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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 2009. 2. 27. 15:40
녹두밭에 앉지마라....
(서프라이즈 / 黑雨 (lotto645) / 2009-2-13 18:13)

전봉준(1854~1895)이 '녹두장군'이라 불리는 까닭

출생지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고부군 궁동면 양교리【지금의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고부군 향교의 장의를 지낸 '창혁'의 아들이다. 그는 체구가 작았기 때문에 흔히 "녹두"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이란 별명이 생겼다고 전한다.

 


전봉준과 동학농민운동

녹두장군 전봉준은 1892년 고부군수 조병갑이 만석보(저수지) 축조 까닭으로 농민들의 금전과 곡식을 강탈하자, 농민대표와 함께 바른 정치를 해주도록 호소하였으나 거부당하여 1894년 1월 농민과 동학교도들을 이끌고 부패한 관리를 잡아 가두었다. 그 후 전주에 입성하여 외침으로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부패한 관리 처벌, 노비의 해방 등 폐정개혁안 12개 조목을 실천하기로 약속받고 진정하였으나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우리 나라에 침략의 손길을 뻗치자 12만 명의 군사를 지휘 손병희의 10만 군사와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웠다. 동학 농민군은 중·남부 전지역과 함경남도, 평안남도까지 세력을 폈으나 공주/금구 전투에서 패한 후 순창으로 잠적 재기를 꾀하다가 붙잡혀 1895년 3월 처형되었다.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르음은 그 본의가 다른 데 있지 않고 창생을 도탄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고자 함이다.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구축하고자 함이다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_<전 봉 준>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던 농민들의 꿈은 깨어지고 결국 녹두장군 전봉준도 사로잡혀 목을 베이고 말았으나 사람들은 이 안타까운 일을 파랑새 노래에 담아 부르면서 좋은 세상이 오기를 꿈꾸었다. (녹두꽃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청포장수는 민중을 뜻한다)




노래
 조 수 미 / 김 윤 아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꽃이 떨어지면


새야 새야 파랑새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아랫녘 새는 아래로 가고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새야 새야 파랑새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윗논에는 차나락 심고
우리 올애비 장가갈 때
네가 왜 다 따 먹느냐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청포장수 울고 간다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윗녘 새는 위로 가고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손톱 발톱 다 닳는다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전주 고부 녹두새야


아랫논엔 메나락 심어
찰떡치고 메떡 칠 걸
네가 왜 다 따 먹느냐

우리 논에 앉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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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토진도
글쓴이 : 친한친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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