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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고인골 게놈 데이타로 알아 보는 한국인의 기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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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시대/유전학

2020. 9. 27.

동아 상염색체

 

고인골 게놈 데이타로 알아 보는 한국인의 기원-3

초재추천 3조회 351  20.07.15 07:25댓글

 

3.1.       Admixture 분석

 인구집단의 유전자 구성성분을 분석하여 보여주는 Admixture 분석은 Unsupervised mode에서 실행한  K=3, K=7 두개의 결과를 5 지역별로 나누어서, 보여 주기로 한다.  Admixture분석에 사용된 샘플들은 Plink 프로그램으로 MAF 0.05, Geno 0.1으로 필터링하고, LD pruning 200,25,0.4 하였다

 

1)       연해주지역

(그림5)연해주지역Admixture K=3

 

(그림6)연해주지역Admixture K=7

 

 

해주지역 샘플 중에 Devils_Cave 샘플들이 년대가 가장 이른 B.C. 5600 경의 루드나야문화에 속하고,  다음 약간 늦은 B.C. 5000~3500 경의 보이스만문화이고, 얀코브스키(Yankovsky)문화는 년대상으로 이들보다 상당히 늦은 B.C. 650~350 사이로, 이미 철기시대의 문화라   있다. Devils Cave 보이스만의 샘플들은 K=3에서 m_north(몽골고원 북부의 신석기문화) 80% hanben(대만 동부 철기시대 한본문화) 20%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  비해,  Yankovsky문화에서 m_north성분이 다소 낮으나, K=7으로 보면, Yankovsky문화에는 이미 황하유역에서  농민성분과 한본문화의 영향까지 나타난다.  Devils_Cave 보이스만은 거의 농업에 의존하지 않는 어업 위주의 수렵채집인생활을 하였으나, Yankovsky문화에서는 (millet) 같은 건조농업도 병행하는 생산양식의 변화도 이러한 인구집단의 유전적 구성에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연해주지역 신석기문화 고인골들의 형질인류학적 특징은 현재 Chukchi 같은 캄챠카반도에 거주하는 Paleo-Siberian계통의 형질인류학적 보인다고 하나, 점차적으로 Ulchi Nanai 같은 퉁구스계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으로 변화해  것으로 보인다.

 

러한 건조농업와 언어의 전파경로에 대해서, 요하유역에서 한반도 북부의 압록강유역을 거쳐서 연해주지역으로 전파되었다는 가설과 요하유역에서 바로 현재의 길림성이나 흑룡강성을 거쳐서 연해주지역에 도달했다는 두개의 대립되는 가설이 있다.  최근에 나온 논문 Li et al. <Millet agriculture dispersed from Northeast China to the Russian Far East:Integrating archaeology, genetics, and linguistics 2020>에서는, 석기 농기구와 평저 토기, 실을 잣는 방추차, 옥기 등의 형태적 기능적 유사성을  , 요하유역에서 길림성이나 흑룡강성을 경유하여, 북쪽 루트로  Yankovsky문화 이전에 Zaisanovka 문화시기에  도입되었다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1)       산동성지역

(그림 7) 산동성지역 샘플 Admixture K=3

(그림8) 산동성지역 샘플 Admixture K=7

 

 

산동성지역 샘플들은 년대가 거의 신석기 초기로서 비슷하고, 이들의 유전자 구성도 유사하다. 이들은 K=3에서 연해주지역 신석기샘플보다 남방의 Hanben성분이  20%  높은 , Xiaogao유적 샘플에서는 연해주지역 샘플들에게는 전혀 없던 파푸아뉴기니와 멜라네시아의 바누아투 신석기 샘플, , 오스트랄로이드(Austroloid) 공유하는 성분도 있다. 아마도, 해안을 따라서, 이른 시기 이들  북상한 집단과 약간의 혼혈이 있었던 흔적일 수도 있다.

 

K=7 보면, 이들 인구집단이 어디에서 유래했는  보다 분명해 지는 , 황하유역(Yellow River)에서 유래한 성분이 거의 60%  넘고, 나머지, 연해주지역과 몽골 북부의 북방성분과  10% 남짓한 남방에서 유래한 성분이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빙하기 이후에, 황하유역이나 아니면  서쪽에서 동진한 인구집단에서 유래했다고 보아야  것이다. 빙하기 기간  지역에 있던 인구집단들은 아마도, 한반도에 거주하던 사람들과 거의 유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시기, 해수면이 하강해서, 황해는 육지였고,  황해 평원을 통해,  지역에서 한반도나 일본열도에까지 도달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빙하기 동안  지역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후에 여기의 산동성 샘플들과 같은 황하의 중상류 유역에서  사람들에 의해 거의 대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위의 K=7 그래프에서 산동성지역 4 샘플에서 약간씩 있는 죠몽인성분은 빙하기 동안  지역과 한반도, 일본열도에 걸쳐 있었던 사람들과의 혼혈의 흔적일  있다.   비율이 1~3% 정도로 낮은 것은 어쩌면, 이들은 죠몽인과 같은 사람들과 직접적인 혼혈이 아니라,  지역에서 빙하기 이전에 이미 죠몽인을 대체했던 죠몽인과 혼혈이 있었던 사람들과의 2차적인 간접적인 혼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산동성 지역 4 유적지  편편동유적이 가장 년대가 앞서는 ,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는 바닥이 평평한 평저형 위주이다. 그러나, 나머지 3곳의 후리문화에 속하는 유적지에서는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주류 토기와 유사하게 바닥이 둥근 원저형 토기가 위주이다. 또한, 후리문화의 토기는 한반도의 신석기 토기와 유사하게, 토기 전체에 문양이 시전되는 것이 아니라, 토기의 목부분이나 배부분에 문양이 집중되는 경향도 보인다(何德亮,牛燕 <后李遗址与后李文化> 2010). 주변의 비슷한 시기의 하남성지역의 배리강(裵李崗)문화나 하북성지역의 자산(磁山)문화에서 한국에서 철기가 도입되기 이전에 거의 없었던 삼족기가 보이는  비해, 후리문화에서는 삼족기가 발견된 적이 없다. 이들의 집터는 반지하혈식이고, 매장방법은 직지앙신(直肢仰身, 시신의 앞면이  하늘을 보고, 시체를 바로 펴서 묻는 방법)이고, 무덤은 수혈식토광묘 위주이다.

 

후리문화에서는 농업이 이미 주요한 생산활동이 되어서,  등의 곡식을 갈기위한 석모반이 대량으로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리문화에 속한 월장(月裝)유적지에서는 중국 북방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재배된 탄화벼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PCA도면에서 한국인과 후리문화에 속한 소형산유적 고인골이 가깝게 나오고, 유적에 나타난 고고학적 사실을 고려해  , 후리문화가 비록 한반도의 신석기 문화와 직접적으로 교류하기에는 거리가 멀고, 한반도에 재배 벼가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와도 한참 차이가 나므로,  이들이 바로 한반도로 건너왔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산동성 내륙에 그대로 남아서, 북신문화나 대문구문화를 일군 이들도 있고, 이들 중에 일부는 요동 남부로 이주하고, 후에 한반도로 건너  이들도 있지 않을까생각해  수도 있다.

 

출처; 카페 분자인류학논단

cafe.daum.net/molanthro/I4qd/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