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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史속의 만주](6)고구려 고분벽화의 비밀-삼국 고분벽화 100여기 대부분 고구려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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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29.

삼국 고분벽화 100여기 대부분 고구려것

입력 : 2004.02.11 18:52

 

=[韓國史속의 만주](6)고구려 고분벽화의 비밀=

 

현재까지 삼국시대의 벽화고분은 100기 이상 발견되었다. 이중 백제와 신라 벽화가 각 2기, 가야의 것 1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벽화고분은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삼국의 벽화가 고구려에 집중된 것은 무덤 양식과 관련이 있다. 고구려는 일찍부터 돌방무덤(석실봉토분)이라는 묘제를 받아들여 돌방무덤의 벽과 천장을 벽화로 장식하였다. 그러나 적석목곽분을 고집한 신라나 벽돌무덤 등 다양한 묘제를 받아들인 백제는 무덤 양식상 벽화를 그리기가 어려웠고, 자연 무덤 내부 장식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고구려 벽화고분은 3세기 말부터 7세기 전반까지 지속적으로 만들어졌다. 이중 고구려의 전성기인 5세기에 제작된 것이 가장 많다. 주로 왕공귀족의 무덤 장식에 적용된 장의미술이었던 까닭에 벽화가 그려진 고분은 고구려 후기의 수도 평양 인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분포를 보면 평양 인근이 60여기로 가장 많고 중국 지안과 환런 지역이 24기 가량, 안악을 중심으로 한 재령강 유역이 13기다. 고분벽화의 주제는 시대에 따라 바뀐다. 5세기 초까지는 생활풍속이 주로 그려지다가 5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장식무늬나 사신도가 새로운 소재로 등장하며 6세기 중반 이후에는 사신도가 주류를 이룬다.

 

고구려 고분벽화가 1,000년 이상 전해진 데에는 보존성이 높은 광물성 안료를 개발, 석면에 안료가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독특한 채색기법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안료의 성분 및 개발과정은 아직 미지수이다. 고구려 벽화는 일본의 고분벽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1972년 일본 아스카촌에서 발굴된 다카마쓰 고분 벽화에 나타난 사신도, 인물행렬도, 천문도 등은 고구려 벽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조운찬기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402111852261&code=210100#csidx629b0b14e1fd46bb517de0c22fc4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