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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9218해,신시배달5918해 단기 4354해,서기 2021해, 대한민국 102해(나뉨 73해),

흑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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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인류출현~1만년전/현생인류-만주와 한반도

2019. 8. 23.

흑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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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D%9D%91%EC%9A%94%EC%84%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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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요석분류화학식물리적 성질색결정상벽개균열성광택비중투명도

미국 오리건주에서 발견된 흑요석

광물
70–75% SiO2,
plus MgO, Fe3O4
검은색, 회색, 암록색, 붉은색, 노란색, 분홍색
없음
없음
조가비 모양
유리질
~ 2.6
투명

 

 

흑요석(黑曜石)은 화산 활동에 의해 생성되는 화성암으로, 자연적인 유리의 일종이다. 규장질 용암이 분출되어 결정이 형성되기 전에 식었을 때 만들어진다. 유문암을 형성하는 용암의 경계면에서 흔히 발견된다. 규소가 많이 함유된 용암은 점성이 높아 원자의 확산이 억제되며 이로 인해 급속히 식을 경우 결정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아 흑요석을 형성하게 된다.

쪼개었을 때 날카로운 날이 만들어져 선사 시대부터 도구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목차

 

 

개요[편집]

흑요석은 결정이 없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광물은 아니나 광물로서 취급된다. 흑요석은 두 종류 이상의 광물이 결정을 형성하지 못하고 하나로 섞여 있는 상태이다. 이 때문에 준광물로 분류하기도 한다.

흑요석은 현무암과 같은 고철질 화산암처럼 어두운 색을 띄고 있으나 그 조성은 대부분 규장질이다. 흑요석을 구성하는 화학 물질은 대부분 이산화규소(SiO2)로 전체 구성 물질 가운데 70%이상을 차지한다. 화강암이나 유문암에 흑요석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흑요석은 모두 백악기 이후에 형성된 것들이다. 이는 흑요석은 수분에 의해 풍화가 가속되기 때문이다. 전체 중량의 1% 정도의 물로도 흑요석이 부서질 수 있다. 펄라이트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같다.[1] 덱타이트는 한 때 의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 과학자들은 흑요석과 수분의 작용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순수한 흑요석은 어두운 색을 띄나 여러 가지 불순물이 섞인 경우 다양한 색을 지닌다. 이나 마그네슘이 섞인 흑요석은 검정이나 암록색을 띈다. 불순물이 거의 없는 경우 무색에 가까운 흑요석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때때로 고온에 의해 이산화규소가 크리스토발라이트와 같은 결정 패턴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흑요석에는 눈송이와 같은 무늬가 나타나게 된다. 공기가 삽입되어 다양한 종류의 거품모양이 만들어진 것도 있다.

 

    •  

       

       

       

       

       

      암석의 대조, 위에서 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흑요석, 부석, 유문암(밝은 색)

       

       

 

    •  

       

       

       

       

       

      무지개 모양의 거품이 생긴 흑요석

       

       

 

  •  

     

     

     

     

     

산지[편집]

흑요석은 유문암이 형성된 인근에서 발견된다. 주요 산지로는 아르메니아, 미국, 캐나다, 칠레, 그리스,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케냐, 뉴질랜드, 페루, 터키 등이다.

이용[편집]

 

 

 

 

흑요석 화살촉

 

 

 

 

 

 

 

눈송이 무늬 흑요석을 이용한 돼지 조각

 

 

 

흑요석은 석기시대부터 부싯돌과 같은 여러 도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가 발굴된 곳은 공주 석장리와 웅기 굴포리를 비롯하여, 동관진(潼關鎭), 단양 수양개, 평양 만달리, 경기 신답리 등의 구석기 유적지이다. 또한 홍천 하화계리의 중석기 유적지와 양양 오산리․부산 동삼동 등의 신석기 유적지에서도 발굴되었다.[2] 한반도의 흑요석 산지로는 백두산 부근 등 3 곳으로 알려져 있다.[3]

 

현대에서도 심장 수술에 흑요석을 사용한 메스가 이용된다. 잘 연마된 흑요석은 두께가 3 나노미터에 불과한 아주 예리한 칼날이 된다.[4]

 

특이한 무늬가 있는 흑요석은 예술품의 재료나 감상용 수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단, 비석이나 벼루 등의 재료로는 검은 사암이 사용되나 흑요석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5]

 

고대의 아즈텍 문명의 전사들도 흑요석이 달린 무기를 사용했다. 사람의 목를 쉽게 자를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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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요석

 

  1.  펄라이트-광물자원 개요 Archived 2008년 5월 9일 - 웨이백 머신,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정부, 캐나다
  2.  김규호, 김미현 (1999). 《한국의 박물관2(경보화석박물관.양구선사박물관)》. 문예마당. 38쪽. ISBN 8982990755. 지금까지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가 발굴된 곳은 공주 석장리와 웅기 굴포리를 비롯하여, 동관진․단양 수양개․평양 만달리․경기 신답리 등의 구석기 유적지이다. 또한 홍천 하화계리의 중석기 유적지와 양양 오산리․부산 동삼동 등의 신석기 유적지에서도 발굴되었다. |id=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1) (도움말)
  3.  한국박물관연구회,한국의 박물관2, 문예마당, 2007, 38-39쪽
  4.  Buck, BA (March 1982). "Ancient technology in contemporary surgery". The Western journal of medicine 136 (3): 265–269. ISSN 0093-0415
  5.  http://donga.dsso.kr/bbs/board.php?bo_table=sub4_4&wr_id=16&sst=wr_datetime&sod=desc&sop=and&page=3

 

전거 통제 

 

 

 

 

 

 

 

 

포천서 후기 구석기 유물 '흑요석기' 1만 2천점 발굴

최종수정 2012.07.10 12:56 기사입력 2012.07.10 12:56

 

 

 

 

포천에서 발견된 후기 구석기 유물 중 밀개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경기도 포천에서 후기 구석기 유물인 '흑요석기' 1만2000여점이 다량 출토됐다. 

문화재청과 기호문화재연구원은 10일 오전 11시 포천시 관인면 중리 발굴현장에서 출토된 흑요석기들을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곳 현장에는 현재까지 4개소의 구석기 지점 중 2개 지점(1, 2지점)에 대한 발굴조사가 완료됐고 추가로 1개 지점(3지점)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사결과 후기 구석기에 해당하는 3개 문화층이 확인됐다.

포천 중리 늘거리 구석기 유적지는 2001년 서울대학교박물관이 시행한 한탄강 댐 수몰지역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확인되었고, 2010년 4월부터 발굴조사가 진행중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석기제작에 사용된 원석(原石·석기 재료)은 석영이 가장 많으며, 응회암과 흑요석, 수정, 규암, 현무암 등으로 다양한 돌감을 이용했다. 이 중 응회암(35%)과 흑요석(10%)의 이용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나는데, 특히 흑요석(黑曜石·마그마가 급격히 식으면서 굳어져 이루어진 화산암)으로 만든 석기(좀돌날몸돌, 긁개, 밀개, 새기개, 돌날석기 등)가 1400여 점이 출토됐다.

출토된 석기의 종류는 주먹도끼, 몸돌, 돌날몸돌, 좀돌날몸돌, 밀개, 긁개, 새기개, 망치돌, 모룻돌 등 석기제작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됐다. 몸돌석기는 주먹도끼, 주먹대패와 몸돌 등으로 출토 양이 적고, 대부분은 돌 일부분을 타격하거나 충격을 가해 떼어낸 격자석기다. 이 석기의 종류는 밀개와 긁개가 가장 많이 출토되었고, 새기개와 슴베찌르개 등도 소수 확인됐다.

기호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유적 바로 뒤편에 응회암 산지(종자산)가 있고, 한탄강 일원에서 화산활동이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면서 "다양한 종류의 잔손질 된 밀개와 긁개들이 출토돼 시기별 석기 제작기법과 특징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 유적들은 기존 한탄강유역의 후기 구석기 유적으로 알려진 철원 장흥리 유적, 포천 화대리 유적, 포천 어룡리 유적과 현재 한탄강 홍수조절 댐 수몰지구 내 다른 여러 구석기 유적들(은골유적·보름리유적 등)과의 비교 연구가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진희 기자 valere@

    출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071012471087761

 

 

 

구석기 시대 백두산 흑요석 대구까지 어떻게 왔나?

김용운 입력 2017.01.07. 00:00 댓글 22

 

'대구 월성동유적 흑요석 원산지 및 쓴자국 분석' 발간
국립대구박물관 '월성동유적' 유물 조사 과정 담아
월성동 흑요석 유물 백두산 산지 첫 확인

 

대구 월성동유적에서 나온 구석기시대 흑요석 유물(사진=국립대구박물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국립대구박물관은 소장품 연구성과를 담은 ‘대구 월성동유적 흑요석 원산지 및 쓴자국 분석’을 발간했다고 7일 밝혔다.

 

이 책에는‘월성동 777-2번지 유적(이하 월성동유적)’에서 출토된 흑요석과 석기를 분석한 논문 2편, 주요 석기 사진을 수록했다.

 

‘월성동유적’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777-2번지 일원으로 2006년 4월부터 11월까지 조사결과 약 300㎡ 정도의 구석기 문화층에서 1만 3184점의 다양한 구석기 유물이 나왔다. 특히 흑요석으로 만든 구석기 유물이 나와 주목 받았다.

 

흑요석은 실리카가 풍부한 마그마가 분출하는 동안 높은 점성과 급격한 냉각에 의해서 생성된 유리질 암석으로 한반도에서는 흑요석 산지가 백두산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립대구박물관은 월성동유적에서 출토된 흑요석 유물 357점 중 100점을 분석한 결과 백두산의 흑요석으로 만든 사실을 확인했고 그 과정을 책에 담았다.

 

국립대구박물관 관계자는 “영남지역 구석기유적에서 출토된 흑요석이 백두산 원산지로 판명난 것은 처음이다”며 “ 한반도 내 흑요석 네트워크를 통한 후기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이동 범위와 경로를 파악하는 실마리는 찾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용운 (lucky@edaily.co.kr)

관련 태그#대구#원산지#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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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v.media.daum.net/v/20170107000033550

 

공주 석장리박물관, 국내 최초 ‘흑요석’ 특별기획전

이준희 기자 | 승인 2019.05.06 22:01

 

[MBS 공주 = 이준희 기자]

 

 

공주 석장리박물관에서 국내 최초로 ‘흑요석’을 주제로 한 특별기획전이 지난 3일 개막했다.

 

공주시에 따르면, 매년 유수의 특별전시를 개최하고 있는 석장리박물관에서 올해는 흑요석을 통해 선사인들의 삶과 네트워크를 알아보는 ‘바다를 건넌 선사인들, 흑요석의 길’ 특별기획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흑요석은 화산활동을 통해 생성되는 천연유리 성분을 가진 매우 날카롭고 빛나는 암석으로,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도구를 만드는 재료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1970년 공주 석장리 유적 조사 중 처음 발굴됐으며, 이를 계기로 흑요석이 한국 구석기 문화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번 특별전시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까지 흑요석과 연관된 선사인의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흑요석 유물이 비교 전시됐다.

 

흑요석은 국내외 선사시대 연구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전시로 개최되는 것은 공주 석장리가 처음으로, 유물 수량도 528점에 이르는 최대 규모이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공주 석장리 구석기축제가 개최되는 5월 3일부터 2020년 2월 28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준희 기자  mbstv@daum.net

 

<저작권자 © 미니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http://www.mbs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7527

 

 

의정부민락동유적(議政府民樂洞遺蹟)

 

선사문화유적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화덕자리·숯가마 등이 발굴된 집터.   

 

출처;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D%9D%91%EC%9A%94%EC%84%9D&ridx=0&tot=4

 

 

분야  선사문화

유형  유적

시대  선사-석기

성격  집터

건립시기  구석기시대, 백제시대

소재지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

 

 

정의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화덕자리·숯가마 등이 발굴된 집터.

 

키워드

 

 

 

 

개설

 

민락동 택지개발에 앞서 실시한 지표 및 시굴조사에서 백제시대의 생활 유적 흔적이 확인됨으로써 알려졌다. 발굴조사과정에서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포함층이 발견되었다. 발굴조사 후 이 유적은 아파트 건설을 위해 파괴, 멸실되었다.

 

 

 

내용

 

1. 백제시대 유적

백제시대의 유적으로는 움집터 3기, 고상식(高床式) 집자리 1기, 숯가마로 추정되는 유구 1기, 저장구덩이 21기와 사방 5m 내외의 밭자리가 발견되었다. 또한 당시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던 생활면이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확인되었다. 유구의 안팎과 생활면에서는 여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움집터는 장방형과 말각방형 (또는 육각형) 평면을 하고 있으며, 내부 한쪽 구석에 화덕자리가 있어 한강유역의 백제시대 주거지와 유사한 양상이다. 밭자리에서는 그 폭이 각각 50㎝와 70~80㎝ 정도의 고랑과 이랑이 확인되었다. 식물규산체 분석 결과 수수를 경작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시대 유물로는 철기와 석기도 있지만 토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토기는 한강유역의 전형적 백제토기와 형태상 유사하지만, 태토는 비교적 조잡한 편이며 그릇 안팎도 말끔히 정리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토기들은 대체로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정도로 편년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유적의 연대도 이 시기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집자리에서는 이보다 약간 이른 시기인 미사리 유적이나 몽촌토성 유적의 백제시대 유적에서 확인된 바와 유사한 구조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유적의 연대가 조금 더 이를 가능성도 있다.

 

2.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은 민락동지구의 아주 작은 구역에 살아 남은 고토양층 속의 유물포함층 형태로 확인되었다. 모두 50여 점에 달하는 석기는 흑요석, 수정, 혼펠스, 석영, 규암 등의 원석으로 만들어졌다.

 

중요 유물로는 전형적인 쐐기형몸돌 1점을 비롯한 몸돌과 긁개를 꼽을 수 있다. 그 밖에도 각종 버리는 석재가 수습되었다. 이들은 대략 1만 1-2천년 전 동북아시아 구석기시대 최말기 단계 유물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흑요석 석기의 성분분석 결과, 후기 구석기 혹은 중석기시대라 생각되는 홍천 하화계리 유적과 신석기시대 오산리 유적에서 발견된 흑요석과 동일한 산지에서 기원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그 결과, 후기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에 걸쳐 흑요석 원석이 매우 장거리에 걸쳐 운반되었음이 밝혀졌다.

 

 

 

참고문헌

 

  • 『의정부 민락동 유적: 시굴 및 발굴조사보고서』(서울대학교박물관,1996)

  • 『발굴유물도록』(서울대학교박물관,1997)

  • 「흑요석 석기의 지화학적 특성에 대한 예비 고찰」(이선복·이용일,『한국고고학보』35,1996)

 

 

 

집필자

 

집필 (1998년)이선복

 

 

남양주호평동유적(南楊州好坪洞遺蹟)

 

선사문화유적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돌날·톱니날·몸돌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구석기유적·유물군.

 

출처;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D%9D%91%EC%9A%94%EC%84%9D&ridx=2&tot=4

 

 

분야  선사문화

유형  유적

성격  유물산포지, 구석기유적, 유물군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전64-1번지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돌날·톱니날·몸돌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구석기유적·유물군.

 

 

 

내용

 

남양주호평동유적은 2000~2001년 택지개발지구 내 기와가마터를 조사하던 중 구석기가 수습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시굴조사 후 2002~2004년까지 3차에 걸쳐 4개 지역으로 구분하여 발굴조사가 진행되었으며, 그 중 1지역은 전체 면적의 1/6만을 조사한 후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현상 보존조치 하였다. 그 후 경춘선 철도 이설이 완료된 후 1지역 잔여 부지에 대한 추가 발굴이 2007~2008년에 이루어졌다.

 

유적은 북쪽의 천마산에서 남쪽의 백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지에 둘러싸여 있으며, 천마산에서 시작된 사능천이 한강의 지류인 왕숙천으로 유입되면서 발생하는 하천침식에 의해 형성된 분지 지형에 입지하고 있다. 분지 내 낮은 구릉 말단부에 자리한 유적 일대에는 주변의 높은 산지에서 기원한 모난 암편들과 니사질 토양이 뒤섞인 사면 퇴적물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지층은 위에서부터 1지층: 표토 교란층 – 2지층: 각력질 암쇄류로 구성된 사면기원 퇴적층 – 3지층: 토양쐐기 구조가 발달한 암갈색 사질점토층(문화층) – 4지층: 각력질 암쇄류로 구성된 사면기원 퇴적층 – 5지층: 암석과 사질점토층이 혼재한 사면기원 퇴적층 – 6지층: 저습한 환경에서 형성된 담회청색 니사질층 – 7지층: 화강암질 편마암 풍화대로 구분된다. 이 중 3지층은 상부의 갈색 사질점토층(3a층, 2문화층)과 하부의 암갈색 사질점토층(3b층, 1문화층)으로 나뉘는데, 연대측정 결과 1문화층은 30,000±1,500~27,500±300 BP, 2문화층은 24,100±200~16,190±50 BP에 형성된 것으로 나왔다.

 

1, 2지역에서 출토된 1문화층 석기는 모두 3,168점이다. 돌감은 거의 대부분 맥석영(95.7%)이며, 기타 응회암·유문암·셰일·사암·처트·화강편마암·규암 등이다. 1문화층에서 흑요석은 출토되지 않으며, 석영 중심의 석기제작과 응회암을 이용한 돌날 제작이 주를 이룬다. 전체 석기 구성에서 돌조각(60.1%)과 격지(27.4%)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외 몸돌·잔손질된 석기·자연돌·돌날·사용된 자연돌·돌날몸돌·몸돌석기(찍개·여러면석기 등) 순으로 많다. 잔손질된 석기(3.5%)는 긁개와 밀개가 주를 이루며, 홈날·슴베찌르개·톱니날·부리날 등으로 구성된다. 밀개는 대부분 석영제 격지나 돌조각을 몸체로 하였으며, 슴베찌르개는 모두 응회암과 유문암제 돌날로 제작되었다.

 

2문화층에서는 모두 10,201점의 석기가 출토되었는데, 돌감은 석영(68.9%), 혼펠스(15.8%), 흑요석(10.4%) 순으로 우세하다. 기타 유문암·규암·응회암·셰일·사암·처트·화산암 등 매우 다양하다. 1지역의 구역에 따라 집중 사용된 돌감에 차이가 있는데, A구역은 흑요석, B구역은 기타 돌감, 철도부지를 포함한 C구역은 석영과 혼펠스가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 흑요석과 혼펠스를 이용한 좀돌날 제작은 각각 A구역과 C구역을 중심으로 확인되며, 접합석기를 통한 복원이 가능하다.

 

전체 석기 구성에서 격지(49.9%)와 돌조각(34.1%)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외 좀돌날·몸돌·잔손질된 석기·돌날·좀돌날몸돌·사용된 자갈돌·자연돌·몸돌석기(여러면석기) 순으로 많다. 잔손질된 석기(3.3%)는 긁개와 밀개가 주를 이루며, 홈날·쐐기(pièce esquillée)·뚜르개·새기개·톱니날·부리날·찌르개 등으로 구성된다. 밀개의 경우, 1문화층에서는 볼록날과 콧등날 밀개 위주였다면, 2문화층에서는 그 외에도 원형 밀개·돌날 밀개·손톱모양 밀개 등 종류가 보다 다양해지고 밀개-새기개 복합석기도 등장하는 특징이 있다.

 

 

 

의의와 평가

 

호평동유적은 석영 중심의 석기제작과 응회암을 이용한 돌날석기 제작이 주를 이루는 1문화층, 석영 격지 제작과 흑요석 및 혼펠스를 이용한 좀돌날석기 제작이 중심인 2문화층이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는 대규모 후기구석기 유적이다. 따라서 후기구석기 이른 시기와 늦은 시기의 석기 변화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 『남양주 호평동 구석기유적』Ⅲ(경기문화재연구원,2010)

  • 『남양주 호평동 구석기유적』Ⅰ,Ⅱ(기전문화재연구원,2008)

  • 「남양주 호평동 유적의 흑요석제 석기와 그 사용」(홍미영·니나 코노넨코,『한국구석기학보』12,2005)

 

 

 

집필자

 

집필 (2016년)최승엽(강원문화재연구소)

 

 

단양 수양개 유적(丹陽 垂楊介 遺蹟)

출처;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D%9D%91%EC%9A%94%EC%84%9D&ridx=3&tot=4

 

정의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빗살무늬토기·주먹도끼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사적.

 

개설

 

이 유적은 남한강 상류의 강가에 있는 양달유적으로 해발 132m에 있다. 충주댐 수몰지역 지표조사의 일환으로 충북대학교 박물관이 1980∼1981년에 발견하고, 1983∼1985년까지 4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내용

 

이 유적이 위치한 주변 지역은 석회암동굴과 강을 낀 자연환경으로, 선사인의 살림터로 알맞은 곳이다. 제원 점말용굴·단양 상시바위그늘·금굴 유적 등이 가까이에 있다. 수양개 유적 둘레는 높고 낮은 산으로 둘려져 있고, 유적의 동남쪽으로 강물이 흐른다. 이 유적을 구성하는 암석은 조선계(朝鮮系) 대석회암통(大石灰巖統) 위에 사암·셰일을 수반하는 대동계(大同系) 반송통(盤松統)이 놓이고, 그 뒤 제4계에 충적층이 쌓인 곳으로, 특히 석회암지대가 잘 발달된 곳이다.

 

지금까지의 조사로, 중기구석기∼청동기시대까지 5개의 문화층이 층위(層位)를 이루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약 20분의 1인 85㎡ 정도가 발굴되었으며, 강안단구(江岸段丘)의 비탈에 이루어진 무늬토기층(Ⅲㅁ층)과 구석기문화층(Ⅳㄱ층·Ⅳㄴ층), 청동기시대문화층 등이 드러났다.

 

빗살무늬토기층(Ⅲㅁ층)은 고운모래흙층으로 돌도끼와 빗살무늬토기조각이 발견되었다. 돌도끼의 갈기수법과 빗살무늬토기의 무늬형식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중기나 후기에 발달한 층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신석기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타제돌도끼·화살촉·그물추 등 문화성격이 뚜렷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는 홈자귀·대팻날·민무늬토기 밑바닥이 발굴되어 층위구분이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구석기문화층(Ⅳㄱ층·Ⅳㄴ층)은 노란갈색흙층(10YR4·4∼5·6)으로 땅갈라짐(mud―cracks)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석장리 후기 구석기시대 집자리와 청원 샘골 유적과 같이 따뜻한 기후를 가지는 빙간기에 해당된다. 이 층에 발달한 문화는 출토유물의 상태와 성격으로 보아 시기를 달리해 문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유물의 재료는 위(Ⅳㄱ)·아래(Ⅳㄴ)층 모두 규암·셰일·규암질셰일·유문암이 많이 쓰였고, 석영·규장암·흑요석 등이 조금씩 쓰였다.

 

구석기시대의 위(Ⅳㄱ) 문화층은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층으로 2개의 층위로 나뉜다. 아래층은 후기구석기의 전·중기에 해당하고, 윗층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후기 문화층으로 해석된다. 유물의 재료는 셰일(shale)로서, 유적에서 약 1.5km 떨어진 산제골에서 날라와 연모를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유물 중 주먹도끼는 프랑스·알제리에서 출토된 유물과는 형태와 수법이 비슷하여 큰 관심을 가지게 한다. 이 외에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주먹칼을 비롯하여 안팎날찍개, 다양한 형태의 슴베석기·둥근밀개·긁개가 많이 출토되었다. 특히, 간접떼기와 잔솔질을 정교하게 베풀어 만든 긁개·밀개·새기개·찌르개·배밑모양(care·ne)의 돌날몸돌·작은돌날 등 전형적인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내는 층으로 격지연모가 많다.

 

또한 많은 수의 흑요석은 원산지문제와 이와 관련된 교역·이동의 자료로 제시된다. 작은 돌날몸돌 중 다듬은 타면을 가지는 배모양 긁개는 일본의 유우베스[湧別川]수법보다 앞선 것으로, 석장리의 새기개·밀개 문화층과 집자리의 유물과 비교된다. 작은 돌날몸돌과 배모양 전통의 석기는 우리나라와 시베리아·북중국·몽고·일본 등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이 수법의 전파문제를 새롭게 제시한다.

 

맨 아래층(Ⅳㄴ)의 중기 구석기 문화층은 주로 사암(砂岩)·규암(硅岩)·이판암(泥板岩)으로 구성된 자갈층 위에 발달하였다. 석기제작 수법은 모룻돌을 이용한 직접떼기나 던져떼기로서, 2차 잔손질을 가한 것이며, 석기는 대체로 무겁고 큰 편으로 잔손질한 흔적이 별로 관찰되지 않는다.

 

아래(Ⅳㄴ) 문화층은 중기 구석기시대의 전통을 강하게 가지는 유물을 내는 층으로, 석기제작소 및 모루·망치·몸돌·격지 등 석기제작방법의 복원자료가 발굴되었다. 또한 다양한 연모제작수법이 보이며, 다목적 석기가 적고 1연모 1기능의 단순연모가 많다.

 

엇갈림떼기를 베풀어 코일식의 안팎날을 만든 주먹도끼와 S자형 휘임날을 만든 편도(扁桃)모양 주먹도끼 및 규암질셰일 판자돌의 원석(原石)에 돌려떼기를 베풀어 만든 다능선의 둥근 몸돌 등은 아슐리안 전통의 무스테리안문화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프리즘모양과 의사(疑似) 르바루아몸돌 및 짝이 맞는 격지들도 나왔다.

 

 

 

의의와 평가

 

수양개 유적은 크게 후기 구석기 시대와 중석기 시대에 걸친 시대로 파악하고 있으며, 석장리·전곡리·명오리·창내 유적과 같이 강가의 양달유적으로서 석기제작방법의 복원자료와 문화의 연계·전파 등 구석기문화를 폭넓게 이해하는 자료를 제시해 주었다. 또한 많은 숯의 출토로 보아 집자리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주먹도끼, 찌르개, 슴베 등이 있는데, 특히 주먹도끼는 대개 아슐리안 계통의 무스베리안 형식과 유사하다.

 

위 문화층은 전형적인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로 석장리 집자리층·창내 유적과 견줄 수 있고, 아래 문화층은 중기 구석기시대의 전통을 지닌 유적으로 구석기시대 중기에서 이른 후기 구석기시대에 놓인다.

 

이 유적은 부근의 점말용굴·상시바위그늘·도담금굴·명오리·창내 유적 등 중부지방에 발달한 구석기문화와 상호 비교연구 및 동북아시아의 구석기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그리고 후기구석기시대의 문화층에서 출토되는 배모양밀개·흑요석석기는 주변의 중국·일본 유적과 비교연구로 그 문화전파의 이동경로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구석기』(연세대학교 박물관,2001)

  • 「단양수양개 후기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연구」(이융조,『김용덕박사정년기념사학논총』,1987)

  • 「단양수양개유적발굴조사보고」(이융조,『충주댐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연장보고서』,충북대학교박물관,1985)

  • 「단양수양개 구석기유적」(이융조,『청주댐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종합보고서』,충북대학교박물관,1984)

  • 「단양 수양개 구석기유적 발굴약보고서」(이융조,『’83 충주댐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보고』,1983)

 

 

 

집필자

 

개정 (1996년)이융조|강성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