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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진동리 유적(昌原 鎭東里 遺蹟)-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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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시대/고고학

2020. 11. 29.

창원 진동리 유적(昌原 鎭東里 遺蹟)

선사문화유적

 경상남도 창원시 진동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돌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사적.

 

창원 진동리 고인돌 전경

분야선사문화유형유적성격무덤군건립시기청동기시대소재지경상남도 창원시 진동면 진동리 130번지 일대시대선사-청동기성격무덤군건립시기청동기시대소재지경상남도 창원시 진동면 진동리 130번지 일대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동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돌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사적.

 

개설

창원진동리유적은 1980년에 경상남도가 실시한 자동차면허시험장 건설을 위한 축대공사 중 발견된 것으로, 경남문화재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내용

창원진동리유적에서 발굴된 무덤은 지표 하 150㎝ 지점에서 석관(石棺)이 확인된 뒤 수습형식의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당시 내부 석관은 이미 파괴되었고, 석관 주위의 괴석(塊石)과 석관 하부의 형태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수습조사가 실시되었다. 따라서 정확한 유구의 성격을 파악할 수 없었고 윤곽만 확인되었을 뿐이다.

석관 유구는 현 지표 하 150cm 지점에서 생토면을 50㎝ 정도 파고, 길이 182.2㎝, 너비 56.5㎝ 크기의 석관을 설치하고, 그 주위에 괴석으로 된 석곽을 머리부위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돌렸다.

석관 내에는 손잡이가 달린 간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 비파형동검 1점과 머리가 놓였던 곳으로 보이는 지점에 붉은간토기가 부장되어 있었다. 그 위에는 돌과 흙으로 1m 정도를 덮어 당시 지표면에 맞추어 평탄하게 하였다. 이것은 석관 위에 상석을 올리기 위한 보강책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혼토층 사이에서 꼬다리가 달린 화살촉이 출토되었다.

지상에서는 어떤 봉분의 표지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는 단순한 석관묘라기보다는 상석(上石)이 제거된 기반식(碁盤式) 고인돌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 지역이 원래 ‘칠성뜰’이라 불리던 곳으로, 주변에서 고인돌과 고인돌의 상석이 확인되고 있으며, 또 이처럼 석관 밖에 석곽을 두르고 관 외부에 토기를 부장하는 형태의 고인돌이 밀양군 남전리에서 확인된 데에 기인한다.

유적의 연대는 간돌검이 손잡이 달린 형식(一段柄式)이고, 출토된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의 형태가 창원 외동과 김해 회현리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유사하며, 또 비파형동검이 변형된 양식을 보이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무덤의 조성시기는 서기전 4세기 전후로 추정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창원진동리유적은 고인돌과 석관묘로 구성된 유적이다. 이 가운데 고인돌은 규모와 형태, 구조와 특징 등에서 경상남도 창원 일대에서의 한국 청동기시대 말기 초기국가의 발생과정과 집단의 지위 및 혈연관계를 알 수 있고, 또한 출토유물에서 중국 동북지방의 청동기시대 출토품들과 유사하여 향후 비교 연구를 통한 문화의 원류를 찾는데 있어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 지석묘 연구』(유태용,2003)

  • 「한국 청동기시대 지석묘사회의 연구」(유태용,한양대대학원 박사논문,2001)

  • 「한국 상고사와 족장사회」(최정필,『한국고대국가형성론』,1997)

  • 「전남지방 지석묘 사회와 계급의 발생」(최몽룡,『한국사연구』35,1982)

  • 「경남지방출토청동유물의 신례」(심봉근,『부산사학』4,1980)

집필자

집필 (1996년)최몽룡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창원 진동리 유적(昌原 鎭東里 遺蹟))]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B0%BD%EC%9B%90%EC%A7%84%EB%8F%99%EB%A6%AC%EC%9C%A0%EC%A0%81&ridx=0&tot=3156

 

 

 

진동리 고인돌(昌原 鎭東里 支石墓)

경상남도 창원군 진동면 진동리에서 공사 도중 발견된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1980년 경상남도가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장 건설을 위한 축대공사 중 현 지표하 1.5m 지점에서 돌널(石棺)이 확인된 뒤 수습조사가 이루어져서 알려진 유적이다. 내부 돌널은 이미 파괴되고 돌널주위의 괴석(塊石)과 돌널 하부의 형태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조사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유구(遺構)의 성격은 파악할 수 없었고 그 윤곽만 확인되었을 뿐이다.

 

유구는 현 지표하 1.5m 지점에서 시작되는 생토면(生土面)을 50㎝ 정도 파고, 바닥에 진흙(泥質粘土)과 자갈을 섞어 다진 형태이며, 길이, 너비는 1.8×0.56m의 규모로 설치하고 그 주위에 괴석으로 된 돌덧널(石槨)을 머리부위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돌렸다. 돌널 내에는 일단병식간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과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1점이 허리부분 이상의 상위에서 발견되었으며 머리가 놓였던 곳으로 보이는 지점에 붉은간토기(紅陶)를 부장(副葬)하였다. 그 위에는 돌과 흙으로 1m 정도를 덮어 당시 지표면에 맞추어 평탄하게 하였는데, 이 토석혼층(土石混層) 사이에서 세장형(細長形) 유경돌화살촉(有莖石鏃)이 출토되었다.

 

지상에서는 어떤 봉분(封墳)의 흔적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는 단순한 돌널무덤이라기보다는 덮개돌(上石)이 제거된 기반식(南方式)고인돌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 지역이 원래 ??칠성뜰??이라 불리던 곳으로 주변에서 고인돌과 고인돌의 덮개돌이 확인되고 있으며, 또 이처럼 돌널 밖에 돌덧널을 두르고 널 외부에 토기를 부장하는 형태는 고인돌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돌널 위에 1m 두께로 흙과 돌을 섞어 채운 것은 돌널 위에 덮개돌을 올리기 위한 보강책(補强策)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慶南地方出土 靑銅遺物의 新例(沈奉謹, 釜山史學 4, 1980)

 

사전명

한국고고학사전(2001)

 

출처;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2&idx=10768

 

 

 

창원 진동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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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진동리 유적(昌原 鎭東里 遺蹟)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있는 청동시대의 유적분포지이다. 2006년 8월 29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72호로 지정되었다.

 

개요[편집]

경상남도 창원시 진동면 진동리 130번지 일원(100필지 97,342m2)에 위치하는 창원 진동리 유적은 토지구획정리사업 과정에서 발견되었고 발굴조사 결과 국내 최대규모의 청동기시대 집단묘역이 확인된 유적으로 대형지석묘와 석관묘가 집단으로 발굴되었다.

지석묘는 원형 또는 장방형으로 넓은 범위(길이 500m, 폭 150~200m)에 걸쳐 대형묘역이 서로 연접되어 군집을 이루고 있고 석관묘는 41기가 조사되었으며, 2~5기씩 4곳으로 나뉘어 소형 묘역으로 분포하고 있다. 출토유물로는 마제석검, 돌화살촉, 무문토기편 등이 있다.

지석묘(A군 1호)는 상석의 존재는 알 수 없으나 묘역과 매장주체부를 가지고 있다. 원형의 묘역은 직경 20m내외로 대형이며, 둘레는 주구(周溝, 물고인 도랑)를 설치하였다. 묘역의 내부는 잔자갈로 쌓아 1차 분구(墳丘)를 만들고 그 위에 흑갈색점질토를 재차 성토하면서 그 상부를 즙석(葺石)하였으며, 묘역 중앙에는 지상식 매장주체부를 설치하였다. 묘역의 규모나 형태를 볼 때 지석묘 피장자들과 석관묘 피장자는 그 생전 위상이 현저하게 차이가 났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지석묘 및 석관묘 무덤군의 규모와 형태, 구조와 특징에서 우리나라 초기국가의 발생과정과 집단의 지위 및 혈연관계를 알 수 있고 그 문화상에 있어서 중국 동북지방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사하여 향후 비교 연구를 통한 문화의 흐름·전통·원류를 찾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 자료[편집]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B0%BD%EC%9B%90_%EC%A7%84%EB%8F%99%EB%A6%AC_%EC%9C%A0%EC%A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