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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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도 월지리에서 고구려 벽화무덤 2기 새로 발굴/北, "고구려 벽화무덤 새로 발굴"...3세기 축조/ 랴오양(遼陽)이 고구려의 평양? 中요동 고구려계 고분벽화 국내 공개/1500년의 미스터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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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고구려(고려,고리)

2020. 9. 7.

황해남도 월지리에서 고구려 벽화무덤 2기 새로 발굴

강영진 입력 2020.09.01. 06:42 댓글 45

 

노동신문 보도..지금까지 없던 별자리 등 무늬 다수
금귀걸이, 꽃잎모양 장식품 등 금장식 9점도 출토
북한 고고학회, 6세기 전반기 귀족 무덤으로 확인

 

[서울=뉴시스] 북한 황해남도 안악군 월지리에서 최근 고구려시대 벽화고분 2기를 새로 발굴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1일 보도했다. (출처=노동신문) 2020.09.01.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북한 황해남도 안악군 월지리에서 최근 고구려벽화무덤과 유물들이 발굴됐다고 노동신문이 1일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가 고구려벽화무덤 2기와 금장식품들을 새로 발굴, 고증했다고 전했다.

첫번째 벽화무덤은 무덤 내부의 천정이 평행삼각고임천정으로 된 석관흙무덤으로 전통적인 고구려의 형식이며 4개의 벽면과 천정에 사신도와 별자리, 연꽃무늬, 구름무늬, 연꽃잎, 보리수, 거북등무늬 등 그림의 일부 부분들이 발견됐다. 별자리, 연꽃무늬 등은 지금까지 고구려 고분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두번째 벽화무덤도 석관흙무덤으로 해를 형상한 그림을 비롯한 많은 벽화의 일부분들이 남아있다.

또 정밀하게 가공된 금귀걸이와 꽃잎모양의 장식품을 비롯한 9점의 금장식품들도 출토됐다.

북한 고고학회에서는 이번에 발굴된 벽화무덤들이 6세기 전반기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했다.

 

고구려시기 3품 이상의 관료들만 벽화무덤을 쓸 수 있었다는 문헌자료가 있는 것을 볼때 이번 벽화무덤 발굴은 이 지역이 고구려의 중요한 행정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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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ews.v.daum.net/v/20200901064231527

 

 

 

北, "고구려 벽화무덤 새로 발굴"...3세기 축조

[중앙일보] 입력 2017.09.21 06:41

 

오원석 기자

 

북한이 최근 평양시 외곽에서 고구려 시기의 벽화무덤을 새로 발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에서 고구려 시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무덤을 새로 발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통신은 이날 "최근 평양시 낙랑구역 보성리에서 고구려 벽화무덤이 새로 발굴되었다"며 "지하에 돌로 무덤칸(묘실)을 만들고 흙을 씌운 외칸으로 된 돌 칸 흙무덤"이라고 밝혔다.
 
무덤칸 크기는 길이 300㎝, 너비 268㎝, 높이 184㎝다. 검은색 안료로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북쪽·동쪽·서쪽 벽의 그림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보도 내용이다.
 
통신은 "북쪽 벽에는 무덤의 주인공과 그의 아내의 것으로 보이는 수레가, 그 아래위로는 창을 든 군사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며 "동쪽 벽에는 3열로 구성된 개마무사(고구려 기병) 대열이 형상되어 있으며 서쪽 벽에는 북쪽을 향하여 달리는 말과 건물 같은 것이 그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최근 평양시 외곽에서 고구려 시기의 벽화무덤을 새로 발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통신은 벽화에 대해 "무덤의 구조 형식과 벽화의 내용, 그곳에서 나온 유물 등으로 보아 이 무덤이 3세기 전반기에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무덤에 그려진 벽화를 통하여 고구려 무덤 벽화가 선각화(線刻畵)로부터 검은색으로만 그린 단색화 과정을 거쳐 채색화로 발전하였다는 것이 해명되었다"고 덧붙였다.
 
무덤 안에서는 금으로 만들어진 장식품과 방울, 도기, 뼈 장식품 등도 출토됐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北, "고구려 벽화무덤 새로 발굴"...3세기 축조

https://news.joins.com/article/21956664

 

 

 

랴오양(遼陽)이 고구려의 평양? 中요동 고구려계 고분벽화 국내 공개

안영배 전문기자

입력 2016-04-08 08:00수정 2016-04-08 08:00

 

 

삼족오. 중국 원태자 벽화묘 그림

 

 

“앗, 삼족오다!”  

“곰도 보이네.”  

3월 중순 인하대 6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4~5세기 동북아시아 고구려계 벽화고분 이해를 위한 한중일 국제학술회의’ 현장에서 나지막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둥그런 태양 안에 긴 꼬리와 세발 달린 삼족오의 모습이 들어 있는 ‘태양도(太陽圖)’와 검은 곰이 두 앞발을 번쩍 들어 몸을 곧추세우고 있는 ‘흑웅도(黑熊圖)’ 벽화를 보고서였다. 중국 랴오닝(遼寧) 성 차오양(朝陽) 지구 원태자(袁台子)촌 벽화묘에서 발견된 것들이었다. 50여 명의 청중은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벽화들을 연신 카메라로 찍어댔다. 직감적으로 우리 문화와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실제로 태양 안의 삼족오는 고구려의 대표적인 문화 상징으로 꼽힌다. 각저총, 오회분 4호묘, 덕화리 1, 2호분 등 고구려 벽화 무덤에서는 삼족오가 등장한다. 검은 곰 역시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 건국 신화의 곰과 호랑이를 연상시킨다. 그 전에 랴오닝 성 핑강(平岡)지구 유적에서는 삼족오 아래에 곰과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금동장식이 출토돼 한국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슬라이드로 벽화 그림을 소개하는 중국 요령성 문물고고연구소의 고분 전문가 이용빈(李龍彬) 부소장은 원태자촌 벽화묘를 전연(前燕)시대의 묘이며 선비족의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문화는 중원 지역의 한문화(漢文化)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설명에는 ‘고구려’라는 단어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는 준비해온 100여 장의 벽화 슬라이드를 빠른 속도로 넘겨 갔다. 국내에서는 한번도 소개된 적이 없는 벽화 자료들도 여러 장 있었다. 슬라이드 자료를 마구 찍어대는 청중들의 카메라 세례에 당황했던지 그는 서둘러 강연을 마쳤다. 

 

수렵도. 중국 원태자 벽화묘에 새겨진 사냥하는 장면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가 주관한 이날 대회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고분 벽화 연구 전문가 10여 명이 참가한 최초의 국제대회다. 중국 동북 랴오닝 성과 한반도, 일본 규슈 지역에 분포한 벽화고분의 역사와 해석, 벽화고분의 전파 경로 등을 발표하는 자리로 일본과 중국에서 8명의 연구자들을 초청했다. 행사 진행을 맡은 인하대 복기대 교수(융합고고학)는 “한국학계 주도로 중국, 한반도, 일본에 분포하고 있는 석실 벽화 고분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논의해 보는 자리다. 이 주제를 놓고 3국 학자들이 처음 만나는 회의이니만큼 이를 시발점으로 고구려계 벽화고분 연구가 고대사 문화교류 연구에 중심축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중국 랴오둥(遼東)의 랴오양(遼陽), 차오양 등 지역에서 대거 발굴되고 있는 고분 벽화들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모아졌다. ‘고구려 고분연구의 새로운 제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염정하 연구교수는 고구려 고분 벽화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고구려 고분 벽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5세기 중엽 이후에 만든 중국 랴오닝 성 일대의 고분들에 대해 심도 있게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염 교수는 문헌기록에서 나타나는 고구려 중심부의 위치 변화와 벽화 고분 내용을 비교해본 결과 고구려의 고도(古都) 지안(集安) 지역과 랴오양 지역의 고분 벽화는 연결 구도가 뚜렷한 반면, 중국 중원지역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염교수는 몇 가지 근거를 들었다. 첫째, 고구려와 중국 랴오양 지역에서 나타나는 석실봉토 벽화분은 중국 중원에서 발견되지 않는 무덤 양식이라는 것. 중국 황하 유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무덤 양식은 전실화상석 무덤으로 고구려와 중국 랴오양 지역의 석실봉토 무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현재 랴오양 지역에서 발견된 석실봉토 고분은 25기 정도. 앞서 중국인 학자가 보여준 벽화그림 상당수가 북원(北園) 1, 3호묘, 상왕가촌묘(上王家村墓), 봉대자(棒臺子) 1호묘, 삼도호(三道壕) 1호묘, 남교가(南郊街) 벽화묘 등 석실봉토 양식 무덤에서 나온 것들이다. 

 

한중일 삼국의 고분벽화 전문가들이 참가한 국제 학술대회.

 


둘째, 고구려의 요동성총과 랴오양 벽화고분에서는 구조상 유사점이 있으며, 묘주(墓主)의 생활상과 천상 세계 묘사 등 벽화에서도 공통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중국과 한국의 사료를 살펴볼 때 4~6세기 중국 랴오양 지역은 고구려를 비롯한 한민족계의 영역으로 추정된다는 것. 즉 중국 랴오닝 성 일대의 벽화는 중국이 아니라 고구려와 관련이 깊다는 주장이다. 

“여러 면에서 고찰해볼 때 중국 랴오양 지역과 황화 유역은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학계나 일본학계가 랴오양 지역의 벽화 무덤을 모두 중국계인 한-위·진 시대의 벽화로 인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고구려사에 대한 이해 부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일본학계 주도로 진행한 고구려계 벽화고분 연구가 기존 문헌기록과 맞지 않는 등 많 은 문제점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현재 북한의 평양 지역에 나타나는 벽화고분 연대와 내용은 중국 한나라계와는 큰 관련이 없으며, 이 지역의 벽화 양식 또한 지안 지역과도 차이가 나고 있다. 평양 지역을 지배한 권력 주체에 대해서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발표중인 염정하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연구교수.

 


염 교수의 이 발언은 기존 학계의 한사군 평양설, 고구려의 대동강 평양 도읍설과 정면으로 배치돼 논란이 예상된다. 이는 최근 들어 제기되고 있는 고구려의 랴오양 도읍설을 뒷받침한다. 고구려는 장수왕 시기에 평양으로 도읍을 이전했는데, 그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중국 랴오둥 지역의 랴오양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역풍도 만만찮다. 최근 이른바 ‘주류’ 역사학계는 지난달 말 출간된 계간지 ‘역사비평(봄호)’에서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이라는 주제로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한사군 평양설을 부정하거나 고구려 신(新) 평양설 등을 내세우는 주장을 ‘사이비 역사학’이라고 비판한 것. 

과연 주류 역사학계가 내세운 설에 배치되는 주장이 역사적 파시즘에 근거한 사이비인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중국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복기대 교수는 “중국 측이 랴오둥 지역에서 발굴을 해 놓고도 파장을 우려해 감춰 놓은 벽화들이 상당수 있다”고 귀띔했다. 염 교수의 주장은 앞으로 엄중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다만, 한마디로 배척하기보다는 학술적으로 검증할 가치는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

 

출처; http://news.donga.com/3/all/20160407/77462991/1

 

 

 

1500년의 미스터리를 소설처럼 풀다

등록 :2014-12-11 22:37

 

중국 집안 고구려 고분 환문총은 망자의 생전 생활이나 조상신들이 머무는 내세를 그린 당시 벽화와 달리 정체모를 겹둥근무늬 동심원들이 가득해 그 조성 경위와 내력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영사 제공

 

 

고구려 고분 최고 권위자 전호태 교수
타임머신 탄듯 시대 넘나들며 비밀 탐구

 

비밀의 문 환문총
전호태 지음
김영사·1만6000원

 

무용총, 각저총, 강서대묘, 안악3호분, 덕흥리 벽화분…. 널방과 천장고임에 벽화가 가득한 고구려 고분은 끊임없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별자리, 사냥과 일상의 장면 등이 담긴 벽화는 1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인들의 삶을 읽어내고 그들의 내세관, 종교관, 우주관을 해석하는 장의미술이다.

 

중국 집안 고구려 무덤 환문총 벽화에는 정체 모를 겹둥근무늬 동심원들이 가득하다. 그 동심원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도 희미하게 비친다. 남겨진 벽화 아래 먼저 그려진 또 다른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120여기의 고구려 고분 벽화 가운데 세부적인 표현을 일부 수정한 사례는 많다.

 

하지만 먼저 그린 그림 위에 석회를 바르고, 주제를 바꿔 전혀 다른 그림을 다시 그린 경우는 환문총이 유일하다. 더욱이 망자의 생전 생활상이나 내세인 조상신의 세계가 아닌 동심원을 가득 채웠다. 현재까지 그 이유는 비밀로 남아 있다.<비밀의 문 환문총>은 그 미스터리의 해답을 찾아 1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전호태 울산대 교수(울산대박물관장)는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를 필생의 업으로 삼으며 축적한 성과를 이 책에 쏟아부었다. 환문총 미스터리를 고리 삼아 북한 남포의 강서대묘, 중국 집안의 무용총과 사신총 각저총 등 산재한 고분의 벽화 사진과 모사도는 물론 고분 조성 및 벽화 제작 방식, 발굴 기법 등에 관한 고고학적 지식을 종합적으로 풀어냈다.

 

또 고분이 조성될 당시인 4~6세기 동북아의 패권을 둘러싼 고구려와 북위, 송, 유연의 ‘4강’ 쟁탈전 속에서 전쟁포로나 노예로 팔려가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 불교 전파를 위해 고행의 길에 나선 승려들의 모습까지 두루 담아냈다.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서술 방식의 독특함이다.

 

지금껏 고구려 고분 벽화를 다룬 책들은 대부분 고고학적 전문서적 성격이 강했다. 대중적인 것조차 벽화 그림을 따라가며 해석하는 데 집중했다.<비밀의 문 환문총>은 미스터리 소설 형식을 차용했다. 벽화가 제작됐을 4~6세기, 발굴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 고분이 방치 훼손됐던 한국전쟁과 중국 문화혁명기까지 1500년의 역사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듯 넘나들며 각 시대마다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벽화의 비밀을 풀어간다.

 

이야기는 1988년 여름 국립박물관 미술부의 신입 학예사 한인규에서 시작된다. 고구려 고분 환문총에 관심을 갖고 있던 한인규는 논문과 박물관 특별전 때문에 좀체 연구에 집중할 엄두를 못 내는 그야말로 신입이다. 하지만 대학 선배가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해 온 1960년대 후반 출간된 책 꾸러미 속에서 자신보다 먼저 환문총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고태일 교수의 자료를 접하면서 환문총의 실체에 한발 한발 다가가는 설정이다.

 

1966~76년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을 피해 연길로 떠난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 조선족 교사 이윤호와 한국전쟁 참전 동기 만대복의 회고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상황에 몰린 자신들이 대동강과 재령강, 중국 집안 일대에 산재한 고구려 벽화 무덤 속에서 추위와 미군의 폭격을 피하며 생존한 얘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실제 고분이 방치되고 훼손된 당시 현실도 담아낸다.

 

또 벽화 발굴에 참여했던 가상 인물 아즈마 다다시 등의 독백을 통해 일제 강점기 고분을 발굴 조사한 일본 관학자들의 모습과 당시 발굴에 동원된 조선인의 고뇌를 다룬다. 120여기의 고구려 벽화 가운데 널리 알려진 무용총, 각저총, 강서대묘, 강서중묘 등이 일제 강점기에 발굴된 것을 염두에 둔 설정이다.책의 주제인 한 무덤에서 벽화의 내용이 완전히 뒤바뀐 환문총의 비밀을 풀기 위해 지은이는 고구려의 요충지 북부여성을 지키는 성주 한보를 무덤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생전 생활상과 사후 조상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당시 보편적인 벽화와 새로 도래한 불교 사상을 벽화에 구현하려는 인물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통해 당시 종교관, 내세관, 우주관의 충돌을 포착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출처;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68777.html

 

 

 

北 고구려 벽화무덤 디지털복원 완료

2012.03.22

 

동북아역사재단은 북한 소재 고구려 벽화무덤 ‘안악3호분’에 대한 디지털 복원작업을 마쳤다고 22일 밝혔다.

지난해부터 복원작업을 벌여 최근 완료한 이 자료들은 웹 서비스용 데이터로 가공해 재단 홈페이지(http://contents.nahf.co.kr/gogurye)를 통해 공개한다.

이번에 디지털로 복원한 안악3호분은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있는 석실봉토 벽화고분으로 고국원왕 대인 서기 357년에 만들어졌다. 회랑에 그려진 대규모 행렬도(行列圖)로 유명한 무덤이다.

▲ 디지털 자료로 복원한 안악3호분의 ‘묘주부인상’


벽화는 돌벽 위에 직접 그린 것이 대부분이며 벽화를 구성하는 주요 주제는 생활풍속도이다. 묘주부부 초상을 비롯해 대규모의 묘주행렬도, 주방장면을 그린 실내 생활도, 씨름 및 가무 장면, 문지기, 연꽃, 귀면 및 괴운문(怪雲紋) 등 갖가지 장식들이 어우러져 있다.

안악3호분 웹사이트에서는 무덤에 대한 소개와 홍보영상, 가상체험 VR(Virtual Reality)이 제공된다. 영어·일본어·중국어로도 제작해 외국인도 쉽게 볼 수 있도록 했다.

정재정 재단 이사장은 “이번 안악3호분 디지털 복원과 더불어 2010년 이미 제작한 덕흥리 벽화무덤도 가상체험 VR을 3D 화면으로 다시 제작해 서비스할 예정”이라면서 “고구려 고분벽화 복원사업을 계속해 주변국의 고구려사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ckchung@yna.co.kr>

 

[정치] 북한 고구려 벽화, 남북 공동 수리 합의

세계일보 | 입력 2005.04.12. 09:33

 

 

3세기대 고구려사를 보완할 수 있는 벽비(壁碑・너비 30cm)가 공개됐다. 특히 점토판에 290여자에 이르는 명문을 적고 있는 이 벽비가 진품이라면 광개토왕비가 세워진 414년보다 약 150년이 앞서는 데다 당시 북위와 고구려의 관계라든가 고구려 정치사회사를 보충해 주는 내용이 많아 진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벽비는 1930년대 평양 인근에서 출토된 것을 개인이 소장해온 유물로, 14일부터 10월29일까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한국토지공사 분당사옥 내 박물관에서 전시된다.

 

이 벽비에 동천왕 11년(237년)에 제작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벽비에는 고구려와 위나라 관계뿐 아니라 동천왕 사후 관구검이 침입하는 사건 배경과 전쟁의 추이를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그러나 벽비 명문에 고구려 이체자(異體字)나 이두와 같은 요소가 보여 논란의 여지가 있다. 광개토왕비에도 확연하지 않은 이두적 요소가 그보다 150년 전 문자 전통에서 나타날 수 있는지가 의아스럽다는 것이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출처; 세계일보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05041209332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