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환기9217해,신시배달5917해 단기 4353해,서기 2020해, 대한민국 101해(나뉨 72해),

04 2020년 06월

04

남국/조선 177년된 태안 섬마을 폐가의 벽지에서 조선시대 군인명부 쏟아졌다

177년된 태안 섬마을 폐가의 벽지에서 조선시대 군인명부 쏟아졌다 이기환 선임기자 입력 2020.06.04. 09:00 댓글 214개 [경향신문] 177년 된 섬마을 폐가의 벽지에서 발견된 19세기 군적부. 군역의 의무가 있넌 장정 면단과 특징을 적은 공문서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서해문화재과 제공 “응? 상량문이 보이네. 저건 ‘수군(水軍)’이라는 글자네”. 지난 4월 21일 충남 태안 신진도에 근무중인 정동환 산림청 산림수련관 시설관리인(45)은 연수원 근방의 숲을 답사하다가 다 쓰러져가는 폐가를 발견한다. 사람들 눈길에 닿지 않은 곳에 숨어있었던 폐가였지만 왠지 들어가 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전날 밤 평소 좋아하던 고향 어르신을 만나뵙는 꿈을 꾸었던 터라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폐가가..

댓글 남국/조선 2020. 6. 4.

01 2020년 06월

01

남국/조선 조선후기 대형 사찰 건축물 '고창 선운사 만세루' 보물 됐다

조선후기 대형 사찰 건축물 '고창 선운사 만세루' 보물 됐다 송고시간2020-06-01 09:49 임동근 기자 고창 선운사 만세루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문화재청은 정면 9칸, 측면 2칸으로 지은 조선 후기 대형 사찰 건축물인 고창 선운사 만세루(萬歲樓)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65호로 지정했다고 1일 밝혔다. 선운사에 전하는 기록물인 '대양루열기'(1686)와 '만세루 중수기'(1760)에 따르면 만세루 자리에는 본래 1620년에 지은 중층 누각인 대양루가 있었다. 이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52년에 재건축했다. 만세루는 책을 엎어놓은 듯한 맞배지붕을 얹은 단층건물이다. 처음에는 중층 누각으로 지었으나 재건하면서 현재와 같은 단층 건물로 바뀐 것..

댓글 남국/조선 2020. 6. 1.

01 2020년 06월

01

남국/조선 [단독]조선시대 '마지막 통신사' 행렬도 국내서 처음 나왔다

[단독]조선시대 '마지막 통신사' 행렬도 국내서 처음 나왔다 CBS노컷뉴스 김태헌 기자메일보내기 2020-05-10 07:00 일본서 1980년대 환수한 문화재…최근 전문가 평가 1811년 신미사행 다룬 작품으로 국내 처음이자 유일본 국편위 "구체적인 연구 통해 최종 가치 평가할 것" 1811년 '신미사행' 추정 통신사행렬도 병풍.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조선시대 마지막 통신사 '신미사행(辛未使行·1811년)' 행렬도가 발견됐다. 신미통신사를 그린 그림이 국내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사편찬위원회(국편위)는 지난달 7일 '통신사행렬도 병풍'에 대한 전문가 평가 자문회의를 열었다고 9일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동아시아 전문가와 문화재청 감정위원 등 외부 전문가 3명이 참석해 행렬도의 가치와..

댓글 남국/조선 2020. 6. 1.

01 2020년 06월

01

남국/고려(고리) 고려초기 '청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일본서 환수, 보물 331호 닮아

고려초기 '청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일본서 환수, 보물 331호 닮아 등록 2020-05-25 08:08:04 이상길 보물섬컬렉션 대표,10세기 작품, 일본 오사카 골동상에서 발견 [통영=뉴시스] 신정철 기자=보물 331호 삼국시대 '청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빼닮은 고려시대 초기 작품인 높이 65㎝, 폭 28㎝의 '청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한 민간인에 의해 일본에서 국내로 환수됐다. 25일 경남 통영시에 소재한 보물섬컬렉션 대표 이상길(59)씨는 "잃어버렸던 우리의 소중한 국보 문화재를 되찾았다"며 실물과 환수경위, 감정 결과 등을 공개했다.사진은 일본 오사카 천왕사 인근 고마야 골동상에서 환수한 청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모습이다.(사진=보물섬컬렉션 제공). 2020.05.25. photo@newsis.com..

05 2020년 05월

05

남국/고려(고리)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고려 금속활자, 구텐베르크 이후 뒤처진 5가지 이유…발명은 있었지만 혁명은 없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고려 금속활자, 구텐베르크 이후 뒤처진 5가지 이유…발명은 있었지만 혁명은 없었다 이기환 경향신문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입력 : 2020.05.05 06:00 수정 : 2020.05.05 10:25 ‘갑인자’를 개발한지(1434년) 2년만에 간행한 . 구텐베르크는 그보다도 18년 늦은 1454년 구텐베르크 성서 180부를 발행했다. ‘구텐베르크보다 빠르다고 하지만…’. 필자는 얼마전 (1377년 간행)보다 138년 빠른(1239년) 금속활자본(보물 제758-2호 공인박물관 소장 )이 국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연구성과를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고려가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구텐베르크가 이룬 것 같은 혁명은 없었다’는 독자반응이 만만치 않았다. ‘발명은 있었지만 혁..

05 2020년 05월

05

남국/고려(고리)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직지'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본…"국내 존재 사실 전혀 몰랐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직지'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본…"국내 존재 사실 전혀 몰랐다" 이기환 경향신문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입력 : 2020.04.21 06:00 수정 : 2020.04.23 09:18 에 붙어있는 무신정권 실력자 최이(?~1249)의 발문. “기술자들을 모집해서 기해년(1239년) 주자본(금속활자본)을 거듭 인쇄한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목판본으로 다시 새겼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최근 “속활자본으로 거듭 인쇄했다’고 해석하는게 옳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현전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 1377년(우왕 3년) 찍어낸 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그렇다면 문헌상 최초의 금속활자본은 무엇일까. 혹은 등 2건으로 알려졌다. 의 경우 “(12..

05 2020년 05월

05

남국/고려(고리) [스크랩]고려 압록강은 지금의 란하 동쪽 지류 폭하

출처;다음 블로그 조작, , 축소된 대한 강역 http://blog.daum.net/elpaso57/8113438 고려 압록강은 지금의 란하 동쪽 지류 폭하 조작도 - 1832 년 청국에서 간행된 를 일본으로 가져가 1865 년 재간행했다는 위 황조일통여지전도에 보이는 만灣은 지금의 란하 최하류이며 준왕조선 시기인 서기전 195 년 경부터 요동군을 경유하는 1250 리 길이의 대요수와 2100 리 길이의 염난수가 합쳐진 후의 물길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고려.조선의 서북쪽 국경선은 대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동쪽 끝 지역을 흐르는 란하의 동쪽 지역에 있었다. 추정도 - 요수.개사수.고려 시기 압록강(서압록) 위 황조일통여지전도에 적색 실선으로 x 표시한 것과 같이 황하는 한 시기 대요수..

05 2020년 05월

05

남국/고려(고리) [스크랩] 한국의 금속활자 기술이 구텐베르크에게 전해졌다.

[스크랩] 한국의 금속활자 기술이 구텐베르크에게 전해졌다. 2016. 4. 9. 이 동영상의 출처인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은 픽션과 논픽션을 명확히 나누어 다루는 프로그램인데 논픽션의 경우 정통 다큐멘타리로 진실을 추구하여 만드는 프로그램이죠. 그러나 구텐베르크는 위의 "세계 최초" 라는 말은 사실은 "현재 그 존재가 실물로 존재하는 것이 발견된 세계 최古"라는 말이고 한국의 금속활자는 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었음. " 한국의 금속활자 기술이 구텐베르크에게 전해졌다." - 관련글 [ 영원(永遠)에 합당(合當)한 삶을 살아야한다.] ----------------------------------------------------- [홍익인간]의 정신은 [사해동포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