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환기9217해,신시배달5917해 단기 4353해,서기 2020해, 대한민국 101해(나뉨 72해),

[스크랩]고인골 게놈 데이타로 알아 보는 한국인의 기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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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시대/유전학

2020. 9. 27.

동아 상염색체

 

고인골 게놈 데이타로 알아 보는 한국인의 기원-4

 

초재추천 3조회 266  20.07.15 07:58댓글

 

1)       요하유역

내몽골지역에 위치한 유민문화에서 나온 샘플은 요하유역 문화는 아니지만, 다른 지역보다 요하유역 샘플들과 유전적 구성이 유사하므로, 이번 요하유역 샘플과 같이 넣어서, 분석하기로 한다.

 

 

(그림9) 요하유역 Admixture (K=3)

 

(그림 10) 요하유역 Admixture (K=7)

 

 

요하유역 샘플 가운데, 유민문화, 합민망합문화 하가점상층문화의 Outlier 북방성분이 많고, 반대로, 하가점하층문화의 이도정자유적에서 나온 샘플들이  남방성분이 많다. 이도정자유적에서 나온 샘플은 PCA도면에서도 황하유역 샘플들과 거의 같은 위치에 있고, Admixture K=7에서도 황하유역 성분이 압도적으로 높다. 유민문화 샘플은 K=7에서 약간의 카자흐스탄 보타이문화가 중심인 서유라시안성분이 약간 나온다. 아무래도, 시베리아나 몽골고원과 가깝기 때문에, 여기에 활동하던 서유라시아계 초원민족들과 약간의 교류가 있었던 흔적일 것이다.

 

합민망합문화의 샘플(HMMH_MN) K=7에서 황하유역과 몽골고원 북부 신석기 성분이 거의 유사한 비율이지만, 의외로 바누아투의 오스트랄로이드성분이 나온다.  성분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합민망합유적에서는 식량이 부족해지자 설치류 등을 먹기 시작하고, 설치류의 페스트에 감염되어 죽은,  당시 촌락 인구의  31내지 절반인  180명의 시신을   모아 처리한 흔적이 있다한다(朱永刚,吉平 <内蒙古哈民忙哈遗址房址内大批人骨遗骸死因 蠡测> 2016).  사망한 시신들의 골격을 재료로 사망당시  연령을 측정한 결과, 평균 26.8세라 한다. 이는 중국에서 역병으로 인해, 대량의 인구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인 묘자구(廟子溝) 유적 시신들의 사망 당시 연령 22세에 비해 높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아시기 면역력이 낮아서, 전염병등이 유행했을 , 유아들의 사망율이 높지만(묘자구유적에서 15 이하 사망비율 35%, 합민망합에서는 24%), 합민망합에서의 어린 세대는  전염병에 면역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상대적으로 사망율이 낮고, 청장년세대가  전염병에 면역력이 약해서, 묘자구 유적의 사망연령보다 높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방에서 올라온 오스트랄로이드 성분이 많은 인구집단과 만나서, 이들 남방인구집단이 지니던 북방초원에서 드물던 병균으로 인해, 이들과의 혼혈으로 면역력을 어느 정도 가지기 시작한 어린 세대는 사망율이 다소 낮고, 청장년세대가 면역력이 약해 대량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 합민망합인들을 대량사망에 이르게  전염병으로 설치류에  의한 페스트를 드는 이유는,  유적에서 나온 동물뼈들의 분석한 결과, 토끼나 들쥐와 같은 소형의 설치류가 대형포유동물인 돼지나  등에 비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석기 말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북방지구에서, 종래의 맘모스 등의 번식력이 낮고, 개체수가 한정된 대형포유동물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인구집단 전체가 식량위기에 이르던 것이, 덫의 설치나 사냥도구의 발달로 날래서 잡긴 힘들지만, 번식이 빠르고, 개체 수가 월등히 많은 소형포유동물에까지 수렵의 범위를 넓혀서,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간 점을 고려하면, 설치류 식단의 의존이 반드시 페스트 감염과 대량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합민망합인에게 존재하는 소량의 오스트랄로이드 성분이 합민망합문화의 초기부터 존재했는  아니면, 말기에야 나타났는 지를  자세히 조사하면, 대량 사망의 원인에 대해서, 보다 진전된 이해를 얻을  있을 것이다.   

 

홍산문화의 반랍산유적에서 나온 샘플들은 K=7 보면, 하가점 하층문화와 같은 대만 Hanben문화의 남방성분은 없지만, 황하유역 성분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다. 반랍산 유적에서 나온 3개의 고인골 샘플 중에, 부계 하플로가 측정된 BLSM41 논문에서는 측정된 부계하플로는 O2a 나오지만,  하부의 하플로를 측정한 것에 따르면, M117 속한다고 한다. 이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서 홍산문화의  다른 대표적 유적인 우하량지구의 최고 등급 대묘에서 발굴한 유골의 부계가 M117이라는 것과도 부합한다.

 

현재까지 중국에서 측정된 고인골의 부계를 보면, M117 빈도가 가장 높은 것은 서부 청해성 제가문화 영역이고 측정된 5개의 고인골 부계 모두 M117이다. 또한 티벳지역의 고인골인 Chokhopani에서도 M117 나왔기 때문에, M117 섬서성과 하남성 중심의 앙소문화에서 기원해서, 확장했다는 의견이 주류이다. 이것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로서, 홍산문화에서 앙소문화의 대표적 유물인 채색토기가 출토되고,  채색토기들은 양식적으로 앙소문화에서 전파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홍산문화 샘플들이 K=7에서 황하유역 성분이 성분이 높은 것이 전적으로 앙소문화에서  외래인들의 영향이기보다는  지역에 홍산문화 이전의 흥륭와문화나 조보구 문화 시기부터 이미 오래 전에, 황하유역에서 와서 자리 잡았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산동지역 고인골들  거의 9000 이전 Bianbian인에서부터 황하유역 성분이 높은 데서   있듯이,  15000  빙하기가 끝난 이후, 동아시아지역의 인구집단 형성은 주로 부계 하플로 N O 대표되는 농경문화를 습득한 집단이 서부에서 동부로 계속적으로 이주한 경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가점 하층문화는 앞의 Treemix PCA그래프에서 언급했듯이, 황하유역 주민이 홍산문화의 쇠퇴 이후, 인구가 감소한 요하유역으로 이주하였던 것이며, 이들은 Austronesian인의 선조인 Hanben성분을 많이 가진 것을  , 황하 중상류지역이 아닌, 하남성 중심의 중원지역, 황하 중하류지역에서 이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있다.

 

하가점상층문화인 용두산 유적에서는  종류의 샘플이 나오는 , 일반적인 하가점 상층문화인을 나타내는 샘플과 특별히 북방성분이 높은 특이형 Outlier 있다. 하가점 상층문화는 고고학적으로 Ning et al.2020 논문에 고인골 자료가 나온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유역의 용두산과 대포자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용두산 유형과 요서 동부의 노합하(老哈河)유역의 남산근과 소흑석구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남산근유형, 그리고 하북성지역 란하()유역의 동남구(東南溝)유형으로 나누는 , 남산근유형의 유적들은 한반도의 청동기문화와 관계가 깊은 비파형동검이 가장 많이 나온 십이대영자유적(중국학계는 십이대영자유형을 하가점상층문화의  갈래로, 한국학계는 십이대영자유형을 하가점상층문화와 독립하여, 요동의 청동기문화와 연관된 것으로 다루는 경향이 강하다) 가깝고, 또한 남산근유형에 속하는 여러 유적지에서 비파형동검이 출토된다.

 

시기적으로 용두산유형이 하가점상층문화의 1기로서 약간 앞서며, 서북부의 서랍목륜하유역의 용두산유형에서 남산근유형이 위치한 남동쪽으로 하가점상층문화가 점차 확산한 것으로 여겨진다(井中,< 夏家店上文化的分期源流> 2012). 따라서, 용두산유적은 한반도의 청동기문화와 관계가 깊다고 알려진 하가점상층문화에서 한반도와 비교적 관련이 옅은 지역의 유적이라   있다.

 

목축과 관련된 동물순장이 많고, 청동제 무기 등이 많이 출토되어 북방초원의 유목문화와 유사성이 강조되는 하가점 상층문화는, 비록 약간의 청동기가 출토되지만, 일반적으로 농경위주의 정착문화인 하가점하층문화와는 계승관계가 없다고 주장되지만, 위의 Admixture분석을 보면, 하가점 상층문화 용두산 유적 출토 고인골에서는 홍산문화와는 달리, 하가점하층문화의 이도정자유적 고인골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비율의 남방계의 Hanben요소가 나오므로, 일부분의 하가점하층문화인은 하가점상층문화의 원류로 추정하는 고태산문화나 위영자문화과의 혼합을 통해서, 생성된 것일  있다.

 

물론 앞서의 Treemix PCA분석 등에서 보듯, 하가점하층문화는 분명히, 요하유역의 다른 문화들과 달리, 황하유역과 강한 연관성을 지니고, 유전적 차이를 보이나, 이것이 하가점하층문화인들이 완전히 요하유역에서 소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이들이 위영자문화나 하가점상층문화 등에서, 북방적인 요소가 강한 인구집단의 주도적인 영향아래 일부분이 흡수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하가점 상층문화는  원류가 다양하다고 여러 고고학 연구자들에서 추정되는 , 분명한 것은 하가점 하층문화시기에 비해서, 다시 북방적인 요소가 강해졌다는 것인 , 이러한 점은 하가점상층문화의 outlier샘플이 8000  유민문화인보다 오히려  북방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있다.

 

여기에서 다시 강조해야  것은, 고고학이 연구대상으로 하는 물질문화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반드시 분자인류학의 대상인 인구집단간의 유전적 차이로 반영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의 현상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있는 , 분자인류학적으로 분명한 차이가 보이는 인구집단이 유사한 고고학 문화로 묶일 수도 있다. 최근에 나온 하버드대학 데이비드 라이히 연구팀의 카리브해 여러 섬들 사이의 토기의 사용유무나 유형분류를 중심으로  고대의 인구집단간 유전적 차이를 분석한 연구(Fernandes et al. 2020)에서, 토기 유형의 시대적 변화나 공간적 변이에 대응하는 인구집단간의 유전적 차이는 없고, 이러한 스타일의 변화는 문화전파나 유사한 유전적 구조를 지닌 인구집단의 이주나 교류로 설명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토기의 스타일에 나타나는 변화에 따른 인구집단의 변화나 스타일의 미세한 차이로 한반도 문화의 원류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 토기유형의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한국 고고학계의 연구경향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연구라   있다.

 

4)       황하유역

(그림11) 황하유역  티벳고원지역 샘플 K=3 Admixture

 

 

(그림12)황하유역  티벳고원지역 샘플 K=7 Admixture

 

 

황하유역  티벳고원 고인골 샘플들은 K=3 경우, 북방 몽골고원 북부성분 m_north 남방의 대만 한본문화성분 hanben으로 구성되어 있다. 티벳고원의 샘플들은 여기에 더해, 오스트랄로이드인인 vanuatu성분이 조금씩  들어가 있다. 이렇게 동아시아 북방과 남방이 비교적 고르게 혼합된 인구집단이 K=7 되면, 황하유역이 하나의 조상인구집단이 되어, 산동지역이나 요하유역 고인골의 유전자를 구성하는 기본 성분이 되고, 황하유역 샘플들은 대부분은  기본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Admixture분석에 나온 연해주 지역 고인골인 루드나야 문화인이나 보이스만 문화인에게는  황하유역 성분이 거의 없다. 연해주 지역에서  황하유역 성분이 나타나는 것은 휠씬 후인 철기시대 얀코브스키문화인에게이다. 이에 반해, 거의 9000  산동지역 Bianbian인이나 역시 8000년이 넘는 내몽골지역의 Yumin문화인에게는  황하유역 성분이 나타난다. 이를  ,  황하유역성분은 이미   이전에 동아시아지역 북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을 것이나, 아직 연해주 지역과 같은 가장 변경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연해주지역 Devils_Gate Cave샘플이나 Boisman 샘플의 부계는 모두 C2a, 모계는 M 혹은 D4이다. 반면에, 산동지역 후리문화에서는 Xiaojingshan샘플은 흔히 하플로 N 남쪽 분지로 불리며, 중국 한족  티벳계 민족에 많은 N1b(F2930)이다. 황하유역성분이 80%정도되면, 나머지 몽골 북부 성분과 대만 한본문화성분도 있는 홍산문화에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부계는 C2a, N1a,N1b, 그리고 앞서 언급한 우하량유적에서 나온 O2a2b1(M117) 있다. 이렇게 보면, 황하유역 성분은 부계하플로 N,O 연관되며, 몽골북부성분은 부계하플로 C2 연관됨을   있다. 부계 하플로 C2 빙하기 이전부터 동아시아에 거주하였으며, 연해주지역 샘플들이, 약간의 남방성분을 가지는 것을  , 이들은 빙하기가 끝난 15000  이후부터 점차로 남방에서부터 북상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황하유역성분의 부계하플로 N O 인도지역에서 현재  둘이 조상형이어서, NO 미분화된 형태인 NO*타입이 발견되었다한다. 그러므로, NO 인도지역에서 미얀마를 거쳐서, 중국 운남성지역을 통해, 사천성 등의 양자강유역으로 진입하였거나, 혹은 인도에서 북상해서, 중앙아시아방면에서 현재의 신장위구르지역을 거쳐, 황하상류의 황토고원지역에 진입하였을 것이다. 부계하플로 N 고인골로서는 주로, 북방지역에서만 발견되는 것을  , 하플로 N 북방루트로 동아시아에 진입하였을 것이 거의 확실하나, 하플로 O 현재로서는   많은 고인골들, 특히 황하상류유역과 양자강상류유역의 사천성 등지의 고인골 샘플들이 측정될 필요가 있으나, Liangdao유적에서 나온 고인골 샘플이 부계하플로O1라는 것을  , 남방루트를 통해, 진입하여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확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사천성방면에서,  갈래 정도로 나누어져,   빨리 동아시아해안에 도착한 그룹이 Coastal-South-East Asian 되고 이들은 주로 현재의 Austronesian계통이 되고, 양자강 중류에서 오래 머물다, 벼농사를 최초로 시작한 그룹이  Inland-South-East Asian으로서 주로 현재의Austroasiatic 조상이 되고, 조금  늦게 약간의 북방성분과 혼혈된 이후에 여기로 진출한 그룹은 Tai-Kadai계의 조상이 되었을 것이고, 이들이 후에, 동남아시아로 다시 남하해서, 현지의 Hoabiahian 같은 Negrito그룹과 일부분 혼혈하여, 현재 동남아시아인 대부분의 조상이 되었을 것이다.

 

Austroasiatic 일부는 벼농사기술을 통해, 증가된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남아시아영역으로 재진입하여, Austroasiatic 분지인 Munda어계통의 조상이 되었을 것이다. 동남아시아지역의 Negrito들의 부계는 C1b  K2b등인 것을  , 하플로 O Hoabiahian 같은 빙하기 이전부터  지역에 존재했기보다는 빙하기 이후에 농경기술을 바탕으로  지역에 진입한 것은 거의 확실하다. 사천성으로 진입한 그룹 중에, 북쪽으로 향한 그룹은 제가문화와 같이, 거의 전부  부계하플로 O2a2b1(M117)만으로  집단(제가문화에 속하는 청해성의 라가유적에서 분석된 고인골 샘플 5개가 M117 하위유형 중에 현대 중국 한족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 F438 하위하플로인 F2137 나옴) 있고, 어떤 그룹은   먼저 동아시아 북부에 자리잡은 부계하플로 N 섞여서, 황하유역 조상집단이 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그러나, 남방루트설의 문제는 현재까지, 인도 등지의 남아시아지역에서 세석기가 발견되나, 미얀마나 중국의 운남성, 광서장족자치구, 사천성 등에서는 시베리아, 중국 북방, 한반도, 일본에까지 널리 세석기가 퍼진 동아시아 북방과 다르게, 세석기가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지역에서 발견된 고인골들은 형질인류학 분석에 의하면, 강하게 데니소바인등과의 혼혈 등이 원인이 되었을 원시적 특징을 가진 인골이 많고, 구석기 시대에 Hoabinhian 다른 문화가 유입된 흔적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일, 부계 하플로NO그룹이 남방으로 동아시아에 진입했다면, 현재까지로 보아서는 짧은 시간에  지역을 통과해서, 흔적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는 정도로 이해할  밖에 없다.

 

 (그림13) 부계하플로 NO집단의 동아시아진입경로 추정

 

 

이에 반해 북방을 보면, 시베리아 북부의 북극해연안의  32,000  Yana에서 발견된 고인골에서 부계하플로 P* 측정되었고, 시베리아 중부지역의   22,000 유적인 Malta에서 발견된 인골은 부계하플로 R 것을   동아시아 북방에 최초로 진출한 부계하플로 그룹은 하플로 R계열이었을 것이다.  다음에, 역시 북방루트로 동아시아 북방을 거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빙하기에 넘어간 부계 하플로 Q계열이, 그리고, 빙하기 이후에 해안을 따라서 북상하여 역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일부가 진출한 하플로 C2계열이 있고, 하플로 N 동아시아 내륙을 통해서, 북부로  후에, 가장 나중에 시베리아지역으로 진출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 빙하기에 중앙아시아 북부나 시베리아지역이 인류가 거주하기 부적합한 지역이 아니라, 일부 고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오히려 곳곳에 피난소에 같은 지역이 존재했고, 부계하플로 O집단도 이런 피난소에서 오래 머물다, 세석기(Microblade) 같이, 변화된 환경에서 생존능력을  향상시킬  있는 기술을 획득한 이후에야 동진하였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답을 얻기 위해서는, 황하상류의  영하회족자치구에 위치한 구석기 말기 수동구유적(水洞溝, 수동구유적에서는 빙하기 이전의 르발루아 석기가 발견된 3만년  지층과 같이,다양한 지층이 존재하나, 다양한 세석기와 장식품 등이 발견된 12지점의 유적을 말함)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13,000 전에, 석기를 직접 손에 쥐고, 다루어야   석기보다는 나무막대나 동물뼈로 만든 몸체에 날카로운 날로서 부착시켜, 창이나 화살촉, 칼날 등으로 활용하여 사냥기술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킨 세석기기술이 나타났다(,< 水洞沟与石器期革命”

> 2013). 세석기 기술의 다양한 활용을 통해서, 날래고 예민해서, 사냥에 투입하는 시간에 비해, 보상이 적었던 토끼와 같은 소형포유류도 보다 쉽게 사냥할  있게 되었다. 수렵하는 동물의 범위를 맘모스와 같은 남획이나 기후변화로 쉽게 멸절되는 대형포유류에서 번식이 빠르고, 변화하는 환경에서 적응이 빨라 거주지 주변에서 쉽게 사냥할  있는 소형포유류에까지 넓혔기에, 빙하기 이후 변화하는 환경 속에 생존가능성을 높아지게 했던 식단의 다양화가 중요하다

 

세석기(Microblade) 기술을 통해서, 석기재료의 제한이 적어지므로, 오히려 mobility 증가했을 거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마이크로블레이드 기술이 북방에 도입된 시기에는 이미 맘모스, 들소 등의 많은 대형포유류가 멸종에 거의 이른 시기이고, 마이크로 블레이드 기술이 가져  사냥의 효율이 높아지는 효과를 통해서, 사냥시간을 줄임으로써 정착이 용이하게 되는 면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식단의 다양화와 정착생활를 통해서, 대형포유동물을 쫓아 계속적으로 이동하기 보다는 일정한 범위내에 정착하는 생활이 가능해졌고, 정착을 통해서, 개나 돼지와 같은 야생동물의 가축으로의 순화와 거주지 주변의 조나 기장 같은 초본식물을 순화시켜 농경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해지게 된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빙하기 이후에 정착 집단이 늘어나게  동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런던대학 명예교수인 Gina L. Barnes <Archaeology of East Asia- The rise of Civilizaitono in China, Korea, Japan 2015>에서, 1) 식량공급의 확대 Expansion of food supply, 2) 새로운 조리 방법(new food preparation techniques), 3) 새로운 식량저장방법(and new storage facilities) Pull factor로서, 사냥 시간의 축소(diminished game for hunting) Push factor로서 제시한다.

 

수렵을 위한 시간이 줄어든 것은 인류집단이 세석기로서 다양한 사냥도구를 개발한 덕도 있지만, 빙하기 이후, Younger Dryas시기(B.P. 10500 년을 전후한 소빙하기) 제외하고, 기온이 상승하고, 강우량이 증가함으로써, 여러 식물과 동물들이 증가하고, 환경 자체가 인간의 생존에 유리하게 변화한 것이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화한 가운데, 어떤 인류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기회를  이용해서, 인구를 다른 집단보다  확장시키고, 영역을 넓혀나갔는가를   있다면, 고고학계에서 아직 논쟁 중인 여러 문제에 대해서, 보다 진전된 답을 얻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지나 반즈(Gina L. Barnes) 꼽은 정착사회로 이끈 요인  가지  2) 새로운 조리방법과 3) 새로운 식량 저장의  가지는 토기의 발명과 연관되는 , 앞서 언급한 수동구유적에서는 이후에 불에 그스린 돌이 많이 나타난다. 이는 불을 간접적으로 이용해서 생선이나 고기등을 익혀 먹는 것으로서, 도토리 등의 채집 등에서 획득한 견과류나 열매 등을 보존문제와 함께, 토기를 발명할 필요로 이어지게 된다. 동아시아지역에서는 오시포프카문화의 아무르강유역 , 죠몽문화의 일본열도, 그리고 선인동(仙人洞)유적(중국 양자강 유역의 강서성에 위치한 구석기 유적  20,000 전으로 세계 최초의 토기가 발견됨) 중국 남방과 남장두(南莊頭)문화의 중국북방 등의 지역으로, 이들은  거의 독립적으로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여겨지는 , 모두 계획적이고 집중적인 농경이 시작되기 전으로서, 세석기가 서유라시아지역에서 먼저 사용되어 동아시아지역으로 전파되었던 것과 달리, 토기는 동아시아지역에서 최초로 발명된 것으로 보인다

 

조나 기장 같은 곡류는 구석기 시대 채집의 주요대상이었던 , 호두,  등의 견과류와 달리, 가공하지 않는 , 직접 먹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현대에도 많이 이용되는 것과 같이, 물과 함께 가열해서 죽으로 만들어, 끓여 먹는 것이 가장 영양흡수에 유리하다고   있다.  점에서 토기의 발명은 비록 계획적이고 집중적인 농경보다 일찍 시작되었지만, 농경이 신석기시대에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것에는 떼놓기 어려운 필수적인 요소라   있다

 

수동구유적에서는 위의 예시한 것과 같은, 구석기 말기의 혁명적이라   있는 변화를 일어나고, 이러한 변화를 통해 빙하기 이후, 맘모스와 같은 대형포유물의 사냥이 점점 어려워져가던 동아시아 북방에서 인류의 생존능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다. 이러한 구석기말기의 새로운 혁신이 나타난 집단들의 고인골 샘플에 대한 상염색체와 부계하플로 측정을 통해서, 구석기에서 신석기로의 이행과정에서 나타난 변화들이, 동아시아지역 전체의 인구집단 구조에 어떤 효과를 가져 왔는 지를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들 수동구유적과 같이, 황하상류에서, 구석기 말기의 혁신을 창조한 집단들이, 황하 중류로 이동해서, 현재 중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 전인  10,000 전에 토기를 제작하고, 조와 기장 등의 건조농업을 시작하여, 가장 이르게 신석기시대에 돌입한 것으로 여겨지는 하북성지역의 남장두(南莊頭)유적과 같은 문화를 창조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아무르강유역과 인접한 연해주지역에서도 오시포프카문화 등에서 14,000 이전에 토기를 제작하고, 신석기시대에 돌입했다고 알려졌으나,  지역의 기후가 농경에 적합하지 않기에, 이들은 농경을 통한 정착생활과 분업  사회조직의 분화와 같은, 문명발달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이루어내지 못했기에, 점차적으로 황하유역에서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을 것이고, 이런 인구집단의 변화들은 산동지역이나 요하유역의 고인골에 나타나는 황하유역성분이 점차로 높아지는 경향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출처; 카페 분자인류학논단

cafe.daum.net/molanthro/I4qd/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