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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南海岸地域의 新石器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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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시대/고고학

2020. 10. 9.

남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南海岸地域의 新石器文化)

 

남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 연구는 1920∼1930년대 일본인 학자들의 연구활동과 부산 암남동·동삼동·영선동·다대포 패총과 울주 신암리유적 등 해안지역의 유적 조사를 계기로 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일찍 시작되었다. 그 이후 1960년대에 이루어진 동삼동패총 발굴을 통해 일제강점기 이후 불투명했던 신석기시대 변천과정과 문화 양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산 수가리패총을 비롯하여 통영 연대도·욕지도·상노대도·산등·부산 범방 패총의 발굴조사로 기존의 신석기문화상을 재조명할 수 있는 많은 신자료가 확인되었으며, 특히 1990년대 이루어진 동삼동패총의 재조사와 범방유적, 하동 목도패총, 부산 가덕도 장항, 창녕 비봉리 유적 등의 발굴은 남해안지역 신석기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남해안지역은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인 자연·환경적 요인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신석기유적과 유물들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유적은 생존과 생업활동에 유리한 입지적 조건을 갖춘 해안지대나 도서지역, 큰 하천의 내만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남해안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유적의 분포밀도가 높고 규모가 큰 것은 정주생활과 생업활동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 주는 자연환경과 생태학적 조건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현재까지 발굴조사 된 유적과 지표조사 그리고 미발표된 자료를 포함하면 유적 수는 200여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최근까지 이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은 패총, 주거지, 무덤, 야외 생활지, 산상유적(山上遺蹟) 등이 있다. 패총은 이 지역에서 일찍부터 조사·연구되어 온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고, 실제로 신석기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변천과정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문화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동삼동패총을 비롯한 부산 조도·금곡동 율리·수가리·범방·북정·진해 안골포·통영 연대도·욕지도·산등·상노대도·하동 목도·완도 여서도·여수 안도 패총이 있다. 물론 이들 유적 중에는 순수 패총도 있으나, 동삼동, 가덕도 장항, 범방, 연대도, 목도 패총같이 주거지나, 무덤 등이 혼재해 있는 복합유적도 있다.

 

주거유적은 단독으로 조사된 것은 거의 없고, 동삼동이나 목도패총의 예와 같이 패총의 문화층 속에 포함되어 있거나, 금곡동 율리패총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패총과 주거 공간이 함께 공존하기도 한다. 무덤유적으로는 범방, 산등, 안도, 가덕도 장항유적에서 확인된 토광묘와 연대도와 욕지도 패총에서 조사된 적석 토광묘, 동삼동패총의 최하층인 융기문토기 문화층에서 검출된 옹관묘 등이 있다.

 

야외 생활지는 거주에 필요한 주거시설은 확인되지 않고 노지 등 생활시설만 남아 있는 유적인데, 대표적인 유적은 범방과 가덕도 장항 유적이다. 이들 유적은 당시 해안가에 형성되어 있으며, 주거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음식물을 조리한 원형 노지와 집석유구가 다량 검출되었다.

 

산상유적은 유구가 확인되지 않고 지석과 석부류만 출토되어 성격이 명확하지 않은 면도 있으나, 주변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산상의 고지에 유적이 입지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부산 다대포 봉화산유적이 있다. 그 밖에 한시적인 생업활동의 흔적으로 생각되는 목도패총과 정식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부산 가덕도의 외양포패총이 있다. 남해안지역에 언제부터 신석기인이 정주하고, 바다를 생존기반으로 하여 생업활동을 전개하였는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제주 고산리유적의 사례로 보아 이른 시기부터 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생업활동을 전개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해안지역의 즐문토기문화는 일반적으로 융기문토기를 표지로 하는 조기(기원전 6000∼4500), 자돌·압인문토기(영선동식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전기(기원전 4500∼3500), 태선침선문토기(수가리Ⅰ식토기)의 중기(기원전 3500∼2500), 퇴화된 태선침선문토기(수가리Ⅱ식토기)와 봉계리식토기가 성행하는 후기(기원전 2500∼2000), 마지막으로 침선문 기법이 거의 사라지고 새로이 이중구연 및 단사선문 등이 유행하는 말기(기원전 2000∼1500)의 5단계로 나누어지며, 고산리식토기를 초창기(기원전 10,000년 전후)로 포함한다면 6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남해안지역은 후빙기에 접어들면서 동·식물상이나 자연환경, 생태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특히 약 120,000년 전에 시작된 최종 빙하기가 12,000년경에 끝이 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신석기인들은 생존을 위해 수렵과 어로, 농경, 채집, 의례, 교역활동 등을 통해 생업 영역의 확대와 형태를 다양화하고 생활양식을 개선하게 된다.

 

어로활동은 신석기시대 다양한 생업유형 중의 하나이지만, 특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남해안지역에서는 신석기 전 기간을 통해 주요 생업기반으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동삼동·범방·연대도·욕지도 패총에서 출토된 각종 어패류와 고래, 물개 등 해수류 유존체, 그리고 이들을 포획하는데 사용된 다양한 어구는 이 지역 어로활동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로활동은 크게 작살업, 낚시업, 어망업, 그리고 패류채취업으로 구분되며, 이중 작살업과 낚시업은 외양성어로를, 어망업과 패류채취는 내만성어로를 보여준다.

 

남해안지역의 패총에서는 도미, 농어, 돔, 방어, 참치, 대구, 정어리, 상어, 가오리, 숭어 등의 물고기뼈와 고래, 돌고래, 물개, 강치, 바다사자 등의 해양포유류 뼈도 다량 출토되고 있다. 이들을 잡기 위해 먼 바다까지 진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형 어종을 포획하기 위해 동삼동과 범방 패총 등 여러 유적에서 출토되는 결합식낚싯바늘이나 작살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어로작업에는 각종 작살이나 창, 그물 등을 이용하였다.

 

수렵은 인간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뼈나 뿔, 이빨, 가죽 등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용구를 만드는 재료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구석기시대 이래 여전히 생업활동의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수렵은 신석기인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는 식료원일 뿐 아니라 뿔과 뼈는 바늘, 작살, 낚싯바늘, 괭이, 송곳, 첨두기 등 다양한 형태의 골각기와 장신구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동삼동·수가리·연대도 패총 등 남해안의 여러 유적에서 호랑이, 곰, 사슴, 멧돼지, 고라니, 노루, 오소리, 너구리, 살쾡이, 수달, 개 등 다양한 동물유존체가 출토되고 있지만, 이 가운데 사슴과 동물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보아 이들이 수렵의 주요 대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렵도구와 수렵방법은 다양했을 것으로 생각되나, 먼 거리에서도 사냥을 할 수 있는 활과 화살, 근거리용인 창 등이 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다양한 형식의 화살촉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활을 이용한 수렵이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해안지역에 거주한 즐문토기인에게 있어서 채집 역시 수렵, 어로와 함께 생업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식물자료는 유존하기 힘들어 고고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예는 적지만, 굴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에서 채집 가능한 도토리나 가래 등의 견과류가 울산 세죽·합천 봉계리·창녕 비봉리 유적 등지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해안 지역민들이 거주지 주변에 펼쳐진 산야에서 다양한 식용식물을 식량자원으로 채집하여 이용하였음을 보여준다. 식물을 채집하거나 열매를 딸 때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지 않지만 식물의 뿌리를 채집하는데에는 타제석부류가 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석기시대는 기본적으로 수렵, 어로, 채집활동을 주요 생업경제로 하는 사회로 이해되어 왔으나 봉산 지탑리유적에서 탄화곡물이 발견된 이래 인천 중산동, 시흥 능곡동, 진주 상촌리, 동삼동, 비봉리 유적 등에서 조, 기장의 탄화곡물이 검출됨에 따라 적어도 신석기 중기 단계에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조와 기장을 중심으로 하는 밭농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동삼동패총의 융기문토기에서 기장 압흔이 확인됨에 따라 잡곡 재배의 시기가 신석기 조기 단계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반도 농경의 정황적 사례와 동삼동패총의 발굴 성과를 참고해 볼 때, 남해안지역에서도 신석기 중기 단계에 접어들면서 조와 기장을 중심으로 하는 밭농사를 통해 기존의 수렵과 어로, 채집활동을 통해 조달한 식량자원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와 관련한 농경구로는 말안장형 갈판과 갈돌, 타제석부 등이 있다. 해양이라는 거칠고 위험한 환경과 자연의 변화에 좌우되는 환경 속에서 삶을 살아온 어로민의 삶은 종교적이고 의례적인 측면이 강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흔적을 잘 보여주는 것이 토우와 조개가면 등의 의례구이다. 조개가면은 동삼동패총에서 출토된 것이 유일한데, 집단의 공동의식이나 축제 때 사용되었거나 혹은 벽사적 행위와 관련한 주술구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토우는 형태에 따라 곰, 멧돼지 등 동물형과 여성을 표현한 인물형으로 구분되며, 동삼동, 욕지도, 신암리, 여서도 패총 등에서 출토되고 있다.

 

동삼동패총에서 출토된 곰모양 토우는 곰을 형상화한 것인데, 신석기인의 곰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욕지도패총의 동물형 토우는 당시 수렵생활과 관련된 주술적인 도구로 보인다.

 

남해안의 신석기인은 일상 활동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는 동물뼈나 이빨, 조개, 옥, 돌, 흙 등의 재료로 목걸이, 팔찌, 귀걸이, 뒤꽂이 등 각종 장신구를 만들어 착용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조개팔찌와 귀걸이이다. 투박조개로 만든 조개팔찌와 각종 옥으로 만든 수식과 이식[?狀耳飾]은 사회적 지위나 역할을 표상하기도 하고, 원시신앙의 의례적인 도구나 혹은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려는 벽사적인 주술구(呪術具)의 기능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덕도 장항유적에서 조개팔찌를 착장한 채로 출토된 여성인골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남해안 즐문토기인은 생업활동을 통한 생산력을 증대시키고 효율적인 식량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이나, 동물뼈, 조개껍질 혹은 교역을 통해 획득한 흑요석 같은 재료를 이용하여 일상생활과 생업활동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었다. 도구종류는 사용 형태에 따라 크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와 생산활동에 사용하는 생업도구로 나누어진다.

 

생업도구는 앞서 설명한 수렵, 어로, 채집, 농경구 등이 있으며, 생활도구는 쓰임새와 용도에 따라 목재가공 및 벌채, 음식물 가공 및 조리, 의복 제작용 등으로 구분된다. 대표적인 생활도구로는 마제석부, 타제석부(굴지구), 끌, 갈돌, 갈판, 고석, 돌날, 숫돌, 석추(뚜르개), 골제 바늘, 골제 송곳, 자돌구, 예새형 골각기, 조개칼, 조개그릇, 토기 정면구, 방추차 등이 있다.

 

남해안지역의 주거 형태는 내륙지역과 마찬가지로 수혈주거를 만들어 생활하였는데, 최근 해안지역에서 조사된 인천 운서동Ⅰ·삼목도Ⅲ, 시흥 능곡, 안산 신길동 유적에서 확인된 많은 수의 주거지를 통해 볼 때, 남해안지역에서도 일정한 규모의 취락을 조성하여 생계를 유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삼동, 목도, 여수 돌산 송도 패총 아래에서 확인된 수혈주거지가 있으나 일부만 잔존하여 주거의 형태와 구조, 시기별 특징 등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그러나 동삼동패총의 규모와 성격으로 보아 대규모 취락도 존재할 것으로 생각된다.

 

주거의 형태는 원형 혹은 장방형의 수혈주거가 대부분이나 금곡동 율리패총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패총과 주거 공간이 함께 공존하는 암음주거도 있다. 목도패총의 주거지는 많은 구성원이 취락을 이루고 살았던 장소가 아닌 패류채집 및 가공을 위한 일시적인 거주공간으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해안지역은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무덤유적이 발굴된 곳이며 여기서 출토된 다양한 부장품과 묘제는 어로민의 사후관념과 사회구조를 이해하는데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범방, 가덕도 장항, 연대도, 욕지도, 안도, 산등 패총에서 확인된 토광묘와 동삼동패총의 옹관묘 등이 있다.

 

무덤의 구조는 대부분은 지면을 간단하게 파고 시신을 안치한 토광묘이다. 토광묘는 조기부터 후·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일반적인 무덤의 형태이며, 지역에 따라 약간의 구조적인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옹관묘는 신석기 이른 시기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며 중기까지 확인되나 그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매장시설은 묘광을 구축하고 인골을 안치하기 위하여 토기편이나 돌로써 시상(屍床)을 만들거나 주검을 덮기도 한다. 장법은 신전장(伸展葬), 부신장(俯身葬), 굴장(堀葬), 측와장(側臥葬), 화장(火葬) 등으로 구분되나 대체로 신전장이 주류를 이룬다. 무덤의 형태는 단장묘가 기본이지만 욕지도 2호무덤와 연대도 2호무덤, 안도 1호무덤과 같이 합장한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부장품으로는 연옥제 수식, 귀걸이, 골제 발찌, 조개팔찌 등의 장신구류와 골제 작살, 수식, 석부, 숫돌, 낚싯바늘, 석제 작살, 빗살무늬토기 등이 있다. 특히 연대도, 안도, 산등, 범방, 가덕도 장항 유적에서는 출토된 조개팔찌와 연옥제 장신구는 신석기시대 장신구의 착용 형태와 종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남해안지역의 사람들은 오랜 어로활동을 통해 해양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변지역과 대내외 교류활동을 전개하였음을 흑요석, 제주도산 토기, 조개팔찌, 마제석부, 옥제 장신구 등 외래계 유물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일본 규슈[九州]지역과는 신석기시대 조기부터 흑요석 교역을 통한 문화교류가 전개되었으며, 이러한 교류활동은 신석기 전 기간을 통해 양 지역의 생업정보와 문물이 상호 이동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교류 흔적으로는 동삼동패총을 비롯한 범방, 수가리, 영선동, 상노대도, 연대도, 욕지도, 안도 패총에서 출토되는 일본 조몬토기, 흑요석, 사누카이트제 석기 등이 있다. 어로민의 생활공간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대내 교류는 관련 자료가 적어 그 양상과 성격이 분명하지 않지만, 최근 들어 해안지역의 패총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외래계 유물들은 지역간 교류활동과 문물의 이동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부산 용호동과 범방 패총, 비봉리유적에서 출토된 편마암제 마제석부류와 오산리형 석추, 조침(釣針), 동삼동과 여서도 패총의 제주도산 토기, 가덕도 장항유적의 연옥제 장신구는 현지에서 산출되지 않는 재질로 만든 제품이라는 점에서 교류를 통한 물자유통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수천년간 해양을 생업공간으로 오랫동안 지속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온 남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는 최근 다양한 유적의 발굴과 연구성과가 축적됨으로써 어느 정도 성격이 규명되고 있으나 앞으로 한반도 신석기문화 가운데 차지하는 위치라든가 지역 사회의 구조와 변천과정, 생업경제, 편년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다양한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하인수)

 

참고문헌

영남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 연구(하인수,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남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하인수·안성희, 한반도 신석기시대 지역문화론, 동삼동패총전시관, 2009), 선사고대의 패총(복천박물관, 2011)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신석기시대편)

 

출처;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5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