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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東海岸地域의 新石器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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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시대/고고학

2020. 10. 9.

동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東海岸地域의 新石器文化)

 

동해안지역은 강원도 영동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북쪽으로는 동·북지역과 남쪽으로는 동·남해안으로 연결된다. 태백산맥에서 급경사를 이루며 발원한 하천이 바닷가와 만나는 입구에는 사구(砂丘)지대와 습지가 발달하였다. 호수의 입구가 막혀 석호(潟湖)가 형성되는데 신석기시대 유적은 주로 이러한 사구지대에서 확인되고 있다.

 

동해안지역의 신석기시대 문화는 해안 사구지대에 입지하여 어로활동을 통한 식량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를 기반으로 다른 지역에 비하여 이른 시기부터 마을을 형성하고 사구지대라는 지형에 맞는 주거양식을 발전시켰다.

 

동해안지역 신석기문화는 아직 불투명한 점도 없지 않으나 중부 동해안의 양양 오산리·지경리, 고성 문암리, 강릉 초당동 유적 등의 발굴조사로 변천과정과 성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크게 4기로 구분이 가능하다. 조기(早期), 전기(前期), 중기(中期), 후기(後期)로 나눌 수 있으나 전기 단계의 유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기 전반 단계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양양 오산리 C지구 최하층과 동해 망상동유적을 들 수 있다. 두 유적은 모두 고토양층 상면에서 조사되어 동해안에서 사구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전인 초기 사구가 형성되는 시기로 판단된다.

 

주거지는 오산리 C지구 1·2호의 경우 가운데 양쪽에 냇돌로 막음한 노지가 부설된 지름 3m의 소형의 원형주거지가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무문양토기와 적색압날 점열구획문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발형평저토기가 있다. 무문양토기는 저부가 작고 동체부가 큰 형태이며, 적색압날점열구획문토기는 20㎝ 미만의 소형토기가 대부분이다. 적색압날점열구획문토기는 구연부 아래에 방형 또는 삼각형을 구획하고 그 안에 방향을 달리하여 압날문을 시문하였다. 이러한 시문기법이나 문양의 모티브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찾기 어려운 문양형태이다. 석기류는 좀돌날몸돌과 좀돌날이 출토되어 후기 구석기의 석기제작 전통이 이어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잘 마연된 석부, 석촉, 끌 등의 마제석기와 수정제 석기 등의 타제석기를 혼용하여 사용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조기의 마제석기들은 모두 매끈하게 마연하였고, 구멍을 뚫는 기법도 매우 발전되었다. 특히 결합식조침은 이후 시기에 비하여 크기가 작고 축이 굽은 ‘C’자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우리나라 결합식조침의 형태변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토제품으로는 아무르 강 유역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많이 출토되는 곰토우가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의 조기 신석기시대 유적과 관련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앞으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시기의 연대는 오산리 C지구 최하층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6010년경으로 확인되었다.

 

조기 후반 단계는 양양 오산리 A·B·C지구, 고성 문암리, 양양 용호리 유적 등이 있다. 이 유적은 조기 전반 단계의 유적에 비해 사구가 일정 부분 형성된 후 그 위에 입지한다. 이 시기의 주거지는 오산리식토기가 출토되는 오산리 A지구와 융기문토기가 출토되는 오산리 C지구 주거지로 나눌 수 있으며, 형태·수혈여부·내부시설 등에서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오산리식토기가 출토되는 주거지는 지상식 주거지로 평면 원형이나 타원형이며 지상식노지가 부설되어 있는데 반해 융기문토기가 출토되는 주거지는 수혈식 주거지이며 평면 방형계가 주류를 이루며 수혈식노지가 부설되어 있다. 조기 후반대의 평저토기는 크게 오산리식토기와 융기문토기로 구분된다. 오산리식토기는 오산리 A·C지구와 문암리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반하여, 융기문토기는 문암리, 오산리 A·B·C지구, 양양 용호리, 강릉 초당동, 강릉 안현동, 울진 죽변 유적 등 동해안 곳곳에서 출토되고 있다. 토기의 선후관계는 오산리 C지구와 문암리 유적의 층위관계로 보아 오산리식토기가 선행한다. 시기는 오산리 A·B지구와 문암리 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자료로 보아 기원전 5200∼4600년 전후로 추정된다.

 

중기 단계는 양양 가평리·송전리·용호리, 강릉 지경리·초당동·안인리·안현동·하시동 유적 등이 있다. 이 유적들은 석호나 사구지대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조기와 유사하나 사구의 성장으로 위치가 달라진 점에서 약간 다른 양상을 보인다. 중기에 해당하는 주거지는 모두 20여 기이나, 주거지 간에 규칙적이거나 인위적 공간형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주거지의 형태는 말각방형, 장방형, 원형 등이 있으며 원형주거지가 많은 편이다. 화덕은 모두 주거지 가운데에 마련하였으며, 형태는 방형, 타원형, 원형, 장타원형, 장방형 등이 있다. 조기의 화덕자리가 크고 수혈식이 많은데 비하여, 중기에 접어들면서 좀 더 간단한 형태로 축조하는 양상을 보인다. 가장 많이 만든 원형주거지의 평균면적은 19.5㎡이며, 방형이나 말각장방형 주거지는 55.6㎡이다. 원형 주거지는 주로 소형이며, 말각방형 주거지는 대형이 주류를 이룬다. 동해안 신석기시대는 조기의 마지막 시기가 확인된 오산리유적 C지구의 융기문토기 이후 약 1000년 간의 공백 기간이 있은 후 중기 유적이 확인된다. 동해안지역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토기는 조기까지는 동북지방 및 동북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압날문계와 평저토기만 출토되나, 중기에서부터는 조기와 명확하게 구별되는 중서부지방의 영향을 받은 구분문계 첨저 반란형의 침선문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동해안지역의 중기 단계에는 집선문계의 동남부지방 토기보다는 중서부지방의 구분문계토기가 더 이른 시기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서부지방의 구분문계 토기는 중기의 전시기에 걸쳐 대부분의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으나 동·남부지방의 구분집선문계토기(수가리Ⅰ식토기)는 중서부지방 토기에 비하여 출토 수량이 적은 편이다.

 

중기의 토기는 지경리유적의 층위관계와 방사성탄소연대측정치로 보아 구분문계토기의 지경리Ⅰ기와 구분집선문계토기(태선침선문계토기)Ⅱ기로 구분할 수 있다. 중서부지방의 영향을 받은 지경리Ⅰ기토기는, 소위 구분문계의 첨저 반란형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이 토기들은 중서부 지방의 전형적인 토기로서 형태뿐 아니라 토기의 문양 역시 구연부에 단사선문을 시문하고 그 밑에 종속문으로 삼각집선문, 3∼4줄의 밀집사선, 능형집선문(菱形集線文), 제형집선문(梯形集線文), 대향어골문(對向魚骨文) 등이, 동부(胴部)문양으로 횡주어골문(橫走魚骨文), 저부에는 횡주어골문, 방사선문 등이 시문된다. 구분문계토기라는 점에서는 서울 암사동 등 중·서부지방의 토기 전통을 반영하고 있으나, 구연부의 단사선문열의 수가 많은 편이고 종속문의 경우에도 문양의 종류가 7∼8종이 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집선문(斜集線文)으로 구성된다는 것과 중서부토기의 파상문(波狀文), 중호문(重弧文), 타래문 등 점열곡선계문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역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동·남부지방의 영향을 받은 지경리Ⅱ기의 태선침선문계토기는 동체 상부에 삼각집선문, 능형집선문, 제형집선문, 사격자문 등이 시문되고 동부에는 횡주어골문이 시문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지경리Ⅱ기 토기는 송전리유적 1호주거지에서 출현하기 시작하여 지경리유적 6호주거지, 초당동유적 단계에서 가장 발달되고 후기 유적인 강릉 지변동유적의 단계에는 퇴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기 유적의 석기는 석촉류, 어망추, 석부, 석도, 공이, 갈돌, 갈판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며, 이 중 어망추와 화살촉 등 수렵과 어로용 도구가 70% 이상을 차지한다. 채집·가공용 석기가 20%, 공구용 석기는 10%의 비율을 차지한다. 경작도구나 굴지용 석기는 드물게 조사되어 투망어로를 통한 물고기잡이와 도토리 등의 견과류 채집이 생계의 주요 수단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조기 단계의 특징적인 결합식조침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어망추는 어느 유적에서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점은 중기 유적의 성격을 반영해 주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시기는 크게 기원전 3600∼3000년 사이에 편년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후기 단계는 이전 시기에 비하여 관련 자료가 적은 편이다. 철통리유적과 지변동, 장덕리, 송림리 유적 등이 대표적인데, 이 유적들은 호수 주변의 해발 20∼50m의 구릉에 위치하며, 조·중기 유적이 사구지대에 입지하는 것과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철통리유적의 주거지는 남북으로 뻗은 구릉의 평탄한 지점에 능선을 따라 주거지 7기를 열상으로 배치하였다. 1호주거지만 북쪽 25m 떨어져 있을 뿐 나머지 주거지는 2∼5m 거리로 규칙적인 배치 상태를 보인다. 주거의 크기는 평균 18.1㎡로 중기의 원형 주거지(19.5㎡)와 비슷하나, 전기의 방형 주거지보다는 다소 축소된 모습을 보인다. 철통리유적에서는 출토 유물이 많지 않아 전체적으로 양상은 자세하지 않으나, 구연부에만 시문된 단사선문과 횡주어골문이 시문된 토기가 출토되고 있으며, 동·남해안지방의 특징적인 태선문계토기는 출토되지 않는다. 철통리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가 기원전 2920∼2870년으로 기존에 토기로 편년된 시기와 비슷한 측정치를 보이고 있어 사구지대에서 구릉지로의 이주시기를 가늠하게 해주는 자료로 판단된다.

 

동해안지역의 신석기시대는 오산리유적의 층위와 여러 유적에서 확인된 방사성탄소연대 자료를 종합적으로 참고할 때 조기 전반대의 무문양토기문화·적색압날구획문토기문화→조기 후반대의 오산리식토기문화·융기문토기문화→전기(?)→중기의 구분문계토기문화·구연집선문계토기문화→후기의 집선문퇴화기토기문화로 변천해 간 것으로 추정된다.(고동순)

 

참고문헌

오산리유적Ⅱ·Ⅲ(서울대학교박물관, 1984·1988),

양양 지경리주거지(강릉대학교박물관, 2002),

고성 문암리유적(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한반도 신석기시대 지역문화론(동삼동패총전시관, 2009),

양양 오산리유적(예맥문화재연구원, 2010)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신석기시대편)

 

출처;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