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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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만주대탐사 2부작 2부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 신라의 후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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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국/금(진,여진)

2016. 2. 21.

  [특별기획] 만주대탐사 2부작-2부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 신라의 후예였다! 
방송일: 20090905  

 [특별기획] 만주대탐사 2부작
 2부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

        신라의 후예였다!


▣방송 : 2009. 9. 5(토) 20:0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엄지인 아나운서
▣연출 : 류지열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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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조 아골타
 신라의 후예였다!
금태조 아골타

중원에서 최초로 한족을 밀어낸 금태조 아골타, 그의 시조는 놀랍게도 신라인 함보였다. 이것은 전설이나 야사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와 금 건국 시 송나라에서 씌어진 <송막기문>에 명확히 나오고 있다.
“금시조의 이름은 함보인데 처음에 고려에서 온 신분이다”
                       (금사본기 제 1권, 세기)

“여진의 추장은 신라인이고 완안씨는 중국말 왕과 같다”(송막기문)
금사송막기문

고려에서 온 신분이며 신라인인 금시조. 아골타의 출생년도를 고려해 계산해보면 금 시조 함보가 여진에 들어온 시기는 신라 말, 고려 초다. 당시 신라와 고려의 왕권교체기였던 한반도의 사정을 생각하면 두 사서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아골타의 조상 함보, 그는 과연 누구일까?

 

함보, 그는 누구인가?
금황실 계보도

<동명해사록>에 함보의 9대손 아골타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김부(경순왕敬順王)가 비록 항복하여 고려왕이 합병하였으나 김부의 외손 완안아골타는 곧 권행의 후예로서 능히 중국을 갈라 다스려 백년동안 대를 이었으니... (동명해사록 1636년)
조선의 유학자 김세렴은 여진족의 아골타를 경순왕의 외손이며 조선최고가문 권행의 후예라고 하고 있다.그런데 권행의 본래 성은 金(김)씨였다.김행의 아들이며 경순왕의 외손인 금의 시조. 당시 족내혼을 했던 신라 왕실의 관습을 고려하면,그의 성이 金(덧말:김)이며 신라의 후예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동명해사록>의 금 시조와 <금사>의 함보는 과연 동일인인가? 

 

신라 후예인 왕족과
 발해 후손의 왕비족이 세운 나라, 금
함보를 시조로 둔 금 황실은 발해인을 왕비로 맞는다. 금나라의 성군 세종의 어머니, 4대 황제 해릉왕의 어머니는 모두 발해 여인이었다. 또한 아골타는 발해인을 신뢰하여 발해유민 장호를 새로운 수도 북경 건설 책임자로 등용한다. 발해는 대제국을 경영해본 경험이 있었다.금나라는 이런 발해의 경험을 이용하여 국가체제를 확장해 나갔던 것이다.

 

청 황실의 성씨도
 김씨였다
청태조 누루하치
금 멸망 후 1606년, 여진은 다시 중원을 장악했다. 바로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이다. 그런데 청나라 황제 성은 아이신 줘러 였다. 아이신(愛新)이란 금(金), 줘러(覺羅)란 겨레(族)부족 씨 등을 뜻한다. 결국 금 부족, 김씨들 이라는 뜻이다.

신라 왕족인 경주 김씨, 그의 후예인 금 황실, 청 황실까지 그들은 모두 금을 뜻하는 김(金)씨들이었던 것이다.

 

만주역사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금나라, 청나라로 이어지는 만주의 역사는 우리 민족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한족의 영토,중원을 만주대륙에 합병하여 오늘의 중국을 완성한 여진족, 그들 선조가 신라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은 국수주의적 우월감을 주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반역사적인 동북공정 논리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우리 역사를 지켜내어 향후 동아시아와 한반도 지역에 평화의 논리적 근거를 재확인하자는 것이다.


 

출처; KBS역사스페셜

http://www.kbs.co.kr/1tv/sisa/historyspecial/view/vod/1605745_308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