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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9217해,신시배달5917해 단기 4353해,서기 2020해, 대한민국 101해(나뉨 72해),

범방유적(釜山 凡方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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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시대/고고학

2020. 10. 7.

 

범방유적(釜山 凡方遺蹟)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175 일원에 위치한다. 2001년 부산 아시안게임 승마경기장 및 부산·경남 공동경마장 조성부지에 대한 사전 문화재 지표 및 시굴조사 결과 부산 범방패총 인접지역에서 타제석부, 즐문토기 등이 출토되는 유물포함층이 확인됨으로써 발굴되었다. 발굴은 유적 중 일부만 실시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보존되어 있다.

 

유적은 낙동강 하류역의 하구변에 입지하며, 1991년 부산박물관에서 발굴한 범방패총과는 북쪽으로 연접해 있다. 유적 주변에는 부산 수가리·북정, 김해 농소리·화목동 유적 등이 분포하고 있다.

 

유적은 동서로 뻗은 금병산에서 갈라진 동남향의 저구릉을 따라 해발 4∼7m 선상에 길게 형성되어 있으며, 유적 전방은 저습지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유적 주변은 현재 전체가 개간과 가옥의 축조 등으로 인해 계단상으로 평탄하게 조성되어 있으나 조사결과 문화층의 퇴적상태, 집석노지 등 유구 설치면의 위치, 유적 주위의 지형·고환경 등으로 보아 당시는 해안과 접한 완만한 저구릉지역으로 추정되며, 유적 형성 이후(조기 이후) 어느 시점에는 유적지 가까운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유적은 고려시대 이후 현재까지 계속해서 전답으로 이용되어 신석기시대 문화층이 부분적으로 훼손 또는 유실되었으나 유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 발굴되지 않은 범위까지 포함한다면 그 규모는 매우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범방유적의 퇴적상태는 조사지점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기본 층위는 동일하다. 전체 층위는 10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문화적으로 의미있는 층위는 7개 층뿐이다. 현재 층위 상태가 잘 보전되어 있는 A지구의 경우는 표토층(Ⅰ층), 고려·조선시대 경작 및 유물포함층(Ⅱ층), 갈색부식토층(Ⅲ층), 갈색사질토층(Ⅳ층), 회색모래층(Ⅴ층), 담황색모래층(Ⅵ층), 회색사질토층(Ⅶ층), 생토층인 풍화암반의 기반층(Ⅷ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층위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형식학적 특징, 유구의 중복관계 등을 통해 볼 때 크게 4개의 문화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1문화층은 최하층인 Ⅶ층과 Ⅵ–1층·Ⅵ–2층으로 구상유구 출토 유물을 표식으로 하는 신석기시대 조기의 융기문토기 단계이며, 제2문화층은 Ⅵ–1층의 상면에 설치된 집석노지와 위석노지·Ⅵ층의 퇴적층 출토 유물을 중심으로 하는 전기의 영선동식토기문화 단계이다. 제3문화층은 Ⅵ층의 상면에 설치된 방형 적석유구와 집석노지, Ⅴ층의 퇴적층 출토 유물 중심으로 하는 중기의 수가리Ⅰ식토기문화 단계이다. 제4문화층은 Ⅳ층의 상면에 설치된 집석노지와 위석노지를 중심으로 Ⅲ·Ⅳ층 퇴적층 출토 유물을 특징으로 하는 후∼말기 토기문화 단계이다.

 

범방유적에서 확인된 유구는 집석노지 37기, 위석노지 21기, 방형 적석유구 1기, 대형집석 1기, 구(溝) 1기이며 그 밖에 주거시설이나 무덤은 확인되지 않았다. 범방유적에서 확인된 집석노지는 형태와 구조적인 측면에서 볼 때 2종류로 구분된다. 제1류는 당시 생활면에 할석 내지 천석을 1∼2단 정도 원형 내지 타원형으로 깔아 만든 형태이며, 제2류는 직경 1∼3m 정도의 타원형 수혈을 파고 그 내부에 적석한 형태이다. 집석은 대부분 화기를 받아 적색으로 변색되어 버석버석한 상태이다. 규모는 직경 0.5∼3m 정도로 다양하나 1m 내외가 보통이다. 집석노지 주위에서 타제석부, 갈돌, 갈판, 태선침선문토기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견과류 조리용으로도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남해안지역 신석기 전기에서 후·말기까지 사용되었다.

 

위석노지는 평면형태에 따라 원형과 장방형의 상형노지로 구분된다. 상형노지는 장방형의 토광을 파고 납작한 판상석을 비스듬히 세워 만든 형태이며, 규모는 길이 0.77∼0.9m, 너비 0.45∼0.5m, 깊이 0.15∼0.2m 정도이다. 원형노지는 직경 0.5∼0.8m, 깊이 0.1∼0.2m 정도이며, 구조는 할석 또는 천석을 세우거나 눕혀서 만든 형태이다. 이들 노지는 내부에서 목탄은 검출되지 않았으나 노벽석이 부분적으로 화기에 의해 적색으로 변색되거나 균열·박리되어 있는 상태이다. 위석노지는 후기에 속하는 것도 있으나 주로 전기에 조성되었다.

 

적석유구의 상부가 후대의 경작으로 유실되고 교란되어, 다소 원상을 잃고 있으나 구조는 인두대(人頭大)의 화강암석을 거의 정방형으로 구획하고 그 내부에 대소 할석을 쌓은 형태이다. 규모는 9.3×9.6×1m 정도이다. 적석유구 주변에서는 중기의 태선침선문토기편과 타제석부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축조시기는 중기로 추정된다.

 

적석유구는 유사한 사례가 아직 조사되지 않아 정확한 성격을 가늠할 수 없지만, 축조 위치가 당시 해안가인 점과 동시기에 조성된 음식물 조리시설인 집석노지가 주위에 다수 배치되어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보아 생업과 관련하여 의례행위를 행하던 시설물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대형집석은 B지구의 위석노지가 밀집한 곳에서 확인되었는데, 구조는 길이 50㎝, 두께 30㎝ 전후의 화강암제 대형 할석 3매를 집석하고, 그 주변에 대소 할석을 모은 구조이다. 집석 아래에 대형 타제석부가 은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제의와 관련된 시설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성시기는 유구 주변 출토 유물과 층위로 보아 신석기시대 중기로 추정된다.

 

구상유구는 유적이 위치하는 구릉 하단부의 풍화 암반층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는데, 특별히 인위적으로 어떤 시설을 조성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신석기시대 조기 단계에 구릉의 말단부를 따라 지하수가 흐르던 구(溝)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

 

이 밖에 유구는 아니지만 폐기된 생활시설물이 해수 작용으로 인해 형성된 대상집석(帶狀集石)이 확인되었다. 집석 가운데는 즐문토기편과 타제·마제석부 등 파손된 석기류가 출토되었으며, 너비는 대략 2.5m 전후 규모이다. 형성 시기는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범방유적에서 다양한 형식의 즐문토기를 비롯하여 각종 석기류,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는데, 석기를 제외하고 토기류는 대부분 편들이다. 당시 조사에서 확인된 즐문토기는 기왕의 범방패총 출토품과는 큰 차이가 없으며, 신석기시대 조기의 융기문토기류부터 전기의 자돌압인문토기, 중기의 태선침선문토기, 후·말기의 퇴화침선문토기, 이중구연토기 등 여러 종류의 즐문토기가 다량 출토되었다.

 

특히 구상유구와 Ⅵ–1, Ⅵ–2, Ⅶ층에서 출토된 융기문토기류는 문양구성과 시문수법 등에서 다양한 형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범방패총의 Ⅰ기층 융기문토기류와 같은 형식들이다. 기형은 심발형을 기본으로 하며, 일부지만, 파수부토기와 구연부가 외반하는 옹형토기도 존재한다. 저부는 밑이 납작한 평저와 둥근 원저, 뾰족한 첨저로 구분되며, 일부 토기에는 동체가 납작한 편동형토기도 있다. 문양대는 구연하에 횡대를 구획하고 상하에 기하학적 융기문을 시문한 형식이 주류를 이루며, 문양형태는 융대문, 융기선문, 침선문이 단독 또는 복합문을 이루고 있다. 융기문토기류와 공반되는 즐문토기로는 무문양토기, 지두문토기, 단도마연토기, 채색토기, 세침선격자문토기 등이 있다.

 

전기의 영선동식토기는 Ⅵ층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으며, 기형은 원저의 심발형토기가 주류를 이루나 호형토기도 존재한다. 문양형태는 전기 즐문토기의 특징적인 문양인 압인횡주어골문를 비롯하여 압날단사집선문, 세단사선문, 세격자문, 점열문, 구순각목문, 삼각집선문, 거치문, 능형점열문, 지두문 등이 있다. 이들 문양은 단독 혹은 복합문 형태로 문양대를 구성하며, 문양대 형태는 영선동식토기의 특징적인 구연부 문양대를 이룬다.

 

중기의 태선침선문토기는 Ⅴ층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관련 유구에 비해 출토양이 많지 않다. 토기형식은 남해안지역의 전형적인 수가리Ⅰ식토기이며, 문양형태는 삼각집선문, 어골문, 사격자문, 조대문(능형집선문), 지자문, 연속압날문, 단사집선문, 죽관문, 압인단사집선문 등이 있다. 이들 문양은 어골문을 제외하고는 주로 구연부에 한정하여 시문되며, 단독문 혹은 복합문 형태를 이룬다. 문양대의 시문 범위는 동체까지만 하는 경우와 저부까지 전면 시문하는 것으로 구분되면, 문양대 사이에는 파상문이 삽입되어 종속문을 갖는 형태도 있다.

 

Ⅲ층과 Ⅳ층에서 출토되는 후기 즐문토기 종류는 퇴화침선문토기, 이중구연토기와 단사선문토기, 봉계리식토기, 고배형토기 등이 있으나 수량이 적어 형식적인 특징과 기종조성은 자세하지 않다. 기형은 고배형, 소형 평저발, 심발형 등이 있다. 퇴화침선문토기는 구연하에 세침선으로 격자문을 시문한 것이며, 단사선문토기는 구연하에 일정한 여백을 두고 단사선을 시문한 형태이다.

 

범방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류는 타제·마제석부를 비롯하여 석착, 유견석부, 유선형석기, 세장방형석기, 흑요석제 박편석기 및 원석, 결합식조침, 고석, 대석, 갈돌, 갈판, 어망추, 석추, 지석, 석제 작살, 장신구 등이 있다. 재질은 주로 유적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혼펠스와 응회암, 니암 등의 석재를 사용하였으나 벌채 내지 목재 가공용의 마제석부와 조침 중에는 범방유적 주변에서 산출되지 않는 화강편마암, 편마암 계통의 석재를 가공한 것도 있다. 이들 석기는 외부지역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된 석기류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이 출토된 것은 석부류이다. 석부는 외견상으로 크게 타제석부, 마제석부, 인부마연석부로 구분되나, 크기, 평면형, 인부형태, 제작기법 등 세부 속성의 특징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누어진다. 이것은 타제·마제석부가 기능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고 기능에 따라 형태 분화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타제석부는 두께와 외형적인 특징에 따라 일반적으로 따비형과 괭이형으로 구분되며, 형질적 속성(크기, 두께, 형태, 재질 등)에서 다양성과 규격성을 보여 준다. 특히 석부 중에는 편암과 편마화강암 계통의 석재로 가공한 마제석부는 다른 석부류와의 제작기법과 형태 그리고 석부의 재료가 부산 주변에서 산출되지 않는 암석인 점으로 보아 타 지역으로부터 교역에 의해 범방유적에 반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결합식조침은 소위 오산리형으로 불리는 형식이며 모두 30여 점이 출토되었다. 결합식조침 축의 형태와 결합면 형태에 따라 ‘J’자형, ‘I’자형으로 구분된다. 축의 형태와 결합부의 속성 등에서 전형적인 오산리형과는 구분되는 남해안지역의 특징적인 범방형에 속하는 것이다. 갈돌과 갈판도 다수 출토되었는데, 말안장형의 전형적인 갈판의 측면에는 손잡이 용도의 홈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있다. 형태는 북한 봉산 지탑리유적이나 서울 암사동유적 등 중서부지역 침선문토기 단계의 갈판과 동일하다. 이 밖에 흑요석 박편도 다량으로 출토되었으나 완제품은 한 점도 검출되지 않았다. 분석결과 일본 규슈[九州]의 고시다카[腰岳]와 요도히메[淀姬]산으로 밝혀졌다.

 

범방유적은 범방패총과 바로 인접하여 위치하고 출토된 즐문토기 및 석기류 등 유물의 형식적인 특징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범방패총을 남긴 신석기인들의 해빈(海濱) 생활유적으로 추정되며, 유적의 분포 범위가 넓고,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생활유적이라는 점에서 남해안지역 신석기문화의 성격과 전개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유적은 각 층에서 출토된 융기문토기를 포함한 각종 즐문토기류의 형식적 특징, 문화층의 내용 등으로 보아 기원전 5000년 전후에서 기원전 2000년 전후까지 지속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하인수)

 

 

참고문헌

범방유적(부산박물관, 2009),

범방유적의 석기 검토(하인수, 부산대고고학과 창설20주년기념논문집, 부산대고고학과, 2010)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신석기시대편)

 

출처;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