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환기9217해,신시배달5917해 단기 4353해,서기 2020해, 대한민국 101해(나뉨 72해),

[스크랩]고인골 게놈데이타로 알아 보는 한국인의 기원-7-2)

댓글 0

환국시대/유전학

2020. 10. 7.

동아 상염색체

 

고인골 게놈데이타로 알아 보는 한국인의 기원-7-2)

 

초재  추천 3조회 281  20.10.06 05:34  댓글 9

 

3)    하가점하층문화인

그림25) f4-stat(WLR_LN,Mbuti,Korean,Test)

 

 

하가점하층문화 이도정자(二道井子) 유적의 선사시대인은 앞의 Treemix, PCA, Admixture 분석 등을 통해서, 황하유역에서 온 성분이 이전 시대 홍산문화인에 비해 급격히 늘어나, 요하유역보다는 화하족의 기원지라 여겨지는 황하유역 선사시대인과 묶여질 수 있다는 점을 볼 수 있었다. 여기 f4-statistics에서도 앞의 홍산문화 반랍산의 선사시대인과 달리, 중국 한족들이 한국의 서울지역과 이도정자 고인골과의 유전적 거리가 거의 차이가 없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산동성, 절강성, 강소성 등 황해 연안에 위치한 지역들의 한족들이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데, 한국인은 전체적으로 중국 한족보다 약간 더, 그리고, 다른 동아시아인집단보다는 차이가 확실하게 이도정자인과 유전적으로 공유하는 성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 집단에서는 제주도인이 서울지역보다 명확히 이도정자 선사시대인들과 거리가 먼 것을 볼 수 있는 데, 오히려, Japanese와 Jpn_23andme의 두 일본인 집단이 제주도인보다 황하유역인에 유전적으로 더 가깝고, 경남, 경북, 전남은 거의 차이가 없이, 서울지역 사람보다 이도정자 선사시대인에 가깝다.  이도정자인은 홍산문화인과 달리, 지리적으로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황하유역 성분이 많기 때문에, 이들이 원래부터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과 유전적으로 유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이도정자인과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것은 이들 이도정자인의 후예들이 한반도로 대거 이주했고, 이들의 이주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열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한반도 토착인 성분이 많은 제주도인이 이들과 거리가 멀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그래프에서, 경북, 경남, 전남의 세 인구집단이 비록 절대값 |3|이 넘는 의미있는 차이는 아니지만, 수도권사람들과 상당한 차이로 이도정자인들과 유전적 성분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 이들이 연해주방면에서 동해안으로 온 것이 아니라, 서해쪽에서 왔기에, 전남지역이 미세하게 경북, 경남보다 이 성분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이도정자인과 유사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요동-한반도 서북부-중부-남부로 이어지는 육로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경로에 따라, 한반도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 요동에서 직접적으로 해로를 통하여, 충청도나 전북의 해안에 도착하여, 한반도에서 확장을 시작한 집단과 관계가 있지 않나하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송국리문화인이나 마한의 지배세력 등이 그 후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차후, 한반도의 서해안 유적들에서 고인골의 유전자가 데이타가 나온다면, 이러한 추정에 대한 확인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가점 하층 문화가 홍산문화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유적 둘레에 성을 쌓은 것이다. 하가점 하층 문화 유적에 나타나는 성곽 축조방식은 1)돌을 잘라서 쌓은 것, 2) 성문 밖에 방어를 위해서 또 하나의 옹문(瓮門)을 만드는 것, 3) 성벽에 마면(馬面) 이라 하여 삼면이 경사진 벽으로 튀어나온 망루를 만드는 것, 4) 성곽 내에 제사를 위한 제단이 있는 것 등 약간 앞선 시기인 4300년 전에 축조된 섬서성 신목현의 중국 내 선사시대 최대 규모의 성곽유적인 석묘유적과 유사한 점이 많으므로, 이 석묘유적의 성곽을 만든 이들과 하가점 하층 문화인들이 어떤 관계가 있을 거라는 견해도 있다(王禹浪, <东北古代民族筑城源流及文化特征述论> 2018). 석묘유적은 앙소문화가 북상하면서, 남하해 온 홍산문화인을 만나, 만든 해생불랑문화의 하나로 여겨지는 데, 이 점에서 하가점하층문화는 단순히 지역적으로만 홍산문화를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황하 중상류까지 진출했던 홍산문화의 후예들이 다른 문화와 융합한 후, 다시 돌아와 우회적으로 계승한 문화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가점하층문화가 같은 황하유역이라도 용산문화와 같은 중원지역이 아니라, 석묘문화와 같은 중원과는 다소 떨어진, 해생불랑문화의 영향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한국인에게도 비교적 높게 나타나는 황하유역 성분의 기원이 어디인지, 왜 석묘문화성분이 한반도 남부의 사람들에 높게 나타나는 지의 원인에 대해서, 보다 근접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즉, 석묘문화와 같은 황하유역 성분은 직접적으로 한반도에 도입된 것이 아니라, 하가점하층문화와 같이, 지역적으로 문화적으로 보다 근접한 중간 지점을 통해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가점하층문화의 발달된 축조술은 이후에, 중국 동북지방에 존재한 여러 민족들에 전해지는 데, 실제적으로, 잦은 이동으로 고정된 거주지나 인구가 집중된 도시가 없었던 유목이 주가 된 흉노, 선비, 실위 등의 민족들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기 어렵고, 반농반목의 예맥계통, 그리고 이후에 부여와 고구려가  하가점하층문화인의 성곽축조 전통을 이어갔다고 볼 수 있다.

 

약 4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이도정자 유적은 하가점 하층문화 유적들에서 일반적으로 돌로 석성을 쌓은 것과는 달리, 부여나 백제의 성과 같이, 판축기법으로 토성을 쌓고, 성곽둘레에는 환호를 만들었다.  집 자체도 흙을 이용해서 지었고, 이 흙으로 만든 집들과 성곽이 튼튼해서, 대부분 무너지지 않고, 도로나 가마터와 같은 다른 시설들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서, 중국에서는 급작스런 화산폭발로 화산재에 덮여서, 건축물등의 현장이 잘 보존된 이탈리아의 폼페이 유적과 비슷하다고 해서, ‘동방의 폼페이’라고도 불린다.

 

이처럼 흙을 이용해서 집을 짓고, 돌이나 흙으로 성을 쌓은 것에 능한 것은 황하유역 용산문화 시기의 여러 유적들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홍산문화에서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정착생활과 농경 위주의 경제 등의 생활양식과 새로운 기술들이 그저 문화전파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인구집단의 이주와 함께 했음을 상염색체 분석의 결과로 알 수 있다. 토기류에서는 한반도의 선사시대 유적에서는 보기 힘든 황하유역에서 기원하는 삼족기 등이 많이 보이는 데, 이것으로 볼 때, 이도정자인과 같은 하가점 하층문화인이 집단적으로 한반도로 곧바로 이주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 하가점하층 문화인들이 약 3300년 전 이 문화가 소멸된 이후, 새로운 유목경제 위주의 하가점 상층문화가 성립되기 전까지 약 300년의 공백이 있는 데, 이 기간 동안, 기후가 한랭하고 건조해져 농경이 어려운 요서지역을 떠나,  기후가 보다 온난하고, 농경에 적합한 요동지역으로 이동하였고, 이들이 한반도 서북부에 나타나는 미송리형 토기와 지석묘 등으로 대표되는 쌍방문화나  경남 진주 남강 일대에도 나타나는 각목돌대문토기, 석관묘를 남긴 마성자문화와 같은 한반도와 보다 연관성이 높은 집단에 합류한 후, 한반도로 이동했을 것이다.

 

    현대 한국인의  O2 3대 부계하플로의 연원

 

앞의 절에 나온 <홍산문화인의 부계하플로 구성비율문제>에서 잠깐 거론했던 문제, 즉, 현대 한국인에게서 홍산문화인과 달리 하플로 O그룹이 높게 나타나는 데, 그 중에 중국 한족에도 높은 비율로 나타나는 O2a(M324)의 3대 부계하플로가 어느 시기에 한반도로 왔는 지에 대해서, 보다 상세히 여기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동아시아에는 하플로 O그룹이 여러 인구집단에서 다수로 나타나고, 그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 한족에게서는 이 하플로 O 그룹 중에, O2a(M324) 아래의 하위하플로가 우세하고, 이 중에서 O2a1c(JST002611, 중국 한족 중에 약 15%), O2a2b1a1(M117, 중국 한족 중에 약 17%), O2a2b1a2(F444, 중국 한족 중에 약 12%), 이 세 개의 주요한 부계 하플로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O2a2b1(M134) 아래의 주요한 두 부계 하플로인 M117이나 F444 는 황하유역에서 기원한 것이 유력한 데, JST002611의 기원은 아직 분명하지 않은 데, 원래, 황하유역이 아닌, 양자강 중류의 팽두산(彭頭山)문화나 굴가령(屈家領)문화가 기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원이 어디든, 중국 전역에의 확장은 황하중류의 하남용산문화나 황하하류의 산동용산문화 혹은 이후의 이리두문화나 악석문화 등에 합류해서 이루어졌다고 보이므로, 여기서 광의의 황하유역으로 넣는다.

 

이들 O2의 3대 부계하플로는 한사군의 낙랑군이나, 한국 많은 가문의 족보에 나오는 대로 통일신라시기 8학사 등의 이주로 통해서, 한국인에 합류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한사군 이전의 기자조선을 한민족에 대한 중화의 식민화 시작으로 보는 중국인이 더 많으나, 기자조선의 실재에 부정적인 여러 견해가 나와 있고, 설사 실재했다고 하더라도 중국인들이 생각하듯 한반도 중남부에 자리잡은 국가는 아니라, 현재의 하북성지역 작은 방국이였을 가능성이 크므로, 여기서 고려하지 않는다.

 

중국의 중화주의자들 중에는 이러한 M117(한국인 KRGDB 중 10.2%), F444(한국인 KRGDB 중 8.9%) 나 JST002611(한국인 KRGDB 중 9.2%) 등 O2의 3대 부계하플로로 불리는 유형이 한국인에게도 10% 에 가까운 비율로 중국 한족과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을 근거로, 한국인은 중국 한족의 하위집단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적지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한족(漢族, 곧 원래는 인류학적 의미의 동일한 언어적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인구집단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漢나라의 백성이라는 의미)이라는 명칭이 시작되고, 춘추전국시대까지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정체성을 지닌 인구집단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진한통일 이후에 이주한 이들이 있다하더라도 개별적으로  들어온 소수이고, 한국인 O2a의 대부분은 화하족(동이,북적,서융,남만 등의 사이와 구별되는 중원의 민족, 곧 서주의 개창이후, 서주의 봉건질서에 편입된 지역의 사람들)이나 한족이 본격적으로 생성되기 이전에, 하가점하층문화인이나 후에 나오는 하가점상층문화인의 이동을 통해서 들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현대 한국인에 나타나는 M117이나 F444, JST002611의 하위하플로 유형이 중국 한족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 중국 한족의 M117은 그 아래 F438 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데 비해, 한국인은 F438과 평행한 여러 다른 하위 하플로들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나타난다. F444의 경우에도 한국인에는 중국 한족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F46 아래의 하위 하플로뿐만 아니라, Y30485나 전주 이씨 이성계 가문의 부계하플로로 추정되는 S24684가 속한 F743 등의 다양한 하플로유형이 나타난다. JST002611의 경우, 중국 한족의 경우는 F632아래 하위하플로가 대다수이나, 한국인의 경우에는 몽골족 등 북방민족에게 많이 나타나는 F2180 아래의 하위하플로가 다수이다(징기스칸의 부계하플로를 다룬 논문들에서는 거의 소개되지 않아,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23mofang에서 측정한 중국 내몽골자치구 황금가족 보르치긴씨 다수의 부계하플로는 F2180아래의 하위하플로이다). JST002611의 경우, 한국인과 일본인의 경우, F11 아래 기존의 하위하플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유형도 나타나는 데, 이들의 존재로 볼 때, JST002611의 일부 하위하플로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의 조상들에 합류한 시기는 M134 아래의 두 하위 하플로 M117이나 F444보다 오래된 신석기 시대 이미 한반도에 존재하였거나, M134가 합류한 것과는 다른 루트(양자강 하류지역에서 직접적으로 도해?)를 통해 진입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한사군 이후에, 화하족의 이주를 통해서, M117이나 F444, JST002611등이 유입되었다면, 그 기원지에서 멀리 떨어진 한반도에는 화하족에 주로 나타나는 F438이나 F46, F632 아래의 하위하플로가 다수여야 하나, 그렇지 않고, 인구가 20배 이상 많은 중국 한족과 유사하게 M117이나 F444, JST002611의 여러 다양한 하위 하플로 유형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한국인에게서의 이 3대 부계하플로는 중국 한족에서 분기한 하위 집단이 아니라, 중국 한족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이전에 이미 분리된 집단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앞서 언급했듯이, 홍산문화 우하량유적의 최고급 대묘에서 이미 M117이 보인 것을 볼 때, 한국인의 O2a2b1(M134)는 홍산문화 시기 이미 요서지역에 존재한 이들이 더 이른 시기에 한반도에 진입하였을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황하유역에서 보다 많은 이주민들이 합류한 하가점하층문화인들이 주류가 되어, 한반도로 진입하였을 것이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사실은, 은왕조가 무너지고, 서주가 건국된 기원전 10세기 이래로, 중국에서 가장 널리 확장한 부계하플로인O1a1a1a1a1a1(F492)의 현대 한국인 집단에서의 비율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부계하플로 측정은 이미  20년 전에 시작되었으나, PCR기법에 의한 매우 한정된 수의 SNP에 대한 측정이 주가 되었고, 2010년대 이후로 Y염색체에 대한 전장유전체 분석(full sequencing) 이 보편화됨으로써, 비로소 부계하플로에 대한 여러 하위하플로 유형에 대한 전면적인 탐색이 가능하게 되었다.

 

각 부계 하플로 그룹의 하위하플로 유형에 대한 전면적인 탐색으로 밝혀진 중국인의 부계하플로 연구에서 밝혀진 주목할만한 사실은, 현대 중국 한족에게서 다수인 주요 세 부계하플로 그룹인 황하유역에서 유래한 M117이나 F444 혹은 동이(東夷)로 불리는 산동성이나 강소성지역의 확장중심이라 생각된 JST002611의 하위하플로들이, 화하족이 본격적으로 확장을 시작한 서주시기(B.C.10세기 즈음) 이후에 가장 널리 확장한 부계하플로가 아니라, 의외로 양자강 하류 백월(百越)족의 부계하플로 여겨진 O1a아래의 F492(TMRCA를 3,300년 전 정도 본다)가 가장 맹렬한 확장을 한 부계하플로이라는 것이다.  

 

M117, F444, JST002611의 주요 하위하플로들은 서주(西周)의 개국 휠씬 이전인 홍산문화, 앙소문화, 용산문화, 대문구문화 등의 신석기시대 농경 위주의 경제 확산과 더불어, 이미 확장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M117, F444, JST002611이 한족이 아닌 타민족들에게 나타나거나, 한족과 비슷한 비율로 보여도, 그것이 이전에 일반적으로 해석하듯이, 중국 한족이 진한시대 이래로, 소수민족 지역에 정치적 군사적으로 활발히 진출한 결과라 할 수 없고, 신석기시대에 화하족의 조상에게서와 비슷하게, 농경의 확장과 더불어 나타난 부계하플로의 확장이고, 각 하플로별로 10%에 가까운 비율은 신석기 말기에 동아시아 각지로 확산되기 전의 인구집단에서의 비율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F492에 대한 이러한  분석이 나온 이후에, F492가 자신의 부계하플로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F492는 양자강 하류의 백월(百越)이 아니라, 화하족의 기원인 황하유역이 기원지로서, 서주왕조의 부계하플로가 곧 F492라고 주장하고 있고, 현재도  F492의 기원이나 서주왕조의 부계하플로를 둘러싸고, 중국에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화하족이 기원한 앙소문화나 용산문화에 속하는 유적에서 2018년부터 제법 많은 고인골에 대한 부계하플로 측정 결과가 나오고 있으나, 아직까지 F492은 이 중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고, 서주왕조의 방계로 알려진 려국(驪國)의 고분에서 출토된 고인골 부계하플로는 N으로 밝혀졌다.

 

그러므로, 현재까지의 증거로 볼 때는 현대 중국 한족에서 F492의 빈도가 가장 높은 양자강 하류의 절강성(14%)과 강소성(9%) 등이 여전히 F492이 확장을 시작한 지점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현대 중국 한족이 북방에 위치한 산서성 한족이나 동북3성 한족 등을 고려해도 한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 상염색체상에서 남방쪽으로 치우치는 것으로 나오는 데, 현대 중국 한족과 한국인 및 일본인의 부계 하플로 구성비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는 것이 O1a(M119), 특히 F492의 구성비이므로, 양자강 하류 남방에서 유래한 F492와 같은 부계하플로의 확장이 상염색체상에서도 일정한 작용을 했으리라고 본다.

 

이 F492는 한국인에게서는 가장 많은 샘플이 모이고, 하위하플로그룹의 비율까지 알 수 있는 KRGDB 데이타에서 0.14%로 나타나는 데, 이는 한반도에 인접한 길림성 한족(3.1%)이나 요령성 한족(2.7%)에 비해서도 현저히 적은 극히 소수라 할 수 있다. F492을 일부에서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인 월나라왕  구천의 부계하플로라 하는 데, 이것의 사실여부와는 별도로,  F492는 춘추시대말부터 월나라의 황해 연안과 양자강하류유역에서, 그리고 산동성을 기점으로 중국 북부로, 초나라와의 통합 후에는 양자강 중상류의 내륙으로,  진한통일 후에는 중국전역으로 확장했을 것이다. 월나라는 경쟁관계였던 오나라를 멸망시킨 이후, 세력을 급격히 확장하여, 후에는 산동성남부지역까지 차지하였고, 수도도 한때는 현재 산동성 지역인 낭야에 두었고, 월왕 구천은 춘추시대 최후의 패자(覇者)로 여러 제후들 위에 군림했다. 이 시기 월나라의 이러한 세력 확장이 F492가 양자강유역과 황해안을 따라 산동성지역까지 확장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나, 본격적인 중국 전역에의 확장은 진한시대가 되어서야 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추정의 근거는, 전국시대 말기에 가장 넓은 영토를 거느리고, 가장 생산력이 높은 지역을 차지한 국가가 양자강 하류가 근거지였던 월나라까지 정복한 초나라이고, 진한통일 이후에 각지에서 병사를 징발하여, 한 무제시기의 활발히 행해진 정복전쟁 등에 파견할 시, 이 초나라 출신이 가장 높은 비율이었을 것이다. 한왕조가 아직 개창하기 전이지만, 유방의 군사들이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를 불러 항우 군사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사면초가(四面楚歌) 고사는 그 만큼 군대 내에 초나라 병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진나라에 대한 반란을 일으켜서, 천하의 쟁패를 놓고, 경쟁한 두 영웅, 항우와 유방의 출신지도 초나라로서, 한왕조를 건립한 유방은 현재의 강소성 서주인 패현(沛縣) 출신으로서, 고향에서부터 출발하여, 같이 반란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후에 공신이 되어, 높은 지위를 누리고, 널리 부계하플로를 확장할 수 있었을 것인데, 이 중에는  F492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F492이 약 3000년 전 화하족이 역사에 주역으로 등장한 서주 시대 이래의 가장 폭발적으로 확장한 부계 하플로라면, 통일된 한제국에서 대략 2000년 전 이래로 중국 한족의 확장과 가장 연관된 부계 하플로는 바로 한고조 유방 본인 가계의 부계 하플로일 것이다. 현재 한고조 유방의 부계M117-F438-F155아래의 F813이 유력하다고 추정한다.  중국 유전자회사 23Mofang에 의하면 F155는 중국 한족 중에 약 2%로, F813은 그 중 절반이상의 비율을 차지한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 걸쳐, 사서에 거의 흔적이 없었던 중국 劉씨는 유방의 등장과 더불어 진한대 이후에야 역사에 나타나, 현재는 李,王,張,劉,陳의 중국 5대 성씨 중 하나가 되었고, 중국인 중 그 비율이 5%에 달하는 대성으로,  다른 여러 부계하플로그룹에 다양하게 퍼져 있지만, 특히 F813중에 류씨의 비율이 20%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의 KRGDB에 F155는 0.14%, F813은 0%로 검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반도에 진한시기 이후, 한족이 널리 확장되었다면, 이 시기에 맹렬히 확장한 F492과 F813이 같이 포함되어 있어야 할 것이나, 현대 한국인에 이 화하족과 한족을 대표하는 하플로는 극히 낮게 나타난다. 이 사실과 앞서 거론한 3대 부계 하플로의 하위하플로 비율에서의 차이가 나는 것을 볼 때,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중국 한족과 공통된 부계하플로들은 진한시기 이후에 확장한 결과라기 보다는 그 이전 시대에 확장한 그룹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그 주요한 원천은 황하유역 이주민의 영향이 명확한 하가점하층문화인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cafe.daum.net/molanthro/I4qd/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