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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부지역의 신석기취락(中西部地域의 新石器聚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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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시대/고고학

2020. 10. 19.

중서부지역의 신석기취락(中西部地域의 新石器聚落)

중서부지역은 한반도 신석기시대의 지역구분으로 볼 때, 대동강유역과 한강유역 및 그 해안지대를 포괄한다. 이 지역은 일찍이 북한에서 대동강유역을 중심으로 신석기시대 편년관이 형성된 곳이며 궁산문화 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거지 역시 온천 궁산 및 봉산 지탑리를 필두로 하여 평양 남경, 봉산 마산리, 청단 소정리 등 많은 유적이 알려졌다. 한강유역은 서울 암사동유적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취락유적이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인천 운서동Ⅰ이나 중산동, 시흥 능곡동, 안산 신길 유적 등 대규모 취락유적이 조사되고 있다. 이와 같이 중서부지역은 한반도 내에서도 신석기시대 취락유적에 대한 조사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곳이다. 크게 서부지역(평남·황해)과 중부지역(서울·경기·충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부지역은 1957년의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유적의 발굴을 통해 비로소 이른 시기(궁산1·2기)의 주거지 형태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지탑리에서는 1지구에서 1호주거지, 2지구에서 2·3호 주거지가 확인되어 총 3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3기의 주거지 모두 방형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평안남도 궁산유적과 더불어 궁산문화의 이른 시기에 방형 및 원형 평면의 주거지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처음으로 알려준 중요한 유적이다. 내부시설로는 주거지 중앙에 돌을 돌려 만든 위석식의 노지가 있으며, 기둥배치는 일관되지는 않으나 기본적으로 4주식으로 생각된다. 위석식노지는 이른 시기에 주로 사용되고 후기가 되면 상대적으로 적어지거나 사라진다.

 

이 지역 주거지 내부시설 중 특이한 것은 노지 근처에 설치된 토기저장시설(?)이다. 대형토기의 저부를 떼어내고 거꾸로 하여 주거지 바닥에 박아넣은 시설인데, 이 시설에 대해서는 저장시설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듯 하나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인지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불씨 단지, 또는 소금을 저장하던 시설로 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조몬시대에 노지 내부에 토기를 박아 넣은 시설이 확인되기도 하며 이를 견과류의 탄닌 제거를 위해 필요한 재를 얻기 위한 시설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기본적인 양상(토기의 설치위치·설치상태)은 궁산문화의 그것과는 차이가 난다. 이러한 시설은 궁산1기부터 보이며 궁산3기의 예는 아직 없지만 궁산4기에도 보이기 때문에 궁산문화 전 기간을 통해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한강유역의 암사동유적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대동강과 한강유역을 포괄하는 첨저의 빗살무늬토기문화 지역에 공통하는 독특한 시설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이외의 시설로는 반원상으로 돌출한 출입시설이 지탑리와 마산리에서 확인된 바 있다.

 

궁산3기가 되면 새로이 장방형주거지가 등장하게 된다. 평양 금탄리나 덕천 남양리, 증산 용덕리 유적에서 확인되는 양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노지 역시 변화하여 위석식노지는 보이지 않고, 기본적으로 수혈식노지가 사용되는데, 주거지의 정중앙에서 벗어나 단벽쪽으로 치우친 곳에 위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원형 또는 (장)방형 평면에 노지 주위를 점토로 돌리거나 바닥에 점토를 바른 예가 확인된다. 이러한 노지형태는 궁산4기로 이어지게 된다. 조사된 주거지의 수량이 적어 기둥배치는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벽가를 따라 기둥이 바닥 위에 세워져 있는 경우나 4주식의 예가 확인된다. 황해도지역에서는 소정리 1지점의 예처럼 평면 타원형, 말각장방형에 위석식노지, 돌과 점토둑을 혼용한 노지가 확인되며 긴 복도식 출입시설이 있는 주거지도 확인되어 평남지역과는 차이를 보인다.

 

궁산4기의 주거지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형태는 금탄리 5호나 남경 37호와 같은 방형 평면 주거지로 주공이나 노지는 잘 확인되지 않으나 위석식노지가 확인되기도 하며 주로 소형이다. 다른 한 형태는 남경 12호나 소정리 1·2지점의 예처럼 장방형 평면에 긴 복도식 출입구를 가진 주거지로 내부에는 중앙에 (장)방형 노지가 있는 형태이다. 이 중에는 이단 굴광을 한 예도 보인다. 남경 31호주거지는 2단 굴광에 내부공간은 대형 장방형 평면을 하고 있으나 복도식 출입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서부지역의 주거지는 이와 같이 평면형태는 원형 또는 방형에서 방형 또는 장방형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중부지역에서는 늦은 단계가 되면서 점차 구릉상 입지가 현저해지는데 비해 이 지역은 후기 단계에 이르기까지 하천변 충적지가 주요한 입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지역의 취락은 마산리유적에서 보이듯이 궁산2기 단계에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볼 수 있다. 취락의 축조 원리 이해를 위해서는 주거지 배치상태를 관찰하는 것이 효과적인데, 궁산4기 단계가 되면 대형주거와 소형주거가 공반하는 점에서 주거지간 차이가 없는 동일 수준 주거지의 군집에서 대형주거를 중심으로 소형주거가 배치되는 구심배치 형태로의 변화를 상정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패턴은 현재로는 이 지역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때의 대형주거지는 공동시설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이기 때문에 취락배치에서의 변화란 결국 취락 내 공동노동의 조직화를 통해 자원획득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는 저장전략의 강화로 필연적으로 이어졌을 것이며, 집단의 안정성 제고에 기여하였을 것이다.

 

중부지역은 궁산1·2기와 병행하는 전기 단계(기원전 3500년 이전)에는 암사동, 연천 삼거리 유적 등에서 보이듯이 기본적으로 원형 또는 방형 평면에 위석식노지, 4주식 기둥배치의 특징을 보이는데, 이는 서부지역과 기본적으로 상통한다. 해안도서지역인 영종도 운서동Ⅰ유적에서 조사된 이 단계 대규모 취락의 예는 이와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수혈식노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점이 가장 특징적이다. 더불어 돌출식의 출입시설이 많은 점이나 선반(?)과 같은 시설물이 벽가를 따라 설치되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중서부 중기는 인천 삼목도 III유적이나 암사동유적 등의 예를 볼 때 기본적으로는 이전 단계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 중서부 후기 단계가 되면 내륙에서는 이렇다 할 유적이 확인되지 않으나 해안을 중심으로 소규모 취락유적들이 다수 분포한다. 인천 중산동유적의 예를 보면 역시 기본적으로는 방형 평면에 4주식 기둥배치를 특징으로 하는 이전단계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해안지역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위석식의 노지가 이 단계에 출현하고 있음은 주목된다.

 

충청지역에서는 해안을 중심으로 역시 같은 특징을 가진 주거지가 유행하지만 수혈식노지 위주인 점에서 차이가 있다. 충청 내륙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장방형 평면에 방형 수혈식노지를 갖춘 ‘대천리식주거지’는 충청 해안지역에도 분포하는 것이 알려졌다. 이렇게 보면 중부 지역은 기본적으로 시종일관 방형 평면이 절대적으로 우위를 보인다는 점에서 서부지역과 차이가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역시 장방형 주거지가 출현하고 (장)방형의 수혈식노지를 갖추고 있는 점에서는 공통성도 확인된다.

 

중부지역은 전기 단계에 가장 대규모 취락이 형성되고 있으며 후기가 되면 5기 내외의 소규모 취락이 다수 분포하는 특징이 있다. 취락의 배치가 정연하지는 않지만 이른 단계에는 열상배치에 가까운 형태를 보이는데 반해 후기 단계가 되면 몇 기의 주거지가 군집을 이루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입지면에서는 이른 단계에 내륙 강변에서는 충적지 입지가 특징적이나, 해안지역에서는 이른 단계부터 구릉상 입지가 나타나며 후기까지 이어진다. 중서부지역의 취락은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고른 분포를 보이고 조사된 주거지의 수량도 가장 많다는 점에서 한반도 신석기시대 취락연구에 가장 중심적인 지역이라 할 수 있으며, 취락규모의 변화, 입지의 변화, 취락 축조원리의 변화 등 여러 방면에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임상택)

 

참고문헌

우리나라 원시집자리에 관한 연구(김용남·김용간·황기덕, 사회과학출판사, 1975),

북부내륙지역의 신석기문화(임상택, 신석기시대 지역문화론, 동삼동패총전시관, 2009),

한국의 신석기시대 집자리(구자진·배성혁 편, 한국신석기학회·한강문화재연구원, 2009)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신석기시대편)

 

출처; 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