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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발해 땅에서 발굴된 청동 낙타, 천년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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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국/대진(발해,고려,고리)

2018. 12. 20.

[취재후] 발해 땅에서 발굴된 청동 낙타, 천년의 비밀은?

 

입력 2015.08.27 (00:08)수정 2015.08.27 (10:46)취재후

 

■ 1000년 만에 빛을 본 청동 낙타상 

"우라~~~~~~~ " ('만세'라는 러시아 말)

갑자기 옆쪽에 있는 발굴장이 시끌벅적하다. 사람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무슨 일일까? 인터뷰 중이던 정석배 한국전통문화대학 교수님이 무언가 좋은 것이 발굴된 것 같다며 현장으로 안내한다. 문제의 물건을 직접 발굴한 예브게니아 겔만 러시아측 발굴단장(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연구소)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것을 자세히 보니 낙타상이다. 크기는 가로 세로 2cm 정도, 보기에도 앙증맞은 물건이다. 봉우리가 두개인 쌍봉 낙타상이었다. 재질은 청동이라고 했다. 겔만 박사는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고, 발굴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도대체 이게 무슨 물건이길래...?

2015년 8월 7일 낮 12시. 

기자는 러시아의 극동 중심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230km 떨어진, 중국.북한 국경과 가까운 크라스키노를 찾았다. 동해를 바라보는 광활한 늪지대 한복판에 발해 염주성 성터 발굴현장이 있었다. 1980년부터 러시아 연구자들이 발굴을 시작했고, 2007년부터는 동북아역사재단이 합류해 한-러 양국이 공동으로 발굴작업을 진행중이다. 7월 14일부터 8월 15일까지 1달 동안 집중적으로 발굴이 진행됐다. 그 현장을 취재하러 방문한 취재진 앞에서 청동 낙타상 발굴이라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35년 넘게 이어진 발해 유적 발굴 사상 청동 낙타상 발굴은 처음이란다. 김은국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KBS 취재진이 찾아온 덕에 좋은 일이 생겼다며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일반인의 눈에는 그저 평범하고 앙증맞게만 보이는 이 작은 청동 낙타상이 대체 어떤 가치를 지녔길래, 연구자들이 이렇게 흥분하는 걸까?

낙타는 고대로부터 교통수단이자 문화 교류의 수단이었다. 문헌을 보면, 고려시대 뿐만 아니라 조선 초에도 서역에서 낙타를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다. 겔만 박사는, 카라반(대상)이 서역에서 상품을 싣고 이곳 염주성에 왔으며 이는 발해가 아라비아와도 긴밀히 교역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설명했다. 2012년에는 이곳에서 낙타뼈가 발견된 점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낙타상과 함께 몇가지 청동 장신구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이곳에 청동구 제조 공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해 장신구 전문 연구자인 아스타셴코바 박사는, 자신도 이런 청동 낙타상은 처음 본다면서 그만큼 발해인들의 세공 기술이 뛰어난 것을 반증한다고 설명했다. 처음 발굴된 유물인 만큼 이 조그만 청동 낙타상이 과연 어디에 쓰인 물건인지는 보다 세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번 발굴에서는 발해 모든 시기의 건축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이 2m 30cm의 토층이 발견됐고, 저장고로 추정되는 웅덩이가 한꺼번에 4개 정도 발굴되는 등 고고학적 성과가 대단히 풍성했다. 

■ 발해를 꿈꾸며

1990년대 문화 아이콘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4년 여름에 내놓은 뮤직 비디오가 '발해를 꿈꾸며' 였다. 촬영지는 철원의 옛 노동당사였다. 왜 하필 발해인가? 당시 발해가 통일신라와 마주보고 이른바 '남북국 시대'를 열었기 때문에 통일을 지향하는 뜻이 있었나? 해석도 다양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 기자는 발해의 옛 터를 방문하고 그 질문을 다시 생각해 봤다. 왜 지금 발해인가? 발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기자는 2012년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 취재와 2013년 나진~하산 철도연결 사업 취재차 크라스키노를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크라스키노까지 230km 라고 하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4시간이나 걸린다. 도로 양 옆으로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 것을 보고, 도대체 저 넓은 땅이 왜 저렇게 방치돼 있는 걸까 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었다. 한때 저 땅에서 고려인들이 경작을 했을 것이고, 그 이전엔 .....아...발해가 있었지...

그랬다. 연해주에서 발해 유적이 심심찮게 발견된다는 소식에 관심이 쏠리던 터에 발해 유적 발굴 작업이 진행중이라는 말을 듣고 취재를 결심했다.



서기 698년, 고구려 유민들이 건국한 발해는 한때 해동성국으로 불리며 광대한 영토를 다스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성기의 발해 영토는, 오늘날의 중국 지린성과 연해주 대부분, 헤이룽장성, 랴오닝성 일부 등 사방 5천리에 달했고, 고구려보다 더 넓었다고 한다. 발해는 남쪽 통일신라와 더불어 남북국 시대를 열어 서기 926년까지 무려 228년을 이어갔는데, 발해의 멸망을 끝으로 우리 역사는 더 이상 대륙으로 나가지 못하고 반도에 머물고 말았다.



그럼 왜 지금 새삼스레 발해를 말하려 하는가? 우리 정부의 대외 정책 기조의 하나가 바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이다. 한반도의 교통.물류망을 대륙으로 연결해,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 경제권을 연계함으로써, 우리 기업들에게 더 큰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엔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뒤,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해 유럽에 이르는 '유라시아 친선 특급'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사실 알고 보면, 그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출발해 지나간 곳은, 천년 전 발해인들이 경략했던 땅이다. 김은국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서역문화와 당, 신라, 일본 문화 등 주변의 모든 문화가 발해에 녹아서 발해만의 독특한 색깔을 냈었다면서, 현대인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발해의 대외 개방성과 포용성이라고 강조했다. 바다와 대륙을 동시에 경영했던 해륙국가, 발해인의 기상은 오늘날의 세계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김은국 박사는 설명했다.

■ 대륙으로 가는 길



발해 염주성 발굴 현장 앞쪽으로 한줄기 철로가 지나가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크라스키노와 하산을 지나 북한 나진항으로 이어지는 철길이다. 시베리아에서 채취된 석탄이 이 철길을 따라 북한 나진항으로 운송되고 있다. 기자는 철길과 나란히 달리는 도로를 따라 하산까지 가본 적이 있는데, 육로는 아직 포장이 안돼 있어, 철길이 훨씬 안전하고 빠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00년 전 발해인들이 왕래하던 그 길이, 이제는 대륙과 소통하는 교통.물류 네트워크로 재탄생한 것이다.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해, 유럽 대륙으로 진출하자는 아이디어는 여전히 논의중인 과제이다. 서역과도 활발히 교류했던 발해인들의 기상을 오늘날 되살린다면, 이 철길이 한반도 종단철도와 이어짐으로써 대한민국의 대륙 진출 통로가 될 그 날도 그리 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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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현장보고] 해동성국 발해, 대륙 진출의 꿈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136860&ref=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