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토

우림과둠밈 2008. 3. 29. 11:24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제3권]

그리스도와의 동행

Walking With Christ


본 연구에 최대의 효과를 얻는 방법


성경은 생명의 책이요, 진리의 보고입니다.

… 영혼을 소성케 하고

… 우둔한 자로 자혜롭게 하며,

… 마음을 기쁘게 하고,

… 눈을 밝게 하며,

… 금보다 더 사모할 만하며,

… 꿀보다 더 달며,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도다.

<시편 19:7~11>


하나님께서 말씀 안에서 공급해 주시는 풍부한 지혜와 부요함은 어느 그리스도인이나 다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부지런히 찾는 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묵상과 기도는 당신이 성경을 연구할 때 하나님의 지혜의 창고를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입니다. 공부하는 각 성경구절을 기도하면서 묵상하는 것은 당신이 그 의미를 이해하고 당신 생활에 적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디모데전서 4:15>


그리스도와 동행해 나가는 동안에 아마도 당신은 당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무엇이며, 어떻게 믿음으로 행해야 하며, 또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활 속에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궁금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동행에서 당신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데 있어서 다섯 가지 중요한 단계를 공부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숙

•그리스도의 주재권(主宰權)

•당신의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

•종으로서의 삶


“묵상을 위한 질문”은 전 과정에 걸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이 부분처럼 회색 바탕에 쓰여 있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은 임의로 선택하여 공부해도 좋습니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구절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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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숙


20세기의 세계는 사람들의 필요를 빠르고 쉽게 채워주는 많은 발명품들이 그 특생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스턴트식품, 텔레비전이나 인공위성을 통한 직접중계, 고속의 컴퓨터에 보관된 즉각적인 정보 등 - 현대는 “즉각적”인 것을 요구하는 세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경험에는 “즉각적인 성숙”이 없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많이 사랑하는 전 생애에 걸친 모험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당신을 그 틀에 집어넣어 찍어내도록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안으로부터 새롭게 형성하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실 뿐만 아니라, 그가 원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시고, 참된 성숙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음을 실제 삶에서 입증하도록 하십시오.”


성숙을 향한 전진


1.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영적인 성숙을 향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성경 말씀을 참조하면서 아래 빈 칸에 복음의 중요한 요점을 적어 보십시오. (로마서 5:8, 4:25, 고린도전서 15:3~4)


첫째는, 십자가에 죽으심.

둘째는,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심.

셋째는, 성도들에게 나타 나셨음.


복음에 대하여,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신앙 성장은 구원의 확신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성숙에는 반드시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생명이 내 안에 실제로 있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성장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예수 생명이 없으면 성장이 없습니다. 죽은 나무에 물을 계속 주면 빨리 썩어 버립니다. 이유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을 때 물을 주면 성장합니다. 바울은 복음의 씨를 뿌렸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양육을 말합니다. 신앙 성장은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신앙 성장이란 인격의 변화와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해 checking을 하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게 하십시오. 칭의는 성화의 시작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늘 확인 하십시오.


고린도전서 15:2~5절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 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라고 하였으며,


요한복음 2:23, 25절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믿었으나”라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주님께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었고, 귀신의 믿음이었습니다. 거듭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믿고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요한복음 1장 12절에 해당되지 않는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가 나옵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요한복음 2장에 많이 따르는 자들은 예수를 구세주로 마음에 주인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고 예수를 영접하지도 않고 예수 생명이 없어도 니고데모처럼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헛것입니다. 이런 자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즉 예수 영접하고 거듭나라고 하셨습니다. 성장이란 예수 닮아 가는 것이며 생활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2. 에베소서 4:11~16절을 읽으십시오.


(1) 하나님은 당신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13, 15절)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 중생한 자, 거듭난 자들에게 주님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내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님처럼 성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뜻입니다.


(2)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어린아이)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4절)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기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속에 빠지지 않아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기술과 간사한 유혹에 넘어가므로 성장이 멈추고 병을 갖게 됩니다. 마태복음 24장 말씀에서도 사람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항상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환경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사람들과 타협하는 것은 귀신의 가르침입니다. 여기에는 수단이 동원됩니다. 즉 야곱의 삶과 같습니다. 거듭난 자의 삶은 이스라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이 말씀에 의하면, 무엇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임을 나타내줍니까?


은사로 나타나는 것이 성장입니다. 전도하고 봉사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덕을 세우고 화평을 만들고 선한 열매를 맺어 가는 것이 성장입니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셨습니다. 잘못할 때는 반드시 공의가, 하나님의 공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인간의 옛 성품과 그리스도인의 새 성품을 비교해 보십시오. (에베소서 4:22~24)


옛 성품과 새 성품의 차이를 비교하여 확신을 시켜 주어야 합니다. 성품의 변화가 있는 것이 성장입니다. 즉 인격의 변화가 있어야 성장입니다. 마음에 성령의 감동을 몇 번은 또는 잠깐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오래 지속은 되지 않습니다. 성품이 변화되어야 감동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옛 성품은 사람의 궤술이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새 성품은 의와 진리를 계속 따라 가는 자, 이런 자가 성숙한 삶을 삽니다. 성장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성숙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욥은 고난을 거치고 난 후에 하나님 앞에 정금 같은 귀한 믿음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인격의 변화입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시간과 경륜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도 오랜 경륜이 있어야 합니다.


4. 고린도후서 3:18절을 잘 살펴보십시오.


(1) 당신은 누구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갑니까?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란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성장 목표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2) 누가 이 변화를 가져다줍니까?


전적으로 성령의 도움을 얻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성장을 시켜 주어야 합니다. 나는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인도 받는 자를 로마서 8장 14절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장이 옵니다.


(3) 당신은 순간적으로 완전히 변화됩니까?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전진적으로 변화가 되어져가는 것입니다. 지체는 머리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즉 주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인들의 머리시기 때문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계속 순종으로 따라 갈 때 변화가 옵니다. 한두 번씩은 할 수 있습니다. 계속적으로 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살 때 가능합니다. 이때 말씀으로 다듬어 집니다. 즉 예수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4) 당신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장한 삶을 살려면 나무가 태양을 바라보듯이 내가 주님의 아름다운 인격을 바라 볼 때 내 안에 영적 성장이 옵니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늘 바라보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선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5) 당신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는 실제적인 활동들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주님과 우선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교제하는 삶은 믿음, 말씀, 기도로 주님을 바라보는 삶이 있을 때 주님의 형상이 내게 밝히 비춰 집니다. 둘째는, 말씀 묵상을 통해 순종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과 관계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절대로 변화가 없습니다. 성도의 기본적인 삶은 말씀을 보고 듣고 배우고 기도한 후 깨달아지는 것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일찍 성경을 보고 묵상 기도하는 것을 인격이 될 때 까지 해야 합니다.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다 보면 몸에 익숙하여 어디에서나 골방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삶입니다. 여기에서 성장이 옵니다.


5. 로마서에 나오는 다음 구절들은 그리스도와 당신과의 관계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 줍니까?


(1) 당신에게 이미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로마서 5:8~9)


칭의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되는 사건입니다. 내게 현재에 있어서 과거가 됩니다. 영접하는 그 순간 내 안에 의롭게 되어 집니다. 즉 자녀의 권세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칭의입니다.


(2)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 (로마서 6:19)


성화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현재와 관계되는 삶입니다. 이것이 성장이고 성숙입니다.


(3) 당신은 장차 무엇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로마서 8:16~18)


영화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될 일인데 미래에 주님 앞에 설 때 주님이 영광의 재림 주로 오셨을 때 순간적으로 되는 일입니다. 주님과 같은 수준으로 되어 집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다음 세 가지 면 (칭의, 성화, 영화)은 믿는 자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칭의(稱義-Justifcation)

과거 시제 - 나는 죄의 형벌에서 … 구원 받았다.

 

나의 위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성화(聖化-Sanctificaion)

현재 시제 - 나는 죄의 권세로부터 … 벗어나고 있다.

 

나의 상태는 그리스도를 닮아 가고 있다.

 

영화(榮化-Glorification)

미래 시제 - 나는 죄의 존재로부터 … 구원받게 된다.

 

나의 기대는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것이다.


▶ 칭의 :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로마서 5:1, 8:6, 히브리서 6:10)에 이루어집니다. 칭의는 위치적인 변화입니다. 내가 서 있는 위치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 온 상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치 피의 문안에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 들어 있습니다. 신앙의 세 가지 요소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구원은 믿음의 관계입니다.


▶ 성화 : 성장을 의미합니다.


죄로부터 오는 수 없는 유혹에서 승리의 삶, 변화된 삶이 성장입니다. 이것은 현재 이루어야 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상태적인 변화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삼 요소 가운데 사랑에 속합니다. 미운 자는 닮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면 닮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을 닮게 됩니다. 즉 사랑할 때 성장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에 “신령한 젖을 사모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디모데전서 2:15, 4:16, 빌립보서 2:12절은 성화와 관계 되는 구원입니다.

▶ 영화 : 완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미래에 내게 일어 날입니다. 주님과 같은 수준으로 되는 소망입니다. 소망의 관계입니다(로마서 8:23, 13:11). 이것은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구원 받는 모습 전체적으로 볼 때 칭의(믿음), 성화(사랑), 영화(소망)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의 순서로 되었으나 믿음의 순서로 본다면 믿음, 사랑, 소망성경적인 순서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골로새서 3:2~4절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보십시오. 이 구절들은 위의 도표를 어떻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까?

                                                          

                                                          

                                                            

 


묵상에 대한 설명


3절에 “너희가 죽었고”는 칭의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옛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죄는 죽었습니다. 복음의 사실에서 우리는 살았습니다. 예수 안에 산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실질적으로 나는 죽지 않았는데 복음의 사실을 알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2절에 “위에 것을 생각하고”라는 것은 우리가 위엣 것을 생각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 때 가치관이 바뀝니다. 가치관이 바뀔 때 변화가 옵니다. 즉 성화가 옵니다. 땅에 것을 바라보고 살면 변화가 없습니다. 위에 것은 영원한 것이므로 거기에 가치관을 두고 살 때 내가 점진적인 성화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성화와 연관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현재에 있어서 위에 것을 생각하고 살면 사랑을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위에 것을 바라볼 때 내 생활 속에 변화가 구체적으로 옵니다. 우리가 모세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상 주심을 바라보고 현재의 고난을 극복해야 합니다. 바울도 하늘에 영원한 사랑을 바라보았을 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의 흔적을 자기 몸에 채웠습니다.


3절에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는 것은 영화를 말합니다. 즉 소망에 관한 것입니다. 소망은 기대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에 것을 생각하며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구원은 영혼 구원이고, 칭의는 죄에서 승리이며, 영화는 다 같이 주님의 상태에 영화된 몸으로 되어 집니다. 이것이 전체적인 구원입니다.


당신의 출발점


성숙을 향해 믿음, 사랑, 소망인 전체적인 것을 명확히 바라 볼 때 출발할 수 있습니다. 믿음 성숙의 출발이 6번입니다.


6. 골로새서 2:6~7절을 살펴보십시오. 당신은 그리스도 안의 생활을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첫째,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성화 즉 시작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성장을 계획해야 합니까?


불의를 막고 체험을 함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에 뿌리를 깊숙이 내려야 합니다. 종교 생활로 뿌리를 내리면 안 됩니다. 7절에서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라고 하였습니다. 나무가 땅에 뿌리를 깊이 박으면 그 나무가 땅에 세워 집니다. 내가 예수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내 삶과 인격이 주님처럼 될 수가 있습니다. “교훈을 받은 데로”는 믿음의 뿌리가 말씀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말씀에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7. 로마서 5:1~5절을 숙고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 때문에 당신이 경험하게 될 실제적인 유익들은 무엇입니까?


본문의 말씀 그대로 체험을 하므로 상장이 옵니다. 경험 없이는 성장이 올 수가 없습니다.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경험을 했을 때 성장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화평은 하나님과 내가 조화를 이루는 삶이며 이것은 죄의 문제가 해결 될 때 이루어집니다. 


2절에 “은혜를 누리고”는 기뻐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면 결과적으로 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옵니다. 이런 속에 들어갈 때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게 됩니다. 바울이 그 환경과 몸에 사탄의 가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 하도다, 라고 하면서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삶입니다. 즉 부정적인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때 믿음이 성숙합니다.


2절에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삶을 체험할 때 성장이 옵니다. 내가 비록 거지 나사로와 같은 환경 일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을 소망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런 영광을 바라봄이 있을 때 믿음의 성장이 옵니다. 땅에 것을 바라보면 성장이 오지 않습니다.


3절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 즐거운 체험을 하고 살아갈 때 성장이 옵니다. 바울은 바다에서 유라굴라, 라는 광풍의 환경과 감옥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믿음은 더욱 성장합니다.


4절에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삶을 신앙에서 체험을 해야 합니다.


로마서 5:1~5절을 체험함으로 신앙에 성장이 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에베소서 1장을 읽고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것들을 적어 보십시오.

     절                                                    

     절                                                    

     절                                                    

     절                                                    


묵상에 대한 설명


5절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에 대해 기뻐하고 감격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옛 사람 때에는 마귀의 자녀이었지만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자녀의 권세와 죄에서 자유 함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은혜에 감격하고 생활해야 합니다.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죄의 종으로 자유 함이 없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죄함을 받았습니다. 그 사죄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내 속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기쁨이 있습니까? 다윗은 죄를 짓고 난 다음 구원의 기쁨을 잃고 하나님께 그 구원의 기쁨을 회복 시켜달라고 눈물로 토설하는 자백을 했습니다.


11절에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나는 하나님의 제산 목록에 1호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보고 기뻐하십니다. 내 자신이 예수 생명을 소유함으로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으니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독생자 예수를 희생시켜 기업을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면서 나를 통해 기뻐하십니다.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너는 내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표시로 도장을 찍은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으로 믿고 사는 믿음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예로서, 일본 사람들이 물러 갈 때 그 사람들이 살던 집을 사게 되었는데 그 창고의 바닥이 이상하여 파 보았더니 일본 사람들이 숨겨 놓았던 보물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나는 성경에 연약한 질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질그릇 속에 하나님이 예수의 보배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주님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셈을 하여 보십시오. 그런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선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것을 누리고 살게 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밤낮 달라고만 하면 갈급한 삶이 됩니다. 구원과 성장은 별게가 아닙니다.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점점 변해야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위치 변화가 오지 않으면 상태적인 변화인 성화가 오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가 위치 변화를 받은 자이므로 성장이 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성장 과정이 반듯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원과 성장을 구분시키는 것은 생활면 즉 변화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별게로 다루는 것입니다. 거듭났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게 있다는 말입니다.


생명은 언제든지 본질적으로 성장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자는 반드시 성장이 옵니다. 수년 동안 예수를 믿었지만 변화가 없을 때 구원의 확신을 다시 확인시켜야 합니다. 신앙의 포인트는 생활면에 변화입니다. 우리는 인격의 변화에서 진정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물질의 복으로 감사하는 것은 연약한 믿음입니다. 인격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살아가는 것을 참 기쁨으로 알고 감사하는 자가 신앙에서 성숙한 자입니다. 사람이 성숙하면 할수록 누리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는 것처럼 신앙도 동일합니다.


어린아이 신앙은 보이는 것으로 물질이 많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만 감사합니다. 신령한 것은 보이지 않으면서 영원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체험하면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며 이러한 면에서 양육을 시킬 때 인격의 변화가 반드시 옵니다. 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옛 사람 때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내게 있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이고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 3장 20절에 “항상 주님은 마음의 문을 노크 하시므로 우리는 마음의 문이 열린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가 마음의 문을 연 자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또한 문제는 사탄이 내 마음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생각은 생명이고 육의 생각은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비판적인 자는 사탄이 공격의 제 1호입니다. 비판적인 것 자체가 사탄의 성품입니다.


성장의 과정


8. 육신의 삶과 영적인 삶 사이에는 매우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다음 참조 구절에서 어떤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1) 데살로니가전서 2:11


부모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양육하는 자는 반드시 영적으로 자녀로 보아야 끝까지 키울 수 있고 성도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자랍니다. 영적 자녀는 부모가 있어야 성장합니다. 목회자가 부모의 심정을 가질 때 어떤 성도라 할지라도 양육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가 좋은 목회자입니다. 교회직분 자들은 영적 부모의 자세를 가질 때 보살필 수가 있습니다. 화초는 보살피지 않으면 모두 죽어 버립니다. 성도를 사랑으로 보살필 때 신앙이 성장합니다.


(2) 디모데전서 4:8


성장 과정에는 반드시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너무 분주하다 하여 손과 발을 묵어 두고 먹이기만 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보고 배우고 훈련하면서 자라야 합니다. 시골에 소를 키우는데 두 종류가 있습니다. 고기용은 먹이기만 하고 일시키지 않습니다. 일을 시키는 소는 송아지 때만 벗어나면 코를 뚫어 일을 시키는 훈련을 합니다. 코뚜레가 없는 소는 일을 못합니다. 주인의 양식만 축냅니다. 소는 소다워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고기용 소와 동일합니다. 성도는 성경 공부, 경건의 훈련, 봉사 훈련, 헌신의 훈련을 할 때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꾼이 됩니다. 영적 싸움에는 엄청난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 없이는 일꾼이 될 수 없으며 생활의 변화와 주님을 닮는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3) 히브리서 5:13~14


성장에는 음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 때 영적인 키가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사랑을 받게 됩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단단한 음식도 소화를 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망도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에게 기쁘게 채울 수 있습니다. 이런 자가 진정한 일꾼입니다.


(4) 베드로전서 2:2~3


음식을 사모 할수록 성장이 옵니다. 먹으려고 하고 배우려고 하는 욕구가 강해야 합니다. 병들면 입맛이 먼저 떨어집니다. 영적으로 병들면 욕구가 없습니다. 마리아처럼 사모하는 욕구가 있어야 합니다.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이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하게 찾듯이 해야 합니다. 이때 영적 성장이 옵니다. 오늘날 사모함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형식화 되고 외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자기 간증을 해 보십시오.


•이 점에 대하여 당신은 다른 어떤 예들을 알고 있습니까?


신령한 집을 짓는 것으로 비교 했습니다. 집은 한꺼번에 지을 수 없습니다. 집을 지을 때 땅을 파고 기초를 세우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쌓으면서 하나하나 설계에 의해 완성시켜 나갑니다. 반드시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신앙훈련 시키실 때 과정을 통과하게 하여 점차적으로 성장시키십니다. 야고보서 3장 1절에 성장에는 부패한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선생을 조심하라는 이유는 알지도 못하면서 전하고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적 혼란을 주는 것입니다. 양육할 때 과식하도록 하면 안 됩니다.


9. 로마서 5:17절에서는 당신이 받을 수 있는 두 가지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아야 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을 하지 않으면 성장이나 성숙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내 안에서 우선 성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와 의의 선물은 모든 말씀 속에 순종하고 살아가도록 은혜를 늘 공급하여 주십니다. 이 사실을 먼전 깨달아야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셉은 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었던 면전신앙을 우리는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보디발은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알고 요셉에게 자기 소유를 모두 맡겼습니다. 내가 순종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성장이 옵니다. 내가 순종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순종할 때 성장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0. 로마서 6:11~13절을 묵상하십시오.


(1) 당신은 자신에 대하여 무엇을 사실로 간주해야 합니까? (11절)


죄에 대하여 죽었고 의에 대하여 산 것을 간주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죄 앞에 죽은 자는 반응이 없습니다. 죄는 반응함으로 짓게 됩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에 대하여 산 것을 간주해야 합니다. 그래서 의의 새 성품에 내 몸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장이 옵니다.


(2) 현재 당신은 죄에 대하여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합니까? (12절)


죄가 나를 다스리지 못하도록 끊어 버려야 합니다. 죄가 왕 노릇 못하게 하려면 내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내 신분을 확신 할 때입니다. 이렇게 하면 내 속에서 죄와 관계를 끊어 버릴 수 가 있습니다. 다윗이 죄를 범한 후 구원의 즐거움과 자원하는 심령을 회복되기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모습은 죄인이 자기를 통해 주께로 돌아오도록 주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오늘 말로 말하면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칠십 문도들이 전도를 나가서 나타난 능력을 자랑하고 기뻐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그것을 더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내 위치 변화에 대하여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영접하여 믿는 그 순간 내 위치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새 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고 내 몸을 의의 병기로 드려야 계속 성장하는 것입니다.


(3) 당신은 무엇을 절대로 허락해서는 안 됩니까? (13절)


내 몸을 죄의 병기로 드리면 안 됩니다. 성경에는 내가 어느 쪽에 드리든지 그 드리는 쪽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즉 죄에 드리면 죄의 종이 되고 의에 드리면 의의 종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죄의 병기라는 말은 죄에 대하여 사용되는 무기라는 말입니다. 의의 병기라는 것은 의에 대한 무기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의의 병기가 되어야 합니다.


(4)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만 합니까? (13절)


적극적으로 의의 병기로 내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새 성품에 내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에서부터 성장하게 됩니다. 신령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사모하며 내 육의 눈에 보이는 것은 금하고 내 안에서는 사모함이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히 찾듯이 찾아야 내 몸을 새 사람으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내 속사람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음욕을 품었다는 말은 묵상을 했다는 말입니다. 알을 품고 있으면 반드시 새끼를 부화 시킵니다. 음욕을 품으면 죄를 낳고 맙니다. 주님은 그 마음의 동기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성품을 늘 품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옛 성품과 새 성품이 있는데 여기에 싸움이란 바울은 죽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내 자신 속에서 지배하고 있는 것이 겉으로 나옵니다. 즉 내 속에는 블랙도그와 화이트도그가 있습니다.


검은 개와 흰 개 중 어느 쪽에 양식을 주고 사느냐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블랙도그의 양식은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것(전두환, 노태우처럼 가지려는 욕심이 끝이 없는 것), 육신의 정욕은 끝까지 타락하고 싶어 하는 욕망, 이생의 자랑은 자기 이름을 남기려는 명예, 이것들이 블랙도그의 양식입니다. 검은 개는 양식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즉 옛 사람의 요구를 들어 주지 말아야 합니다. 화이트도그의 양식은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화이트도그에게 양식을 많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이 옵니다. 우리는 속사람 즉 새 성품의 성장을 위해 내 몸을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합니다.


11. 하나님은 당신이 당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계획하셨으며(로마서 5:17), 결코 죄가 당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로마서 6:13), 당신은 이 구절들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겠습니까?


지체(몸)를 주께 헌신해야 합니다. 즉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합니다. 몸을 드리면 나의 모든 것이 다 드려지는 것입니다. 헌신하는 삶이 제자의 삶입니다. 여러분은 아직까지 어떤 영역에서 죄의 병기로 드려지고 있습니까? 즉 생활면에 변화되지 못한 부분이 어떤 부분입니까? 점검하여 거부하십시오. 혹 어떤 이들은 생활의 십일조를 드리면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는 큰 것을 드리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온전히 드리지 못한 것을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온전히 드릴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 없는 생활의 십일조는 귀신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속이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주님은 큰 헌금에 대하여 칭찬하신 것은 과부의 엽전 두 달란트입니다. 과부는 생활비 전체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보시고 큰 헌금을 했다고 칭찬 하셨습니다. 십일조는 기본 헌금입니다. 십일조는 온전히 드려야 성경적인 십일조입니다.


12. 에베소서 2:8~9절은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 에베소서 2:10절에 따르면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선한 일을 위해서 우리가 예비 된 자입니다. 왜 나를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습니까? 선한 삶을 살라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구원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제 나의 목적을 알았으면 선한 삶을 살아보십시오. 선한 일이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 즉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삶입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상대편의 꼭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가는 도중에 성전에 있는 앉은뱅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성전 미문에 있는 앉은뱅이는 돈을 요구했지만 그 앉은뱅이에게 돈보다 꼭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주님께 내 이웃에 대한 질문을 한 율법사는 자기를 나타내려고 한 의도였습니다. 주님은 강도 만난 자에게 자비를 베푼 그가 이웃이라고 율법사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사마리아 인은 강도 만난 자에게 자기희생으로 그 이웃을 돌보아 주고 책임을 저 줌으로 그 사람의 현재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사랑은 희생하는 것이며 진실한 봉사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같은 사랑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을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몸으로 제일 가까운 자에게 먼저 행하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아직도 당신 속에서 역사하십니까?


죽을 때까지 내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사랑의 원천이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내 속에 있는 자원을 사용하는 자가 말씀의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빌립보서 1:6)


그리스도의 날까지 즉 끝까지 선한 일을 포기하지 않고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에게 선행을 하는 자가 성숙한 자입니다. 어린 아이의 특성은 주는 것이 없습니다. 엄마 입에 들어가는 것도 빼앗아 먹습니다. 크면 나누어 줍니다. 성장한 사람은 선행을 행하는 자입니다. 선행이 없는 자는 미성숙한 자입니다. 선행과 봉사와 헌신하는 자는 성장한 자입니다.


당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하나님께서 당신 속에서 역사하시는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하십시오. 당신이 생활 속에서 당하는 고난들은 오히려 당신에게 격려가 되어야 합니다. 그 고난들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당신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며, 당신이 그리스도를 닮도록 변화시키고 계심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간 멈추고 그가 이미 이루셨고 지금 이루어 가시고 또 장차 이루어 주실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십시오.


사람의 외모는 단지 하나님이 빚은 형태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진정한 모습은 예술가이신 하나님이 아직도 창조하고 계시는 속사람입니다.


고난의 과정을 잘 통과 한자가 성숙한 자입니다. 여기에서 많은 자들이 갈등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성숙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성숙한 자만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잘 감당합니다. 욥기 서에서 주는 교훈은 의인도 즉 성도도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을 통해 욥은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성숙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온전한 자녀로 성장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고난에서 성장이 옵니다. 이렇게 성장한 자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헌신을 할 수 있는 일꾼으로 제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떻게 행할까?


13.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하여야 할 것에 대하여 다음의 성서적인 지침들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1) 로마서 8장 4절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지시에 순복하고 변명이나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순종할 때 성장이옵니다.


(2) 고린도후서 5장 7절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행하려면 보이는 것으로 하지 않고 말씀을 좇아 해야 합니다. 광야의 열 지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가다가 그 열지 파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눈에 보이는 네피림 즉 거인들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보았을 때 광야의 식탁에 차려진 밥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주장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성장이 옵니다. 보는 것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3)  에베소서 5장 2절


사랑 가운데서 행해야 합니다. 자기중심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요구가 무엇인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사랑으로 행하게 되고 행하므로 성장하게 됩니다.


(4) 요한일서 2장 6절


하나님이 하시는 수준으로 즉 주님의 수준으로 행하려고 할 때 성장이 옵니다. 질문에서 술, 담배, 하는 것이 죄입니까? 질문하면 여기에는 성장이 없습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주님의 수준에 이르려는 열심과 닮으려고 하는 열심으로 해야 성장이 옵니다. 죄만 아니면 행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벼랑 끝에서 걸어가는 위험과 같습니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고 주님은 나의 머리이시기 때문에 주님의 지시에 따를 때 반드시 성장이 옵니다.


14. 요한일서 1:6~10절을 사용해서,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서 행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비교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교제 가운데 살아야 성장이 옵니다. 하나님의 교제 가운데 사는 자는 첫째,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역사하기 때문에 사랑하게 됩니다. 둘째, 빛 가운데서 행합니다. 진리 즉 말씀 가운데서 살아가게 됩니다. 진리 가운데 사는 자가 교인들을 이끌어 갑니다. 그러므로 당당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빛 가운데의 삶은 거리낌이 없습니다. 즉 흠이 없습니다. 구약에 다니엘의 흠을 찾으려고 했지만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넷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됩니다. 에녹은 65세 때 하나님을 알고 삼백년 동안 동행을 하였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살았습니다. 즉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비록 모세처럼 홍해 바다를 갈라놓은 능력은 체험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고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모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하더라도 에녹과 같은 삶은 살 수 있습니다. 다섯째, 서로 피차 교제하는 삶이 옵니다. 즉 연합된 삶이 옵니다. 부부는 반드시 연합된 삶이 있어야 합니다. 교제가 없으면 이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가까이 하는 자는 부부도 가까이 하게 되고 형제와도 가까이 교제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도 교제를 하지 못합니다. 즉 지체의 삶이 없습니다. 교제를 못하고 부인하면 무 교회 주의자가 됩니다. 하나님만 교제하고 사람과는 교제를 끊어 버리는 삶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하나입니다. 이 관계를 끊어 놓을 자가 없습니다. 내가 주님과 교제한다하면서 성도와의 교제를 거부하고, 하지 못하면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판단이고 자기 생각입니다. 성경에 부자 청년이 주님께 찾아와 영생에 대해 질문했을 때 주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어릴 때부터 다 지켰다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은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그 청년은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교제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판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제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거짓말 한 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교제 한다고 하면서 이웃과 형제와 교제 못하면 거짓말하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성숙한 삶


15.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빌립보서 3:13~15)


반드시 목표가 있어야 성장이 옵니다. 바울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세웠습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삶이였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달려갔습니다. 우리의 생의 목표도 중요합니다. 내 생의 목표가 분명할 때 성장이 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개인의 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까지 닮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도 닮으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고난을 닮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가장 큰 능력은 고난 이였습니다. 그 고난에서는 반드시 영광이 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한다면 주님과 똑 같이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자신의 생의 목표를 세워 보십시오.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는 구원을 받은 성도가 어떻게 바르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하여 깨닫고 알게 될 때 내 생의 목표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16. 고린도전서 15:58절을 읽으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거하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합니까?


주님의 일에는 더욱 힘써 열심히 하라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성장합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4장 34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있어서 자기 양식처럼 여기고 사셨습니다. 배가 고픈 자는 먹을 것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일을 배고픈 자가 양식을 사모하듯이 하나님의 일을 그만큼 사모하고 귀히 여기셨습니다. 배가 고픈 자는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이처럼 주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시면 나는 못산다는 각오로 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빚으로 여겼습니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이런 자세에서 죽기 살기로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주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일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목숨을 걸고 하여도 헛된 것이 많습니다. 군사 정권 전두환, 노태우는 결국 헛되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헛되지 않다”라는 말은 반드시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은 저 하늘에서 상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있다는 말입니다. 구약 사렛 땅 과부가 자기의 마지막 양식을 주의 종에게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17. 당신이 영적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영역들은 무엇입니까?


인격의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부부는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보십시오. 그리고 남편이 작은 일부터 아내의 일을 도와주어 보십시오. 이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아내는 사랑하므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1) 베드로후서 3장 18절


은혜와 지식을 따라 성장하는 것이 진짜 성장입니다. 은혜도 성장하고 하늘의 지식도 성장해야 합니다. 은혜와 지식이 말씀을 따라 성장해야 합니다. 이런 경험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균형이 잡혀서 일꾼 제자로 되어져가는 것입니다.


(2) 요한일서 4장 16~17절


사랑을 행하고 경험을 할 때 변화가 옵니다. 가장 온전한 성장은 계속 사랑을 해야 성장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미워하는데 계속 미워하면 미움이 증폭됩니다. 그러므로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 사랑을 할 때 사랑이 증폭하므로 아름다운 내 인격으로 성장합니다.


18. 데모데후서 4:7~8절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동행한 삶에 대하여 무엇을 말할 수 있었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마지막 삶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를 그려 보십시오. 바울은 아름답게 마무리하려고 위에 것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자신이 주 앞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많으면 자기 생의 끝마무리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믿는 자는 반드시 끝마무리를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신앙 성장이 옵니다. 바울은 준비의 삶 때문에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승리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을 생각하고 살 때에 계속 내 인격이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설 것을 생각할 때 위에 것에 더 가치를 두고 계속 성장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환경만 바라보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고 열심히 나아갈 때 반드시 하나님이 준비하여 두신 것을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나는 백을 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수억으로 계획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런 사실을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가 미래에 대하여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은 다려 갈 길을 다 가면서 뒤에 것을 잊어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과거의 잘못이 현재 내가 가는 길에 영향을 조금도 주지 못한다는 사죄의 확신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에 발목 잡혀 괴로워하고 고통 함으로 현재의 삶에 힘을 잃고 있습니다. 자기가 자신을 용서 못하고 자책감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죄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고 교만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를 영접하는 그 순간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용서 받았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 값을 100%로 지불하셨습니다. 죄 때문에 지옥 갈 일은 없습니다. 이 말은 용서 받았다는 말이고 하나님은 용서한 죄는 다시 기억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에 하나님 앞에 영광된 면류관과 상급을 바라보고 생활할 때 무섭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상에 대하여 위엣 것을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갔습니다. 이런 자세만이 성장과 함께 어떤 환경에서도 정복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복을 하고 맙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소돔 백성들과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 왔을 때 소돔의 왕이 백성들만 돌려 보내주고 전리품은 모두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전리품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거절하고 신들매 라도 취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네 말이 내가 아브라함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봐 거절하고 취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소돔 왕 때문에 혹 복을 받아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기뻐하시고 그날 밤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의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런 믿음은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길을 가다가

돈을 주우면 하나님이 주셨다고 좋아 합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신앙으로 살 때 위엣 것을 바라 볼 수 있고 내 모든 삶의 영역에서 순위가 정리 될 것입니다.


성장의 도표


19. 누가복음 2:52절을 읽으십시오. 성장은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말씀

 

 

 

 

 

 

 

교제의 삶

기도

 

하나님의 사랑

 

육체적인 성장

사회적인 성장

 

사람의 사랑

 

전도의 삶

정신적인 성장

영적 성장

순종

 

 

 

 

 

 

 

인격적인 삶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성장입니다. 이런 성장이 주님의 모습대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20. 마가복음 12:30~31절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과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범위를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였습니다. 사랑, 사랑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장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랑은 말씀 순종 즉 말씀에 사로잡힌 삶과 말씀에 사로잡힌 기도와 말씀에 사로잡힌 순종이 수레바퀴의 삶입니다. 여기에 행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사랑하는 것은 교제의 삶입니다. 전도하는 이유 중에는 영적 교제를 하기 위해 그 범위를 넓히기 위해 전도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격적인 삶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52절의 성장과 마가복음 12:30~31절로 성도는 성장해야 합니다.


요 약


성숙을 향한 전진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숙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같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은 현재 죄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죄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출발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장을 시작하는 표지입니다. 믿는 자는 자신의 성장을 돕는 하나님의 자원을 풍성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성장의 과정


영적 성장은 신체적인 성장과 비슷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의 삶 가운데 역사하는 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시작하신 일을 성취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며 자신의 삶을 다스려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행할까?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 가는 것은 길을 걷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본을 그대로 따르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가며, 믿음과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걸어갑니다.


성숙한 삶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따라가며, 그의 일에 사로 잡혀있으며,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수고를 잊지 않으시며, 언젠가 그에게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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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그리스도의 주재 권(主宰 權)


예수 그리스도는 구주시며 주님이십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많은 명칭 중에 주님이라는 명칭이 단연 가장 널리 사용되었고, 널리 알려져 있으며 또 신학적으로 중요하다. 주님이라는 낱말은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동의어가 되어 버렸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주재 권(主宰 權)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당신 생활의 어느 영역이 그분의 주재 권에 영향을 받습니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경험 중 종종 등한시되는 이러한 분야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1. 명칭은 그것을 받은 사람에 대한 중요한 시실을 보여 줍니다. 다음 구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명칭은 무엇입니까?


(1) 요한복음 13장 13절


예수님의 대표적인 이름은 “주님”이십니다. “주”는 주인을 말하며, “선생”은 자신의 개인적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분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에게 배워야 하고 주님은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성경에서 우리를 신부로 볼 때 주님은 신랑이십니다. 우리의 몸으로 볼 때 주님은 머리이십니다. 우리가 동생으로 보았을 때 주님은 맏형이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주님의 주재 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주님의 지시에 따라 행동을 해야 합니다. 제일 좋은 신앙은 주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그리스도의 인격의 수준까지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백부장이 주님의 주재 권을 인정했을 때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주님은 최고로 칭찬을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방 여인 수르보니게 여인이 딸 고치기 위해 주님 앞에 엎드렸을 때 개 취급을 당했어도 그 여인은 “개도 주인의 밥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면서 주님의 주재 권을 인정했을 때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주재 권은 하나님이 세운 종에게도 동일합니다. 이것을 권위의식으로 보면 안 됩니다. 비록 목회자가 실수하고 부족해도 주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는 그 사람은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모세가 실수 했지만 아론과 미리암이 동생 모세를 책망했을 때 하나님은 실수한 모세보다 하나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지 않은 잘못된 그 태도를 보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재 권에는 반드시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 기관의 기관장은 하나님이 세웠기 때문에 인격적인 면에서 부족한 것이 있어도 하나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성장한 믿음이고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믿음입니다. 구역장도 동일합니다. 구역 원들은 반드시 구역장에게 순종해야 주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는 좋은 신앙입니다. 인격적인 면에서 부족하다 하여 무시하는 것과 순종하지 않는 것은 주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지 않는 아론과 미리암의 태도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재 권을 인정할 때 질서도 있고 좋은 태도가 됩니다.


(2) 사도행전 2장 36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선지자, 나의 제사장, 나의 왕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3) 요한계시록 19장 16절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십니다. 주님은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주인이십니다. 바람도, 폭풍도, 자연도 주님께 복종했습니다. 주님은 편재성을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님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물을 던졌을 때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바다 속의 모든 것까지 다스리시는 분임을 알 수 있고,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 명칭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알려 주는 바를 요약해 보십시오.


우리를 구체적으로 돕고 계시면서 인도하여 주시고 보여 주시고 가르치시고 내 생활면까지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분을 믿으면 정확하게 인도하여 주십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다음 것들의 주가 되십니다. 서로 관계되는 것을 연결하십시오.


모든 창조물                •         • 골로새서 1:18

산 자와 죽은 자           •         • 골로새서 1:16~17

모든 그리스도인 - 교회  •         • 로마서 14:9


▶모든 창조물(골로새서 1:18) : 모든 만물의 주인이 되십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로마서 14:9) : 산자와 죽은 자의 주인이 되십니다. 이 말은 살았을 때에도 그리고 죽은 후에도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말입니다. 즉 다스리신다는 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 교회(골로새서 1:16~17) : 모든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십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 성도와 교회의 머리 되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모든 우주는 그리스도께서 통치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작은 부분은 드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을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마음 속에는 온 우주가 다 들어 있습니다. 먼저 내 마음속에 순종하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주에서 차지하고 계신 위치를 우리 마음속에서도 동일하게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주에서 차지하고 계신 위치를 우리 마음속에서도 동일하게 드려야 합니다.”


3.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합하다고 느끼는 대로 “주님”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십시오. 사전을 사용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은 최고의 통치자를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 모든 소유권과 회수권을 다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욥기 서에서 욥이 하루아침에 열 명이라는 자식을 다 잃어버리고 재산까지 다 잃어버렸을 때 욥은 1장 21절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자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그러한 사항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였습니다. 욥의 신앙이 더욱 깊어 졌을 때 정금 같은 믿음의 인격자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선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종은 나이고 주님은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에게 내 생명까지도 요구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말은 내 전체 영역에 하나님이 주인 이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자 만이 순종할 수 있는 좋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4. 빌립보서 2:9~11절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높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는 가장 높은 위치에 계신 분이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높여놓으셨습니다. 가장 높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름은 그 위치와 신분을 나타냅니다. 주님은 최고의 높은 위치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고의 존경과 경의를 표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시험은 두 종류가 있는데, 육신의 정욕과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입니다.


믿음으로 되는 의는 반드시 행함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를 믿었습니다. 이삭이 나무를 지고 목적지에 올라가면서 아버지께 질문을 했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물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여 놓으셨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았습니다. 그 후 그는 그 의를 행함으로 인정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자에게 예비 된 축복을 보여 주십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번제 단에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가시 덩굴에 걸려 있는 염소를 보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은 그대로 하나님이 친히 제물을 예비하여 놓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경외의 대상이십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불순종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주재 권을 반드시 인정해야 합니다. 죽은 후에도 모든 믿는 자와 믿지 않았던 자들도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주님으로 부르도록 하나님께서는 만드십니다. 


5. 요한계시록 5:12절에는 그리스도의 주재 권이 어떻게 인정되었습니까?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하셨습니다. 무형적이건 유형적이건 주님께서는 능력과 영광과 찬송을 받으실 주인이십니다. 세상은 이런 것을 받으려고 하지만 받지 못합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요구하십니다. 즉 요셉과 같은 삶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보디발이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것을 보고 자기 소유를 모두 맡겼습니다. 단 자기 아내만 예외였습니다. 요셉도 하나님의 주재 권을 철저히 인정하여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런 자세를 원하십니다.


6. 고린도전서 6:19~20절을 읽으십시오. 당신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까?


주님이 자기 피 값을 지불하고 나를 사주셨습니다. 즉 사랑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친히 생명의 값을 지불하고 나의 주인이 되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의 위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능력으로 주인이 되십니다. 주님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능력과 자신을 내 대신 십자가에 죽어 주시는 사랑을 가지고 몸소 실천하시므로 나의 주신이 되신 것입니다. 주님은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함께 하여 주십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는 명령 속에는 가나안 땅에는 큰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잘 알게 하여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왜 삶에 갈등이 옵니까? 그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잘 알고 주님을 잘 알 때, 순종하는 생활과 성장이 옵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주인이 되셨습니다. 무력으로 주인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 생애를 미래까지 전적으로 맡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주님을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그 고난까지 알기를 원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그 고난을 자기에게 채웠습니다.


•이제 당신은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몸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말로, 혀로만 하지 말고 몸으로 행해야 합니다. 몸으로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행동으로 실천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 몸으로 실천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나도 몸 바쳐서 순종으로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로드(Lord)심으로 신앙생활 하는 성도입니다.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존재해 오셨고 또 언제나 존재하실 것입니다. 현존하는 모든 사람이 다 그분을 자신들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주님 되시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고 또 순종하는 특권은 지금 당장에라도 가능한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실천이 뒤따르는 결단에 의해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활에 주님이 되시도록 허락하십시오.


결심함으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라


7.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자의 생활 가운데서 어떤 위치를 차지해야 합니까? (골로새서 1:18)


먼저는 우리 마음에 주님께서 내 머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장세동의 머리는 전두환이었습니다. 이것은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고생을 많이 하고 역사 앞에 부끄러운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내 머리이십니다. 이 말은 모든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몸은 머리의 지시에 순종할 다름입니다. 내 모든 삶의 영역의 지시 자는 주님이십니다. 백부장은 다만 주님께서 말씀만 하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수넴 여인은 주님의 상에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했습니다. 절대 주인으로 믿었습니다. 명령만 하여달라고 했습니다. 교회 성도는 반드시 이런 로드심이 있어야 좋은 일꾼입니다.


목회자에게 따지고 하는 것은 결코 좋은 태도가 아니며 영적으로 똑똑한 것이 아닙니다. 주재 권을 인정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목회자로 인정할 때 로드심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과 복종하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인간에게 순종하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자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은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지도자로 사용하셨습니다. 결국 순종하고 복종하는 자가 준비 된 자입니다.


이런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바울의 로드심은 그리스도 안에는 “아니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절대 주인으로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태도입니다. 즉 모든 결정권은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실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인내했습니다. 내 뜻대로 안된다고 불평하면 내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유혹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주시고 회수하시는 절대자의 주재 권을 인정하고 감사만하고 인내하면서 몸으로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는 계십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적습니다.”


8. 로마서 12:1절은 당신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몸을 드리고 살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첫째, 주님은 내 머리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결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예”만하고 살아야 합니다. 손이 만약에 머리의 지시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지시에 몸을 드려 실천해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죽여서 드렸습니다. 신약에는 산제사로 드렸습니다. 구약의 제사를 죽여서 드렸다는 것은 신약의 제사에는 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것입니다. 구약에 번제물에 내장을 모두 갈라내고 각을 떠서 드려졌습니다. 말을 하면 살아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각을 떼낼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순종입니다. 번제물은 번제 단위에 올려져 불에 태워 졌습니다. 신약에는 십자가 위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없이 순종을 해야 합니다. 내 뜻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선 내 의지, 내 뜻, 내 생각이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살아 있으면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십자가 위에서 처리 되지 않은 자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처리 된 자만이 몸을 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를 영접하는 그 순간 내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없이 순종하는 것이 산제사입니다. 말이 많으면 일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교회 봉사와 헌신은 몸으로만 해야 합니다. 이 말은 로드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이것이 바로 영적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예배란 원문의 뜻으로 사랑스러움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가장 합당한 봉사와 섬김은 사랑스러움의 섬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찾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몸을 드릴 때 나타납니다. 종은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종은 순종이 사명입니다. 주인이 부당한 순종을 요구하여도 복종해야 합니다. 성도는 목회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대접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순종을 말합니다. 목자를 따라가야 하는 음성입니다. 성도는 목회자 말에 순종하고 복종하기 위해 듣는 것입니다. 목자가 부를 때는 이끌고 가기 위해서 부르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양이 되십시오. 따지는 신앙은 로드심이 아닙니다.


9. 당신에게 꼭 알 맞는 문장을 아래에 표시해 보십시오.


나는 보통 생각하거나 느끼기를 :


       예수님은 참으로 나의 문제를 이해하지는 않으신다.

       예수님은 아마 내가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요구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아마 내가 즐길 수 없는 그러한 직업을 갖기 원하실  거다.

       예수님은 내가 결혼하는 것을 막으실 것이다.

       예수님은 나의 재산이나 취미나 또는 친구가 주는 즐거움을 빼앗아 가실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어떤 “큰”일 가운데 있을 때는 도움을 주실 수 있겠지만 “사소한”일에 대해서는 돌봐 주시지 않을 것이다.


•당신 생활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께서 접근하시는 것을 막는 또 다른 두려움들을 열거하십시오.


또 다른 요소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나만 알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이해 못할 것이라고 하는 두려움과 예수님은 나를 이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실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산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주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 때 긍정적으로 대처하면 산제사로 내 몸을 얼마든지 드릴 수가 있습니다. 두려움이 나의 결혼을 주님께서 막아서 바울처럼 살게 하실 것이고, 두려움을 쫓아 버리시고 현숙한 아내를 주실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즉 긍정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더 좋은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체크를 통해서 자신을 점검하여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하다보면 부정적인 면과 두려움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숨기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이끌어가기도 합니다. 두려움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29:11절은 이러한 두려움을 어떻게 없애 줍니까?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 때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재앙이 아니고 평안입니다. 장래에 소망을 줍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장차 게바가 되리라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해롭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죽는 그 자리에도 주님께서 대신 죽어 주시고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 때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주님은 나를 나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숨어 살았지만 하나님은 다 아시고 찾아 주셨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핍박 했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바울을 알고 사울아, 사울아 하고 찾아 주셨습니다. 주님은 결코 나에게 해를 주시려고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잘 알고 사랑하기 때문에 찾아주신 것입니다. 두려움은 사탄이 주는 무기입니다. 물리치고 믿음의 방패를 사용하고 말씀의 칼로 공격하십시오. 신앙생활의 기초는 내가 주님을 잘 알아가는 것이며 주님을 잘 알 때 시험을 이기고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하였습니다.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지만 그 속에서도 주님을 알고 주님의 사랑과 전능을 알았기 때문에 넉넉히 이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체휼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나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경험하시고 나를 이해하시고 탄식으로 기도하시면서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감당할 만한 믿음과 은사를 주어 나를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알기 때문에 능력에 맞게 달란트를 주시고 그 재능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결국 해결책은 하나님을 잘 아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신앙을 파괴시킵니다. 이것은 사탄의 주 무기이므로 분별하고 예수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가 되시므로, 분명하고도 뚜렷한 의지의 활동은 그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부가 결혼의 서약 대 앞에서 ‘서약 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애정 속에서 영원히 그녀의 남편을 왕좌에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 후의 모든 세월을 그녀는 그 한 순간의 의지의 행동에 표현했던 모든 것을 세심하게 실천해 나아갑니다.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 왕조를 드리는 것도 똑 같은 의지의 한 행동으로부터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왕좌를 드리는 결단은 자동적으로 자신을 왕좌에서 내려놓는 것과 동일한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J. 오스왈드 샌더스-


10. 다음 질문들을 깊이 생각해 보고 해당란에 표시하십시오.


(1) 누가 당신의 삶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완전히 압니까? (예수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복의 근원이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장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네 씨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벗이라고 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소돔의 불 심판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을 때 아브라함은 친구처럼 대화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의인과 함께 멸망하십니까? 하여 오십 명에서 열 명까지 대화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지 않고 대화를 하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요구하셨을 때 벗으로 또 약속으로 부당하다고 따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갈등은 현실과 하나님의 약속이 차이가 날 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알고 나면 갈등이 해소 되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독자도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놓으신 것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2) 누가 당신의 삶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제일 잘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만찬 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세 번 부인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 보다 더 잘 알고 계셨습니다. 형제의 믿음을 성장 시킬 수 있는 자는 자기의 부족을 잘 아는 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대로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사용하십니다.


왜 이렇게 좋으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까? 첫째, 자기가 주인 노릇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더 잘 안다하는 것보다 주님이 나를 더 잘 안다고 깨달을 때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너무 강할 때 섬기지 못합니다. 자기사랑 자기 정 때문에 섬기지 못합니다. 이것은 불신앙은 아니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포기해야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주님도 십자가를 지실 때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맡기셨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겼을 때 하나님이 이끌어 가십니다. 주님을 위해 주고자 하는 자는 주님께 완전히 맡기는 자입니다. “주님 뜻대로 하소서” 맡기는 것이 로드심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겸손입니다. 베드로에 대해 주님이 잘 아시고 부인할 것이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주님 저는 부족합니다. 도와주소서. 라고 하지 않고 장담을 했습니다. 주님 보다 내가 내 자신을 더 잘 안다는 태도를 가졌을 때 결국 주님을 부인 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사실 베드로 자신 보다 더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의 주재 권을, 눈에 보이는 목회자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주님께 주재 권을 인정하는 자의 신앙입니다.


(3) 누가 당신의 삶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정말로 항상 바라고 있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밤낮 부르짖고 기도하는 자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님은 사랑이 많으십니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은 긍휼이 불붙었다고 하였습니다. 긍휼은 구약에 “모태”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낳은 아이를 혹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태에 있는 아이는 열 달 동안 기형아이라 할지라도 길러 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심령으로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고 키우십니다. 신약에는 “애”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애간장이 끊어진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문둥병자가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했을 때 주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셨습니다. 이때 주님은 그를 긍휼이 여기실 때 애간장이 끊어지는 심령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즉 사랑으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이런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인격입니다. 이렇게 나를 잘 알고 계신 주님을 내가 왜 섬기지 못합니까? 왜 자신이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합니까? 실제로 주님은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는데 나는 왜 순종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자기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자기에 대한 연민의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 속에 들어가서 조명하여 보면 우상 숭배 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 상태입니다.


로드심이 결실되려면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다윗과 신약의 바울은 알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35~37절에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지만 여기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므로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었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을 알게 하여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 때 로드의 신앙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자기 자신을 주께 굴복시키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즉 자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주님은 나를 따라 오려면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실제로 십자가에 죽는 것까지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했을 때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완전히 바쳐드려야 합니다.

(4) 왜 그렇습니까?


주님은 나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겸손하게 결심을 하고 로드의 믿음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11.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을 묵상하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삶 속에 예수님이 주님 되심을 인정하겠다고 결심하셨습니까?


기도로 결심을 하고 로드심의 신앙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즉 주님을 내 머리로 인정하고 나의 지시자로 믿고 나는 순종하는 자라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백부장처럼 “말씀만 하옵소서”라는 것과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개들도 주인의 상에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는 것처럼 주님을 자기 주인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전도서 3장 5~6절 말씀처럼 범사에 인정하는 삶을 살 때 나를 지도하시고 이끌어 가십니다. 나를 포기 하십시오. 주께 굴복하는 자세와 순종하는 삶이 주님 앞에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는 “예”만 있다고 한 것은 결단과 결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심하고 실천하므로 그리스도를 인정해야합니다. 내 자신을 부인하기로 결심한 것을 내 생활 속에 나타내어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의가 믿음이라고 한다면 모리아 산에서 보이라고 하였을 때 이삭을 번제 단 위에 올려놓음으로 하나님께 증거로 보여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저울질 데겔에서 통과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실천함으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라


의도하는 바가 좋다고 그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출발을 잘했다고 해서 그 끝맺음도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결심은 다만 시작에 불과 합니다. 당신의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겠다고 일단 결심한 후에는, 시간 시간마다 그에게 복종하고 매일 매일 생활 속에서 그 분께 순종함으로써 그가 당신의 주인이심을 입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주재권이 입증되어야 할 삶의 몇 가지 영역들이 다음 그림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1) 소유욕


자동차는 내가 주인인가? 예수님께서 주인이십니까? 예수님께서 주인이시라면 상대가 잘못하였더라도 영적으로 대하면서 그 영혼 구원을 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면 나의 편리와 내 중심으로 상대가 잘못하였으면 변상 시키려고만 할 것입니다. 양보도 아니 하려고 합니다. 내가 손해 보더라도 주님이 원하는 쪽으로 가야 주님이 주인이 되십니다.


(2) 결혼 영역


내가 주인이면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을 나의 조건에서 환경, 배경을 먼저 찾으며 신앙은 보지 아니합니다. 주님이 주인이시라면 신앙을 먼저 보고 주님의 뜻에 따라 찾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주인으로 배후자를 골라 주시면 정확합니다.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도 기적이지만 평지와 탄탄한 길이 더욱 정확한 기적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선택한다면 온전하지 못할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3) 나 자신


자 자신이 주인이라면 강철보다 더 강합니다. 내 자신의 고집과 자아가 철길의 강철 같은 강한 것을 누가 꺾을 수가 있겠습니까? 내 자신을 포기해야 주님께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실제로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 피로 나를 지옥의 저주에서 살려 주셨습니다.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주님이심을 인정하고 굴복하면서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 돈의 영역


마지막 때 사람들이 돈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십일조 못하는 것은 돈이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가 주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성수 못하는 것은 자기가 주인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로드(Lord)의 신앙인 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인이 되었을 때 십일조하고 주일성수를 할 수 있습니다. 돈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기 위해 필요로 해야 할 것입니다.


(5) 직업의 영역


직장, 사업, 그 영역에서 주님께서 주인이 되고 계시는가? 아니면 내가 주인이 되고 있는가? 를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주인이면 월급만 많이 주면 되고 신앙과 상관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인이시라면 월급이 적고 수입이 적어도 주일을 지키고 전도 할 수 있는 그런 직업과 사업을 할 것입니다.


(6) 주택


집을 사는데 있어서 교회중심으로 하지 않는 것은 자기가 주인 노릇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인이시라면 집을 살 때 교회 가까이에 사며 성도의 교제의 장소로 활용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룸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마리아 등의 집은 교회로 사용을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7) 여가 생활


골프 치는 일에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교회 일은 시간이 있어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주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가 생활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쪽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8) 교육


내가 주인으로 내 중심의 교육인가? 아니면 하나님 중심으로 자녀 교육을 하고 있는가?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이루어 져야 합니다.


공란은 내가 현재 하는 모든 영역에서 누가 주인 인가를 기록하여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인이 아닌 그 영역들을 주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주님을 주인으로 결심하여 실제로 행동할 수 있는가를 체크해 보십시오. 로드심이 되고 있는 영역은 ○으로 표시하고 그렇지 아니한 영역은 ×표로 하여 ×표는 결단과 결심으로 로드심으로 실천하여 보십시오. 로드심의 영역에는 반드시 기쁨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기쁨과 감사가 없으면 진정한 로드심이 아닙니다. 로드심에는 기쁨과 감사가 있을 때 그 증표가 됩니다. 


예를 들면, 요나는 니느웨 성에 가서 “회개하라 사십일 후에는 망한다”고 전파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니느웨 성은 임금으로부터 백성이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보류 되었습니다. 그때 요나는 성질을 부렸습니다. 순종하기는 했는데 기쁨도 감사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이것은 로드심이 아닙니다. 내가 로드의 영역에 기쁨과 감사가 있는가? 를 체크해 보십시오. 억지로 하는 것은 로드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로드심으로 훈련시키시고자 박 넝쿨을 준비 하였습니다. 더운 날씨에 박 넝쿨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을 때 요나는 기뻤습니다.


다음날 벌레가 그 박 넝쿨을 갉아먹어 시들게 하였습니다. 요나는 이일로 또 성질을 부렸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박 넝쿨로 성냄이 어찌 합당하느냐”했을 때 요나는 “성내어 죽기까지 합당하니이다”라고 대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수고도 아니 한 박 넝쿨을 사랑하였거늘 하물며 니느웨는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지 아니하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요나 같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사는 영역을 잘 살펴 모든 영역에서 주님이 주인이 되도록 해야 일꾼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로드신앙 -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 속에서 죽든지 살든지 주님께 맡겼습니다. - 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고 하는 신앙이 로드심입니다. 불평불만을 토해 내는 것은 내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아니 주실지라도 예수님을 주신 이것 하나만으로도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12. 잠깐 멈추고,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을 얼마나 실천했나를 평가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을 지배하시는가를 아는 좋은 방법은 “나는 이 영역에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꺼이 하고자 하는가?” 또는 “이 영역에서 되어 질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해 보는 것입니다.


(1) 위의 그림에 있는 여러 영역들 중에서 당신이 그리스도의 지배를 허락지 않은 것을 적어 보십시오.


성도 관계에서 로드심이 안 되는 것을 체크하여 보십시오. 순종하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을 교재의 그림을 보고 한번 체크하여 로드심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체크하여 안 되는 부분은 계속 기도하면서 자백하면서 결단과 결심으로 행하면 로드가 됩니다.


(2) 그리스도께서 지배하시도록 허락하지 않은 그 외의 영역들이 있으면 적어 보십시오.

 

그림에 없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기록하여 보십시오. 술, 담배, 도박, 노래방 등등 친구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영역에서 교제하는 영역에서 체크하여 보십시오.


(3) 이러한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해결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한번 계획을 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매일 저녁에 내 자신을 체크하여 보십시오. 예로서, 아내에게, 남편에게, 사랑하는 일에, 성질을 부리는 것에 대해 매일 체크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화내고 있는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를 성경 구절을 찾아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화낼 때마다 그 구절을 읽든지 암기하여 그 말씀을 붙들고 이겨 보십시오. 3개월 동안 계속 노력하면 반드시 변하게 됩니다. 담배 하루 한 갑을 피우는데 하루에 반 갑으로 줄어든 것은 변한 것입니다. 완벽한 변화란 이 땅에서는 없습니다. 내 영역 100%에서 단 1%가 변해도 성숙입니다. 여기에는 칭찬을 하여 주어야 합니다. 부족한 점에는 격려를 하여 주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면하는 문제는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주님을 위해서 일하려 하지 않고 더 많은 돈과 시간과 지식을 확보한 후에 하려는 것입니다. 문제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소유했느냐에 상관없이 현재 당신의 삶이 주님의 지배하에 있느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13. 당신이 지신의 생활을 주관하려고 할 때마다 당신은 곧 불행하고 불안해질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6~7절은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말해 줍니까?


주님께 겸손히 맡기는 것이 로드심입니다. 기도 응답까지도 주님께 맡겨야 로드심입니다. 로드심의 예화를 들어보면, 시골 징검다리를 건너 갈 수 없을 때 잘 건너는 사람의 등에 업혀서 건너갑니다. 여기에는 자신을 맡기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듯이 모든 영역에서 주님께 맡기는 것이 로드심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심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맡길 때 하나님의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과 생각까지 지켜 주십니다. 아예 주고 사는 것까지 주께 맡기고 사십시오.


이 구절을 기초로 하여 아래 그림에 나타난 사람의 해결책을 빈칸에 그려 넣으십시오.

 


   

 

 

 14. 염려와 근심을 그리스도께 맡기지 않으면 무슨 일이 발생합니까? (마가복음 4:18~19)


염려, 근심, 불안은 로드심이 안 되는 감정의 상태인데 이것은 맡기지 못하여 일어나는 불신앙입니다. 로드심이 된 자는 모든 것 감사하고 맡깁니다. 감사와 찬양은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그 열매를 취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감사와 찬양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는 감사와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염려, 근심, 불안, 재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결실치 못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징검다리를 건너가지 못한 상태와 같습니다. 업혀서 건너가지도 못한 자입니다. 이런 상태는 결실을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일이 어떻게 발생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로드심이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다윗은 전쟁하러 갈 때마다 “하나님이여 내 손에 붙이셨습니까?”라고 하나님께 물어 보는 삶이였습니다. 이것은 항상 주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는 삶이였습니다. 주재 권을 인정하는 자가 좋은 신앙입니다. 백부장처럼 주님 말씀만 하십시오, 라는 로드심을 가져야 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행하도록 부름 받은 세 가지 일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9:23)

 

    취해야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당신

    할 행동            자신의 말로 쓰십시오.

                                                         

                                                         

                                                         

                                                         


묵상에 대한 설명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제자의 삶의 표준입니다. 부인한다는 것은 첫째, 나의 불가능한 것을 말합니다. 내 힘으로 안 됩니다. 스룹바벨은 오직 여호와의 힘으로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삶입니다. 내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셋째,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실제 순종의 삶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로드심의 핵심적 성경 구절은 누가복음 9장 24절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15. 골로새서 3:23~24절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가장 적당한 답에 표시하고, 그것이 왜 그런지 설명해 보십시오.) 사람을 섬기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더 성실하게 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기 때문에, 그 일상적인 일을 전심으로 행해야 합니다.


일상적인 일을 전심을 다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탁월하게 행하는 것은 로드심이 된 자를 말합니다. 내 생애를 주님께 전적으로 맡긴 자입니다. 이런 자는 탁월하게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섬기는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 더 탁월하게 남편을 머리로 섬길 수가 있고, 전도도, 예배도 탁월하게 드릴 수 가 있습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자는 차를 운전하여 가다가 상대편이 잘못하여 차에 손상을 입혀도 내가 손해를 보고 전도를 하면 로드심이 훈련된 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골로새서 3장 23~24절에 제자 교육의 포인트 구절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목회자가 비록 잘못하였다 할지라도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로드심을 발휘할 때 하나님께서 인정하여 주고 복을 주십니다. 로드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분적으로 볼 때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큰 축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버렸을 때 영적으로 육적으로 여러 배로 받았습니다. 무형적인 재산도 받게 됩니다. 하늘의 기쁨과 평안과 남에게 칭찬도 받게 됩니다. 많은 영혼을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 삭개오를 자신의 자손이라 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셨습니다. 재산 중에 재산이 사람입니다. 사람을 아는 것이 굉장한 재산입니다. 기업 중에 기업이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전도할 것인가? 또 양육을 할 것인가? 이것이 내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버릴 것을 버렸을 때 많은 사람을 구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한 상입니다. 베드로는 가는 곳마다 대접을 받았습니다. 로마 군대 백부장도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고기 잡는 사람으로 있었다면 이러한 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버릴 것을 버리면 행동적으로 로드심이 나타납니다. 부자 청년은 로드심이 안된 자였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했지만 주님께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그는 물질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구원과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구원을 얻지 못하면 영생도 얻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을 주님을 위해 버릴 수 있을 때 신령한 하늘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세상 것, 술, 담배, 이중살림, 춤 등의 이런 것들 때문에 교회 가고 싶은데도 못 감으로 구원도 받지 못하고 영생도 얻지 못하는 자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아담이 무화과 잎으로 만든 옷을 버렸을 때 가죽옷을 받아 입을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버릴 것을 버릴 때 로드심의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16. 누가복음 6:46절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당신의 생활에 주님이 되시는 가를 알아보는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로드심을 가진 자입니다. 손종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주재 권에 굴복하지 않는 자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로드의 기준입니다. 무엇을 할 때 내 뜻과 내 생각으로 하는 것도 그리고 교회 형편에 맞추는 것도 안 됩니다. 가장 기본적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을 원하는가? 를 알고 하는 것이 주님께 순종하는 로드심의 삶입니다. 내 기준과 나의 필요, 내 편리를 위해 생각하는 것은 결코 순종하는 삶이 아닙니다. 자기중심의 삶은 하나님께서 절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교회 봉사도 내 중심으로 할 때 내 맘에 안 들고 힘들면 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께 순종하는 삶이 아닙니다.


사울 왕은 처음에는 금식하면서까지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시는 힘으로 하였지만 교만하였을 때 그 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순종은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사울 왕은 칠일을 인내하지 못하여 자신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려도 사무엘은 길가로 오지 않자 백성이 흩어지므로 인내하지 못하고 그만 사울 왕은 제사를 드리는 망령된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사무엘상 13:1~14). 결국 불순종을 했습니다. 순종이 없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요구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로드심의 신앙입니다.


17. 누가복음 18:28~30절에서, 사도들이 행한 것은 무엇입니까?


또 하나의 로드심의 기준은 버릴 것은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것은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버릴 때 로드심의 시작됩니다. 창세기 12장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실 때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친척 아비의 집을 버리고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버렸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순종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버릴 것 버리지 못하면 거침돌이 되어 따라가지 못합니다. 아담이 무화과 잎의 옷을 버렸을 때 가죽 옷을 받아 입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물과 배를 버렸습니다. 엘리사는 열두 마리 소를 버렸습니다. 마태는 세리의 책상을 버렸습니다. 나다니엘은 무화과나무 밑에서 묵상하는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자신은 분명히 잘 알고 있습니다. 버려야 성장이 옵니다. 주일 날 장사, 술, 담배 등의 버릴 것은 버려야 되는데 못 버리는 것은 그에 대한 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성장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배를 타고 섬에 선교하러 갔습니다. 그 섬에 도착하자마자 타고 온 배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다시 돌아가지 않고 죽어도 여기서 복음 전파하다가 죽겠다는 각오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드심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양 생활에 일일이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신 것은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흔히 신앙인들은 돌아갈 배를 옆에 두고 있기 때문에 로드심의 신앙인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드심의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 오직 한 우물만 파야 합니다. 죽어도 예수만 섬길 때 반드시 열심히 주님을 섬기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시는 애급으로, 즉 세상으로 돌아 갈 수 없습니다. 이런 로드심을 가진 사람은 돌아갈 배를 없애 버립니다. 버릴 것을 버려야 금세에 백배로 받게 되고 내세에도 백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백배라는 말은 무한대로 축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여러 배로 받는 다는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볼 때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여러 배로 주십니다. 베드로는 버렸을 때 영적으로 육적으로 여러 배로 받았습니다. 또한 무형적인 재산도 받게 됩니다. 하늘의 기쁨과 평안과 남에게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영혼을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 삭개오를 자신의 자손이라 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재산 중에 재산이 사람입니다. 사람을 아는 것이 굉장한 재산이 됩니다. 기업 중에 기업이 사람입니다. 삶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전도할 것인가, 또 양육을 할 것인가 이것이 내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18. 그리스도의 주재권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선 버려야 할 것을 한번 백지에 기록하여 보십시오. 주일 성수 못한 것, 온전한 십일조 하지 못한 것, 나의 모든 영역에서 아직도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적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버릴 것은 버리고 지금까지 인정하지 못한 부분은 이제는 인정하고 내 모든 영역을 주님이 통치하는 로드심의 신앙인이 되십시오.


로드심이 신앙인은 첫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그 이유는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종할 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타나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으로 하는 것이 주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내가 순종을 해야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로드심이 된 자라야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요셉은 주인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자였습니다. 요셉은 로드심이 된 자이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으로 주인을 충성스럽게 잘 섬겼습니다. 로드심이 된 자는 목사와 상관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충성스럽게 섬기게 됩니다. 로드심이 안되면 사울 왕처럼 자기의 기념비를 세웁니다. 교회에 에어컨을 드리는데 자기 이름을 세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념비를 세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영락 기도원에 가면 피아노 또는 대문 여러 곳을 살펴보면 자기 기념비를 세워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로드심의 신앙이 아닙니다. 둘째, 나의 기쁨과 상급이 됩니다. 이 기쁨 때문에 내적 축복을 주십니다. 셋째, 다른 삶에게 매력을 줍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줍니다. 실제 자기 생활에는 유라굴라의 광풍이지만 얼굴에는 평화와 기쁨의 생활을 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이때 전도할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의 관계에서 영향력을 줄 수가 있습니다.


요 약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 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 선포하셨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이 행하신 일 때문만 아니라, 마땅히 그러한 분이시기 때문에 충분히 주재(主宰)가 되실 자격이 있습니다.


결심함으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라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모든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서 가장 존귀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의 왕좌에 모시기 위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리도록 결단하고 그분이 자신의 삶을 통치하시도록 자신을 비워 드려야만 할 것입니다.


실천함으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라


그리스도의 통치에 굴복하지 않는 여러 영역들이 믿는 자들의 삶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영역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삶을 지배하는 것이야말로 그들 자신의 행복과 기쁨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계속 인식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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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당신의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


한번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한복음 6:29).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믿음과 확신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기”(히브리서 11:6)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자주 믿음이라는 것이 소망적인 사고에 불과한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즉 “나는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어”라는 식입니다. 성서적인 믿음은 이러한 피상적인 태도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동행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소망적인 사고란 자기의 감정이나 욕구에 근거를 둔 비현실적 사고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행동적으로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의 근본적인 일은 하나님께서 보낸 자를 믿는 것이라고 요한복음 6장 29절과 마태복음 7장 21절과 마태복음 12장 4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지 않으면 행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는 행동으로 성취해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걸어감


1. 믿음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시작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에베소서 2:8~9)


그리스도인의 첫 시작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첫 시작이므로 구원을 에베소서 6장 17절에서는 투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몸에 가장 중요한 기관이 머리입니다. 믿음의 첫째는 구원입니다. 우리 몸의 시작이 머리입니다. 생활의 시작이 머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시작이 구원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새 생활의 시작입니다. 어린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야 새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도 동일합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골로새서 2:6)


구원을 받았으면 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같이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과 동행을 하고 산다면 예수님이 싫어하는 행동하면 안 됩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진행하고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로마서 1:17). 내 마음대로 살면 안 됩니다. 주님은 항상 믿음을 보시고 계십니다.


2. 다음 구절들에서 믿음을 어떻게 정의 할 수 있습니까?


(1) 사도행전 27장 25절


바울은 유라굴라 광풍 속에서도 안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말씀을 믿고 확신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그대로 될 줄로 믿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평상시에도 100%로 믿고 유라굴라 광풍의 환경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안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신뢰할 때 이루어집니다. 믿음은 항상 약속을 수반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아는 것입니다. 죠지 뮬려는 항상 성경 속에 약속을 찾아서 믿었습니다. 로드심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대로 주장해야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그것입니다. 학개서에 스룹바벨이 고국에 돌아와서 무너진 성전을 재건했을 때 노인들은 솔로몬이 지은 그 웅장한 성전을 보았기 때문에 새로 재건한 성전은 너무도 초라하여 통곡을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호와가 말하노라”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입니다.


(2) 로마서 4장 20~21절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랄 수 있었던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을 때 영광을 돌릴 수 있었고 믿음에서 견고케 되었습니다. 마치 콘크리트로 처음에 포장 공사했을 때 새가 걸어가도 발자국이 납니다. 그러나 굳어지면 자동차가 아무리 다녀도 자국이 나지 않는 견고한 길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3)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실상은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것이며, 또는 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으로 올라 갈 때 비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실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을 때 실제로 보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만지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했을 때 실제로 비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별을 보라, 세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너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알 같이 많이 주시겠다는 약속을 실제 자식이 없었지만 실상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이삭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실상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실상으로 믿을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내가 죽으면 천국 가는 것과 믿음대로 심은 것은 상으로 받는 것을 실상으로 믿을 때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죽으면 반드시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기 때문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제가 됩니다. 여러분도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으로 믿으십시오. 실상으로 믿으면 반드시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켜 주십니다. 나도 기업이 하늘의 별과 같이 있다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믿음이란 감정도 추측도 외부에 나타난 모양도 아닙니다. 믿음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과, 또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죠지 뮬러-


 

3. 믿음은 무엇을 가능케 합니까?


(1) 마태복음 21장 22절


기도 응답을 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믿고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도 믿고 구하면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는 응답을 하여 주시고 믿음이 없는 자는 응답을 하여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믿음을 체킹하십니다.


(2)로마서 15장 13절


소망과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소망 중에 살기 때문에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소망이 없는 자는 믿음이 없고 기쁨과 평안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 반드시 받게 됩니다. 끈기 있게 시인하고 살아 보십시오. 믿음으로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믿음이 있어야 소망이 생깁니다.


(3)에베소서 3장 12절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감을 얻습니다.


(4)에베소서 6장 16절


믿음이 있으면 사탄을 이기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것은 첫째, 그리스도인의 의에 중생하고 거듭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탕자가 돌아와서 품꾼으로 보아 달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아들로 삼았습니다. 종들에게 옷을 입히고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짐승을 잡아 잔치하라는 것은 종들에게 아들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의 확신이 있을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4. 고린도후서 5:7절의 원리를 당신 자신의 말로 쓰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실례를 하나 들어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표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실제로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축복들을 한번 적어 보십시오. 믿음이 없는 자는 눈에 보이는 쪽으로만 쫓아갑니다. 롯은 소돔 고모라에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는 것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 따라 가다가 망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약속을 크게 보고 따라가는 삶이 있어야합니다.


5. 어떠한 죄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지 못하게 방해 합니까? (마태복음 13:58)


주님은 고향 동네 가서 복음을 전파했는데 믿지를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모두 나가 버립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양육은 믿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약속의 자녀로 세우기 위해서 산자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생활 속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깊이 묵상하여 보십시오. 과연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의 반대는 의심이 아니라 불신입니다. 의심은 단지 더 많은 사실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불신이란 불순종입니다. 즉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을 따라서 살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


6. 사람에게 믿음의 대상이 될 가치가 없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1) 시편 33장 16~17절


힘을 믿는 것은 무력을 믿는 것입니다. 왕, 대통령은 무력인 힘, 군사를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고 하나님의 신으로만 된다고 하였습니다.


(2) 시편 146장 3절


방백, 사람 즉 배경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3) 잠언 3장 6절


명철 즉 자기 지혜를 믿지 말아야합니다.


(4) 잠언 28장 26절


자기마음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판단이 옳으면 믿고 나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5) 예레미야 9장  23절


용맹을 믿고 부를 믿고 지혜를 믿습니다. 골리앗은 칼과 창을 믿고 나와 자기를 믿고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믿은 다윗에게 죽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일반인들이 믿는 것입니다. 이 결과 끝은 예레미야 17장 5절에 광야의 떨기나무처럼 겨우 하루하루 살아가는 저주를 받은 인생이 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가장 큰 복으로 믿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레미야 9장 9~10절에 사람을 의지하고 믿으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내가 믿고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살펴서 적어 보십시오. 내 명철인가? 물질인가? 사람인가?


앞에서 당신이 의뢰하기를 가장 좋아하는 것에 “×”표를 하십시오. 이러한 것에 믿음을 둘 때 불가피하게 얻게 될 결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7. 누가 당신의 믿음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까? (마가복음 11:22)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주님을 믿는 것 그 분의 말씀 그대로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사야 6장에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죽기 살기로 기도했습니다. 이사야가 믿었던 것은 하나님의 배경 이였습니다. 내가 물질이 많이 있어도 없는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8. 앞의 두 질문을 지침으로 하여 다음 그림이 보여 주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십시오.

 

 

 

 


얼음 위로 걸어가려고 하는 그림입니다. 여기서는 누가 믿음이 좋은 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나는 건너 갈 수 있다고 무조건 믿습니다. 나는 건너 갈수 있어 나는 믿음이 있단 말이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표지판에 위험 얼음이 얇음이라고 써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으로 건너가려고 합니다. 이 사람의 믿음이 큰 믿음입니까? 아니면 믿음이 잘못된 믿음입니까? 두 번째는, 나는 믿음이 그렇게 많지 않아 하지만 앞에 표지판에 안전 얼음이 두꺼움이라고 쓰여 있어 약속을 믿고 건너가 보아야지 하고 행동을 실행합니다.


전자와 후자 둘 중에 누가 믿음의 사람입니까? 후자의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전자의 사람은 내가 믿고 간다고 했을 뿐 거기에는 약속이 있지 않습니다. 믿음의 출처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출처는 말씀입니다. 약속이 없는데 믿는 것은 맹신입니다. 자기중심과 자기 의지와 자기의 신념은 말씀과 아무 관계없는 것입니다. 전자는 표지에 얼음이 얇다면 건너가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건너가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 표지에 안전을 약속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고 건너 간 것이 믿음입니다.


여호수아는 나이 85세 이였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아낙 자손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광야의 식탁에 차려진 밥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것이 성경적인 믿음입니다. 자기의 신념을 믿는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가지를 부인하는 것이 첫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그림에서 후자가 믿음의 사람입니다. 전자는 자기 믿음입니다. 거기에는 약속이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믿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내 생각은 두렵고 떨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믿고 건너가는 그 사람이 성경적인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믿음에는 나의 감정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십일조 드리면 내 생각에는 더 어려울 것으로 계산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하늘의 보고문을 여시고 나의 창고에 넘치게 하여 주심을 믿는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면 된다는 식의 적극적인 자세는 철학 또는 신념입니다. 신념은 어떤 학문을 토대로 하여 믿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잘 살아 보세”라는 적극적인 자세로 일을 추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경재 발전을 성장시켰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한 후 우쭐하여 아이 성이 작다고 아주 쉽게 여겨 삼천 명의 군사로 싸우다가 참패 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념이나 지기 철학 같은 것은 신앙과 다릅니다. 신념은 자기를 믿는 것이고 신앙은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다윗이 승승장구하여 나라가 강대국이 되어 갔을 때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징계를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인본주의로 사람의 힘을 믿으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벌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경험은 신념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물을 내렸을 때 두 배에 가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환경이 어제 보다 못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의 비유에 어떤 농부가 남의 밭을 갈아 주다가 그 밭에 큰 보화를 발견하여 그것을 묻어 두고 자기 재산을 전부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농부를 미쳤다고 하였지만 자신은 그 밭을 사기만하면 큰 부자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 밭에는 보화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내가 살만한 가치를 알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동이 따라갑니다. 노아는 산위에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미쳤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반드시 산위에까지 물이차서 방주가 물에 뜰 것이라는 것을 믿고 행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신념이 아닙니다. 신념은 믿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어디서 오며 어떻게 자라는가?

 


                                        

                                                                     

 

 

첫 번째, 믿음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삶의 무기이며 내 영혼의 양식이 됩니다. 내 영혼이 강건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합니다. 듣고 순종하는 것이 섭취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믿음은 순종에서 나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 갈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면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신뢰했던 행동입니다. 믿음은 순종을 요구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순종 없는 제사는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십니다.


세 번째, 믿음은 예언된 성취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3절과 마태복음 24장은 소 계시록이라고도 합니다. 여러 가지 징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믿음이 생깁니다. 성취된 약속을 보면서 믿는 것입니다.


네 번째, 믿음은 성숙의 과정이 있습니다(베드로후서 1:5~9). 성숙한 믿음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열매를 요구합니다. 열매는 성장했을 때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9).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도저히 감당 할 수 없는 자에게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므로 자랑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여섯 번째, 믿음은 응답 받는 기도입니다(요일 5:14~15).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듣고 응답하십니다. 이때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은 두 가지 관계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관계와 하나 되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내 목표가 될 때 응답받고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믿음의 간구입니다(마가복음 9:24). 주님은 잘못 구하는 것을 지적하여 주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그 부모는 24절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어 주셨습니다. 여기에 믿음이 없으면 응답이 없습니다. 주님은 항상 믿음을 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항상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여덟 번째, 감사함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7~18).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생각이고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아홉 번째, 믿음은 약속을 주장합니다(로마서 15:4). 불같은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할 때 믿음이 옵니다. 바울은 유라굴라 같은 강풍 속에서 15일 동안 소망이 없고 죽을 날만 기다렸는데 전날 밤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배만 파손당하고 배의 사람들은 바울에게 다 부쳐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상황은 말도 안 되고 형편이 없지만 바울은 그 약속을 주장하면서 안심하고 이제는 식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야속을 믿고 주장할 때 믿음이 생깁니다. 약속을 하나님 앞에 끈질기게 주장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제단에서 많은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했을 때 제단위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 태워버렸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약속을 주장해야 합니다. 죠지 뮬러는 시편에 하나님께서는 “고아의 아버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약속을 믿고 주장하는 기도로 고아들을 키우고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오만번의 응답을 체험했다고 하였습니다. 항상 성경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장하면서 믿음으로 구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열 번째,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합니다(베드로전서 1:6~7). 믿음은 환란 속에서도 성장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35~37절에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의 환경 속에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그런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깨닫고 그 사랑으로 넉넉히 이겨 내었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더 많이 체험 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발견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열한 번째, 경건한 사람을 관찰함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히브리서 13:7). 경건한 사람을 늘 주목하여 보고 관찰하고 사귈 때 믿음의 성장이 옵니다. 신앙이 어린 자는 늘 주목할 수 있는 믿음이 좋은 사람을 붙여주어야 믿음을 배워 갑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라 당에 속하여 배우면 고라 당이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확신과 믿음은 그분이 누구시며 어떠한 분이시냐에 대한 지식위에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에 관한 구절 중에 당신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구 절     하나님에 관한 지식

                                                         

                                                         

                                                         

                                                         


묵상에 대한 설명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누구시냐? 어떤 분이신가? 라는 지식위에 세워 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식에 온전하기를 원합니다. 지식의 확신의 여부에 따라 행동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 때 행동이 따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모르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알 때 믿음이 생깁니다. 다윗은 역대상 29장 11~12절에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主宰)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았습니다. 여호와는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그리고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 모든 자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기 위해 백성들에게 헌금하라고 말했을 때 헌금이 엄청나게 쌓인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이 모든 자원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믿을 때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 90편 4절에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영생을 소유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결국 영원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행했을 때 영원한 것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믿음 그 자체를 살아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에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즉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내가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나를 항상 보살핀다는 그 사랑을 알고 믿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행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모든 환경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고 하면 내가 행할 때 알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실제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게 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6절에 하나님은 변역지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바꾸거나 취소하시지 않으십니다. 세상은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내가 알고 자신도 변역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없는 말이나 농담 같은 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23장 24절에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주님이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을 내가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 할 것도 아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머리털까지 세시며 내 생각과 마음까지도 감찰하십니다. 요셉은 면전 사상 때문에 진실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뒤에서 하면 안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베드로를 속였지만 베드로는 말하기를 성령과 하나님을 속였다고 했습니다. 먼저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되는 만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잠언 3장 5~6절에 주님은 나를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23편에서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의에 길로 인도 하신다는 말입니다.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내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자신의 명철에 매여 살지말라는 것입니다. 명철은 활용의 대상입니다. 명철은 하나님을 알라고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범사에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예배와 찬송을 받으시려고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합당한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신가를 알 때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무턱대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알고,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알고 믿는 것만큼 헌신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정에 감독은 일을 강조할 때 세움이 있고, 장로는 신앙에 연륜을 말할 때 세움이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이 되려면 첫째,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명예를 위해서 하면 안 됩니다(1절). 둘째, 깨끗한 양심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9절). 즉 말씀 속에 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일을 자의로 하지 않고 힘들어도 중단을 하지 않는 자라야 합니다. 셋째,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자와 그리고 선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7절). 집안에서는 말씀에 권위를 세우고 한 아내의 남편이라야 합니다. 그리고 감독이 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부르셔서 장차 게바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알 때 하나님 앞에 자백할 수도 있고, 용서 받을 수도 있고 하나님께 내 삶의 전체를 맡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진리를 알지니”라고 하였기 때문에 알고 믿어야 합니다. 무조건 믿으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묵상 할 때 몰랐던 하나님을 만나고 성숙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 가르치고 깨우침을 주어야 합니다. 설득 시키려고 하면 안 됩니다. 에스라가 포로 생활 마치고 돌아와서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가르쳤을 때 백성들은 울었습니다. 하나님은 변역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혹 부모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친구에게 버림 받아 괴로워 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신도 알고 또한 그들에게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믿음의 본


9.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관한 열쇠가 되는 장입니다. 이 장을 읽고 믿음에 의해 성취된 일들을 기록하십시오. 믿음에 의해 성취된 일들 중에 가장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25가지 믿음의 사람에 대한 말씀 중에서 가장 도전과 감동을 주는 것을 하나를 골라 보십시오. 박 목사는 17절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받친 것을 선택합니다. 아브라함은 상식적으로 윤리적으로 어떤 모양으로 본다하여도 맞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100% 틀린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을 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을 부활의 하나님으로 믿었기 때문에 독자 이삭을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내게 있는 제물은 드릴 수 있어도 아들을 드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반드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떠난 근거는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약속


10.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무엇을 약속했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이 약속을 지킬 것인지 안 지킬 것인지를 당신은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습니까?


이것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세상 경험도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범사에 인정하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체험하였을 때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우리가 저 사람이 약속을 지킬 것인가는 그 사람의 인격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약속을 지키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동일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히 지키시는 분이심을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시험을 통과 한 후에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여 두신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11. 하나님께서도 역시 당신에게 어떤 약속들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성경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1) 열왕기상 8장 56절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모세에게 약속하여 주신 것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어려워도 독생자를 죽이시기 까지 그 약속을 신실히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내게 약속한 것도 다 이루어 주십니다.


(2) 시편 89장 34절


하나님은 약속을 파괴하거나 변치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3) 이사야 55장 11절


하나님은 말씀으로 당신의 뜻을 다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헛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버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입으로 하신 말씀은 다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헛되이 받으면 안 됩니다.


(4) 베드로후서 1장 4절


하나님의 말씀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입니다. 지극히 놀라운 큰 약속입니다. 가장 값진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보배로 여기고 내게 있어서는 가장 큰 약속임을 믿어야 합니다.


(5) 시편 119편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 귀하게 여기고 재산 목록 1호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꿀 송이 보다 더 달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인격에 결함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므로 하나님도 그를 귀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을 보배롭게 여긴다는 말은 귀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이 믿음이 좋은 믿음입니다.


12. 하나님의 약속이 왜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 때문입니다. 신뢰할 수 있게 하십니다. 누가 우리 대신 질병과 징계를 받으며 또 부요하게 만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한경직 목사는 잘 믿기까지 십자가만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에서 나옵니다. 긍휼이란 구약에서는 모태와 같습니다. 태는 자기 자식을 10개월 동안 키워 내고 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신약에 긍휼은 애간장을 태운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문둥병자를 보고 났기를 원하신 것이 바로 애간장을 태우시는 정도로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도 주신 분이십니다.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나 약속하신 것에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존경할 만한 사람은 무엇을 말한 후에는 그것을 또한 행합니다. 말 뒤에는 행동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자하실 때는 그의 말씀 속에서 먼저 이야기 하십니다.”

-앤드류 머레이-


주장해야 할 약속


첫째, 믿음은 실제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결혼이 일생 동안 같이 걸어가는 것처럼 하나님과 일생 동안 같이 걸어가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 말씀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선한 약속입니다.


넷째, 약속을 주장해야 합니다. 그대로 된다고 믿고 주장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대로 믿을 때 하나님은 키우시고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게서 일하기 때문에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13. 다음 구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조건을 찾아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이라 하여 무조건 주장하면 안 됩니다. 약속에는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조건을 항하면서 끝까지 주장해야 합니다. 구원을 받은 후 많은 축복들은 모두 조건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 조건을 행하면서 그 약속을 믿을 때 우리 삶에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1) 요한복음 15장 7절


이 말씀의 약속은 기도 응답을 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조건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너희 안에 거하면”입니다. 이 말은 교제와 순종의 삶을 말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으며 나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순종하고 살게 되고 이것이 축복이고 능력 있는 삶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는 것을 원수처럼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구별된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거룩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시편 1편에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교제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나무는 근원을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제하는 삶이 그 원에 뿌리를 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풍성한 삶을 주십니다. 이때 내 생활에 열매가 풍성하여 집니다.


(2) 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


약속은 자비와 긍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 때문에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조건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철저히 자백해야 합니다. 죄를 자백을 할 때 멸망하지 않고 계속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면 소망이 없습니다.


(3) 로마서 8장 28절


약속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조건은 주님 뜻대로 사는 자가 어려울 때 하나님은 협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선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 때 도와주십니다. 예로서 요셉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았을 때 하나님은 선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승리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갈라디아서 6장 7절


약속은 거둘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열매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전도의 열매와 전도한 사람을 양육할 수 있는 열매입니다. 조건은 믿음으로 심어야 합니다. 즉 심을 것을 심어야 합니다. 심지 않고 믿습니다하는 것은 결코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따 먹으려면 반드시 심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환경일지라도 유라굴라의 환경일지라도 심었을 때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됩니다. 세상의 원리도 봄에 농부가 굶더라도 밭에 씨를 뿌려야 가을에 거둘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 질서입니다. 믿습니다하는 것이 다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심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는데서 거두어 주십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주님이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은 항상 질서를 중요시 한다는 것입니다. 질서를 떠난 믿음은 절대로 믿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5장 24절에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말에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는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절대 질서를 불순종한 한 달란트 받은 자를 악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심지 않는데서 거둘 수 있는 전능자이시지만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무조건 믿습니다하고 기도만하고 심지 않는 자는 악한 자와 같은 것입니다. 심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이 사람은 순종하는 자입니다. 많이 심어야 거둘 것이 많은 것입니다. 눈물로 심었다는 말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심었다는 말입니다. 이 때 기쁨으로 단을 반드시 거두어 드립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는 자에게는 형벌이 따라 옵니다. 농부가 봄에 밭에 씨도 뿌리지 않고 믿습니다하고 가을에 열매 주신다고 그 약속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참 믿음은 반드시 심어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는 대로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시편 126편 5~6절). 약속에 대해 행하면서, 강하게 끝까지 인내 하면서 주장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14. 하나님은 왜 어떤 약속에는 조건을 두셨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들에게 행함을 요구하시는 것은 내가 할 일이 따로 있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그 약속을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로로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늘의 은혜와 복을 나를 통해서 하시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나를 통해 이루실 계획이 있기 때문에 내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될 일은 내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행하고 일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게 복이 되어야 합니다. 예로서, 농부가 자기 밭에 심었던 것은 다른 사람이 거둘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심어서 내가 거두시기를 바라십니다. 야곱이 바로 이런 면에 체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축복할 때 내가 믿는 하나님으로 내가 복을 준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으로 말한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 공부할 때 그 성과가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자신에게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15. 고린도후서 1:20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는 데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십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태도는 항상 “예”하는 것이 믿음의 태도입니다.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이라고 하시면서 죽기까지 순종을 하셨습니다. 영생은 “예”하는 자에게 만 나타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얼마든지 “예”가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하고 따라만 가면 됩니다. 성도는 “아니요”라는 것은 없어야 합니다. 영생에 대해 깨달은 자는 “예(아멘)”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예”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생명과를 먹는 복이요 영생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할 때 우리의 태도는 히브리서 6장 12절의 말씀처럼 게으르지 아니하고 인내하면서 그리고 행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로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사람의 생각으로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얻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끝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행착오를 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함으로 증거를 받았습니다. 노아는 산꼭대기에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인내하면서 준비를 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런 점들을 본받으면서, 준비하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광야 사십년 동안 인내하면서, 준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아낙 자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했을 때 광야에 차려 놓은 밥으로 여겼습니다. 우리는 인내하면서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준비 되었을 때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이루어 주십니다.


<예화> 최초 레비게이토에서 선교한 사람의 간증입니다.


세계 2차 대전 일본군에 의해서 부상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을 원수의 나라로 여겼습니다. 기도 중에 선교에 대한 사명을 주시는데 사마리아로 가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개 취급하고 원수 시 하였습니다. 그 선교사는 가만히 묵상해 보았습니다. 자신의 사마리아는 일본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에는 정말 가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할때마다 감동을 주시니 할 수 없이 일본에 최초로 기독교 선교사로 갔던 것입니다. 삼년동안 열심히 했지만 열매가 없었습니다. 선교사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13년 만에 많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내가 행하면서 강하게 하나님께 주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에 축복을 주십니다. 끝까지 끈질기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고 일하면서 주장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했을 때 즉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축복을 주십니다. 다른 말로하면 데겔 시험의 저울을 통과 해야만 합니다. 신명기 8장 2~18절에 이스라엘도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시험을 받았습니다. 나도 영적으로 광야 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면서 인내할 때 결국 소망을 이룹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환경이 변하지 않더라도 좋은 환경을 주실 것을 믿고 열심히 순종하면서 그 약속을 주장해야 합니다.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믿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성경 속에 없는 약속, 즉 꿈으로, 영감으로 받은 것은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주장하지 말고 참고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과정을 통해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록해 두면 도움과 격려가 됩니다. 이러한 약속들과 조건들과 결과들을 기록하여 간직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종종 아래의 그림처럼 “고리”와 같은 형태를 가집니다.


                               약 속             내가 해야 할 일        결 과

 


 

묵상을 위한 질문

 

역대하 20장에서 여호사밧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활용하였는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여호사밧이 행한 첫 번째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3, 6~12절)

 

(2) 하나님은 그에게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15절)

 

(3) 이것은 약속이었습니까?

 

(4) 여호사밧의 그 다음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18절)

 

(5)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6) 그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격려했습니까? (20절)

 

(7)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2, 27절)

 


묵상에 대한 설명


(1) 여호사밧이 행한 첫 번째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3, 6~12)


약속에 대한 기도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전쟁 중에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6절에서부터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그에게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15절)


선지자 야하시엘을 통해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응답을 받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3) 이것은 약속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서 싸우는 전쟁으로 믿었기 때문에 군대를 정비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은 반드시 군대와 무기를 정비하여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 반대로 일을 준비하였습니다.


(4) 여호사밧의 그 다음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18절)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엎드려 경배를 하였습니다. 즉 행동으로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다른 반응은 필요치 않았습니다.


(5)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찬송하고 경배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믿음의 반응 이였습니다. 전쟁 중에 이런 행동은 믿음의 행동입니다. 세상 적으로 볼 때 정신이 나간 짓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싸우신다고 하실 때 감사하고 경배하는 일밖에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여호사밧의 믿음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믿으면 어떤 환경이라도 즉 전쟁 중에도 유라굴라 같은 환경 속에서도 찬송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좋은 믿음입니다.


(6) 그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격려했습니까? (20절)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하나님의 종을 신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시면 견고히 서게 되고 주의 종을 신뢰하면 형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왕이면서도 하나님의 종을 신뢰하였습니다. 그 말에 굴복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드렸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을 끝까지 신뢰할 때 형통케 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견고히 세워 주십니다.


(7)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2, 27절)


전쟁에 승리하였습니다. 언제 승리 하였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적군인 모압과 암몬이 연합군으로 쳐들어 왔지만 하나님께서 치시므로 자기들끼리 내분이 일어나 자멸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역사하셨습니까? 내 입에 원망과 불평을 토해 낼 때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십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주장하고 그 약속을 내가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할 때 내 환경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사탄이 물러가게 됩니다. 여기서 깊이 생각할 것은 요한복음 17장에 주님의 중보기도 내용에 보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주님께서 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붙여주실 줄로 믿고 전도하고 양육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 하십니다. 여호사밧은 전쟁의 승리를 하나님께서 붙여주었을 때 가만히 있지 않고 찬송하면서 무릎 꿇고 경배하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16. 당신이 성경을 읽으면서 발견한 약속의 말씀을 한 가지 들어 보십시오.


약속을 주장하여 응답을 받은 것을 간증하여 보고 적어 보십시오. 내가 어떻게 심었는지? 심었을 때 자의로 심었는지? 그것이 성경적인 인지? 기록하여 보십시오. 내가 신앙생활에서 주장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장도 내 주장인지? 성경에 근거한 주장인지? 기록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나누어 보십시오. 바울이 옥중에서 찬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가시채로 발뒤꿈치를 때릴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것을 체험할 때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사도행전 26장 14절에 “가시 채를 뒤 발짓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오순절의 성령이 임함도 요엘서 2장 28~32절에 약속된 말씀입니다.


믿을 때 크게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누구시냐? 하나님에 대하여, 그 속성에 대하여 알 때 믿음이 생깁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부 알기를 원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까지 알기를 원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에게 채운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그분의 약속이 무엇인가? 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고 행하면서 주장할 때 믿음이 자랍니다.


<예화> 레비게이토 창시자 도순 토르만 씨는 트럭 운전기사로 감옥에 들어간 경험이 있는 사람이지만 성경을 열심히 배워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면서 기도하고 훈련했을 때 마음이 뜨거워 졌습니다. 전도하고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행하면서 계속 주장하였을 때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자기 전부로 여겼습니다. 사나 죽으나 자신은 주님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소원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과 믿음의 성장으로 같이 기쁨을 나누기를 원했으며 하나님 앞에 빌립보교회를 자랑할 것을 위해 옥중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천국에서 부끄러운 자는 주님께 면류관을 벗어 던져 드릴 것이 없는 자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오 인간이여, 하나님의 약속들을 마치 박물관의 골동품처럼 취급하지 말라, 약속을 믿고 그것들을 사용하라…….”

                                 ~ 챨스 스펄젼 ~


요 약


믿음으로 걸어감


믿음은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 위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과 그의 말씀을 믿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소망과 기쁨과 평안을 얻고 기도 응답을 받으며 또 다른 많은 하나님의 약속들의 성취를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의 대상


사람들은 결국에는 망해 버리고 마는 수많은 대상들에게 그들의 삶을 의탁하기도 합니다. 믿음의 가장 가치 있는 대상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본


믿음에 의해서 많은 일들이 성취되어 왔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당신에게 가장 깊은 의미를 주는 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은 결코 약속을 어기지 않으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에 대하여 충실하시며 말씀하신 것을 꼭 행하십니다.


주장해야 할 약속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기회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장하는 약속에 대하여 응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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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과 계획한 것에 관하여 어떻게 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실까하고 종종 궁금해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마치 작은 지도 조각만 가지고 그 위치를 찾아야 하는 땅 속에 묻혀 있는, 보물 상자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감추어진 비밀처럼 당신에게 숨기시겠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그를 따를 수 있도록 당신을 한 걸음 한 걸음씩 인도하시겠습니까?


아직 잠언 3:5~6절 말씀을 암송하지 않았다면 지금 즉시 암송하십시오. 암송을 마쳤으면 다음 빈 칸에 표를 하십시오. □. 이 구절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대한 잘못 된 생각들을 밝혀 줍니다. 이 구절을 주의 깊게 묵상해 보십시오.


성숙하지 못한 자는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 받은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로서 자기 판단 자기 규례로 살아가는 것이요, 자기중심 생활입니다. 이런 자가 성숙하지 못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알고 이루어 드리는 일을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푯대로 보여 주신 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성경에서 직접 보여주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성경을 열심히 보면 알게 됩니다.


보여 주신 하나님의 뜻


1.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당신이 사모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5:17)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아는 것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알기를 원하십니다. 목회자의 뜻을 알고 행할 때 그 사람을 보배로 여깁니다. 하나님도 사무엘상 2장 30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생애를 위한 그의 뜻에 관하여 무엇을 약속해 주셨습니까? (시편 32:8)


“내가 너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심”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전체와 개인적인 뜻을 알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고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행동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별을 보여 주고 땅의 모래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그냥 이루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25년 동안 인내하게 하며 약속을 믿게 하시고 독자 이삭을 번제 단에 올려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나를 대신 하여 죽이는 그 마음을 경험하고 이해하도록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고 행했고 인내 했을 때 데겔을 통과하여 하나님이 인정하여 주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알게 하시고 내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내가 가야할 길과 방향을, 즉 목표를 전체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주목 해서 훈계하신다.”는 말은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셨는데 잘못 갈 때 훈계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목하여 보고 계시는 것은 “네가 그 길로 가느냐?”는 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식이 집밖에 나가면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주목하여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3. 다음 구절에서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하나님은 무엇을 나타내 주셨습니까?


(1)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뜻은 순종하는 것이 전체적인 뜻이고 일반 적인 것도 알고 행해야 합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깨끗한 삶, 이것이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사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고 예정했다고 에베소서 1장 4~5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삶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어떠한 삶도 거룩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가르치기 위해 볼 것을 다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하는 자는 자기를 합리화 시키는 자이고 변명하는 자입니다. 사울 왕이 핑계와 변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우리는 이유와 변명이 필요치 않고 다윗처럼 시인하고 자백하는 자가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핑계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활 속에 합당하지 못한 것은 양심으로나 성경에 비추어서도 합당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2)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 생활은 어떤 환경에 구애 없이 감사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욥은 모든 것 회수하는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고 살았습니다. 충성된 청지기는 주인이 돌려달라고 할 때 돌려줄 수 있는 자가 복된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회수하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욥은 열자식 모두 회수하여 갔어도 감사하였습니다. 모든 재산 회수하여 갔어도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했던 자입니다. 우리는 회수하여 가실 때 불평도 원망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신분이며 범사에 감사해야 될 신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생활면에 감사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여 보십시오.


(3) 베드로전서 2장 15절


선행을 베풀고 사는 삶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악행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나를 미워하는 원수까지도 선행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비밀한 것까지도 알기를 애를 씁니다. 그러나 우선 중요한 것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려고 해야 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아주 상식적인 것과 일반적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편에서는 범사에 일상적인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일반 성도는 비밀한 것을 더 요구하고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일상적인 것을 더욱 원하십니다. 에녹은 삼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에녹은 모세처럼 홍해 바다도 갈라놓는 능력도 없었습니다. 모세처럼 능력이 있는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에녹은 일상생활 속에서 순종하고 살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생활을 하면서 선행을 베푸는 것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일상생활 가운데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선행을 하면서 주님과 동행을 할 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이 삶이 에녹과 같은 삶인데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모세처럼 기적을 나타내는 삶은 못살더라도 에녹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4. 시편 40:8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즐겁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범사에 항상 기뻐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못해서 하고 책망을 받을까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마음에서 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누리고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로서 부부 생활 그 자체를 누리고 사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즐겁게 누리고 살면서 하는 자가 있고 억지로 하는 자가 있습니다. 누가 더 복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를 구원의 기쁨을 누리면서 해야 합니다.


•어떠한 행동이 이러한 태도를 갖는데 도움이 됩니까?


하나님의 뜻을 심중에 두어야 합니다. 성경책에만 두면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마음에 심는 것이 말씀을 순종하려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마음에 심는 것입니다. 지키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며 이런 자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지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심어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내 마음에서부터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좋은 성도는 주의 종의 말을 마음에 두는 자입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볼 때 마음에서부터 실천하는 것이 바로 좋은 성도입니다. 다윗도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었기 때문에 문제가 많은 자이였지만 그 말씀 속에서 순종하려고 태도를 가졌을 때 복이 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천사의 소식에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물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성적이고 과학적 또는 합리적 사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씀을 마음에 심어 순종하였습니다. 이런 자가 복된 자입니다.


5. 하나님의 뜻을 행함에 있어서 힘의 원천이 되는 분은 누구입니까?


(1) 빌립보서 2장 13절


내 마음 속에서부터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내 소원을 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는 내 뜻을 이루려고 살면 안 됩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해야 합니다. 내 속 사람을 살펴야 합니다.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2) 요한복음 15장 5절


내 안에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공급의 원천인 수원지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1~22절은 주님의 성품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사역의 열매입니다. 내 인격과 사역의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는 은혜를 공급하여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공급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열매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줄에 달려 내려온 마술 상자와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히려 매일 매일 풀어야 하는 두루마리와 같습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뜻을 따라서 살아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한 손으로 움켜 쥘 수 있는 보따리처럼 한꺼번에 파악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근본적으로 어떤 계획이나 청사진을 따르도록 한다든지, 어떤 곳으로 가게 되거나 무슨 일을 맡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폴 리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지침들을 성경 말씀 가운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은 성경의 구체적인 지침이 없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져 있는 결정을 내리는데 대한 원리들을 활용해야 합니다.


첫째, 기도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둘째, 나타나지 않은 숨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해야 합니다. 내 개인적인 뜻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내가 알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체적인 뜻으로 이끌어 가시기도 하지만 내 개인적 뜻으로도 이끌어 가십니다. 그것은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뜻과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이고 그리고 그 원리를 따라 개인적이고 구체적으로 그 원리를 알고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결정의 원리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목적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행동에 관하여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는 특별한 명령들을 주셨습니다. 만일 어떤 행동의 방향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 행동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다음 구절을 사용해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들을 당신 자신의 말로 써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원하시는 것은;


(1) 마태복음 6장 33절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예로서 길을 갈 때 예쁜 아가씨를 보았습니다. 저애 내 며느리를 삼았으면? 내 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전도를 해서 양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태도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면에 이런 방식으로 적용하면 됩니다. 직장에서 돈만 많이 주면 소처럼 부려 먹어도 좋고 주일도 관계없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내가 직장에서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을 찾는 그것이 하나님이 뜻입니다. 노처녀가 안 믿는 총각에게 시집을 가서 전도하겠다고 시집을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2) 마태복음 22장 37~39절


사람은 결정을 잘 내려야 합니다. 이 결정에 하나님의 의가 되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전심을 쏟을 수 있는가? 하나님 사랑하는 일에 관계가 되는가? 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될 때에 하나님의 뜻입니다. 관계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때 내가 아무리 가고 싶어도 포기하고 결정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한번 결정을 잘못하면 평생을 좌우하게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3) 마태보음 28장 18~20절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과 관계가 되는가? 같은 영적인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관계가 되는가? 물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관계없는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4) 베드로전서 1장 15절


거룩한 것과 관계가 되는가? 를 물어 보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노래방, 유흥업소를 단체로 갈 때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거룩하지 않는 곳에 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을 유혹으로 여기고 가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것과 관계되지 않는 일에는 금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내 영혼 속에서 추구하고자 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성도라는 말 속에는 구별하는 삶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거룩한 삶과 기도와 신앙을 파괴하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피해야 합니다.


(5) 베드로후서 3장 18절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일과 관계가 되는가? 되지 않는가? 에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첫째, 은혜 면에서도 성장해야 하고 둘째, 주님의 지식에서도 자라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이 잡혀야 합니다. 은혜가 있는데 지식이 없으면 방자하여 집니다. 지식은 있는데 은혜가 없으면 교만하여 집니다. 딱딱한 사람이 됩니다. 여기에는 싹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성도는 은혜와 지식이 같이 성장할 때 균형이 잡혀 질 수 있습니다.


이 구절들이나 당신의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다른 비슷한 구절들을 기초로 하여 당신 자신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나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앞에 두고 있는가?”

“이것은 내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이것은 내가, 보다 더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는데 도움을 줄 것인가?”

“이러한 행동방향이 그리스도에 관한 나의 지식을 증진시켜 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다음 구절을 사용하여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도움이 될 질문들을 만들어 보십시오.

 

(1) 고린도전서 6장 12절

 

(2) 고린도전서 6장 19~20절

 

(3) 고린도전서 8장 9절

 

(4)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묵상에 대한 설명


(1) 고린도전서 6장 12절


죄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많이 있습니다. 예로서 롯은 요단 뜰이 하나님의 동산 같다고 하면서 갔습니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가면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결단력이 없어집니다. 도시 사람 화되어집니다. 하나님의 불 심판으로 산으로 가라고 했을 때 롯은 자기 뜻으로 소알로 가게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죄가 아니라하여 하나님이 뜻으로 알면 안 됩니다.


(2) 고린도전서 6장 19~20절


하나님 앞에 몸으로 헌신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이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참 자유입니다. 즉 순종생활이 자유의 생활입니다. 몸으로 드리는 것이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드리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3) 고린도전서 8장 9절


바울이 자유 함을 가지고 먹을 수 있는 것도, 먹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연약한 자가 혹 내가 먹는 그것으로 실족할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술, 담배, 이것은 죄는 아니지만 한국교회 전통은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은 거룩한 삶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연약한 자에게 거침돌이 되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이방인 이었지만 형제로 같이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때 유대 율법사가 왔을 때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이때 실족케 함이 되었으므로 바울이 면책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칭의 교리에 위배되었음으로 질책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두 한 형제가 되는 것이 칭의 교리입니다.


(4) 고린도전서 10장 31절


첫째, 결정을 할 때 내 영광이냐? 하나님의 영광인가? 를 자문할 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내가 순종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로서 다윗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전쟁할 때마다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 후 나라가 번창했을 때 인구조사를 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뜻으로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본주의로 미혹이 된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자기가 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징계를 하셨습니다. 또 한 가지 예로서 시골에 옛날 머슴은 자기 할 일 다 알면서도 아침 일찍 주인께 묻습니다. 이것이 순종의 태도입니다. 머슴은 순종하기 위해서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함


이미 당신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순종하기를 거절한다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당신에게 방향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이미 드러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계속적인 인도를 받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7.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1) 시편 37편 31절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말씀을 머리에 두는 자와 마음에 두는 자가 있습니다. 유대나라 예수님 탄생의 사건을 살펴보면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에 두었습니다. 성경은 베들레헴 위치까지 말씀하였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마음에 두었을 때 그 먼 이국땅에서도 별의 인도를 받아 끝까지 와서 경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기 때문에 그들은 귀중한 황금과 유황과 몰 약을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헌신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에 두는 자는 말뿐이지 행함은 없습니다. 이런 자가 교회에 늘 문제를 일으킵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자는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섬깁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에 둘 수 있겠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함이 있어야 마음에 둘 수 있습니다. 마치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듯이 다윗이 하나님의 사모함이 헐떡거렸듯이 사모함이 있을 때 마음에 둘 수 있습니다. 말씀을 머리에 두는 자는 잘 압니다. 그러나 환경에 따라 움직입니다. 십일조하면 하나님께서 하늘 보고문을 여시고 땅의 창고에 차고 넘치게 부어 주시고 기한 전에 과일이 떨어지지 않게 하신 약속을 잘 압니다. 그런데 환경 때문에 십일조를 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두는 자는 순종하지 못합니다. 마음에 두는 자는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둘째,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 시키려는 태도, 순종하고 살려는 태도는 작은 것부터 실천할 때 마음에 두게 되고, 거기에 묵상을 통해 맛을 알게 되고,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머리에 두었기 때문에 성경은 정확한 위치까지 가르쳐주었지만 주님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2) 시편 119편 105, 130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가 먼저 인도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말씀을 배운 대로 신뢰하고 따르려고 해야 합니다. 길을 물었을 때는 인도 받으려고 물은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태도입니다. 배우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따르려고 할 때 주님은 나를 이끌어 가십니다. 자기 방법으로 인도 받는 것은 인도함을 받으려는 태도가 아닙니다. “등”은 현재 내 길에 빛입니다. 장래 일도 주님의 말씀이 인도합니다. 내가 실천을 하려는 태도로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8.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당신은 또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까?


(1) 시편 143편 8절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에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2) 야고보서 1장 5절


지혜를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큐티를 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구절을 읽고 묵상하고 또 한 장 읽고 묵상하는 식으로 하십시오. 베드로는 정기적으로 말씀을 묵상 했을 때 로마 군대 백부장인 고넬료가 사람을 보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 번씩 말씀을 보고 묵상하여 하나님이 뜻을 알려고 하는데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계속 정기적으로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끌어 가십니다.


9. 시편 25:4~5절은 자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다윗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당신 자신의 말로 쓰면서 마음으로부터 드리는 기도로 활용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깨닫는 것이 옥토 밭으로 변하는 것이고 깨달은 마음에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주십니다. 깨닫고 순종하는 태도가 있을 때 깊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의 도, 주의 길, 주의 진리는 성경 말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대망하고 살면서 순종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10. 로마서 12:1~2절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 대한 어떤 조건들을 보여 줍니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몸들 드려 헌신을 할 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몸을 드렸습니다. 그때 말씀을 쫓아갔을 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몸을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와 관계되는 것입니다.


케이블 T. V로 예배하는 것은 몸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드리지 않으면 교제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림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는 예수 안에서 형제와의 교제와 함께 하나님과의 교제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교제가 없는 예배는 병든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목사에게 이끌림을 받기 싫어합니다. 선생을 두기를 싫어합니다. 말세 때 선생 두기를 싫어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은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건강한 성도는 수직으로 매일 기도하고, 수평으로 교인들과 교제를 하고 전도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이 성령 충만한 생활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영적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영적인 인도를 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몸을 드려야 헌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에는 제물을 다 죽여서 드렸습니다. 그러나 신약에는 산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되려면 내 뜻을 죽이고 내 자아를 죽이고 내 사상까지도 예수 안에 죽여야 합니다. 이것은 헌신을 하되 말없이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시 세대라는 것은 이념, 이데올로기,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을 본받지 말아야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으면 신앙과 멀어 지게 됩니다. 성도의 적은 첫째, 세대입니다. 이것은 문화의 부끄러운 것을 오히려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세상입니다. 이것은 주의로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쾌락주의). 셋째, 내 안에 있는 각 정욕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런 것은 사탄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셋째는, 마음이 근본적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경건하고,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십니다. 가인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네 속에 죄에 대한 소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소원은 적극적인 바람입니다. 죄의 문화가 그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소원은 의로운 것이어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뜻을 모릅니다. 예로서 우리가 날마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듯이 늘 마음의 세수를 하여 영적으로 깨끗하게 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보여 주십니다. 영적 컨디션이 좋을 때 결단을 해야 합니다. 화가 났을 때는 결정하면 안 됩니다. 화를 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11. 당신이 하나님께서 자시하시는 방향을 찾을 때에 누구의 인도를 약속받았습니까? (요한복음 16:13)


성령의 지시에 내가 민감하여 성령에 의해 바라보고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성령의 지시에 민감할 때 하나님의 뜻이 밝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자의로 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시편 27:14절과 이사야 30:18절을 읽으십시오.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습니까?

                                                          

                                                          

                                                          


묵상에 대한 설명


첫째,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하나님을 의지 하였습니다. 나를 돕고 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여호사밧도 역대하 20장 20절에 하나님을 의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죽음의 자리까지 내어 놓고도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헌신을 하였을 때 여호와 이레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과 같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둘째, 순종하며 기다리는 상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왜 그리 주요합니까? 즉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도 있고, 즉시 응답을 하지 않는 것도 있으며, 나를 훈련을 시키기 위해 연장 시키는 하나님의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인내해야 합니다. 받을 때가 아니면 연기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주실 때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셋째,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몰아갑니다. 하나님은 나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가르치면서 얽힌 내 삶을 하나하나 풀어 주시면서 인도하여 주십니다. 사탄은 계속 뚤뚤 말아서 가므로 얽히고 설 키게 합니다. 하나님은 얽힌 매듭을 하나씩 풀어 주시면서 이끌어 가십니다. 예로서 아브라함아 너의 독자를 번제물로 받칠 때 너의 마음이 어떠했느냐? 는 식으로 나의 마음도 너와 똑같다고 깨닫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매어다 주는 사람도 있었고 동전을 주는 자도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를 주목하여 보고 나사렛 예수 이름을 주었다는 것은 구원을 시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손을 잡아 일으켰다는 것은 양육을 하였다는 말입니다.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시켜 주어야 합니다. 앉은뱅이는 일어나 뛰면서 찬송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양육을 받아 변화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몰아가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인도하십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음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주님의 뜻을 정하는데 따르는 많은 어려움이 극복될 것입니다.


12. 당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 결정할 때에 다른 가능성을 모두 다 알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밖에 다른 자료들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잠언 15:22)


상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인도 받기 위해 마음을 열고 상담자를 찾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다 정해 놓고 보고하는 식으로 상담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상담은 상담이 될 수 없습니다. 경건하고 거룩한 상담이 있어야 합니다. 경건한 상담이란 승리의 삶을 살고 있는 자와 거룩한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 자와 상담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잘 이해하는 자와 상담을 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고 가르쳐 주고 양육하는 자와 상담을 해야 합니다. 르호보암은 같이 자란 젊은 자들과 상담을 하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망했습니다. 노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소년의 독한 말을 듣고 그대로 하였을 때 백성들이 다윗의 집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하고 백성들이 떠나므로 남과 북이 갈라졌습니다(역대상 10:1~19). 상담은 경건한 상담을 할 때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상담은 하나님의 뜻에 전폭으로 헌신했고 또 당신을 잘 알고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받아야만 합니다. 당신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전에 결정을 내린 바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13. 요한복음 7:17절에서 예수님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하실 때 사용하신 원리를 설명해 보십시오.


마음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순종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 봐도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물을 때 가르쳐 주고 펼쳐 보여 줍니다. 상담도 순종할 마음으로 해야지 그러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로서 길을 갈 때 서울역 어디로 갑니까? 물었을 때 그 길로 가기 위해 물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묻는 것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할 때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의 태도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목사에게 물을 때도 순종하는 자세로 해야 합니다.


14. 하나님이 당신에게 당신이 무슨 일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일을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에베소서 6:6)


마음으로 순종하고 행해야 합니다. 외적 순종보다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음에서부터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유심히 주의하여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새의 아들을 왕으로 선택할 때 사무엘은 외모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셨습니다. 교회 일꾼은 그 마음 중심을 보고 세워야 합니다. 외적 조건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혹입니다. 음욕을 품은 자를 가리켜 주님은 이미 마음으로 간음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태도를 주님은 보십니다. 외적인 눈가림으로 얼마든지 속일 수 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나다나엘이 혼자만 알고 무화과나무 밑에 기도를 하였었는데 주님께서 그 사실을 알고 말했을 때 나다나엘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15.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도움을 주는 다른 요소들은 무엇입니까? 적당한 것끼리 짝을 지으십시오.


골로새서 3:15        •        • 주의 깊고 지혜로운 생각

빌립보서 1:12~14  •        • 내적인 영적 평안

에베소서 5:15~17  •        • 특별한 환경


(1) 주의 깊고 지혜로운 생각 (에베소서 5:15~17)


자연인은 이성적으로 분별합니다. 주의 깊게 세밀하게 생각하고 관찰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입니다.

(2) 내적인 평안 (골로새서 3:15)


어떤 일을 결정을 내려 행할 때 평안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불안할 때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영적 평안이 있느냐? 없느냐? 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3) 특별한 환경 (빌립보서 1:12~14)


예로서, 대만을 선교하려고 준비하였는데 갑자기 국교 단절이 되었을 때는 환경을 통해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만 의지하면 위험 할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인간의 이성과 감정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려고 했을 때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어 하나님께서 생각을 바꾸셨구나, 내 마음을 아시고 준비를 하셨구나 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에 승선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생각 이였습니다. 결국 풍랑을 받고 말았습니다. 자기잘못을 범했던 것입니다. 말씀을 떠난 감정과 이성은 잘못된 것입니다.

 

 

 

 


 

실천의 원리


16. 성경에는 건전한 판단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설명해 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음 예를 살펴보고 당신 자신에게 이런 질문들을 해보십시오. 결정해야 할 문제가 무엇이 있나? 어떤 결정이 내려 졌나? 옳거나 혹은 그릇된 결정을 내리는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무엇이었습니까?


(1) 기드온 (사사기 6:25~28)


우상을 버리는 문제로 아세라 상을 파괴하는 일을 밤에 하자고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 이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아세라 상을 파괴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밤중에 하자고 한 것은 사람들이 두려워서 낮에 하지 않고 밤에 한 것입니다.

이것은 첫째는, 좋은 결정이었고, 둘째는, 두려움 속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사울왕은 전쟁 때 모두 죽이라는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좋은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두려워서 전쟁에 전리품을 남기기 위해서 결정을 잘못한 모델입니다.


(2) 모세 (히브리서 11:25~26)


좋은 결정을 한 모델입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 노릇해야 하느냐? 포기해야 하느냐? 하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인으로 살 것이냐? 바로의 공주의 알들로 애급의 왕으로 살면서 세상의 부귀를 누릴 것이냐? 이스라엘인으로는 고생 이였지만 그러나 모세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모세의 마음의 동기에는 하나님의 주시는 상급과 애급의 생활에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느냐? 이였습니다. 세상은 죽으면 끝이 나지만 하나님의 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가치관을 알고 영원한 것에 결단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마음이 동일시되어 살아야 하였습니다. 나는 애급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다, 라고 애급의 공주 아들의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생활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80세가 될 때까지 처가살이도 하였습니다. 일하면서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광야생활을 하면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후회함이 결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3) 데마 (디모데후서 4:10)


불순종의 결정의 모델입니다. 데마의 문제는 계속 바울을 따라 다니다가 계속 바울의 제자가 될 것이냐? 그만두어야 하느냐? 하는 결정을 해야 될 상황 이였습니다. 교회에 갈등이 생겨 계속 다닐 것인가? 그만 둘 것인가? 옮겨야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모세처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데마의 마음의 동기는 이 세상을 사랑하므로 데살로니가의 환락적인 곳에 마음이 빼앗겼던 것입니다. 세상 낙을 즐기기 위해 일반적인 동기에서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결정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냐? 내 영광이냐? 하나님의 편이냐? 내 중심이냐? 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데마는 자기중심으로 결정하여 세상을 사랑함으로 데살로니가로 가버렸습니다. 이런 결정은 평생 후회와 실패입니다. 일상생활에서 결정할 때 좋은 모델인 모세를 본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결혼문제를 놓고 결정을 할 때, A와 B의 사람을 놓고 결정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느 사람을 사랑 하시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대개는 배경과 외적인 것을 보고 결정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면 평생을 후회합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결정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 갑니다. 말씀에 영향력이 없으면 순종할 수가 없고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갈렙은 말씀의 영향을 받았을 때 아낙 자손을 두려워하지 않고 식탁에 차려진 밥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땅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완벽한 일은 없지만 그러나 유익한 점의 비율로 보았을 때 유익이 65%이고, 손실이 35%라고 할 때에는 유익한 쪽으로 결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결정을 내릴 때는 모험도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생명을 걸고 결정하고 행하여야 합니다.


다음의 도표는 당신이 지금 내려야 할 특별한 결정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내가 당면하고 있는 결정 사항 :


      생활의 목표               예     아니오    중간 상태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나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앞에 두고 있는가?”

 

“이것을 내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이 행동은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가?”

 

“이것은 내가 보다 더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는데 도움을 줄 것인가?”

 

“이것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훈련받는 일에 도움이 되는가?”

 

다른 질문들 :

 

 

 

 


하나님께 순종함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어떤

사실이 이 결정에 영향을 줍니까?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음

다른 방안                 유의점               손실

 

나를 잘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과의 상담 :

 

내적 평안 요소 :

 

환   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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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종으로서의 삶


섬긴다는 것은 제자로서의 삶에서 가장 도전이 되는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은 섬김 받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남을 섬기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들은 종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개의치 않지만 종으로 취급받는 것은 대단히 꺼립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으로 특징지어 집니다.


이러한 사람이 종의 삶에 성숙한 단계에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문화권에서는 종으로 취급 받기를 대단히 싫어합니다. 손과 발의 노동은 비천하게 여깁니다.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 중요한 것은 종의 삶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종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종의 삶은 성도 생활면에 목표입니다. 우리나라 교인들은 능력 위주로 삶의 목표를 두기 때문에 교회 안에 시기와 분쟁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닮는 삶에는 첫째, 종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로라고 하였습니다. 종의 삶에 있어서 이웃을 등한히 여기지 말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종노릇 하고 섬기는 삶 속에 들어갔을 때 참 자유 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생활면에 자유 함이 없는 것은 섬기는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종의 삶에는 나 자신을 비워 내어야 합니다. 셋째, 종의 삶에는 죽기까지 말씀의 권위 앞에 나를 쳐서 복종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예배의 삶이 지속 될 수 있습니다. 예배에 은혜 받으면 서원이 따릅니다. 예배는 무릎을 꿇는다는 뜻입니다. 참된 예배에는 결심이 따릅니다. 이것이 서원입니다. 즉 순종 하겠다는 그것이 서원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증인”은 원어로 “말투스”인데 “순교”라는 뜻을 가집니다. 순교는 “희생”, “섬긴”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6장에 동역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의 종의 동역 자는 목숨까지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 예가 부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부리스길라는 아내이고 아굴라는 남편입니다. 부리스길라는 바울의 사역을 헌신적으로 도왔기 때문에 먼저 이름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전도가는 곳마다 이사를 네 번이나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배워서 아볼로를 훌륭하게 양육을 시켰습니다(사도행전 18:26). 우리는 말씀의 권위 앞에 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1~4번은 예수님의 섬김이 우리에게 모범이 됩니다. 주님의 보여 주심에 동기가 되어 내가 종의 삶에 유익한 것이 아니라 나도 주님처럼 살아야 된다는 인식이 먼저 중요합니다.


“세상 나라에서는 섬김을 받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다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섬기는 것이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스립니다.”  -A. B. 부루스-


우리의 본이 되시는 그리스도


1.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마가복음 10:45)


종으로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에게 대속 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초림의 탄생은 마구간에서 탄생하시고 말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이 자체가 종의 삶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처음과 끝이 종으로 사람을 섬기려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은 마가복음의 종의 삶에 총주제가 되는 요절입니다.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예수로 기록한 것이 특징입니다. 나도 주님이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종으로 섬기라고 보낸 것입니다. 종의 삶인 섬기는 삶을 사십시오.


2. 예수님께서 사람을 섬기신 몇 가지 방법을 들어 보십시오.


(1) 마태복음 9장 35절


사역 면에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약함을 고치셨습니다. 이것 자체가 섬기는 삶이셨습니다. 전도하고 양육하는 이유는 섬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기르는 것은 섬기지 않고는 길러 내지 못합니다. 처녀 때는 손끝에 물 한 방울 대지 않던 자도 결혼하여 임신을 하면 10달 동안 탯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하고 낳아서는 모든 수고를 하는 것은 바로 섬기는 삶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세례를 주고”라는 말은 “전도”를 말합니다. “가르치고”라는 말은 “양육을 말합니다. 오늘 교회들이 전도는 하는데 양육은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녀를 낳고 기르지 않는 자입니다. 마치 타조와 같은 자입니다. 양육할 때 성장이 옵니다. 성장하면 반드시 섬기는 삶을 살게 되는 열매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성도 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2) 요한복음 13장 3~5절


예수님께서는 실제 사랑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몸으로 종의 삶이 헌신입니다. 사랑은 실천입니다. 목회자와 성도는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요한복음 21장 15~17절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목회입니다. 치는 것이 양육입니다. 성경의 최고에 덕은 바로 섬기는 삶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대는 몸을 드려 헌신하려고 하지 않고 섬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몸을 드려 주님처럼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헌신은 자신의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 몸속에 모두가 다 들어 있습니다. 어느 한부분만 드리는 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어떤 자는 물질은 드리는데 몸을 드리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몸은 드리는데 물질을 드리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헌신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디모데를 보고 “너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양육을 받은 자로 하나님의 일이 최고 우선으로 보았습니다. 예배는 몸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집에서 케이불 방송으로 예배드리는 것, 영상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헌신이 없는 예배입니다. 사람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드려야 흠향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구약에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에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사용하다가 죽었습니다(레위기 10:1).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사람으로 방법으로 옮기다가 제사장 웃사가 죽고 실패하였습니다.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종이 되셨습니다.”   - J. 오스왈드 샌더스 -


3. 빌립보서 2:5~8절을 읽으십시오.


(1) 당신은 누구의 본을 따라야 합니까? (5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 내용 전체의 기초는 섬김입니다. 나를 섬겨 주심으로 우리들의 주가 되신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예배를 받으시고 주재 권을 가지게 되고 모든 사람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신 것은 하나님이시지만 자기를 비워 내고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심과 자신을 최고 밑바닥까지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여 주시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종의 삶의 결과입니다. 자녀들이 왜 부모를 섬겨야 합니까? 부모가 먼저 자녀를 섬겨 주고 헌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나를 위해 섬기고 자기 몸을 다 주셨기 때문에 나도 주님께 몸을 드리고 헌신을 해야 합니다. 자녀가 어머니를 더 그리워하는 것은 어머니가 더 잘 따뜻하게 섬겨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이름을 얻으려면 주님처럼 섬기는 삶을 살아야 얻을 수가 있습니다.


(2) 그리스도께서 어떤 위치를 취하셨습니까? (7절)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자기를 비워 내는 것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포기 하라는 말입니다. 종은 원어로 “둘로스”인데 “자유가 전혀 없다”라는 뜻입니다. 생명권도 죽음에 대한 그 자체도 권한이 없습니다. 바울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회수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처녀가 결혼을 하면 처녀 권을 비워 낼 때 자녀를 낳아 키우고 양육을 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다 비워 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께서 그의 종의 도를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7~8절)


사람의 모양과 죽기까지 복종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편에서 볼 때 사람이 된 것은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자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주재 권에 도전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종이 되어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죽지 않고는 종의 삶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종의 삶이 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탁월한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랑으로 하셨습니다. 우리도 사랑으로 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빌립보서 2:3~4절에서 당신의 생활에 한 가지 적용해야 할 사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종이 되는 비결은 한마디로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겸손의 뜻은 골짜기라는 뜻이 있고, 교만은 봉우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종의 삶의 열쇠는 겸손입니다. 성도의 허리띠는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한 자에게서 영력이 나옵니다. 골짜기는 봉우리에게서 흘러내리는 물을 다 감당하여 내는 것입니다.


(1) 당신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가르쳐 줍니까?


오직 겸손함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면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사람 앞에서도 겸손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의 사람이자 자신의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자녀를 키울 때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섬기려는 태도로 양육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가 목사를 사랑하고 심길 줄 압니다. 사람을 섬기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두려워 할 때 이웃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눈가림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가 교회를 잘 섬깁니다.


(2) 당신은 어떠한 영역에서 이러한 태도의 삶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겸손한 자에게는 겸손할 수가 있는데 상대가 교만할 때는 나도 감정이 있기 때문에 교만하여 져서 잘 섬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만한 자에게서 겸손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유월절 만찬에서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누가 높으냐? 도토리 키 제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그들의 발을 씻어 줌으로써 겸손히 섬김을 보여 주셨습니다. 나도 교만한 자 앞에서 내가 겸손히 종의 자세를 나타낼 때 이것이 참 종의 삶입니다.


(3)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철저히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제자는 훈련으로 됩니다. 훈련이 되지 않으면 실패 합니다. 섬기는 삶은 철저히 훈련을 통하여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요셉, 모세, 다윗, 또한 예수님은 30년을 훈련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16장의 일꾼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성공 할 수 있었습니다.


레비게이토 창시자 토르트만씨가 스텝들을 훈련시킬 때 자기 밑에 가르친 자들에게 다시 배우라고 했을 때 한 사람이 반란을 일으켜 비방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토르트만씨는 아무런 말없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결국 세상으로 나가 방황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토르트만씨를 존경 하였습니다. 그의 겸손을 보고 토르트만씨는 그를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겸손 할 때 성장이 옵니다. 겸손할 때 섬길 수 있습니다. 겸손한 자가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원하시는 것


5. 마가복음 1:31절을 읽으십시오.


종으로 살면서 주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종으로 살라고 주님은 종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종의 삶의 이유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에게 원하십니다. 종의 삶의 걸림돌은 무엇인가를 점검 해보십시오. 시기, 질투인가? 나의 자존심인가? 교만인가? 여기에서 얻어 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으로 채워야 합니다. 겸손은 존귀케 만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일 뿐입니다. 걸림돌이 있으면 그것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겸손하면 위대한 용기가 나옵니다.


(1) 예수님께서 열병을 고치심으로써 베드로의 장모를 섬기셨을 때 그녀는 즉각적으로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편히 쉬어야겠다고 하지 않고 즉시 일어나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시중들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은혜를 받은 자는 그 태도가 즉시로 섬기는 삶 속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은혜를 받고 기뻐하기만 하면 교만하여 집니다. 여호수아 앞에는 항상 종이라는 말이 붙어 다녔습니다. 심지어는 시종자라는 말까지 앞에 붙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자를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죽기까지 모세를 섬겼습니다. 모세가 사십일 금식할 때 여호수아도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금식하며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내 아버지여 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믿음의 아버지로 섬겼습니다. 먼저 섬기는 삶을 사십시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자신이 먼저 해 보십시오. 얼굴만 씻어 주려고 하지 말고 냄새나는 발도 씻어 주십시오.


(2) 베드로의 장모가 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까?


감사 때문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섬김의 근원은 감사 때문에 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섬기십시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있었지만 주님께서 섬김으로 고쳐 주었을 때 즉시 일어나 감사함으로 그는 주님을 섬겼습니다.


(3) 그리스도께서 어떤 면에서 당신을 도와 주셨습니까?


은혜 받은 것, 고침을 받은 것, 주님께서 나에게 도와주신 것에 대해, 받은 것에 대해 살펴보십시오.


(4) 당신의 반응은 어떠해야 합니까?

 

내가 어떻게 몸으로 실천하여 볼 것인가? 말로만 감사하지 말고 행동으로 하십시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든지 교회에 몸으로 헌신을 하든지 아니면 목회자에게 어떻게 무엇으로 실천하여 볼 것인지 구체적으로 섬길 수 있는 것을 기도하면서 실천을 하여 보십시오.


6. 당신은 누구를 섬기려 해야 합니까?


(1) 요한복음 12장 26절


주님의 종노릇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예를 들면, 어린아이가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고 엄마가 가는대로 따라 다닙니다. 그 엄마가 있는 곳에 그 어린아이가 있듯이 종노릇 하려면 주님이 있는 곳에 항상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종으로 섬기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있는 곳에 있는 자가 섬기는 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거지 바디메오가 주님께 찾아와 선생님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선생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랍비”는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이고, “랍오니”는 “나의 주인이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디메오는 “랍오니여”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주님은 나를 다 아십니다. 나의 형편을 다 아신다”는 용어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주님 내 소원을 알고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주님은 그의 눈을 열어 주었을 때 그 즉시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신령한 것과 주님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아홉 문둥이는 은혜를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하고 흩어졌지만 바디메오는 그 즉시 섬기는 삶을 살고 주님은 나의 증인입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가롯유다는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랍비”여라고만 하였습니다. 즉 “랍오니여” 나의 주인이십니다, 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섬기는 삶을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든지 섬기는 삶을 사는 자와 동행하여 주십니다.


(2) 갈라디아서 5장 13절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믿는 형제들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서로가 종노릇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인사말에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자고 하였습니다. 왜? 형제들에게 종노릇해야 합니까? 형제들에게 선생 노릇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섬기는 자를 지도자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섬김으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왜? 백성들이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습니까? 군립의 자세로 하기 때문입니다. 왜? 목회자가 존경을 받지 못합니까? 권위 의식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지도자는 섬기는 자입니다. 교회 장로를 세울 때 섬기는 삶을 사는 자를 세워야 합니다. 사람보고, 물질을 보고 세우면 그 사람의 종노릇하기 바쁩니다. 모세 오경을 보면 여호수아에게 항상 앞에 붙어 다니는 것이 종, 시종자라고 하나님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종노릇하지 못하는 자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종을 길러 내십니다. 모세를 80세에 하나님은 부르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양을 쳤습니다. 이 말은 종의 삶을 섬기는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삶을 사는 자를 찾아 사용하십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끝까지 섬기는 삶 즉 모세의 시종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모세의 후계자로 세워 사용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히 취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 하늘에 있는 자 땅에 있는 자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결국 교회들은 섬기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나를 높여 주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복을 풍성히 주십니다.


(3) 히브리서 13장 17절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기를” 이 말은 영적 지도자를 섬기라는 말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주의 종들입니다. 영적 지도자에게 섬기는 삶에 실패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도 실패하고 맙니다. 이것은 자기 전 생애의 실패입니다. 주의 종을 잘 섬기면 하나님을 잘 섬기며 복을 받습니다. 신앙에 성숙한 자는 바로 섬기는 자의 삶입니다. 섬기지 않는 교회는 미성숙하고 말썽이 많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아버지처럼 섬겼습니다. 여기에는 배우는 삶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신약에는 오직 디모데만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칭호입니다. 디모데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그리고 바울에게 배우는 삶을 통해 실제 섬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6번은 5번과 연관이 됩니다. 내가 은혜를 받았다면 섬기는 삶에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주의 종 그리고 형제를 섬기는 삶에 열매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성도를 잘 섬길 때 그 사람이  믿음의 지도자입니다. 교회 일꾼으로 집사, 권사, 장로 바로 섬기는 열매를 꾸준히 맺고 종노릇 잘하는 자를 세워야 합니다. 종의 삶은 주님이 먼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나에게 바로 이런 종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은혜를 받았으면 감사의 표현을 놓치지 말고 감사 표현을 할 때 참 종의 삶의 모습입니다. 자녀가 부모 생신 때 빈손으로 와 말로만 축하한다는 것은 섬기는 삶이 아닙니다. 그에 따라 표시를 할 때 섬기는 자의 자세입니다. 내가 먼저 섬기는 삶을 실천하여 보십시오.


7.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마지막 시간 동안에 섬기는 태도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2:24~27)


제자들의 섬김의 삶에 실패의 내용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1) 제자들은 무엇 때문에 다투었습니까? (24절)

 

유월절 만찬 때 제자들은 누가 크냐? 하는 마음으로 다투었습니다. 주님처럼 섬기는 삶의 태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섬김의 삶에 정상인 십자가를 놓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반대로 누가 높으냐? 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지도는 높은 위치에서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섬기는 삶에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섬기는 자가 될 때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섬김에는 관심이 없고 섬김을 받으려고 자리다툼을 하고 있을 때 주님은 실제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씩 순서대로 발을 씻어 주시면서 너희들도 나처럼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나를 대신해서 죽어 주면서까지 섬기는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섬기는 자가 탁월한 믿음의 지도자입니다.


주님은 교만한 자들 앞에서도 겸손한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삶의 원리입니다. 주님은 똑똑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섬기는 종의 삶을 사는 자를 찾으십니다(참고적으로, 여호수아의 경우 출애굽기 24장 13절, 33장 11절, 17장 10절). 우리는 교만한 자 앞에서 교만하고 겸손한 자 앞에서 겸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만한 자들 앞에서도 겸손 할 때 성숙한 섬김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섬기는 삶에 방해 요소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서로 토론 해 보십시오. 그룹별로 토론을 하여 발표 해 보십시오.


대체로 예를 들어 보면 첫째, 자존심 때문에 섬기지 못합니다. 둘째, 체면 때문에 어떻게 섬기느냐? 하는 것 때문에 실패를 합니다. 바울이 탁월한 지도자가 된 것은 사랑으로 종노릇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넷째, 사회 풍습 - 남편이 부엌 일 돕는 것을 부모님이 보시면 어떻게 하나? -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섬기는 삶에 방해 요소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종으로 섬기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부흥의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머리로 세워 주시고 높여 주십니다.


(2) 예수님은 자신의 겸손을 어떻게 보여 주셨습니까? (27절)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고 주님은 물어 보셨습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는 위치에 계셨지만 섬기는 자세로 섬겼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은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3)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26절)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 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높이 될 수록 섬겨야 합니다. 권사, 장로가 되면 섬기는 영역이 더 넓혀졌다고 믿고 섬겨야 합니다. 주님은 실제 하나님이시면서 냄새나는 인간을 섬기셨습니다.


(4) 이것은 “세상”이 행하는 것과 어떻게 다릅니까?


세상은 그 반대입니다. “이방인의 임금은 저희를 주관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임금은 백성들을 다스리고 군림합니다. 세상을 섬기는 자는 작고 섬김을 받는 자가 큰 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정반대입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탁월하게 섬겨야 천국에서 큰 자가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예수님의 삶은 언제나 종의 도에 대한 본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3:1~15절은 섬기는 삶에 있어서 예수님의 태도에 관하여 많은 것을 보여 줍니다. 이 부분에서 당신이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을 기록해 보십시오.

                                                         

                                                         

                                                         


묵상에 대한 설명


유월절 만찬 식사 중에 주님은 냄새가 나는 제자들의 발을 차례대로 씻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종이 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종으로 씻어 주신 것입니다. 얼굴과 손은 그래도 씻을 만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냄새나는 발을 씻었다는 그 사실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식사 시간에 비유가 약한 사람은 냄새 때문에 먹지 못하고 토하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식사 도중에 발을 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밥맛이 떨어져서도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왜 이런 일을 하셨습니까? 주님은 실제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기 싫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하기 싫은 비천한 일은 돈을 많이 주어도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하기 싫어하는 종이 하는 일을 몸소 하셨습니다. 우리도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기 싫은 일을 내가 먼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화장실 청소, 설거지 등을 남편들도 한번 실천하여 섬기는 작은 삶부터 시작하여 큰 것도 실천 할 수 있는 자가 되십시오. 이런 일은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일을 할 때 섬기는 종의 삶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화 구원을 이루어야 하고 상태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의 상이 큽니다. 교회 일꾼은 바로 이런 삶의 열매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자를 세워야 합니다.


자신을 드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자유가 아니라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의를 섬기기 위하여 죄에서 해방되었고(로마서 6:18~19),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사탄에게서 해방되었으며(베드로전서 2:16), 다른 삶을 섬기기 위하여 자아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갈라디아서 5:13). 그리스도인은 이제 더 이상 옛 생활에 관한 일들을 섬길 의무가 없으며, 오직 새 생명에 관한 일들을 자원하여 섬길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기 위한 선을 행하기 위한 자유, 다시 말하면 남을 섬기기 위한 자유 때문에 율법에서 주님이 해방시키셨습니다. 율법은 최소한 대로 하나님 앞에 해보라고 규정 하였습니다. 율법에서 해방은 마음껏 섬기라고, 순종하라고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나의 모든 것은 실제 섬기는 삶입니다. 실제로 십자가를 질 때 매인 쇠사슬을 하나님이 풀어 주십니다. 이것이 참 자유입니다.


8. 사도 바울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불렀습니까? (고린도후서 4:5)


“그들의 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종이란 자신을 드려서 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원어로는 “둘로스”인데 “주인의 소유이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생존권도 없음을 말합니다. 종은 섬기는데 자신을 드려서 섬기는 자를 성경에서는 종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2장 1~2절에서는 몸을 드리는 것이 영적 산제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헌신입니다. 산 제물은 내 자아, 지식, 뜻, 생각, 모든 것 죽이고 비워내고, 자기를 부인하고, 몸을 드리는 것, 이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내 몸을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구약은 제물은 죽여서 드렸습니다. 몸을 드리는 것은 내 몸속에 모두가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 몸을 요구 하십니다. 내 몸을 드릴 때 헌신이며 섬기는 종의 삶입니다. 교회에서 자기 손을 들려고 하지 말고 주의 종의 손을 들게 해야 합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들게 한 것처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죽어야, 자신을 비워 내어야 할 수 있습니다. 즉 죽어야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실제 그렇게 사시고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기는 삶을 반드시 살아야 성화에 성공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고린도후서 12:15)


바울이 위대한 것은 교회를 위해 성도들 위해 관제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관제는 “자기를 죽여 몸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했다, 허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관제로 드린다.”는 이 말은 자기를 죽여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허비하였습니다. 자신에게는 헛되게 써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교인들에게 보상을 받기 위해 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으로 허비를 하였습니다. 자신을 남을 위해 허비하였습니다. 이것이 헌신의 표이며 기준입니다. 자식을 위해 부모가 모든 것을 허비하고 후회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아낌없이 다 주고자 합니다.


충신은 임금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 내어 놓고도 영광스럽게 여깁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허비하는 것은 죄입니다. 부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주의 종을 위해 자기 몸을 내어 놓았습니다. 이때 아볼로 같은 믿음의 지도자를 길러 내었습니다. 지기 몸을 드리는 태도가 아니면 얼마 가지 않아 자기 근성이 들어 납니다. 내 몸을 드려 주님께 허비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 생애를 다 주님께 바쳐 헌신을 하였습니다(고린도후서 12:15). 이것은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눈물도 다 기억을 하시고 너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허비하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사랑의 표식은 자식을 위해 아끼지 않고 허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을 위해 허비하였습니다. 죽기까지 헌신을 하라는 것은 하기 싫어하는 일까지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섬김의 삶입니다.


9. 선한 종의 몇 가지 자질들을 기록해 보십시오.


선한 종의 자질은 - 바울이 디모데의 자질을 보고 선택을 하였습니다.

첫째, 작은 일에 충선 된 자입니다. 흔히 큰 일만하려고 합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작은 것에 불 충성 하였습니다. 종은 주인의 눈에 잘 보여야 하고 그리고 주인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어야 훌륭한 종이 될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이러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합니다. 셋째, 성실해야 합니다. 믿음도 성실하고 진실한 믿음을 가진 자가 충성된 믿음의 사람입니다. 압살롬 같이 거짓으로 하면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선한 종은 일의 결과를 맺어야 하고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인에 대한 즉 주님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깊이 주목하여 관찰하여 보고 이해했을 때 선한 자질을 가진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주님은 먼저 나를 이해하여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실수를 하였을 때 “시몬아”라고 하였습니다. 더 큰 실수를 하였을 때 “요한의 아들 시몬아” 조상의 이름까지 들먹이셨습니다. 반면에 베드로가 잘하면 “베드로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탁월하게 베드로를 이해하셨습니다. 선한 종이 되려면 질적인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양적인 충성도 있어야 합니다. 경험에서 느낀 것은 민감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지속력이 있어야 합니다. 한두 번 잘하여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한두 번은 잘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보지 않더라도 섬겨야 합니다. 보상심리로 하면 안 됩니다.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여서도 안 됩니다.


이번 주 동안에 누구에게든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종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그 정의를 보고 그의 대답을 이곳에 기록하십시오.

                                                             

종이 되는 비결


겸손 할 것


겸손한 삶의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자질을 가지고 있더라도 겸손하지 못하면 섬기는 삶에 실패하고 맙니다. 목회자나 일꾼 제자들은 겸손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10. 당신의 마음속에 늘 간직해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3:13, 16)


겸손에 대하여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종이 주인 보다 높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여기에서 실패 하였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 보다 결코 높이 될 수가 없습니다. 높다 낮다는 말은 섬김의 자세에서 주님을 섬기려면 주님보다 높아 져서는 섬길 수 없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기려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섬기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차기까지 섬기는 자세와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빌립보서 2장에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최고로 낮추셨을 때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늘에, 땅위에 그리고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종이라면 주님의 제자라 한다면 주님을 믿는 자라고 한다면 주님 보다 높아 져서는 안 됩니다. 제일 좋은 신앙은 로드의 신앙입니다. 백부장 주인과 종의 자세를 확실히 취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를 칭찬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수르보니게 여인처럼 주님의 주재 권을 인정하는 것이 좋은 신앙입니다.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옳소이다.”라고 대답한 그것이 신앙입니다. 주님은 나의 절대 주인입니다, 인정하고 자신은 종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섬김은 내가 종이 되었을 때만 됩니다. 교회에서 자기가 높다고 하면 본 교회 목사를 섬기지 못합니다. 태도가 너무 중요합니다. 태도가 바로 세워졌을 때 섬길 수가 있습니다. 예로서,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에게 책망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신 것입니다. 종은 주인보다 결단코 높아 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보다 높아 질 수 없는 사실을 바로 알고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11. 당신은 종으로서, 당신이 섬기고 있는 그 일 때문에 오히려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누가복음 17:10절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다 행한 후에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해야 할 일만 했을 뿐이라”고 자기를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섬기고 난 다음에 결과를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섬겼으면 그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예로서, 교회 마이크를 구입하여 드렸으면 누가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 가지고 따지면 좋은 섬김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헌금을 하여 놓고 어디에 어떻게 썼느냐고 따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입니다. 헌신은 내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나의 뜻 모두 죽여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내 주장하면 섬기는 자세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살피고 채워 줄 것


12. 종이란 관찰력이 예리한 사람입니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의 지으신 것이니라”(잠언 20:12).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듣고 관찰하게 하신 것은 그것들을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1) 어떻게 하면 당신은 보다 잘 경청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교회에서 주의 종을 일상 중에 잘 섬기려면 설교를 잘 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설교를 아멘으로 잘 받아먹는 자가 잘 섬기는 자입니다. 또한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여 주고 그리고 관찰하여 무엇이 필요한가를 살펴야 합니다. 시골에 머슴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압니다.


(2) 어떻게 하면 당신은 보다 잘 관찰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첫째, 주인의 말을 잘 경청해야 합니다. 성도는 주의 종의 말에 경청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님의 말을 잘 경청하여야 합니다. 무슨 일을 시키는 가를 잘 들어야 합니다. 둘째, 열심히 세밀히 관찰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잠언 24장 30~34절에 “게으른 자의 발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 본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는 세밀히 관찰했다는 것입니다. “게을러서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눕자 하니 네 궁핍히 강도 같이 오고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섬기는 삶을 살려면 살피고 관찰하여야 그 섬기는 기회를 잃지 않고 섬길 수 있습니다. 


(관찰을 통하여 배운 사람의 실제 예를 잠언 24:30~34절에서 읽으십시오.)


13. 다른 사람들의 필요 가운데, 당신이 도와서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병원에 입원을 하였을 때 심방하고 상을 당했을 때 이런 때는 섬길 기회입니다. 유심히 살펴서 그 가정에 문제를 위해 기도하고 그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와 힘을 주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는 그것이 섬기는 삶입니다. 압살롬은 거짓 섬김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 하였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마음을 빼앗기 위해 섬김의 자세를 이용하는 사례가 흔합니다. 우리는 좋은 면에서 섬겨야 합니다. 섬김은 결코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3:27절과 요한일서 3:17절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은 당신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해 줍니까?


“내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으면 베풀기를 아끼지말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형제에게, 실제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말로만 하는 것은 섬김의 삶이 아닙니다.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주변에 관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작은 것부터 섬겨야 합니다. 섬길 때 이웃 사람들의 인식이 바꾸어집니다.


섬기는 삶에 대한 평가를 할 것


자기 삶을 한번 체크하여 보십시오. 평가를 하지 않으면 옳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모릅니다. 14번은 섬김에 대해서 적용입니다.


14. 잠깐 멈추고 당신의 섬김을 평가 해 보십시오.


(1) 당신 다른 사람을 섬긴 실례를 한 가지 기록하십시오.


자기에게 마음속에 섬김의 삶이 남아 있는 것을 한번 적어 보십시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이웃을 탁월하게 섬겼습니다. 이것은 평생에 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봉사한 것을 쓰라고 한다면 주님께 옥합 나드를 깨뜨려 봉사 한 것을 쓸 것입니다. 섬기고 난 다음에 혹시 손해 본 일이 있는가? 복을 받았는가? 를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종이 주인 보다 높지 못하다는 태도를 가질 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2) 당신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알 고 있었으나 그를 섬기는데 실패한 실례를 한 가지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섬김의 기회를 주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사실에 대하여 적어 보십시오. 섬김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감동 주실 때 즉시 해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섬김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기회를 붙잡는 자는 큰 축복이 있습니다.


(3) 당신의 견해에 비추어 볼 때, 왜 한 번은 잘 섬겼고 다른 한 번은 섬기지 못했다고 생각합니까?


일반적으로 중보기도가 없을 때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상대방의 채워주어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는 가르쳐 주십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도울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후회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잠잘 때마다 살려달라는 소리가 귀에 들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감동을 주셨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많은 축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자기에게 있는 것 마지막 양식으로 주의 종을 섬겼을 때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만약에 놓쳤더라면 다른 사람이 그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에스더는 왕후가 된 후 민족적 어려움을 당했을 때 에스더 4장 13~14절에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은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고 하였습니다.


내가 사건을 만났을 때 도망치지 말고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현실을 바로 알고 이 일 때문에 내가 준비된 자로 알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구약에 요셉의 현실관은 내 민족 어려움을 위해 애급의 총리로 준비된 자로 알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준비 된 자로 현실관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현실관을 바로 가지려면 첫째, 현실관을 먼저 가져야 하고 둘째, 현실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에스더는 바른 결단을 했을 때 민족을 구원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선한 결단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현실관이 없을 때는 첫째, 내가 너무 바쁠 때 섬기지 못합니다. 둘째, 은혜가 없을 때 못 섬깁니다. 한 두 번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섬겨야 계속 섬길 수 있습니다.

 

15. “지극히 작은 일”을 잘 섬기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작은 일이 바로 큰 일입니다. 사람들은 작은 일은 유익이 없기 때문에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칭찬도 없고 표식도 나지 않습니다. 큰일은 대부분 자기를 나태내고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 합니다. 그것은 결국 유익 때문에 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서부터 일하게 하십니다. 종의 삶에 성공을 하려고 하면 적은 일부터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해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 갑니다. 히틀러는 군림의 자세로 세계를 파괴 시키는 어리석은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선 된 자 큰 것에도 사용하십니다. 한국의 병은 큰 것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정치인들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합니다. 나타나지 않는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계시록에 소아시아 교회는 작은 일에 충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귀중히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은 작은 일에 잘 섬길 때 들어 사용하십니다. 이런 자가 큰 것에도 탁월하게 잘 섬깁니다. 서로 섬길 때 이해하고 분위기도 좋아집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데는 시기와 다툼과 분쟁이 생깁니다. 질서도 없어집니다.


“성실하게 해내고 또 꾸준히 하고 있는 작은 일들에는 그 보답이 따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은 일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성공이라는 대로를 수놓는 모자이크가 됩니다.”


종은 주는 사람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장 실제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그 사람의 물질적, 재정적 필요를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유형적인 자산을 기꺼이 줄 수 있다면 무형적인 자산 즉 당신의 시간이나 경험이나 사랑이나 삶을 보다 더 잘 줄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드리는 것(주는 것)은 종의 생활 가운데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돈으로 섬길 수 있다면 다른 것으로도 얼마든지 섬길 수 있습니다. 물질인 돈이 가지 않으면 다른 것도 갈 수 없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물질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식을 가르치는데 돈 든다, 고 학교 보내지 않으면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이 가야 다른 것도 섬길 수 있습니다. 돈을 번다는 것은 그 속에 시간과 노력, 땀, 정성, 경험, 지식, 건강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종노릇 한 것 즉 사장에게 욕도 얻어먹어 가면서 번 돈입니다. 그러므로 물질로 섬기는 것은 헌신입니다. 작은 것 준다고 사람 어떻게 보느냐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에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때 서로 신뢰성이 쌓여 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도 귀중히 여기며 감사해야 합니다.


16. 어떠한 원리들이 신약 성경의 헌금에 대한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까?


(1) 고린도후서 8장 9절


헌금의 기초 원리입니다. 왜 헌금을 해야 합니까? 헌금을 해야 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아낌없이 내게 주셨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 내 몸, 내 속에 있는 영생 이 모든 것들이 빛의 아버지께로 왔기 때문입니다.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나는 관리 하는 청지기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섬겨야 하는 이유는 나를 낳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식의 의무이고 마땅히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2) 고린도후서 9장 8절


내게 가지고 있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셨습니다. 주님은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을 때 주님을 따르지 못한 것은 기초가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것인 줄 모르고 자기 것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주시고 회수하시는 분이 주님이신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교회 일꾼은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 위해 쓰라는 것을 아는 자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는 통로가 되어야 하고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은사도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도로 가져가십니다. 청지기의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서부 사람들은 이러한 정신에 기초를 두었기 때문에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교회 헌금을 하든지 사회사업에 헌납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실에 최고의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큰 영광입니다. 바울은 평생 하나님께 발견되는 삶을 살기로 했기 때문에 세상의 것은 배설물로 여기고 분토처럼 버렸습니다. 우리들의 소원이 세상에 발견 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발견되려 해야 할 것입니다.


17. 하나님은 드리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십니까?


(1) 누가복음 6장 38절


섬기는 자에게 후히 주십니다. 통로 역할 잘하는 자에게는 계속 공급을 하여 주십니다. 이런 자에게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며 항상 새롭게 하여 주십니다. 즉 새로운 삶을 살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는 삶은 씨를 뿌리는 삶입니다. 이것은 절대 낭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손을 펴서 후히 주는 자에게 후히 더 해 주십니다.


(2) 빌립보서 4장 19절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쓸 것을 채워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부족함이 없이 풍성히 채워 주십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헌금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제사 즉 예배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종에게 헌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즉 예배 생활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언제든지 풍성히 채워 주십니다. 이것이 헌금을 드리는 원리입니다. 사렙다 과부는 현재 있는 것을 가지고 주의 종에게 드리고 섬겼을 때 하나님께서 후히 주시는 산 체험을 하였습니다. 결국 내가 심는 그대로 거둡니다. 콩을 심었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었으면 팥을 거둡니다. 기업을 위해 심으면 기업의 열매를 맺고 장막을 위해 심었으면 장막의 열매를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심어서 산 체험을 해 보십시오.


18. 다음 도표의 구절에 따르면 당신은 누구에게 헌금을 해야 합니까? 각 구절에 있는 대상 중에서 당신이 헌금을 할 수 있는 특정한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첫째, 말씀을 가리키는 자와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헌금의 첫 대상입니다. 둘째,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들이 대상입니다. 교회에만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종과 복음을 전하는 자 그리고 가난한 고아 과부들에게 헌금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일조만 심으면 안 됩니다. 여러 분야에 심을 수 있는 대로 심어야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죽을 때는 내 재산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는 자가 주님을 잘 섬기는 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모두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것으로 우리들에게 갚아 주시며 자손들에게도 복을 주십니다.


(1) 잠언 19장 17절


가난한 자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으로 인정하고 그 선행을 갚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나는 주었는데 하나님은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도와 줄 대상을 찾아 써보십시오.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손을 펴서 도와주어 하나님께 심어 보십시오. 내 마음에 감동되는 대는 그대로 한번 써보고 실천하여 보십시오. 우리는 믿음으로 주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헌금을 하는 자로 성장해야 합니다.


(2) 고린도전서 9장 14절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헌금을 해야 합니다. 선교 헌금도 해 보십시오. 내가 개인적으로 복음 전하는 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 헌금을 해 본적이 있는지를 적어 보십시오.


(3) 갈라디아서 6장 6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에게 헌금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은 그대로 주십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에게 한번 헌금을 실천하여 보십시오.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계획을 하여 믿음으로 심어 보십시오.


(4) 야고보서 2장 15~16절


헐벗은 형제자매에게 일용할 양식을, 굶는 자들에게 살펴서 한번 헌금을 실천 해 보십시오. 우리가 헌금을 해야 될 대상자들입니다. 계획을 하고 실천할 때 이것은 심는 일이므로 하나님은 그 심은 대로 갚아 주십니다. 헌금에 대한 새로운 계획 19번입니다.


19. 당신의 드리는 삶을 평가해 보십시오.


(1) 당신은 헌금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목회 사역이나 신앙 성장 삶에 있어서 헌금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고 교회에 하나님의 사업에 모두 동참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자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헌금하는 일에 빠지고 동참하지 않는 자는 교회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물질이 있는 그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헌금에 대한 계획이 없이 생활하였다면 이제는 근면과 검소의 생활을 하고 헌금하는 계획을 세워 보십시오. 이것은 심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심어야 거두어드릴 수 있습니다.


(2) 현재 당신은 누구에게 헌금하고 있습니까?


교회에 공적으로 하는 헌금 이외에 개인에게 즉 목회자에게 또는 구제 헌금이나 선교 헌금이나 할 수 있는 자로 성장을 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율법에 근거하여 최소한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부를 원하십니다. 과부의 엽전 두 달란트는 전부 드린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회수권자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원하실 때 모두 드릴 수 있는 성숙한 자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헌금을 계획하여 하나님께 믿음으로 심으려면 먼저 근면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신앙 성숙한 자는 성숙한 헌금으로 유형적인 것을 가지고 섬길 수 있어야 무형적인 것이 따라 옵니다.


즉 눈에 보이는 물질로 돈으로 섬길 수 있을 때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영적인 것이 옵니다. 예로서, 헌금 수년전에 수준으로 아직 그대로 헌금을 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생활면입니다. 전체를 다 드릴 수 있는 자로 성장해야 생활면에 실패자가 되지 않습니다. 헌금의 생활이 실패하면 전체적인 모든 삶이 실패 할 수 있는 확률이 더 큽니다. 부자 청년이 주님을 찾아와 영생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을 때 주님은 너의 전부를 드리라고 하였을 때 드리지 못하여 실패를 하였습니다. 결국은 그는 영생을 포기 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실패자입니까. 이런 신앙은 물질이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움켜쥐고 있으면 모으는 것으로 압니다. 물질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을 다 드릴 수 있을 때 신앙에 성공 자가 되어 풍성함을 영과 육적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헌금을 한번 계획을 하여 써보십시오. 내가 개인적으로 목회자나 가난한 자나 여러 형태로 계획하여 적어보고 내가 한 것이 있으면 이것도 한번 적어 보십시오.


(3) 당신의 헌금 생활은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헌금 생활에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일조만 하고 다른 헌금 못하고 있으면 그것을 상세히 기록하여 보십시오. 아직도 십일조 못하고 있으면 왜 못하고 있는지 원인을 분석하여 보고 기본적인 것 차원을 넘어서 부지런히 헌금을 드리므로 심는 일을 하십시오.


요 약


우리의 본이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종이 되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원하여 그렇게 되셨습니다. 지상에 계시는 동안 예수님은 여러 면으로 사람들을 섬기셨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그 자신을 드리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원하시는 것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을 도와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주님을 섬기는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영적 지도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자신을 드림


그리스도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를 원하시므로 믿는 자들은 다름 사람을 위하여 살 수 있도록 “자신”에 대하여는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이 되기 위하여 해방되었으며, 수많은 방법으로 종의 도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종이 되는 비결


종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섬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대하여 점점 민감해지며, 그 필요들을 채워주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얼마나 잘 섬기고 있는가에 대한 정기적인 평가는 그로 하여금 더 훌륭한 종이 되도록 자극을 줍니다.


종은 주는 사람


섬기는 사람은 주는 사람 즉, 자기 자신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물질과 제정적인 소유를 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도록 하시며 또 주는 자에게 풍성한 축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 각자는 성서적인 원리에 따라서 헌금에 대한 개인적인 게획을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라감에 있어서 ……,


제4권,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 시리이즈의 다음 책입니다. 그리스도와 동행해 나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외적인 모습에 관심을 두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마음은 지(知), 정(情), 의(意)의 원천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올바른 마음은 올바른 행동을 산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이 점점 그리스도의 마음과 같이 되도록 다루십니다.


이 책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숙과 그의 주재 권에 복종하는 것과 믿음으로 행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알고 종으로서 행하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다음 책에서는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 이룩하시는 중요한 내적인 자질(특성)들을 공부할 것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열매 맺는 생활로 부르심

•행동으로 나타나는 진정한 사랑

•순결한 삶

•정직한 생활

•인격의 연단





은혜를 많이 많이 받으시고 천국백성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한권당 12시간씩 편집한 글입니다.
목사님의 좋은 자료 너무 감사드립니다.
수원에서 개척교회를 섬기고(담임) 있는 자 입니다
위의 자료들을 jesus4321@hanmail.net로 보내주실 수 있으신지요...
너무 필요한 자료라서...
미국에 거주합니다. 한글이 조금은 불편한 편입니다.
교회에 직분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공부 시키는데 많은 도움됩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필요하시다면 네비게이토 전권을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수개월간 편집한 귀한 자료입니다. 멜 주소를 적어주세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말씀 공부하고 있는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대단히 좋은 공부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혹시 저에게도 네비게이션 화일을 보내 줄 수 있나요...ysunp4542@gmail.com
네, 보내드렸습니다.
저는 일산에서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말씀을 통해 영적성숙을 이루려고 훈련을 시작했는데 이 교제에 아무런 자료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너무 귀한 자료를 보니 참 감사합니다. 이 자료를 써도 되겠습니까? 허락하신다면 잘쓰겠습니다. 혹 한글파일로 작업된 것이 있다면 보내주실수 있으신지요? 그리고 네비게이토 교제의 다른 자료들도 제가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 청년부에서 단계별로 다 교육하고 싶습니다. xalvin21kr@hanmail.net 자료를 못보내 주시면 이곳에 올려놓으신 것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보내드렸습니다.
샬롬. 필리핀 선교사입니다. 성경공부에 자료가 필요해서 파일을 부탁드립니다. joytd7851@hanmail.net 감사합니다.
너무 귀중한 자료를 부탁드립니다. 파일을 받아 보고 싶습니다. obeu90@hanmail.net 감사합니다.
평안하세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