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환기9217해,신시배달5917해 단기 4353해,서기 2020해, 대한민국 101해(나뉨 72해),

수가리패총(釜山 水佳里貝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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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국시대/고고학

2020. 10. 9.

수가리패총(釜山 水佳里貝塚)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가동 일대에 있는 패총으로, 김해시 장유면과 부산광역시 강서구의 행정구역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위치한다. 발굴 당시 수가리패총의 소재지는 경상남도 김해군 장유면 수가리 가동마을이었으나 부산경남공동경마장이 건립되면서 행정구역이 변경되어 현재는 행정구역상 ‘부산광역시 범방동 가동패총’으로 유적명칭도 변경되었다. 그러나 수가리패총은 학사적으로 정착된 유적명이기 때문에 그대로 ‘수가리패총’으로 사용한다.

 

유적은 태백산맥의 남쪽 자락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지맥의 동북쪽 말단에 입지하는데 동쪽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북쪽으로 낙동강의 상류에서 밀려온 토사가 퇴적되어 형성된 김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즉, 해발 242.5m인 금병산의 북쪽사면과 김해평야가 분포하는 충적지가 맞닿아 있는 곳에 유적이 형성되었다. 유적 동북쪽에는 부산 북정패총과 죽림동유적이, 북서쪽에는 김해 화목동유적이 위치한다. 그리고 남쪽으로 1㎞ 떨어진 곳에 부산 범방패총이 금병산의 남사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릉 주변에는 범방동 사구패총, 녹산동 세산유적 등이 분포한다.

 

현재 산쪽으로 이어지는 남측은 민가의 계단상 논밭으로 이용되고 있고, 북측에는 낙동강 삼각주의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후 개간된 김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지금은 부산?마산간 고속도로가 건설되어 유적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일부만 잔존해 있다. 수가리패총은 1970년대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남해안지역 선사유적 지표조사에서 확인되었고, 부산?마산간 고속도로의 예정부지에 위치하여 파괴의 위험에 처하자 1978년과 1979년 2차에 걸쳐 구제발굴을 실시하였다. 유적 일대는 가옥들과 계단식 논밭으로 이용되고 있어 패각층이 지표면에 드러난 상태였다. 5개의 패총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고 도로면에 면하여 동쪽부터 차례로 1구부터 5구까지 명명하였다. 1차 발굴 시에 1·2·4·5구의 조사는 완료하였지만, 3구는 남쪽에 들어서 있던 가옥으로 인해 전부 조사하지 못하고 2차 조사 시에 발굴을 종료할 수 있었다.

 

1구패총은 도로 가까이의 넓은 대지상에 형성되어 있는데 파괴와 교란이 극심하였고, 2구패총은 1구패총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의 가, 나, 다 지점으로 나뉘어 조사되었으며, 다지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파괴되었다. 3구패총은 2구패총에서 서쪽으로 약 2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5개의 패총 중 잔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조사 시 도로에 가까운 낮은 곳을 나지점, 높은 곳을 가지점으로 구분하였다. 4구패총은 3구패총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떨어져 있는데, 도로면에서 10m 정도 높은 대지상의 경작지에 위치한다. 마지막으로 5구패총은 4구패총에서 서쪽으로 약 20m 떨어져 있다.

 

모든 지구에서 신석기시대 패총이 확인되었으며 5구에는 삼한시대 이후의 패총도 잔존하고 있었다. 신석기시대 패총은 3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구들에서는 파괴가 심해 패총의 잔존상태가 양호하지 못하고 유물도 그다지 풍부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3구패총은 넓은 범위에 걸쳐 패층이 비교적 두텁게 남아 있었으며 깊은 곳은 2.5m 정도 남아 있었다. 발굴범위에 2.5×2.5m의 피트를 39개, 트렌치 2개를 설치하여 조사하였는데 유적 북쪽에 있는 나지점과 남쪽의 가지점 사이에 골짜기상의 지형을 이루고 이 부분에 패층이 집중적으로 퇴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각 부식토 상층에서 목탄이나 불 맞은 돌이 둘러진 노지시설들이 확인되고, 부식토층에서 출토된 유물량이 패각층보다 2배 정도 많아 각 부식토층이 생활면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지는 3구패총에서 1기, 4구패총에서 2기 그리고 5구패총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3구패총의 노지는 직경 1.5m 규모의 원형으로 10㎝ 내외의 할석이 둘러져 있고, 일부는 깔려 있다. 돌들은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불에 탄 흔적들이 나타나며 목탄편도 검출되었다. 주변으로 직경 2.4∼3m 정도 일정간격을 두고 기둥구멍으로 생각되는 구멍이 10개가 확인되었는데 길이 4∼29㎝로 일률적이지는 않다. 4구패총에서는 직경 20∼30㎝의 돌 7개를 원형으로 돌린 것과 직경 0.74m, 깊이 0.2m의 원형 수혈을 파고 주변에 일부 돌을 놓아 설치한 것 2기가 확인되었는데 노지 내에 소토나 목탄, 그리고 돌이 불 맞은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노지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5구패총에서도 직경 약 0.7m로 주변에 돌을 원형으로 돌려 설치하고 노지 내부에 불탄 흔적과 함께 목탄이 나타나는 것과 이미 많이 교란되어 직경 0.9m 정도에 큰 돌과 작은 돌들이 정형성 없이 몇 개가 남아있고 그 내부에 황갈색을 띠는 소토와 목탄이 확인되는 것 등 2기가 확인되었다.

 

층위는 부식토층(Ⅱ·Ⅳ·Ⅵ층)과 패각층(Ⅰ·Ⅲ·Ⅴ)이 교대로 퇴적되어 6개층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유물의 출토양상으로 보아 Ⅰ·Ⅱ층(3문화층), Ⅲ·Ⅳ층(2문화층), Ⅴ·Ⅵ층(1문화층)으로 구분하였다. 특히 토기의 문양형태와 문양대 구성, 시문수법, 기형을 기준으로 하였다.

 

1문화층은 붉은간토기, 석기, 토제품, 골각기와 함께 문양형태는 압인단사선문, 삼각집선문, 구획집선문, 능형집선문, 방형집선문, 사격자문, 횡주어골문, 자돌점열문 등이 상호 결합되어 나타나는 복합문, 혹은 단독문형태로 시문된 태선침선문계의 전면시문토기를 특징으로 하여 설정된 수가리Ⅰ식토기가 주로 출토되었다. 저부는 환저, 첨저, 평저 모두 출토되어 신석기시대 중기의 다양한 기형을 보여준다. 그 외 사슴과와 멧돼지, 돌고래 등의 짐승뼈와 매가오리, 졸복, 농어, 도미과, 재첩, 굴, 조개 등의 자연유물이 확인되었다.

 

2문화층은 수가리Ⅰ식의 태선침선문이 퇴화·단순화되고, 문양대가 축소 및 간략화되는 것이 특징인 퇴화침선문토기인 수가리Ⅱ식토기가 주를 이루는 후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수가리Ⅱ식이 매우 소량의 자료를 바탕으로 설정됨으로써 형식의 제속성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석기로는 지석과 갈돌, 갈판이 출토되었고, 골각기로는 찌르개와 조개팔찌가 있다. 1문화층 출토의 짐승뼈 외에 오소리, 살쾡이, 너구리 등과 가오리, 대구, 감성돔 등의 생선뼈, 바지락, 피불 고둥, 홍합, 동죽 등의 조개껍질이 출토되었다.

 

3문화층은 침선문기법이 거의 사라지고 새롭게 이중구연, 단사선문토기가 성행하는 말기에 해당된다. 마제석부와 석착(石鑿), 흑요석제 석촉, 어망추, 방추차 등이 출토되었으며, 짐승뼈로는 멧돼지와 사슴과 외에 너구리, 오소리, 곰 등과 더불어 꿩이나 새뼈도 확인되었다.

 

수가리패총은 심한 중층관계가 확인되지 않고 층위별 유물 변화가 뚜렷하고 일정한 시간차를 반영하고 있어 층위별 유물분석을 통해 수가리Ⅰ식토기, 수가리Ⅱ식토기, 수가리Ⅲ식토기를 설정하고, 각각 신석기시대 중기·후기·말기로 위치시켜 부산 동삼동패총과 함께 남해안지역의 신석기시대 기본 토기편년망을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그 학사적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패총 중의 패각마모층을 확인하고 이를 해변형성과 관련시켜 신석기시대의 기온상승 및 해수면변동을 제기하여 당시에 미진하였던 고지형복원에 대한 자료제시와 분석은 특히 특기할 만하다.

 

최근 신석기시대 유적 발굴 예가 증가하면서 수가리Ⅰ식에 전기 유물이 혼재되었다는 견해, 수가리Ⅱ식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 그리고 수가리Ⅱ식과 경상남도 내륙의 봉계리식토기와의 관계, 수가리Ⅲ식의 세분경향 등 수가리패총을 둘러싼 새로운 이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유적의 연대는 세분된 토기편년 작업 외에 각 문화층에서 확인된 방사성탄소연대가 있는데, 1문화층은 기원전 3350∼2700년·기원전 3320∼2780년·기원전 3020∼2490년, 2문화층은 기원전 3030년∼2610년·기원전 2910∼2490년이며, 3문화층은 기원전 1740∼1420년·기원전 1440∼1030년으로 절대연대가 측정되었다. 2문화층과 3문화층 사이에 1300년이라는 공백기간이 확인된다.

 

이 세 문화기는 각각 남부 지방 빗살무늬토기문화의 중기·후기·말기에 해당되며 이 유적은 남부지방 빗살무늬토기 편년연구에 지표가 되는 중요한 유적이다.(안성희)

 

 

참고문헌

김해 수가리패총Ⅰ(부산대학교박물관, 1981), 한반도 남부지역 즐문토기연구(하인수, 민족문화, 2006), 수가리패총Ⅱ(부산대학교박물관, 2011)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신석기시대편)

 

출처;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