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토

우림과둠밈 2008. 4. 2. 17:30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제5권]

믿음의 기초

Foundations for Faith


하나님의 시야로 삶을 바라보라



제 5권에서 당신은 믿음의 기초가 되는 위대한 진리들을 탐구하게 될 것입니다. 공부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성 령

•영적 전쟁

•그리스도의 재림


이 진리들을 깨달아 감에 따라 당신은 새롭게 안정과 내적 평안을 얻게 되며, 더욱더 하나님의 시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편 119:165)라고 했습니다. 당신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그 교훈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마음에 큰 만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며,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순종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주기 원하시는 교훈이나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죄나 교만이나 불신을 경계하십시오. 이 성경 공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변화시켜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묵상을 위한 질문”은 전 과정에 걸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이 부분처럼 바탕에 쓰여 있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은 임으로 선택하여 공부해도 좋습니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구절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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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인간 스스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해 주셔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해 주셨습니까? 성경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 주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 활동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성도가 교회 잘 다니는 것을 보고 직분을 주는데 먼저 하나님을 잘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쳐 줄 때 신앙이 성장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면 바른 섬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본주의로 흘러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1.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칭호는 무엇입니까?


(1) 창세기 17장 1절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칭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계시하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항상 우리들에게 믿음을 가르치는데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람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숨을 쉽니다. 즉 살아 있어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이 말에 대해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 속에는 전지전능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전지전능이 있는 것입니다. 


(2) 시편 95편 6절


창조주 하나님의 칭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고 했습니다.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만드신 그 만물들을 보존하십니다. 히브리서 1:3절에 “그의 능력이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만물의 보존 방법은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보호를 하십니다.


(3) 누가복음 11장 2절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까? 그것은 관계성을 맺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 속에서는 나와 관계를 맺기 위한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아버지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만드신 분이시고 말씀으로 나를 낳아 주신 분이십니다. 야고보서 1장 8절에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서는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 디모데전서 6장 15절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전체적인 통치권을 가지신 분, 만물 속에서도 통치를 행사 하신 분, 현재와 미래를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왕들을 다스리시고 이 땅에 주인이라는 자들도 다스리시며 만물 까지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 어떠한 칭호도 그냥 우연하게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그 신성한 칭호들은 각각 하나님이 성품을 나타내 주고 있거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기초가 되는 원리를 제시해 줍니다.” -T. C. 해먼드-


2. 이사야 45:18~25절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을 열거해 보십시오.


첫째,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자연적으로, 우연히, 라는 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자연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분,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분, 공의로우신 분, 구원의 주가 되신 분, 모든 무릎으로부터 경배를 받을 분, 모든 자를 심판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 많은 예정 가운데 하나만 바로 알고 믿으면 내 생활에 놀라운 변화가 옵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여기서 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7절에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알 때 믿음이 생깁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는 변론과 다툼이 있습니다. 주님의 위대한 사랑은 변화산의 영광을 버리고 많은 무리들이 있는 가운데 열 제자들과 서기관들이 변론하는 곳으로 내려 오셨습니다(마태복음 17: 1~17). 이것이 위대한 주님의 사랑이십니다. 내 인격 속에 주님을 경험하지 않으면 사탄이 춤을 추는 가운데 나는 무기력할 뿐입니다. 아홉 제자들은 어떤 아버지가 간질병 들린 아들을 데리고 왔지만 그들은 그 아이의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사탄이 오히려 비웃고 있었습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온 그 세 제자들도 합세를 했지만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주님께 무릎을 꿇고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했습니다. 제자들이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 앞에서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여”라고 하시면서 귀신을 쫓아내어 주셨습니다. 오늘 내가 사탄이 춤을 추고 있는 가운데 무기력한 자가 아닌가?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을 확실히 알 때 믿음이 성장하고 사탄이 내 앞에서 춤을 추지 못할 것입니다. 내 인격이 늘 주님을 체험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3. 그밖에 또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1) 이사야 40장 28절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힘과 명철이 한이 없는 분 이런 하나님을 내가 믿을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가치관의 변화로 영원하신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 영원한 가치로 변합니다. 즉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살게 됩니다. 예로서, 모세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 받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긴 것은 상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 11:24~26). 영원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면 주님처럼 되어 갑니다(빌립보서 2:5~11).


(2) 요한복음 4장 24절


하나님은 영이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만 깊이 알고 믿으면 내 생활에 큰 변화가 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내 영을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알 때, 영의 사람으로 성숙을 위해 변화 되어야겠다고 할 때에 예배 생활에 변화가 옵니다. 변화가 오면 어디에서나 개인적인 예배 생활이 지속이 될 수 있습니다. 공적 예배와 개인, 가정 예배 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 예배 생활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변화됩니다. 나도 하나님의 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실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그 영이 나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큰 변화입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하신 말씀은 실제적인 관계에서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를 맺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복음 속에 관계를 맺었을 때 중생하는 것이 실제입니다. 수가성 여인은 복음으로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믿는 자는 지식적으로 만(니고데모, 요한복음 3:16) 알고 있으면 안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죄가 많든지, 적든지 관계없이 수가성 여인이 개인적으로 예수를 영접했을 때 변화가 왔습니다. 이것은 관계를 맺은 증거입니다. 수가성 여인이 믿는 자입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믿는 자가 아닙니다.


4. 아래에 열거된 하나님의 속성에 해당되는 구절을 각각 하나씩 골라 그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십시오.


시편 90:2     예레미야 23:24      예레미야 32:17

            야고보서 1:7        요한일서 3:20



(1) 하나님은 모든 것에 능하시다. (전능․全能)


말씀의 내용은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믿는 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하면서 믿음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여기에 실패를 했습니다. 아홉 제자들이 귀신아 물러가라고 했지만 귀신은 무능한 제자들 앞에 춤을 추면서 비웃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것을 보시고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귀신을 쫓았을 때 귀신은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습니다. 제자들이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라고 질문을 했을 때(마태복음 17:19~20), 주님은 제자들에게 “파라독스”(믿음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면 나도 전능이 나타나야 합니다. 여기에는 주님이 말씀하시길 “기도 외에는(마가복음 9:28~29)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類)가 나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는 기도를 해야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아는데 능력이 없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때 사탄은 춤을 추면서 나를 조롱합니다. 우리는 금식하며 기도를 해야 능력을 주시고 성령이 충만하여 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령을 충만히 유지 할 수 있느냐? 에 있습니다. 전적으로 의지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2)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전지․全知)


하나님은 나 자신이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같이 죽을지라도 부인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했지만 주님은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주님이 나를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주님이 부활하신 후 고기를 잡는 어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두 번씩이나 물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처럼 죽을 수 없기 때문에 필레오 사랑으로 두 번 대답을 했습니다. 주님은 세 번째 필레오 사랑이라도 하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나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다는 말은 그 만큼 나를 잘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즉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아시는 그 주님께서는 나의 고민과 문제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결제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 범사에 그를 인정할 때 지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죄악을 다 알고 계시고 그리고 나의 선도 다 알고 계십니다. 히스기야 왕은 현재의 교만만 보시지 마시고 지난날에 선한 것도 기억을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나를 구체적으로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나다니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했지만 주님을 만나 알게 되었을 때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나다니엘을 먼저 알고 계셨습니다.


(3)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편재․偏在)


천지에 충만히 계시니 그 앞에 숨길 수 없습니다. 온 천지에 하나님이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편재에 대해서 지식적으로는 동의하나 실제 생활에는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귀신들린 그 아들의 아비 실패를 했습니다. 실패의 원인은 너무 어려워서였습니다. 스데반은 그 고통 속에서 하늘의 보좌에 서 계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주님은 내 옆에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정원사는 가지치기를 할 때 가장 가까이 있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내 옆에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풀무불 속에 던져 졌을 때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 계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지 아니하실지라도 믿는 신앙 이였습니다. 오늘 시대는 그리 하여도 믿지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믿겠다고 했습니다.


(4)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영원․永遠)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존하시고 영원하십니다.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계시다가 어느 순간에 창조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증명할 수가 있는 것은, 첫째로 말씀이 내게 증명을 하고 예정하고 가르치는 것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실제 환경 속에서도 믿어야 합니다. 바울은 실제 유라굴라 같은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 이 말씀이 영원하심을 증명합니다. 둘째로, 예언의 성취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시대를 분별해보면 주님이 영광의 재림주로 올 때 노아 때와 같이 소돔과 고모라 때와 같습니다. 여기에 포인트로 보여 주는 것은 성적 타락입니다. 지금 시대를 보십시오. 부요한 가정주부들이 접대부로,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남창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는 성에 대해 자기중심으로 개인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죄의식이 점점 희미하여져 가고 있습니다. 


(5) 하나님은 결코 변치 않으신다. (불변․不變)


좋은 것만 주시고 필요 없는 것은 한 번도 주시지 않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4)번~(5)번의 차이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영원합니다. 변함이 없는 영원함입니다. (4)번은 하나님의 존재이고 (5)번은 하나님의 속성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변함이 없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열 번이나 배반 했지만 하나님은 변함이 없이 인도해 가셨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생활의 적용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어떻게 인도하시느냐? 시대의 적용면에서 다릅니다. 옛 광야 생활 때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생활 이였습니다. 현재는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인도하시는 면에서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적용에는 각자가 다르게 인도하십니다. 그렇듯이 성도들을 각자의 은사대로 인도해야 합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광야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셨던 하나님, 지금 시대는 만나와 메추라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것이 많습니다. 이스라엘도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첫 농사, 첫 곡식 좋은 것이 있었을 때 끝이 났습니다. 이것을 원리 측면에서 하나님의 속성은 절대로 변함이 없습니다. 단지 사람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는 그 인도 방법은 다를 수가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는 초기 사역 때 은사의 모습입니다. 기초 공사 이기 때문에 중장비로 공사를 해야 했습니다. 로마서 12장은 바울의 말기 사역에 은사로 성장하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때는 가르치고 세워 주고 권면을 하는 내장공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사랑하는 방법은 다릅니다. 젖먹이 때와 밥을 먹을 때와 학교 다닐 때는 방법이 다릅니다. 성장의 과정에 따라 사랑을 해야 합니다. 사랑에는 균형을 이루어야 바른 사랑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행동을 해야 합니다. 성장에 따라 이끌어 가야 합니다. 나에게 바른 말을 잘하여 주는 자는 하나님, 아내와 남편 그리고 원수입니다. 사랑에는 잘못했을 때 반드시 매가 있어야 올바른 사랑입니다.


정답: 

(1) → 예레미야 32:17,

(2) → 요한일서 3:20

(3) → 예레미야 23:24,

(4) → 시편 90:2 (5) → 야고보서 1:17


5. 역대상 29:10~13절에 다윗의 기도에는 하나님에 대한 어떤 사실들이 언급되어 있습니까?


다윗이 성전을 짓기 위한 준비로 성물을 모을 때에 이 모든 것이 주께로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이런 큰 축복을 받은 것은 항상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열심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다윗을 특출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다윗은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하나님을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잘 아는 다윗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내 뜻을 다윗에게서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하나님을 잘 아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의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이것을 잘 알았음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합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다윗처럼 좋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잘 알려고 노력하고 힘을 쓰는 것을 하나님이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 면을 보시고 사용하십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잘 아는 것, 둘째는 겸손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버리는 자는 그 반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입니다(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 둘째는 교만한 자를 버리십니다. 사울 왕은 후자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의 뜻을 관찰시키는 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 앞에 알려 하는데 깊이와 높이와 길이를 아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잘 알기를 원하십니다. 호세아 6장 6절에 하나님을 알 때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잘 쓰임을 받을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당신 자신의 개인 기도로 다시 써보십시오. 잠깐 멈추고 하나님이 누구시며 또 어떠한 분이신가에 대하여 찬양을 돌리십시오. 자주 이렇게 찬양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기도문을 써보십시오. 왜 이런 기도문을 써보라고 했을까요? 내가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기도를 하고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보자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을 섬겨보자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는데 하나님은 너무 모르고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본문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문을 숙제로 하고 하나님께 어떻게 헌신을 하고 살 것인가를 써와서 서로 교제를 나누어 보십시오. 성경을 구체적으로 배우고 가르치고 그 말씀을 결단하고 살 수 있도록 실천하여 보십시오. 리더자는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더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생각은 없다.”                      ~ A. W. 토저 ~


6.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성품은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해야 합니다. 다음 각 구절에서 보여 주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을 기록하고, 이 속성들이 당신의 삶에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 가를 설명하십시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어떤 면이 나타나 있는가? 당신의 삶은 이 속성을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가?


내가 변화되는 비결은 결심에서 변화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본성을 잘 알 때 나도 모르게 변화가 옵니다. 성경을 몇 구절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의 본성을 구체적으로 알 때 내 삶에 변화가 옵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게 하여 다라고 그 깊이와 높이와 길이와 넓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복이 따라오고 하나님을 모르면 무지하여 이스라엘이 망했던 것처럼 나도 망합니다. 리더자는 반드시 가르칠 때 하나님을 잘 알게 하여 주어야 합니다.


(1) 신명기 7장 9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네 속에 어떻게 나타나시는가 하면 내게 약속하신 것을 신실히 지키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삶의 변화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되겠구나하고 순종할 때 복을 받고 응답이 오고 변화가 옵니다. 신실성이 성도들 사이에서도 나타나야 됩니다. 그래야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2) 시편 119편 137절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 하시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정직하고 의로우십니다. 이것을 알 때 하나님은 불의와 타협을 않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윗은 정직한 영을 주시고 정직하게 살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 때 내 삶에 결단이 옵니다.

 

(3) 시편 130편 3~4절


죄를 감찰하시고 사유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감찰하시는 분이시고 찾고 계시기 때문에 감출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알고 계시므로 내 죄를 자백하면 즐겨 사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감찰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때 죄를 짓지 말아야 되겠구나 하고 결단을 하게 됩니다. 혹 죄를 지었으면 하나님은 사유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자백을 하면 내 죄를 등 뒤로 돌려 버리시고 동에서 서로 옮겨 버리시고 깊은 바다에 던져 버리시고 기억도 아니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의 승리는 하나님을 잘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4) 베드로전서 1장 15~16절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본질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알게 될 때 깨끗한 삶을 추구하고 자백을 통해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를 합니다.


(5) 요한일서 1장 5절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밝은 삶과 빛 가운데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내 생활을 오픈해야 합니다.


(6) 요한일서 3장 16절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을 했을 때, 자백을 할 때 하나님은 기쁘시게 용서하십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자백을 통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믿는 것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때 진실한 예배와 진실한 헌신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예를 들면 목사님을 신실히 인정하면 등 돌림이 없습니다. 이 말은 목사님의 인격을 아는 것입니다. 인격을 믿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인격을 모르는 자는 시험도 들고 난리법석을 떨기도 합니다. 바알의 예배는 사제들과 음행을 해야 바알신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예배는 지저분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될 때 거룩한 삶, 거룩한 예배가 따릅니다. 요셉, 모세,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주님을 닮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는 것은 미신을 섬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자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신앙생활을 느낌과 감정으로 합니다. 예로서,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도, 기뻐하시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잘 알면 사업을 하는 자, 뇌물을 주지도, 받지도 않습니다. 법관이 하나님을 알면 불의 삯을 받지도 않습니다. 불의한 재판이나 편법을 하지 않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개념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마음속에 많은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를테면, 만일 당신이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계속해서 죄책감에 억눌리게 될 것입니다. 문제 6번에 열거된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몇 개를 택해서,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그러한 속성들을 알지 못하고 있을 경우,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인지 설명하십시오.

                                                          

                                                          

                                                          

                                                          


묵상에 대한 설명


예로서, 하나님의 신실성을 믿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당연히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서 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내게 그 의미가 없어집니다. 결국 내 마음대로 내 주관대로 살게 됩니다.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의 삶은 불성실합니다. 인격도 비인격자입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모르면 죄에 대해서 담대하여 집니다. 마음대로 죄를 짓습니다. 죄와 적당히 타협을 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와 은밀히 두 사람만 있었지만 하나님이 앞에서 다 보고 계심을 알았기 때문에 죄와 타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면전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 득죄 할 수 없다고 물리쳤습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육적이 아픔은 따랐지만 하나님 앞에 빛이 되고 영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라는 것을 알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에게 나타납니다. 남들이 나의 표정을 볼 때 하나님을 나타나야 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사십 일간 하나님과 교제하고 내려왔을 때 모세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우리는 표정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주님의 온유의 깊이를 알 때 내 얼굴에서 온유가 나타났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잘 알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 때 내 인격에 변화가 옵니다.


7. 우리를 크게 위로해 주는 성경의 진리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은 만유를 다스리시는 절대 주권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다음 각 구절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어떻게 확증하고 있습니까?


(1) 잠언 2장 1절


“나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여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을 통치하는 주권자이시고 왕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왕을 통치한다는 말은 왕의 마음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알 때 하나님은 명령자이고 나는 순종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로드심(주제권)을 인정하게 됩니다. 자기 하인을 고친 백부장의 믿음, 주님은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알 때 나는 복종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니오”가 있을 수 없고 “예”만 있습니다.


(2) 이사야 14장 27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 하셨은즉 누가 능히 폐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열방을 경영하십니다. 다스리십니다. 모든 세계를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타협하지 않고 세상 모든 국가를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공산 국가가 무너지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경영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경영주가 합니다. 세계 열방을 하나님이 경영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내 사업, 내 계획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따르게 되면 경영 체제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3) 사도행전 4장 26~28절


하나님은 누구에게 사주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뜻대로 경영하십니다. 주도권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열방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시고 우리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열왕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일을 하시고 나를 통해 다스리는 것을 절감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이것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주관에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인격체이실 뿐만 아니라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거룩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스도가 죽으신 이유도 바로 하나님이 거룩하신 성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에 대해 마땅히 형벌을 내려야 했으며 반면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이 형벌을 받으시게 하심으로써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속성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내가 바뀌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독생자까지 희생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십니다. 나는 순종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쪼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맞추려고 해야 평안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인격체이실 뿐만 아니라,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거룩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유도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에 대해 마땅히 엄한 형벌을 내리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이 형벌을 대신 받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8. 하나님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십니까?


(1) 역대하 16장 9절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을 감찰하시고 찾고 계십니다. 왜 감찰하시는가? 사람을 찾으려고 하십니다. 어떤 자를 찾으실까요?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따르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자는 적습니다. 하나님께서 찾고 있는 이유는 능력을 베풀어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찾고 계십니다. 세상은 자기주관 자기실력으로 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단지 지식을 추구하고 박사 학위를 찾고 있습니다. 내게는 내 마음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전심으로 찾고 찾아야 합니다. 전심으로 찾고 있을 때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려고 찾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변화산 밑에 간질병환자를 두고 사두개인들은 변론을 하고 군중들은 방황하고 아홉 제자 앞에 속수무책인 그들 앞에 귀신들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그 현장에 왔습니다. 그 아이의 아비가 주님께 나아와 당신의 제자들이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주님께 할 수 있거든 아들을 고쳐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정직히 고백을 했을 때 주님은 고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조용히 주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고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있을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그들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시편 75편 6~7절


하나님이 자기 주권을 가지고 높이기도 낮추기도 하십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끼와 같습니다. 사람은 도끼를 손에 들고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하나님이 사용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지 않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자가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시는 이유는 교만하고 더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과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3) 사도행전 14장 17절


하나님은 자연을 지배하고 사람의 음식물까지 제공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먹을 양식은 자연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지구의 모든 사람 55억 인구를 먹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9. 다음 각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신 다양한 방법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래 설명에 해당되는 구절을 골라 넣으십시오.


시편 40:7      로마서 1:19~20      로마서 2:15

            히브리서 1:1          히브리서 1:2


(1)              선지자들


선지자들을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요즈음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아시아 일곱 교회의 촛대 사이는 성도를 사이에서 주의 종들을 통해 나타나십니다. 주의 종을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이 제일 괴로워하십니다. 세상에 제일 불행한 자는 주의 종을 괴롭히는 자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주님을 믿지 않고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3)              피조물


피조물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4)              양심


사람의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양심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양심을 통해서 나 자신을 보여 주십니다.


(5)              성경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보여 주십니다. 선지자, 주의 종들이 말씀을 전할 때 사람의 말로 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정답 :

(1) 선지자들 → 히브리서 1:1,

(2) 예수 그리스도 → 히브리서 1:2

(3) 피조물 → 로마서 1:19~20,

(4)  양심 → 로마서 2:15

(5) 성경 → 시편 40:7


10. 예레미야 31:3절과 에베소서 3:19절 및 요한복음 3:16절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1) 이 구절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가르쳐 주는 바를 요약하십시오.


첫째, 하나님은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도 방법은 무궁한 사랑으로 인도하십니다.


둘째, 사랑하기 때문에 끝까지 인도하시며 희생을 하십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또 경험하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첫째, 하나님을 잘 이해하고 그와 충만한 교제 가운데 살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둘째,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알 때 나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부모사랑, 형제사랑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알 때 내가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사랑할 때 아가페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부부로 연관을 시켜 사랑을 표현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사랑은 내가 십자가에서 옛 사람이 죽었을 때 할 수 있습니다. 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하고 살 수 있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누리지 못하는 것은 내 자존심이 살아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것이 매사에 걸림돌이 됩니다. 내가 죽어질 때 사랑이 나오고 섬기는 삶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할 만큼 큰 것은 없으며, 또 그의 사랑을 받기에 너무 작은 것도 없다.”  ~ 조나단 고포스 부인 ~


11. 시편 46:1절을 읽으십시오.


(1) 하나님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습니까?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이런 일을 하여 주시므로 우리들의 의지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 모두 떠나 버립니다. 탕자가 그러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자본주의에 사는 자들이 피해 의식이 있습니다. 자기가 피해를 당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자와 의지할 자 없을 때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2)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이러한 면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실례를 하나 들어 보십시오.


자기 간증을 적어 보십시오.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된 경험이 있는가? 홍해가 갈라지는 체험과 바위가 되어 주신 일 즉 피난처가 되어 주신 일이 있는가? 나의 삶에 운전자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막 다른 위기를 만났을 때 의지할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떠나버리고 왜면을 하지만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가?


“내가 지금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내 개인의 의무였습니다.”    ~ 다니엘 웹스터 ~


나의 대한 요구가 내 입장에서 의무와 책임이 됩니다. 우리는 책임을 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과 성실과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2. 시편 46:10절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 즉 내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데 힘쓰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아는데 힘쓰면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면 내 생활에 변화가 옵니다. 여기에 안다는 말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한 가지라도 확실히 알면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일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13.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시편 51:16~17)


“하나님이 구하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痛悔)하는 마음을”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통회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 6장 5절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자기 죄 됨을 알고 그리고 민족의 죄 됨을 알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부정됨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나의 죄에 대해 알게 되고 부정함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루터는 자기의 죄를 알아보고 기절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히 통회하고 자복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부모도 환경에 따라 혹 버리는 일이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14. 당신은 하나님께 어떻게 응답해야 합니까? (시편 95:6)


하나님은 경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내가 경배의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를 찾으십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자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 찾는 이유는 저들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배는 무릎을 꿇는 삶입니다. 예배에는 서원이 따라야 합니다. 굴복하는 삶, 예배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앞에 헌신 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15. 다음 구절들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데 필수적인 몇 가지 요소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보십시오. (신명기 10:12, 시편 100:4, 히브리서 11:6)


(1) 신명기 10장 12절


순종을 통해 알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개념적으로 알지만 그러나 순종을 해야 하나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머리(지식)로만 알면 안 되고 마음으로 알아야 합니다. 순종해야 구체적으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순종을 해야 알 수 있습니다. 광야 생활에 있을 때 모세가 열두 정탐꾼들 정하여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보내었을 때 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개념적으로 알고만 있었음을 알 볼 수 있습니다. 즉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현실은 그 땅에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신들과 비교해보니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에 관하여는 알았지만 하나님에 대하여 능력을 진정으로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에 관하여는 - 예수님 당시 율법 선생 서기관들처럼 -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관해서는 알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순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순종하여 하나님에 관하여 잘 알았습니다. 고로 아낙 자손들은 광야의 식탁위에 차려 놓은 밥으로 보았습니다. 먹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욥도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2) 시편 100편 4절


감사와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찬송을 받으시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된 삶에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3) 히브리서 11장 6절


믿음을 통해서 체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순종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기본적으로 알려면 실제로 순종하고 찬양을 하고 감사를 할 때 믿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는 개념적으로 알 뿐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형통할 때는 감사하는 마음을, 일상생활에서는 자족함을, 불행 가운데서는 복종하는 태도를, 암흑 가운데 있을 때는 우리의 순종과 주님께 대한 신뢰심을 시험하십니다.


16. 다윗이 자기 아들에게 충고한 것은 무엇입니까? (역대상 28:9)


하나님 만나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묵상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요구이므로 솔로몬에게 정치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든지 해결되고 하나님이 모두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중요시하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17. 이 과에서 당신이 배운 경배(예배)의 정의를 간단하게 내려 보십시오.


(1)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믿음으로 예배를 하려고 하는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잘 알 때 예배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예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나 제단을 먼저 쌓았습니다.


(2)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배는 활력소가 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는 우리 생활면에 큰 활력소가 되기 때문에 범사에 힘이 됩니다. 모든 면에 활력이 됩니다. 수가성 여인이 남들이 낮잠을 자는 그 시간에 삶을 피해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을 만나 예배의 생활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총을 받고 은혜를 공급 받아 낮잠을 자고 있는 동네 사람들을 모두 깨웠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다가 내려 왔을 때 얼굴에 광채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드릴 때 주의 형상으로 바꾸어져서 확신과 능력이 있는 그것이 예배에서 활력소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 하나님의 얼굴이 믿음으로 보아져야 하고 확신을 얻어야 하루를 힘 있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생활면이 희미하여 집니다.


(3) 당신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어 보십시오.

 

예배의 향상은 우선 찬송을 많이 하고 예배드릴 때 많은 찬송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가 펼쳐지고 찬송을 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내려옵니다. 찬송과 그 내용 자체가 성경 구절을 찾아서 묵상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찬양이 됩니다. 묵상 속에 찬양하는 것이 예배가 됩니다.


요 약


본과의 소제목들을 복습하고 그것을 개요로 삼아 전체 내용을 요약하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성경에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위치와 하나님의 속성 모든 것을 다 계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 지식은 우리의 중요한 믿음의 기초에서 우리 믿음의 성장이 뒤 따르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 중에 한 사람 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를 감찰하시고 계시는 것과 사람을 죽이시고 살리시는 것과 사랑하고 도와주고 공급을 하여 주시고 인도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엇보다 다윗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잘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 앞에 통회하고 자복하고 겸손으로 경배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만나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고 그에게 합당한 예배를 드리므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실제로 예배하는 시간으로 T.V를 보는 것보다 하나님께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이때 활력소가 됩니다. 영적 성장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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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재산이나, 직업이나, 가족이나, 혹 생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 순종하겠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과에서는 모든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권위와 확실성 및 충분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경의 저자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므로 절대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각 성경이 저자들이 다르지만 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도구로 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1. 다음 구절에 성경의 기자들은 그들의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1) 신명기 28장 1~2절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셨습니다. 저자가 명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아울러 저자의 말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저자의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감은 “하나님이 숨쉰다”“살아계신다”는 말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숨을 쉽니다. 죽은 자는 맥박을 짚어 보고 손을 가슴을 만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인들의 문제는 말씀의 메시지를 목사의 말로 받기 때문에 나보고 말한다고 하며 또 나를 두들겨 팬다고 합니다. 저 말은 모모 집사의 말이고 우리 시어머니 말이고 며느리의 말이라고 하며 듣습니다. 듣는 메시지를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지 않는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신앙고백이 없었습니다. 단지 그는 “랍비여”라고만 고백하였을 뿐입니다. 거지 바디메오는 “랍오니여”라고 고백을 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는 “랍비여” 즉 율법을 가리키는 선생으로만 알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사무엘하 23장 1~3절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다윗을 도구로 사용하여서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습니다. 만약 다윗의 말이라면 예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을 빙자하여 말씀하셨으므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3) 예레미야 1장 6~9절


성경에 보면 “여호와의 말이니라” 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말씀을 예레미야 입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생각대로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고로 그 말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느냐? 사람의 말로 받느냐? 에 분깃점이 됩니다. 가룟 유다는 사람의 말로만 받았기 때문에 실패를 했습니다. 성도들이 예배 때 말씀을 목사의 말로 받는 자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자는 신앙 성장에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순종에 누리는 삶도 큰 차이가 납니다.


(4)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때에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는 말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2. 바울은 성경 말씀이 어떻게 기록되었다고 말했습니까? (디모데후서 3:16)


성령의 감동으로 썼다고 했습니다. 감동으로 번역된 말은 “하나님이 불어 넣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 즉 하나님 자신의 입에서 나와 기록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저자는 성령이십니다. 사람이 기록하였지만 성령이 그 사람을 사로잡아 기록하게 한 것입니다. 고로 성경의 참 저자는 성령이십니다. 성경의 원 저자는 성령이심으로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는 성경을 알 수가 없습니다. 


3.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 어떤 중요성을 두십니까? (시편 138:2)


이름은 그 사람을 대표합니다. 하나님의 높으신 이름들 중에 최고로 높이신 이름이 말씀입니다. 그만큼 말씀의 중요성을 높게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참 빛, 독생자, 어린양, 메시야 등 많이 나오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최고로 높인 것이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말씀이 하나님 속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것입니다. 즉 마음에서 나온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특색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타종교는 약속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없으므로 성장이 없습니다.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그 말씀은 사람에 대하여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모든 말 뒤에는 그것을 이야기한 인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말하는 사람 자신(그의 인격, 자식, 신분)을 나타내며, 그에 따라 사람들은 그가 한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집니다. 그의 말씀을 우리가 믿는 이유는 그가 어떤 분이신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 R. W. 스토트 ~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


4. 마태복음 4:1~11절에서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기사를 읽으십시오.


(1) 예수님은 어떤 성경 말씀을 사용하셨습니까?


10절에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시지만 사단에게 시험을 받을 때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위치나 지위로 물리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말씀을 인용함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성경을 의뢰하였습니다. 그분은 말씀과 하나님을 전적으로 동일시하고 같은 권위로 인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자신의 능력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였습니다. 사단의 무서운 전략과 시험 앞에서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함으로 이겼습니다.


(2) 예수님은 결단을 내리시기 전에 사단의 제의에 얼마만큼이나 관심을 두셨습니까?


9~10절에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단의 시험을 받자 한참 기도해보고 다른 방법으로 해보다 안 되니까 말씀을 인용한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이에”라는 말은 “즉시”라는 말입니다. 사단의 말이 마치자마자 즉시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를 물리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방법으로 말씀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말씀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말씀을 믿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말씀으로 풀고 해결해야 합니다.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도, 과부의 죽은 청년도, 야이로의 어린 딸도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는 말씀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내려 왔을 때 제자들이 부모가 데리고 온 미친 아이를 고치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그 부모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이는 역설적 진리입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믿음이 없습니다. 모순입니다. 말씀의 권위에 반신반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신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유라굴라 광풍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바울 같이 말씀을 비판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 드려야 합니다.


(3) 예수님은 자신이 인용하신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셨습니까? 자신에게 적용하셨습니까, 아니면 사탄에게 적용하셨습니까?


자기 자신에게 말씀을 적용해서 사탄을 물리쳤습니다. 항상 말씀을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야 합니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자신이 먼저 말씀을 배우고 자신이 먼저 적용해서 거시서 얻어지는 것으로 내 백성을 가르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성도들에게 말씀의 실체를 가르치고 말씀을 실체화 시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이유는 역대하 36:15~16절에 보면,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둘째, 주의 종을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에스라는 자기 백성에게 말씀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4) 예수님이 자신을 말씀의 권위 아래 두셨다면 이것이 당신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나 자신도 말씀의 권위 아래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인격, 지식, 능력, 관심, 사랑, 모든 뜻이 다 담겨 있습니다.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사울의 집은 점점 악하여 가고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였던 다윗은 점점 더 강해갔습니다. 내가 말씀을 존중하면 하나님도 나를 존중하고 내가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면 하나님도 나를 무시합니다. 이에 대하여 사무엘상 2장 30절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이 여기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격과 똑 같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전달될 때 예수님 자신이 전달됩니다. 예수 안에 나를 보는 것은 말씀 안에 나를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말씀에 대한 신뢰도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5. 예수님은 다음 상황에서 말씀을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1) 마가복음 7장 6~9절


예수님의 경우 어려운 질문이나 유혹을 받을 때 자신의 경험으로 대답하지 않고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대답하였습니다. 위기 속에서 말씀으로 극복하려는 신앙의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대답한 이유는 말씀에 최고의 능력(지혜와 권세)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 마가복음 12장 24~27절


부활을 안 믿는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은 모세의 확증한 구절을 가지고 인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신자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었어도 하나님은 이삭에게 약속했고 이삭은 죽었어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야곱에게 이루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그 약속을 그 자식에 이르러서도 지키는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우리도 부활하여 영생할 것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시편 103편 17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3) 누가복음 10장 25~28절


어떤 율법사가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었을 때 율법에 기록된 자신의 기록을 상기시켰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 인격, 내 자식, 나의 배경으로 그 난처한 문제를 대처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그렇게 대처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으로 대처했습니다. 죠지 뮬러는 문제가 생기면 자기의 문제가 성경에 어디에 있는가? 그 문제를 풀어줄 말씀을 찾았습니다. 찾으면 이미 응답을 받은 줄로 믿고 때를 찾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6.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왜 필요하다고 믿으셨습니까? (누가복음 24:25~27)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질 때 성경에서 자신에 대하여 이런 일이 있을 것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늘 성경의 필요성과 충분성을 만족시키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대로 주고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부활하고 성경대로 승천하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죽는 것은 마땅하다고 믿었습니다. 죄인을 위해서 죽는 것은 단순히 자기 생각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영웅적 기질을 갖고 감정에 이끌려 죽은 것도 아닙니다. 성경이 나에 대하여 그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성경대로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성경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다윗이 시편에 자신에 대하여 기록한 대로 살다가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치 않는 이 세대를 가리켜서 “패역한 세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무덤의 천사를 믿지 못하거나 여자들의 말을 더디 믿는 것에 대하여 책망하지 않고 다만 제자들이 성경의 말씀들을 더디 믿는 것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누가복음 24:25). 그러나 문제는 성경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대로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권위를 믿을 때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루더라도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의 삶을 살게 되고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축복과 능력만 배우려고 하지 바울처럼 죽음과 고난까지는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까지도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말씀대로 살았던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해서 죽음까지도 본받으려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10~11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너희도 가려느냐?” 주님의 말씀에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온데 내가 어디로 가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이는 배우려고 하는 자세입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갈렙은 85세에 아낙 자손이 있는 헤브론 땅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제비를 뽑지 않아도 주도록 이미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구태여 모든 사람들이 꺼리는 그것도 장대 같은 아낙 자손이 거하는 헤브론 땅을 달라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너와 너 자손에게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85세가 되었지만 그는 현실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권위를 인정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말을 들을 때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7. 예수님은 성경 말씀에 관하여 또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십니까?


(1) 마태복음 5장 17~18절


성경의 권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합니다. 산꼭대기에 조개껍질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산이 전에 바다 속에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산에 배들을 메어 놓았던 말뚝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변합니다. 어제가 오늘이 아니고 오늘이 내일이 아닙니다. 문학도 예술도 신학도 변합니다. 신학을 믿어서도 안 됩니다. 인간에게서 나온 것은 다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변함이 없는 언제나 한결같으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하시니라”고 하였고 야고보서 1장 17절에서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 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하였고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는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장 12절에는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하였고 시편 90편 2절에는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하였고 시편 102편 27절에서는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 하였으며 이사야 41장 4절에서는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절대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변함이 없으니까! 따라서 그 말씀에 헌신된 삶도 영원한 것입니다. 말씀이 변치 않는 것처럼 그 말씀대로 살면 우리도 변치 않는 그분의 말씀에 따른 분복을 영원히 누립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에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으며 마태복음 19장 28절에서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2) 요한복음 17장 17절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았던 사람들의 가정은 사랑과 따스함이 가득하고 그 삶이 선하며 근면하며 정직합니다. 이는 진리의 말씀이 그들의 삶을 거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인정하고 가르쳤습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진리는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지금 믿는 것이 잘 믿고 있다는 확신이 오고 비 진리는 배우면 배울수록 혼미하고 불확실합니다.


8. 문제 4~7번의 내용을 토대로 해서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를 간단히 설명해 보십시오.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를 다시한번 요약 정리한다면 그분은 말씀에 대하여 선생으로 와서 우리를 학문적으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받을 때나 난처한 입장에 놓였을 때도 배경이나 지식으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그렇다고 차선책으로 말씀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항상 우선순위에 두고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면서 살고 말씀을 그대로 믿고 사용하면서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말씀에 대하여 가르친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를 가르쳤습니다. 말씀을 인격적으로 따를 것을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곧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러고 나서 그 말씀의 권위를 가르쳐야 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은 인격적으로 따르는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말씀 자체가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칠 때는 내 속에서 주님을 볼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베드로는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에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전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너를 일으킬 것이라는 그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이 평생 앉은뱅이로 살아온 자의 팔자를 고쳤습니다. 말씀을 연구하지 말고 그 말씀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 말씀에 따르는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본은 어떤 면에서 당신에게 도전이 됩니까?


나도 예수처럼 가르치고 예수님처럼 말씀을 인정하고 그 권위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은 성경이 내게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십자가를 진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데 서는 삶이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삶입니다.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인격적으로 따르는 삶을 살면 어떤 반응이 일어납니까?


첫째는 탐구심이 일어납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말씀을 따르겠다는 자세를 갖게 됩니다. 그럴 때 믿음이 생깁니다.


둘째는 확실성이 일어납니다.


말씀에 대한 확실성이 따릅니다. 그 말씀에 대한 확실성 즉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확실성이 옵니다.


셋째는 능력이 일어납니다.


그 말씀에 있는 살아 있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능력이 있다는 말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능력이 나타납니다. 탐구심이 있고 확신이 있으면 반드시 능력이 나타납니다. 말씀을 잘 아는데 권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값을 지불하려는 희생을 각오하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가를 지불할 때 믿음을 배웁니다.


말씀의 확실성


9. 다음 구절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1) 여호수아 24장 14절


본문에서 주목할 단어는 “어김이 없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어김이 없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또한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이라고 하였는데 “뜻”이란 의지를 말합니다. 말씀을 내 의지에 두면 다니엘처럼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우상에게 놓았던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뜻을 세우게 됩니다. 내 의지 속에서 말씀이 나와야 합니다. 신앙은 잘 믿을수록 단순합니다.


(2) 시편 33장 4절


말씀의 확실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합니다. 정직함으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정직한 그 말씀은 그 행사가 다 진실함으로 다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집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6장 14절에서는 말씀하기를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6장 16절에서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내가 복주고 번성케 하겠다는 맹세를 하셨습니다. 맹세는 최후의 확증입니다. 서부극에서 악당들도 결투를 할 때 10보를 걸어가서 쏘겠다고 하면 그대로 하였습니다. 이는 성경에서 나온 맹세의 영향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맹세는 틀림이 없습니다.


(3) 잠언 30장 5~6절


아굴라의 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합니다. 순도 100%입니다.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분이십니다. 거짓 모양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5:22).


10.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의 초반부에서 성경 말씀의 확실성에 대해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1~4)


누가는 확실에 거하는 사실의 말씀들만 기록하였습니다. 말씀에 일꾼 된 자들에 의해서 전해진 내용을 근원부터 살펴서 정확하게 기록한 말씀입니다. 말씀의 확실성을 믿지 못하면 신앙의 근간이 흔들립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11. 베드로후서 1:15~21절을 읽으십시오.


(1) 베드로는 16절에서 어떤 증언을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공교히 만들거나 짜깁기를 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단은 공교히 만듭니다. 성경은 사람이 꾸민 것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교한 말에 자극을 받지 말고 평범한 말씀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순수하게 전하는 데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2)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어떤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까? (17~18절과 마태복음 17:1~9절을 비교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영광의 몸으로 변화된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보는 신비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신비로운 체험을 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변화산에서 모세도 엘리야도 보았지만 그것을 전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였습니다.


(3) 베드로가 하늘로부터 들려 온 소리보다 더 확실한 것이라고 믿은 것은 무엇입니까? (19절)


하늘로부터 영적인 소리보다 더 확실한 것은 기록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는 예언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은사나 신비한 체험보다는 하나님의 예언된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신비에 치우치면 신앙이 독선에 빠지게 됩니다. 신령한 체합니다. 베드로는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보다 기록된 말씀을 더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영적인 체험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희미해지지만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은 더 확실합니다.


(4) 왜 그는 성경의 예언들이 그렇게 확실하다고 믿었습니까? (20~21절)


기록된 예언의 말씀은 사람이 꾸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동”이란 “하나님이 불어 넣으셨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이 다 기록된 후에 하나님이 거룩한 도장을 찍어 인정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 즉 하나님 자신의 입에서 나와 기록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거짓이 없으시고 변함이 없으신 그 분의 입에서 나온 말임으로 확실합니다.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성령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령이 없으면 아마도 자나 깨나 베드로는 신비적인 체험을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런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왜곡되고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은 변질되지 않고 변함이 없는 확실한 말씀임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가정에서도 신비적인 체험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말씀의 확실성에 대하여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는 성취된 예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제1권 2과에 있는 “성취된 예언” 도표 참조)

                                                           

                                                         

                                                         

 


묵상에 대한 설명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성취입니다. 다른 것도 확실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예언은 완전하고 확실합니다. 조금도 틀림이 없습니다. 나심, 공생애 활동,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까지 확실한 예언의 성취요 사실입니다. 말씀의 확실성 때문에 결국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배운 것 질문해 보십시오. 그리고 질문과 토의를 통하여 신앙을 다지십시오.


말씀의 충분성.


말씀의 확실성만 가지고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에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충분성은 말씀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권위가 있습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의 삶 가운데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1) 시편 37편 31절


하나님의 말씀의 법이 내 안에 있으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나를 세워줍니다. 그래서 넘어지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실족하지 않습니다. 실족하는 이유는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의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기둥처럼 세워져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솔로몬 성전에 야긴과 보아스처럼 내 안에 기둥이 세워져야 능력도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시편 17편 5절에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치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고 시편 18편 36절에서는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치 않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였고 요한복음 11장 9절에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봄으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내가 마음에 세기고 있으면 말씀이 나를 인도함으로 결코 실족하지 않습니다.


(2) 시편 119편 130절


우둔한 자를 깨닫게 하십니다. 더디 깨닫고 알지 못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음을 주십니다. 깨닫는 마음을 옥토라고 합니다. 주의 종은 우둔한 자를 깨닫도록 말씀을 잘게 부수어서 풀어서 전할 때 하나님이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깨닫게 합니다. 에티오피아의 내시가 말씀을 깨닫지 못할 때 빌립이 말씀을 전하자 그가 깨달았습니다.


(3) 요한보음 15장 3절


깨끗케 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혼, 마음, 사고방식까지 깨끗케 해 줍니다.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아 변화가 되면 마음과 사고방식까지 패역할 삶(구부러진 삶)에서 반듯하게 되고 육신적으로 욕심에 물든 마음과 성적으로 음란과 호색하는 마음과 소유 면에서 생기는 혼과 관절을 찔러 쪼개는 말씀으로 수술을 받아 깨끗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4) 사도행전 20장 32절


든든히 세워줍니다. 기업이 있게 합니다. 든든히 세워지기 전에 기업이 있으면 교만하고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든든히 세운 다음에 기업이 있게 합니다. 기업은 귀한 일들을 맡겨 주십니다.


(5) 디모데후서 3장 16절


우리의 인생의 길을 바르게 해 줍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판단, 책망하고 의로운 길로 가도록 인도하십니다.


(6) 야고보서 1장 21절


영혼을 구원케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전도할 때 영혼을 살아나게 합니다.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내 삶에 영향력을 미치는 충분성이 있습니다.


13. 추수는 파종하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영적 추수를 위하여 씨 뿌리는 자는 무엇을 뿌렸습니까? (마가복음 4:14)


영적인 추수를 거두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뿌려야 합니다. 추수는 파종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말씀을 먼저 뿌려야 합니다. 먼저 씨를 뿌려야 합니다. 말씀을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13절에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것을 뿌리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둘 때가옵니다. 열심히 기회가 있을 때 뿌려야 합니다. 항상 씨 뿌리는 농부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농부는 씨를 뿌릴 때 가을에 추수를 바라보면서 뿌립니다. 전망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뿌려야 합니다.


다음 한 주 동안 당신이 씨 뿌리는 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들어 보십시오.


                                                             

                                                             

                                                             

                                                              


묵상을 위한 질문

 

이사야 55:10~11절을 읽으십시오. 물과 말씀의 유사점을 주의해 보십시오. 묘사된 전체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성취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새롭게 깨달은 것들을 기록하십시오.

                                                          

                                                          

                                                          

 

 

 

묵상에 대한 설명


물과 하나님 말씀의 유사점은 첫째, 축축이 적시어 준다는 것입니다. 물은 뿌리면 단단한 땅이 부드럽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부드럽게 하고 촉촉하게 적시어 줍니다. 둘째, 싹이 나게 합니다. 물은 결국 땅을 촉촉이 적시므로 싹이 돋아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 구원입니다. 새싹은 새 생명이 돋아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증거 할 때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는 수확의 확신을 가지고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둡니다.


시간이 차이는 있지만 말씀은 생명이 있으므로 자란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성장하게 합니다. 물은 식물을 성장시킵니다. 우주도 물로 둘러싸여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장합니다. 넷째, 양식이 됩니다. 물이 없으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양식입니다. 목이 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헤매듯이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야 형통한 삶이 있습니다. 다섯째, 파종하는 종자가 있어야 합니다. 물을 새싹에 뿌리면 새 순이 돋아납니다. 그러나 마른땅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재생산을 이룹니다. 한 영혼을 말씀으로 먹이면 성장과 태어남이 계속됩니다.


14. 시편 119편을 열어서 어느 부분이든지 읽으십시오. 거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또는 계명, 증거, 법도, 율례, 율법이라고도 되어 있습니다)의 유의점들을 살펴보고 그중 5, 6가지를 아래에 열거하십시오.


(1) 시편 119편 56절


하나님의 말씀은 최고의 소유가 됩니다. 가장 큰 재산입니다. 재산 목록 제1호입니다. 재산은 소중히 여깁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많은 재산을 얻은 것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시편 119편 162~163절에 “사람이 많은 탈취 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재산에 대하여 사람에게 생기는 것은 소유욕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일어나는 때는 재산을 볼 때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말씀에 대한 소유욕이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야 말씀이 귀중히 여겨집니다. (말씀의 견물생심(見物生心)


(2) 시편 119편 98절


나의 원수보다 더 지혜롭게 합니다. 사단은 지혜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보다 더 지혜롭습니다. 사단은 온갖 지혜로 나를 헤치고자 노력합니다.


(3) 시편 119편 99절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일만 스승보다 승합니다. 세상에 많은 선생들이 있는데 그 많은 선생을 두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더 낮습니다. 박조준 목사는 3년 성경공부를 하면 대학생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4) 시편 119편 100절


노인은 경험이 많고 지식도 많고 경륜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보다 더 낫습니다. 참고적으로 욥기 12장 13절에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라고 하였고 시편 119편 104절에는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하였으며 다니엘 1장 17절에는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고 하였고 다니엘 5장 14절에는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하였습니다.


(5) 시편 119편 105절


길을 인도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생길을 밝히는 빛입니다. 내 인생의 길잡이는 말씀입니다.


당신은 삶을 통해 말씀이 확실하며 충분하다고 증명해 주는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궁극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 말씀의 권위는 궁극적으로 그 저자로부터 나옵니다.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당신은 말씀에 대하여 더욱 큰 믿음을 가지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해 더욱 많이 알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을 어떠한 분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게 되든지 또는 무시하게 됩니다.


말씀을 당신 생활에 적용함


말씀을 내가 알았으면 내 생활에 적용하고 살아야 합니다. 순종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알았으면 내 생활에 적용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와 권위를 알았으면 자연스럽게 순종하는 태도가 일어나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로 가르쳐야 그래야 성도가 부인하지 않고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인격에 호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가르치면 그들은 심각해지며 당장은 그렇게 살지 못해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 당시의 사람들에 대하여 실망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1) 누가복음 6장 46절


말씀을 행치 않고 있습니다. 가슴 답답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과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행치 않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였습니다. 계명을 가지고 지켜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성도들을 행함 쪽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2) 누가복음 24장 25절


하나님의 말을 더디 믿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마리아의 말을 안 믿는 것을 책망치 않으셨지만 시편에 기록된 메시아에 대한 말씀을 더디 믿는 것은 책망하셨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손을 안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더디 믿으면 행함이 없습니다.


16.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했습니까? (열왕기하 23:2~4)


요시야 왕은 민족의 부흥을 위해 어떤 정책을 쓰거나 색다른 대안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순종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부흥과 심령의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회의 최고의 목표에 두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배운 다음에 생활에 적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늘 목회의 초점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순종하며 따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백부장이 큰 믿음으로 칭찬을 받은 것은 “말씀만 하시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은 큰 믿음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따르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데 헌신한 적이 있습니까? 어떤 때에 그렇게 해야 합니까?


                                                             

                                                             

                                                               


17.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삶에 적용하는 데 있어 시편 119편 59~60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원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시편 119편에서 보여준 것처럼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시편 119편의 내용은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한 이유입니다.


여기에서 적용의 원리를 찾는다면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을 본 절과 연관하여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인도 받는 과정은 네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훈으로 인도합니다. “내 행위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교훈을 받을 때는 반드시 내 행위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둘째는, 책망으로 인도합니다. 주의 증거로 발을 돌이킨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자신에게 조명해 보고 자신의 방향을 180도 돌이 켰습니다.


셋째는, 바르게 함으로 인도합니다. “신속히 하고”는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깨달았으면 즉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깨닫자 즉시 토색한 자에게는 4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필요로 하자 그 주인은 즉시 보냈습니다.


넷째는, 의로 교육하여 인도합니다.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 의로 교육하는데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방향이 잘못된 성도가 되돌아 왔을 때 가만 두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는데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되돌아오는 사람은 반드시 재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18.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데 다음과같은 방법을 따르는 것이좋습니다.


•성경 말씀이 당신의 삶의 어떤 영역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는 바를 기록할 것.


•이 영역에서 당신의 삶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말할 것.


•당신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시키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 가를 기술할 것.


•어떤 실제적인 조치를 취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스스로 점검할 수 있게 할 것.


자기 생활이 영역과 연관을 시켜서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영역에 해당하는 말씀인가? 판단해 보십시오. 아내, 자식, 부모, 형제 중에 어디에 해당하는 영역의 말씀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 이제 이 방법을 활용해 보십시오.


(1) 본과에서 당신의 삶 가운데 필요한 영역을 다룬 성경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 구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 설명하십시오. 문제 6번 누가복음 24장 25~27절의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성경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의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합니다.


(2) 이 영역에서 당신의 삶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합니까?


말씀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3) 이 영역에서 진보를 보이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겠습니까?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당신의 적용에 대한 실천 여부를 어떻게 점검할 수 있습니까?


나는 말씀이 실제적으로 내 삶에서 이루어 질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따르며 그의 말씀에 자신을 드려서 순종하기로 결심하신 적이 있습니까?

                                                              


요 약


본과의 소제목들을 복습하고 그것을 개요로 삼아 전체 내용을 요약하십시오.


성경의 말씀은 내게 절대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경의 권위 아래 두고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과 동등 된 권위가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동등 된 권위를 가집니다. 말씀을 증거 하는 자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난 권위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에게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며 살았습니다. 어려운 질문이나 유혹을 받을 때 하나님이라는 위치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생활면에서도 자기의 말이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그 말씀에 기록된 대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성경은 많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큰 능력이 있는 축복성이 있으므로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 살 때에 큰 능력과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이제 내게 남은 문제가 있다면 우리의 생활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뿐입니다. 구체적인 원리를 따라서 매일 생활에 적용하며 살 것을 결단하는 헌신에 대한 기도가 내게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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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성  령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혜사 곧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성령에 대하여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성령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중요한 것은 성령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한국교회가 가장 난해하게 해석하는 것도 성령 론입니다. 자기들의 취향과 문화에 맞게 성령을 설명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성령은 성경을 통하여 알아야 합니다.


성령은 누구신가?


1. 다음 구절들에는 성령의 어떤 활동이나 특성들이 나타나 있습니까?


성령은 인격체라는 것을 알 때 인간관계를 바로 맺습니다. 바로 알지 못하면 불신이 생깁니다. 역대하 20장 20절에 “이에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알 때 옵니다. 성령을 알고 신뢰할 수 있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1) 사도행전 13장 2절


성령은 일꾼을 세우십니다. 성령의 활동은 일꾼을 세웁니다. 이는 당신이 쓰시기 위함입니다. 선교사를 세우고 또한 교회에서 일꾼을 세울 때 쓸 만한 사람을 세우지 쓸모없는 사람을 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무턱대고 일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쓸모 있는 인격자를 아시고 세우십니다. 이는 일꾼을 세울 수 있는 인격 즉 의지적인 인격을 갖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의지적인 활동)


(2) 고린도전서 2장 10절


성령은 하나님이 깊은 것을 깨닫고 통달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에 대하여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비밀한 것도 성령은 다 알아서 우리들에게 조명해 주십니다. 만약 성령이 조명해 주시지 않으면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하나님의 마음, 생각, 뜻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성령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지적인 활동)


(3) 고린도전서 2장 12~13절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은혜스러운 것, 유익한 것, 장점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십니다. 지적인 사역입니다. 단점들이나 문제가 되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사업이 잘되고 운수대통 하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구원, 은사) 깨닫게 해 주십니다. 다윗처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율례를 배우고 고난이 내게 유익됨을 깨닫게 되고, 욥처럼 고난을 통하여 나의 믿음이 정금처럼 될 것을 깨닫는 것도 다 성령께서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적인 활동)


(4) 고린도전서 12장 11절


은사를 주셔서 주를 섬기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이 역사하는 사역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의지적인 활동)


(5) 에베소서 4장 30절


우리가 잘못 행할 때 성령은 내 안에서 근심하십니다. 잘못 기도할 때는 성령은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근심도 하시고 슬퍼도 하시며 탄식도 하십니다. (정적인 활동)


성령은 이처럼 지, 정, 의의 인격을 갖추고 계시는 실체입니다.


2. 이 구절들은 성령이(비록 몸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지만) 참 인격이심을 어떻게 보여 줍니까?


성령은 비록 몸을 가지고 계시고 나타내는 분은 아니지만 인격을 보이시는 것은 단순한 영향력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정의로 가르치십니다. 바람과 비는 영향력이 대단하지만 그러나 인격은 없습니다. 지정의가 없습니다. 태풍이 불면서 집이 무너질까봐 피해가는 그런 지적인 활동을 가진 인격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은 바람처럼 무서운 힘이 있지만 우리가 기도를 잘못하면 대신 탄식하며 기도하는 지성을 갖춘 분이십니다.


성경에서 성령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신, 보혜사, 진리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님의 영, 하나님의 영 등입니다.


3. 성령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음 구절들에는 어떻게 나타나 있습니까?


(1) 창세기 1장 2절


창조사역에 참여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성령이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령이십니다. 동등 되십니다. 엄청난 창조사역을 함께 하셨습니다. 돕는 입장이 아닙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창조 사역을 하셨습니다.


(2) 히브리서 9장 14절


성령의 영원성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성령은 영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3) 시편 139편 7~8절


성령은 편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주에 충만하십니다. 예레미야 23장 24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라고 하였습니다. 천지에 충만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4.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생명을 잃은 것은 누구를 속였기 때문입니까? (사도행전 5:1~10)


(1) 3절

 

그들이 베드로를 속인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속인 것입니다. 약속은 사도들에게 했지만 하나님께 약속을 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목사에게 잘못하는 것이 목사에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2) 4절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신앙생활을 상거래로 착각하고 손해를 본다는 생각에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령과 하나님을 동일하게 보고 있습니다. 유다왕 아마샤도 하나님께 정직하게 행하다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자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아서 결국은 망했습니다. 손해를 조금 본다고 그것이 나의 입장에서 손해를 보는 것처럼 여겨질 뿐 정말 손해를 보도록 내버려 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손해를 조금 보지 않으려고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 인격으로 존재하십니다(이것을 삼위일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삼위의 세 인격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아들 되시는 하나님과 성령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 인격은 본질적으로 하나이시며 사랑과 의사소통을 통한 완전한 조화 가운데서 일을 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각각의 창조물을 보면 같은 것이면서도 모습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모든 창조물들은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기이한 속성인 삼위일체 - 세 인격이신 한 하나님 - 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요한복음 1:18)

 

•성자는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요한복음 1:14~18, 히브리서 1:1~4)

 

•성령은 사람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요한복음 16:8, 고린도전서 2:10~11, 6:19~20)

 

(삼위일체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는 다른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3:16~17, 마태복음 28:19, 요한복음 14:16, 고린도후서 13:13, 베드로전서 1:2)

 


성령은 세 인격으로 존재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삼위의 세 인격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아들 되시는 하나님과 성령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세 인격을 가지시고 일하시는 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장님에게 나무와 태양을 설명해도 그는 잘 알리가 없습니다. 문제는 태양이 아니라 장님에게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미성숙해서 성령께서 계시(뚜껑을 열다)하셔도 잘 알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자꾸 억지로 설명하려고 하면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아는 데까지 말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누가 성령을 모시고 있는가?


5. 성령은 구원의 역사에 어떻게 관계하고 있습니까?


(1) 요한복음 3장 5~6절


거듭나게 하는 관계입니다. 성령은 거듭난 생명을 주기 위해 임재 해 계십니다. 성령의 가장 귀한 사역은 재창조,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사역입니다. 세상의 어느 것도 인간을 거듭나게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안에 계시면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가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내주해 있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들어와서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거듭난 생명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즉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과 성령을 통하여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에베소서 1장 13~14절


인치는 사역을 하십니다. 즉 보증하고 표증 하는 것입니다. 목동이 말을 내 것으로 만들 때 궁둥이에 불에 달군 쇠로 찍어 표시합니다. 성령도 잘 보이는 이마에 인치십니다. 성령이 우리의 보증이 되어 주십니다. 성령이 보증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절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육적으로 혈통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께서 보증하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삭개오를 향하여 예수님이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미 유대인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주님은 혈통을 인정치 않으셨습니다. 오직 성령의 보증을 받아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3) 디도서 3장 5절


새롭게 해 주십니다. 전혀 우리가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이유는 성령이 들어오면 주인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바뀌면 신장개업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내주하시면 모든 것이 새롭게 됩니다. 사울이 바울로 시몬이 게바로 바뀝니다.


6.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고린도전서 12:13)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예수님과 한 몸이 되게 하십니다. 부부가 결혼하면 한 몸을 이루는 것과 흡사합니다. 한 몸을 이루려면 - 창세기 2장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옛 사람의 삶을 떠나야 한 몸을 온전히 이룹니다. 이 한 몸으로 조직체가 아닙니다. 유기적인 생명관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입니다. 가구나 로봇은 유기적인 생명의 관계의 관계가 아닙니다. 해체해서 하나하나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끊어지면 죽어 버리는 생명의 관계입니다.


성도와 성도의 관계도 예수님이 몸의 지체입니다. 역시 생명의 관계입니다. 발이 손을 보고 쓸데없다고 하여 때리거나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만약 싸운다면 유기적인 관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지체는 서로 싸우는 법이 없습니다. 발이 냄새가 난다고 얼굴보고 발을 대신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체는 자기의 위치를 절대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4장 3절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시지 절대로 문화나 어떤 프로그램이나 혈연지연으로 하나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묶어야 합니다. 가정도 성령으로 묶어져야 합니다. 영적인 일은 혈연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육의 영과 영의 영이 구별됩니다. 절대로 교회는 전산망을 구축하고 조직을 체계화함으로 하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으로 뭉쳐져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어서 말씀으로 가르쳐 거듭나게 하여 말씀을 둘러서 성장시켜야 교회가 하나 됩니다.


7. 로마서 8:9~14절을 읽으십시오. 어떤 말씀들이 모든 믿는 자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까?


성령을 모신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아들입니다(로마서 8:14). 성령이 있느냐에 있어서 생명이 있고 없고 판가름 나게 됩니다. 주의 영이 있는지 없는지와 어떻게 인도함을 받는지를 알 수 있을까요?


첫째, 말씀을 깨닫게 함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므로 따라갔습니다. 내가 이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이 있으면 본토 아비집을 버리고 말씀을 따라 갑니다. 누가 깨닫게 합니까?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증거 할 때 영으로 증거 해야 합니다. 성령을 의지하여 증거 해야 변화를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4절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영으로 전하되 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변화 받은 사람들을 일꾼을 세우지 않으면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기득권 행세를 함으로 교회가 시끄러워 집니다.


둘째, 그 말씀을 적용하도록 지혜를 주십니다. 적용 부분도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셋째, 불순종하는 자에겐 마음을 근심케 만듭니다.


넷째, 육신적인 삶을 떠난 영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성령입니다. 엉뚱한 곳에 가서 인도를 받으려고 하므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8. 그들의 흠 있는 삶에 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어떤 사실을 상기시켰습니까? (고린도전서 3:16)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아 주십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문제가 많은 교인들이였습니다. 그들은 육신적으로 죄 된 삶을 산 그들에게 바울은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면서 원리를 가르쳤습니다.


우리 몸은 인간이 짓는 건축물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 때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몸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모신 사람은 순결한 삶을 위하여 하나님이 부르셨음으로 그것을 목적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전의식을 항상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9. 제1권 4과 문제 12번에 대한 당신의 답을 복습하십시오. 어떻게 당신은 성령께서 당신의 삶 가운데 임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까?


적용입니다. 체험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1번~8번까지의 체험이 있습니까?


첫째, 우선 말씀을 깨닫게 되는 경험이 있습니까? 체킹해 보십시오. 교인들은 경험이라는 것으로 신앙을 쌓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분히 주관적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신앙이 그 안에서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응답을 받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의 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1장은 말씀으로 기도하는 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둘째, 기도 응답의 확신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응답을 받는 다는 것을 성령의 확신 안에서 가져야 합니다. 막연한 확신이 아니라 단호한 확신이어야 합니다. 한나의 확신이나 시므온의 확신입니다. 성령이 주는 기도 응답의 확신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2장 25~26절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구체적으로 말씀 가운데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깨닫게 해 줌으로 구체적인 말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성령 세례를 받을 것을 요엘서를 인용해서 증거 했습니다. 요엘 2장 28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성령은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해줍니다. 전에는 죄로 여기지 않던 것이 죄로 여겨지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경계하고 돌아서게 합니다. 옛날에는 죄를 느끼지 않았지만 이제는 성령의 조명을 받으므로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 성령은 주의 일을 할 때 힘을 주십니다. 전도하니까 힘이 넘치고 기쁨이 충만하고 의욕이 일어나는 것은 성령이 내 안에 계신다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힘이 없는데 주의 일을 하면 힘이 넘치게 되는 것도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심의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나의 생명을 거두어 가 달라고 기도할 때 주의 사자가 와서 물과 덕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먹고 힘을 얻어서 40일간 호렙산을 향하여 피곤치 않고 달려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일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강단의 말씀을 먹고 일할 때 능력을 체험하고 성령의 내주를 확신합니다.


이러한 체험과 경험이 있습니까? 서로 간증을 해 보십시오.


성령의 역사


10. 요한복음 16:7~15절을 읽으십시오.


(1) 오늘날 성령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8~11절)


깨닫게 해 주십니다. 성령은 특별히 죄, 의,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심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교인들을 책망하면 받아들입니다. 반면에 감정이 깔린 책망은 반발심과 도전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입니다.


“죄에 대하여”는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다른 길로 가면 구원이 없습니다. 안 믿으면 죄입니다.


“의에 대하여”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계심이 의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의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자는 그와 함께 그의 이름이 천국에 있습니다. 이것을 성령이 증거 합니다.


“심판에 대하여”는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심으로 세상 왕이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하였으며 사도행전 2장 35절에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라고 하였으며 히브리서 10장 12~13절에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라는 것은 가신 예수를 말합니다. 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지금 그분은 하나님이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발등상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라는 것은 오실 예수를 말합니다. 오실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세상의 왕은 심판을 받았지만 완전히 받은 것은 아닙니다. 무저갱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였고 계시록 20장 3절에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오실 때 완전한 심판이 있다는 것은 성령이 증거 하십니다.


(2) 그는 믿는 자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13절)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그걸로 인도함을 받게 해 주는 것이 성령이십니다. 진리 외에 자의로 자기 말을 절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아니시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인도함이 없으면 진리(예수)를 만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3) 그는 누구를 또는 무엇을 강조하여 나타내십니까? (14~15절)


예수님을 깨닫게 해주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합니다. 언제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게 해주는 것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사람의 영광도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사역을 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은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역사하는 것이 성령의 사역입니다. 반면에 내가 인간적인 삶을 살 때 즉 나를 드러내고 나를 자랑하는 것은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항상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만 나타내려 하는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였고 요한복음 3장 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으며 요한복음 12장 32절에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11. 갈라디아서 5:19~25절을 읽으십시오. 육체의 일들(복수: 영어 성경 참조)이 성령의 열매(단수)와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주의해 보십시오. 여러 가지 항목이 언급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매라는 말이 단수인 것은 왜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요한복음 15:5절과 비교하십시오.)


열매는 요한복음 15장의 사역의 열매와 갈라디아서 2장의 인격의 열매 두 가지입니다. 항상 성령이 내주하셔서 인격의 변화를 주십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으로 맺어진 한 가지로 붙어 있는 열매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7절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 하였고 고린도전서 12장 4절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12장 20절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 하였고 에베소서 4장 4절에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송이에 여러 개의 포도 알이 붙어있습니다. 이것을 한 송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한분 그리스도의 인격을 나타내주는 이런 열매라는 뜻입니다. 이런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속에 나타내는 여러 가지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 즉 한사람, 한사람 속에서 나온 성격의 형태로 결국 하나입니다.


빛이 프리즘을 통과할 때 아름다운 무지개가 되어 나타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고귀한 삶도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름다운 인격의 열매를 맺을 때 당신의 삶 속에 펼쳐 질 수 있는 것입니다.


12. 승리에 찬 그리스도인의 삶은 로마서 8장의 주제입니다. 성령은 당신이 승리의 삶을 살도록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1) 2절


성령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는 확신을 줍니다. 죽은 사람은 법에서 해방됩니다. 죽은 사람에겐 어떤 나라의 법도 준법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법은 살아 있을 때 효력을 발휘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은 사망의 법인 율법의 효력이 정지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 합니다. 율법의 정죄하는 권능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에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가야바 제사장에게 율법의 정죄를 받고 빌라도에게서 율법의 권능인 사망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대관식을 가졌습니다. 갈대를 잡고 가시관을 쓴 것은 유대인의 왕으로 죽으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이란 예수님이 왕으로 사망 권세를 이길 힘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을 때 율법이 완성됨으로 무덤이 열렸습니다. 사망의 효력이 없어졌습니다. 끊어졌습니다. 돌아가실 때 휘장이 찢어짐으로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믿을 때 속사람이 자유 함을 누립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 함을 누립니다.


(2) 14절


인도의 확신으로 이끌고 인도하십니다.


(3) 16~17절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주십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십니다. 아바는 “참 나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확신을 주십니다.


(4) 26~27절


두 가지 일을 성령이 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첫째, 기도하도록 도우시고 둘째, 친히 나를 위하여 인도하십니다. 기도는 주님이 보좌우편에 서 기도해 주시고 내주하신 성령이 기도하시고 내가 기도합니다. 내가 잘못 기도했을 때 성령이 나를 대신해서 나를 교정시켜 주십니다. 갑자기 엉뚱한 기도가 나올 때 이것은 성령이 나를 대신하여 기도를 교정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13. 바울의 선교 사역에서 성령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셨습니까?


(1) 사도행전 13:2, 4절


성령이 사역에 관한 일들을 내 안에서 반드시 행하게 하시고 또한 하도록 이루십니다. 일꾼을 세우시고 파송하십니다. 성령은 교회의 선교하는 일들을 도우십니다. 성령이 세워서는 안 될 사람은 안세우시고 꼭 세워야 할 사람을 세우십니다. 뭇 사람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세워야 할 사람을 세우십니다.


(2) 사도행전 16장 6~7절


일꾼을 세우시는 일을 성령이 하시지만 파송하고 배치하는 일도 성령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를 위해서 그리고 적임자를 찾는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선교지 선택도 목숨을 걸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시아로 바울이 갈려고 하였으나 성령께서 허락지 않았습니다. 사역자는 성령께서 인도하십니다. 환상 중에 손을 흔든 사람은 기도했던 루디아였습니다.


(3) 고린도전서 2장 4절


말씀을 증거하고 가르치는데도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할 때 말씀을 증거하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열매가 맺어집니다. 성령으로 가르치면 원리를 제시합니다.


성령의 은사


14. 고린도전서 12~14장은 영적인 은사를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1)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성령으로부터 은사(영적인 능력)를 받았습니까? (7, 11절)


각 사람이 다 받았습니다. 거듭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받았습니다. 우리 몸에서 쓸데없는 기능은 없습니다. 다 필요합니다. 성령 안에서 이 사실을 깨닫고 나의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2) 믿는 사람에게 주는 은사의 종류는 누가 결정합니까? (11, 18절)


성령이 은사를 결정합니다. 은사를 주신 분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결정하고 통보하면 우리에게 성령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셔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훈련하고 노력해서 어떤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절대적인 주권에 있습니다. 만약 내가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으면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은사가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3)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은사를 주셨습니까? (7절과 베드로전서 4:10절을 비교하십시오.)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 준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인 몸(교회)를 세우기 위해 은사를 주셨습니다. 교회의 몸을 세우지 않는 은사는 다 가짜입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않고 교회를 이원화하려는 은사는 다 가짜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은사는 서로 몸의 유익을 주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은사는 성도 간에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신앙적, 영적으로).


기능이 다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은사를 주셨습니다. 기능이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눈이 안 보이면 발이 가기 어렵습니다. 눈이 방향을 잡아 주어야 발이 옮깁니다. 손이 봉사하지 않으면 입은 음식을 먹기가 어렵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서로의 도움과 필요를 위해서 은사를 주었습니다. 나와 같은 은사가 아니라고 무시하지 말고 성령의 다향 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교회가 성장합니다.


은사는 하나도 단독으로 떨어져서 역사하는 법이 없습니다. 몸에 붙어서 몸을 위하여 합니다. 교회를 떨어져서 활동하는 은사는 사탄의 은사입니다. 교회도 전투적인 기능을 가진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교회들입니다. 교회도 다양합니다. 눈이 손을 보고 자기 같이 되라고 할 수 없고 또 필요 없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것을 절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속에 창자가 얼마나 지저분합니까? 그렇다고 몸에서 떼어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몸을 세웁니다(고린도전서 12:21~25).


그러므로 은사를 무시하지 말고 개발하고 도와주고 검증해 주고 교회에 덕을 세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지시켜야 합니다.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은사를 갖기 원하십니까? (28~30절)


다른 은사를 갖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몸에 눈만 붙어 있으면 그것을 괴물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각 다르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 기능대로 쓰시기를 원합니다. 손의 기능이 다르고 발의 기능이 다릅니다. 그러나 한 몸입니다. 몸에 붙어 있는 기능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은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손이 발을 위하고 발은 손을 위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세워집니다.


(5) 이 장에는 어떤 은사들이 소개되어 있습니까? (8~10, 28~30절)


지혜, 지식,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귀신을 쫓는 능력), 예언, 방언통역의 은사, 사도, 선지자, 교사, 가르치고 양육하는 은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는 많은 신비로운 은사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방언과 통역에 대하여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이 방언이 잘못 사용되고 있음을 부정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은사는 과도기적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연속적으로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장하면 이런 은사가 끝나는 것으로 봅니다.


15. 로마서 12:6~8절과 에베소서 4:11절에는 어떤 다른 은사들이 소개되어 있습니까?


로마서 12장의 은사는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위 하는 일, 구제, 다스림 등은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리스도 생활에 가장 중요한 은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이 로마서 12장의 은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는 다릅니다.


가르치고 세우고 권위하고 긍휼을 베풀고 이것은 다 성장하는 은사입니다. 고린도 전서는 초기서신이라면 로마서는 말기서신입니다. 바울의 초기사역은 병고치고 예언하는 것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반면에 바울의 말기 사역은 책망과 가르침으로 성장되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가르치고 권면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는 초기 사역으로 집을 짓는데 마치 토목공사와 같다면 말기 사역(로마서 12장)은 벽지로 바르고 커텐을 치고 창문을 다는 것과 같습니다. 밤낮 기초공사만 할 수 없습니다. 살을 붙이고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성숙합니다.


에베소서 4장의 은사는 유니버셜 쳐치입니다. 사도, 목사, 교사는 즉 우주적인 은사 즉 직분의 은사입니다.


16. 당신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한두 가지 적어 보십시오.


16번은 은사를 발견하는데 대한 적용입니다. 나의 은사가 무엇이냐를 아는데 대한 적용입니다. 나의 은사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구별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활동입니다. 내가 활동함으로 내 자신이 만족을 느끼고 있는가? 나의 은사라면 내 자신이 만족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내가 활동함으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가?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결과가 내 활동 속에 나타나는가? 지체가 몸을 위하듯 나의 활동이 다른 사람과 교회를 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이 활동의 결과로 연합과 영적인 성장이 있는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그것을 체킹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것은 성령이 주신 은사가 아닙니다. 사용하지 말아야합니다.


은사의 방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첫째, 기도


둘째, 기본적인 역할부터 충실한가? 즉 수레바퀴의 삶(수직적으로는 하나님께 말씀과 기도, 수평적으로는 이웃과는 교제와 증인의 삶입니다)을 잘 살고 있는가? 이것은 은사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야 할 기본적이 삶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본기가 중요합니다. 기본기가 충실하면 급속도로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본기를 잘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은사가 발견됩니다. 기본적인 삶에 충실하다보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게 되고 교회가 강해지고 굳건해 집니다.


셋째, 내가 하는 것 중에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가장 잘하는 것을 시켜야 합니다. 목회자는 사람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잘 파악해서 세워야 교회가 잘 섭니다.


넷째, 그 일을 함으로 마음에 평안과 확신이 점점 와야 합니다.


다섯째, 그 일에 효과가 어느 정도 있는가? 반드시 열매가 좋아야 합니다.


여섯째,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해 주느냐? 다른 사람의 평가가 중요합니다. 교회는 평가를 해야 합니다. 기관장도 월1회 모여 평가를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눈이 역할을 잘못하여 넘어져 머리가 깨어지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돕기 위하여 당신의 능력을 더 개발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십니까? 당신이 영적으로 성장해 가며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모두 맺어야 하지만, 성령의 모든 은사들을 다 소유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은사가 발견되는 것은 하나이고 기본적인 신앙생활인 수평적으로 성도와 교제, 수직적으로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수레바퀴의 삶을 충실히 살아감으로 은사가 무엇인가 발견하게 됩니다. 은사는 자꾸 열매가 맺어져야 합니다. 은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열매입니다. 꽃은 열매 맺기 위하여 핍니다. 꽃은 떨어져도 열매가 거기서 맺어집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성령의 어떤 특별한 은사를 구하도록 강권한다면, 당신은 고린도전서 12~14장의 어떤 성경적인 지침을 활용하여 대답해 주겠습니까?

                                                          

                                                          

                                                          

 


묵상에 대한 설명


절대로 내가 특별한 은사를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겸손하게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개발해야 합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치다보면 소질이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개발한 은사는 주신 목적에 잘 사용을 해야 합니다. 엉뚱한 생각으로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각 사람마다 한두 가지 은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모든 은사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겸손해야 합니다. 모든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모든 은사는 주님께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모두 만족해야 합니다.  -아더 T. 피어슨-


당신의 책임


17. 에베소서 5:18~21절을 읽으십시오.


(1) 성령에 관계된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18절)


“오직 성령을 충만히 받으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라”는 이 말은 세상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살라는 말입니다. 술에 취하면 술에 지배를 받습니다. 성령에 취하여 있으면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성령 충만히 받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한 것을 하지 않으면 이것은 죄입니다. 성경에 선을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라고 하였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셨는데 성령 충만하지 못한 생활은 죄입니다. 도덕적 죄만 죄라고 인정하면 안 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한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 힘을 쓰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는 생활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자백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이 문제에 대하여 죄로 여기지 않는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기도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아도 죄로 여기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성령 충만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으로 정상적인 생활입니다. 수레바퀴의 삶입니다. 성경보고, 순종하고,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성도와 교제하고, 전도하는 그것이 성령 충만 입니다. 계속 이런 삶이 지속이 되어야 합니다.


(2) 성령 충만의 몇 가지 결과를 열거하십시오. (19~21절)


성령 충만한 결과는 주로 신비롭게 생각하기 쉬운데 이것은 잘못된 오해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 충만은 첫째, 기쁨이 충만하다, 입니다. 즉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즉 찬송하며 기쁨이 넘치는 삶입니다. 새 신자가 교회에 와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기쁨 그 자체가 영혼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감사가 넘치는 생활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셋째,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존경하고 피차 복종을 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부부간에도 서로 존경하고 복종을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한 지체들이기 때문에 서로 존경을 해야 합니다. 형제를 멸시하고 천대하는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천대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의 중심 생활입니다. 문제는 서로 존경을 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고 섬기는 삶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리의 지, 정, 의가 변화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고 성도의 교제에 서로 존경하고 피차 복종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상태적인 그것을 가지고 성령 충만으로 알려고 하다 보니 가슴이 뜨겁고 등이 뜨거우면 성령 충만이다, 라고 잘못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의지적 변화 즉 인격의 변화입니다. 분쟁과 이간은 성령 충만의 삶이 아닙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에베소서 5:18절에서 성령 충만을 무엇과 비교하고 있습니까?

                                                          

                                                          

                                                          

 


묵상에 대한 설명


(1) 에베소서 5:18절에서 성령 충만을 무엇과 비교하고 있습니까? 유사점과 차이점을 성령 충만과 술 취한 것으로 비교했습니다.


성령 충만은 첫째, 술 취한 것과 유사점이 있습니다. 술 취하면 온 몸이 뜨거워집니다. 술기운이 온 몸에 퍼지므로 뜨거워집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영향력을 미치게 하여 자극을 받게 됩니다.


둘째, 겉으로 나타납니다. 성령 충만하면 숨길 수가 없습니다. 온 몸이 벌게집니다. 인격의 향기가 납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 기뻐합니다. 술 취하면 숨길 수가 없고 온 몸이 벌게지며 술 냄새가 납니다.


셋째, 기분이 상승됩니다. 술 취한 사람은 한 없이 높이 올라갑니다. 나도 없고 상대방도 없습니다. 성령 충만도 기분이 상승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할 때 힘들고 복잡하여 집니다. 세상 것으로 꽉차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힘이 들어도 힘든 줄 모릅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능히 감당을 하여 냅니다. 오직 성령 충만해야 승리합니다.


넷째, 담대함과 용기가 생깁니다. 술 취한 자 겁나는 것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도 동일합니다. 용기와 담력과 담대함이 생겨 세상에 그 누구도 작게 보입니다. 바울이 사도행전에 보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담대히 자신이 쇠사슬에 매인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술 취하면 실수와 망신을 당하는 일을 많이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덕을 세웁니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대인 관계에서도 덕을 세웁니다. 술 취하면 무질서 합니다. 질서를 지키지 않습니다. 어디서나 드러누워 잠을 자고 어디서나 서서 오줌을 싸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에 취하면 어디서나 질서가 섭니다. 존경 할 자 존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질서가 세워집니다. 우리 목사님을 만나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고 순종생활과 질서를 세워감으로 평안과 감사와 기쁨 이 있습니다. 이것이 차이점입니다.


다섯째, 술 취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멱살 잡고 시비하고 싸웁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감사하고 존경하고 복종하고 서로 섬깁니다.


여섯째, 술 취하면 무절제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절제가 있습니다.

일곱째, 술 취하면 과장(포장)을 많이 합니다. 공갈치고 허풍을 떱니다. 성령 충만하면 진실을 말합니다. 헛되이 포장을 하거나 과장하면 위선으로 떨어져서 성장을 하지 못하고 맙니다.


“단 한 번에 영원히 충만해질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계속적으로 공급을 받음으로써 계속적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정결해지고, 순간순간 충만해지기 위해서, 순간순간 구세주 안에서, 순간순간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 찰스 인우드 ~


18. 성령 충만의 또 다른 결과는 무엇입니까?


(1) 사도행전 4장 31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상대방의 어떤 반응에 대하여 상관을 하지 않고 담대하여 집니다. 성령 충만 받지 않으면 담대하지 못하고 입이 열리지 않고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들어 전도하지 못합니다.


(2) 사도행전 11장 24절


전도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착한 바나바가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간구는 세 가지로 나타나야 합니다. 첫째,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둘째, 충성을 구해야 합니다. 셋째, 열매를 구해야 합니다. 즉 결과입니다.


(3) 로마서 5장 5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사랑으로 넘치는 가운데서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바울은 유라굴라 같은 광풍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성령 충만한 삶이였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절망이 없습니다.


19. 성령과 당신의 관계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바는 무엇입니까?


(1)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소멸 되는 이유는 첫째, 전도하라고 뜨거움을 줄 때 막아 버리면 소멸이 됩니다. 주의 영은 증거의 영입니다. 이것을 차단시키면 성령이 소멸이 됩니다. 이유 없이 전도를 막으면 소멸되고 맙니다.


둘째, 자신감이 없이 살 때 성령이 소멸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교회 일 좀 합시다, 라고 하면 저는 그런 것 못해요, 라고 거부하고 사양을 합니다. 이것이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일을 시킬 때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일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은 성령을 소멸하는 죄에 빠지게 됩니다. 믿는 자는 근심하면 더욱 안 됩니다. 이왕이면 믿음의 사람으로 긍정적으로 매사에 대처하면서 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감당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셋째, 사람이나 환경을 두려워할 때 성령을 소멸하게 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로 치려는 자들 앞에서도 담대하고 자기의 할 말을 다했습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 입니다. 경고로서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죄입니다.


(2) 에베소서 4장 30절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죄가 됩니다.


20. 에베소서 4:30절의 전후 구절들을 주의하여 읽어 보십시오.


(1)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거짓말 하는 것이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첫째, 두려움 때문입니다. 자신이 담대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둘째, 삶이 진실하지 못해서 거짓말을 합니다. 검쟁이, 진실하지 못한 자가 거짓말을 합니다.


(2) 당신의 삶 가운데서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까?


26절에 분을 내는 것, 28절에 도적질 하고 탐욕을 버리지 않는 것은 성령을 근심케 만듭니다. 29절에 더러운 말 지나친 농담을 하고 거친 말과 영양가 없는 말을 하는 것, 31절에 악독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모든 것 이런 것들이 성령을 근심케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왜 이런 일을 하게 되는지 이유는 대부분이 자존심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훼방하는 일도 자기 자존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근심케 하는 죄는 소극적으로 수치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교회의 일을 막으면 안 됩니다. 보편적으로 막는 그 원인은 자존심 때문입니다. 성경에 성령이 하시는 일은 막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가정에 성실하지 못하고 배우는 자세가 없는 것과 대인 관계에 덕망이 없는 삶에 성령은 근심하십니다.


(3) 당신이 취해야 할 조치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계획하고 순종을 하고 있는가? 를 생각해 보십시오. 분노하고 있는지, 거짓말 하고 있는지, 훼방을 하고 있는지 등을 자세히 자신을 점검하여 보십시오. 성령을 근심케 하고 소멸하는 생활에는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을 기쁘시게 해야 도움을 받게 됩니다. 거짓말을 잘 하였다면 이제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에 열 번 씩 하던 거짓말이 아홉 번 하면 이것은 분명히 변화에 들어 선 것입니다.

 

계시록 22장 15절에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거짓말 하는 자는 지옥 간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구절을 찾아 읽고 기도하면서 노력하면 반드시 고쳐집니다. 그러므로 저녁에는 반드시 체킹을 하고 하나님 앞에 보고 하는 생활을 3개월에서 6개월 노력하면 반드시 고쳐집니다. 시편 55편 23절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거짓말 하는 자는 인생의 반절밖에 못산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도움의 간절한 열망이 있을 때 반드시 고쳐집니다.


요 약


본과의 소제목들을 복습하고 그것을 개요로 삼아 전체 내용을 요약하십시오.


성령은 단순한 능력이나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체로서 지, 정, 의를 갖추고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며 하나님의 속성을 갖추고 계시며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모심으로서 성령과 나와 관계를 맺게 되며 한 몸이 되고 인도를 받게 되면서 그는 우리 안에서 거하심으로 우리가 여러 가지의 일을 하는 데에 깨끗하게 하심과 열매를 맺게 하심과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시고 또한 사역을 위해서 은사를 각각 사람에게 주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가게 하십니다. 성령께 대한 우리의 책임은 성령 충만을 받아 삶에 기쁨과 삶에 인격의 열매와 사역의 열매를 맺어야 하며 그 분을 소멸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은 삿삿이 찾아내어 자백을 철저히 함으로 내어버리고 오직 그분의 지배를 받고 살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각자 요약을 하여 나누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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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과


영적 전쟁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발견하고 적용하면서부터 영적인 전투는 시작됩니다. 전투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격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싸움을 통해 성장하게 되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7)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적 축복이 보장된 것은 사실이나 영적 전쟁을 통해서 주신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가 있었고, 아말렉이 있었습니다. 축복의 현장에서도 전쟁이 있었습니다. 여리고성, 아이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영적 싸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전쟁에 승리했을 때 쟁취하는 축복이 있습니다. 믿음은 한마디로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생이 많고 고난이 연속되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도 없는 연속된 축복을 허락하심은 절대로 없습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 했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전투하는 삶입니다. 나태하고 안일하면 죽습니다. 전쟁터에서 낮잠을 자고 안일하면 결코 승리가 없고 오히려 죽습니다. 항상 적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전 투


1. 에베소서 6:12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바울은 영적 전쟁의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영적 전쟁입니다. 마음에 평안이나 기쁨이나 축복은 전쟁이 없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평안과 기쁨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오는 축복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승리함으로 민족에게도 기쁨과 평안이 왔습니다. 우리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가정과 교회에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항상 대적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 준비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싸워 이겼습니다. 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없다는 것은 영적 전쟁에서 실패하고 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방패입니다. 자주 시험이 끊이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방패가 없는 것입니다. 방패는 칼도 막고 창도 막고 화살도 막습니다. 내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공격에 찔려서 상처받고 허우적거립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기쁨도 평안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쁨과 평안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 했을 때 옵니다.


2. 디모데후서 2:3~4절을 읽으십시오. 바울은 어떤 종류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첫째, 군인과 같은 삶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군인들입니다. 에스골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서로 맞추어지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고 생기가 들어가니 여호와의 군대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군인의 삶은 전쟁하는 삶입니다. 군인은 전쟁 때문에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전쟁하는 삶입니다. 공중권세 잡은 마귀와 그의 졸개들과의 싸움입니다. 이스라엘의 여정은 애급에서 출발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끝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이들은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전쟁을 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은 우리들에게 영적인 전쟁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둘째, 군인은 모집한 국가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기쁘게 하는 삶을 위해서 자신의 할 일을 배제하는 것이 있어야 군인입니다. 군인은 자기 자신의 안일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군인으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결국 다윗을 불러 주신 하나님을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들의 영적 싸움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초점이 되어야 합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의 바알 선자들과의 전쟁에서 그 기도 내용을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하나님의 역사를 엘리야를 통해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도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보여 주기위해 모세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승리를 했습니다. 주의 종은 하나님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당신의 적을 알라


“전투에 대한 정보나 적에 대한 지식은 군사령관에게 중요한 만큼이나 그리스도인에게도 중요합니다. 둘 다 전투에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드 싸전트-


무조건 싸우면 안 됩니다. 적을 알고 싸우면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3번~4번은 적의 존재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적을 알고 싸우면 백번 싸워도 백번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적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적에 대하여, 그 작전에 대하여 성경을 통하여 모두 가르쳐 주셨습니다.


3. 요한계시록 12:9~10절에 나와 있는 적의 이름들은 무엇입니까?


큰 용, 옛 뱀, 마귀, 사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무엇인가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 합니다. 사단은 힘도 능력도 있습니다. 실제로 사단은 사람에게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사단은 공중 권세를 잡은 악령입니다. 권세는 - 나라 - 세상에는 임금이라고 합니다. 사단이 일을 하고 있는 실체는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는 일처럼 하려고 합니다. 사단의 월드비전은 첫째, 온 천하를 꿰이는 것 즉 꼬이는 것입니다. 둘째, 참소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 앞에 정정 당당하게 싸우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사단 앞에 도전하고 유혹 앞에서는 피하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꿰이고 참소를 하는데 정면에서 하지 않고 뒤에서 뒤통수를 칩니다. 항상 가장하여 광명의 천사로 의의 일꾼으로 신령한 목사로 신령한 은사자로 능력자로 나타납니다. 사단은 절대로 정면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단의 조정을 받는 자는 항상 뒤에서 꿰이고 쑥덕쑥덕 하여 참소하고 노략질 하여 자기편을 만들고 갈라놓습니다. 그리고 목회자 상에 올라갑니다. 이것이 교회의 가장 쓴 뿌리입니다. 포도원을 허는 여우 새끼입니다. 가장 신령한 것을 썩을 것으로 바꾸어놓습니다. 사단이 앞에서 나타나 나를 따르라고 하면 아무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항상 뒤에서 가면을 쓰고 속여서 꿰여서 쑥덕거리게 하고 불평하게 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참소하여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하게 갈라놓고 상처를 줍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알고 사단의 조정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4. 성경 가운데 사탄의 이름이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부분에서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요한계시록 20:7~10)


자기가 하나님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항하고 대적을 합니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온 천하를 꿰입니다. 주님의 월드비전은 온 천하를 복음화 하는 것입니다. 사단도 온 천하를 꼬여서 멸망으로 인도하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온전히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 결과로 영벌 받는 곳, 그 중에도 제일 밑바닥에 떨어집니다. 사단의 사조를 받고 따라 가는 자는 사단과 같이 심판을 받아 제일 밑바닥에 떨어지는 비참함이 있습니다.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구약에는 두려움이 믿음이었습니다.


5. 사탄이 하와를 속일 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만들었습니까? (창세기 3:1~5)


사단은 속이는 전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단은 대단히 간교한 자입니다. 지능적으로 속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인정합니다. 그 이유는 인정을 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이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릇되게 인도합니다. 사단의 전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것을 그럴듯하게 하여 속입니다. 하와가 그 작전에 걸려들었습니다. 창세기 3장 1~4절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 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아담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똑같이 시험을 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타납니다. 이단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타납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공격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에 배워야 합니다. 오늘 그 대표적으로 예를 들면 여호와의 증인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모르면 그리고 확신이 없으면 희미하여서 결국 하나님을 부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이 없으면 사단의 조정을 받는 자가 뒤에서 목회자에 대하여 쑥덕쑥덕 하는 것들을 자꾸 듣다 보면 그 사람의 말을 인정하게 되고 결국은 같이 쑥덕쑥덕하게 되어 집니다. 이것은 사단의 조정을 받고 있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쑥덕쑥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알아야 분별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알고 있을 때 사단에게 넘어가지 않고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든든히 세워 주신다고 사도행전 20장 3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사단은, 적그리스도는, 예수 이름을 가지고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합니다.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가지고 와서 그리스도를 칩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유대인들이 예수 믿으라. 해놓고 할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전통을 추가 시켰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을 사냥질해서 끌고 갑니다. 사도행전 13장 6절에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바예수가 나옵니다. 그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마술사 남자 무당)였습니다. 그 바예수를 바울이 쳐버리니 소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0~11절에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을 던지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의심케 하는 것을 그의 끊임없는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6. 다음 구절에서 사탄에 관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 누가복음 8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서부터 빼앗아 갑니다. 즉 믿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내 속에서부터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의심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기와 양식인데 빼앗아 가버리면 그것은 시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의 심비에 새겨야 합니다. 


(2) 요한복음 8장 44절


거짓말 장이로 나타납니다. 거짓말은 사단의 말입니다. 거짓말하면 계시록 22장 15절에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지옥에 간다고 하였습니다. 흰 거짓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말은 죄입니다.


(3) 고린도후서 4장 3~4절


혼미케 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광체를 비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름이 하늘을 덮으면 태양은 비추고 있지만 구름이 태양의 빛을 막아 버립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 못하게 합니다. 방해하고 훼방을 합니다. 결국 복음의 빛을 막아버리고 어두움에 살게 합니다.


(4) 고린도후서 11장 3절


마음을 미혹케 합니다. 이유는 그리스도를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게 하여 혼미케 만들어 타협하게 하고 합리화 시키는 쪽으로 끓고 갑니다. 탕자의 형은 집안에 있는 탕자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명을 어긴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의입니다. 그는 밭에서 일한 것을 의로 여겼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은 집 나간 동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은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이미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입니다. 내 자신을 잘 살펴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집안에 있는 탕자 일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결국 우리가 진실한 마음에서 자꾸 사라져 가게 하여 그리스도를 떠나게 합니다. 이것이 사단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분별력을 상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에 대한 처방으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분별력이 생깁니다.


(5) 고린도후서 11장 14절


다른 영, 사단이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 합니다. 의에 일꾼처럼 나타납니다. 북한 무장 공비들이 아군 복장으로 가장하여 넘어 옵니다.자기를 가장하는 최고의 일인자가 바로 사단입니다. 광명의 천사로 올 때 가장 잘 넘어 가기 쉽습니다. 이에 대한 처방은 잘 지켜보면 영적으로 교만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격적으로 하느냐 비인격적으로 하느냐에 말씀으로 비추어보면 분별이 됩니다. 과거를 꼬집어 내면 틀림없이 광명의 천사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용서한 것은 기억도 아니 하신다고 했습니다. 잘 알아낸다고 하여 걸려들면 안 됩니다.


7. 누가복음 4:1~1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대하신 기사를 읽으십시오.


(1) 마귀가 나타났을 때 예수님은 신체적으로 어떤 상태에 계셨습니까?


사단은 내가 배가 대단히 고플 때 나타납니다. 예수님도 사십일 금식을 했을 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병이 들었을 때, 혹은 환경적으로 대단히 어려울 때, 그리고 사업에 실패를 했을 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때 나타납니다. 그는 우리들의 약점을 노립니다. 항상 나의 약한 점을 통로로 삼아 침투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사자도 많은 사슴의 무리를 공경할 때 제일 먼저 병들고 약한 것을 공격합니다. 나의 약한 부분은 자신이 잘 압니다. 이것을 통해 침투하여 들어오기 때문에 약한 부분을 차단하면 됩니다.

 

한 예로서, 대단히 배가 고플 때 사단이 틈타 시험을 하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마태복음 4장 4절의 말씀으로 차단하면 됩니다. 


(2) 세 번의 유혹을 통하여 사탄은 어떤 욕망을 불러일으키려 했습니까?


우리에게 정욕으로 흔들어 놓습니다. 욕심을 갖게 하고 욕망을 일으키게 합니다. 욕망은 육신의 정욕, 眼目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런 것들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육신의 정욕은 끝없이 타락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취하고 싶은 탐심입니다. 이생의 자랑은 내 이름을 날리고 싶은 명예욕입니다. 이런 세 가지 욕심을 우리 속에 일으켜 흔들어 자극을 시킵니다.

 

사단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배가 고플 때 그 마음을 흔들어서 욕심을 일으켜 돌을 떡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정욕으로 흔들어 놓고 배가 고프면 식욕만 생각이 납니다. 그는 눈에는 떡만 보이도록 흔들어 놓고 길가에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아무렇게나 질서도 없이 나의 욕심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잘못된 욕망을 갖게 됩니다. 주님은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사단은 그 능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하라고 유혹을 했습니다. 사단은 둘째로, 높은 산위에서 천하만국을 순식간에 다 보여 주고 나에게 절하면 모두 주겠다고 시험을 했습니다. 이것은 안목의 정욕으로 시험을 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높은 성벽에서 뛰어 내리라고 했습니다. 천사들이 발을 받쳐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생의 자랑입니다. 명예욕으로 시험을 했습니다.

 

항상 사단은 이런 세 가지 정욕을 가지고 유혹을 합니다. 이것은 옛 사람의 양식입니다. 새 사람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탄과 20리까지는 함께 가려 하지 않지만 10리는 함께 가기를 허락합니다. 그러나 일단 그와 함께 가다가 도중에서 돌아설 수는 없습니다.  -윌리엄 거날-


8. 베드로전서 5:8~9절을 당신 자신의 말로 쓰십시오.


사단은 삼킬 자를 찾고 다니는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다가오는 자만 잡아먹으려고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잡아먹을 것을 찾아다닙니다. 특히 목회자, 믿음의 일꾼들은 사단의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삼가 조심을 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전법을 사용합니다. 탁명환씨가 쓴 책에서 귀신 들린 자들은 거의가 욕심이 많은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사단은 항상 제일 약한 부분으로 침투하여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약한 부분을 잘 지켜야 합니다. 사단은 속임수에 최고의 명수입니다. 광명의 찬사로 보여 주고 설득합니다. 이것이 안통하면 우는 사자처럼 위협과 협박을 합니다. 여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죄와의 투쟁


9. 다음 구절들은 죄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1) 이사야 1장 2절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죄입니다. 거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내가 어긋나고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양육하듯이 했는데 우리는 그 뜻을 거역 했습니다. 


(2) 로마서 14장 23절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믿음의 관계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인정적으로는 안됩니다. 의리로도 안 됩니다. 얼마든지 자기중심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은사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은사가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믿음도 은사입니다. 가인은 자기중심으로 믿음이 없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가인처럼 자기중심으로 얼마든지 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항상 해묵은 신자가 문제입니다. 즉 교회의 주도권 싸움입니다.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 하는 싸움입니다. 우리는 항상 나보다 훌륭한 은사가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물려 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자신보다 나은 은사 자가 나타나면 물려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바나바가 교회를 세우고 원 목사가 이었으나 바울이 부목사로 사역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의 은사를 보고 그 주도권을 바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설교은사가 자기보다 나은 것을 보고 믿음으로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입니다. 


(3) 요한일서 3장 4절


불법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며 그것은 죄입니다. 성령의 법을 좇아 행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행하면 절대로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탄생하시고 성경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성경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성경대로 살아 나셨습니다. 말씀을 좇아가면 주님처럼 승리의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10. 죄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2:37~40절에 율법을 요약하신 것을 살펴보고 나서 죄에 대한 정의를 더 발전시켜 보십시오.


자기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못한 상태가 죄입니다. 이웃을 나보다 더 사랑하지 못한 그 상태가 죄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죄를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에서 어긋나며 사랑에서 어긋납니다. 사랑은 성장과 관계가 있습니다. 사랑이 성장하여 성숙하게 되면 죄를 이기며 사랑을 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는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성장하면 이웃을 이해하고 성숙하여 집니다. 죄는 믿음의 성장과 관계가 되며 사랑의 성장의 과정과도 관계가 됩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려면 사랑을 성숙시켜야 합니다.


11. 야고보서 4:1~4절을 읽으십시오.


(1) 싸움과 다툼이 어디로부터 발생합니까? (1~3절)


정욕에 쓰려고 욕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육신의 각 정욕을 불러 일으켜 결국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단의 전략입니다. 여기에 걸려든 자가 아간입니다. 그리고 사울 왕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각 정욕을 죽여야 합니다.


(2)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헌신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까? (4절)


세상에 벗이 되고자 하는 것이 헌신을 방해 합니다. 벗이라는 말은 아주 가깝고 친하다는 말입니다. 사단은 이렇게 만들어 죄를 짓게 합니다. 세상과 벗이 되면 예수 안에서는 짐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짐을 푸는 것이 바로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앉아 있으면 지겹고 짐이 되는데 극장에 가고 노래방 가면 마음이 편하고 신바람이 나는 것은 세상과 벗이 된 증거입니다. 세상이 좋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빨리 끝이 나기를 바라고 시계를 바라보며 집에 가서 텔레비전 보고 또는 야구장으로 또는 당구장으로 볼링장으로 가기만 하면 신이 나는 사람은 세상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워야 합니다. 이사야 49장 8절에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20장 7절에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 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벗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세상을 좋아 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좋아하고 있는지를 체킹을 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가기를 대단히 좋아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가기를 싫어했습니다. 조카 롯은 세상과 벗된 대표자입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 자신을 세상과 벗이 되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죄를 짓게 되고 세상을 따라 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헌신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즉 방해 합니다. 예배를 방해하고 기도를 방해하고 십일조와 감사 생활을 방해합니다. 믿음으로 심는 일에 방해하여 거둘 것이 없게 만듭니다.


우리가 죄를 멀리하고 승리의 삶과 큐티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교제를 항상 나누게 되면 하나님과 벗이 된 상태가 됩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벗이라고 한 것은 한두 번 만남으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계속 사귐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떤 부부는 평생을 살아도 서로의 깊은 마음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교제를 많이 함으로 하나님께서 너는 나의 벗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이모저모로 시험을 하여 보시고 나서 인정하여 주시고 안다고 하였습니다.


(3) 이 구절은 당신이 겪고 있는 어떤 갈등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만일 그렇다면 설명하십시오.


적용면입니다. 내가 세상과 벗이 될 것인가? 하나님과 벗이 될 것인가? 를 체킹하여 보십시오. 세상의 것 좋아하면 세상과 벗이 된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좋아하여 텔레비전을 보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나는 어느 쪽에서 마음이 평안한가를 살펴보십시오. 세상인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인가? 분석을 해 보십시오.


12. 세상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2:2~3)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불순종, 욕심, 내 마음에 정욕대로 살게 하는 것이 사단의 전략입니다. 옛 성품대로 따라 살게 됩니다. 사회 정의 운동이나 도덕으로, 사회 복지 운동으로는 안 됩니다. 썩지 아니할 씨로 거듭나지 않으면 참된 복지가 될 수 없습니다.


복지 시설이 세계에서 가장 잘된 나라가 덴마크와 스위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는 죄악이 더 많습니다. 민주주의는 사람 중심입니다. 여기에는 죄가 발달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속에는 죄의 성품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패된 성품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썩지 아니할 씨로 나지 않는 자는 육체의 각 정욕대로 살게 됩니다. 유물론주의로 살게 됨으로 필연적으로 육체적입니다. 물질 뿐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육체요 물질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본성이 지배를 하게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바울은 우리가 이 세상을 본받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로마서 12:2). 이 말씀을 빌립보서 4:8절과 비교해 보고,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당신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간단하게 기록해 보십시오.

                                                          

                                                          

                                                          

 


묵상에 대한 설명


빌립보서 4장 8절에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으면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처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즉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빌립보서 4장 8절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마음에서부터 사단에게 노출되어 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생각이 중요합니다. 사단이 가룟유다 마음속에 예수 팔 생각을 넣어 주었습니다. 성도는 깨끗하고 정결하고 옳고 사랑할 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깨끗하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의지로 뜻을 정해 놓고 행할 때 변화가 옵니다. 생각을 변화 시키려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해야 합니다. 이때 내 마음이 청결하여 집니다.


빌립보서 4장 8절의 반대는 세상의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평생에 거룩하게 살기를 기도했습니다. 세상 것을 생각하면 복잡하고 더럽고 추해집니다. 빌립보서 4장 8절의 말씀을 줄을 치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체킹을 하여 보십시오. 한번 써보십시오. 아직도 땅의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우리는 사단에게 틈을 주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바쁘게 해야 합니다.


13. 시험을 참아 견디어 내는 자에게 약속된 것은 무엇입니까? (야고보서 1:12)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말씀으로 무장하고 견디어 이기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죄나 유혹에 승리의 비결은 첫째, 우리 자신이 죄에 대한 수준을 높게 가져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죄의 정의를 마음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하고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불량에 충만한 데까지 올라가지 못한 것도 죄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해를 주지 않고 주일만 잘 지키고 십일조 잘 하고 기본적인 일만 하면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즉 죄에 대한 수준을 낮게 보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주님처럼 살지 못하는 것을 죄로 여겨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의로 하면 됩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내 마음으로도 안 됩니다. 우리 마음은 정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죄의 덩어리, 모든 덩어리가 사람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내 마음 자체를 부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마음만 믿으면 된다고 합니다. 성경은 “나를 부인하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이 자신입니다. 이것을 부인하라고 했습니다. 모든 부패의 원천이 바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변해야 합니다. 속사람의 영을 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찢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 할 때 변화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을 때 변화가 옵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잘못한 것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정말 선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석하게도 당신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마음이야말로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악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찰스 스펄전-


승리의 확신


14. 히브리서 2:14~15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사탄에 대하여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주님은 십자가에서 사단에게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구주가 되셨고 생명이 되셨습니다. 사단의 머리를 밟는다는 말은 사단의 완전한 패배를 뜻합니다. 사단은 완전 패배를 했습니다. 주님의 승리로 인하여 우리는 사단에게서 완전한 해방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승리는 바로 나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이 내 속에 없다면 본질적으로 사단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이것은 간접적인 것이지만 직접적인 상태입니다. 절대로 율법에서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예수 안에서 승리하면 주님의 승리와 똑 같은 느낌과 감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에 의 라고 했습니다. 의는 주님의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1절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즉 율법이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출발은 갈보리 언덕 주님의 보혈의 피와 부활입니다. 즉 승리에서 출발합니다. 이미 주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인 것입니다.


15. 다음 구절들에 의하면 승리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1) 요한일서 2장 14절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있기 때문에 승리의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입니다. 씨앗은 생명이 있습니다. 그 씨는 성경에서 증거 하기를 항상 있고 썩지 않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씨는 썩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썩지 아니할, 항상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난 것 민수기에 모세가 구리 뱀을 장대에 높이 든 것처럼 나도 높이 들리라고 하시고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봉우리입니다. 여기에서 거듭납니다. 수가성 여인처럼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2) 요한일서 4장 4절


성령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내 안에 사단 보다 능력이 많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확신을 가지고 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임했습니다. 그것이 근거입니다. 내 몸 안에 성전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임재 하여 계신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신뢰할 때 승리를 합니다.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살면 희미하여지고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면 생활면에 실패를 하고 맙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할 신분입니다. 이미 주님이 승리를 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승리는 바로 나의 승리입니다.


(3) 요한일서 5장 4~5절


“대저 하나님께 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믿을 때 내게서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성령을 의뢰할 때 내게 승리의 삶으로 이끌어갑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내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가장 큰 권능은 사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망의 권능을 깨뜨리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가장 큰 권능을 가진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성령을 의지할 때 승리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6. 고린도전서 15:57절을 당신 자신의 개인의 기도로 삼아 기록하십시오. 잠간 멈추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에게 승리의 확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승리의 삶에 대한 기도는 고린도전서 15장 5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을 한 후 승리의 삶에 대하여 기도문을 써보십시오. 어디에서 승리가 오는가 알아보고 써보십시오. 승리의 삶이 실제 생활면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뜻이 있어야 합니다. 뜻은 계획을 말합니다.


목회자를 사랑한다면 뜻을 정해놓고 그 필요를 살펴서 행동으로 채워 드려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드리면서 사랑 할 것인지를 실제적으로 뜻을 정해 놓고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뜻을 정해 놓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말로만 내가 희생하면서 상대편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뜻을 정해 놓고 행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매일 매일의 승리


한번 승리했다하여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매일 승리해야 합니다. 사단이 한번 참패 했다 하여 물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옵니다. 계속해서 옵니다. 그러므로 매일 성경 말씀을 의지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마귀가 주님을 떠나고”라는 말은 여기에는 잠시 떠난 것이지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닙니다.


17. 요한계시록 12:11절에서 사탄을 이길 수 있는 세 가지 요소를 열거하십시오. 각 요소들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1) 어린양의 피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유월절에 피 문을 통과 했습니다. 피가 없는 자는 모두 죽음의 사자가 죽였습니다. 그리고 피가 있는 자는 모두 살리셨습니다. 우리들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의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짐승의 피는 성전에 두었지만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참된 음료이므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내 안에 두라는 말입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가지고 내 안에 임재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어린양의 피가 내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바라볼 때 좌절감이 옵니다.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를 볼 때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용서와 속죄로 깨끗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속에 있는 어린양의 피를 보십니다. 이스라엘의 유월절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랐을 때 그 안에 있는 모든 자의 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문설주에 묻어 있는 피를 보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해야 합니다. 십사만 사천은 어란양의 보혈의 피로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보혈로 이깁니다. 예수님의 피 뿌림이 있어야 자유 함과 기쁨이 있습니다. (보혈은 설교에서 빠지면 안 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입니다.


죄 문제의 해결의 증거가 약속의 말씀입니다. 나의 죄가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하여 주셨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 증거 하여 주십니다. 성경의 약속의 구절을 사용했을 때 사단은 떠납니다. 거짓은 진리가 있을 때 환하게 들어납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의 삶입니다. 유혹을 받았을 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능력의 힘이 있습니다. 새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식과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단을 대적해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안 됩니다.


(3) 생명을 아끼지 않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봉사와 순종으로 생활할 때 죄를 지을 여유가 없습니다.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전도 열심히 하고, 성경 열심히 보고, 교회 일, 집안 일 열심히 하십시오. 주님이 하라는 것은 열심히 적극적으로 하고 적극적으로 순종하면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한가한 시간을 가지면 죄를 짓게 됩니다. 다윗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전쟁 중에 궁전에서 낮잠을 자고 옥상에 어슬렁거리다가 낮에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죄를 지었습니다. 아마 적극적으로 백성들과 전쟁을 했더라면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적극적인 헌신과 순종 없이 여유 있게 신앙생활하면 죄를 물먹듯이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는 열심히 하는 그것이 승리의 비결이고 죄를 짓지 않는 예방책입니다. 죄를 지을 시간이 없도록 탁월하게 헌신을 해야 합니다. 편하게 예수 믿으려면 신앙의 막가파가 됩니다. 자기중심으로 하는 것은 세상에 물든 것입니다. 여기에 사단은 멸망시키고 죽이는 데까지 끌고 갑니다.


18. 에베소서 6:14~18절에서 영적 전사(戰士)의 장비를 열거하십시오. 이러한 장비들을 매일의 삶에 사용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장비는 매일 사용해야 합니다. 매일 영적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농부는 손가락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장비로 농사일을 합니다. 우리는 전신 갑주를 입고 완전 무장해야 합니다.


첫째, “진리의 띠를 허리에 두르고”라는 말은 띠를 두른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유월절 날에 완전히 떠날 준비된 상태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라”는 말입니다.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적극적으로 말씀을 보고, 적극적으로 기도를 하고, 교제를 하고, 전도를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비중을 하지 말라는 대만 두면 비중의 폭이 대단히 좁아집니다. 하라고 하는데 두면 그 폭이 대단히 넓어집니다.


둘째, “의의 흉배를 붙이고”라는 말은 의롭게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빛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감추지 말고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내 의가 오픈이 되어야 합니다. 즉 공개 되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죽어도 죄와 타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의롭게 사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나의 신분 즉 예수 믿는다는 것을 어디에서나 밝혀야 합니다. 이것이 흉배를 붙이는 것이 되고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입니다. 숨기면 죄를 지을 기회가 너무 많아집니다. 자기의 신분을 어디서든지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라는 말은 전도하라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예수 전파하는 발이 되어야 합니다. 신지 말고 열심히 복음의 신을 신고 뛰어야 합니다. 그러면 죄를 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넷째, “손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방어용 방패입니다. 예수님은 “가라사대” “가라사대”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준비하고 암기하는 것이 방패입니다. 시험에 자주 드는 자는 믿음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도 없는 자입니다.


다섯째, “머리에 구원의 투구를 쓰고”라는 말은 구원의 확신을 말합니다. 머리는 지시하는 기관입니다. 구원의 문제는 구원의 확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능력, 축복 모두가 여기에서 출발을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것에 감사하고 찬송 하고 간증하며 밝히고 살 때, 투구를 쓰고 있는 상태에서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으로 무장이 되어 있으면 사단이 뚫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간증할 때 죄와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섯째, 손에 검(성령의 검), 방패는 방어용 무기이고 검은 공격용 무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방패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말씀이고 성령의 검은 하라는 말씀입니다. 적극적인 순종으로 십일조, 감사, 헌신, 주일 성수, 전도, 적극적으로 일할 때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 않을 때, 하라고 하는 그 말씀에 시험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공격을 받아 당하게 됩니다. 방패와 성령의 검, 말씀의 검을 믿음으로 사용하십시오. 무기 자체에 큰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 무기는 사용하는 자의 능력에 좌우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무기는 그 무기 자체에 큰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용만 하면 됩니다.


“누구든지 기도를 통해서 마음 속에 있는 악한 생각을 그때 그때 주님께 아뢰지 않는 한, 그것에서 승리할 수가 없다는 것을 꼭 알아야만 합니다.”            ~ 죠지 뮬러 ~


19. 죄로부터 승리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당신은 날마다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매일 수레바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곧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어서 매일 기도로 교제하고 성경을 보고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몰라서 결국 망하였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인격적인 만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신학자들이 더 잘 압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율법사들은 성경 달달 외우다시피 잘 알았지만 인격적인 교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잘 알지를 못한 것입니다. 교제 한두 번으로 잘 알 수 없고 인격이 될 수 없습니다. 매일 교제할 때 서로 알게 되고 기도를 매일 매일 할 때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말은 인격적인 교제로 안다는 말입니다.

 

수평적인 관계는 성도의 관계에서 신령한 교제로 매일 서로 기도하고 서로 말씀으로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적인 교제가 아닙니다. 영적인 교제를 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전도를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수레바퀴가 크면 클수록 도랑도 쉽게 넘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령 충만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성령 충만 하지 못하면 그것은 죄입니다.


(1) 시편 86편 3절


매일 기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국사 일만 하여도 대단히 바쁜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종일 주께 부르짖는다고 하였습니다. 매일 매일 기도하는 삶을 사는 그것이 죄에서 승리하는 삶입니다.


(2) 시편 96편 2절


매일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에서 승리하려면 적극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삶은 증거 하는 삶입니다. 전도를 적극적으로 할 때 죄에서 승리합니다. “송축한다”는 말은 “축복을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은 고차원적인 신앙이고 은혜의 사람 이였습니다. 하나님을 축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을 축복하고 목회자를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송축이라는 말을 세상 사람들의 말로 표현하면 “만수무강 하시옵소서”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3) 시편 119편 97절


묵상을 하는 삶이 죄에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묵상은 말씀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해한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생활에 적용을 할 때 죄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4) 누가복음 9장 23절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이 말은 매일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이 승리의 삶이 됩니다. 매일 순종 하려면 자기를 부인 하여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 하려면 십자가에서 자기를 발견하면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선행이 되어야 순종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면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에 맞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기 집단입니다. 먼저 계산을 하여 봅니다. 십일조 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자기 계산과 이익 때문입니다. 이런 자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충실히 잘 지는 자는 주께서 맡겨 주시는 것도 잘 질 수 있습니다. 이때 죄에서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5) 히브리서 3장 13절


매일 사랑으로 교제하는 삶을 통해 만나서 피차 서로 권면을 해야 합니다. 교제가 성숙되지 않으면 문제를 일으킵니다. 교제는 영적으로  서로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은 것을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교제에도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자고 하는 말은 다른 말은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모이면 판단하고 정죄하고 허물을 들추어내면서 웃고 즐기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교제입니다. 여기에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교제에 훈련을 통해 성숙함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20. 범죄 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편 32:5)


승리의 살을 살다가 범죄 했을 때 매일매일 자백을 해야 합니다. 회개는 불신자가 하나님께로 돌아 와서 한번하면 됩니다. 자백은 성서적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가 매일매일 토설하듯이 해야 합니다. 자백을 해야 되는 이유는 날마다 하나님과 풍성한 은혜로 공급을 받고 풍성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자백은 천국에 가는 것만큼 귀중합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은 교제하여 주시지 않으십니다. 자백을 통해 죄 용서를 받고 날마다 은혜를 공급받는 삶이 승리의 삶이 됩니다. 성도 간에 교제에 있어서도 맺힌 것이 있으면 먼저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백을 했을 때 자백이 됩니다. 자백은 축복입니다.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21. 시편 103:9~12절을 읽으십시오. 당신이 범한 모든 범죄에 대해 하나님은 어떠한 태도를 보이십니까?


매일매일 하나님의 크신 인자(사랑)를 확신하고 살아야 합니다. 죄를 자백하면 우리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멀리 옮기십니다. 동에서 서는 영원히 끝이 없습니다. 남과 북은 깃 점이 있습니다. 동에서 서로 옮겼다는 말은 만날 수 없다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므로 나의 죄를 예수 십자가를 통해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확신하고 살면 반드시 죄에서 승리합니다. 어두운 곳에 빛이 임하면 어두움은 물러갑니다. 교회에 하나님 말씀 앞에 진실하게 죄를 책망하는 일에 둘로 나누어질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때 빛과 어두움이 갈라지더라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담대하게 이끌어 가면 됩니다. 계시록에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결국 이기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은 바라셨습니다. 현재 교회들은 전투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날마다 죄를 짓고 자백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영적 고아로 그냥 방치하여 두십니다. 그렇게 되면 망하고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사랑으로 권면을 하고 책망을 하여 받아드렸을 때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요 약


본과의 소제목들을 복습하고 그것들을 개요로 삼아 전체 내용을 요약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지상의 삶이 영적 전쟁터에 있는 삶입니다. 당신의 敵인 사단은 교묘한 술책과 전법으로 당신을 패배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말씀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며 옳은 것처럼 과장하고 당신이 어려운 곤경에 처하도록 늘 미혹을 하면서 닥아 옵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죄의 수준을 높게 하여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가져야 하고 사단의 전략을 알고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 믿음에서 매일매일 무장하고 담대하고 적극적인 수레바퀴의 기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그리고 혹 범죄 했을 때 자백함으로 다시 회복했을 때 우리는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죄의 수준을 높게 잡아라, 는 말은 “하라고 하는 것은 하고 하지 마라는 것은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라고 한 것을 하고,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죄의 수준을 높게 가지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라고 하는 것, 하지 않고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전도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이런 것을 순종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차원까지 못 미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그 차원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수준을 높게 잡을 때 죄에서 승리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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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이 시대의 염세주의와 우울과 좌절의 바다 한가운데, 소망의 등대가 단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오리라’(요한복음 14:3)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입니다.”  -빌리 그래함-


초대 교회 때로부터 지금가지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되어 왔습니다. 모든 세대가 “재림은 곧 있을 것인가?”하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는 신약 성경의 모든 기자들이 20권의 서로 다른 책 가운데 300번 이상을 언급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


성경의 제일 마지막에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절대 소망은 아멘 마라나타 이어야 합니다. 세상은 우울과 절망에 빠져 삽니다. 우리는 활력과 참된 동기가 주님의 재림이 되어서 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요한복음 14:2~3절을 읽으십시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그 약속의 세 부분을 기록하십시오.)


이것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확실한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약속하셨습니다. 자기 제자들에게 재림을 약속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안정된 삶을 이 땅에서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제자들은 높은 자리에서 정착을 하여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변화 산에서 신비의 체험을 하면서 무심코 한 말을 보면 “초막 셋을 짓고”라는 말을 깊이 분석하여 보면 그의 잠재의식 속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의 환상 사건에 파장의 집에서 기도 시간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고 한 그릇이 내려오는데 큰 보자가 같은데 땅에 각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나는 새들이 있는데 베드로야 잡아먹으라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서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했다고 하셨지만 베드로는 세 번이나 거절했습니다(사도행전 10:1~16). 이것은 베드로의 잠재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땅에 것을 약속하지 않고 하늘에 것을 약속했습니다.


세 가지 부분을 한번 묵상을 하여 보겠습니다.


첫째, 내가 처소를 예비하러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처소”는 “맨션”, “천국”은 “나라”, “천당”은 “집(개인의 집이 있다)”, “낙원(파라다이스)”은 “눈물이 없고 아픔도 없고 슬픔도 없는 곳” 입니다. 이것은 모두 한 곳입니다.


둘째, 내가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나 있는 곳에 너를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말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평범한 말씀입니다. 계시록을 묵상하면 가운데 원을 그리고 4개를 더 그려야 합니다. 가운데 하나님의 보좌이고 주변은 네 생물, 24장로(상도들이 들어 갈 곳입니다)들입니다. 영계는 피조 만물입니다.


처소를 예비한다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는 말입니다. 성도의 처소는 방언으로도 셀 수 없다고 했습니다. 현대 건설이 집을 짓는 것은 비교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천지 창조는 말씀으로 하셨지만 처소는 주님이 시간이 걸려서 짓고 계십니다. 내 신앙의 공력이 다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집은 신분을 나타냅니다. 청와대에는 대통령이 있습니다. 즉 초가집, 판자 집은 그 사람의 신분입니다. 처소에 들어갈 사람을 준비하십니다. 신랑이 신부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 집입니다. 결혼할 신랑이 코오롱 천막을 준비하여 천막을 쳐 놓고 결혼하자고 하면 어느 처녀가 시집을 오겠습니까. 주님은 신부의 집을 최고로 단장하고 보석으로 꾸미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해서 집을 짓고 계십니다. 그 집을 소망하고 위엣 것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두 천사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재림을 어떻게 묘사했습니까? (사도행전 1:9~11)


예수님이 승천 하실 때 천사들이 약속을 하였습니다. 11절에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우리 마음속에 인격적으로 모신 것과 혹은 영으로 오셨습니다.


만물 속에 오셨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본 그대로 오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당시 오백 명의 성도들이 본 그대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도 창으로 찌른 자도 본다고 하였습니다.


3. 다음 구절들에서 예수님은 그의 재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 마태복음 16장 27절


천사들과 함께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혼자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문선명은 혼자 왔습니다. 자신이 재림 주라고 합니다. 이것은 거짓 사기꾼입니다. 주님은 혼자 오시지 않고 천사들과 나팔을 불고 같이 오십니다. 수호천사들도 같이 와서 부활의 성도들을 수호하고 호위하여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하늘로부터 옵니다. 초림처럼 오시지 않고 하늘에서부터 오십니다. 하늘로 오지 않고 사람에게로부터 와서 슬그머니 나타나서 내가 재림 주라고 하는 것은 사기꾼입니다. 즉 미혹의 영에 조정을 받은 자입니다.


(2) 마태복음 24장 27절


분명하게 모두 알 수 있게 보이게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번개는 순간적이지만 확실하고 분명하게 번쩍입니다. 번개는 전체적으로 천둥을 통해 소리를 냅니다. 주님은 모두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오십니다. 동과서로 끝에서 끝으로 오십니다. 전체적으로 임합니다.


(3) 마가복음 13장 26~27절


큰 권능으로 오십니다. 누가 보더라도 실감을 할 수 있도록 오십니다.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이 말은 손오공식이 아닙니다. 실제로 오십니다. 구름은 실제적입니다. 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오십니다. 구름은 지구 대기권에만 있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게 오십니다. 구름은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전 지구에 사는 사람은 동시에 보게 됩니다. 태양은 지구 반대쪽에 있으므로 보는 시간이 차이가 있지만 주님의 재림은 모두가 동시에 보시는 데서 오십니다.


(4) 누가복음 12장 40절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십니다. 이 말은 몇 년 월 일 시간 초를 정해 놓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생각지 않은 때 오십니다. 더 예비하도록 하여 주십니다. 초대교회는 그 당시에 올 것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항상 준비하라는 개념입니다. “재림은 항상 깨어 있으라.”는 말은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만약에 정해 놓으면 그전까지 자기 정욕대로 살다가 몇 달을 두고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식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인격이 아닙니다. 신앙은 인격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역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신랑이 온 후 즉 나팔 분후에 기름을 준비하여 왔지만 주님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빤짝 믿음은 주님께 통하지 않습니다. 천사가 재림의 나팔을 불면 끝입니다. 영원히 기회는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4.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그의 첫 번째 서신서 각 장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1) 데살로니가전서 1장 9~10절


하늘로부터 강림하십니다. 우리들의 태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를 했습니다. 신랑을 예비하는 신부처럼 단장을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2)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


주님은 강림하십니다. 우리들의 태도는 1절에 “준비하고 기다려라”고 하였습니다. 2절에서는 “면류관을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면류관은 신앙의 결과로 주는 가장 값진 것입니다. 이것은 승리자에게만 주십니다. 천국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에 던져 드릴 면류관이 없는 자입니다. 


(3) 데살로니가전서 3장 12~13절


먼저 간 성도들과 함께 강림하십니다. 천군 천사만 오는 것이 아니라 앞서 간 성도들과 같이 오십니다. 우리들의 태도는 나를 거룩하게 하도록 유지를 해야 합니다. 거룩한 삶으로 단장을 해야 합니다.


(4)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8절


호령과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호령이 있습니다. 호령은 군대 용어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천군 천사와 성도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때 호령을 합니다. 천군 천사들의 나팔 소리로 모두 듣게 됩니다. 그 후 천사와 성도가 함께 강림합니다. 하나님의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나팔 소리가 들립니다. 아맹어사 출도처럼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모든 자들이 보게 됩니다.


(5) 데살로니가전서 5장 2~6절


도적 같이 오신다는 말은 “평안하다”, “안일주의”에 빠졌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없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적은 게으르고 안일주의입니다. 여기에 걸려들면 죄를 짓게 됩니다. 다윗이 안일주의에 빠졌을 때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재림의 약속을 기다리는 태도는 그 재림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성경에 끝에는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고 그 날을 사모하며 끝이 났습니다. 우리는 빛의 아들이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을 확실히 압니다. 신앙에 깨어 있는 자는 분명히 알게 하여 주십니다.


재림에 선행되는 조건들


5. 마태복음 24장  25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24장을 보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1) 그가 다시 오시기 전에 이 지구상에는 어떤 사건들이 발생할 것입니까? (6~7절)


주님의 재림의 징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벼락이 치면 비가 오는 징조입니다. 먹구름이 끼여도 비가 오는 징조입니다 .안개가 끼면 날이 맑다는 징조입니다. 재림의 징조는 난리, 전쟁, 기근, 지진입니다. 난리는 국가마다 빈번이 쿠데타가 도처에 일어납니다. 우리나라도 난리에 시달렸습니다. 전쟁은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나라도 일천만의 이산가족이 아픔의 후유증에 있습니다. 기근은 지구 처처에 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진은 세계 모두가 지진 권 안에 들어 가 있습니다. 옛날에 비해 지진의 회수가 자주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본 고베의 지진, 이것은 지각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땅을 믿고 삽니다. 기독교도 예수 빼버리면 유물론주의입니다. 공산주의처럼 물질주의와 땅을 믿고 있는 지각을 하나님이 흔들어 버립니다. 


(2) 악이 널리 퍼짐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게 될 것입니까? (12~14절)


악이 널리 퍼집니다. 그리고 불법이 성행합니다. 여기에 사랑이 식어갑니다. 사랑은 복음의 핵입니다. 이것은 불법이 성행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입니다. 교회가 서로 경쟁하는 시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식어 가고 있습니다. 이때에는 첫째, 끝까지 견디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식어짐으로 서로 정죄하는 눈으로 정죄하고 판단을 합니다. 불법과 정죄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사랑이 식어 갑니다. 둘째, 그럴수록 복음을 열심히 전파하여야 승리합니다. 


(3)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그리스도께서 지금 어떤 도시에 오셔서 위대한 기적을 행하고 계신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해야만 합니까? (23~26절)


사방에 재림주가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13장 6절에 바예수가 나옵니다. 바울이 그 바예수를 쳐버립니다. 마지막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칩니다. 기적과 능력을 행합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홀딱 빠져 버립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인들은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면 참 목자로 압니다. 여기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여기에 미혹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보고 내가 순종생활하면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가짜는 진짜를 갖다 놓으면 식별이 되어 집니다. 진리로 분별해야 합니다.


(4) 하늘에는 어떤 징조가 나타날 것입니까? (29절)


우주에서 징조가 나타납니다. 해와 달이 어두워집니다. 해와 달은 인간의 삶에 근원적인 것인데 이 질서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두워졌습니다. 그때도 어둡게 만드십니다. 그것은 주님이 영광의 빛의 본체시기 때문에 해와 달이 필요치 않습니다. 본체가 올 때는 본체가 오기 전에 있었던 것들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지각의 변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5) 누가 예수님의 정확한 재림 시기를 압니까? (36절)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 주님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날은 정확히 알 수도 없습니다. 즉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그 징조를 보아서 주님이 오실 때가 다 되었구나하고 예측은 할 수 있으나 정확한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알려고 연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교만입니다. 우리들의 태도는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에서 행진 할 때 구름 기둥이 움직이면 가고 멈추면 정지하였듯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 주시는데 까지만 가면 됩니다. 보여 주시지 않는 범위까지 알려고 하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없습니다.


(6)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 것입니까? (37~39절을 창세기 6:5, 11~13절과 비교하십시오.)


노아의 때와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향락을 즐기고 살아 갈 때 즉 사람들이 안일에 빠져 있을 때 주님이 오십니다. 신령하고 영적인 것과 의에 대하여 하늘의 것과 영원한 것에 희박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은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림자보다는 본체가 더욱 중요합니다. 하늘의 본체입니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정착하는 곳이 없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여기에 대해 묵상하여 보십시오. 오늘 성도의 신앙들은 이 땅에 중점을 두고 삽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사람들은 물질적이고 세속적이고 자본주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 주님이 오십니다. 자본주의에 영이 없으면 다분히 물질입니다. 유물론주의입니다. 우리 신앙은 영혼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는데 집중하고 향락에 집중할 때 주님은 오십니다. 오늘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야 할 때입니다.


6.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디모데전서 4장 1~2절


양심에 화인을 맞아(화인은 불에 태워지는 것) 외식하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시편 55편 23절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생의 절반밖에 못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의 가르침에 빠져 진실하게 살지를 못합니다.


(2) 디모데후서 3장 1~5절


사람들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긍하며 교만하게 삽니다. 훼방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치 아니하고 거룩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않고 참소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을 하고 팔며 조급하고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보다 더하고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다. 오늘의 모든 문화면들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것들로부터 돌아서야 합니다. 말세에 성도는 살기 위해서는 이런 자들의 삶에 반대되는 삶을 살 때 내 영혼이 삽니다. 여기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세상에 섞여 외식 자가 됩니다. 즉 세상과 타협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외식 자를 제일 싫어하십니다.


7. 말세에 어떤 사상이 널리 퍼지게 될 것입니까?


(1) 베드로후서 3장 3~4절


거짓 사상이 유행합니다. 그래서 재림 사상을 희석시키고 부인하게 하고 자기 정욕대로 행하게 하여 살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왜 말세에 주님의 부활을 부인하겠습니까? 부인을 해야 그 순간까지 편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만약 예수님의 재림을 안다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삽니다. 이것이 불신인줄을 알면서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사울 왕과 같습니다. 극도의 불신은 극도의 신앙으로 가장합니다. 사울이 그렇게 했습니다. 특히 성경공부에서는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정직하고 성실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정직한 마음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2)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


안일에 빠져 있을 때 주님이 오십니다. 오늘의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삼대 특색이 여러 면에 지저분하고 어려움이 많고 돈이 만능입니다. 늘 놀고먹고 사는데 마음을 둡니다.

 

이러한 현상들 가운데 당신이 오늘날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설명 하여 보십시오.


이것이 오늘 시대의 사조입니다. 문학, 예술 모두 음란한 시대 패역한 세대 이것이 시대의 조류입니다. 거대한 물줄기의 흐름이고 실존주의입니다.


실존주의 사상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나” 뿐입니다. 내가 유일한 존재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불확실한 것을 믿고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따르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내가 중요하게 느끼고 원하는 그것이 유일한 가치로, 진리로 생각합니다.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상대적인 것, 내가 생각하는 그것을 진리로 봅니다. 절대적인 진리를 거부합니다. 헤르만의 저서에 보면 한 소녀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왜 죽였냐하니까? 죽이고 싶어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입니다.


계약 결혼은 즐기고 자기 편리를 위해서 하는 자기중심적입니다. 절대적 권위를 파괴시키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부모의 권위, 국가의 권위, 교회의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도 파괴시킵니다. 결국 실존주의는 자기 경험주의로 흘러갑니다. 내가 경험한 것만 실제라고 합니다. 여기에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 금욕주의입니다. 여기에는 자기 의를 내세우며 자기 의를 주장합니다. 이념들이 사단의 사조입니다.


여기에 반대는 신비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보다 감정을 앞세우고 느낌을 증거로 삼고 확신하고 믿습니다. 이렇게 믿는 것이 신비주의입니다. 이런 것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즉 주의입니다. 교회 안에 민주주의는 즉 다수주의가 들어 와있습니다. 이스라엘 광야에서 열두 정탐꾼의 사건에 민주주의가 열지파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않고 금지했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이 신본주의로 산 두 사람만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다수주의인 민주주의가 통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민주주의는 교회의 권위를 파괴합니다. 여기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많습니다. 여기에는 사단의 사조임을 알아야 합니다. 권위를 파괴한다는 말은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세의 권위에 아론과 미리암이 도전을 했습니다. 모세의 권위는 하나님이 부여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가장 무서운 죄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루시퍼 찬사장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했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 이런 일들이 무섭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 일에 충성을 하면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을 하고 전도를 하면서 즉 모든 면에 열심히 믿음으로 하면서 주장하면 혹 은혜스러울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사단의 사조를 받고 권위를 파괴하려고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말세의 징조입니다. 권위가 무너지면 질서가 무너집니다. 지금 시대가 바로 그 현실입니다. 국가, 가정, 교회 질서가 무너지고 개인주의 집단 이기주의 다수주의로 혼탁한 세대입니다. 권위가 없고 질서가 없는 현실에 그리스도인들은 정신을 차려야 할 시기입니다. 주의 이념은 사단의 무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현상들 가운데 당신이 오늘날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설명해 보십시오.


                                                             

                                                             

                                                              

  

재림 때 일어날 일들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일어날 사건들의 순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습니다. 이 공부를 통해서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그 주요 사건들의 내용이며, 그 순서를 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8.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을 상고하십시오.


(1)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일어날 사건들을 열거하십시오. (16~17절)


첫째, 하늘로부터 강림하십니다. 전 인류가 볼 수 있게 강림하십니다.

 

둘째, 구름은 모두가 볼 수 있습니다. 구름을 타고 하나님의 영광중에 오십니다. 주님의 부활 사건과 같이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실제적으로 모두가 다 보이게 오십니다. 


셋째, 죽은 자들의 무덤이 열리고 부활 합니다. 그 순서는 먼저 죽은 자들의 부활입니다.


넷째, 육체적인 부활(신령한 몸)로 휴거, 공중으로 들림을 받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공중 재림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2) 당신은 얼마 동안이나 그와 함께 있게 될 것입니까? (17절)


항상 영원히 이별이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이것이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만약에 천국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하여도 그곳은 지옥인 것입니다. 만약에 지옥에 주님이 계시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주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주님이 내 속에 임재하시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죄에 대하여 철저히 회개하면 성령 충만의 선물을 주십니다. 죄가 있으면 성령 충만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은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해야 합니다. 단순해야 성령 충만과 은사를 선물로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복잡하면 방언은사도 받지를 못합니다. 단순하고 순수한 사람은 은사를 빨리 받습니다.


(3) 이러한 진리를 알고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18절)


서로 위로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위로가 주님의 재림입니다. 주님이 재림주로 오시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 위로입니다. 계시록 마지막 부분도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입니다. 이것이 참된 소망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믿는 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 고린도전서 15장 22~23절


그리스도 안에 모든 사람이(구원을 받은 자) 새 삶을 얻습니다. 그때 가서 새로운 삶과 영도, 육도, 주님처럼 신령한 몸으로 되는 시대가 옵니다.


(2) 빌립보서 3장 20~21절


그리스도를 사모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3) 골로새서 3장 4절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주의 재림을 소망해야 합니다.


(4) 요한일서 3장 2절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됩니다. 즉 우리의 상태가 변화가 됩니다. 썩을 것이 썩지 않는 몸으로 변화 되어 주님의 부활의 몸처럼 됩니다.


10. 고린도전서 15:42~44절에서 육의 몸과 신령한 몸을 서로 비교해 보십시오.


몸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변화되는 몸을 가지고 변화가 됩니다.


육의 몸

신령한 몸

 

썩을 몸, 욕된 것, 약한 것, 육의 몸입니다.

이사야는 우리 몸을 질그릇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제한된 몸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것이 몸입니다.

 

썩지 아니할 것, 전천후 강한 몸입니다. 영광스러운 것, 신령한 몸입니다.

주님이 재림 때에 한순간에 변화되어 버립니다. 이 사실을 한번 묵상해 보십시오. 영과 육을 변화시키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11. 데살로니가후서 1:6~10절을 읽으십시오.


(1) 그리스도의 재림이 불신자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믿지 않는 자들은 정 반대로 환난과 멸망의 때입니다. 저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백 보좌 앞에 설 때가 주님의 재림의 때입니다. 마가복음 8장 26~33절에 주님께서 군대 귀신을 쫓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군대 귀신이 주님께 “나를 괴롭게 마소서 내 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말라고 주님께 구했습니다. 사단도 자기의 때를 알고 있습니다. 사단도 천하를 두고 싸웁니다. 교회는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2) 믿는 자들에게는?


그 반대로 안식의 때입니다.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때입니다. 계시록에 그때 면류관을 벗어 던져 드리며 하나님 어린양에게 찬양을 드리며 영광을 돌려 드리므로 영화롭게 하여드립니다. 천국에서 부끄러운 구원은 던져드릴 면류관이 없는 자입니다. 면류관은 나의 상급입니다. 우리는 면류관 때문에 충성하고 헌신을 해야 합니다.


12.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믿는 자들에게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입니까?


(1) 고린도후서 5장 10절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선악 간에 그 행위대로”라는 말은 상급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심판은 두 가지가 있는데 백 보좌 심판과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를 위해서 일하고 헌신한 그대로 즉 믿음으로 심은 그대로 거두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입니다. 심판대 앞에서 정확하게 결론을 지어 줍니다. 반대로 믿지 않는 자는 죄를 지은 그대로 백 보좌 심판을 받게 됩니다. 지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2) 고린도전서 4장 5절


숨은 일들, 땅에서 나타내지 않고 한 것들, 즉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 것들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모두 들어나서 칭찬을 받게 됩니다. 말라기서에는 내 마음의 동기까지도 선한 말한 것 까지도 들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며 보고 계심을 믿고 숨은 봉사와 헌신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의미가 크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땅에서 드러나 칭찬 받으면 그것이 이미 받은 상급이 됩니다. 이 땅에 영광과 하늘에 영광은 족히 비교 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영광이 영원하고 큽니다.


믿는 자의 행위에 대한 심판은 영원한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 심판에 따라 봉사에 대한 상을 받거나 또는 상을 잃게 됩니다. 불신자의 심판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0:12~15절을 읽어 보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


“주님이 나타나시고 우리가 그에게로 끌어올려 가면 우리는 부활한 성도들이 놀라운 교제를 체험하게 됩니다. 모든 거리감이 사라지고, 어두운 그림자는 없어지며, 완성된 교제 속에 무한한 기쁨을 누리게 되며 주님과 영원한 삶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윌리엄 피치-


13.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일이 있게 됩니까? (요한계시록 21:4)


그날은 나에게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주님이 나의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 이 말은 내가 세상에 살아오면서 흘렸던 모든 눈물들을 위로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습니다. 다시는 사망이나 곡하는 일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약해서 어쩔 수 없이 당했던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이 됩니다. 그때 구원을 받은 형제자매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그래서 천국이 좋은 곳입니다. 이 땅에는 육의 사람들과 섞여 살기 때문에 부딪치고 아픔이 있지만은 천국에는 세상인과 섞여 사는 것이 없습니다. 모두 구원을 받은 형제자매들이 영적 한 가족으로 즉 우주적인 대 가족으로 삽니다. 육신의 형제 중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원히 천국과 지옥으로 헤어집니다.


•누가 거기에 있게 됩니까? (요한계시록 5:9)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사람들이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 초월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우주 교회가 천국에서 모입니다.


14.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당신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1) 디모데후서 4장 8절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살아야 합니다. 실제로 사모하지 않고 사는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사모하지 않고 살면 세상에 집착하게 됩니다. 사도 요한처럼 주님이 곧 오실 날을 사모하면서 달려가야 합니다. 세속적인 자들은 주님의 재림이 더디 오기를 바랍니다.


(2) 야고보서 5장 7~8절


인내를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날까지는 어렵고 괴로운 일이 많습니다. 인내하면서 이날을 소망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씨를 뿌리고 기다리면 이른 비도 오고 복된 소낙비도, 장마 비도 오고 늦은 비도 옵니다. 인내하며 열심히 일할 때 가을에 풍성한 수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에 마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주님이 더디 오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약하여 집니다.


(3) 베드로전서 1장 13절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활동을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 당시 옷들은 허리를 동여야 활동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맡겨 주신 것, 열심히 하라는 말입니다. 즉 신앙에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근신하는 상태는 나태하고 게으르고 세상에 취해 있는 상태가 되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근신 상태에 있으라는 말입니다.


15. 베드로후서 3:10~12절과 요한일서 3:2~3절을 비교해 보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할 것인지 간단하게 기록해 보십시오.


그날에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한 행실로 기다려야 합니다. 약혼을 한 처녀가 모든 것 다 정리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실제적인 삶과 몸으로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이런 준비가 없는 삶은 재림의 삶이 아니고 주님과의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삶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적 신부입니다. 신부의 가장 중요한 것은 신랑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의 자세입니다. 오늘 시대는 그런 자들을 찾기 힘듭니다.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합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단장을 하고 삶과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깨끗한지 아니면 내 사역에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내 인격의 삶의 열매와 사역의 열매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즉 주님 앞에 설 때 빈손으로 가면 안 됩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사역은 전도하고 양육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이 두 가지 삶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나의 인격에 열매와 사역의 열매 두 가지는 필히 좋은 열매로 맺어야 합니다.


16. 문제 14번과 15번에서 나온 말씀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아래 질문에 따라 개인적인 적용을 하십시오.


(1) 그 명령은 무엇입니까?


재림을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2) 그것은 당신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깨어 근신하고 삶과 사역에 열매를 맺기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3) 그 명령을 따라 당신은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하겠습니까?


자신에게 근신하고 타인에게는 전도하고 양육해야 합니다. 


(4) 그것을 어떻게 점검해 보겠습니까?


시간 사용, 전도와 양육에 목적을 두고 큐티를 강화해야 합니다.


17. 마태복음 24:14절을 베드로후서 3:9절과 비교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의 재림을 지체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 전파에 힘을 써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고 느끼고 확신을 했으면 사모해야 합니다. 내 현재 사역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재림의 때가 되어 여러 징조로 보여 주는데 왜 아직도 지체하고 계시는가? 그 이유는 우리에게 복음 전파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기회는 없어집니다. 전도는 재림의 동기에서 한 사람이라도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지체하는 기간이 전도하라는 기회로 주신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마가복음 13:33~37절을 읽으십시오.

 

(1) 예수님께서 훈계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2) 이 훈계를 묵상하고 그것을 당신 자신의 삶에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4~5가지 기록해 보십시오.

 


묵상에 대한 설명


(1) 예수님께서 훈계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깨어 있으라는 교훈하고 훈계하십니다. 어느 시대에나 주님은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 면에 적용을 해 보면 첫째, 나를 깨끗이 하고 성결한 삶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이것은 죄를 짓지 말아야함을 말해 줍니다. 내 속을 샅샅이 살펴서 죄를 자백하고 죄를 이겨야 합니다. 생활면에 말도 조심을 하고 행동도 올바르게 하면서 늘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모든 속에서 힘써 노력하되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둘째, 열매를 맺는 충성된 삶을 살기 위해 내 은사를 발견하여 사용하여 열매를 맺기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일꾼은 반드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초신 자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제자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인격의 열매와 사역의 열매 이 두 가지가 있는지 체킹해 보십시오.


(2) 이 훈계를 묵상하고 그것을 당신 자신의 삶에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4~5가지 기록해 보십시오.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써보십시오. 그리고 행하십시오.

                                                            

                                                              

                                                              

                                                            

                                                             

 

18. 만약 당신이 지금 주님께 순종하며 주님과 교제하는 생활을 한다면, 그가 다시 오실 때 당신이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두 가지 면에 열매가 없으면 부끄럽습니다. 내가 인격의 사역의 열매가 있으면 오히려 주님의 재림이 기다려집니다.


내가 담대한 것에 대하여 그리고 부끄러운 것에 대하여 한번 점검하여 써보십시오. 부끄러운 것으로 예를 들어보면 주일에 육신의 일을 하는 것, 구역 예배 빠지는 것, 새벽 기도하지 않는 것, 전도하지 않는 것, 성령 충만하지 못한 것 등 찾으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은 담대하였습니다. 지금 곧 주님이 오셔도 담대한 삶이었습니다. 구약에 솔로몬과 바울은 대조를 이루는 반대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달려갈 길 다 갔다고 했고 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면류관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전도서에 자신의 고백에 헛되고 헛되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태도는 세월을 아끼고 힘을 써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세월을 헛되이 허비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요 약


본과의 소제목들을 복습하고 그것들을 개요로 삼아 전체 내용을 요약하십시오.


당신의 영원한 안식처를 위해 예비하러 가신 주님은 다시 오시겠다는 많은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소망을 할 수 있는 확실한 약속에 근거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신이 주님이 오시는 날자는 모르나 여러 가지 시대적 징조는 볼 수 있습니다. 천제적인 변동이 있으면 땅에 기근과 지진 전쟁과 난리가 나며 사람들에게 많은 죄악성이 나타납니다. 오늘 시대에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점점 더 심하여져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재림을 가지고 서로 위로 하고 격려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그 날에 일어날 일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자신을 더욱 깨끗하게 하며 허리를 동이면서 전도에 힘을 써야하고 언제 주님이 오시더라도 담대하게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항상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재림의 주님과 바른 삶을 살고 있다는 관계를 증거 하여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라감에 있어서……,


제6권 제자로서의 성장은 본 시리즈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의 다음 책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그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제자는 “따르는 자” 이상입니다. 제자란 전심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사람입니다. 제6권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의 삶 가운데 있어야 할 매우 중요한 요소 몇 가지를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란 무엇인가?

•책임을 잘 감당하는 청지기

•다른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도와줌

•양 육

•세계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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