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환기9217해,신시배달5917해 단기 4353해,서기 2020해, 대한민국 101해(나뉨 72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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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고구려(고려,고리) 北, "고구려 벽화무덤 새로 발굴"...3세기 축조

北, "고구려 벽화무덤 새로 발굴"...3세기 축조 [중앙일보] 입력 2017.09.21 06:41 오원석 기자 북한이 최근 평양시 외곽에서 고구려 시기의 벽화무덤을 새로 발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에서 고구려 시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무덤을 새로 발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통신은 이날 "최근 평양시 낙랑구역 보성리에서 고구려 벽화무덤이 새로 발굴되었다"며 "지하에 돌로 무덤칸(묘실)을 만들고 흙을 씌운 외칸으로 된 돌 칸 흙무덤"이라고 밝혔다. 무덤칸 크기는 길이 300㎝, 너비 268㎝, 높이 184㎝다. 검은색 안료로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북쪽·동쪽·서쪽 벽의 그림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보도 내용이다. 통신은 "북쪽 벽에는 무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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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고구려(고려,고리) 고구려 사신 그려진 우즈베키스탄 궁전벽화 과학적 분석 마무리

고구려 사신 그려진 우즈베키스탄 궁전벽화 과학적 분석 마무리 송고시간2020-04-10 09:57 임동근 기자 문화재청 "고대 한국인,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한 사실 보여줘" 고구려 사신 그려진 우즈베키스탄 아프로시압 박물관 궁전벽화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고구려 사절단 모습이 그려진 우즈베키스탄 아프로시압 박물관 소장 궁전벽화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마무리됐다. 문화재청은 우즈베키스탄 아프로시압 박물관 소장 궁전벽화의 보존·관리 상태에 대한 현지 조사를 마치고, 벽화 파편 11점을 지난해 12월 국내로 들여와 최근 과학적 분석을 마무리했다고 10일 밝혔다. 아프로시압 박물관은 우즈베키스탄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유적지인 사마르칸트 지역에 있는 박물관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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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재/홍원탁의 동아시아역사 바로보기 거란족의 요(遼)를 여진족 금(金)이 대체

거란족의 요(遼)를 여진족 금(金)이 대체 홍원탁 승인 2005.08.08 00:00 [홍원탁의 동아시아역사 바로보기] 동부 만주 삼림 속에서 살던 여진족은, 서 만주 선비족의 후예인 거란족 요 왕조가 운영하던 2원 통치조직의 효용성을 일찍이 체득했고, 1126년에는 북중국 전체를 정복했다. 중국 역사상 1126년이란 한족이 만주족 왕조에 의해 두 번째로 중원으로부터 쫓겨난 사건을 상징한다. 고려와 금 나라의 창건자들은 모두 옛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천명했다. 왕건은 신생왕국을 고구려를 본 따 고려라 불렀고, 금 나라는 실제로 만주 전체를 점거했다. 금사(金史) 기록을 보면, 완안부 시조 자신이 본래 고려(혹은 고구려)에서 왔고, 여진과 발해는 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고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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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재/홍원탁의 동아시아역사 바로보기 수와 당의 시조가 모두 만주 선비족 출신이라면?

수와 당의 시조가 모두 만주 선비족 출신이라면? 홍원탁 승인 2005.07.25 00:00 Founders of the Sui and Tang Dynasties 수 나라 시조 양견은, 명확하게 선비족 출신이라는 기록은 없지만, 만주의 선비족이 세운 북위, 서위, 북주 등을 대대로 섬겨온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양견의 아내인 문헌황후는, (拓跋鮮卑) 북위의 황실 및 대 호족들과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어온 선비 씨족 출신인 독고신(獨孤信)의 딸이다. 독고신은 우문선비(宇文鮮卑) 씨족의 우문태를 따라 서쪽으로 가서, 서위(후에 북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독고신의 맏딸은 북주의 첫 번째 황제인 (宇文泰의 아들) 명제와 결혼을 했고, 일곱 번째 딸은 수 문제와 결혼을 했고, 넷째 딸은 당 고조 이연(李淵)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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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재/홍원탁의 동아시아역사 바로보기 신라와 야마도 왕국의 쇠망(衰亡) - 왕조의 멸망

신라와 야마도 왕국의 쇠망(衰亡) - 왕조의 멸망 홍원탁 승인 2005.07.15 00:00 [홍원탁의 동아시아 역사 바로보기] 9세기, 야마도 왕국의 귀족 씨족들과 거대한 사찰들은 장원(莊園)을 만들기 시작했고, 10세기에 와서는 국가 토지소유제와 함께 중앙정부의 권위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농민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을 했고, 주변의 영향력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뭉쳤다. 농민들은 귀족 부재지주보다는, 귀족 출신을 자처하는 지방 토착의 실력자를 선호하였다. 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도태 과정을 거쳐 전문 싸움꾼으로 진화하여, 사무라이라고 불리는 전문적 무사계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사무라이는 중세 일본의 새 지배자가 될 운명이었다. 왕족 후손인 미나모도(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