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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수양개 유적(丹陽 垂楊介 遺蹟), ‘눈금을 새긴 돌제품’ 출토, 사람 얼굴 모양 추정 돌조각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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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인류출현~1만년전/현생인류-만주와 한반도

2020. 6. 11.

 

출처;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d_idx=246

 

유적명(한글)

수양개유적

남한강유역 곳곳에서의 구석기 흔적들

남한강은 우리나라 중부지역을 관통하는 한강의 큰 지류로, 강원도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이 된다. 상류는 비교적 높은 산악 지대를 흐르는 급류천이며, 단양을 지나면서 강폭이 넓어지고 유속이 느려지며 완만한 곡선을 이루면서 하류 지역으로 흐른다. 단양을 지난 강변에는 하안단구(River terrace) 위에 제4기 지질층(고토양층)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남한강 상류지역인 강원도 영월, 충북 제천·단양에는 조선계 석회암층이 널리 발달되어 구석기인들의 생활 터전이 되었던 석회암 동굴과 바위그늘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남한강유역의 구석기유적은 1973년 제천 점말 용굴유적 조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한데유적동굴 유적, 바위그늘유적 등 22곳이 알려져 있다.

 

한데유적은 주로 하안단구가 발달한 산록완사면 상부(3단구 또 는 4단구)와 사면 하단부(2단구)에서 확인되며, 석회암 지대가 발달된 남한강 상류에는 동굴과 바위그늘유적 이 분포하고 있다. 이들 구석기유적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동물화석과 뼈연모, 인류화석 등 다양한 연구자료가 확보되어 구석기 문화 연구에 넓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후기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수양개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단양 수양개유적(사적 제398호)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슴베찌르개좀돌날몸돌 등 특징적인 유물이 출토되어 주목받아 온 유적이다. 1980년 충주댐 수몰지구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처음 알려진 후 1983년부터 2011년까지 10차례의 발 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수양개유적은 총 5개 지구로 구분되는데 발굴조사 된 Ⅰ지구(1983~1985년)·Ⅱ지구(1995~1996년)·Ⅲ지구(2000~2011년)와 지표상에서 구석기 유물이 수습된 Ⅳ·Ⅴ지구이다.

 

구석기 문화층은 Ⅰ지구와 수양개유물전시관 건립 부지였던 Ⅲ지구에서만 확인된다. 1980년대 중반에 발굴조사된 수양개 Ⅰ지구에서는 50여 곳의 석기제작소에서 27,000여 점의 구석기 유물 이 출토되었다. 유물은 주먹도끼찍개긁개밀개ㆍ슴베찌르개ㆍ슴베밀개ㆍ새기개뚜르개홈날톱니날ㆍ주먹 칼ㆍ간돌도끼 등 완성된 연모와 몸돌ㆍ돌날몸돌ㆍ좀돌날 몸돌ㆍ격지돌날좀돌날·모룻돌·망치돌 등 석기제작과 관련된 유물들이다. 석기제작소와 출토된 다양한 석기 구성 양상은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석기 제작 행위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또한 다량의 돌날몸돌ㆍ좀돌날몸돌과 다양한 크기의 돌날과 좀돌날, 여러 유형의 돌날연모 등은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석기제작 전통을 밝힐 수 있는 자료 이다. 이는 시베리아·중국·일본 등지에서 확인되는 석기와 유사성을 지닌 것으로서 구석기시대 문화이동의 다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 석기인 좀돌날몸돌과 슴베찌르개가 같은 층위에서 다량으로 출토된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굴조사된 구석기유적 가운데 좀돌날몸돌만 출토된 유적이 20여 곳, 슴베찌르개만 출토된 유적이 10곳 정도, 두 종류가 함께 출토된 유적이 10 여 곳이다. 좀돌날몸돌과 슴베찌르개가 함께 출토된 유적 가운데 수양개유적은 출토량이 가장 많고 다양한 제작기술이 엿보여 동북아시아 후기 구석기문화를 연구하는데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수양개유적 구석기문화층과 그 유물

이번 조사 지역은 수양개유물전시관 건립 부지였던 Ⅲ지구로, 2001년(8차)· 2008년(9차)·2011년(10차) 세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은 5×5m의 그리드를 설정하여 발굴을 진행하였는데 전체적으로 7개의 퇴적층 이 확인되었다. 퇴적층은 위로부터 표토 및 교란층(Ⅰ층)-적황색 모래질점질토 층(Ⅱ층)-황갈색 점질토층(Ⅲ층)-황색 점질토층(Ⅳ층)-적갈색 점질토층(각력 및 자갈포함, Ⅴ층)-모래층(Ⅵ층)-자갈층(Ⅶ층)으로 구분된다. 이 층들은 구하상력 층인 3단구층과, 단구층 이후에 형성된 하상기원퇴적층, 그리고 석회암의 풍화물 에 유래한 사면기원퇴적층으로 나누어진다.

 

구석기 유물은 주로 자갈층과 고토양 층인 황색·황갈색 점질토층에서 확인된다. 3단구층은 약 25~30만 년 전의 층 으로 구석기 유물이 주로 출토되는 황색·황갈색 점질토층과는 시기상 큰 차이가 있다. 이는 단구층이 침식에 의해 2단구층까지 노출되었으며 당시 구석기인들이 남한강변과 산능선 평탄지를 점유하여 생활하였음을 의미한다. 구석기 유물은 지표수습 유물을 포함하여 901점이 출토되었는데 3개의 구석 기문화층에서 공통적으로 찍개·여러면석기·주먹대패·긁개·밀개·홈날 등의 석기 제작과 관련된 유물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황갈색 점질토층에서는 뚜르개·톱니 날·새기개 등의 새로운 연모가 확인되었다. 이 황갈색 점질토층은 돌날·좀돌날몸 돌과 슴베찌르개 등 후기 구석기시대의 특징적 유물이 출토되는 문화층으로 수양개 Ⅰ지구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층 유물의 형식 및 특징과 비교될 수 있다. 슴베찌르개와 좀돌날몸돌 단양 수양개 구석기유적에서 주목되는 것은 슴베찌르개 와 좀돌날몸돌(좀돌날 포함)일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석기는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지금까지 남한강유역에서는 단양 수양개유적, 제천 두학동 중말유적, 용인 평창리유적에서만 확인되었다.

 

수양개 Ⅲ지구에서도 2008년 9차 발굴조사에서 슴베 찌르개 1점이 2문화층인 황갈색 점질토층에서 출토되었 다. 찌르개의 날은 잔손질하지 않고 슴베부분의 아랫면에서 윗면을 한쪽 부분만 가파르게 잔손질을 하였는데, 자른면은 삼각형을 이 룬다. 찌르개 부분은 특별한 잔손질 없이 돌날로 떼어질 때의 날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좀돌날몸돌의 경우 수양개 Ⅰ지구에서 195점이 출토되었다. 좀돌날몸돌 의 제작기법은 때림면과 타격방향을 기준으로 자연면을 때림면으로 사용하고 양면떼기로 배모양의 형태를 만든 뒤 좀돌날을 얻는 형태, 때림면을 다듬 을 때 긴 방향으로 격지를 뗀 다음 좀돌날을 얻는 형태, 너비 방향떼기로 때 림면을 만든 뒤 좀돌날을 만드는 형태로 나누어진다.

 

수양개 Ⅲ지구에서도 좀돌날몸돌 1점이 지표에서 수습되었는데 경작 및 기와가마 생산활동에 따른 태토 채취 과정에서 원지층이 일부 훼손되면서 지 표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좀돌날몸돌은 자연면을 타격면으로 활용 하며 양면떼기로 배모양을 만든 후 좀돌날을 얻는 형태이다. 좀돌날떼기 각도는 65~75°이며, 모두 5개 정도의 좀돌날을 떼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굴 및 지표조사를 통해 슴베찌르개와 좀돌날몸돌 이 확인된 유적은 60여 곳에 가깝다. 슴베찌르개와 좀돌날몸돌(좀돌날)이 함께 출토된 유적은 철원 장흥리·광주 삼리·공주 석장리·청원 노산리·단 양 수양개·장수 침곡리·밀양 고례리·장흥 신북·진안 진그늘·순천 월평유 적·승주(순천) 죽산 등이다.

 

슴베찌르개와 좀돌날몸돌의 출토는 유적의 형성 시기를 규명해주는 자료이자 유물의 분포 및 확산 과정을 밝히는데 중요한 연구자료로 이용 된다. 발굴조사 및 지표조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북한지역을 제외하고는 한반도 전 지역에 걸쳐 슴베찌르개와 좀돌날몸돌이 출토되 고 있어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의 전파 및 확산 과정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수양개 구석기유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단양 수양개유적은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구석기유적으로, 슴베 찌르개와 좀돌날몸돌 등 특징적인 유물의 출토와 꾸준히 개최되는 국제학술회의 를 통해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중요한 유적이다. 그렇지만 수양개유적의 형성 과 성격 파악을 위해서는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들이 있다. 먼저 수양개 Ⅰ지구와 Ⅲ지구 구석기유적 간의 퇴적층위 연결과 유적의 형성 시기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Ⅰ지구는 2단구층(해발고도 132m) 상부에 위치하 고, Ⅲ지구는 3단구층(해발고도 156m) 상부에서 유적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양개 Ⅲ지구의 지표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주먹도끼의 연대 문제이다. 이 주먹도끼는 수양개 Ⅲ지구에서 확인된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보다 이른 시기의 것으로 3단구층 형성 이후~2단구 형성 이전, 즉 전기~중기 구석기문화층의 분 포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수양개유적 일대는 2단구와 3단구가 함께 분포하는 곳으로 전기~후기 구석기시 대의 사람들이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퇴적층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제4기 지질학의 연구와 절대연대의 측정,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변화양상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로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의 암질 조사는 구석기유적 연구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구석기유적의 석기는 고인류의 행위가 담겨 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유적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암질 외에 흑요석·혼펠스·응회 암·쳐트 등은 석재의 채취뿐만 아니라 고인류의 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암질조사를 위해서는 유물 파괴 분석이 필요하기에 실질 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부분이 있다. 이를 위해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 중 인류의 행위가 가해지지 않은 외부반입석재를 이용하여 자연과학분 야와의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 자연과학에서 도출되는 결과를 통해 유적 내에서 사용되는 암질 및 암질과 석기 제작의 관계 등을 파악하고 주변유적과의 비교를 통해 고인류의 이동까지도 이야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출처자료

2011 한국고고학저널

 

 

 

 

단양 수양개 유적(丹陽 垂楊介 遺蹟)

 

선사문화문화재 | 유적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빗살무늬토기·주먹도끼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사적.

 

출처;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D%9D%91%EC%9A%94%EC%84%9D&ridx=3&tot=4

 

 

 

 

 

 

 

단양 수양개 유적 전경

 

분야  선사문화

유형  문화재, 유적

시대  선사-석기

지정기관  문화재청

지정부류  사적

지정번호  제398호

 

 

정의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빗살무늬토기·주먹도끼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사적.

 

 

 

개설

 

이 유적은 남한강 상류의 강가에 있는 양달유적으로 해발 132m에 있다. 충주댐 수몰지역 지표조사의 일환으로 충북대학교 박물관이 1980∼1981년에 발견하고, 1983∼1985년까지 4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내용

 

이 유적이 위치한 주변 지역은 석회암동굴과 강을 낀 자연환경으로, 선사인의 살림터로 알맞은 곳이다. 제원 점말용굴·단양 상시바위그늘·금굴 유적 등이 가까이에 있다. 수양개 유적 둘레는 높고 낮은 산으로 둘려져 있고, 유적의 동남쪽으로 강물이 흐른다. 이 유적을 구성하는 암석은 조선계(朝鮮系) 대석회암통(大石灰巖統) 위에 사암·셰일을 수반하는 대동계(大同系) 반송통(盤松統)이 놓이고, 그 뒤 제4계에 충적층이 쌓인 곳으로, 특히 석회암지대가 잘 발달된 곳이다.

 

지금까지의 조사로, 중기구석기∼청동기시대까지 5개의 문화층이 층위(層位)를 이루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약 20분의 1인 85㎡ 정도가 발굴되었으며, 강안단구(江岸段丘)의 비탈에 이루어진 무늬토기층(Ⅲㅁ층)과 구석기문화층(Ⅳㄱ층·Ⅳㄴ층), 청동기시대문화층 등이 드러났다.

 

빗살무늬토기층(Ⅲㅁ층)은 고운모래흙층으로 돌도끼와 빗살무늬토기조각이 발견되었다. 돌도끼의 갈기수법과 빗살무늬토기의 무늬형식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중기나 후기에 발달한 층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신석기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타제돌도끼·화살촉·그물추 등 문화성격이 뚜렷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는 홈자귀·대팻날·민무늬토기 밑바닥이 발굴되어 층위구분이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구석기문화층(Ⅳㄱ층·Ⅳㄴ층)은 노란갈색흙층(10YR4·4∼5·6)으로 땅갈라짐(mud―cracks)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석장리 후기 구석기시대 집자리와 청원 샘골 유적과 같이 따뜻한 기후를 가지는 빙간기에 해당된다. 이 층에 발달한 문화는 출토유물의 상태와 성격으로 보아 시기를 달리해 문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유물의 재료는 위(Ⅳㄱ)·아래(Ⅳㄴ)층 모두 규암·셰일·규암질셰일·유문암이 많이 쓰였고, 석영·규장암·흑요석 등이 조금씩 쓰였다.

 

구석기시대의 위(Ⅳㄱ) 문화층은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층으로 2개의 층위로 나뉜다. 아래층은 후기구석기의 전·중기에 해당하고, 윗층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후기 문화층으로 해석된다. 유물의 재료는 셰일(shale)로서, 유적에서 약 1.5km 떨어진 산제골에서 날라와 연모를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유물 중 주먹도끼는 프랑스·알제리에서 출토된 유물과는 형태와 수법이 비슷하여 큰 관심을 가지게 한다. 이 외에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주먹칼을 비롯하여 안팎날찍개, 다양한 형태의 슴베석기·둥근밀개·긁개가 많이 출토되었다. 특히, 간접떼기와 잔솔질을 정교하게 베풀어 만든 긁개·밀개·새기개·찌르개·배밑모양(care·ne)의 돌날몸돌·작은돌날 등 전형적인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내는 층으로 격지연모가 많다.

 

또한 많은 수의 흑요석은 원산지문제와 이와 관련된 교역·이동의 자료로 제시된다. 작은 돌날몸돌 중 다듬은 타면을 가지는 배모양 긁개는 일본의 유우베스[湧別川]수법보다 앞선 것으로, 석장리의 새기개·밀개 문화층과 집자리의 유물과 비교된다. 작은 돌날몸돌과 배모양 전통의 석기는 우리나라와 시베리아·북중국·몽고·일본 등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이 수법의 전파문제를 새롭게 제시한다.

 

맨 아래층(Ⅳㄴ)의 중기 구석기 문화층은 주로 사암(砂岩)·규암(硅岩)·이판암(泥板岩)으로 구성된 자갈층 위에 발달하였다. 석기제작 수법은 모룻돌을 이용한 직접떼기나 던져떼기로서, 2차 잔손질을 가한 것이며, 석기는 대체로 무겁고 큰 편으로 잔손질한 흔적이 별로 관찰되지 않는다.

 

아래(Ⅳㄴ) 문화층은 중기 구석기시대의 전통을 강하게 가지는 유물을 내는 층으로, 석기제작소 및 모루·망치·몸돌·격지 등 석기제작방법의 복원자료가 발굴되었다. 또한 다양한 연모제작수법이 보이며, 다목적 석기가 적고 1연모 1기능의 단순연모가 많다.

 

엇갈림떼기를 베풀어 코일식의 안팎날을 만든 주먹도끼와 S자형 휘임날을 만든 편도(扁桃)모양 주먹도끼 및 규암질셰일 판자돌의 원석(原石)에 돌려떼기를 베풀어 만든 다능선의 둥근 몸돌 등은 아슐리안 전통의 무스테리안문화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프리즘모양과 의사(疑似) 르바루아몸돌 및 짝이 맞는 격지들도 나왔다.

 

 

 

의의와 평가

 

수양개 유적은 크게 후기 구석기 시대와 중석기 시대에 걸친 시대로 파악하고 있으며, 석장리·전곡리·명오리·창내 유적과 같이 강가의 양달유적으로서 석기제작방법의 복원자료와 문화의 연계·전파 등 구석기문화를 폭넓게 이해하는 자료를 제시해 주었다. 또한 많은 숯의 출토로 보아 집자리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주먹도끼, 찌르개, 슴베 등이 있는데, 특히 주먹도끼는 대개 아슐리안 계통의 무스베리안 형식과 유사하다.

 

위 문화층은 전형적인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로 석장리 집자리층·창내 유적과 견줄 수 있고, 아래 문화층은 중기 구석기시대의 전통을 지닌 유적으로 구석기시대 중기에서 이른 후기 구석기시대에 놓인다.

 

이 유적은 부근의 점말용굴·상시바위그늘·도담금굴·명오리·창내 유적 등 중부지방에 발달한 구석기문화와 상호 비교연구 및 동북아시아의 구석기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그리고 후기구석기시대의 문화층에서 출토되는 배모양밀개·흑요석석기는 주변의 중국·일본 유적과 비교연구로 그 문화전파의 이동경로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구석기』(연세대학교 박물관,2001)

  • 「단양수양개 후기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연구」(이융조,『김용덕박사정년기념사학논총』,1987)

  • 「단양수양개유적발굴조사보고」(이융조,『충주댐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연장보고서』,충북대학교박물관,1985)

  • 「단양수양개 구석기유적」(이융조,『청주댐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종합보고서』,충북대학교박물관,1984)

  • 「단양 수양개 구석기유적 발굴약보고서」(이융조,『’83 충주댐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보고』,1983)

 

 

 

집필자

 

개정 (1996년)이융조|강성봉

 

 

 

관련 멀티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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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 수양개 유적 발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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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 수양개 유적 발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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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 수양개 유적 발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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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 수양개 유적 발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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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수양개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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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B%8B%A8%EC%96%91_%EC%88%98%EC%96%91%EA%B0%9C_%EC%9C%A0%EC%A0%81

 

단양 수양개 유적
(丹陽 垂楊介 遺蹟)종목수량시대위치주소좌표정보

 대한민국 사적
 
사적 제398호
(1997년 10월 10일 지정)
110,842m2
선사시대

 

 

 

 

단양 애곡리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182-1번지
북위 36° 57′ 32″ 동경 128° 19′ 55″좌표: 북위 36° 57′ 32″ 동경 128° 19′ 55″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단양수양개선사유적
(丹陽수양개先史遺蹟)종목정보

 충청북도 기념물(해지)
기념물 제101호
(1994년 12월 30일 지정)
(1997년 10월 10일 해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단양 수양개 유적(丹陽 垂楊介 遺蹟)은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유적이다. 1997년 10월 10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98호 단양수양개선사유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7월 28일 단양 수양개 유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개요[편집]

단양 적성면 수양개에 있는 구석기 후기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걸친 유적이다. 남한강가 충적대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강을 끼고 있는 주위의 환경이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곳으로, 발견된 석기들은 다양하고 당시 만들었던 기술도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후기 구석기 시대에서 볼 수 있는 돌날몸돌과 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슴베가 달린 찌르개는 중국 화북지방, 시베리아 남부지방, 일본 열도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에서 나온 석기들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연구자료가 된다.

 

구석기 시대 유적 주변에서 초기 철기시대 집터가 발견되었는데, 집터의 생김새가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 중원지역 철기시대 생활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수양개 유적은 우리나라 선사문화와 동아시아 선사문화의 교류를 밝히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 자료[편집]

 

단양 적성면 하진리에서 후기 구석기 유물 쏟아져

- ‘눈금을 새긴 돌제품’ 출토 -

문화재청 2014.06.16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발굴허가를 받아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원장 우종윤)이 지난 2011년부터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단양 수중보 건설지역)의 남한강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후기 구석기 유적(수양개 6지구) 발굴조사에서 15,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수양개 6지구 유적(2014년 발굴면적: 830㎡)에서 모두 3개의 후기 구석기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석기는 몸돌(좀돌날몸돌, 돌날몸돌 포함), 격지(돌날, 좀돌날 포함), 조각, 망치 등 석기 제작 관련 유물이 주를 이루며,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슴베찌르개, 긁개, 밀개, 홈날, 뚜르개, 새기개 등의 연모를 포함하여 모두 15,000여 점에 이른다. 문화층마다 다양한 형태와 크기를 가진 망치돌이 출토되었고, 짝이 맞는 몸돌과 격지, 조각들이 발견되어 이곳에서 석기 제작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 좀돌날: 몸돌에서 떼어낸 격지 가운데 길이와 너비가 2:1 이상이고, 등 면에 양쪽 가장자리와 나란하게 능선이 남아 있는 것을 돌날이라고 하는데, 좀돌날은 최대 너비 12mm 이하인 것을 말하며, 주로 결합도구로 활용되었다.
 
특히, 가장 아래층인 3문화층에서 길쭉한 규질사암 자갈돌(길이 20.6cm, 너비 8.1cm, 두께 4.2cm)에 0.4cm 간격으로 22개의 눈금을 새긴 돌제품 1점이 출토되었다.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이러한 유물이 지금까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어디에서도 확인된 바 없어 후기 구석기 연구에 도움을 줄 획기적인 유물로 판단하였다.
 
유적의 형성 시기는 중간층인 2문화층의 숯으로 연대를 측정한 결과 약 18,000년 전후(17,550±80bp, 18,490±80bp)이며, 분포 범위는 현재 조사구역 바깥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분포 범위: 약 2,500㎡).
 
이 유적에서는 각 문화층별로 석기 제작기법을 복원할 수 있는 제작소가 확인되어, 시기적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를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수양개 1지구 유적(사적 제398호, 하진리 상류 3.6km 지점에 위치)과 석기의 양상, 제작기법, 석재와 제작 시기 등이 유사하여, 상호 간의 관계 연구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토된 ‘눈금 새김 돌제품’은 구석기인들의 수(數)나 단위 등 숫자 개념을 기호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앞으로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해석과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
 
문화재청은 이에 따라 오는 17일 오후 2시에 출토유물의 검토와 추가 조사 여부 등에 대한 전문가 검토회의와 현장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눈금을 새긴 돌제품

출처;http://www.korea.kr/news/pressReleaseView.do?newsId=155972160&call_from=extlink

 

단양의 후기구석기 유물 '밀개'

등록 2014-06-16 10:53:21  |  수정 2016-12-29 19:37:41

 

 

【대전=뉴시스】김양수 기자 = 남한강가인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 단양 수중보 건설지역서 후기 구석기 유적(수양개 6지구) 발굴조사를 통해 1만5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16일 문화재청과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이번 발굴에서 모두 3개의 후기 구석기 문화층이 확인됐으며 출토된 석기는 좀돌날몸돌, 돌날몸돌 등 몸돌, 밀개, 격지, 조각, 망치 등 모두 1만5000여의 후기 구석기 유물이 나왔다고 밝혔다. 사진은 밀개의 모습.2014.6.16(사진=문화재청 제공)

 photo@newsis.com

출처;http://www.newsis.com/pict_detail/view.html/?pict_id=NISI20140616_0009798606

 

 

구석기인들의 눈금자?… 충북 단양서 눈금 새겨진 돌 발굴

동아일보입력 2014-06-17 03:00수정 2014-06-17 09:52

 

0.4cm 간격 22개… 동아시아 최초 
1만8000년전 길이-넓이 측정 추정

5월 중순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 남한강 유역 후기 구석기 유적에서 발굴된 눈금(점선 안)이 새겨진 돌. 일정한 간격으로 눈금이 새겨져 있는 이 돌은 다른 돌의 길이를 잴 때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길이는 20.6cm로 아래쪽 10cm 길이의 자보다 배 이상 길다. 문화재청 제공

 

구석기인들이 ‘눈금자’를 사용했다? 

5월 중순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의 남한강가에서 구석기 유적 발굴 작업을 하던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연구진은 깜짝 놀랐다. 약 1만8000년 전에 제작된 여러 석기를 발굴하던 중 마치 자처럼 일정 간격으로 눈금이 새겨진 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구석기인이 포획 동물 수를 뼈에 새겨 넣는 등 수(數) 개념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기존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하지만 구석기인들이 수를 이용해 크기, 넓이를 계산하는 측정 도구를 사용했는지는 밝혀진 바 없었다. 눈금이 새겨진 돌을 보고 놀란 이유다. 

16일 문화재청과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2011년부터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 단양 수중보 건설지역에서 진행된 후기 구석기 유적(수양개 6지구) 발굴조사를 통해 눈금을 새긴 돌제품 등 총 1만5000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함께 발굴된 밀개. 동물 가죽을 밀어 기름을 제거할 때 사용됐다. 문화재청 제공

 

연구원에 따르면 이 유적지(830m²)에서는 총 3개의 후기 구석기 문화층이 발견됐다. 문화층이란 집터, 석기 제작터 등 인류 행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출토된 석기는 몸돌, 격지, 조각, 망치 등 석기 제작과 관련된 유물이다. 이 일대에서 석기 제작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눈금이 새겨진 돌은 가장 아래층인 3문화층에서 발견됐다. 길이 20.6cm, 너비 8.1cm, 두께 4.2cm의 길쭉한 규질사암 자갈돌에 0.4cm 간격으로 눈금 22개가 새겨져 있다. 손으로 들고 다른 돌의 길이를 잴 수 있는 크기로 망치 등을 제작할 때 쓰였을 수도 있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유적의 형성 시기는 중간층인 2문화층의 숯 연대를 측정한 결과 약 1만8000년 전후였다. 우종윤 선사문화연구원장은 “눈금 돌이 발견된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처음”이라며 “구석기인들이 단순히 숫자 개념을 알고 있다는 것을 넘어 각종 사물을 측정하는 용도로까지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눈금 돌이 측정용으로 사용됐는지를 추가 연구를 통해 밝혀낼 계획이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출처;http://news.donga.com/3/all/20140617/64337862/1

 

 

단양 수양개유적서 사람 얼굴 모양 추정 돌조각 발견

입력 2015.11.02. 09:53 댓글 0

 

한국선사문화연구원 "높은 예술성과 자의식 표현"

단양 수양개 6지구에서 나온 사람 얼굴 모양 추정 돌조각.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제공>>

단양 수양개 6지구에서 나온 사람 얼굴 모양 추정 돌조각.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인 충북 단양의 수양개유적에서 사람 얼굴을 새긴 것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돌조각이 확인됐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 남한강가에 있는 수양개 6지구에서 지난해 발굴한 유물을 확인하던 중 '얼굴 모양 돌조각'을 찾아냈다고 2일 밝혔다.

 

성인의 엄지손톱 크기인 이 돌조각은 가로 2.29㎝, 세로 1.57㎝이며, 약 3만5천년 전의 문화층에서 출토됐다. 연구원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등 4개 기관에 이 토층의 시료를 보내 연대를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이경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연구원은 "구석기 사람들이 얼굴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선을 그은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돌에 새겨진 선들을 얼굴 모양으로 추정하는 이유에 대해 "현미경으로 유물을 살피면 입 부분의 가운데를 살짝 아래쪽으로 그려 인중을 나타냈고, 돌의 전반적인 형태가 이마와 턱을 연상시킨다"고 밝혔다.

 

이어 "3만년에서 3만5천년 전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은 선을 그은 것만으로도 예술품으로 간주된다"면서 "얼굴 모양을 새긴 돌조각은 동시대 유물 중 매우 희귀하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예술성과 자의식이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원은 이 돌조각에 대한 연구 결과를 2∼3일 충북 청주 충북대에서 개최되는 제20회 수양개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다.

 

배기동 한양대 교수는 관련 유물을 사진으로만 접했다고 전제한 뒤 "인공적으로 조각하듯이 판 것은 틀림없다"면서 "큰 돌의 귀퉁이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파편이라 전체 모습을 본다면 얼굴 조각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얼굴로 보이지만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시대에 따라 혹은 개인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서 한쪽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수양개유적은 충북대 박물관이 1980년 충주댐 수몰지역을 조사하면서 발견했으며 국내 최대 규모의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는 얼굴 모양 돌조각이 나온 문화층과 동일한 지층에서 '눈금 새김 돌'이 발굴된 바 있다. 이 돌은 길이 20.6㎝의 규질사암 자갈돌에 0.4㎝ 간격으로 눈금 22개를 새긴 것으로, 연구원은 수나 단위 등을 기호화한 측량 도구로 보고 있다.

 

psh59@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출처;https://news.v.daum.net/v/20151102095326268

 

 

[스크랩] 세계최古 돌눈금자 발견 - 충북 단양

[밝은 앞날][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과거 현재 미래를 위해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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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눈금자는 후에 국내외 연구소에서 연대측정을 해보니

1만8천년전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빠른  

3만5천년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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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서 '눈금 새긴 돌' 발굴..세계서 보고된 적 없어

JTBC | 2014.06.18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4061809301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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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 -

 

 

18000년전 후기구석기 유물 무더기로 확인, 충북 단양서

경향신문 | 2014.06.16 

도재기 선임기자

  

 

 

 

  

지금으로 부터 18000여년 전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 1만5000여점이 무더기로 충북 단양에서 발굴됐다.

특히 출토 유물 중에는 눈금을 정교하게 새긴 돌 제품도 국내 최초로 확인돼 학계의 관심을 모은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제공

 


용도가 의문에 쌓인 눈금을 새긴 돌 제품은 길쭉한 규질사암 자갈돌로 길이 20.6㎝, 너비 8.1㎝, 두께 4.2㎝ 크기다.

돌에는 22개의 눈금이 0.4㎝ 간격으로 새겨져 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동아시아에서도 확인된 적이 없는 유물로 당시 구석기인들이 숫자 개념을 기호화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앞으로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해석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40616181509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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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듯이 이 돌은 우리 한국에 흔하게 있는 단단한 '짱돌' 중 하나인데요

무려 1만8천년전에 저렇듯 거의 같은 간격으로 선을 그어놨네요.

 

왜 만들었을까요.

자(눈금자)겠죠.

 

당시는 석기시대인데

무엇으로 선을 그었을까요.

저 단단한 '짱돌'에다가.

미스테리라 하겠습니다.

 

지금 저러한 돌에다가 저렇게 눈금을 만드려면 

고속회전하는 강철기계톱 같은 걸로 하겠죠.

 

1만8천년전 당시에는 무엇으로 저 단단한 돌을 깍았을까요.

아직 정확히 알수 없다 할 수 있겠죠.

 

 

위기사에 보면

" 22개의 눈금이 0.4㎝ 간격으로 새겨져 있다."고 하죠.

 

22개의 눈금이면

21개의 칸이죠.

 

 

21 

 

우리 한국에는 예로부터 21이 중요한 수 중 하나인데

예를들어 [3.7일]이란게 있죠.

 

아이를 낳으면 [3.7일] 동안은 방밖으로 나오지 않게 한다든지 하는.

 

[3.7일] 7일 3번이니 21일이고요.

 

저 돌눈금자를 21개의 칸으로 만든 것은  

[3.7]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0.4㎝ 간격이라 하는데

 

 

10리 4 킬로미터이니

1리 0.4 킬로미터죠.

 

 

미터, 킬로미터 등을 사용하는 '미터법'은 근세에 만들어진 단위인데

 

[한국고유 길이단위]와 비교하면

 

1 대 0.4

 

 

위 돌눈금자의 0.4㎝ 간격

지금의 미터법눈금자가 1㎝ 간격으로 되어있는 것처럼

[한국고유 길이단위]로 만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고유 길이단위]에 [척]이라는 단위가 있죠.

옛글에 보면 사람의 키를 5척이니, 6척이니 하고 표현하는 글들이 있죠.

 

( [자]와 [척]은 원래는 같은 단위로 봅니다.

지금도 옷감 길이 같은 거 잴 때 흔히 '한자, 두자...' 하죠.)

 

 

[척(자)]의 길이는 시대마다 다른데

지금은 약 30센티 정도로 사용하죠.

 

 [척]이라는 단위가 원래는

40센티가 아니었나 합니다.

 

위 돌눈금자의 0.4㎝ 간격

1/100 척을 표현한 것으로 봅니다.

 

미터법에서 1센티가 1/100 미터인 것처럼 말이죠.

 

미터법에서 1미터를 정할 때

지구둘레 길이의 4천만분의 1을 1미터로 정했죠.  

 

[한국고유 길이단위]에서 [1척]은 원래는

지구둘레 길이의 1억분의 1이라 하겠습니다.

 

1억 대 4천만 = 1 대 0.4

  

지구둘레 길이의 1억분의 1을 1척이라 정하면 

40센티가 1척이 되는 것이고 

0.4센티가 1/100척이 되죠.

 

그러면 위 눈금자가 왜 [0.4센티] 간격인지 나오는 거죠.

 

0.4센티 - 1푼(分)

4센티   -  1촌(寸 = 1치)

40센티  -  1척(尺  = 1자)

4미터   -  1장(丈)

400미터 - 1리(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라는 말의 '반푼'은 0.2센티

 

'세치 혀'의 '세치'는 12센티 

 

이처럼 [한국고유 길이단위]는 근세에 정해진 [미터법]과 똑같은 체계라 하겠습니다.

 

 

 

[미터법]이 나오기 전에 서양에서 쓰던 피트(feet)

 

1피트(feet)도 30센티 정도 되죠.

 

피트(feet) 단위는 자(척)단위를 베껴 쓴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대문명은 동방에서 서방으로 전파되었으니까요.

 

1자(1척)이 원래는 40센티였는데 시대에 따라 달라졌듯이  

1피트도 그처럼 시대에 따라 달라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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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1만8천년전에 지구둘레길이를 어떻게 알아. 말도 안되는 소리.' 하고 생각하실 것인데

고대유물들을 보면 상식을 넘어서는 놀라운 유물들도 더러 많이 나오기 때문에  

100% 단정할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위 국보 141호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은

아시듯이 고조선 때의 유물인데

21센티에 불과한 크기에 

0.3미리 간격의 가는 선이 무려 1만3천개나 들어있죠.

 

게다가 송곳같은 것으로 파서 만든 것도 아니고

저런 미세한 모양의 주물틀을 만들어서  

'쇳물'을 부어서 떠낸 것이라

현대기술로도 복원이 가능하니, 못하니 할 정도의 놀라운 유물이죠.

 

고조선 때 저러한 기술이 있었다는 것은

기존 선입견을 뛰어넘는 일이고

 

 

고조선인들은 세상축(지구축)이 기울어진 것을 알고 있었다. <- 관련글

 

 

 

 

 

 

 

이 눈금자의 간격이 0.4센티인 이유도

함부로 쉽게 단정하지는 못할 일로 봅니다.

 

그리고 위의 언론기사에서 이 돌눈금자가

[길이 20.6㎝, 너비 8.1㎝, 두께 4.2㎝]라 나오는 데

 

이 돌이 자르지 않은 자연돌임을 볼 때  

 

[길이 20㎝, 너비 8㎝, 두께 4㎝]를 표시하려고 이 자연돌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연돌이라 단위에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 크기의 돌을 고른 것이 아닌가 합니다. 

 

 

[두께 4㎝]

 

위에서 [1척]이 지금은 30센티 정도이지만

원래는 40센티 였을 거라 추정한다 했는데요

 

[1/10 척]인 [1촌]이 지금은 3센티 정도로 사용되지만 

원래는 4센티 였을 거라 추정합니다.

 

 

0.4센티의 10배가 4센티이니 

0.4센티 1/10촌이고

 

이 돌눈금자가 [두께 4㎝]인 것은 

1촌을 잴 때 쓰는 것이라 봅니다.

 

 

 

1촌(1치) - 4㎝

1척(1자) - 40㎝

 

 

이 돌의

[너비 8㎝] 2촌(2치)이며

 

[길이 20㎝] 5촌이고

동시에

1/2척(자)이죠

 

 

 

두께 4㎝ - 1촌(치)

너비 8㎝ - 2촌(치)

길이 20㎝- 5촌(치) (1/2척(자)) 

 

 

즉 이 돌눈금자는 0.4센티 단위만 잴 때 쓰는 것이 아니라

 

이 돌의 몸통 자체 크기로

1촌, 2촌, 5촌(1/2척) 잴 때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거죠.

 

 

눈금만 [자]가 아니라

이 돌 자체도 [자]라 봅니다.

 

 

참고로

세계에서 신석기(마제석기)시대가 시작된 것이 약 1만년 전이라하는 것이 '고고학의 상식'이라 하겠는데요

한국에서는 그보다 1만년이나 더 빠른 2만년전의 신석기(마제석기)도 여러개 발견되는 등

기존 고고학계의 상식을 한참 초월하는 빠른 시대의 유물들이 여러개 발견되어 언론에 보도되었죠.

 

 

전남 장흥군의 2만년전 신석기 사진

 

 

[원조 고대한국문명 ] 즉 [마 문명]<- 관련글

 

 

감사합니다.

 

 

 

 

 

[ 영원(永遠)에 합당(合當)한 삶을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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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한국혼(韓國魂)

 

[홍익인간]의 정신은 [사해동포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민족, 다른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공연히 배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다이나믹 코리아, 게이트웨이 투 더 월드 

 

[밝은 앞날][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출처 : 한국고대사

글쓴이 : 흐르는 강물처럼 원글보기

메모 :

 

 

[스크랩] 3만5천년전 사람얼굴 조각과 돌눈금자

 

[밝은 앞날][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과거 현재 미래를 위해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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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시듯이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多紐細汶鏡)입니다. (숭실대박물관 소장)

 

다뉴세문경(多紐細汶鏡)은 고리(紐(뉴))가 여러개(2개 이상)이고 세세한 무늬가 있는 청동거울을 뜻하는데

다뉴세문경은 한반도에서 주로 발견되는 한국특산품이죠.

 

 다뉴세문경은 지름 21㎝로 손바닥만한 것인데

그 안에 0.2 ~ 0.3미리 간격의 가는 선이 무려 1만 3천개나 들어있어서 유명하죠

그것도 송곳같은 것으로 파서 만든 것도 아니고, 저러한 형태의 틀을 만들어서 청동물을 부어서 떠낸

주물방식으로 만든 것이라 놀라운 기술이고, 세계적인 연구대상이라 하겠습니다. 

2천년 이상 전에 어떻게 저러한 높은 수준의 기술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

 

2007년도에 이보다 더 정밀한 다뉴세문경이 발견되었습니다.

 

 

전북 완주 갈동유적 5호 목관묘 다뉴세문경

 

기사 - http://media.daum.net/culture/art/newsview?newsid=20070308160212539

 

 

위 다뉴세문경은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보다 모양이 단순해 보이죠.

 

그런데!

 

"지난 2007년 완주 갈동 5호 목관묘에서 출토된 다뉴세문경은 선의 굵기가 0.1~0.2㎜에 불과할 정도로 정밀하다."

 

부산일보 / 이상헌 기자 / 2009-09-28

기사 -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090928000029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한국청동기시대 전공 이건무 용인대 교수는 "숭실대박물관 소장 다뉴세문경에 버금가며 당장 문화재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육안 관찰이 힘들 만큼 질서정연히, 그리고 촘촘히 돋을새김한 가는줄무늬는 대형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보면 더한 경탄을 자아낸다.

 

연합뉴스 / 2007.03.12. / 김태식 기자

기사 - http://media.daum.net/culture/art/newsview?newsid=20070312162813529

 

 

 

(갈동유적 5호 목관묘 다뉴세문경을 선이 좀 더 잘보이는 식으로 찍은 사진.

그러나 가는 선의 육안 확인이 쉽지 않은 듯.)

 

이 다뉴세문경은 0.1~0.2㎜에 불과한 가는 선들이 많이 들어가 있고

너무 가늘어서 육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이며

대형 돋보기를 통해 보면 정말 감탄스럽다는 것입니다.

 

선들이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보다 더 가늘다는 것이죠.

 

 

육안 관찰이 어려울 정도의 0.1~0.2㎜ 가는 의 주물틀(거푸집)을 만들고

거기에 쇳물(청동물)을 부어서 말끔하게 떠내는 기술.

 

이러한 고도의 기술이 2천년 이상 전의 고조선에 있었다는 겁니다.

 

이 다뉴세문경은 국보로 지정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세계사적으로도 대단히 놀라운 유물이기 때문에 시간을 충분히 두고 연구하고 있을 겁니다.

외국학자들에게도 설명을 잘 해줘야하기 때문에 더욱 연구를 확실히 해야하겠죠.

 

 

 

 

 

전북 장수 남양리 유적에서 발굴된 잔무늬 거울

   뉴시스 2009.11.02. 

기사 - http://media.daum.net/culture/art/newsview?newsid=20091102150617166

 

 

 

장수 남양리 유적에서 나온 이 경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표면이 마모가 쫌 된 것 같긴 하지만

돋보기, 현미경으로 보면 아마 이 경도 원래 아주 미세한 선들이 많이 들어간 모습으로 보입니다.

 

중국 등 외국에는 청동거울은 많지만, 섬세한 선들이 많이 들어간 것은 없는데

고조선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선들로 이루어진 문양의 청동거울들이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봅니다.

대부분 아직 발견이 안되었지만 말이죠.

 

 

 

 

 

 

그런데 갈동유적에서 이런 경도 나왔죠.

 

 

                     고조선 다뉴세문경 - 전북 완주 갈동유적

 

 

이 경은 장점이 기하학적 문양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중심부 원안에 다채롭게 변화하는 초현대적 기학학적 문양이 있다 하겠습니다.

 

2천년 이상 전 옛날에 이러한 놀라운 문양을 만들었다는 것도 앞으로 많은 세계학자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 봅니다.  

 

 

고조선은

0.1~0.2㎜ 가는 의 주물을 말끔하게 떠내는 수준높은 기술과

그리고

초현대적 기학학적 문양을 만들어내는 실력이 동시에 있었다는 거죠.

 

 

 

 

 

연합뉴스 2015.01.19 

(충주=연합뉴스) 충북 충주시 호암동 종합스포츠타운 조성사업부지 내 기원전 2~1세기 돌무지나무널무덤(적석목관묘) 출토 유물 중 잔무늬거울(다뉴세문경). 

http://news.zum.com/articles/19158031

 

 

 

작년에 충주에서 위와 같은 경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을 무덤 안에 부장할 때는 대개 일부러 깨뜨려서 부장하는 풍습이 있어서 이 경이 깨진 상태라 하는데요

 

좀 더 선명한 사진이 아래 사진입니다.

 

     

 

 

뉴스1 2015.01.19  

http://news.zum.com/articles/19164601

 

 

 

 

 

 

이 사진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섬세한 가는 선들이 많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에 고대 청동거울은 많이 발견되지만

섬세한 문양이 있는 잔무늬거울(다뉴세문경)은 거의 한반도에서만 발견된다는 사실은

고조선 중심지들에 놀라운 수준의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2014년 충북 단양에서 무려 1만 8천년것이라는 [돌눈금자]가 발견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죠.  

 

그런데 이 돌눈금자가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빠른 3만5천년 전 것이라는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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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제공

 


용도가 의문에 쌓인 눈금을 새긴 돌 제품은 길쭉한 규질사암 자갈돌로 길이 20.6㎝, 너비 8.1㎝, 두께 4.2㎝ 크기다.

돌에는 22개의 눈금이 0.4㎝ 간격으로 새겨져 있다.

 

 

경향신문  2014.06.16 

도재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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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8천년전 세계최古 돌눈금자 발견 - 충북 단양

http://cafe.daum.net/121315/CK3e/278   <- 관련글

 

 

이 돌은 [눈금자]라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인데요

1센티 간격이 아니라 0.4센티 간격이라 합니다.

 

0.4센티  - 1푼(分)

4센티    -  1촌(寸 = 1치)  
40센티   -  1척(尺  = 1자)

4미터    -  1장(丈)

400미터 -  1리(里)

 

10만리 = 4천만미터 (4만키로) = 지구둘레 

 

[1미터]라는 건 [지구둘레의 4천만분의 1]이죠.

사람들이 임의로 그렇게 정한 거죠. 

[1자(1척)]는 [지구둘레의 1억분의 1]입니다.

 

지구둘레를 10만리로 정하면 1리는 400미터가 되고

그 1/100인 [1자(1척)]는 40센티가 됩니다.

 

( 1자(1척)의 길이는 지금도 주로 30여센티에서 40여센티로 쓰고 있습니다.)  

 

근세에 생겨난 '미터법'은 '지구둘레의 4천만분의 1을 1미터라 한다.'로 임의로 정한 것이고

고대의 우리나라 길이법은 '지구둘레의 1억분의 1을 1자(1척)라 한다.'고 정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구둘레는 10만리.

 

지구둘레의 10만분의 1의 길이를 1리(里)로 정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 고대에 지구둘레 길이를 과연 알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죠.

 

다들 아시듯이 지구둘레 길이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죠.

 

 

 

 

 

 

위 그림은 고대 그리스에서 지구둘레 길이 구한 방법인데

같은 시간에 멀리 떨어진 2개의 기둥에서 햇빛의 각도를 재죠.

 

한 곳이 햇빛과 수직일 때 다른 곳의 각도를 재는 겁니다.

 

쉽게 표현해서 1지점과 2지점이 200만보(걸음) 거리라 하면  

 

7.2도에 200만보(걸음)면

360도에 몇보(걸음)냐... 하면 지구둘레가 나오죠.

 

7.2 : 200만보 = 360 : 지구둘레

 

고대 그리스에서 지구둘레길이 알았는데

고대 한국에서 지구둘레길이 모르라는 법은 없는 거겠죠. 

 

 

그런데 1만 8천년전 눈금자라서 시대가 너무 빠른 듯 하죠.

어떻게 그렇게 일찍... 말도 안된다! 고 생각하시면

 

[원조 고대한국문명 ] 즉 [마 문명]<- 관련글

 

위 글을 보시면 '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고대한국의 중심지에는 선입견을 초월하는 놀라운 수준의 문명이 있었다 보는데

그런데 그건 중심지 얘기고요

지방의 문명은 석기시대로 많이들 살고 있었겠죠.

 

마치 지금 세계 사람들이 주로 쓰는 컴퓨터가 [개인용PC]이지만  

[개인용PC] 보다 100만배 성능이 뛰어난 [슈퍼컴퓨터]도 분명 여러 대 있듯이

그래서 2016년 현대를 '개인용PC만 쓰는 시대'라 할 수는 없고 

'인류가 대개 개인용PC를 쓰지만 [슈퍼컴퓨터]도 분명히 쓰던 시대'라 해야 하듯이 말이죠.

 

수만년전에 세계인들이 대개 석기시대 수준이었지만

어딘가에는 선입견을 훨씬 초월하는 수준높은 문명이 있었고

그 '어딘가'가 바로 고대한국의 중심지였다는 것이 차차 드러나고 있는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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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수양개유적서 사람 얼굴 모양 추정 돌조각 발견

 

                     연합뉴스 2015.11.02.

 

한국선사문화연구원 "높은 예술성과 자의식 표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인 충북 단양의 수양개유적에서 사람 얼굴을 새긴 것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돌조각이 확인됐다.

 

성인의 엄지손톱 크기인 이 돌조각은 가로 2.29㎝, 세로 1.57㎝이며, 약 3만5천년 전의 문화층에서 출토됐다.

 

연구원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등 4개 기관에 이 토층의 시료를 보내 연대를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단양 수양개 6지구에서 나온 사람 얼굴 모양 추정 돌조각.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제공>>

 

이경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연구원은 "구석기 사람들이 얼굴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선을 그은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돌에 새겨진 선들을 얼굴 모양으로 추정하는 이유에 대해 "현미경으로 유물을 살피면 입 부분의 가운데를 살짝 아래쪽으로 그려 인중을 나타냈고, 돌의 전반적인 형태가 이마와 턱을 연상시킨다"고 밝혔다.

 

이어 "3만년에서 3만5천년 전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은 선을 그은 것만으로도 예술품으로 간주된다"면서

"얼굴 모양을 새긴 돌조각은 동시대 유물 중 매우 희귀하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예술성과 자의식이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원은 이 돌조각에 대한 연구 결과를 2∼3일 충북 청주 충북대에서 개최되는 제20회 수양개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다.

 

지난해는 얼굴 모양 돌조각이 나온 문화층과 동일한 지층에서 '눈금 새김 돌'이 발굴된 바 있다.

이 돌은 길이 20.6㎝의 규질사암 자갈돌에 0.4㎝ 간격으로 눈금 22개를 새긴 것으로, 연구원은 수나 단위 등을 기호화한 측량 도구로 보고 있다.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51102095326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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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돌이 사람 얼굴을 새기려 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1. 돌의 오른쪽과 아래를 아주 둥글게 인위적으로 다듬은 것.

2. 앞부분을 아주 평평하게 다듬은 것.

 

무려 약 3만5천년 전에 돌을 저렇게 평평하게, 또 둥글게 다듬은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위 기사에서

 

"지난해는 얼굴 모양 돌조각이 나온 문화층과 동일한 지층에서 '눈금 새김 돌'이 발굴된 바 있다."

 

이 부분이 나오죠.

 

 

 

 

 

이 '눈금 새긴 돌'이 1만8천년전 것인줄 알았는데

같은 지층에서 나온 위 '사람 얼굴 돌'이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등 4개 기관에 토층의 시료를 보내 연대를 파악"해보니

 

무려 3만5천년 전 토층이었고

따라서 '사람 얼굴 돌'과 같은 토층에 있던 '눈금 새긴 돌'도

3만5천년 전에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고고학 상식으로는 연대가 너무 빠르지만

0.4센티 간격의 눈금을 새긴 눈금자를 만들 정도의 수준이면 

돌을 둥글고 평평하게 다듬는 것도 당연히 가능했겠죠.

 

그리고 장난으로 낙서처럼 그 돌에 눈과 입을 대강 새길 수도 있었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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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년 전 동굴벽화 발견.."예술기원은 아시아"

 

YTN 2014.10.10

 

 

 

 

  

 

 

 

 

 

 

2014년에 호주-인도네시아 고고학 연구팀이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에서 발견한 4만년전 동굴벽화 발견이 보도되었죠.

손을 대고 물감을 뿌린 방식이라는 데, 손모양이 아시아 여성인 것 같습니다. 

 

 

 

 

스페인에서도 같은 형식의 유사한 작품이 발견되었는데, 아시아보다 연대가 늦으며

손모양이 아시아 여성으로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동해간 사람들이 남긴 작품으로 생각합니다. 

 

4만년 전 아시아의 벽화 발견..."예술의 기원은 아시아"

http://cafe.daum.net/121315/CK3e/279   <- 관련글

 

 

1만년 이상 전까지는 [모계사회]입니다.

지도자들이 여성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마고할머니] 얘기는 전해오지만 [마고할아버지]라는 말은 없죠. 

 

지금 세상이 계속해서 남녀평등으로 나아가고 있고, 물론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라 보고요

앞으로 완전한 남녀평등의 세상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부계사회]도 [모계사회]도 아닌 [남녀평등의 세상]이 좋은 세상이겠죠.

 

 

 

 

  

 

사진출처 -  http://www.sorori.com/


 
 

다들 아시듯이 충북 청원군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 볍씨입니다.

약 1만 5천년전것이죠.

그런데 이 볍씨를 발굴한 사람들의 뒷얘기 중에

10만년전 재배 볍씨도 발견되었지만 그건 발표하지 못하였다 합니다.

1만 5천년전것도 세계 최古의 것인데

10만년전 재배 볍씨 발견을 발표하면 세계가 믿어주겠냐 하는 것이죠.

기존의 고고학 상식과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는 거죠.

그래서 1만 5천년전것만 발표했다는 뒷얘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찰스턴대 연구팀이 "세계 모든 개의 조상은 약 10만년 전 동아시아의 늑대"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0만년전에 동아시아에서 개를 기르기 시작했으며

이 개가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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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기원은 동아시아 늑대" <美연구진>


연합뉴스 2004.02.16.    

 

 

 

(시애틀 =연합뉴스) 찻잔 크기 정도로 작은 요크셔 테리어에서부터 작은 조랑말만한 아이리시 울프하운드에 이르기까지

모든 개의 조상은 약 10만년 전 동아시아의 늑대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소재 찰스턴 대학 연구팀은 최근 미국과학진흥회(AAAS)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늑대처럼 생긴 한 세트의 개의 조상들이 최소 10만 년 전 인간의 따뜻한 애정과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이를 찾아 인간의 사육권 아래 들어왔다고주장했다.

 

이 원시 개들은 인간을 보호자, 부양자 또는 최고의 친구로 삼았고 이에 대한보상으로 인간의 사냥을 도왔다.

 

연구팀의 노린 누넌 박사는 "동아시아에서 이들이 길들여지는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보통 생각하기보다 더 오래 전, 즉 최소 10만여년 전의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하이오주 오로라 소재 개 연구소의 데보러 린치도 "동아시아에서 5~6번 안팎의 개 길들여지기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며

"이후 개들은 인간의 이주로를 따라 미주 대륙 등으로 건너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린치 박사는 "길들여진 개의 출현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전의 일"이라며 "그들은 문자 그대로 인류와 함께 동굴 밖으로 나와 생활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인류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개들을 교배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게됐다.

빨리 잘 달리는 암수 개 두 마리를 교배시켜 빠른 강아지를 얻을 수 있고, 이런 식으로 사냥용, 목동용, 공격용 등 다양한 용도의 개들을 키웠다.

 

동아시아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개는 형태, 크기, 색깔에서 가장 종류가 다양한동물이 됐다.

크기가 작은 품종인 재퍼니스 친에서 덩치가 큰 세인트 버너드에 이르기까지 현재까지 인정된 개 품종은 300종이 넘는다.

 

린치 박사는 또 인간이 어떤 목적에 개를 사육했느냐에 따라 개의 모양이 형성됐다며 "실제로 경비용 개는 항상 검은 색깔인 점을 보면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040216103708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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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개의 조상은 고대한국의 개 - 10만년전부터 기르기 시작

http://cafe.daum.net/121315/CKGu/98  <- 관련글

 

 

위에서 보이듯이 개는 10만년전에 이미 동아시아에서 길러지던 개들이

차차 세계로 퍼져나나 것이라 하겠는데요  

 

개를 기를 정도의 수준인 사람들이

벼(쌀)를 못길렀으리란 법도 없다 봅니다.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에 있는 유명한 [라스코 동굴벽화]

1만년 이상 전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라스코 동굴벽화] 위 그림에 '솟대' (새모양을 나무에 매단 것)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라 하겠는데 

솟대는 원래 예로부터 한국에서 많이 만들어온 것이고

이 라스코 벽화를 그린 사람들도 세계로 퍼져간 고대한국인들 중 일부일 가능성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가져간 문명은 그 지역에서 계속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었죠.

 

이러한 "전파된 문명이 그 지역에서 계속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는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많이 일어났다 하겠습니다.

 

아마도 당시 현지인들의 문화수준이 상대적으로 너무 아래에 있어서 그랬겠죠.

 

 

 

↑ '아이스맨 외치' 를 복원한 모습 (남티롤 고고학 박물관 페이스북)© News1

 

http://media.daum.net/foreign/europe/newsview?newsid=20160421083509629

 

 

다들 아시듯이 유럽 알프스에서 미라상태로 발견된

5천3백년전 '아이스맨 외치'입니다.

 

이 사람의 위 속에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발견되었는데

그게 아시아인들의 것이었다 합니다.

 

'아이스맨 외치'는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백인의 혼혈로 보이는데요

그의 혈통이 주로 아시아인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외치의 헬리코박터균은 아시아 유형 !!!

 

  

 

 

 

 

 

http://www.ytn.co.kr/_ln/0105_201601120006146432

 

 

 

 

위 뉴스의 요점은 외치의 '헬리코박터균'이 아시아인의 것이고

 

유럽인들이 보유한 '헬리코박터균'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이죠.

 

즉 지금의 유럽백인들은 원래의 순수혈통의 백인들이 아니며

아프리카인, 아시아인의 혈통이 상당히 많이 섞인 혼혈이라는 얘기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고대문명은 아시아에서 건너간 고대 선진문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고대 그리스문명은 겨우 3천년전 또는 4천년전 정도에 시작한 문명이며

아시아에서 건너온 선진문명의 영향으로 생겨났다는 것은 사실 서양고대사의 상식이죠.  

 

 

감사합니다.

 

 

 

 

 

[ 영원(永遠)에 합당(合當)한 삶을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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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한국혼(韓國魂)

 

[홍익인간]의 정신은 [사해동포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민족, 다른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공연히 배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다이나믹 코리아, 게이트웨이 투 더 월드

[밝은 앞날][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출처 : 한국고대사

글쓴이 : 흐르는 강물처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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