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환기9217해,신시배달5917해 단기 4353해,서기 2020해, 대한민국 101해(나뉨 72해),

금(金), 청(淸) 황실이 믿고 있던 그들 조상의 원류

댓글 0

책, 연재/홍원탁의 동아시아역사 바로보기

2009. 4. 5.

금(金), 청(淸) 황실이 믿고 있던 그들 조상의 원류

  •  홍원탁

  •  승인 2004.12.15 00:00


홍원탁의 동아시아 역사 강의(2)

 

일본이나 중국에 의한 역사 왜곡에 흥분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연구자가 적고,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도 적다. 홍원탁 교수는 동아시아의 고대사를 20년 이상 연구해 왔다. 많은 외국 사이트들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일본, 중국의 관점에서만 기술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의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 이 연재의 목적이다. 연재는 영문과 국문번역을 동시에 제공한다. Text in PDF / 편집자 주

 

ⓒ 2005 by Wontack Hong 

 

금(金), 청(淸) 황실은 그들 조상의 원류(源流)를 어디서 찾았는가? 

 

청(淸)의 건륭제(1736-96)는 삼한(三韓)의 명칭에 대한 중국 기록들의 혼란상에 주목하였다.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의 "한(韓)"은 분명히 지도자-통치자라는 의미의 칸(汗, Khan)을 뜻하는 것이었는데, 중국 역사가들이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건륭제는 “중국대륙 동북방의 만주족과 그들의 선조들은 중국 역사가들의 기록에서 이런 식의 부당한 대접을 받아 왔다”고 역설했다  

 

청나라 통치자들은 1636년까지도 그들 자신의 왕조를 후금(後金)이라 부르면서 스스로를 금(1115-1234) 왕실의 직계 후예라 천명했다. 건륭제는 1777년 9월 20일 자로 유지(諭旨)를 내려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를 편찬토록 했다. (6년 후인 1783년에 완성.) 건륭제는 그 유지에서 만주족의 유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자신이 읽은바 금나라 역사(金史)에 의하면, 금 왕실의 선조들은 옛 숙신(肅愼)지역 내에서 말갈연맹의 일원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 지역은 장백산과 흑룡강이 위치한 곳이고, 바로 만주족이 일어선 고토(古土)라는 것이다. 

 

청나라 황족은 자신들의 성씨를 애신각라(愛新覺羅)라고 쓴다. 만주어로 아이신(愛新)은 "금(金)"을 뜻하는데, 건륭제 생각에는 바로 이 사실만 해도 청 황실을 여진족 금나라 황실의 직계후손으로 간주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된다

 

청조의 통치자들은 만주족의 원류를 숙신-말갈-여진 퉁구스족은 물론, 예맥 퉁구스족의 삼한(三韓), 신라, 백제뿐만이 아니라, 범 퉁구스의 발해까지 포함시켜 추적을 하였다. 그들은 이 모든 퉁구스족의 공통점으로서, 뛰어난 말 타고 활 쏘는 솜씨와 싸움 잘하는 능력 등을 크게 부각시켰다. 그러나 만주원류고는 선비-거란과 고구려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선비족들은 청조 통치자들이 생각하는 만주족의 원류와 명백히 아무 관련이 없다, 하지만 발해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범 퉁구스적 존재로 팽창했었던 고구려를 만주원류고에서 배제한 이유는 다르다. 예맥 퉁구스인 고구려의 부각은 숙신-말갈-여진 퉁구스가 만주역사를 주도했다는 그들의 이념에 상당한 손상을 가할 것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역사를 연구하는 서구 혹은 한족 전문가들은 만주원류고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중요 사실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즉, 금사(金史)에는 금 나라의 시조가 고구려로부터 왔다고 기술되어있으나, 대금국지(大金國志)에는 금의 시조가 본래 신라에서 왔으며, 그 부족 명칭이 완안(完顔)이라고 기록되어있다는 사실. 또 금(金)은 본래 신라에서 수십 세대를 걸쳐 내려온 왕성(王姓)이기 때문에 금 나라의 국명이 되었다는 만주원류고의 기록. 금 왕조의 창시자가 신라에서 왔다는 것을 만주원류고가 여러 차례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 또 만주원류고의 서문 역할을 하는 건륭제의 그 짧은 유지(諭旨)의 1/4이 한반도 사람들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 등.  

 

The emperor Qian-long (1736-96) noted the confusion in the Chinese records over the names of the Three Hans of Korea. The “han” in Ma-han, Chin-han, or Pyon-han was clearly a reference to a ruler – a khan. The Chinese historians simply had not known that “han” was a term for a leader. “The Manchus and their immediate predecessors in the Northeast, the emperor went on to emphasize, had been subjected to just such mistreatment in the Chinese records (see Crossley, 1999, p. 302).”

 

   The Qing rulers had identified themselves as the direct heirs of the Jin (1115-1234), calling their own dynasty by the name of Later Jin until 1636. In an imperial edict (dated September 20, 1777) commissioning the “Researches on Manchu Origins” (Man-zhou Yuan-liu Gao, completed six years later in 1783), emperor Qian-long presented his own disquisition on the history of Manchuria. According to his reading of Jin history, the ancestors of the Jin imperial clan had lived among the Mohe confederation, within the territory of the ancient Su-shens where were found the Long White Mountain and the Black Water. This was the very scene of the rise of the Manchus.1  

 

   The imperial lineage of the Qing is referred to as the Aisin Gioro. In Manchu, Aisin means “gold,” and this was sufficient proof for the emperor Qian-long that the Qing imperial lineage was a branch of the original Jin Ruzhens (see Crossley, 1999, p. 303).  

 

   The Qing rulers traced the Manchu origins not only to the Sushen-Mohe-Ruzhen Tungus, but also to the Three Han, Silla and Paekche of the Ye-maek Tungus, as well as to the Parhae, the Macro-Tungus. As a common denominator, the reputation of all those Tungusic people for their excellent archery marksmanship (on horseback) and fighting capabilities was very much amplified. The Man-zhou Yuan-liu Gao, however, conspicuously excludes the Qidan and the Koguryeo because the Xianbei, on the one hand, had obviously nothing to do with the Manchu origins while the presence of Koguryeo (the Ye-maek Tungus), on the other hand, might inflict serious damage on their effort to nurture a hegemonic image of the Sushen-Mohe Tungus in Manchurian history.

 

 Neither the Western nor the Han Chinese specialists in the history of China ever mention the following fact recorded in Man-zhou Yuan-liu Gao: the History of Jin states that the founder of the Jin dynasty came from Koguryeo; but the Chronicle of Great Jin notes that he had originally come from Silla with the clan name of Wan-yan. Since the Silla royal surname of Kim (implying Golden) has been transmitt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over many dozens of generations, the Chronicle continues, the royal surname of Silla without doubt became its dynastic name.2 Both the Western and the Han Chinese specialists in the history of China also fail to mention the fact that the emperor Qian-long addressed a quarter of his edict to the people of the Korean peninsula. 

 

  BIBLIOGRAPHY 


1 欽定 滿洲源流考  

卷首諭旨 乾隆四十二年八月十九日 
上諭頃閱金史世紀云 金始祖居 完顔部 其地有白山黑水 … 本朝肇興 .. 與大金正同 史又稱金之先出靺鞨部古肅愼地 我朝肇興時 舊稱滿珠 所屬曰珠申後改稱滿珠 而漢字相沿訛爲滿洲 其實卽古肅愼爲珠申之轉音 … 三韓命名第列辰韓馬韓弁韓而不詳其意義 當時三國必有三汗各統其一 史家不知汗爲君長之稱 遂以音詞誤譯而庸鄙者甚至訛韓爲族姓 … 有三韓 訂謬之作惜未令人盡讀之而共喩耳若… 我朝得姓曰愛新覺羅氏 國語爲金曰愛新 可爲金源同派之證 … 卷七 部族 完顔五代金史世紀金之先 出靺鞨氏…古肅愼地也 …金之始祖 初從高麗來 按通考及大金國志云 本自新羅來姓完顔氏 新羅王金姓 相傳數十世則金之自新羅來 無疑建國之名 亦應取此金史地理誌 乃云以國有金水源爲名 史家附會之詞未足憑耳 居完顔部 卷七 部族 完顔 遼 …祥符三年 契丹征高麗道由女眞 女眞復與高麗合兵拒之 契丹大敗而還 自天聖後屬契丹世襲節度使兄弟相傳 其帥本新羅人 號完顔氏 女眞服其練事以首領推之自哈富…哈富生… 生…次太祖次太宗 …國號大金  
卷七 部族 元 … 金始祖 本從 新羅來 號完顔氏 所部稱完顔部 新羅王金姓則金之遠派出

 

2 The statement that the founder of the Jin dynasty came from Silla is repeated several times in the Man-zhou Yuan-liu Gao. It was the Geography Section of the History of Jin which says that the dynastic name Jin was based on the Ruzhen name of the river Ashi, a southern tributary of the Lower Song-hua.  
金史 志第五 地理上 上京路 國言金曰按出虎 以按出虎水源於此 故名金源 建國之號蓋取諸此 

 

©2005 by Wontack Hong  
All rights reserved.  


East Asian History: A Korean Perspective                     Vol. 1. No. 2. 2005. 1. 1.  

 

동아시아 역사 강의 1-2 (2005. 1. 1.) 
정리: 강현사 박사 

ⓒ 2005 by Wontack Hong 

 

홍원탁 wthong@wontockhong.pe.kr

업코리아, UPKOREA 

저작권자 © 업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http://www.up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4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