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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다칸 2010. 7. 11. 21:59

무인기 시대, 미 조종사들의 정체성 위기
스페셜 리포트_21세기 미국 공군의 미래
[26호] 2010년 10월 16일 (토) 서정환 기자  jhsheo@empal.com

2월 28일 <워싱턴포스트>지에는 미 공군의 최근 위기 상황이 자세히 실렸다. 이와함께 본지는 최근 외신에서 주장되는 공군의 위기상황의 핵심 내용을 소개한다.

 

“국가가 왜 공군을 필요로 하는 가”

 

지난 가을, 공군의 수장인 노튼 슈와츠(Norton A. Schwartz) 공군참모총장은 펜타곤의 한 화이트보드에 이 의문문 하나를 휘갈겨 썼다. 순간, 미공군은 전에 없이 불편한 순간에 처했다. 62년 공군 역사상 이에 대한 명쾌한 답안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미공군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위기는 사실 치열한 전투로 점철된 지난 10년 세월이 미군의 모양을 바꾸고 ‘미국식 전쟁’을 새로이 정의하는 과정 중의 일부다.

 

   
▲ MQ-9 리퍼 무인기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반군들과의 전투는 무인기(無人耭)에 대한 끝없는 수요를 창출했고 자연스레 무인기 운전사의 중요성도 부각되었다. 이 새로운 부류, 땅위의 조종사들은 ‘현대적 공중전이란 무엇인가’를 새로이 정의하고 공군 내에 ‘투지(valor)’에 관한 다소 감정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창설 이래 미공군은 대담하고 의협심 넘치는 전투기 및 전폭기 조종사들을 가장 우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새로운 기술에 점점 밀려날 때라도 이러한 전통적 조종사들은 공군 조직과 공군의 문화 및 전통에 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정체성 논란에 빠진 미 공군

 

공군에서 이와 같은 신구(新舊) 갈등은 특히 알카에다의 이라크 지부 지도자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Abu Musabal-Zarqawi)를 사살한 2006년 공습의 여파로 드러난 것이다.


프레데터(Predator)기 조종사들은 무려 640시간 이상이나 이라크 지상을 정찰한 끝에 바그다드의 북동쪽 작은 농경지에서 자르카위와 그 동조세력들을 탐지해 냈다. 그 직후 단 몇 분 만에 F16기가 발진하였고 레이저 신호가 가리키고있던 자르카위의 좌표 위에 500파운드의 폭탄을 투하하여 그와 그의 조직을 궤멸시켰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F16기 조종사는 공군무공십자훈장을 받았다. 무장 수준도 변변치 않았던 반군들로부터 어떤 위협도 받은 적 없던 조종사가 최초로 대서양을 단독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와 동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미국 본토 라스베가스 외곽의 어느 공군기지에서 프레데터를 조작한 조종사들은 중동의 어느 3성 장군으로부터 감사장이나 받았을 뿐이었다.


공군 고위 장교들은 ‘프레데터 조종사들은 전투임무를 수행하더라도 전투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군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프레데터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인정하는 방법조차 모르고 있다. 전투기 조종사 출신으로 2003년까지 프레데터를 운용한 경험의 소유자 루터 터너 대령은 “나도 무선 조종 비행기에 ‘투지’가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조종사들의 공로를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 공군의 최고급 장교이자 전 수송기 조종사인 슈와츠 장군의 중요 임무는 이러한 신구 조종사들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2008년8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부 장관은 공군의 오래된 전통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듯 공군 역사상 처음으로 전투기나 전폭기를 몰아 본적 없던 슈와츠 장군을 공군참모총장에 임명했다.

 

전통적인 공군의 계급체계에서 최고위층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차지했으며 전폭기, 급유기, 수송기 조종사들이 그 뒤를 이었고 가장 밑바닥에 있는 부류가 우주항공사들이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령관인 슈와츠는 이 공군의 완고한 계급구조를 해체시키는 데 골몰하기 시작했다. 슈와츠 총장은 또한 공군 핵심임무의 정의를 전략적 폭격이나 제공권장악 이상으로 확장하려 했다. 예를 들어 반군 진압작전을 수행하는 지상군에게 정찰영상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공군은 프레데터와 리퍼(Reaper) 무인기를 통해 하루 40회의 장시간 순찰임무를 실행하고 있는데 이는 2004년에 비해 8배나 늘어난 임무량이다.

 

“올해 우리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기 위한 분석과 전망에 매진해야 한다.”

 

슈와츠 총장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근본적 의문’이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국가안보를 위해 무엇을 하는가? 이 거대한 조직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과 같은 정말 근본적인 것이었다.


   
▲ 노던 슈와츠 미 공군참모총장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안 중 하나는 라스베가스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크리치(Creech) 공군기지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기지는 프레데터 조작 훈련이나 혹은 조종사 경력 자체가 없는 장교들을 위한 예비훈련이 시행되는 곳이다. 사실 이전에는 원래 모든 미 공군의 프레데터기 및 리퍼기 조종사들이란 이 예비훈련을 받기 전에 이미 전투기, 전폭기, 수송기 비행 훈련을 이수한 현역 조종사들이었고, 무인기 조종사로서는 3년 간의 한시적인 임무에 배치됐을 뿐이었다. 게이츠 장관은 조종사 경력이 없는 군인들 중에서도 무인기 조종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공군은 완벽한 훈련을 받은 조종사만을 신뢰할 수 있다며 처음에는 이를 반대했다. 그러나 2007년에 접어 들면서 공군은 이런 방식으로는 더 이상 현장 지휘관들이 요구하는 프레데터기와 리퍼기 조종사 충원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전과 같은 공군의 운영방식으로는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의 수요를 맞추는데 10년이 필요했던 것이다.

 

라스베가스에 앉아 아프간 전쟁을?!

 

슈워츠 총장은 정책을 바꿨다. 미공군 작전훈련기획관인 마크 깁슨(Marke F. Gibson) 소장은 “우리는 새로운 유형의 조종사들을 배출할 수 있느냐 하는 철학적 논쟁에 직결되는 엄격한 문제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슈워츠 총장의 신임을 얻고 있던 깁슨 소장은 내근자, 헌병, 미사일조작부서원 같이 실제 비행경력이 없는 공군을 위한 9개월 간의 무인조종기 조종사 훈련 과정을 고안해 냈다. 이 훈련프로그램은 특히 2년 간의 정규 비행훈련을 받는 기존 공군 조종사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어떤 전투기 조종사는 이를 두고 “겨우 대소변 가리는 훈련만 받은 하룻강아지들이 어떻게 우리와 동급이 될 수 있느냐”고 말했을 정도다.


어쨌거나 비행경력 없이 이 훈련을 통해 처음으로 배출된 무인항공기 조종사는 모두 8명이었다. F16 조종사를 꿈꾸며 공군에 입대했으나 지독한 근시 때문에 조종사가 되지 못한 스티브 페트리조(Steve Petrizzo)대위는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비록 직접 전투기에 몸을 싣고 드넓은 창공을 비행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하 15미터 아래 건축된 콘크리트 기지 안에서 핵미사일 발사 명령만 기다리는 임무에 배치된 그는 프레데터기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09년 초부터 시작된 그의 훈련 첫 6개월은 비행의 기초과정을 숙달하는데 집중됐고 나머지 몇 달은 지상 통제실 안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지물을 구현한 비디오 게임을 통해 프레데터기를 가상 조종하는 데 쓰였다.


지난 여름의 어느 날, 페트리조 대위는 F15기 조종사 출신의 페레데터 조종사 훈련 교관인 앤디 브라이트(Andy Bright) 소령의 지도하에 시뮬레이션 훈련을 받게 됐다. 강풍이 부는 조건으로 설정된 육상 통제실 안에서 이 신ㆍ구 세대 조종사 간에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페트리조 대위는 이날의 훈련 시나리오대로 어느 마을을 통과하는 일개 분대 규모의 미군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 분대병력은 저격병의 공격을 받고 엄폐할 곳을 찾아 내달리게 됐다. 페트리조 대위는 비록 사격을 가한 반군들의 위치를 재빨리 포착해 내긴 했지만 자기 자신은 물론 군인들이나 주변의 민간인들이 유산탄 공격을 피하기 위한 장소를 찾는 데는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총알 세례를 받고 있는 군인들에게 그 정도면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다. 브라이트 소령은 그가 (가상)비행 중에 취해야할 태도에 관해 조언했다. “프레데터를 타는 것은 체스 말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 자신이 그 말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라 생각하고 몇 수 앞으로 내다봐 야한다.”


4시간 동안 몇 번의 반복 훈련 이후 페트리조 대위와 브라이트 소위는 훈련결과를 복기하기 위해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전문적인 조종사이자 교관인 브라이트 소령은 제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9개월 만에 전투임무를 수행할만한 비행 실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페트리조와 그의 동료들에 대해 “나는 이 훈련생들과 매우 기초적인 비행훈련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비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페트리조와 그의 동료들의 훈련 수료식은 공군에게 또 다른 질문거리를 던졌다. “이들이 우리랑 같은 공군 마크가 새겨진 군복을 입는 건가? 초과 비행 수당도 받고? ‘파일럿’이라고 불러야 하나?”


   
▲ 훈련 중인 미 공군 조종사

그러나 슈와츠 총장은 이들 훈련 수료생들이 ‘파일럿’이라고 결정했다. 그들은 땅에서 뜨지 않으면서도 비행수당을 받았다. 슈와츠 총장은 이들의 졸업식에 참석하여 특별히 제작된 공군 마크를 이들의 옷에 꽂아 주었다. 원래 미공군 마크는 가운데에 옛날 방패 문양을 두고 양쪽에 날개가 새겨진 것인데 이들의 마크에서는 이 방패가 번개문양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땅위의 파일럿과 하늘 위의 항공기를 연결하는 위성신호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슈와츠 장군은 이들 수료자들에게 “제군들은 지난 10년간 공군이 이룬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일부”라고 말했고, 그 몇 일 후 페트리조와 그 동기생들은 아프가니스탄 상공을 날게 되었다.

 

위로부터의 변화

 

이런 문화적 변화는 새로운 분야에 헌신한 장교들이 공군의 최고 직위(아직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독차지하고 있는)에 오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무인기에 대한 엄청난 수요 때문에 프레데터기와 리퍼기 조종사들은 크리치 기지 같은 곳을 떠나 고위직에 진출하는데 필요한 경력을 쌓을 수 없다. 현재 펜타곤에서는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장교가 100명이 넘는 데 비해, 프레데터기와 리퍼기를 운행한 경력의 장교는 10여 명에 불과하다.


슈워츠 총장은 “나의 부하들도 이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문제는 한 번 무인항공기 조종사가 된 이들은 계속해서 이 일만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프레데터기나 리퍼기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결코 장성이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전역을 택하기도 한다. 공군 중에서 무인항공기 경력이 가장 많은 에릭 매더슨(Eric Mathewson) 대령은 26년의 복무 끝에 몇 주 후 전역을 하게 된다. 매더슨 대령은 원래 F15기를 몰았으나 지난 2000년 경 허리부상을 입어 더 이상 비행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프레데터기 조종사가 되었다. 2002년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 15시간에 걸쳐 진행된 피나는 전투 중 어느 비행대대의 사령관이었던 그는 그의 프레데터기가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보다 기량이 더욱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됐다.

 

미군 10여 명이 참호 속의 탈레반군에 포위당해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빠른 속력으로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가던 F15기와 F16기는 아군의 피해 없이 적들의 벙커를 정확하게 타격할 수 없었다.


육군 지휘관들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구출하기 위해 헬기를 투입하려면 반드시 적들의 기관총 진지가 먼저 제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돌더미 뒤에 간신히 숨은 현장의 육군 수색부대 소대장은 “눈속에서 병사 한 명의 출혈이 심해 위급한 상황”이라는 무전을 보내며 다급하게 구조를 요청했다.


이때 크리치 공군기지 내 메더슨 대령이 이끌던 비행대대 소속의 한 조종사는 그 수색대 위로 프레데터기를 몰고 갔다. 이 무인기는 이전에 그 같은 격전의 현장에서 지상전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한바 없었기 때문에 조종사는 수색대원들에 대한 걱정으로 공격을 감행하는데 주저했다.


조종사는 일단 자신의 항공기의 사격 정확도를 확인하기 위해 한 발의 헬파이어 미사일을 아무 것도 없는 언덕위에 발사해 보았다. 미사일은 의도했던 곳에 정확히 적중했다. 그러나 두 발의 미사일 중 한 발을 시험용으로 써버렸으니 남은 헬파이어는 단 한 발이었다. 조종사는 그의 비행기 항로를 유지하며 조종관 위에 달린 땀에 전 사격버튼을 굳게 잡았다.


마침내 그는 마지막 미사일을 발사했고 탈레반군의 기관총 진지는 파괴됐다.


“프레데터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다 죽었을 겁니다.” 이 전투기 조종사는 몇 달 후 고위 공군 장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 전투가 벌어진 지 수 개월 후, 메더슨 대령은 그 휘하의 조종사들 중 몇 명이라도 공군무공십자훈장 수여 후보자 명단에 올리는데 실패했다. 프레데터기 조종사들이 메달을 얻게 하려는 첫 번째 노력은 그렇게 좌절됐다.


그의 부대에 전공(戰功)에 상응하는 영예를 안겨주지 못하자 메더슨은 그의 조종사 및 부하들 사이에 전우애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2006년, 두 번째 프레데터 임무를 위해 크리치 기지에 돌아온 메더슨 대령은 곧바로 그의 비행대에 내릴 새로운 ‘우리의 사명(mission statement)’을 작성했다.


“대부분의 ‘우리의 사명’은 길고 복잡하며 눈에 띄는 글꼴을 취한다. 그러나 나는 단 세 마디만 썼다.”


그가 그의 비행대 신조로 쓴 세 마디란 ‘머리에서 허무감을 지워라(Kill Expletive Heads)’였다. 그의 부대 대원들은 이를‘KEH’로 줄여서 그들의 임시 본부로 사용하고 있던 트레일러 위에 그려 넣었다.그 부대의 서류 양식 첫머리에도 ‘KEH’가 쓰였고 포커에서 이겨 칩을 가져오면서도 병사들은 ‘케이-이-에이치’라고 읊었다.


크리치 대령은 “그 말은 ‘우리가 하는 일은 전투와 다를 바 없으며 우리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고 말했다.

 

조종사 한 명이 무인기 4대를 움직인다.

 

   

크리치 기지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공군은 메더슨 대령을 펜타곤으로 파견했다. 그곳에서 그는 2009년 내내 2047년까지의 무인기 체제 개발을 위한 공군의 로드맵 초안을 작성했다.


매더슨이 작성한 계획은 공군이 정찰 및 공격이 아니라 해외로 향하는 보급품 수송 분야에도 무인항공기를 도입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조종사 한 명이 비행기 한 대가 아닌 동시에 네다섯 대를 원격조 정한다는 내용도 있다. 그는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무인기가 지정된 항로위에 떠 있으면서 지상을 관찰하는 것뿐이라면, 그 동안 조종사가 하는 일은 아무 것

도 없다”며 “따라서 40대의 무인기를 보유한 1개 비행대대에도 그 무인기들을 관찰할 고작 4~5명의 조종사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라고 말한다. 공군과 메더슨 대령은 이미 훈련을 통해 한 명의 조종사가 4기의 프레데터기를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크리치 기지의 프레데터기 대대 사령관이었던 데이빗 설리번(David Sullivan) 대령은 메더슨 대령을 공군 내의 ‘몽상가들’ 중 하나로 꼽았다.


다가 올 무인기 시대는 공군에 더 큰 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조직과 새로운 기지, 적들을 관찰하기 위해 캐노피(운전석 덮개) 너머를 내다보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조종사들을 요구할 것이다. ‘투지’라는 낡은 관념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10년 간 무인기 전투를 치르면서 메더슨은 모든 전투 공로자들을 칭송할 때 따라 붙는 ‘투지’라는 말의 의미도 조종하게 됐다. “나에게 투지란 내 목숨을 거는 무엇이 아닙니다. 투지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당신이 추구하는 욕구와 목표에 관한 것이자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행하는 정당한 일. 그것이 내가 말하는 ‘투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