감성과 미의식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려 했으며, 각 지역의 민요 선율을 판소리에 담아냄으로써 판소리의 표현력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박유전·박만순·이날치·김세종·송우룡·정창업·정춘풍·장자백 등 후기 8명창들은 전기 8명창들의 음악적 업적을 계승하고 이를 다듬어 다양한 더늠[長技]을 창출했다. 이 시기에 박유전에 의해 보다 서민적인 감성에 충실한 서편제 소리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판소리는 더욱 다양하고 강한 흥행성을 띤 예술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마침내 19세기 후반에 판소리는 왕실에까지 침투하게 되고, 고종과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많은 창자들이 벼슬을 받기도 했다. 19세기부터 판소리의 주요청중이 양반으로 바뀌면서 이전의 서민의식은 상당히 수정되었다. 덕분에 판소리는 사설·음악·무대 등에서 진경을 이루었으나, 민중적 현실인식과 반봉건적 예술적 심화나 문제의식은 일정하게 수정되어 얼마간은 봉건적 의식의 개입까지도 허용하는 굴절을 겪었다. 조선 고종 때의 판소리 작가 신재효

(申在孝:1812~84)는 중인 출신으로서 판소리 광대를 적극 후원하면서, 양반들의 미의식을 매개로 판소리의 개작을 시도했는데, 이때 판소리 6마당의 사설집과 〈성조가 成造歌〉·〈광대가〉 등의 창작 단가들이 만들어졌다.

 

20세기는 '전기 5명창 시대'로 일컬어진다. 그당시 활동한 명창들은 박기홍·전도성·김창환·이동백·김창룡·김채만·정정렬 등이다. 이때는 국권상실과 급격한 서구화의 충격으로 판소리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마침내는 사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 시기이다. 이 시기 판소리는 무대예술로 변화했다. 1902년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가 세워지고, 판소리가 이 공연무대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극적 요소가 강한 창극이 탄생했다. 또한 유성기의 출현으로 판소리의 향수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본래 광대는 남자들이 하던 것이었는데 신재효의 제자 진채선이 최초의 여창이 된 이후 허금파·강소춘·이화중선·박녹주 등 여창이 다수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으로 판소리의 소리·발림 등이 여성화되기도 했다. 8·15해방 후 판소리는 여성 국극단의 등장으로 한때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으나 판소리 명창들이 창극에 참여하면서 판소리는 점점 쇠퇴해, 1960년대에는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다. 판소리의 몰락 이후 정부의 정책적 지원으로 1964년부터 중요무형문화재지정(제5호)이 시작되었다. 국가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소생의 계기를 맞은 판소리는, 1970년대 이후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지식인·학생 들에 의해 그 중요성이 재인식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制)는 판소리의 유파(類派)를 일컫는 말이다. 판소리가 전승되면서 전승 계보에 따라 음악적 특성에 차이가 생기게 되었는데, 이를 제라고 한다. 제는 현존하는 실체라기보다는 다양한 판소리를 구분하여 유형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관념적으로 구성된 참조의 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제에는 동편제(東便制)·서편제(西便制)·중고제(中高制)가 있다. 동편제는 송흥록·정춘풍·김세종 등에 의해서 시작된 가풍(歌風)으로, 통성과 우조를 중심으로 한다. 대마디대장단을 위주로 장단을 짜며, 감정을 절제하는 창법을 구사하는 소리인데, 남원·순창·구례·곡성·고창 등지에서 전승되었다. 현대 판소리에서는 〈흥보가〉·〈수궁가〉·〈적벽가〉에서 전승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서편제는 박유전의 가풍을 이어받은 소리를 말하는데, 계면조의 표현에 중점을 두며, 소리와 장단에서 장식이 많은 기교적인 소리이다. 광주·담양·나주·보성 등지에 전승되었으며 현대 판소리에서는 〈춘향가〉·〈심청가〉에서 전승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중고제

는 김성옥으로부터 시작되어 충청도지역에 전승된 소리인데, 그 개념이 모호하여 '비동비서'(非東非西)로 표현된다. 중고제는 5명창 시대를 끝으로 전승에서 탈락하여, 현재는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다.

조(調)란 선법(旋法), 또는 선율(旋律)의 형태에 따라 나눈 판소리의 음악적 특성을 가리키는 말인데, 선법과 창법(唱法)을 구분하여, 선법을 '길', 창법을 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에는 계면조(界面調)·우조(羽調)·평조(平調)가 있다. 계면조

는 전라도의 향토 선율형으로, 이른바 시나위조·육자배기조와 같은 것이다. 음계는 '미·솔·라·도·레'이며, 본청은 '라'이다. 대부분이 '라'로 종지하며, 간혹 '미'로 종지하는 경우도 있다. '도'에서 '시'에 이르는 미분음적 하강음이 존재하며, 미끄러지거나 꺾어 내린다. '시'는 반드시 '도'를 거쳐 나타나며, 단독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미'는 떨고, '솔'은 대개 생략된다. 슬픈 대목을 노래하는 데 주로 쓰인다.

 

우조의 음계는 '솔·라·도·레·미'이며, 본청은 '도'이다. '도'로 종지하는 경우가 많고, 간혹 '솔'로 종지하기도 한다. 도약 진행이 많으며, 웅장하고 씩씩한 대목을 노래하는 데 주로 쓰인다. 평조

의 음계는 '레·미·솔·라·도'이며, 본청은 '솔'이다. '솔'로 종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간혹 '레'로 종지하는 경우도 있다. '미'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고, '라'에서 '솔'로 올 때 얕은 농현이 있거나 음정이 낮아지는 경향이 많다. 화평한 느낌을 노래하는 데 주로 쓰인다. 이밖에도 더 많은 선법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며, 경드름·설렁제 등을 선법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판소리의 장단은 서양음악의 리듬과 가장 가까운 개념인데, 일반적인 수준에서는 박자와 거의 동일하게 인식된다. 판소리에서 쓰는 장단은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엇모리·엇중모리 등 7가지이다. 진양은 느린 6박을 한 단위로 하며, 이것이 4개 모인 24박이 한 장단을 이룬다. 매박이 3분박이므로 18/8로 표시한다. 한가한 장면이나 슬피 탄식하는 서정적인 대목에 주로 쓰인다. 중모리는 보통 속도의 12박으로 구성되는데, 12/4 혹은 12/8로 적는다. 서정적인 대목이나 해설하는 부분에 주로 쓰인다. 중중모리는 약간 빠른 12박인데, 12/8로 적는다. 흥겨운 대목이나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대목에 주로 쓰인다. 자진모리는 약간 빠른 4박으로 구성되는데, 매박이 3분박이므로 12/8로 적는다. 사물이나 사건을 나열하거나 긴박한 장면을 묘사하는 데 주로 쓰인다. 휘모리는 매우 빠른 4박으로 구성되는데, 매박이 2분박이므로 4/4로 적는다. 사건이나 사물을 매우 빨리 반복 나열하는 데 주로 쓰인다. 엇모리는 매우 빠른 2·3·2·3의 10박으로 구성되며, 10/8으로 적는다. 2분박과 3분박이 섞인 혼합박자로, 신비한 인물이나 사물을 묘사하거나 이들이 등장할 때 주로 쓰인다. 엇중모리는 중모리의 절반으로 6박으로 구성되는데, 매박이 2분박이므로 6/4으로 적는다. 사유를 말할 때나 뒷풀이 대목에 쓰이는데, 판소리에서 가장 적게 쓰이는 장단이다.

 

발성과 성음 음역
판소리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성(通聲)이라 하여, 횡경막을 위로 밀어올려 내는 소리를 사용하는데, 서양음악의 벨칸토 창법에서는 두강(頭腔)의 공명에 주력하지만, 판소리에서는 공명을 시키는 데 주력하지 않고 목을 조여 소리를 낸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풍부한 성량을 타고나지 않으면 통성으로는 높은 음정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가성(假聲)이나 세성(世聲:가늘게 내는 소리)·속목·깎은목(곱게 다듬은 소리)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판소리에서는 개인마다 독특한 발성기교를 사용할 수 있지만, 떨림이 너무 심한 발발성이나 비강 공명을 이용한 비성(鼻聲)은 금기로 친다. 성음

은 음색과 음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판소리의 기본 성음은 거칠고 쉰 '수리성'인데, 이보다 상대적으로 맑고 고우며 애원하는 맛이 있는 소리를 '천구성'이라 하여 제일로 친다. 소리가 너무 거칠어 좋지 않으면 '떡목'이라고 하고, 너무 맑아 깊이가 없는 소리는 '양성'이라고 하는데, 판소리에서는 이것을 좋지 않게 여긴다. 판소리의 음역은 중음역의 중앙성 또는 평성(平聲)을 기준으로 하여, 낮은 소리를 하성(下聲), 더 낮은 소리를 중하성(重下聲)이라 하고, 높은 소리를 상성(上聲), 더 높은 소리를 중상성(重上聲)이라고 하는데, 판소리에서 사용되는 음역은 대체로 두 옥타브 반 정도이다.

 

崔東現 글

 

문학적 성격
판소리는 사설, , 무대행위로 이루어진 종합예술의 성격을 가진다. 이 가운데 사설은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 문학 영역에 속하고, 창은 장단과 가락을 가지고 있어 음악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판소리 창자인 광대의 몸짓이나 고수의 추임새 등은 연극적 성격을 가진다. 판소리는 이들 3분야와 관련을 맺으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판소리 사설은 문학에서 제공받고, 창은 음악으로부터 빌려오며, 연희방식은 연극으로부터 새로운 형식을 수용한다. 그와 동시에 판소리는 문학·음악·연극의 변형과 발전에 각기 중요한 기여를 한다. 문학에서는 판소리의 영향을 받아 판소리계 소설을 출현시켰고, 음악

에서는 판소리의 한 부분이었던 '사랑가'·'쑥대머리'·'십장가'(十杖歌)·'노정기' 같은 노래들이 독립 작품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연극에서는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창극이 나오게 되었다. 문학과 판소리와의 관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 특히 긴밀하게 나타난다. 판소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설로 이는 판소리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판소리 광대들은 좋은 작품을 골라 판소리로 만들었으며, 내용의 일부를 새롭게 각색하거나 변형시키기도 한다. 원래 판소리로 불려진 12마당은 소설이나 설화 가운데 독자들의 호응을 많이 받은 것들이었으나, 청중들의 호응도가 낮은 작품들은 도중에 전승이 끊어지고 호응도가 높은 작품들만 남아 전한다.

현재 전하는 5마당도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판소리에 맞게 개작하고 다듬은 것이다. 판소리 광대는 우선 작품의 내용을 판소리 공연에 적합하게 재구성한다. 내용 가운데 청중들이 쉽고 흥미 있게 감상할 수 있는 부분은 강화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하거나 축약한다. 실제 판소리 공연에서는 작품 전체를 완창하는 경우는 드물고 그 가운데서도 재미있는 부분만 골라 부르는 부분창의 관습이 있다. 판소리 광대들은 각자 자기가 즐겨 부르는 부분이 있었으며, 그것을 더욱 흥미 있고 새롭게 만들기도 했는데 이를 더늠

이라 한다. 더늠은 부분적 개작이기는 하지만 작품의 분위기와 성격을 크게 바꾸는 것으로서, 판소리 한 마당에는 이런 더늠들이 몇 개씩 들어 있다. 판소리 창자들의 노력으로 새롭게 변모시킨 사설들은 문자로 정착되고 그것은 다시 판소리계 소설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은 생동감·해학·감동·현실성이 있다.

 

鄭夏映 글

 

출처:브리태니커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23p1285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