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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 치장… 1500년전 신라의 여성은 누굴까/화려한 신라 금동관, 경주 고분서 45년 만에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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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신라(사라,사로)

2020. 9. 6.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 치장… 1500년전 신라의 여성은 누굴까

김민 기자 , 정성택 기자 

 

입력 2020-09-04 03:00수정 2020-09-04 03:00

 

실제 키 170cm였을 가능성… 금동관-금귀걸이-금동신발 등


망자 평소 사용 물건 입힌 듯

 

3일 문화재청이 공개한 경북 경주시 황남동 고분의 금동관과 금귀걸이. 금동관은 평평하게 접힌 채 출토됐는데 피장자의 얼굴을 가리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제공

 

 

6세기 전반 신라시대 최고 신분의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장신구 일체가 착용된 상태 그대로 출토됐다. 무덤 주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를 한 상태로 발굴된 것은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3일 경북 경주시 황남동 고분 120-2호를 추가 정밀 발굴 조사한 결과 금동관 금귀걸이 은팔찌 은허리띠 금동신발 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머리의 금동관부터 발의 금동신발까지 무덤 주인이 묻혔을 때 착용한 위치 그대로 금은 장신구가 모습을 드러낸 경주 황남동 고분 출토 현장 모습. 문화재청 제공

 

 

앞서 문화재청과 경북도, 경주시 공동 ‘신라 왕경 핵심 유적 복원·정비사업 추진단’은 올 5월 황남동 고분에서 금동 달개(금관에 붙이는 쇠붙이 장식)를 먼저 발견했다. 추진단은 2018년 5월부터 이 고분을 발굴 조사해왔다.

 

이날 오후 유튜브로 생중계된 황남동 고분 현장 설명회에서 김권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피장자(被葬者)의 머리끝부터 금동신발까지 176cm여서 키는 170cm로 추정된다”며 “(발굴 장신구 중) 큰 칼이 없고 방추차(물레의 실을 꼬는 기구)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여성으로 추정되며 당시 왕족이나 귀족 등 최고 신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동관은 가장 아래에 관테(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가 있고 그 위로 3단의 나뭇가지 모양 세움장식 3개와 사슴뿔 모양 세움장식 2개를 덧붙인 모양이다. 문화재청은 “현재까지 경주 지역에서 출토된 금동관 중 가장 화려하다”며 “‘ㅜ’ ‘ㅗ’ 모양으로 뚫린 판이 있는데 세움장식 상단에도 같은 흔적이 일부 확인됐다. 이 판이 관모(冠帽)를 뜻하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금동관은 평평하게 접어 무덤 주인의 머리가 아닌 얼굴에 덮은 형태로 발굴됐다. 이런 형태의 발굴은 드문 사례로서 망자의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도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는 1점이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왼손 부분이 완전히 노출되지 않아 추가적으로 조사하면 은반지가 더 출토될 가능성도 있다”며 “천마총 피장자처럼 모든 손가락에 반지를 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경주 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 주인이 금동신발을 신은 채로 발굴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돌무지덧널무덤은 땅에 구덩이를 판 뒤 나무 덧널을 깔고 돌을 쌓아올리는 고분 양식이다.

이한상 대전대 고고학 교수는 “경주에서 금동관을 머리에 쓴 상태로 발굴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적은 거의 없다. 아마도 망자가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입혀서 관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며 “신라시대 사람들이 망자에게 어떻게 장신구를 착장시켰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 자료를 획득했다”고 평가했다.

 

김민 kimmin@donga.com·정성택 기자

 

출처; 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904/102786873/1

 

 

 

 

화려한 신라 금동관, 경주 고분서 45년 만에 출토

등록 :2020-09-03 08:58수정 :2020-09-03 16:36

 

황남동 고분서 금동관·금귀걸이·은허리띠 등 묻힌 채 발견

 

황남동 신라 무덤 120-2호분에서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등이 발굴로 노출된 모습.

 

금동관 아래 굵은 금귀걸이와 그 주위로 노출된 유물들. 파란 색 점선은 금동관의 관테에 뚫린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구멍을 표시한 것으로 다른 금동관 출토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장식 무늬다.

 

 

지난 5월 금동 신발과 금동 달개가 나왔던 경북 경주 황남동 신라 고분에서 화려하게 수 놓인 금동관과 금드리개, 가슴걸이, 은허리띠, 구슬 팔찌 등의 장신구가 잇따라 쏟아졌다. 금동관과 장신구는 무덤 속 주검 자리에서 망자가 원래 착용한 상태 그대로 확인돼 눈길을 끈다.

 

발굴조사 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신라 왕경 핵심 유적 복원‧정비사업 중 하나로 올해 정밀조사 중인 황남동 120-2호분에서 무덤주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둘렀던 6세기 전반의 장신구 일체를 확인했다고 3일 발표했다. 연구원 쪽은 “묻힌 피장자는 신라 상층 귀족으로 추정되는데, 금동관을 머리 부분에 썼고, 굵은 고리귀걸이를 양쪽 귀에 끼었으며, 금동 신발을 신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고신라 특유의 무덤 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금속 관과 주요 장신구(귀걸이, 가슴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금동 신발) 등이 망자가 착장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한꺼번에 발견된 것은 1973년∼1975년 발굴된 황남대총 이후 처음이다.

 

신라 금동관이 경주 고분에서 출토된 것도 1975년 황남대총 남분과 미추왕릉 7지구 5호분에서 나온 이래 45년 만이다.금동관은 지난 5월 금동 달개 일부가 먼저 드러났던 주검 자리의 머리 쪽에서 확인됐다. 관은 가장 아래에 둥글게 만든 띠 모양의 관테(대륜)가 있고, 그 위에 3단 나뭇가지 모양 세움 장식(수지형 입식) 3개와 사슴 뿔 모양 세움 장식(녹각형 입식) 2개를 덧붙인 모양새다. 관테와 나뭇가지형 세움 장식 끝부분에는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장식 구멍이 뚫린 것이 특징이다.금동관 관테에는 곱은옥(곡옥)과 금구슬로 이루어진 금드리개(금제수식)가 양쪽에 달렸다. 관테와 세움 장식 사이에는 ‘ㅜ, ㅗ’ 모양의 무늬가 뚫린 투조판이 있는데, 세움 장식 상단에서도 판의 흔적이 일부 확인된다. 투조판이 관 속에 있는 모자인 관모(冠帽)인지, 금동관을 장식하려는 용도였는지는 가려지지 않은 상태다. 관모라면 경주 지역 돌무지덧널무덤의 주인이 관과 관모를 같이 쓴 첫 사례가 되고, 관을 장식한 용도라면 출토 사례가 없는 새 형태의 관이 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방룡 원장은 “속단은 어렵지만, 현재까지 출토된 경주 지역 신라 금동관 가운데 가장 화려한 장식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동관 아래에서는 금으로 만든 굵은고리귀걸이 1쌍과 남색 구슬을 4줄로 엮어 만든 가슴걸이(흉식)가 드러났다. 그 아래에서 은허리띠, 허리띠 양 끝부분에 4점이 묶음을 이룬 은팔찌, 은반지도 확인됐다. 오른팔 팔찌 표면에서는 크기 1㎜ 내외의 노란색 구슬이 500여점 나왔다. 작은 구슬로 이루어진 구슬 팔찌를 은팔찌와 함께 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는 1점이 출토됐는데, 왼손 부분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여서 이후 조사 과정에서 은반지가 더 출토될 수도 있다. 천마총의 무덤 주인처럼 손가락마다 반지를 꼈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5월 출토된 금동 신발은 분석결과 죽은 이를 위한 의례용으로 추정되며, 1960년대 출토된 의성탑리 고분의 신발처럼 ‘ㅜ, ㅗ’ 모양의 무늬를 번갈아가며 뚫은 앞판과 달리 뒤판은 무늬를 새기지 않은 사각 방형판으로 드러났다.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 신발의 뒤꿈치까지 길이가 176㎝여서 피장자의 키는 170㎝ 내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 속 주검 자리의 유물들이 노출된 모습.

 

경주 황남동 120호분 일대 전경.

 

 

유물이 나온 황남동 120-2호분은 일제강점기부터 알려진 황남동 120호분의 봉토 일부를 파고 축조된 작은 연접 무덤이다. 120호분의 자취를 파악하기 위해 2018년 5월부터 발굴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 추진단은 무덤주인이 착장한 모습 그대로 확인된 120-2호분의 주요 장신구들을 묻힌 부위의 토층째로 떠내어 분석하면서 피장자의 성별 등 세부 정보들을 계속 밝혀낼 계획이다. 추진단 쪽은 “은허리띠의 드리개 연결부가 삼각 모양인 점, 부장 칸에서 출토된 철솥의 좌·우에 고리 자루 모양의 손잡이가 부착된 점 등 기존에 보지 못했던 고고학적 자료가 많아 앞으로 더욱 다양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주 고분 전문가인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도 “경주 시내에서 신라 고분은 대릉원과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 같은 북쪽 지구 무덤 떼만 그동안 주로 관심을 두고 조사해왔는데, 이번 황남동 고분 발굴 성과로 남쪽 지구도 북쪽 지구 못지않게 주목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출토 유물들은 3일 오후 2시 문화재청 유튜브(www.youtube.com/chluvu)의 온라인 현장 설명회를 통해 실시간 공개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60527.html#csidxf655a581456f393ac88fa9249c369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