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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미송리유적(義州美松里遺蹟)-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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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시대/고고학

2019. 7. 24.

의주미송리유적(義州美松里遺蹟)

선사문화유적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미송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유적.   

 

의주 미송리 유적 출토 유물 실측도

 

분야  선사문화

유형  유적

시대  선사-석기

성격  선사유적

건립시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소재지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미송리

정의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미송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유적.

키워드

개설

석회석을 채취하다가 석회암동굴 유적이 발견되어 1959년 3월에 발굴 조사되었다.

내용

이 유적은 그다지 크지 않은 천연동굴이다. 지표 밑 105∼130㎝ 깊이에 두께 약 50㎝의 문화층이 있고, 그 밑에는 20∼40㎝ 두께의 유물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진흙층이 있으며, 그 아래로 다시 15∼20㎝의 또 하나의 문화층이 있었다. 아래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문화층〔櫛文土器文化層〕이고, 위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문화층(無文土器文化層)이었다.

 

아래의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파편과 그물추 2점, 석촉반제품, 곡옥파편처럼 생긴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그 밖에 골제첨두기들도 몇 점 출토되었다.

 

빗살무늬토기편의 문양은 생선뼈무늬〔魚骨文〕도 있고 평행사선을 무질서하게 엇그은 것도 있으며 지그재그문양도 있다. 바탕흙은 진흙에 모래를 섞은 것이 대부분이고 운모·장석·석면·활석 등을 섞은 것도 있으며 모두 갈색이었다.

 

완전히 복원될 수 있는 것은 없으나 문양의 형태가 청진 농포리·서포항(西浦項) 등의 빗살무늬토기와 유사하므로 기형은 납작바닥〔平底〕일 것으로 추정되며 시대도 신석기시대 후기로 생각되고 있다. 위의 무문토기문화층에서는 토기·석촉·석착(끌)·관옥·방추차·청동도끼〔靑銅斧〕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복원이 가능한 12개분, 형태를 알 수 있는 5개분이 출토되었다. 기형은 항아리, 단지, 발이 달린 것 등 다양한데 목이 긴 항아리 종류가 많다. 대개 고운 흙으로 기면을 마연한 흑색토기들이다.

 

항아리 종류는 납작바닥에 타원형의 배가 불룩한 몸체에 밖으로 긴 목을 가졌고, 기면 전체에 여러 줄의 가는 선을 악보의 오선을 긋듯이 돌렸다.

 

그리고 흙판을 활처럼 구부려서 상하로 구멍이 나게 붙인 손잡이가 달렸다. 이 손잡이는 단지나 항아리 모두에 붙어 있는데, 큰 것은 높이가 26㎝나 되는 것도 있다.

 

또 단지 종류는 입술을 약간 밖으로 벌리면서 짧게 붙인 것과 조금 길게 붙인 것이 있다. 그 중에는 입술이 벌어짐으로써 휘어진 부분에 손톱같은 것으로 찍어서 문양을 낸 것도 있다.

 

이들은 그 특징으로 인해 ‘미송리형토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와 유사한 것이 개천 묵방리 지석묘에서도 출토되었다. 기형의 발달이나 토기의 질로 보아 무문토기의 후기형태에 속하는 것이다.

 

마제석촉은 16개가 출토되었는데, 단면능형의 유경양익촉(有莖兩翼鏃)이 3점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운데가 옴폭 팬 만입식무경촉(彎入式無莖鏃)이다.

 

청동도끼는 날이 휘고 버선코처럼 넓어진 공부(銎斧)로 등에서 날까지의 길이가 4.5㎝이다. 이러한 형태의 청동도끼는 요동지방의 석관묘에서 출토되는 용범(鎔笵)과 비슷하나, 형태상으로 보면 조금 선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상층유적의 연대는 출토유물로 미뤄보면 토기는 후기형태이지만 청동도끼는 세형동검의 초기형식인 이른바 만주식 동검과 함께 나오는 형식보다 오래된 것으로 보여 서기전 1000년대의 전반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문토기는 서북지방에서 형식상 빠른 변화를 보이면서 서기전 1000년대 전반기에 후기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해 점차 중부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흑색마연의 장경호(長頸壺)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 「미송리유적의 고고학적 위치-연대론을 중심으로 하여-」 ( 김용간 ,『朝鮮學報』 26,1963)

  • 「미송리동굴유적발굴중간보고」 ( 김용간 ,『문화유산』,1961년 1·2호,과학원출판사)

집필자

집필 (1996년)임병태

관련 멀티미디어 (2)

  • 의주 미송리 유적 출토 유물 실측도

 

 

미송리 유적(義州 美松里 遺蹟)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미송리에 있는 석회암지대의 동굴에서 나온 선사시대 유적으로 석회암 광산에서 암석을 채취하는 과정 중 동굴이 확인됐고 동굴 안에 사람 뼈를 비롯한 토기, 석기 등이 발견되어, 1959년에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서 발굴하였다.

 

동굴 내부의 퇴적층은 위로부터 표토층과 진흙층(두께 1.0~1.3m)이 있고 그 아래 검은 부식토층의 선사시대 유물층이 있다. 그 위에 쌓여 있는 지층에서는 근대시기의 그릇 조각, 짐승 뼈 등이 흩어져 나왔다. 선사시대 문화층은 2개로 나누어 아래 문화층과 윗 문화층으로 부르고 있는데 아래, 윗 문화층사이에 15~20㎝의 간층(間層)을 두고 있다.

 

아래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를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물들이 나왔고 윗 문화층에서는 청동기시대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나왔다. 신석기문화층에서 나온 유물의 종류 및 양은 많지 않아서 동굴 안팎에서 질그릇 조각과 뼈 부스러기 및 약간의 석기가 나왔다. 빗살무늬토기 조각들은 유적의 연대를 가늠하는 자료로, 그리고 서포항문화로 대표되는 동북지방과의 연관성을 증거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발굴보고에서 제시된 토기조각은 모두 10점인데 이 가운데 8점은 가장 흔한 생선뼈무늬(魚骨文) 계통이다. 2점은 이른바 꼬불무늬인데(??之??字文 : 북한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짧은이음구불무늬??라고 부른다), 폭은 넓고 사이는 좁게 연속적인 꼬불무늬를 베풀었다. 전체적인 복원이 불가능한 파편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최초로 보고된 꼬불무늬 때문에 한국 신석기문화 연구에서 큰 의미를 갖게되었다. 보고자들은 내몽고 자치구 林西縣의 몇 유적에서 꼬불무늬가 나온 예를 들어 그곳과 미송리 유적의 연관성을 추정하였으며, 그 연대는 신석기 늦은 시기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와 중국 동북지방에서 신석기시대 유적 발굴이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고, 특히 요하를 중심으로 하여 꼬불무늬토기들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들의 방사성탄소연대 값이 B.C. 6000년을 넘어서서 중국 동북지방에서도 중원지방과 공시성(共時性)을 갖는 신석기문화가 성립되고 있었음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단동?대련지구를 중심으로 요동지방의 後窪, 上馬石, 小珠山, 新樂 유적 등에서 출토되는 꼬불무늬와 미송리의 것이 같다고 보아 동일한 문화권을 설정하였다. 이들 문화 유형을 ??시아오쮸산-미송리유형??이라고 한다.

 

미송리 유적의 신석기시대는 新樂 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를 참고하여 B.C. 6000년기에 해당된다고 편년 되었다. 이것은 신석기시대 상한을 B.C. 5000년으로 보던 종래의 주장에서 1000년을 올린 것이며, 북한의 시기구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까지 신석기 후기(B.C. 3000년기 후반기)에 해당된다고 여겨지던 미송리 유적이 한국에서 가장 이른 신석기 유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결국 미송리 유적에 대한 관점을 바꾸면서 한국 신석기문화의 개시연대가 상향조정되고 3개의 문화 유형이 설정되는 대대적인 개편이 있게 된 것이다.

 

윗 문화층은 압록강?송화강 유역의 청동기시대 말기의 유적과 유사하며, 먼저 토기에서 특징 있는 것들이 보인다. 토기는 17점 나왔는데 그 가운데 표주박의 위아래를 잘라놓은 듯한 생김새를 갖고 있는 단지들을 이후 ??미송리형토기(美松里型土器)??로 부르게 되었다. 단지 몸체에 고리형 가로 손잡이나 젖꼭지형 손잡이를 대칭으로 1쌍씩 달고 그 사이에는 입술 모양의 장식을 붙인 것도 있다. 가로줄 무늬의 차이 등에 따라 생김새가 다양하다. 미송리형토기는 이후 한반도 북부를 비롯해 요동지역에 까지 널리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져 고조선 시기를 대표하는 유물이 되었다. 그밖에 청동도끼(銅斧), 돌화살촉(石鏃), 가락바퀴(紡錘車), 뼈 바늘, 송곳, 대롱옥(管玉) 등이 나왔으며, 사람 뼈도 여러 명 분이 나왔다. 청동도끼는 날이 넓게 퍼진 부채날도끼(扇形銅斧)이다. 부채날도끼는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문화에서 보이는 특징있는 유물 가운데 하나로 강상(崗上) 무덤에서 나온 도끼 거푸집에 새겨진 것과 유사하다. 유적의 연대는 B.C. 8~7세기, 고조선시기에 들어간다

 

참고문헌

조선유적유물도감 2-고조선?부여?진국편(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외국문종합출판사, 1989),

미송리 유적의 고고학적 위치(김용간, 조선학보 26, 1964),

미송리 동굴유적 발굴보고(김용간, 고고학자료집 3, 1963),

미송리 동굴유적의 동물유골에 대하여(김신규, 고고학자료집 3, 1963),

미송리 동굴유적발굴 중간보고 1?2(김용간, 문화유산 1961-1?2, 1961)

 

사전명

한국고고학사전(2001)

 

출처;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2&idx=10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