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토

우림과둠밈 2008. 4. 6. 17:22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Two become one


CONTENTS

본서에서 최대의 효과를 얻는 방법


제 1 과  결혼 생활의 시작

제 2 과  사랑이란 무엇인가?

제 3 과  자신과 배우자에 대한 용납

제 4 과  의사소통

제 5 과  배려 - 성숙한 결혼 생활

제 6 과  결혼 생활에 있어서의 성(性)

제 7 과  상호 보완적 존재로서의 남성과 여성

제 8 과  부부 교제의 원리

제 9 과  바람직한 부모상

제 10 과  자녀의 교육

제 11 과  가정의 분위기

제 12 과  돈 - 친구인가, 적인가?

제 13 과  기타 중요한 영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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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에서 최대의 효과를 얻는 방법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잠언 2:6>


이 공부는 결혼과 가정생활에 관한 질문의 답을 성경에서 찾도록 돕기 위해서 마련된 것입니다. 이 책은 다음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엮었습니다.


1. 개인.


남편 또는 아내의 측면에서 결혼생활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 부부.


함께 공부하면서 발견한 사실들을 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각자 시간적인 제한 때문에 미리 개인적으로 공부를 한 후 함께 시간을 내어 공부한 과의 답과 깨달은 것 및 적용한 바를 나누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입니다.


3. 소그룹.


몇몇 부부가 미리 공과를 준비한 다음 모여서 그것을 토의합니다. 이러한 소그룹 내에서는 각 부부들이 그들의 부부 관계를 공고히 하려고 노력할 때 서로 배울 수 있고,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하여 본서로부터 가장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4. 주일성경공부반.


13주를 한 단위로 하는 주일 성경공부 반에서 매주 한 과씩을 과제로 내줌으로써 그 기간 내에 마칠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 반은 교사가 인도할 수도 있고, 소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의 인도자가 인도하도록 할 수 도 있습니다.


각 사람은 본 교재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외에 성경과 필기도구만 있으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때로 사전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각 질문마다 성경 구절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 성경 구절을 읽어 본 후 당신 자신의 말로 답을 쓰십시오.


각 과를 공부해 나갈 때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반드시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정기적으로 공부할 시간을 따로 마련하십시오. 한 시간 정도면 한 과를 마칠 수 있습니다. 다른 과보다 다소 긴 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꺼번에 다 끝마치려고 하기보다는 매일 몇 문제씩 해나가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당신이 공부를 해나갈 때 명심해야 할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이것에 대하여 나는 무엇을 것인가?


만약 당신이 성경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말씀에 대한 지식이 별 가치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당신의 삶과 결혼 생활에는 성장과 발전이 있게 될 것입니다. 각 과에 주어진 질문들은 당신이 공부한 것을 생활에 적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공부를 계속해 나가면서 때때로 이미 적용했던 것들을 점검해 보고 변화가 필요했던 영역에서 얼마나 진전이 있게 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도자를 위한 제언


각 과는 인도자가 그룹 토의를 쉽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주의 깊게 짜여져 있습니다. 인도자는 그룹의 멤버들로 하여금 각 과에서 배우고 이해한 것들을 나누고 토의하며 그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인도자는 한 개인이나 한 부부가 대화를 독점하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모두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어서 멤버들 상호간에 활발한 토의와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각 사람에게 성경 공부 모임에 오기 전까지 공과를 미리 다 준비해 오게 하십시오. 개인적인 의견이나 생각을 묻는 질문 외에는 주어진 성경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가 정답입니다. 따라서 인도자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해서 모든 답을 제시해야 합니다.


다른 책들을 통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둘 이 한 몸이 되는” 최상의 비결은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 교훈들을 각자의 삶에 적용하는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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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결혼생활의 시작


“나는 이제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식장에서 성혼이 선포되고 결혼식이 끝나는 순간부터 결혼생활은 시작됩니다.


혼인 서약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는 남편과 아내로서 “이제 둘이 아닌 한 몸으로서” 상호의무를 다할 것과 평생을 함께 살아 갈 것을 다짐합니다.


두 사람 다 모든 부부들이 원하듯이 행복하고도 만족스런 결혼 생활을 영위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부부라는 이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얻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결혼하기를 원했던 이유들에 의해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혼생활은 둘이 하나가 되는 삶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했는지, 즉 결혼의 동기나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혼동을 겪게 됩니다. 이미 결혼을 했던 사람이라도 내가 무엇 때문에 결혼을 하였는가? 또 모든 사람이 무엇 때문에 결혼을 하는가? 라는 동기나 목적을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마음의 자세입니다.


동 기


남녀가 다 결혼을 하게 된 공통된 이유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요도는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1. 남자나 여자의 경우에 있어서 당신이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들을 아래에 써보십시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결혼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여자가 결혼하는 이유 


• 안정을 찾기 위해서 한다.

• 사회적인 관습 때문에 한다.

• 가족들이 요구하니까 한다.

• 나이가 많으니까 한다.

•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한다.

• 호기심으로 한다(다른 사람과 삶을 경험해보고 싶은 호기심으로 한다) • 한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한다.

• 행복한 삶을 위해서 결혼한다.

•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고 믿음으로 한다.


결혼의 동기들로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를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결혼의 이유가 옳은지 생각해 봅시다.


•안정을 위해서 결혼한다. → 그릇된 동기입니다.


개인차이가 있고 사회적인 구조의 차이에서 있을 수 있습니다. 생활의 안정에 대한 무게를 크게 둠으로 안정을 위해 결혼한다는 것은 잘못된 동기입니다.


• 사회적인 관습 때문에 한다. → 결혼의 동기가 못됩니다.


• 가족들이 요구하니까 한다. → 좋은 동기가 아닙니다.


• 나이가 많으니까 한다. → 좋은 동기가 아닙니다.


•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을 한다. → 좋은 동기가 못됩니다.


이것은 의지할 상대방의 사람을 찾는 것이므로 좋은 동기가 못됩니다.


• 다른 사람하고 삶을 경험해보고 싶은 호기심으로 한다. → 좋은 동기가 못됩니다.


• 한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했다. → 올바른 동기입니다.


•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고 믿음을 가지고 결혼한다. → 올바른 동기입니다.


• 행복한 삶을 위해서 결혼한다. → 올바른 동기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는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른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남자가 결혼하는 이유


• 부모를 편이 모시기 위해 아내를 필요했다. →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동기가 아닙니다.


• 나는 오대독자니까 자식을 낳으려고 했다. → 좋은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 나는 성적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했다. → 좋은 동기는 될 수 없습니다.


결혼의 목적이 성적추구가 되기 때문에 좋지 못합니다.


결혼의 동기는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결혼생활에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2~3번은 적용면인데, 2번은 ‘나 자신은 결혼 할 때 어떤 동기가 중요 했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며, 3번은 ‘배우자는 어떤 동기에서 결혼을 했을까?’를 생각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시간입니다. 동기와 목적이 옳고 그릇되었든지 서로 대화하므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당신이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 위의 여러 이유들 중에서 당신에게 특별히 중요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남자의 경우 나이가 많아 했다는 것은 좋은 때가 아닙니다. 올바른 때는 아내의 머리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가 성격적으로 올바른 때입니다. 머리 역할이라는 것은 감정적 사회적 경제적인 모든 면에서 아내를 책임질 수 있고 아내를 거느릴 수 있을 때가 올바른 때입니다. 남편은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아내에게 충족을 시켜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면이 없이 나이가 많아 결혼을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머리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여자의 경우는 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정서적으로 건강적으로 지적으로 여자는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자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가장 올바른 때가 언제일까요? 한 사람을 전도해서 양육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양육해본 경험이 있어야 육적으로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기초적인 경험이나 지식이 있어야 결혼할 때가 된 사람입니다. 아이 양육에 대해서 전혀 지식이 없으면 갈등과 혼동을 겪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보지 않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 오는 현상은 결혼생활 속에서 갈등과 혼동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연애는 필요하고 좋은 것입니다. 결혼생활을 바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기간이 될 수 있습니다. 연애하는 것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혼생활에 유익을 줄 수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만나서 극장에만 간다면 좋은 방법이 되지 못됩니다.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눔으로 상대방을 알아가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연애로 결혼을 하게 되면 빠르게 하나가 되어지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을 하는 것하고 어느 정도 충분히 이해하고 결혼하는 것은 결혼 성숙의 차이가 있습니다. 교제하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성숙한 남녀가 교제하는 것, 즉 건전한 교제는 꼭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결혼의 동기에 대해 생각해 보며 결혼을 하였습니까?


현시대 젊은이들의 교제 방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 당신 배우자의 경우는 위의 이유들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했으리라 생각합니까?


결혼의 동기가 좋았든 좋지 않았든 부부사이에 서로 대화함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동기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까?


성 경


성경은 결혼과 가정생활에 대하여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러한 교훈과 원리들을 따를 때 개인적인 만족을 얻는 것은 물론, 견고하고 행복하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데 필요한 부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다음 성경 구절들에서 결혼에 관한 교훈들을 살펴보십시오. 이 중 몇 가지에 대해서는 뒤에 나오는 과에서 더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4. 창세기 2:18~25절을 읽으십시오. 특별히 18절, 23절, 24절을 깊이 묵상해 보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1)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제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결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혼자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결국 불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는 이유는 혼자 사는 것은 부족함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사람하고 결혼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2) 독처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최초로 “좋지 못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신 후에 여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함께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혼자가 아닌 둘이 되도록 여자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적으로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람이 혼자 산다고 해서 활동을 못하고 일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교제의 대상이 필요하기에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까지 교제 대상이 없으면 고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육체적으로 여자가 없다는 것은 고독한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함께 살을 맞댈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가장 밀접하게 나눌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교제 가운데 살기 원하여 여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흔히 ‘결혼한 독신이다’라는 말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결혼생활 속에 교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시대적 상항으로 맞벌이 부부가 많습니다. 이러한 생활로 인해 남편과 아내는 교제 나눌 시간이 적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나가고 저녁에 들어오면 밥하기 바쁘고 피곤해서 자기 바쁘고 T.V를 보지만 대화는 많지가 않습니다. 또 육체적으로도 교제가 적습니다. 부부는 한 이불 속에서 살을 맞대고 잠자리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육체적인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손이라도 잡고 자야 함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살 맞댐이 없이 그냥 잠자리를 각자 갖는다면 외로움이 찾아오고 유혹이 부부 사이에 틈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공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하는 시간외에는 공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부부가 각방을 쓰고 자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기주의 자기 편할 때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방을 쓰면서 한자리에 살을 맞대고 잠자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침대를 두개 놓아 잠자리를 가지면서 필요할 때만 곁에 오라고 하는 것은 결혼생활이 성숙하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이불속에 부부는 살을 맞대고 자는 것이 부부이며 원만한 결혼 생활입니다.


(3) 당신은 “돕는 배필”이란 말을 어떤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돕는 배필이란 원어는 ו������������ ׃וֹדּ������������������(에제르 네게드)으로 뜻은 “그 사람을 돕는자, 구원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상대방이 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도와주는 것’ ‘상대방이 부족한 것을 내가 채워주는 것’을 말합니다. 아내가 가장 좋은 배필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여러 가지 면에서 영적으로 남편이 하나님 뜻 가운데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감정적으로는 만족하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인격적으로 서로 보완과 성숙을 도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 배필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배필이 되기 위해서는 건전한 싸움도 필요합니다. 부부간의 건전한 싸움은 성경적입니다. 성경적인 배필이 되기 위해서 건전한 싸움은 필요합니다. 부부간의 자라왔던 환경이 다르니까 ‘서로 터치하지 말자’ ‘서로 간섭하지 말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성경적인 부부의 삶이 아닙니다. 그리고 둘이 하나가 되는 삶에서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싸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지만 문제점을 하나님 앞에서 보완해주기 위해 대화형식의 건전한 싸움은 성경적입니다.


예로서, 밖에 나갔다오면 양발을 아무렇게 두는 것, 휴지를 버리는 것 등을 서로 간섭해 줄 때 바르게 되어 있지 않던 습관들이 하나하나 바로 잡아 질 수 있습니다.


잠언 27:17절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철과 철은 부딪칠 때 날카로워 집니다. 부딪치지 않으면 날카롭게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부부간에도 부딪쳐 주는 면이 있어야 녹이 슬지 않습니다. 전혀 무관심 하는 것은 좋은 부부관계가 아닙니다. 부부간에 부딪쳐 줄 때는 지혜롭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에게 데리고 오셨을 때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23절)고 말했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로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실 때 다른 개체를 가지고 만드신 것이 아니고 남자의 몸에서 만드신 것입니다. 따라서 남자는 여자를 ‘내 소유물이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고 여자의 몸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자가 아프면 그 아픔이 자신이 아픔인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나는 남자에게 속한 몸이다’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편을 위해 좋은 배필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서로가 이렇게 인식할 때 하나가 되는 연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여자를 데리고 오셨을 때 아담이 제일 처음에 한 말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나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내 몸의 어떤 구조보다 더 소중하고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뼈 중의 뼈다는 말은 최고의 뼈다는 것이고 가장 소중하고 아까운 뼈와 살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있어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5) 다음 설명은 24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각자가 옳은지 그른지를 표시하십시오.


가. 남자는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남자는 자기 아내에 대해서 독자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기 부모에게 자기 아내에 대해서 책임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친구나 형제에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24절에 “부모를 떠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서는 부모보다는 아내를 더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나. 부부는 일평생 하나가 되어 결혼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하나님은 영원한 연합을 위해서 결혼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혼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혼을 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를 버리는 것이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이혼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의무를 피하는 것밖에 되지 못합니다. 서로 상대방이 죄를 범하고 불의를 범했다 해도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내를 잘못 거느리고 내가 남편에게 배필 노릇을 못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다. 결혼에 있어서 부부 각자는 서로 동등하고 완전한 인격체이다.


부부 각자는 다릅니다. 완전하지 못합니다. 완전하다면 결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부족을 보면 피하려고 책망하려고 하는 것보다 그것을 내가 도와주고 채워주려고 해야 합니다. 피차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정답 : 가 ○,  나 ○,  다 ×


5. 잠언은 생활 전반에 관한 지혜로운 말씀들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1) 잠언 18:22절은 아내를 얻는 자에 대해 무엇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것이 은혜이고 축복인 것처럼 아내를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어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배필이라도, 선물이라도 누구로부터 받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존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받았다면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아내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재물(財物) 같은 것은 부모에게 받을 수 있지만 아내는 부모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귀한 선물인 아내는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2) 잠언 19:14절에서는 또 어떤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조상이나 부모가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말씀에 “슬기로운 아내”라고 했는데 슬기로운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내 아내가 지혜가 없고 슬기가 없다, 라고 생각해 내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슬기라는 것은 결혼 전에 슬기롭게 되어 올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슬기롭게 될 가능성을 가지고 내게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아내가 슬기롭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슬기를 남편이 묻어둘 수 있고 사장 시킬 수가 있습니다. 슬기로운 아내를 원한다면 남편은 슬기를 계발 시켜주어야 합니다.


예로서, 음식을 잘 만들지 못하면 잘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잘 만들지 못한다고 해서 자꾸 핀잔만 주게 되면 겁을 먹어 음식을 잘 만들 수 없게 됩니다. 아내가 음식을 잘 만들 수 있는 소질이 있는데 남편이 음식을 잘 만들지 못하게 사장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자기 아내가 슬기롭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아내에게, 남편에게 하고 있는 자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6.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생식에 대하여 사람이 받은 명령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1:27~28)


결혼은 하나님께서 생식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하기 위해서 생식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결혼은 가장 신성한 선교 사업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낳아 잘 키우면 이것이 바로 선교 사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제자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자녀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 자녀를 통해서 이 땅을, 이 우주를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하나님은 계획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자녀가 앞으로 전도하는 삶을 살도록,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 도와주는 삶을 살도록 키워야 합니다.


키우는 책임만 가능하다면 아이를 많이 낳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복음으로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땅을 정복하는 영적인 제생사업(濟生事業, Life saving business)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7.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 5:21~33절에서는 부부 관계가 그리스도와 그가 구속하신 신부인 교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21절은 당신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결혼은 서로 복종하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피차가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때문에 서로 복종하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참으로 복종한다면 서로 서로에게 복종하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서로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 생활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2) 어떻게 하면 아내가 자기 남편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까? (22, 24절)


아내의 책임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순종만 아니라 복종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원하지 않는 것이라도 복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복종은 좋은 배필의 역할이 됩니다. 남편의 지도력을 돕는 것이 됩니다. 내가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데 남편이 사회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으며 리더십을 행할 수 있겠는가? 특별히 교회 사모님들은 목사님께 순종하고 복종을 해야 합니다. 목사님께 지도력을 발휘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순종하지 않으면 예수님도 나를 지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억지로 하는 독재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순종할 때 내 머리가 되고 내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순종하는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자신의 값을 인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아내는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값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처럼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해야 할 것입니다.


(3) 남편들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도록 어떤 훈계를 주고 있습니까? (25~28절)


아내를 사랑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내를 어떠한 수준으로 사랑해야 되겠습니까?


첫째는,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수준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사랑입니다.


둘째는, 자기 몸을 사랑하듯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가 배고프면 내가 배고픈 것처럼 아내가 아프면 내가 아픈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4) 남편은 아내의 머리로서의 위치를 어떤 식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까


사랑으로 머리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고 해서 폭군처럼 명령하며 공사판의 감독처럼 명령해서는 안 됩니다. 머리는 몸을 보호하려고 지시하는 것이지 해(害)하려고 지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머리역할처럼 남편은 아내를 보호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명령을 하고 다스리되 사랑으로 머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책임을 느끼고 보호해주고 필요한 것을 도와주면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남편의 지도력은 사랑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기 초


가정은 많은 기초 위에 세워집니다. 부부는 모두 올바른 기초들을 튼튼하게 놓는 일에 세심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서적인 가정을 세우는 일은 하나의 예술입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경험은 장차 보다 넓은 세계에서 맞이하게 될 일들을 위해 미리 준비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건전한 기초를 세우는 일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다음의 말들은 올바른 기초의 중요성에 대하여 성경이 이야기하는 바를 결혼생활에 적용하여 풀어서 쓴 것입니다.


8. 마태복음 7:24~27절 - “만약 집(가정-결혼생활)이 인생의 폭풍우에도 견딜 수 있으려면 견고한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당신은 결혼생활의 기초를 견고하게 놓기 위한 필수 조건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가정의 기초를 어디에 두고 세워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기초가 든든하지 않는 가정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적으로 마태복음 27:24절에서 말하는 견고한 기초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가 되어 있으면 어떤 경우에라도 가정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이 기초가 되어 있다면 결국은 무너지게 됩니다.


오늘날 현대의 가정이 무너지는 이유는 자기주장으로 인한 작은 의견차이 때문입니다. 작은 의견차이로 인해 다투다가 해결이 되지 않고 해결 된 것처럼 넘어가게 되면 마음속에는 해결 되어 있지 않으므로 점점 쌓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해어지게 되는 경우까지 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에 기초가 되어 있으면 서로 의견 충돌이 있어도,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기도하면서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서 누구의 의견이 맞는가를 살펴보게 됩니다. 말씀 앞에서 듣고 행하는 믿음이 있으면 결국은 잘못된 의견을 말한 쪽이 굴복하게 됩니다. 이러므로 해결이 되어지게 됩니다.


성경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청사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결혼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며 서로 자기 의무를 감당하고 살아야 된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믿음의 기초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가정은 폭풍우나, 어려움이나, 다툼이 온다 해도 넘어지지 않고 견고한 가정으로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성경 공부를 통해서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고 서로가 순종하므로 견고한 가정을 세워나가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9. 시편 11:3절 -  “훌륭한 결혼생활은 좋은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하는데 이 기초가 무너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혼 생활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첫째는, 자존심입니다. 자존심을 기초로 해서 결혼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내도 자존심을 꺾지 않으려고 하고, 남편도 자존심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이것이 결혼생활을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권리는 같아도 역할은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는 자존심은 버려야 합니다. 내가 역할을 잘 감당하는 면에서 성숙해야 합니다.


둘째는, 한국적인 전통개념입니다. 이 한국적인 전통개념에서는 가정의 개념이 집안에까지 퍼져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문중까지 확대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신은 우리 집안에 들어 왔으면 우리 가문대로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된다. 이런 것들이 많이 억압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머리라고 해서 가정의 기초가 남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남편이 머리이지만 기초는 남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시부모가 아내의 머리가 되기를 요구합니다. 남편은 뒷전에 있고 아내는 시부모의 말을 잘 듣기를 바랍니다. 이 상황에서 아내는 시부모이므로 승복을 할 수 있겠지만 마음으로는 해결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옛날 시대에는 다 했지만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통개념을 가지고 이끌어가려고 하면 현재의 신세대들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원리를 떠나지 않는 한도에서 그 나라 풍습이나 문화에 따라서 사는 것은 오히려 더 바람직하고 결혼생활이 쉽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원리를 떠나서 하게 되면 결국은 문제로 작용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경제, 전통, 학문, 자녀입니다. 이중에서 가정의 기초는 자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의 기초는 부부입니다. 자녀중심의 가정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가정은 자녀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중심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부부간의 대화도 아이중심으로만 합니다. 남편보다 아이가 더 중요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은 부부간의 문제가 되고 자녀의 관계도 문제가 됩니다. 자녀가 자라서 부모를 떠나게 되면 부부에게는 고독과 쓸쓸함이 찾아오게 됩니다. 이것은 교제가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기초는 자녀가 아닌 부부중심으로 되어야 합니다. 부부중심이 될 때 부부관계가 원만하게 되고 자녀관계도 바로 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0~15절은 “만약 우리가 좋은 집을 짓기를 기대한다면 올바른 터를 닦아야 할 뿐만 아니라 좋은 건축 자재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 과에서 훌륭한 기초와 자제로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자세히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적 용


부부 각자가 변화되지 않는 한 결혼생활은 향상될 수 없습니다. 결혼은 단순히 제도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삶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생활에 있어서 행복이란 올바른 사람을 만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되는데 있습니다!


1) 자신의 결혼생활을 평가해 보고 현재 결혼생활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점들을 적어 보십시오.


1)번의 질문에서는 결혼생활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점들을 적어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반대로 이 시간에는 서로에게 변화를 바라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부부간에 아내에게 먼저 이야기 할 기회를 주어 아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변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등으로 말한 다음 그 다음 남편이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 보십시오.


더 견고한 결혼생활이 되기 위해서 서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것을 이 시간에 이야기 해 보십시오.


아내들이 원하는 것 ‘남편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싶고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합니다.’


☞ 이것은 남자와 여자와의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말은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만드셨다 것을 말합니다. 남자는 목적의식으로 살아간다면, 여자는 목적의식 보다는 남편의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이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아내들은 잘못을 했더라도 남편이 그것에 대해 따지고 추궁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잘못을 했더라도 아내는 남편이 그냥 넘어가 주기를 원하며 사랑으로 덮어주고 이해해 주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남편이 반응을 보일 때 아내들은 감동받고 더 변화가 되어 지게 됩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의 잘못에 대해서 따지고 지적하게 되면 잘못을 알고 있는 아내들은 그 잘못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아내의 표현은 남편에 대한 사랑의 불만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남자와 여자의 심리적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결혼생활에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이것을 이해하면은 결혼생활이 쉽게 풀리고 더 빨리 성숙해 지게 됩니다. 자기중심의 생각으로 결혼생활을 이끌어 가려고 하면은 그 결혼생활은 힘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例 : (어느 남편의 고백) 결혼하여 시간이 지나보니 아내의 행동들이 나의 눈에 나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행동들을 인격적으로 믿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잘못을 했을 때 솔직히 잘못했다고 인정을 하는데 아내는 잘못을 했을 때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고 그리고 아내에게 기본적인 인격이 있나? 없나? 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부부 세미나 공부를 통해 이러한 아내의 잘못된 면들을 질문을 했을 때 ‘그것은 남편이 아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처음에는 받아지지 않았지만 이 내용을 나중에 깊이 생각하니 자신이 부끄러워 졌습니다.


여성해방운동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여성해방운동은 성경적인 면도 있지만 비성경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여자가 남자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며 자신의 가정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원리와 설계를 뛰어 넘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2) 당신의 결혼생활을 더욱 견고케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적어 보십시오.


남편이 아내의 말을 잘 안 들어 줍니다.


☞ 남편은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바른 말을 해주는 대상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고, 둘째는 아내이고, 셋째가 나의 원수입니다.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것이며 가장 지혜로운 말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말이라도 마음을 열고 들으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아내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아내 외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분 좋게 하는 말에만 귀 기울인다면 지혜로운 사람이 못되는 것입니다.


참고적인 성경구절


잠 19: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잠 20:12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의 지으신 것이니라”


아내들은 남편에게 말을 할 때 칼로 찌르듯이 하면 안 됩니다.


☞ 올바른 때에 올바른 말로 지혜롭게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이 받아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혀가 되려면,


첫째는, 신뢰할 수 있는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신뢰할 때 비로소 아내의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남편이 잘 할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잘못한 것을 지적해 주면은 남편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잘하는 것은 칭찬하지 않으면서 잘못한 것만 날카로운 말로 지적할 때 좋게 받아들일 남편은 없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고 남편에게 말을 해야 합니다. 남편의 머리가 주님이기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더 남편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아무 때나 이야기하는 것은 지혜로운 혀가 되지 못합니다.


넷째는, 객관성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너무 자기 주관성을 가지고 남편에게 지적하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다섯째는, 밥 먹는 시간이나 잠자는 시간에 지적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때는 기분 좋은 말로 해서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46下 “기쁨과 순전(純全)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하였습니다. 기분 나쁘게 음식을 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먹게 해야 합니다.


3) 이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세워 보십시오.


3)번은 1)번과 2)번을 적용하여 구체적으로 실천할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공부하신 내용을 가지고 부부간에 대화하면서 실천할 것들을 계획하시면서 풀어나가길 바랍니다.


요 약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을 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필요를 알고, 이해하고, 채워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부부는 이 필요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성경은 그것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부부가 함께 노력할 때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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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라는 신비는 무엇일까요? “전 세계가 현재 필요로 하고 있는 ”라보 그것의 신비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사람들로 결투를 하게도 하고, 왕관을 버리게도 하며, 세계를 정복하게도 하고, 기타 수많은 일들을 하게 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사랑” 이라는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일상적인 관계와 생활 가운데서 사랑을 나타내 보여 줄 방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사랑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둘이 하나가 되게 하는 가장 강한 요소입니다. 골로새서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여기서 말하고 있는 “띠”가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부 간에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정의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사랑은 정의할 수 없고, 다만 존재할 뿐이라고, 그러나 정의를 내려 봅시다.


사랑을 하려면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1. 당신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아래에 써보십시오.


오늘날 T.V에서 또는 문학작품에서 사용되는 사랑은 의미가 다릅니다. 그 사랑은 잘못된 것이며 타락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맨틱이나 에로틱한 관계를 맺는 것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바로 알아야 사랑을 바로 행할 수 있고 그 사랑으로 행할 때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사랑의 정의를 한마디 말한다면 “다른 사람의 참된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모든 마음과 행위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느낌상의 필요나 감정상의 필요가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을 채워주려고 하는 모든 마음과 행동이 사랑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으로만 사랑하는 것을 사랑으로 알고 있는데 성경적인 사랑은 행함이 겸비되어야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자신이 손해보고 희생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나보다는 상대방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 중심으로 살아야 하고 남편은 아내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즉, 아내는 남편의 필요가 무엇이며 무엇으로 도울 수 있을까? 남편은 아내의 필요가 무엇이며 무엇으로 도울 수 있을까? 피차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성경적인 사랑으로 정의 해주고 사랑을 행하라할 때 둘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가정만 아니라 교회나 사회적으로 이런 사랑으로 할 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현재 사회적으로 이러한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행하지 못하고 있기에 이 사회가 강팍하고 죄가 가득해 지고 있는 것입니다.


2. 사전에는 어떻게 설명되어 있습니까? (가능하다면, 오래 된 사전과 최신판 사전을 다 찾아보십시오.)


“사랑”이란 ①중히 여기어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 ②이성에 끌리어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③일정한 사물을 즐기거나 좋아하는 마음. ④동정, 긍휼, 구원(救援), 행복(幸福)의 실현을 지향하는 정념(情念). 곧 독생자 예수를 보낸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의 사랑으로 나눔. <국어대사전, 1994. 2. 20.>. ⑤ 이광수(李光洙)의 장편 소설인 “사랑”은 1936년에 발표된 작품으로서, 그 내용은 여주인공 석순옥과 소설가이며 의학박사인 안빈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갈등을 그린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이상주의적(理想主義的), 인도주의적(人道主義的)인 사랑입니다.


Com 사전에는 사랑(Love)을, 사랑, 연애, 애호(愛好) 등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웹스터 사전에서 사랑이란 설명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혈족이나 개인 관계 때문에 일어나는 강한 정. 둘째는, 같은 목표나 취미, 사상, 관심 등이 일치할 때 일어나는 감정. 셋째는, 사욕이 없는 충섬심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음운각 사전에서 사랑이란 말은, 중히 여겨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과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사랑”이란 단어는 여러 가지 다른 개념들을 전달하는 데 사용됩니다. 우리는 이 단어를 들을 때, 전후 문맥 관계에 비추어서 그 뜻을 이해합니다. 헬라어의 사랑을 의미하는 네 단어를 통해서 좀 더 분명하게 구분지어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단어와 그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스테르고(Stergo) : 사람의 본성 가운데 들어 있는 타고난 사랑이다. 이것은 동물이 자기 새끼를 보호하는 것과 같은 본능적이며 본성적인 애정이나 보호 감정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남편에 대한 사랑 등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사랑, 즉 관계 때문에 존재하는 사랑이다. 도덕적이 아닌 자연적인 의미에서의 의무 때문에 상대방의 복지와 행복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런 종류의 사랑은 어떤 자연 단위나 사회 단위를 결속시키는 결합적 요인이 된다. 스테르고적 사랑의 본보기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와 아픈 가족들을 돌보는 어머니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사랑은 아버지가 자기 가족을 어떤 위협에서도 보호하려는 마음과 어머니가 자기 자녀들이 자라 자신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것을 섭섭하게 여기거나 달갑지 않게 여기는 마음에서 나타난다.


스테르고적인 사랑의 또 다른 예를 찾아본다면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스승과 제자와의 사랑, 국가와 국민간의 사랑, 목사와 교인간의 사랑, 가문의 사랑 혹은 친족 본족간의 사랑 등이 스테르고적 사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로서, 인격적인 사랑이 아니지만 볼펜과 자신과의 사랑으로 비교할 수 있는데, 볼펜을 몇 달 동안 사용하다가 잃어버렸을 경우 마음에 서운함이 있습니다. 이것은 밀접한 관계 가운데 지내왔기 때문입니다. 즉 스테르고적 사랑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 간에도 스테르고적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 같이 살아가지만 한집에 십년 이십년 같이 살다보면 이제는 그 사람이 없으면 도저히 살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세상에 남자, 여자는 많이 있지만 도저히 그 사람 없으면 못살 것 같은 마음입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맞벌이로 인해 함께 교제하는 시간이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없으므로 밀접한 관계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밀접한 관계로 이루어질 때 정말로 땔 수 없는 관계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2) 에로스(Eros) :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거의 혹은 전혀 없이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들을 충족시키려는 욕구에서 나온 사랑이며, 자기만족을 구하려는 정욕일 수 있다. 에로스적 사랑은 주로 감정에 의해서 일어나며 육체적인 욕구에 그 기초를 두고 있고,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바로 성적인 욕망과 낭만적인 심취를 추구하는 마음인 것이다. 에로스적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 곧 자기를 향하는 사랑이며, 항상 자신이 주는 만큼 그에 대한 보상을 바라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 속에는 본질적으로 육체적이고 성적인 측면이 있으며, 이것은 철근이 콘크리트를 더욱 견고하게 결합시켜 주듯이, 부부 관계를 더욱 강하고 견고하게 세워 나가도록 도아 준다. 육체적 욕망과 만족은 다음 세 번째와 네 번째 형태의 사랑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요소들로써 적절히 조절되고 균형을 유지하게 될 때에 참되고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 당신의 결혼생활을 변절시키는 데 있어서 에로스적 사랑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에로스는 남녀 간의 육체적인 정에 의한 사랑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랑이 가정에 좋은 점은 첫 번째는, 정신적으로 안전감을 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예로서 출근할 때 남편이 아내에게 윙크를 하고 키스하며 출근하는 것하고 아무런 표현 없이 출근하는 것하고는 아내의 마음이 다릅니다. 어떠한 표현이든 사랑의 표현을 해주면 아내는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 된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부부가 육체적으로 에로스적인 사랑을 가질 때 ‘내 남편하고 내 아내하고 정말로 한 몸이구나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세 번째는, 신뢰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만큼 남편이 나를 사랑해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에로스적인 사랑이 미비하거나 불충분하면 남편이 다른 여자 생각하고 있는가?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에로스적인 사랑을 잘 해줄 때 신뢰감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서로 신뢰감을 가지는 것이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사랑의 불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게 합니다. 부부 간의 에로스 사랑이 미비하게 되면 사랑의 불이 다른 사람으로 흘러가므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잘못된 대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에 에로스적인 사랑이 중요합니다.


다섯 번째는, 생활의 신선한 활력과 생기를 줄 수 있습니다.


에로스적인 방법은 외출하거나 출근할 때 해어지기 섭섭한 표정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전화할 때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만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 했다고 하는 식도 좋습니다. 외출하고 출근하고 집에 들어 올 때 하루 종일 당신만 보고 싶었다는 표정으로 들어오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남편은 아내가 종일 집안에서 수고한 것을 칭찬해주고 아내는 남편이 직업에서 수고했다고 칭찬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함께 있을 때는 두 사람이 서로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즉 상대방으로 인해 흥분된 상태로 있어야 합니다. 둘이 있어도 밋밋한 상태로 있으면 좋은 부부가 아닙니다. 단 둘이 있을 때는 표현도 자유로운 것이 좋습니다. 단 둘이 있을 때는 문제점이나 좋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잠을 잘 때 사랑의 행위를 나누지 않더라도 살을 맞대고 자거나 손을 잡고 자는 것이 좋은 사랑의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을 경우 아내 쪽에서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3) 필레오(Phileo) : 인간의 정신에 즐거움을 주는 어떤 것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사랑이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내면적인 교류와 상호 매력에 기초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은 같은 인생관 등 서로 공통되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대상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필레오적 사랑은 “좋아하는” 것과 “호감을 갖는”것 곧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이다. 우정을 중시한 헬라인들은 “함께 있고 싶은” 사람에 대해 느끼는 것과 같은 상호간의 정을 나타낼 때 이 단어를 사용했다. 결혼에 있어서 필레오적 사랑이 중요한 이유는 배우자에 대하여 본래 모습 그대로의 그를 좋아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이 그 사람과 함께 지속적인 관계 가운데서 살기는 더없이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 당신의 가정과 결혼생활에서 필레오적 사랑의 예를 몇 가지 들어 보십시오.


물질이 적더라도 쇼핑을 통해 작은 물건을 함께 구입하는 것, 등산이나 영화 감상을 함께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 시간을 내어 부부가 요리를 함께 하는 것, 독서를 같이하고 서로 독후감을 이야기 해보는 것, 전람회를 함께 가는 것, 목회자는 심방을 함께 하는 것 등은 좋은 부부생활을 만드는 것입니다.


필레오적 사랑을 개발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중에 취미생활을 함께 하도록 개발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취미생활이 다르겠지만 서로 양보해서 같은 취미생활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남편이 등산을 좋아하면 아내는 등산에 함께 동참해주며 아내가 꽃가꾸기를 좋아하면 남편은 함께 꽃을 가꾸는 일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등산을 좋아하는데 아내는 무관심하고 아내가 꽃가꾸기를 좋아하는데 남편은 꽃을 바라보지도 않고 물 한번 주지 않으면 그만큼 사랑의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 서로 다른 취미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하며 상대방의 취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부부의 날로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차가 있으면 함께 드라이브하면서(멀리 가는 것보다 가까운 거리에 가는 것이 좋습니다) 차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때 서로 문제점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더 건설적인 부부의 관계를 유지하며 효과적인 부부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 부부가 친구처럼 함께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를 적어 보십시오.


(4) 아가페(Agape) : 사랑의 대상에 대한 가치에 눈을 떠서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온 사랑으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그 대상을 소중히 여기게 만든다. 이 사랑은 사랑에 대한 어떤 보상도 구하지 않으며, 그 사람을 받아 줄 것조차도 구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 준다. 그것은 자기희생적 사랑이며, 본질적으로 인간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서 기원한다. 아가페는 신약성서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단어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요한복음 3:16), 그리스도인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요한복음 13:34~35),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에베소서 5:25)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자발적이며, 무조건적이고,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다. 힘없고, 죄 많고, 무익한 인간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다(로마서 5:5~8).


에로스적 사랑이 종종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데서 비롯된다면 아가페적 사랑은 “내가 무엇을 줄 수 있을까?”하는 데서 비롯되며,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당신의 결혼 생활에서 아가페적 사랑의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서 아내가 하루 종일 가사(家事) 일로 섬기는 것, 이것은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하는 일로서 아가페적인 사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한 달 동안 직장에 나가서 많은 시달림을 당하며 봉급을 아내에게 가져다주는 것도 아가페적인 사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에로스적인 사랑도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할 때 더 참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으로 인해서 성적인 욕망을 충족하고 만족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생각하고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해 도와주고 희생하는 성생활을 할 때 에로스적인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며 아가페적인 사랑의 한 단면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여성들은 사랑의 행위를 나눌 때 분위기에 따라서 성적인 쾌감이 다릅니다. 이것을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얼마만큼 배려해 주는가에 따라 다를 수가 있습니다. 나보다는 상대방을 위해서 배려해주고 도와는 것이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거슬리는 말의 표현을 용납하는 것, 자신과 성격이 다른 것도 받아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감정적으로 희생을 요구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지 않더라도 용납해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방식으로 행하기를 원합니다. 아내가 자신하고 방식이 다르더라도 받아주는 것이 아가페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틀리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뿐입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이 있으면 자신하고 방식이 달라도 용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문을 조간신문 보는 것하고 석간신문 보는 것도 틀리는 것이 아니라 다를 뿐입니다. 아내는 옛날에 조간신문만 보았고 남편은 석간신문만 보았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석간신문만 보는 쪽으로 밀고 나가면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탁에서도 밥을 먹을 때 아내는 벽을 기대고 먹으려고 하고 남편 또한 벽을 기대어 먹으려고 합니다. 또 잠을 잘 때 아래에서 자느냐 위에서 자느냐 이것 가지고도 다툽니다. 이런 상항에서 자기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이 아가페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에게 생명까지 바치지 못하더라도 조금 손해보고 감수하는 것이 아가페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배신한 아내를 용서할 수 있는 호세아 같은 사랑, 손양원 목사님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을 바치지 못하더라도 자주 부딪치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 1분 동안 묵상을 하면서 아내와 남편 사이에 자주 부딪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용납하면서, 손해 보면서 이해하는 사람이 대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물론 우리는 사랑을 네 가지의 독립된 요소로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들이 반드시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상호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실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왔듯이 사랑은 하나의 감정 그 이상입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창조적인 힘입니다.


이 과는 당신이 어떻게 그 사랑을 보다 잘 표현하며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행동으로써 사랑을 정의합니다.


4. 요한복음 3:16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받도록 하기 위해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음으로만 정을 느끼는 정도의 사랑으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몸소 주신 것입니다. 몸소 주시되 희생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5. 로마서 5:8절에 의하면 한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까?


죄인 된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행위로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들 주신 것보다 더 큰 희생은 없습니다. 이것은 최고의 희생입니다. 아들을 주셨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최고의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크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 능력으로 사랑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하지 않고 희생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실제로 자기가 희생을 지불한 사랑입니다.


������ 이제 이런 사랑을 우리의 가정에서 결혼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6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6. 고린도전서 13장은 신약성경 가운데서 사랑(아가페)장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4~7절에는 소위 “사랑으로 스펙트럼”이라고 하는 사랑의 아홉 가지 요소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각각을 상고한 후에 이것들을 당신의 결혼생활이나 가정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적어 보십시오.


(1)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에서 자신하고 다른 방식으로 자녀들을 다룰 때 옆에서 끼어들지 않고 참아주는 것도 있습니다. 이때 남편은 말로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하는데 아내가 아이에게 회초리로 가르칠 때 옆에서 남편이 역정을 하면은 사랑을 행하는 것이 못됩니다. 그러면 아내가 난처하게 되며 자녀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는 수가 있는데 아이들이 내가 잘못해서 맞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엄마의 견해 차이 때문에 내가 엄마에게 맞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므로 문제가 됩니다.


또한 아내가 실수할 때 오래 참아 주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참아 주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내는 남편이 성질부터 낼 때 참아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하지 못하는 점에서 우리의 사랑이 부족한 것을 많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어떤 경우에라도 참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 싸움할 때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잘 참아주는 것입니까?


☞ 부부 싸움할 때 말도하지 않고 상대도 해주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며 냉전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서로 이야기 할 때는 이야기하고 다툴 때는 다투면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부부 싸움을 할 때 감정이 도입되어 큰소리가 나올 수 있으므로 말을 하지 않고 한두 시간 정도 떨어져 있으면 어떻습니까?


☞ 한두 시간 떨어져 있을 때 감정을 추슬러 서로 이야기해서 풀어나가는 것은 좋은 방법입니다.


(2) 사랑은 온유하며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아내가 이것, 저것 여러 가지 물어볼 때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말을 걸 때 친절하게 대해 주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이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됩니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알고 싶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물어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서로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여자의 마음입니다. 이때 친절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사랑을 충족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외에 있을 때 아내에게 가끔 전화를 걸어주는 것, 버스나 택시를 탈 때 먼저 아내에게 승차하게 하고 먼저 앉게 하는 것, 자가용이 있으면 아내를 위해서 문을 열어주어 승차하게 하는 것 등 아내에게 친절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3)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이 말은 관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투기하는 것은 자기중심과 생각과 행동을 말하는데, 즉 모든 것을 자기만 차지하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사람까지 관용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를 들면, 첫째, 남편이 아름다운 여자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 투기하지 않고 관용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둘째, 남편이 어머니를 자기보다 더 좋아하고 따르는 것을 아내는 관용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셋째,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밀고나갈 때도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남자의 일을 여자에게 잘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아내들이 관용을 베푸는 것이 사랑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것을 통하고 알아야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잘 설명이 안 되는 일을 남편으로서는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아내가 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넷째, 남편이 출근할 때 방에서 아내가 인사하는 경우를 보아도 관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남편이 출근할 때 아내는 배웅을 해야 하지만 아내가 방에서 자기의 일을 할 수 있으므로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관용은 투기하지 않는 것인데, 이것은 내가 싫어하는 것도 받아 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이것이 사랑입니다.


(4)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이것은 겸손을 뜻합니다. 사랑은 겸손한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생활에서 이러한 사랑이 잘 나타나고 나타나지 못한 것들을 다 같이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경우에 서로 ‘내가 더 잘 한다 혹은 네가 틀렸다.’는 문제로 다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한 것이며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언어입니다. 조금 더 지나치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말하는 것인데, 아이들이 잘하고 잘못할 때 ‘이것은 네 탓이다’ ‘친척 탓이다’ ‘당신 닮아서 그렇다’ 등으로 상대방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겸손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내용으로 한두 번씩 다툴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말보다는 오히려 칭찬으로 ‘당신 닮았다’는 등으로 하면서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농담이라도 이렇게 할 수 있어야 사랑하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경우 목회자가 상담을 하고 있는데 사모가 옆에서 끼어드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또한 사모가 상담하는데 목회자가 옆에서 끼어드는 것도 잘못되는 것이며 사랑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목회자가 상담을 하는데 평신도가 옆에서 끼어드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 받는 자가 불쾌감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를 두 사람이 나갈 때 한 사람은 옆에서 지켜보고 그 외 사람이 말을 하게 하여야 합니다. 전하는 사람이 말을 잘 못하여도 그 외 사람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합니다. 둘이 다 말을 할 경우에는 전도 받는 상대방은 공격받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사랑은 정중한 것임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배우자의 잘못을 지적한 것은 무례한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 앞에서 아내를 꾸중한다거나 아내가 남편에게 소리를 크게 할 때 이러한 것은 무례한 것입니다. 상대방을 진정 사랑한다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어떠한 경우에 고마운 일이 있을 때나 혹은 작은 선물을 받을 때나 도와주었을 때 고마운 말을 할 수 있어야합니다. 부부 간일지라도 무례하지 않고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더 좋은 부부의 사랑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녁에 잠잘 때에 사랑을 나눈 후에는 고맙다는 말을 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와 다른 어느 모 나라에서는 전날 밤에 사랑을 나누었으면 그 아침에는 남편이 출근할 때 책상위에 팀을 놓고 간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고맙다는 한 마디가 사랑을 증진시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내가 예의 없이 하는 것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오는데 반기지 않고 자기 일만 하고 의사표시 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아내가 말을 하는데 남편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을 경우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아내가 좌지우지 하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 외에 부부라는 관계라고 해서 무례히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무례히 하는 일들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6)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만을 원하는 것은 비 성경적입니다. 가정에서 자기 방법만 고집하면서 싸우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 경우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양보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아내를 위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이불을 갠다든지, 방청소를 해준다든지, 화장실 청소를 해준다든지 등 자신의 편리만을 위해 하지 않고 상대방의 편리를 생각하면서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성경적인 사랑은 행동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한다는 것은 성생활에서도 적용이 됩니다. 자기만족만을 추구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서로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7) 성내지 아니하며


양순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밥상에서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아내는 남편을 위해 정성껏 밥을 했는데 그 앞에서 밥을 모래알 씹듯이 먹고 반찬이 왜 이 모양이냐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사랑이 없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신발장 더러운 것 가지고 남자들은 대부분 소리 지르기가 쉽습니다. 신발장이 더러우면 내가 조용히  정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대부분 소리부터 지르게 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좋게 말하면 잘 듣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나쁜 선입견은 버리고 내가 먼저 해주는 배려의 사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을 가장 나타내기 어려운 곳이 가정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양순한데 가정에서는 양순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웃사랑은 어려워도 세계사랑은 쉽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천해야 되므로 어려운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자신이 부족하구나 생각하고 성령께 기도하고 자신이 변화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8)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사랑은 솔직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보면 언젠가 혼 줄을 내야지 하고 넘어가게 되는 때도 있을 겁니다. 이것은 악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또한 자녀들이 잘못을 했을 때도 그 사항에서 혼내고 사랑함을 보여주면서 끝내야 합니다. 그러나 ‘너 어젠가 혼날 줄 알아’ 하고 끝내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항상 좋은 쪽으로 보아야 하는데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관계는 좋은 쪽으로 보아야 합니다. 솔직하게 털어 놓지 못하는 것이 악한 생각으로 쌓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솔직하게 털어 놓지 못하는 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솔직하게 말을 못하는 것은 상대방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관계로 있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나쁜 것들이  쌓이게 되면 나중에는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되는지 모를 정도로 문제가 커지게 됩니다. 서로가 무서운 관계로 있지 말고 솔직하게 털어 놓아 좋은 쪽으로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9)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진실한 것이 사랑입니다. 기분 나쁘면서 그렇지 않은 척 하는 거짓된 인상을 배우자에게 가져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잘못했으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 해결하려고 해야지 숨기는 것은 좋은 사랑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서로 도전을 주고 책망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묵비권을 쓰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고 해결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기뻐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단지 이야기를 할 때 가려서 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지만 숨기면서 묵비권을 쓰는 것과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말씀이 교제보다 우선하고 성결이 화평보다 앞서야 합니다. 성결하지 못한 화평은 사랑이 아닙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데 겉으로는 화평한 척하는 것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에게나 아내에게 불의가 있으면 기도하면서 지혜롭게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냥 덮어 두게 되는 것은 불의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태도가 될 수 없습니다. 서로 도전을 주고 서로 고쳐가고 서로 노력하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적 용


평범한 모든 사실들에는 동의하기가 쉽기 때문에 혼자 “그래, 그것 참 좋아, 그렇고말고”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이 과에 나온 여러 가지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부부가 집에서 이러 면에서 서로 이야기해 적어 공부시간에 다른 사람과 나누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1) 현재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2) 당신이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 한 가지를 구체적으로 적어 보십시오.


3) 당신이 이것을 꼭 실천하도록 하기 위한 점검 방법을 적어 보십시오.


부부는 서로 체킹프랜드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서로 점검해주고 지적해주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요 약


어떻게 하면 좀 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영원한 과제입니다. 사랑은 그 구성 요소들의 집합 이상의 것입니다. 사랑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이며, 따라서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시들어 갈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랑이란 갑자기 “빠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 자라가며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에베소서 5:1~2). 아마도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이기심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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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자신과 배우자에 대한 용납


결혼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나누고, 인정해 주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줍니다. 어떤 인간관계도 부부 간의 관계만큼 깊은 친밀감과 헌신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부부는 서로 상대방의 가치와 독특성과 능력을 인정하고 고무시켜 주어야 하며, 또 능히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부부들이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이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결혼생활에서 의도하신 근본적으로 하나 되는 삶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를 용납함


조금이라도 정직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에는 잘못한 것들도 있고, 용서받아야 할 것들도 있고, 고쳐 나가야 할 것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를 용납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올바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1.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는 물론, 자기 자신과도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35~40절에서 예수님이 이 사실을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읽고, 아래 질문에 답하십시오.


(1)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39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이웃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자기를 사랑하는 태도는 이기적인 욕심의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안에서 지으신 자신의 가치를 알고 사랑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드셨구나!’라는 사실에 대해 가치를 알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태도입니다.


(2)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기를 첫 자리에 두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은 편리에 따라 적당한 자리에 두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다른 인기 있는 견해는, 하나님을 먼저,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7~39절에서 올바른 순서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어떤 순서입니까?


첫째,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자신입니다.

셋째, 이웃입니다.


나와 이웃은 똑 같은 수준으로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느낌이나 감정상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러나 주님은 ‘네 몸과 같이’ 네 이웃을 똑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당신은 왜 이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생각합니까?


첫 번째, 우선순위에 하나님을 두지 않고 다른 존재가 우선순위에 있는 것은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데 있어서 제일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이나 다른 대상이 먼저이면 결국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우선순위는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 나와 이웃을 똑 같은 수준에서 사랑 하지 않으면 만족이 없고 갈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아내 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은 아내를 남처럼 여기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부부 관계는 만족이 없습니다. 서로를 존중해주지 않고 동등 된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다툼과 갈등이 옵니다. 이렇게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지 않으면 행복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자신과 이웃을 같은 수준으로 사랑할 때 행복과 기쁨이 있습니다. 


당신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아상은 하나님, 가족, 친구, 직업 및 기타 삶의 많은 중요한 영역에 대한 당신의 태도, 감정 및 반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2. 고린도후서 10:12절에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헤아리는데 있어서 현명하지 못한 기준이 무엇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자기가 평가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나 자신을 잘 용납 하려면 자기를 평가할 때 내가 기준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이 보시는 시야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하나님이 보시는 시야에서 서로 평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평가한다면 부족하고 못난 부분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을 용납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눈으로 자신을 보며 평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3. 사무엘상 16:7절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왜 흔히 불완전한 정보에 기초를 두고 있는가를 보여 줍니다.


(1)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상대방의 실질적인 면을 몰라 외모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 세상의 기준입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사무엘도 외모를 보고 잘못 평가한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왕을 선택할 때 ‘왕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왕의 이미지는 사울 왕처럼 생겨야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7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身長)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사람의 외모를 보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내 외모를 보았다면 하나님은 자녀를 삼는데 나를 선택했을까?


마태복음 22:16절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다고 인정을 했던 것입니다.


(2)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말을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많은 헌금을 하는 부자보다 과부가 드린 엽전 두 푼의 정성과 중심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보실 때 요한복음 1:42절에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베드로의 미래 변화의 가능성을 먼저 보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실 때 지금은 나약하고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러나 앞으로는 반석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처음 볼 때 ‘지금은 시몬이지만 앞으로는 게바라’고 했던 것입니다.


부부 간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서로 중심을 보고 통할 수 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서로 중심을 보면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먼저 베려하여 주고 잘 도와주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아름다운 아내로 변화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부 간에는 자기중심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너무 체(Pretense 프리텐스: 구실, 핑계, 가식(假飾), 체, 흉내) 해도, 가장을 해도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체하면 통할지 모르지만 부부는 함께 사는 사람이므로 가장을 하지 말고 내 중심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버스 안에서 외판원이 볼펜 파는 사람처럼 자기를 선전하면 안 됩니다. 부부 사이에는 이런 면이 없어야 합니다.


4. 외모 이외에도 사람의 가치를 부당하게 평가하게 만드는 다른 요인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것들을 찾아 쓰십시오.


(1) 마태복음 13:55~56 → 직업이나 직위.


직업이 좋고 혹은 높고 낮고 이런 것으로 자기를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2)요한복음 1:45~46 → 지방세.


예수님께서도 지방에서 사시면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사람이 나겠느냐?’는 비하(卑下)의 말도 들었습니다. 인류의 구세주, 메시아인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느 지방에서 사느냐가 그 사람의 평가의 기준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예레미야 9:23~24 → 지혜, 용맹, 부.


지혜가 많거나 용감하거나 돈이 많은 것으로 자기를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사울왕은 용맹하였고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하여 이름을 떨쳤지만 버림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많고 부하였지만 영적으로 망하게 되었습니다.


부부 간에 예를 들면, 아내가 남편에게 다른 동료들은 진급하여 직위가 올라가는데 당신은 왜 진급하지 못하느냐? 다른 동료는 부장 자리에 승진하였는데 당신은 왜 과장으로만 있느냐? 는 이런 식으로 배우자에 대해서 직위나 진급을 가지고 평가를 하는 경향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남편 보다는 그 무엇이 있기를 더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남편 보다 출세를 원하고 남보다 돈이나 돈 버는 재주 등을 더 기대하며 안정을 찾으려고 하는데 이것은 절대로 오래 가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고 신뢰심을 갖는 영적이며 신앙적인데 대해 존경하고 신뢰하고 사랑을 해야지 남편이 가지고 있는 외적인 것을 더 의존하면 안 됩니다. 물론 남편이 아내를 볼 때도 마찬 가지입니다. 외모 보다는 그 마음, 심성, 즉 하나님 앞에 가치 있는 경건이나 신뢰심이나 덕행이 있는 것 등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5.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를 누가복음 15:21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어떤 태도가 나타나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범죄 한 자기를 가지고 자신을 평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죄를 지었어도 죄지은 모습을 보고 나를 평가하면 안 됩니다. 누가복음 15:21절에서 아들은 종보다 못한 자신을 보았습니다. 종은 아버지 집에 있으면서 떠나지 않는데 아들인 나는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며 종보다 더 못한 자신을 보고 나쁘게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종을 아들로 취급하지 않고 집나간 아들을 어디까지나 아들로 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탕자이고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나는 죄가 있지만 하나님은 죄를 지은 나를 보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종보다, 천사보다 못한 우리들이지만 받아 주시고 높은 지위에 올리셨습니다. 이러한 자신임을 알 때 아내의 잘못도 용납을 할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자들은 사랑에 실패자이며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6. 십대였을 때, 당신은 어떤 자아상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좋았다, 보통이었다. 좋지 않았다. 세 가지로 다음 영역에서 자신을 평가해 보십시오.


(1) 자신의 부모님에 대하여           →  보통으로

(2) 자신의 용모에 대하여             →  좋지 않게

(3)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  좋지 않게

(4) 자신의 환경에 대하여             →  좋지 않게

(5)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  보통으로


좋지 않는데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자기애(自己愛)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식(自己儀式)과 자기애(自己愛)는 다릅니다. 좋지 않는데서 살아온 삶의 의식은 좋지 않으나 자기애에 대한 사랑은 있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애착은 있었습니다. 자신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자기를 사랑 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했으므로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애(自己愛)가 좋은 자기의식에서 나왔다면 기쁘고 만족한 십대의 시절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은 좋지 않은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참된 가치는 당신이 성취한 훌륭한 일들이나, 당신이 얻은 성적이나, 당신의 재산에 그 기초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또한 당신의 결점이나 실수나 죄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은 당신의 외적인 존재를 드러낼 뿐이지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으로 어떤 존재인가를 가리키고 있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비하하여 열등감에 빠지거나 스스로 높아져 우월감에 빠져도 안 됩니다. 현재의 당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건전한 자기애(自己愛)의 참 바탕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두고 있는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7.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1) 요한복음 3:16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꿀 정도로 내가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과 맞바꿀 정도로 내가 더 소중했습니다. 우리가 물건을 구입할 때 비싸게 구입하는 것은 그만큼 그 물건이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팔아서 아들을 죽이시고 나를 살리신 것은 내가 그만큼 하나님 앞에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는 보잘 것 없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나를 볼 때 자기 아들만큼 내가 가치가 더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컴퓨터로 계산을 하면 얼마가 나올지 모르지만 나를 그보다 더 가치가 있기 때문에 자기 아들을 버리고 나를 선택했습니다. 이 내용이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구속이라는 말은 값을 주고 샀다는 말입니다. 구속의 원래 의미는 내가 돈을 주고 내 것으로 샀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속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가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보셨습니다.


(2) 베드로전서 5:7


언제까지나 하나님이 돌보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자기 방에서 아이가 잠을 자고 있을 때 한 번씩 가보게 됩니다. 문단속도 잘합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소중하고 귀하기 때문에 지키고 보호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금덩어리가 있다면 아무 곳에나 두고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금덩이가 그만큼 귀중하기 때문에 지키고 보호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그만큼 귀하기 때문에 지키고 보호하고 돌보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0:28~29절에 하나님의 손과 예수님의 손이 언제나 우리를 꼭 붙잡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3) 예레미야 31:3


무궁한 사랑으로 계속 사랑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무궁한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의 상태와 관계없이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잘못이 있고 실수가 있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을 수 있어도 하나님은 그런 상태를 상관하지 않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부부 간에도 이런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남편이 아내의 상태와 관계없이 이런 사랑을 한다면 좋지 않는 아내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4) 요한복음 15:9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똑같은 수준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 사랑에 대해서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가치가 있습니까. 우리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독특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있으라!”는 그의 능력의 말씀만으로 온 우주와 천하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은 말씀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손수 지으시고 자신의 성품 중 많은 것을 그에게 부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월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드셨을 뿐입니다. 각 사람은 재능과 능력이 서로 다릅니다. 각 사람마다 독특한 장점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획 성취에 특별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대로 당신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무의식적인 반항이며, 마치 하나님께서 실수라도 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나무라는 것이 됩니다. 어떤 종류의 반항이라도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자백해야 합니다.


8. 창세기 1:26~2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신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자신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 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형상이란 말은 Image(이미지 : 상(像), 닮은 사람)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자신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하나님의 한부분입니다. 이미지라는 말은 원래 그것을 보면 다른 것을 알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자신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9. 무엇이 이 형상을 파괴시켰습니까? (로마서 5:12)


죄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 했습니다. 나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죄가 파괴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가 들어옴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 되었습니다.


10. 골로새서 1:15~22절을 읽으십시오. 20~2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사람에게 자신과의 교제를 회복시켜 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다시 열어 주셨습니다. 상실된 교제를 회복시켜 주시고 추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깨끗이 회복 될 수 있는 길을 왜 우리에게 열어 주셨을까요? 왜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가 아직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교제가 깨어지고 파괴된 것은 사실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희생을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은 그만큼 내가 소중하고 귀하였던 것입니다(참고\엡 2:12~13).


죄가 인간에게 들어 왔을 때 두 가지 관계가 깨어 졌습니다. 이전에 친밀한 관계가 깨어졌고 그 다음에 인간과 인간 사이가 깨어졌습니다.  죄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원만한 관계를 못 가집니다. 그저 서로 미워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두 가지가 회복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부부 사이에 적용을 시켜 ‘이제 예수님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때문에 당신과 나는 아름다운 교제를 회복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11.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그분을 닮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로마서 8:29), 따라서 당신은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과정에 있는 자신을 용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들은 여기에 대하여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1) 고린도후서 3:18


성령을 통해 날마다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육신적으로 세수하고 거울을 보는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형상을 보며 고쳐가고 변화되기를 바라십니다. 지금은 타락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회복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를 거기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내 아내를 볼 때 부족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변화되어가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자신도 완전하지 못하고 점점 나아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골로새서 3:10


창조자의 형상을 쫓아 지식에 까지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식에까지 새롭게 변화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에서 자라가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듣고 배우는데 가치를 두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 타락되고 있다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지식이 아니라 영적 하나님의 지식을 점점 배워가므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베드로후서 1:4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내 속에 죄 된 성품이 사라져가고 하나님의 의인 성품을 하나하나 닮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가치입니다. 


(4) 요한일서 3:2~3


장차 주님과 같이 될 소망을 가지고 성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나의 가치는 얼마나 주님과 같이 되었느냐에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과 같이 닮았느냐? 거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이야기를 하고 용납을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아시고 당신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는 바로 그 사실이 당신은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은 없습니다. - 그러나 결코 무가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바로 당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큰 투자를 하신,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셨다면 당신은 매우 귀중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12.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지(知), 정(情), 의(義)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당신에게 주신 것은 그분이 당신을 위해 가지고 계신 목적을 가장 잘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독특한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시편 139:13~16절을 읽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특별히 어떻게 지으셨는지 열거해 보십시오.


자신만이 이루어 드려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시편 139:13~16절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독특한 목적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십니다. 왜냐하면 내게서 기대할 수 있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나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을 때 모태에서 은밀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나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미를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하나님이 보시는 예술성으로 자신을 보는 시야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볼 때 자신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려고 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똑같이 않고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오묘하게,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 똑같이 만들어져있다면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모조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각자를 다르게 만드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을 당신으로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당신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당신이 자원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그분이 다스리시고 사용하시게 할 때, 당신은 자신의 놀라운 가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어쩐지 이기적이고 잘못된 것 같아서 이를 꺼립니다. (물론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자기애(自己愛)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동기에서,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계시는 자 곧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건전한 것일 뿐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배우자에 대한 이해


당신 자신을 이해하고 용납하게 될 때 당신은 배우자의 필요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의 필요에 더욱 민감해질 것입니다(에베소서 5:28).


13.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데 대해 어떤 계명을 주셨습니까? (요한복음 13:34~35)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똑같은 수준으로 배우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배우자와 문제의 어려움이 있을 때 주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나를 어느 수준으로 사랑하셨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 될 것입니다. 


14. 만약 당신이 배우자의 삶을 부정적인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본다면, 당신의 사랑은 식어 갈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당신이 빌립보서 4:8절에서 보여주는 방법을 따른다면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렸던 사랑까지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 구절은 당신의 생각을 어디에 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배우자의 긍정적인 면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즉 배우자가 잘하고 있는 부분을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배우자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만을 항상 생각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빌립보서 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 배우자에 대해서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배우자에 대한 사랑할만한 점, 칭찬할만한 점, 덕이 있고 기림이 있는 점만을 생각하고 살면 얼마든지 용납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면들이 다 있습니다. 자신보다 더 나은 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항상 생각하고 있으면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상상력과 의지력이 갈등을 일으키고 충돌한다면 상상력이 이긴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의지보다는 생각하는 면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할 때 행하기가 쉽습니다. 어떠한 일을 할 때 그 일에 대하여 생각은 가치 있게 여기지 않고 행하려고 한다면 그 일에 대하여 즐겁지도 않고 억지로 하게 됩니다. 그 일에 대해 가치 있는 생각을 가지고 할 때 즐겁고 보람 있게 힘이 들지 않게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생각하는 면이 중요합니다.


배우자가 자신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서로 말해 보십시오. (예 : 인격적인 면에서나 신앙적인 면에서 배우자가 자신보다 좋을 수 있습니다.)


15. 로마서 14:10~13절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장차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행한 일을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배우자에게 어떤 행동을 해서 안 됩니까?


배우자를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를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악의 후손이고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판단하지 않으시고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를 판단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잘잘못만 따지고 잘잘못만 생각하는 흑백론자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판단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16. 다음 구절들에 의하면 당신은 배우자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도울 수 있습니까?


(1)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許多)한 죄를 덮느니라”


열심히 사랑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는 사랑은 행동하는 사랑을 말하는데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상대방이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예를 들면, 악수를 할 때도 손을 슬쩍 잡는 것하고 힘이 느낄 정도로 잡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선물을 해줄 때도 상대방의 마음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칭찬할 때 인식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내를 포옹해 줄 때 슬며시 포옹해주는 것하고 힘 있게 포옹해주는 것은 틀립니다.


(2) 야고보서 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告)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役事)하는 힘이 많으니라”


. 서로의 잘못을 자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솔직하게 서로 자백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태도도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해하고 용납하는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 아내와 단 둘이 기도해야 합니다. 아내와 단둘이 기도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질 수 있다면 두 사람의 관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교회에서 많은 성도와 같이 기도하는 시간은 많지만은 부부 사이에 단 둘이 기도하는 시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왜 부부가 단둘이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베드로전서 3:7절에 보게 되면 두 사이에 막힌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 사이에 작은 것이라도 막힌 것이 있으면 기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은 경건생활이나 부부간의 교제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일주일 안에 가정의 날을 정해 가족끼리 야외에 나가기도 하고 가정에서 둘러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막혔던 문제들도 풀어나갈 수 있고 성숙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적 용


당신은 본과에서 많은 성경 말씀들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성경 말씀들은 중요하며 당신의 결혼 생활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1) 가장 감명 깊은 말씀(들)은 어느 것이었습니까?


2) 당신은 이것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겠습니까?


몇 주 동안 그리스도의 결혼생활을 주제로 공부해오면서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또는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겼을지 모릅니다.


여기에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간단한 설명과 예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되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서 살 수 있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선량한 사람은 많이 있어도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서 3:23절에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가(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든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든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를 시켰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죽은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로마서 6:23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분과 올바른 관계와 교제 가운데서 살아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우리 죄를 위한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18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였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고 했으며, 로마서 5:8절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다음 예화는 이것을 명확하게 보여 주며, 디모데전서 2:5절의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쪽 편에 계시며 모든 사람은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간에 계셔서 그들을 연결시켜 줍니다.”(The Living Bible).


 

 

 

 

 

 

사람 - 불완전하고 죄인이며 영적으로 죽어 있음.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죽음에 처게 됨.

자신의 노력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

에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니요 하나님의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 - 거룩하시고 순전하시고 완전하심. 우리를 위하여 완전한 처소를 예비해 두심.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 풍성한 삶을 약속하심.

요한복음 10:10下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 - 건너갈 길.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Ⅰ              Ⅱ              Ⅲ                Ⅳ


위의 숫자들은 여러 그룹의 사람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째 그룹은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나타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둘째 그룹은 다소 발전을 보여 아마 하나님이 계실 것이라고 인정은 하나 거기에 대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셋째 그룹은 자신들의 죄를 시인하며, 구세주의 필요성과 예수님이 바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자신들을 위하여 죽으신 사실은 인정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지는 않은 사람들입니다.


넷째 그룹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자신의 삶 가운데 모셔 들이는 결단을 한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3:20절에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당신의 개인적인 선택과 초청에 달려 있습니다.


▶ 보 충 설 명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셋째 그룹과 넷째 그룹입니다. 셋째 그룹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진리를(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이며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다는 것)  믿고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넷째 그룹은 바로 그 예수님을 자신 개인의 삶의 주권자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마음속에 주인으로 영접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 사람이 구원 받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 만 믿는 사람은 진리를 알고 받아드렸지만 예수님을 주권자로 받아들여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것은 구원에 필요한 믿음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영접한다,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자신 개인의 주인으로 영접한 사람이 속사람이 거듭나고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셋째 그룹에 머물러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들의 마음속에는 거듭남이 없고 생활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맴돌고 있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자신의 개인의 삶에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독단적인 예를 든다면 사탄의 믿음을 들 수 있습니다. 사탄도 예수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압니다. 단지 사탄은 사실이 아닌 것처럼 거짓말 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영적인 사실에 대해 사탄은 우리 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사탄은 마지막에 자기 자신을 그분에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 무릎을 꿇고 의지하고 살지는 않은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에게도 죄 성이 있어 그 분에게 굴복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굴복시켜 자신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해 들인 사람이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예수님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은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하나 변화가 되고 말씀을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 세미나를 공부하는 여러분도 아무리 배워도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날마다 자백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 살려고 노력해야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그룹에 속해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일이 전혀 없거나, 그리스도인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다음과 같이 기도하십시오.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저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것을 알고 감사드립니다. 지금 저의 삶에 들어오셔서 저의 구주와 주님이 되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기도를 하셨다면, 당신의 이름을 적고 날짜를 기록해 두십시오. 이것은 후에 당신이 언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이제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영생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5:11~12)


                   이 름                      

                   날 짜                      


(참조 : 이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시는 분은 네비게이토 출판사에서 만든 전도지 하나님 선물인 영생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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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과 의사소통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서로 의사소통을 잘 합니다.

결혼생활에서 부부가 하나가 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의사소통입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의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은 부부 간의 관계를 더욱 깊고 성숙하게 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금술 좋은 부부에게도 그렇지 못한 부부에게 있는 것과 같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결혼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나가고 있는 것은 서로 의사소통을 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Communication(커뮤니케이션 : 전달, 통신, 의사소통)이야 말로 둘이 하나가 되는데 있어서 중요합니다(참고, 아모스 3:3 “두 사람이 의합(意合)지 못하고 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뜻이 같아야 같이 살아갈 수 있지 뜻이 같지 않으면 불협화음(不協和音)만 나게 되는 것입니다.


의사소통 방법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말과 글은 사람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몸짓이나 침묵을 통해서도 많은 의사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경청은 깊이 있는 의사소통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1. 다음에 주어진 보기를 따라서, 당신의 배우자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적어 보십시오.


언어적 방법                    


(1) 부드러운 음성 → 사랑한다는 표시, 마음이 흐뭇해 있는 표시.

(2) 높은 음성 → 화가 나있다는 표시.

(3) 간단한 대답 →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표시

(4) 외국어로 → 사랑한다는 “I Love You” 등

(5) 목소리의 높고 낮음과 빠르고 느린 음성 → 불안한 것, 마음에 확신에 차있는 것 등을 표현할 수 있다.


비언어적 방법


(1) 눈으로 → 잉크

(2) 얼굴표정 → 미소 짓는 표정, 입술이 떨리고 있는 것, 입을 다물고 있는 것, 입술이 부어 나온 것.

(3) 몸 짓 → 기분 좋은 몸짓.

(4) 수화 → 손가락으로 말하는 것.

(5) 글로서 전달 → 부부 끼리 메시지 남기는 것.


어느 연구발표에 부부의 간에 대화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7%이고, 목소리 효과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38%이고, 비언어적인 방법의 의사소통하는 것은 55%이다, 고 합니다. 전발이상은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부부간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오감이 어떻게 사용된다고 생각하십니까?


(1) 시 각


눈으로 봄으로서 상대방이 자기 의사를 소통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거동, 얼굴 표정, 걷는 표정 등를 보여줌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 주어 깨닫게 할 수 있습니다. 실제적인 예로는, 윙크, 미소로서 보는 것, 이 반대로 눈을 크게 뜨는 것, 찌푸린 얼굴로 하는 것, 쪽지로 보게 하는 것, 직장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 등이 있습니다. 시각적으로 반응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2) 청 각


문을 ‘꽝’닫고 나갈 때는 자신의 감정을 문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남편이 있는데도 아내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크게 내는 것도 남편에게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내가 설거지를 할 때에 요란하게 하면은 ‘아내가 기분이 안 좋구나.’라는 것을 알고 살며시 가서 아내에게 좋게 해주는 것하고 남편이 ‘왜 이리 설거지를 요란하게 해!’하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상대방이 화가 나있으면 자신은 유순한 태도가 나올 수 있을 때 성숙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경청의 태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남편이든 아내이든 말을 걸 때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저녁때 잠자는 시간에는 로맨틱한 음악을 틀어놓고 같이 서로 사랑의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감정에 있던 말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부부만의 둘이 들을 수 있는 분위기를 고조할 수 있는 좋은 음악이 있으면 때에 따라 틀어주면 좋습니다.


(3) 촉 각


얼굴의 볼을 살짝 만져주는 것,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엉덩이를 살짝 만져주는 것, 단 둘이 있을 때 적당한 부분을 장난스럽게 건드려주며 만져주는 것, 포옹하는 것, 살짝 입 맞추는 것, 잠잘 때 서로 붙어 자거나 손을 잡고 자는 것 등 이런 것은 말로 아닌 촉각을 가지고 사랑하는 의사전달인 것입니다.


(4) 후 각


향수 냄새를 맡게 해주는 것, 꽃을 사가지고 와서 아내로 하여금 꽃 냄새를 맡게 하는 것, 아내의 경우는 남편의 퇴근 무렴에 집안에 맛있는 음식 냄새를 풍겨주는 것 등 이러한 것도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5) 미 각


밥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 아내가 정성스럽게 밥을 해주었는데 맛있게 먹어주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음식에서 맛없는 것만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찬이 맛이 있으면 그 반찬을 가지고 맛있다고 말을 해줄 때 아내는 굉장히 좋아 합니다. 커피를 끓여서 마시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과 제 : 잠자리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을 때 어떤 사인을 주고받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출근할 때 아내에게 사인을 주면 아내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 종일 흥분된 마음으로 준비를 하게 됩니다. 아내가 먼저 남편에게 사인을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기분 좋지 않은 일이 혹시 있을지라도 그 감정을 추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리서 의사전달을 하는 것이 아름다운 부부 생활이 되어 질 수 있습니다.)


비디오를 통해서 흥분된 관계를 갖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오늘날 현대인들은 사랑의 관계를 갖기 위해서 극장에 가서 야한 영화를 보고 온다고 합니다. 비디오를 통해 사랑의 관계를 갖는 것은 좋은 점도 물론 있겠지만 좋지 않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서로의 사랑에 대한 뜨거운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좋지만 잘못하면 타락된 사랑의 행위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랑의 관계를 가질 때 남자는 다른 여자를 생각하며 아내를 대하기가 쉬우며 아내는 다른 남자를 생각하며 남편을 대하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상대방에게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음란비디오 통해 사랑의 관계를 가질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삼가 해야 할 것입니다.


아가서는 이러한 교훈을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아가서의 사랑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의 몸에 빠져서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가?


의사소통이란 생각이나 감정, 정보 등을 글이나 말,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거나 서로 교환하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에서 의사소통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의사소통을 통해서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의사소통을 나눌 때 긴밀한 관계로, 즉 좋은 관계가 형성이 되므로 중요합니다.


3. 의사소통에는 다양한 수준이 있습니다. 아래의 몇 가지 예를 하나씩 살펴보고, 지난 주 당신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실제의 예를 적어 보십시오.


(1) 친구로서의 일상적인 대화


비빌 없이 모든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는 친구처럼 이야기하는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첫째는, 삶을 함께 나누는 일이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일상적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삶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비밀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을 자신의 삶속에 참여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교제입니다.


둘째는, 깊은 대화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것 아무거나 이야기할 수 없는 사이라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 부모와는 일상적인 삶을 이야기 잘 하지 않지만 그러나 친구와는 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므로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부도 친구사이가 되어 깊은 대화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부부는 아내가 남편에게 할 말이 많은데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이 되고 마음의 병이되고 육신의 병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서로가 속마음까지도 말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2) 정보를 나눔


이웃에서 일어난 일, 교회에서 있었던 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 아이에게서 일어난 일 등이 있습니다. 자녀에 대해서 남편은 밖에서 사무적인 일을 하므로 잘 모릅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아이들에게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말을 해줄 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단점을 말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서로의 단점에 대해 정확하게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부부입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해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하루에 몇 시간이나 부부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제를 갖습니까?


☞ 부부와의 대화를 방해하는 것은 T.V나 신문입니다. 한자리에 같이 앉아서 T.V를 보고 다른 생각하는 것은 교제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교제를 갖는 것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가족 간의 대화를 많이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자녀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아이들은 문제아로 발전하기가 쉽습니다.


(3)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표현함 - 배우자에게 자신의 감정, 태도, 느낌 등을 나눔.


상대방에게 자신에 대해 말을 해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자신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좋은 교제가 아닙니다. 분을 품었을 경우에는 해지기 전에는 말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못마땅한 점이 있다면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아내들은 참고만 있는 것이 좋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깊은 사랑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표현도 해야 할 때는 해야 합니다. 꼭 고백해야 할 때 사랑의 고백을 하지 않으면 큰 오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사랑의 표현을 할 때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행위를 할 때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면 더 좋은 사랑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공부를 배우면서 남편에게나 아내에게나 사랑한다는 표현을 몇 번이나 해 보았습니까?


(4) (단기 또는 장기의) 목표를 함께 계획함.


남편이 직장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올 때에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집에 데리고 오면 아내는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리 아내에게 연락을 해주면 아내가 마음으로도 준비하고 집안을 준비하고 음식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신혼 때 이러한 것들 때문에 많이 다투게 됩니다. 또한 부부는 사업계획, 자녀들의 교육문제, 신혼부부는 가족계획, 친척들의 문제, 재산문제 등에 서로 의사소통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계획이나 스케줄을 이야기 할 때 유익한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상대방의 정신적인 긴장감을 풀어 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배우자에게 놀라운 지혜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아내는 장기적인 것을 보지 못하겠지만 그러나 순간적인 것은 아내가 더 지혜로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러한 것을 서로 이야기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남편이 자기 계획을 아내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은 아내가 걱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아내를 무시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계획의 비밀이 세어나갈 까봐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면서 부부간에 이야기하는 것은 부부간의 의사소통이 될 수 있습니다.


(5) 의견의 차이를 나타내거나 논쟁함.


화가 나도 상대방에게 표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투는 것도 자기표현입니다. 그리고 다투는 것도 성경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만 하라는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서로 자기 의견에 맞지 않는 것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참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문제점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감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싸워도 성경적인 방법으로 싸워야 합니다. 방법에 유의해야 합니다. 부부간의 이러한 표현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부가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공부를 통해서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6) 배우자를 성원하고 격려해 줌.


남편에게나 아내에게 칭친 해주는 것이 있습니까? 아이들만 칭찬해주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칭찬해주면 좋아합니다. 사람은 칭찬을 받으면 그것을 격려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잘하려고 합니다. (5)번의 서로의 문제점에 대해서 권면을 해주려면 먼저 칭찬부터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칭찬은 해주지 않고 문제점만을 지적하게 되면 상대방은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식사를 할 때 입을 다물고 먹는 것보다 먹으면서 음식에 대해 칭찬을 해주면 아내의 마음은 흡족해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식사할 때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면서 먹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식사를 다 하고나서는 ‘잘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하는 한마디가 아내에게 좋은 예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가정의 분위기가 좋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손님이 와서 이런 면을 보게 되면 좋은 본이 될 수 있습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며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7) 배우자의 말을 경청함.


서로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 해줄 때는 잘 경청하지만, 지적하는 말이나, 자신에 대해 나쁜 말은 경청을 잘하지 않습니다. 옛날 왕들은 충신들의 말은 잘 듣지 않고 간신들의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우리의 부부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 경청을 잘하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인격에 문제가 있어서 못할 수 있고 말하는 사람의 태도에 문제가 있어서 경청을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사람의 태도도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그 일을 멈추고 경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의 일곱 가지 중에 자신의 생활에서 미흡한 것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부족한 점을 깨닫고 서로가 더 좋은 의사소통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결혼은 부부간의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세워진 친밀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마음을 함께 나누는 친교를 갖기 위해서는 대화의 내용이 “가정과 자녀”의 수준을 넘어서 마땅히 일상생활의 여러 가지 일에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도록 힘써야 합니다. 당신은 이 모든 수준에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기술


좋고 나쁜 일에서 말이 갖는 엄청난 위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성경에서 올바른 혀 사용의 중요성에 대해 왜 그렇게 자주 이야기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성경 말씀들을 이해하고 적용한다면 배우자와 말로 서로 의사소통을 잘 하는 능력이 항상 될 것입니다.


4. 에베소서 4:15절을 읽고 아래에 열거한 것 가운데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표시하십시오.


(1) 어떤 말이든 사랑 가운데서 하는 한 별 문제가 안 된다. ( )


(2)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다. ( ) - 비 진리를 말할 수 있으므로 사실 그 차이를 말해야 합니다.


(3) “선의의 거짓말”도 부부 간의 의사소통에서 필요하다. ( ) - 선의의 거짓말은 나쁜 영향을 크게 미칩니다.


(4)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 것은 영적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 ) - 말을 돌려서 말하지 말고 사실 그대로 말을 해야 합니다.


정답 : (1)× (2)× (3)× (4)○


5. 에베소서 4:29절은 의사소통의 네 가지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당신은 아래에 주어진 두 가지 항목에 동의하십니까? 그리고 다른 두 가지 원리를 적어 보십시오.


(1) 배우자에게, 또는 배우자에 대하여 좋지 않은 말을 하지 말 것.

    예             아니오             


(2) 배우자에게 덕이 되는 말을 하고, 해가 되는 말은 하지 말 것.

    예             아니오           


(3) 배우자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항상 좋은 말을 골라해야 합니다.


당신은 ‘항상, 그래’, ‘당신은 한 번도 잘 해준 적이 없어’라는 말은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항상, 한번도). 단정적인 말을 사용하면 좋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거스르게 되는 언어입니다.


(4) 배우자에게, 은혜와 기쁨을 주려는 목적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랑해’라는 말은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말은 상대방에게 감정적으로 기쁨을 주는 말입니다. 그러나 과거를 말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싸울 때).


6. 다음 성경 구절을 읽고 건설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적어 보십시오.


(1) 이사야 50:4 → 격려하는 자가 될 것.


(2) 에베소서 4:26~27 → 쉽게 화를 내지 말 것.


분노를 해결하는 것도 쉽게 화를 내면 좋지 않습니다. 계속 냉전 상태로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화를 내지 않고 상대방에게 의사 전달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3) 에베소서 4:32 → 용서하는 자가 될 것.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해도 이해와 용서하려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잘못의 고백을 마친후에는 상대방에게 용서하는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4) 시편 141:3 → 함부로 말하는 자가 되지 말 것.

입술을 제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입술을 제어하는 것이 힘들지만 성령께 의뢰하면서 기도하면서 훈련하면 할 수 있습니다.


(5) 잠언 12:25 → 선한 말을 하는 자가 될 것.

항상 자신의 말에는 선한 말이 나와야 합니다. 상대방이 들으면 기쁜 말, 은혜가 되고 성장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려면 자신의 마음을 항상 선하게 가져야 합니다. 악한 마음에서는 선한 말을 할 수 가없는 것입니다.


(6) 잠언 15:1, 4 → 유순한 말을 할 것.

역시 유순한 말을 하는 데에도 마음이 유순해야 합니다. 아름답고 유순한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말에도 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투정하는 말투, 시비를 거는 말투로 상대방에게 하면 안 됩니다.


(7) 잠언 15:28 → 깊이 생각하고 말할 것.

생각 없이 하는 말은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고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8) 잠언 21:23 → 입과 혀를 잘 지키는 자가 될 것.

말 한마디 때문에 가정에 불화를 일으키고, 말 한마디 때문에 상대방 마음을 괴로워하게 만듭니다. 또한 자기 스스로가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잠언 18: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사람은 자기 혀의 열매를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스스로 괴로워하고 함정에 빠지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건설적인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는 비결은 말 제간 보다는 인격적인 것입니다. (1)~(8)은 사람의 인격과 관계가 있습니다. 인격적으로 성숙 되어야 건설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인격적으로 바로 되어 있지 않고는 건설적인 의사소통을 바로 할 수 없습니다. 인격자체를 성숙시키고 주님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 좋은 부부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것들


7. 사랑의 대화를 깊게 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다음 성경 구절을 읽고 의사소통을 할 때 피해야 할 것들을 적어 보십시오.


(1) 잠언 11:12 → 멸시하는 말.

상대방에게 무시하는 말 한마디가 일평생 마음에 상처를 심어 줄 수 있습니다. 멸시나 무시하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2) 잠언 11:13 → 비밀을 누설하는 것.

비밀을 누설하면 상대방에게 신뢰심을 잃게 됩니다. 신뢰심을 잃게 되면 다시는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잠언 12:16 → 쉽게 화를 내는 것.

화를 내면서 말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겁을 먹어 다음에는 말을 주저 하게 됩니다.


(4) 잠언 12:18 → 날카로운 말.

칼로 찌르듯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5) 잠언 12:22 → 거짓말.

일상생활에서 거짓되이. 하는 말, 위선적인 말, 꾸밈이 있는 말들은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6) 잠언 18:2 → 자기 말만하려고 하는 것.

자기 의사만 일방적으로 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왜 이것이 방해가 되는가는 상대방이 생각하기를 ‘내가 이야기 할 때 자기 생각만 이야기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므로 후에는 이야기를 잘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7) 잠언 18:13 → 끝까지 들어주지 않는 것.

상대방의 말을 다 들어 보지 않고 중간에 말을 끊어 자신의 말만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부부가 상담을 하는데 남편이 먼저 말을 시작하였으면 그 말이 끝나기까지 아내는 옆에서 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지 못하고 중간에 끼어드는 것은 좋지 못한 것입니다.


(8) 잠언 21:19 → 투정하는 말.

똑같은 말이라도 좋은 말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투정하는 말, 좋지 않는 감정이 들어 있는 말은 좋지가 않습니다.


(9) 잠언 29:20 → 조급한 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나서 뒤에 자신은 뒤끝이 없으니까, 라고 말하는 변명식의 말은 좋지 않습니다.


(1)~(9)번까지는 인격적이고 성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말 제간 가지고는 온전히 되지 않습니다. 좋은 의사소통, 즉 좋은 대화를 하려면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인격의 변화가 없으면 좋은 의사소통을 나눌 수 없습니다. 부부 간에도 서로 주님을 닮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형상을 닮아 갈수록 좋은 부부가 되고 아름다움 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죄 된 생각 옛사람의 성품 가지고는 좋은 부부의 의사소통을 나누는 데는 방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내 자신이 자라려고 하고 변화를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배우자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배우자를 얕보거나, 배우자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다짐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의사소통의 발전을 위한 거보를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8. 분노는 실제로 일어납니다!


(1) 다음은 분노에 대하여 진술한 내용입니다. 옳은지 그른지 표시하십시오.


1) 옳다  그르다

모든 인간은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2) 옳다  그르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화를 내서는 안 된다.


3) 옳다  그르다

침묵은 분노의 감정을 해결하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


4) 옳다  그르다

공격적인 감정을 깨닫고 해결해야 한다.


정답 : 1) 옳다, 2) 그르다, 3) 그르다, 4) 옳다


2. 야고보서 1:19~20절은 성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미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내기를 더디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디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하여도 성내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고 다른 인간관계를 방해하며 복음전도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결코 성내는 것은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배우자와 의견이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의견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기꺼이 인정하십시오.



이전까지는 의사소통을 위해서 인격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기술적인 면에서 혀를 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혀는 어릴 적부터 길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야고보서 3:1~12절은 혀를 다스리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을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9. 혀를 무엇에 비유하고 있습니까? 3~6절


나를 길들이는 제갈, 배를 운전하는 키, 큰 산을 불태우는 작은 불씨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혀가 영향을 끼치는 범위가 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을 좌우합니다. 큰 산을 불태우는데 작은 성냥개비 하나로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결혼생활 전체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혀입니다. 혀는 지옥 불처럼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훈련되지 않는 혀는 결혼생활 전체를 파경으로 이끌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10. 7절과 8절에서 어떻게 묘사되어 있습니까?


사나운 들짐승은 길들일 수 있어도 혀는 길들이기는 어렵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혀는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3:13절에 무덤에서 썩은 악취를 발하듯이 우리의 목구멍에서 죽이는 악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독 같은 저주의 말이 우리의 목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저희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정의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1. 9~12절이 뜻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당신 자신의 말로 쓰십시오.


일관성 있는 혀를 사용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한편으로 인간을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모순된 것입니다. 자연은 한 우물에서 쓴물, 단물을 내는 우물은 없습니다. 이처럼 자연은 모순을 나타내지 않지만 그러나 사람의 혀는 모순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혀를 다루는 데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적 용


배우자에게 이야기 하려고 할 때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는가? 를 생각해보며 대화를 나누어 보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훈련이 되지 않는다면 부부 사이에는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서로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해와 용서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해 보십시오.


1) 부부 간에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각자 바라고 있는 바를 이야기해 보십시오.


2) 의사소통을 발전시켜야 할 영역 한 가지를 지금 함께 결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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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베려 - 성숙한 결혼 생활


배우자와의 관계는 “자신”을 어떤 위치에 두느냐에 따라 서로 동등한 관계일 수도 있고 상하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에 앞서, 배우자의 행복과 기쁨을 꾸준히 앞세우는 부부는 성숙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5절에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상호 배려 원리의 핵심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서 이 말씀을 실천에 옮긴다면, 당신은 결혼 생활을 위해 가장 훌륭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우자에게 얼마나 배려해 주느냐에 따라 결혼 생활의 성숙의 척도가 됩니다. 배려는 둘이 한 몸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영역 중에 하나입니다.


배려란 무엇인가?


1. “배려”란 무엇인지 당신 스스로 정의해 보십시오.


상대방을 생각해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보다는 상대방의 필요를 더 생각하고 채워주는 것입니다. 심부름을 보낼 때도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과 한국 사람을 나누어 본다면 서양 사람은 일에 대한 결과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한국 사람은 그 사람이 가다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까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더 갖습니다. 일의 성취나 목적을 달성하는 것보다도 그전에 그 사람 자신을 더 생각하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도와주는 것이 배려입니다.


기독교의 리더십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Take orientation leadership(테이크 오리엔테이션 리더십)과

people orientation leadership(피플 오리엔테이션 리더십)이 있습니다.


Take orientation leadership은 과업중심의 리더십을 말하며, people orientation leadership은 사람 중심의 리더십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후자의 경우가 배려있는 리더십입니다.


아내가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그 일을 하게 하는 것이 배려입니다. 이것이 부부생활에서 중요합니다. 배려하는 생활에서 사랑이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2.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물어 보고 그들의 정의를 하나만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토의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발표하는 건들도 적어 보십시오.)


여기서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배려에 대한 의미를 서로 생각해 보자는 내용입니다. 서로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지 말고 마음의 문을 열어 토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더 폭넓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결혼생활의 성숙과 배우자에 대한 배려는 성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배려의 방법들을 적어 보십시오.


예로서, 아내가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중에 아이들을 깨우고 이브자리를 정리하는데, 남편은 앉아서 신문만 보고 있는 것은 아내에 대한 배려의 자세가 못됩니다. 아내가 어떠한 일을 하고 있으면 남편은 아내의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해주는 것이 아내에 대한 배려의 자세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 못한 것만 지적하는 것은 배려가 아닙니다. 못한 것도 있지만 잘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중에서 잘한 것 가지고 칭찬해주면서 음식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배려해주는 것입니다. 배려를 할 수 있는 남편이나 아내는 도와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구약의 율법이 의문을 강조한 것이라면 신약의 은혜는 배려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시대는 잘잘못만 따지지만 신약의 은혜는 주님이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은혜는 배려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바탕으로 우리가 더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로마서 7:1~3절을 보면 율법과 은혜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내가 율법적 남편과 함께 살면 힘들고 피곤합니다. 이러한 생활을 살아가는 아내는 남편의 눈치만 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율법적인 남편이 죽고 은혜의 주님이 오셔서 배려해주니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배우자 중의 어느 하나가 배려해주지 못하므로 배우자가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배려에 대한 도표를 보고 당신의 배려의 넓이는 어느 정도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도표 2. 배려함에 꾸준하게           성장하는 성숙도

 

     

도표 1. 배려함에 꾸준하지           못한 성숙도

 


여러분들은 결혼 생활에서 배우자에게 배려의 성숙함은 어느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까? 결혼 생활의 성숙도는 얼마나 배려하느냐 달려 있습니다. 배려가 많을수록 결혼의 성숙도는 높아지게 됩니다.


4. 지금까지 결혼 생활을 해오면서 배우자에 대한 배려가 성공적인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예를 구체적으로 몇 가지 들어 보십시오. (배려에 대한 내용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배려로 인해 성공사례들을 말해 보십시오. 서로 이야기함으로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배려가 없으면 자주 다툼이 생기게 됩니다. 예를 들면, 신문 보는 것,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때 편한 자리 갖는 것, 잠자리를 들 때 편한 자리 갖는 것 등을 가지고 다투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것은 자기중심이지 배려가 없는 것입니다.


방 청소해준 적이 있습니까?

잠자리를 갖고 나서 이브자리를 정리한 적이 있습니까?

집안에 갈래질 해본 적 있습니까?

화장실 청소를 잘해줍니까?


참고적으로, 배우자를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책임을 강요하고 책망으로 하는 것은 변화를 시킬 수가 없으며 그것은 율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에게 배려해줄 때 변화하고 성숙해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배려를 게을리 하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아내가 성숙하지 못하고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데이비드 메이스 박사는 “불행한 결혼 생활이란 없다. 다만 성숙하지 못한 부부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기초가 되는 성경 말씀


5. 에베소서 4:2절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각 항목을 풀이 하십시오.


(1) 아래에 열거한 것 가운데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에 해당된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표시하십시오.


1)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 )

2) 상대방이 먼저 사고할 때까지 기다린다. ( )

3) 상대방을 도울 방법들을 찾는다. ( )

4) 상대방에게 지나친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 )

5) 어떤 것을 요구하고자 할 때는 시기가 적절한지 생각해 본다.( )


정답 : 1)○,  2)×,  3)○,  4)×,  5)○


(2) “오래 참음으로”라는 말씀을 생각할 때, 다음 중 당신이 실행하기에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에게 적용해보는 것입니다)


1) 거스리는 말이나 불평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2) 대답을 하거나 반응을 보이기전에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

3)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는 것.

4) 일이 계획했던 대로 안 될 때 화내지 않는 것.


▶ 오래 참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해 보십시오.(토론)


참고적으로, 디모데전서 1:16절에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주님은 오래 참으신 분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나에 대해서 오래 참으셨고, 믿음이 자라지 않고 미성숙한 행동을 한 나에 대해서 주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성숙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잘한 것이 무엇이 있었습니까? 처음부터 잘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주님이 오래 참으신 덕분에 이만큼 자랐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우리도 주님처럼 하라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특별히 배우자에게 오래 참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이 많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겠지만 오래 참아야 합니다. 오래 참으면서 배려해 줄 때 언젠가는 놀랍게 성숙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으로 부부 생활에 적용하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에는 어떤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까?


상대방이 성경적으로 틀리지 않는 한 자신하고 다른 면은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하고 다르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배려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 이러한 용납이 가정에서 필요한 이유는?


첫째, 지금까지 성장해온 배경이나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장해온 환경이 다르므로 생활 습관이나 행동이 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장할 때는 자신의 아버지의 인상이 깊이 싶어져 있는데, 자기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불도 짚어주고 설거지도 해주고 물도 길러다주는 배려 있는 아버지 속에서 살다가 결혼해서 자신의 남편이 자기의 아버지처럼 배려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성장할 때 보아왔던 자신의 아버지처럼 남편이 못해주면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이 경우는 자기 자신의 성장해 왔던 환경만 보았지 상대방의 성장의 환경은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자라온 배경과 환경을 생각하며 이해와 용납하는 배려가 있을 때 부부 생활은 성숙해집니다. 


둘째, 남자와 여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얼굴의 모양만 다른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나 내적인면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목표의식이 강해 사리적이고 논리적입니다. 이러한 남자는 잘잘못을 잘 따집니다. 여자는 목표의식으로 사는 것보다는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잘못을 했어도 남편이 잘못했다고 추궁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오히려 남편이 큰 사랑으로 이해해주기를 원합니다. 남편이 이렇게 해줄 때 아내는 미안한 마음을 가져 더 잘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이렇게 다른 면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성 프란시스코의 기도문 중에서,


“주여 내가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게 도와 주소소”

6. 빌립보서 2:3~4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각 항목을 풀이 하십시오.


(1)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남편들에게 있어서는 자기 위신을 지키려고 하는 말, 자기가 남보다 낫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아내에게 하는 행동, 또는 남편이라고 해서 아내에게 굴림 하려고 하는 행동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아내들에게 있어서는 집안이나 친정의 학문 같은 것을 자랑하려는 것, 남에 탓하는 말 등이 다툼이나 허영의 말이 되는 것입니다. 


(2)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은 당신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뜻입니까? 당신에게는 어떤 뜻으로 이해됩니까?


당신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게 권리가 있는 만큼 자신의 배우자에게도 이러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만 아내에게 추궁할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도 남편에게 추궁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존중해야 합니다.


민수기 12:1~1절에 보면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추궁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아론과 미리암의 말 자체에는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문제가 되었던 것은  무엇인가? 이유는 용서를 무시하는 태도였기 때문입니다. 말 자체에는 옳은 말이라고 볼 수 있지만은 모세에 대해서 겸손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보였습니다. 자신들이 더 높은 것 같은 태도로 모세에게 공박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외적으로 한 말은 옳아도 그 태도가 겸손치 않으면 하나님께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에 겸손한 자세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또한 항상 이러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3)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는 말씀을 당신의 결혼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하겠습니까?

남편은 아내의 기도 시간이나 성경 공부하는 영적인 시간을 배려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 정당한 곳을 택하여 여행이나 드라이브를 같이 하는 것도 배려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이 직장에서 긴장으로 인해 쌓였던 피로를 풀어 줄 수 있는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의 긴장해소 시켜줄 때 그 열매는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똑같은 말을 해도 다툼으로 허영으로 하지 말고, 자신의 일을 하면서 상대방의 일도 도와줄 수 있는 배려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사랑의 방법입니다. 이렇게 할 때 부부 생활의 성숙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부부 사이에 마음을 속상하게 했던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서로 말을 해보십시오.


에베소서 4:2절이나 빌립보서 2:3~4절을 암송하고, 조그만 카드에 기록하여 책상 위, 세면장 거울, 주방 벽 등 눈에 잘띄는 곳에 붙여 두고 수시로 묵상하고 실천하십시오.


간단한 몇 가지 지침


7. 성경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 대한 지혜로운 조언들이 가득 실려 있습니다. 다음 각 성경 구절들을 읽고, 배려의 원리를 찾아 기록하십시오.


(1) 골로새서 3:19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무관심하거나, 이해를 못해줄 때 괴로워 할 수 있습니다. 괴롭다는 것은 마음에 상심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내가 오랜만에 머리를 가꾸었는데 알아주지 않을 때 화장을 다르게 했는데 무관심할 때 아내들은 상심해 합니다.



(2) 고린도전서 13:4


서로 인격적으로 대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상대방에게 오래 참고 온유함으로 대해주며 관용하고 겸손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가깝다고 해서 합부로 하는 것은 사랑을 깊어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3) 베드로전서 3:7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보호하라고 하였습니다. 약하다는 것이 몸만 약한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약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깨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약한 아내를 항상 보호해주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어느 일이 괴롭움에 있으면 아내는 더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고린도전서 7:3~5


서로 자기 몸을 주장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적인 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성적인 배려를 해주라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몸을 주장하면 안되고 피차 만족하고 기쁨을 누리도록 해야합니다. 성적인 면에서 남편이 먼저 생각할때가 있고 아니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아내가 먼저 생각할때가 있고 아니할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성적인 트리블이 생길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피차가 자기 몸을 주장하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상대방을 위해서 있는 몸이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성적인 트리블을 막기위해서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5) 갈라디아서 5:26


자기 영광을 취하려고 격동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들 앞에서 자기 존재를 더 과시하려고 상대방의 무시하는 행위는 자기 영광을 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6) 로마서 12:10


서로 먼저 존중해주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대접을 받으려면 왕으로 대접을 해주라’는 말이 있듯이 상대방에 대해서 먼저 존중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8.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은 구애할 당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결혼 생활에도 똑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래에 열거한 항목에서 자신을 평가해 보십시오.


(1) 용모


연애시절에는 모든 면에서 신경을 많이 썼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것보다는 남편의 외모나 자녀의 외모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쪽에 있습니다. 남편이나 자녀의 외모에 신경을 쓰듯이 자신의 외모에도 가꾸어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도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2) 배우자에대한 태도(만약 당신이 왕 같은 대우를 받고 싶다면, 아내를 왕비같이 대해 주십시오. 또한 왕비 같은 대우를 받고 싶다면, 남편을 왕같이 대해 주십시오!)


아이들앞에서 합부로 말하지 않는 것, 타인 앞에서 약점을 합무로 말하지 않는 것, 친정에 가서 배우자의 약점을 말하는 것 등, 이러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순간에는 그냥 웃고 넘겨도 마음에는 좋지 않는 감정이 남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의에 그릇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3) 예의


길을 갈때나 차를 탈 때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일상생활에서도 지켜야 할 것이 있듯이 가정에서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옷입는 것, 부부 사이에 말하는 것, 자녀 앞에서 하는 행동들 등등이 있습니다.


(4) 사랑과 감사에 대한 사려 깊은 표현


감사하다는 말이 있는데, 예로서 식사후에 남편이 아내에게 ‘참 잘먹었다’고 하는 말이나 또 자녀들이 식사를 하고 ‘잘먹었습니다’라는 습관이 있으면 좋은 분위기이고 아름다운 가정 생활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부부 간에 서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너무 합무로 대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즉 예의가 없는 행동들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깊은 사랑을 하는데 장애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최소한 것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단둘이 있을 때는 말을 낮추어도 되지만은 일상적인 용어가 되어 서는 안됩니다.


※ 말을 낮추어도 상대방이 감정이 상하지 않는 사랑의 말이어야 합 니다.


적 용


1) 이 과를 공부하면서 지금까지 배우자에 대해서 충분히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영역들 가운데서 당신이 가장 중점을 두고 고쳐야 할 것을 한 가지 적어 보십시오. (여기에서는 서로 한가지씩 이야기 해보는 시간입니다.)


2) 당신이 이것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지금부터 일주일간 이것을 점검할 방법을 찾아 보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점검해 달라고 부탁해도 좋고, 달력에다 표시해도 좋으며, 수첩에 간단히 적어 두어도 좋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한 가지 취하여 그냥 흐지부지 슬쩍 지나가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부부가 상의해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적어서 이야기 해주자라고 약속을 하면 좋습니다. 약속한 대로 서로의 잘못한 것을 말해주었을 때는 좋은 의도로 받아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좋은 점으로 훈련이 되어 집니다. 이러한 부부를 진정한 Checking friend(채킹 프랜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면이 없으면 변화되기가 힘듭니다. 결심가지고도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심은 5%에 불과하지만 95%는 서로가 채킹을 통해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 약


부부 간에 서로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 일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 배도록 서로가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부부는 세세한 면에서까지 깊은 관심을 기울여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킴으로써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 깊은 배려를 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서로에게 점차 무관심하게 되고, 가장 친밀한 가운데서 함께 삶을 나누어야 할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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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과 결혼 생활에 있어서의 성(性)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은 하나님 자신의 지혜와 계획에 따라 인류의 번성과 부부의 즐거움 및 부부를 진정한 하나로 만들어 주는 사랑의 표현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성에 대한 청교도주의의 어둡고 부정적으로 왜곡된 이미지나, 성적인 제한을 모두 풀어 버린 완전한 성의 해방을 부르짖는 “신도덕”이나 다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성이 하나님의 선하신 선물임을 분명히 이해함으로써 성이 부부를 연함으로 이끄는 힘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이 한몸을 이루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적인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적으로 하나가 되는 성적 연합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성적 연합은 부도덕이나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선물이라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기독교 일각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에 대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머리에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세상의 죄악된 성에서 오는 인식입니다. 잘못된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의 선입관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부부의 간의 성에 대해 이러한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입견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혼에서 성의 목적


성경에서는 세 가지 내용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출산을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인류의 번성을 위해서입니다.

셋째는, 경건의 생활로 아이를 출산해 아이를 경건하게 잘 길러야 합니다. 이 세가지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우리의 의무입니다. 


1. 자손


(1) 창세기 1:27~28절에서 인류의 번성에대하여 아담과 화와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


(2) 창세기 4:1절에서, 그들은 인류의 번성을 위한 하나님의 근본적인 계획에 어떻게 순종했음을 볼 수 있습니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종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나님의 성에 목적에 순종하여 출산하는 것이 성의목적입니다. 요즈음은 다른 목적으로 인해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결혼 생활이 아닙니다. 자녀를 낳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경건하게 잘 키우는 것도 사역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산아제한(産兒制限)에 대해서는 후에 배우게 됩니다.)


2. 연합


육체적인 결합을 통해 둘이 하나가 됩니다. 두 사람이 온전하게 하나가 되기 위해서이며,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육체적으로 결합을 이루는 것이 성의 목적입니다.


(1) 마태복음 19:5~6절에서 예수님은 결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적인 연합이 부부가 하나 되는 데 어떻게 이바지 한다고 생각합니까?

부부의 예정을 최대로 표현하는 기회가 됩니다. 내가 사랑한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이 성적인 연합입니다. 또 교제를 깊이 나눌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서로 몸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고 육체의 분비물까지라도 서로 하나로 나누는 기회가 성적인 연합에서 이루어 집니다. 이러한 기회로 서로 만족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 서로를 깊이 알게 되고 깊이 신뢰할 수 있고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면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확실하면 가정의 바른 생활에서나 주님을 섬기는 교회 생활에서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서로 신뢰하고 서로 깊이 하나가 될 때 바른 가정생활이나 주님을 섬기는 생활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기 때문에 모든 일상생활도 활기가 넘치게 됩니다.


모든 부부의 문제는 사랑의 행위를 올바로 갖지 못하는 데에서 발단이 되어집니다. 이러므로 다른 문제가 파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행위를 가질 때 상대방의 배려가 없이 자기 중심으로 성행위를 끝낼때는 상대방이 만족하지 못하므로 불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서적으로도 불안하게 됩니다. 


(2) 부부간의 성생활에 관한 분명한 지침이 고린도전서 7:2~5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 구절을 잘 읽어 보고, 다음 내용 중에서 옳으면 ○, 틀리면 × 표를 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간단히 적어 보십시오.


1) 남편과 아내는 둘 다 결혼 생활을 통해 충족되어야 할 성적인 욕구와 필요를 가지고 있다.


성관계는 어느 한쪽의 만족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배고플 때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욕구이지 금지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피차가 만족을 누려야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2) 각자는 전적으로 자기의 남편이나 아내를 위해서 자기 몸을 보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경건생활이나 도덕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자기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몸을 준다는 것은 음행이 됩니다.  몸만 아니고 마음도 감정도 다른 사람을 인해서 소모하게 되면 죄가 됩니다. 성적인 면에서는 배우자의 생각을 해야지 다른 생각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성경에 보면 음욕을 품는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욕망 때문에 몸으로만 아니고 마음으로도 다른 남자에 대해 소모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3) 각자는 자기 자신의 성적 필요보다 배우자의 성적 필요를 먼저생각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관계는 사랑의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적연합은 사랑의 행위입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마음으로 성관계를 가져야 하며 상대방의 요구에 더 배려를 해주어야 합니다. 즉 이기적인 성관계가 되면 안됩니다.

여자는 일반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몸도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와 반대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이 아닌 성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남자가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4) 남편과 아내는 서로 상대방의 성적 요구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첫째는, 자기가 자기 몸을 주장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로 하여금 주장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결혼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몸이 자신의 몸이 아닙니다. 배우자의 몸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표현에 대해서 인색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성관계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부부 간에는 가장 아름답고 신성한 것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데 인색해서는 안되므로 성적요구에 대해 거절하면 안됩니다.


5) 성생활의 절제는 서로의 합의에 따라야 한다.


성적인 절제는 서로 합의에 따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절제가 핑계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너무 지나쳐서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성관계가 지나치면 광적인 음욕에 사로잡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서로 합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위해서 성관계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절제자체도 연합을 의미합니다. 더 효과적인 연합을 위한 것입니다. 밤마다 꼭 사랑 행위를 가져야 만이 연합이 아닙니다.


6) 성생활의 절제는 오래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성관계는 규칙적이면서 계속적이어야 합니다. 성관계를 오래동안 갖지 않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7) 오랜 기간 동안 성생활을 절제하면 배우자로 유혹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사탄의 유혹이 따릅니다. 다른데에서 만족을 찾으려는 유혹이 생깁니다. 경건생활을 위한다고 해서 오랜 기간동안에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 어떤 모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은 토요일에 온전한 성관계를 갖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일날 성적인 유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참고적으로 팀라헬 목사가 쓴 ‘아름다운 애정생활’이란 책이 있습니다. 구입해서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답 : 1)○, 2)○, 3)○, 4)○, 5)○, 6)○, 7)○


3. 즐거움


육체적인 즐거움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을 주신 것입니다.


(1) 잠언 5:15~19절은 결혼 생활에서 성의 또 다른 목적을 보여 줍니다. 성은 삶을 함께하는 부부의 즐거움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주시는 교훈을 한두 문장으로 요약해서 적어 보십시오.


남편은 성적 쾌락의 대상이 자기 아내인줄 알고 아내와 즐거움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성의 즐거움은 제한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아내에 대해서 “우물이다”, “샘물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물이다”, “샘물이다”라는 표현은 시원함을 주는 표현입니다. 즉 아내는 남편에게 시원함을 주는 근원임을 뜻합니다. 내가 이 샘물을 마시지 안이하면 거리로 흘러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적 즐거움을 자기 아내와 함께 누리지 않으면 이 샘물이 다른 거리로 흘러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 부부는 정기적으로 성생활을 즐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부부는 서로 상대방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성행위시 자신을 상대방에게 완전히 줄 때에만 서로의 성적 충족이 가능합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자기를 주는 태도로 봉사할 때 만족과 즐거움이 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즐거워하는 비결이 봉사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사랑의 봉사가 결국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게 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으로 만족시켜 주려고 노력해야 되고 아내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성적인 즐거움은 사랑가운데서 오는 즐거움입니다. 특별히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확신할 때 만족과 쾌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봉사하는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럴때 서로가 즐거워하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자기 중심이나 일방적인 성생활에서는 이러한 즐거움이 없습니다. 봉사적인 사랑을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신 것입니다.


(3) 아가 7:6~10절은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대화의 일부입니다. 이 구절에서 육체 관계의 즐거움을 나타내는 것들을 찾아서 당신 자신의 말로 적어 보십시오.


서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서 즐거움이 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가서 7장에서는 서로 성적관계를 가지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서로를 즐거워하는 대화 내용입니다. 다시말하면 레브 스토리(Love story)를 말합니다. 레브 스토리가 있는것하고 없는 것하고는 즐거움의 차이가 있습니다. 감정이나 상대방의 신뢰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역시 즐거움이 오는 만족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표현이 성행위가 되어야 하고 또 아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몸자체를 즐거워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도 아내의 몸에대해서 말하기를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포도송이 같구고, 네 콧김은 사고 냄새 같고,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내의 몸을 집착해서 사랑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성자체가 항상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고 어떤 적극적인 사랑을 통해서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1)번은 자기 아내와의 즐거움이고, 2)번은 봉사하는 태도로 사랑을 할 때 즐거워 하고, 3)번은 서로 사랑의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관계를 가질 때 즐거움이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경우는 이러한 관계가 있을 때 참 즐거움이나 만족을 느낄 수 가 있습니다.


성의 신성함


4. 히브리서 13:4절을 당신 자신의 이해한 말로 풀어 쓰십시오.


성은 아무하고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귀히 여겨야 합니다. 본문에 “혼인을 귀히 여기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성관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성생활까지라도 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부부의 선을 넘는 것은 성을 더럽히는 죄가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을 기억하거나 다른 사람을 즐기거는 것은 거룩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내와 성관계를 가져야 성의 신성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선을 넘는 것은 성을 더럽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더럽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5. 성경은 난잡한 성관계는 거룩한 삶과 조화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반대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8절은 성적인 책임에 대해서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성적 부도덕을 삼가야 하는 첫재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거룩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거룩할 때 우리에게는 축복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도덕적인 성생활은 부부와의 신성함을 살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을 통해서 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축복이나 즐거움을 살아질 수 있습니다.


(2) 4절에 의하면 남자는 거룩함과 준귀함으로 자기 아내 취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왜 당신은 이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첫째로, 이방인들과 성생활이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라는 명칭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된자라는 뜻입니다. 세상과 분리된 가장 큰 증거는 성생활에서 깨끗함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성에대한 개념은 음란하고 부도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생활에서 이방인들과 달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도덕을 피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매력은 거룩한 생활에 있습니다. 보면적으로 세상 사람들도 우리가 하는 것을 잘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은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지만 마음은 원해도 거룩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거룩한 삶이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적으로 부도덕하면 안됩니다.


둘째로, 성욕에 사로 잡힌 생활을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4, 5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너무 성적인 도착에 빠져 있는 생활, 즉 성애주의자(性愛主義者)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도덕한 삶을 피해야 합니다.


(3) 3절과 5절은 성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과 일치된다고 생각하는 항목들에 표시하십시오.


1) 결혼의 주된 목적은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2) 성관계는 결혼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3)  남자는 자기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아내를 두어야 한다.

4) 성에 대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는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정답 : 1)×, 2)○, 3)×, 4)○


(4) 6, 7, 8절은 성적 부도덕을 피해야 하는 다른 이유를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 남을 해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도덕한 성, 즉 분수를 넘는 성관계는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대생하고 교수하고 눈이 맞아 사랑한다고 성관계를 갖는 것은 원수 맺는 행위입니다. 교수는 부인을 해치는 것이 되고 여대생의 일생을 해치는 것이 되며 여대생은 교수 부인에게 원수 맺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관계는 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상황윤리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어떤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이웃을 해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윤리는 잘못된 윤리이고 또한 죄의 윤리입니다. 그리고 질서가 없고 도덕적인 면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2) 주께서 신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원해 주신다는 말은 원수를 갚아 준다는 말입니다. 부도덕한 생활을 하나님께서 갚아준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이되고 다른 사람과 원수 맺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과 좋아서 성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은 아내가 싫어하는 것이고 여러 사람과 원수 맺는 것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거룩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을 택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6. 말라기 2:13~1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성실한 결혼 생활을 할 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조강지처를 버리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조강지처를 버리거나 학대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고 기도의 응답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버림받은 아내의 눈물과 탄식이 하나님과 나와의 단을 가리운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기도해도 응답이없고 하나님의 축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원리를 통해서 경건한 자녀를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의 원리를 벗어나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 구약 시대의 성도 욥은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요한 서약을 했습니다.


(1) 욥기 31:1~4절에 있는 욥의 서약을 기록하십시오.


욥은 자기 문과 언약을 세웠습니다. 자신이 처녀에게 주목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였습니다. 욥은 다른 여자를 성적으로 자기 아내보다 좋게 생각하거나 상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이 아니고는 자기 남편보다 더 좋게 생각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죄가 됩니다.


(2) 욥은 왜 이러한 행동을 취한다고 했습니까?


욥은 하나님을 두려워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고 감찰하시고 세시고 계시는데 다른 여자를 주목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 하나 세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상하게 살펴보시고 계십니다. 다른 여자에게 주목하고 관심을 두었다가 이져버렸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다 세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축복이 없고 오히려 재앙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군핍과 환난이 온다고 했습니다.


욥이 부유하게 살았던 것도 성적으로 깨끗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여자에게 주목하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군핍과 환난을 줄거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욥의 믿음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부부 간의 성적 사랑의 행위를 묘사하는 데 “알다”라는 단어를 흰히 사용합니다. 부부 간에 상대방을 안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나 지적인 인식 훨씬 그 이상의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가능한, 가장 깊은 지식을 서로 교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 사이에만 성생활을 허락하심으로써 성을 보호하십니다. 그 이유는 결혼이 사랑을 발전시키고 성숙하게 하는 최선의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성생활이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질 때 그것은 결혼 생활을 더욱 풍성하고 성숙하게 하지만, 결혼의 울타리 밖에서 행해진다면 추악하고 파괴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여기에서 “알다”라는 말은 체험에서 안다는 것입니다(체험적 지식, 경험적 지식). 하나님은 남편외에는 아내를 알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성적으로 부부외에는 알지 못하도록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에 대한 계획입니다. 이렇게 하지않으면 무서운 결과가 오고 파괴가 옵니다.


일반적인 지침들


본과는 성적 기교에 대한 지침을 주려는 의도로 쓴 것이 아닙니다. ㅈ어진 성경 말씀들은 당신의 성생활을 위한 하나님의 전체적인 모적과 방향 및 범위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각 부부마다 문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마땅히 성적으로 서로 적응해 나가며 풍성한 성생활을 누리기 위한 기술들을 배우는 일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다음 성경 말씀들은 부부가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들입니다.


8. 사도행전 20:35절은 성생활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제시된 원리를 성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상대방에게 주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봉사하는 태도 써비스하는 태도를 가져야 아내가 만족하고 즐거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적인 면에서 아내가 만족하게 되면 남편에게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이 돌아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밥상에 반찬이 달라질 수 있고, 얼굴 인상이 달라 질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좋은 일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처럼 ‘주는 것이 복이 있다’는 것처럼 봉사하는 태도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9. 빌립보서 2:3~4절은 배려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생활에 연관지어 보십시오. (성적인 생활에서 원리적용입니다.)


(1) “다툼이나 허영”(이기적인 태도)은 성생활에 어떤 해를 가져옵니까?


이기적인 마음은 성행위에서 불쾌감을 가지게 만듭니다. 성관계를 가져도 가기 중심으로 가기 만족을 갖기 위해서 하는 것은 상대방이 불쾌감을 갖게 되어집니다. 불쾌감이 쌓이면은 아내는 성관계 갖기를 싫어합니다. 이러한 상태로 더나아가게 되면 노이로제 현상과 불감증 증세로 발전하기 쉽습니다. 마지막에는 해결하지 못하는 궁지에 빠지기게 되는데 다른 남자와의 성관계를 생각하게 되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가정의 비극이라는 사건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2)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는 말씀은 어떻게 적용됩니까?


상대방을 더 생각해주는 양보심이 있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상대방의 만족을 위해서 노력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자기 체력가지고 안된다면 다른 방법으로 아내 만족을 위해서 배려 해야 합니다. 꼭 몸만가지고 아내를 즐겁게하는 것이 안입니다. 여러 가지면에서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아내에게 성적으로 만족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3) 당신은 자신의 욕망과 배치될 때 성생활에서 배우자를 어떻게 “돌아볼”(배려할) 수 있습니까?


상대방이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며 도와주어야 함을 말합니다. 남자들은 냄비에 비유하여 빨리 뜨거워졌다 빨리 식어져 버리지만 여자들은 빨리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남자는 충동적이고 성감적이지만 여자는 반대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뜨거워지도록 해주는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남자는 인내하면서 분위기를 조성해주어야 합니다.


※ 건강상식 : 저녁을 일찍먹고 소화를 시키며 자는 것이 몸 건강을 유지하는데 좋습니다. 그리고 성관계를 갖는데에도 배불러서하게 되면 원하는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10. 아가서는 결혼 생활에서의 사랑의 기쁨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사랑의 시는 부부 간의 성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다음 구절들을 잘 살펴보십시오.


(1) 아가 1:2절을 읽고 옳은지 그른지 표시합시오.


1)  부부간의 사랑은 육체적으로도 표현되어야 한다.

2)  부부 간의 육체적 사랑은 유쾌하고 즐거워야 한다.

3)  부부 간의 성행위에 대해서는 담담해야 한다.

4)  부부는 육체적 사랑에 대하여 기대에 차야 한다.


아가서에서는 아내가 황홀하기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있습니다.


 정답 : 1)○, 2)○, 3)×, 4)○


(2) 아가 1:13~16절에서 몇 가지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사실에 당신은 동의하십니까? 옳은지 그른지 표시하십시오.


1)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만족스런 성생활에 필요하다.

2) 육체적으로 더욱 친말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최대한 매력적이 되도록 각자 청결과 주의가 필요하다.


3) 부부는 육체적으로 함께 있을 때 기쁘고 즐거워야 한다.

경건한 생활을 한다고해서 이러한 것들을 등한히 하기가 쉬운데 이것은 좋지 못합니다. 성경적으로 올바른 사랑관계를 갖는 것은 부부 관계에서 중요합니다.


정답 : 1)○, 2)○, 3)○


(3) 아가 4:1~7절과 10~16절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육체에 대한 건전한 감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부부 간에는 당황하는 일도 없고 수치감도 없어서 서로에게서 발견하는 즐거움이 흐려지지 않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의견을 말해 보십시오.


엄격한 가정에서 성장해 온사람은 성에대하여 불쾌감가지거나 불결함을 갖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만족지 못한 성생활을 하게 됩니다. 만족지 못한 성생활은 다른 사람과 성관계의 경험을 생각하기가 쉽고 다른 삶에서도 생동력을 잃기가 쉽습니다. 특별히 아가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여자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노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몸 구석구석을 애모하면서 찬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침실에서의 일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은,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칭찬하면서 아내만을 생각하고 성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가서 내용을 보면 남편에게는 다른 여자에 대한 생각이 있지 않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관계를 갖는데에서 잡지나 영화나 음란비디오를 보아 그러한 장면을 떠오르면서 하는 성행위는 자기 남편이나 아내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아가서에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아내를 가장 아름답게 사랑하면서 성생활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관계가 바로 되어지지 않아 치료하기 위해서 에로영화를 간혹보아도 되겠지만 그러나 에로영화를 보지 않으면 성행위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병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적 용


1) 지금이야말로 부부가 함께 성생활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서 같이 의논할 좋은 시간입니다. 먼저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진 후에 이 문제에 대해 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십시오.


현재의 부부 관계를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나누어보면서 보다더 아름답고 보다더 좋은 성적인 관계를 이루어갈 때 부부 생활에 증진 됨을 알아야 합니다.


2) 이 과를 공부하면서 느낀 점들을 얘기해 보십시오. 당신 부부의 성생활에 대해 각자의 느끼는 바를 서로 나누십시오.


부부 간의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십시오.


3) 둘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성생활의 어느 영역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면, 성생활에 대한 이해를 돕고 나아가서 성의 즐거움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구하여 부부가 함께 읽어 보십시오. (단, 성서적인 관점에서 쓴 경건한 책이어야 합니다.)


이책에서는 성적인 기교를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중요하므로 올바른 책을 참고해서 보는 것이 괜찮습니다. 참고적으로 팀라헬 목사가쓴 ‘아름다운 애정생활’이 있습니다.


4) 결혼 생활에서 서로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새롭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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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과 상호 보완적 존재로서의 남성과 여성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마태복음 19:4)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에베소서 5:3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해 주고 완전하게 해주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남편과 아내 어느 쪽도 상대방에 대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상호 의존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린도전서 11:11~12). 남편과 아내는 각기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존엄성을 가지며 독특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에게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있도록 각자에게 “남성”과 “여성”을 부여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로서 각자에게 맞고, 또한 부부 관계에 있어서 가장 조화를 이루는 적절한 역할 및 업무 분담 체계를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책임들은 상황의 변화와 필요에 따라 수시로 재평가되고 조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부 관계는 서로 독립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의존적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잘 보완해줄 때 둘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보완적 관계입니다. 잘 보완해주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역할분담을 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각기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존엄성을 가지며 독특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할 체계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계획을 세워서 잘할 때 서로 보완할 수 있습니다.


여성 해방운동이 동등한 존엄성을 찾기 위한 것이라면 성경적이지만 그러나 역할 체계와 업무 분담을 무시하면서 여성해방운동을 한다면 비성경적입니다.


기본 역할


생활에 있어서 역할은 그 성에 따라 결정됩니다. “만물의 시작에 관한 책” 창세기에는 인간의 기원과 주된 역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독특한 역할도 있고 공동적인 역할도 있습니다. 물론 사회 변동에 따라서 서로 약간씩 보완해나가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도특한 열할과 공동적인 역할은 그대로 존재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다음 성경 말씀에서 주어진 역할을 기록하고, 그것이 누구에게 적용되는지 그 성(性)을 표시하십시오.


 

역   할

남 성

여 성

 (1) 창세기 1:28 

 생육하고 번성하는 역할

 (2) 창세기 2:15

 다스리며 지키는 역할

 

  주로 남성에게 최종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역   할

남 성

여 성

 (3) 창세기 2:18, 22

 돕는 베필의 역할

 

아내는 남편을 돕는 베필로 만들어 졌습니다. 남편을 돕되 상황이나 종으로 돕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들어, 축구로 비유해보면 아내는 남편이 골을 잘넣토록 어시스트를 잘해주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가?

첫째로, 기도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둘째로, 감정적으로 평안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로 인해 쉴수 있고 평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셋째로, 비성경적으로 나아갈 때는 말해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때 말을 할 때는 코치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의견을 제시하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남편이 다시한번 생각해서 올바른 성경적으로 잘이끌어 가도록 도와어야 합니다.

 (4) 창세기 2:24

아내와 연합하여 하나가되는 역할

 

남성에게 주된 역할입니다. 모든 면에서 연합이 되지 않을 때 먼저 이끌어가야 하는 것은 남편의 기본 역할입니다.

 (5) 창세기 4:1

 동침하면서 잉태하는 역할

남성과 여성의 공동적인 역할입니다. 일방적이 되면 안됩니다. 물론 문화적인 배경이나 사회적 변동으로 인해 약간씩 달라질 수 있으나 그러나 항상 주된 역할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확실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에 기본적인 역할이 변치 않습니다.


역할의 성서적 이해


서양 문화에서는 부부란 낭만적인 사랑과 공동 관심사들에 의해 창조되는 연합체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부부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연합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자 독특한 개성과 배경 및 경험을 지닌 남자와 여자는 서로 상대방에게 헌신함으로써 하나님 보시기에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부부는 하나님 안에서 서로의 차이점을 가장 잘 융화시키면서 부부로서의 새로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이 결혼 생활에 대해 많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2. 에베소서 5:21~33절을 자세히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1) 21절에 의하면, 어떤 태도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합니까?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피차 복종하는 태도입니다. 피차에 복종하는 삶이 주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믿음 때문에 피차가 믿음으로 복종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복종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입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라 어느 한쪽이 요구하기 이전에 그리스인의 삶이 복종하고 순종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복종을 잘할 수 있을까? 듣으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남편이나 아내는 들을려고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는 태도가 복종에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습니다. 그 이유는 복종하기 싫으니까 귀를 막았던 것입니다. 부부 간에도 이러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떠한 말을 해주어도 피차간에 상대방의 말을 듣으려고 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가장 올바른 말을 해주는 것은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옳은 말을 해주니다.  둘째는, 부부간입니다. 자기 남편이나 아내가 자신에게 옳은 말을 해줍니다. 셋째는, 원수입니다. 원수가 자신에게 가장 옳은 말을 해줍니다. 원수의 말이라도 귀를 열어 들을려고해야 합니다.


(2) 본문 말씀은 또한 남편과 아내가 어떤 관계 가운데 있어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25절)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남편하고 살아가는 것은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것입니다. 남편은 성경적으로 머리역할로 리더자입니다. 만일 사랑이 없다면 공사판에 감독처럼 포악하게 되어 버립니다. 리더쉽을 사랑에 의해서 발휘해야 합니다. 남편의 기본적인 의무는 첫째 지도력이고, 둘째는 사랑입니다. 아내는 순종뿐이지만 남편은 이 두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알면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으로부터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특징들을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난 후에 아내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들어 보십시오.


남편이 아내에 대한 사랑의 수준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을 여섯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 말은 다스리는 일과 지도하는 일과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서 이와 같은 일을 하셨던 것같이 역시 남편도 아내에게 머리로서 지도력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지도력이 없으면 무능한 남편이고 사랑이 없으면 독제하는 남편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주셨습니다. 남편도 아내에게 주는 사랑, 희생하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 받으려고만 하는데 우선 먼저 주는 사랑부터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이 자신에게도 옵게 됩니다.


세 번째, 그리스도는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최고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아내를 영광스럽게 해주어야 합니다. 아내가 열등감에 있고 우울감이 있다면 이것은 남편 책임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남편이 아내를 영광스럽게 못해준것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언제나 밝게 해주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 그리스도는 교회를 흠없이 해주셨습니다. 역시 남편도 아내를 흠이 없이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오히려 아내에게 흠을 던져주는 남편들이 많습니다. 자녀 앞에서 아내를 면박하고 못한다고 핀잔을 주는 남편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남편은 무능한 남편입니다. 아내가 흠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까지 해주는 것이 남편의 역할입니다. 또한 아내가 바람난것도 남편의 책임입니다. 아내가 바람난 것도 자신의 역할을 바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부끄럽게 알고 아내를 버리지 말고 데리고 와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감당치 못한것에 대해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그리스도는 교회를 자기 몸처럼 보양하셨습니다. 이처럼 남편도 아내를 잘양육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만 아니고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보양이 필요합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메말라있으면 남편이 보양하지 못한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남편은 직장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점하여 지적으로 수준이 향상되어지지만 아내는 가정에서 살림하므로 다양한 메시지를 접하기가 어려워 남편보다 정보메체나 지적인 수준에서 미달될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면을 보는 남편들은 아내를 무시하고 다른 여자들에게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아내의 지적수준이 미달된 것을 알았으면 채워주려고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남편이 역할은 감당치 못하고 아내에 대하여 마음만 멀어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섯 번째, 그리스도는 교회를 몸의 지체로 삼으셨습니다. 남편도 아내와 연합해서 한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자신이 기쁘면 아내도 기쁘게 만들어주고 아내가 아프면 자신이 그 아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아내의 몸을 자기 몸으로 삼아야 합니다.


(4) 22~24절은 아내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합니까?


(5) 아래의 내용 중 옳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표하십시오.


1) 남편은 아내와 가족의 머리로 정해졌으며, 아내는 남편을 머리로 인정하고 따름으로써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된다.



2) 남편은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아내는 남편을 자기 가정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3)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된 교회와의 관계는 곧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에 대한 예표가 된다.



4) 아내는 남편의 지도력을 따를 영역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6) 33절을 당신 자신의 말로 써보십시오.


3. 베드로전서 3:1~7절을 읽으십시오.


(1) 아내가 자기 남편과 올바른 관계속에서살 때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1~2절)



(2) 3~6절에 관계되는 다음 내용 중 옳은 것에 표시하십시오.


1) 아내는 자기의 외모에 관심을 두어서는 안된다.


2) 아내의 내적 아름다움이 외적 아름다움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귀중하고 값지다.


3) 사라가 남편 아브라함의 지도력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온유하고도 안정한 심령 때문이었다.


(3) 7절에서 남편들에게 주는 권고를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1) 남편은 자기 아내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 남편은 왜 자기 아내를 알고 이해해야 합니까?


3) 남편과 아내는 무엇을 함께 받습니까?


4) 무엇이 남편의 기도 생활을 방해하게 됩니까?


가정에 있어서의 권위와 복종 관계


4. 고린도전서 11:3절은 가정에 있어서 권위와복종 관계의 질서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각자가 자기의 기능을 올바로 수행할 때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대로 가정 생활에는 조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질서는 무엇입니까?


5. 에베소서 6:1절은 가정 내의 권위와 복종 관계안에서 자녀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누구에게 순종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까?


6.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일은 의지의 행동입니다. 빌립보서 2:5~1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하여 얼마나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의 권위 아래 두셨는지 살펴보십시오.


(1) 그리스도의 원래 위치는 무엇이었습니까? (6절)


(2) 그는 무엇을 택하셨습니까? (7~8절)


(3)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셨을 때 그를 어떤 위치로 높이셨습니까? (9~11절)


7. 베드로전서 5:6절에 따르면, 자신을 겸손하게 낮출 때 어떤 결과를 얻게 됩니까?


8. 잠언 31:28~31절을 읽고 성실한 아내가 받는 칭찬을 간단히 요약해 보십시오.


9. 창세기 18:17~19절에서,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책임은 무엇입니까?


10. 당신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권위와 복종 관계 속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자신에게 맞는 위치를 지키는 것이 어렵습니까? 어떤 점에서 어렵습니까?


일의 분담


부부는 일상생활을 원활히 해나가기 위해서 여러 일들을 분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여자가 할 일”과 “남자가 할 일”로 칼로 베듯이 명확히 구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도록 해야합니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책임도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11. 디도서 2:4~5절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집안 일을 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아내에게 있습니다. 아내가 하는 역할이 집안일을 잘 꾸미고 가꾸어나가는 것입니다.


12. 디모데전서 5:8절에서, 가족들의 경제적인 필요를 책임져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족의 필요를 채워지도록 주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남편입니다.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남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이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몸의 필요를 채워주는 기관입니다. 항상 모든 면에서 남편은 전체적으로 가족들의 필요가 채워지도록 돌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시대는 아내도 경제적으로 협력하지만 가정의 주된 역할을 감당하는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 남편이 집안에 있고 아내가 경제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잠정적이고 입시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기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13. 당신의 가정에서 현재하고 잇는 분담의 예를 구체적으로 들어 보고 각각의 일을 맡고 있는 사람을 적어 보십시오. (예 : 살림, 요리, 물건 구입, 청소, 자녀 교육 등.) 어떤 일은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실제로 부부간에 의논해보며 이야기 해보십시오.)


담 당 자

 이브자리 펴고, 계는 것

 

 부엌 청소

 

 화장실 청소

 

 구두를 닦는 것

 

 가방을 챙겨주는 것

 

 아침 저녁 상차릴 때

 

 자녀들 깨우는 것

 

 시장보는 것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면 가능하면 한국적인 토속적인 생활이나 배경을 수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아내를 배려하고 서로 도와주는 삶으로 사랑이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의논해서 분담하면 삶이 피차가 즐거워 집니다.


14. 위의 분담 내용 중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영역이 있는지 부부가 함께 의논해 복, 만일 있다면 무엇이 언제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는지 적어 보십시오.


일을 의논해서 분담해서 일을 하지만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바꿀수도 있다는 내용입니다. 생활 수준이 나아지고 문화 수준이 바뀌어지면 분담도 바꿀수도 있습니다. 건강이 좋지않고 나이가 들면 가정안에서 하는 일들을 서로 바꾸어서 할 수도 있습니다.


적 용


1) 결혼 생활에서 남편 또는 아내의 역할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배운 바를 숙고해 볼 때 당신의 결혼 생활에서 재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부부가 가정에서 문제가 되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 이런 일은 이렇게 분담해서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서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2) 현재 당신 가정에서 권위와 복종 관계의 질서는 어떠합니까? 당신에게 해당되는 것을 고르십시오.


(1)

(2)

(3)

아  내

자  녀

하나님 - 그리스도

남  편

남편 - 아내

남  편

자  녀

하나님 - 그리스도

아  내

하나님 - 그리스도

 

자  녀


일반적으로 아내가 먼저일 수 있고 아니면 자녀가 먼저 일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먼저된 가정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데 그러나 질서면에서 성경적이지 못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성경적인 연쇄관계(連鎖官階)는 하나님이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자녀에게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명령할 자이고 부모는 자녀에게 명령할 자입니다. 단순히 권고하는 정도가 아니라 명령할 수 있는 위치를 하나님께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들의 인격을 세워주기 위해 논리적으로 물어보는 식의 교육방법은 성경에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어린 자녀들은 판단력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고 하나님의 지식도 부족하고 인생의 경험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가진 부모가 올바른 일을 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에게 명하고 부모는 자녀에게 명하는 하나님의 질서 관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에게 권고하고 토의하고 제안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바른 말을 한다고해도 명령할 자는 아닙니다. 남편이 잘못해도 아내는 명령할 자가 아닙니다. 항상 제안하고 권고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 가정에 조화를 이루게 하고 하나가 되게하는 비결입니다. 성경적인 원리안에서 적용하고 살아가면 가장 바람직합니다.


요 약


오늘날 결혼 생활에서의 전통적인 “역할”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일 바뀔 수도 있는, 사회에 만연된 잘못된 생각들로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결혼 생활에서 성서의 원리들을 이해하고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신명기 6:24)


성경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은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며 결국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쉽게 편하게 자기 중심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남성과 여성의 보안적인 역할관계를 성경에 따라서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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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과 부부 교제의 원리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 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가복음 10:7~9>


결혼한 순간부터 “죽음이 사이를 갈라 놓을 때까지” 부부는 그들의 사이를 갈라 놓는 어떤 것도 막아내야 합니다. 어떤 일이나 어떤 사람이 아무리 좋게 보일지라도, 부부가 “하나”가 되는 데 위협이 된다면, 그것은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최선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관점에서 재평가되고 정리되어야 합니다.


이 과는 부부 교제의 원리입니다. 부부 관계는 교제가 성숙 되어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제를 통해서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어 입도 하나가 되어 사는 이것이 행복한 가정 생활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결혼 생활은 교제가 성숙할 때 이루어 집니다. 연애 시절 구애 시절부터 죽기까지 서로 살아가는 삶이 교제입니다. 교제에 대해서 연애 시절부터 단계별로 생각해 보면 우선 첫째가 교제가 형성 되는 것입니다.


이 과에서 당신은 결혼 생활의 각 단계에서의 부부 교제의 중요성을 발견할 것입니다.


교제의 형성


이미 결혼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구혼과 약혼 단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것이 곧 둘이 하나가 되는 관계를 형성하는 첫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1. 다음 항목에 기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추가해 적어 보십시오.


(1)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적응함. → 약혼시기의 교제 (서로를 배우는 단계이다.)


(2) 인생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서로 나누고 알아 봄.


(3) 결혼식에 대한 세부 사항을 계획함.


(4) 서로 영적인 생활을 Q.T나 생활 간증을 서로 나누는 교제입니다.


내가 말씀 가지고 축복을 받은 것, 목사님 설교에 은혜 받았던 것,  내가 그 말씀을 통해서 결심 했던 것, 깨달 았던 것 등 이런 것들을 서로 이야기 하면서 영적인 교제도 아울러 있어야 된다. 내가 이렇게 기도했더니 이런 응답이 있고 이런 말씀을 따라서 이렇게 살았더니 이런 결과가 있더라 그런 생활 간증을 나누는 교제가 있어야 됩니다.

 

(5) 생활 스타일을 일치시키는 일입니다.


생활 스타일을 가능한 하나로 일치 하려고 하는 교제를 말합니다. 교회 생활에 대해서나, 혹은 교회 봉사하는 생활, 혹은 주님을 섬기는 생활 이 외에도 취미 생활 등 이런 모든 생활 전반에 걸쳐서 가능한 하나가 되도록 하는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제는 연애 시절 때부터 나누어야 됩니다.


(6)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교제입니다.


비전에 대해서 인생의 목표가 서로 동의가 되어야 됩니다. 즉 ‘나는 이런 목표로 산다. 이런 목표를 추구한다.’ 라는 자신의 목표와 상대방의 목표가 하나가 되도록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 자체만 좋아하지 그 사람의 품고 있는 뜻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따르지 않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도 좋아해야 되지만은 그 사람의 속에 품은 뜻, 인생의 목표가 같이 일치가 되어야 되므로 이런 것을 서로 이야기 나누는 이런 교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하나가 되어야 되고 조화가 되어야 됩니다.


(7) 성경 혹은 자라온 환경 또 특별히 중요시 여기는 것 이런 것들을 잘 파악해가지고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교제가 필요합니다. 교제하므로 그 사람의 성격도 파악하고 그 사람의 살아온 배경이나 가정 환경에 대해서 또 자기가 특별히 중요시 여기는 것들을 결혼하기 전에 나누어야 할 교제들입니다. 이런 교제를 통해서 결혼에 이른다면 휠씬 결혼 생활이 성숙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성전을 지을 때 채석장에서 돌을 다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짓는 그 자리 에서는 그냥 돌을 맞추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안에서는 시끄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돌을 다듬는 그런 시끄러운 소리가 성전터에서 나지 않도록 돌 있었던 그 자리에서 다 다음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 지을때는 그 자리에서 맞추기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 결혼도 그래야 됩니다. 결혼 하기전에 적어도 약혼시절까지  서로 다음어가는 교제가 있어야 됩니다. 서로 다음으면, 즉 돌이 딱 어긋맞어야 튼튼한 것처럼 ‘아! 이 사람은 이렇구나 나는 이렇구나’ 서로 이런 교제를(연애) 통해서 하나가 되도록 잘 다듬어 결혼식에 임한다면 결혼 생활은 훨씬 행복하고 충돌이나 다툼이나 갈등이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교제는 결혼전에 있어야 됩니다. 이런 교제는 아주 좋은 것입니다. 건전한 마음으로 남녀가 결혼전에 교제하는 것은 괭장히 중요한 일이고 결혼 생활을 훨씬 행복하게 앞당기는 중요한 시기 중에 하나입니다. 다듬는 시기, 약혼시기는 다듬는 시기라 말할 수 있습니다. 둘이 한 사람이 되도록 여러 가지 면에서 다듬어가는 시기입니다. 약혼시기때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서로 이해할 건 이해하고 다듬어져 있는게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결혼생활은 결혼 해서 다듬으려고 합니다. 이 속에는 괭장히 갈등이 많습니다. 더 힘들고 복잡한 것입니다. 항상 서로 사랑이 싹트고 서로 좋을 때 건전한 교제를 통해서 돌을 다듬어 성전 짓는 것하고 다듬지 않고 짓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연애를 하는데 이러한 교제의 중요성을 모르므로 커피숍에가서 커피 마시고 극장에 가고 조금 발전하면 룸에 가는 이러한 교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좋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교제는 대화를 통해서 이루지는데 같이 앉아 있다고 해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많은 대화를 나눌 때 즉, 자기 어렸을 때의 가정 환경, 자기 성격 등 좋은 것, 나쁜 것을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다듬어 가야 합니다.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런 것을 싫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도와주고 감싸주고 격려해 주어야 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감정으로 하는 사랑은 낮은 수준의 사랑이고, 의지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가 이 사람을 별로 사랑할 만한 사람이 못되지만 내가 이 사람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 것처럼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해서 영광스럽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되겠다는 뜻과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제를 통해 뜻이 같아 질 수 있고 사랑이 더 깊어 질 수 있다는 걸을 알아야 합니다.


2. 성경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반드시 따라야 할 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다음 성경 구절에서 어떤 지침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1) 고린도후서 6:14~15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調和)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같은 믿음에서 동의 해야 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는 인생이라는 멍에를 같이 멜 수가 없습니다. 성경의 원리에 동의하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과 사귀고 교제하면서 내가 이 사람을 구원시키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체는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빗나간 생각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시기는 전도하는게 아니라 서로 인생의 배후자를 찾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첫째 원리가 믿음이 같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다를 때에 오는 문제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일 큰 것은 영과 육의 싸움이 계속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영이라면 그 사람은 육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져야 훨씬 행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가정보다 더 큰 교회도 영적인 사람들로만 이루어져야 행복하고 하나님의 살림이 발전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적인 교인들이 있다면 진전은 되지 않고 자꾸 갈등이나 다툼 등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목회 자체도 영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참 재미있고 정말 은혜 가운데에서 우리가 보람있는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육의 사람들이 같이 끼어 있으면 이 사람들 때문에 교회 생활이 기쁨이 없습니다. 그저 갈등이고 짐이 되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작은 가정이 영과 육이 다르다면 얼마나 내적인 갈등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믿음에 동의해야 됩니다.


(2) 아모스 3:3 “두 사람이 의합(意合)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같은 뜻에 동의 해야 됩니다. 믿음만 같으면 되는게 아니라 인생의 목표나 뜻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나는 이런 목표로 산다. 나는 이런 목표로 신앙 생활 한다. 나는 이런 목표로 주님을 섬기고 산다’라고 사전에 서로 교제를하므로 동의 해야 합니다. 믿음은 같아도 그 뜻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겨우 구원받은 믿음으로 예배만 드리는 신앙 생활을 다로 알고 세상을 누리고 세상을 즐기는 사람은 얼마든지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리는 건 하나님 나라에 가서 누리고 이 땅에서 섬기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더 영원한 것을 위해 투자하는 헌신적인 봉사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격이 같아서만 되는게 아니라 믿음으로도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믿음이 같아야 합니다.


목회자도 그렇습니다. 적어도 목사가 될 사람하고 결혼한 사람은 믿음이 있어 결혼 했는데 목회를 하면서 실제로 사모님이 안따라 준다거나 아니면 목사가 목회 하면서 자꾸 세상적으로 나간다면 가정안에서 얼마든지 갈등이 많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뜻이 다른 것입니다. 예를들어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사명 받아서 길을 갔습니다. 여기서 만일에 사라가 ‘난 당신 못따라 가겠다’고 했다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본토 친적 아비의 집을 떠나서 지시할 땅으로 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여자는 생활의 안정을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데 사라가 나는 못떠나겠다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사라는 떠났다고 했습니다. 동의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모험, 엄청난 고난의 길이라고 생각되는 길이지만 사라가 동의 할 수 있었던 것은 뜻이 같았는 것입니다. 그 뜻에 동의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동의가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3)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삶을 동의 해야 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을 추구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도덕성의 문제인데 두 사람이 도덕성에서 일치 해야 합니다. 도덕성이 없는 결혼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한쪽이 너무 세상적으로 음란으로 시작된 연애는 위험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사무엘하 13:14~15절에 암논과 다말의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하니라 그리하고 암논이 저를 심(甚)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한지라 곧 저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참 비극적인 일입니다. 암논이 너무 다말을 심(甚)히 연애해가지고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뒤에는 마지막에는 처음에 좋아 했던 것보다 더 싫어해 다말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쪽이 성적으로만 접근 하려하는 것은 좋은 교제가 아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건전하게 교제를 하고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교제가 있어야 됩니다. 연애하는 기간에 남자쪽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육체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하고 다를게 없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육체적 접촉을 갖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분리되는게 살아가는 것은 신앙인의 삶입니다.


3. 창세기 29:16~20절은 라헬에 대한 야곱의 사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사랑의 증거를 적어 보십시오.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眼力)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戀愛)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數日)같이 여겼더라”


이 말씀의 내용은 야곱의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야곱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습니까? 야곱은 한 여자를 사랑해서 그를 얻기 위해서 14년 동안 기다리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은 14년 동안 기다리면서 머슴으로 종으로 일하면서 7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내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뜨거운 열정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기다리며 준비하며 열심히 일하는 그런 자세가 뜨거운 사랑입니다.


오늘날의 사랑은 너무 가볍고 성급합니다. 그래서 육적인 사랑을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나기가 쉽습니다. 내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면 그 여자를 위해서 기다리며 준비하며 열심히 일하고 맞아드릴 준비를 하는 것이 야곱이 14년 동안 그랬던 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것이 참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4. 당신의 구애 기간과 약혼 기간을 돌이켜 볼 때 두 사람 간의 교제에서 미흡했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무엇이며, 현재 그것들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결혼하기 전 사람이나 혹은 결혼한 사람들도 한번 생각해 보는 공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서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배필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 앞에서 주장하는 믿음으로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 침례교회 결혼은 식장에서 신앙 고백을하며 주례자의 물음에,


이 사람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배필이라고 믿습니까? 예. 그러면 왜 그렇게 믿습니까? 이 때 수 많은 하객 앞에서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 정도까지 확신을 가지고 결혼을 준비하고 또 그런 확신으로 결혼 할 때 결혼해서 훨씬 주님을 잘 섬기고 또 행복할 수 있고 성숙한 결혼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결혼 준비는 경제적인 면에서 마음과 시간을 많이 뺏깁니다. 심지어 신문에 의사가 결혼 예단이 적다고 아내를 죽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 이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너무 부수적인 것에 마음과 시간을 뺏겨버리고 실제로 가져야할 신뢰나 사랑이 없는 시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식의 결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들을 결혼 시킬 사람들입니다. 예물이 많다 적다는 것으로 자녀들을 마음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 아프게 해서 결혼하면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 교제해 연애하는 결혼은 우선 좋은 점이 많습니다. 결혼에 대한 준비에 대하여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매해가지고 결혼한다면 서로 믿음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르다면은 이런 준비 때문에 큰 상처를 입기 쉽고 결혼해서도 마음으로 해결하는데 수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가능하면은 서로 교제하는 사이가 되어 결혼하는게 좋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남녀가 교제하는 걸 말릴필요가 없으며 그걸 자꾸 죄악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그랬지만은 지금 이 사회에서 한 교회안에서 연애한는 걸 죄악시하거나 막거나 그럴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단지 좋은 교제를 하도록 건전하고 믿음의 교제를 하도록  지도할 필요는 있습니다.

U.B.F 선교회는 강력하게 강조하는 것은 자기 선교원 사람들끼리만 결혼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것이 핍박거리가 될지 몰라도 선교의 자체로 볼 때 그것은 선교회를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믿음 없는 사람을 외적인 것만 보고 결혼하면 결국 교회 등한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끼리 결혼 하는 것은 주님의 나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좋은 현상입니다.


부모가 되기 전에 부부가 되라


결혼 생활은 부부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며, 20~30년후 자녀들을 다 길러 독립시키고 나면 두 사람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 초기의 몇 달 내지 몇 년간은 두 사람이 각각 자라 온 가정 배경과는 다른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가는 데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자녀가 생기면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차원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나 나중에 자녀들이 커서 결혼해 나가더라도 결코 시들지 않는 관계를 세워 나갈 수 있도록 부부는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신혼 생활의 교제 부모가 되기전에 부부가 되라는 이 말은 아이 낳기전에 시혼 시절의 부부간의 교제를 성숙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교제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5. 결혼 생활 초기에 부부가 발전시켜 나가야 할 중요한 일들을 아래에 몇 가지 소개합니다. 결혼 생활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 왜 이러한 적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해 부십시오.


(1) 실제적인 결혼 생활에 적응하는 일(결혼 생활에서 실제로 부닥치게 되는 일들은 구애와 약혼 기간의 행복감과는 달리 실망과 환멸을 느끼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 왔지만 이제는 하나가 되어야 하므로 적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음식문제로 ‘나는 신거운걸 좋아 했었는데 남편은 짠걸 좋아 한다. 매운걸 좋아 한다.’ ‘나는 국물만 좋아 하는데 남편은 건더기만 좋아한다.’ 잠자리도 ‘나는 추운방에서 잘자는데 아내는 추운바에서는 못자고 꼭 더워야 되고’ 또 ‘나는 발바닥을 이불 밖으로 드러내야 되는데 아내는 꼭 덮어야 된다’ ‘남편은 침대에서 자야 되고 아내는 온돌방에서 자야된다’ ‘남편은 아침밥을 먹어야 되는데 나는 아침을 빵과 우유를 먹는다’ ‘예의 범절’ ‘언어’ 등.


이러한 것들을 서로가 조화가 있어야 하고 적응을 해야 한다. 평생 이러한 문제가지고 다툴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 앞에서 다툴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 생활 단 둘이 있을 때 적응하고 배워 성숙해야 합니다. 결혼해서 2~3년간은 실제적으로 부부의 교제에 우선을 두어야 합니다. 이 후에 아이를 낳아 부모의 역할을 원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2) 정든 부모와 가족들로부터 떠나 남편 또는 아내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면서 겪는 감정적인 어려움에 적응하는 일.


정든 부모와 가족들로부터 떠나 결혼을 하였으면 이제는 친정이나 시댁 식구들하고는 다릅니다. 이제는 부부로서의 역할에 적응해야 할 때 입니다. 아들로서 자부로서의 역할 보다도 부부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어머니의 아들로서 또는 시집오면 그 집의 자부로서 며느리로써 살아야 되는데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게 부부간의 교제입니다. 이런 역할보다도 부부로서의 역할을 더 잘해야 됩니다. 이제는 아들이나 형보다 혹은 자부 역할보다도 남편으로서 혹은 아내로서의 위치가 더 중요합니다. 남편과 아내로서의 의무가 더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남자를 향해서 하나님은 이제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연합해서 둘이 하나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를 떠나라는 말은 관계가 변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와의 관계가 이전과 같아서는 안됩니다. 이전에는 부모 중심이었지만 결혼한 이후에는 부모 중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계를 꾸리는 일, 경제적인 모든 일 이런 면에서 둘이 서로 의논하고 일치가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항상 부부가 이제는 부모보다 먼저 부부가 의논해야 됩니다. 가정의 방향 설정 문제 도 모든 전반적으로 항상 부부중심으로 교제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더 중요하고 이러한 것이 결혼 생활입니다. 이것이 있는 그 다음에 부모와를 고려하고 형제간을 고려하고 자녀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떠나라고 했던 것입니다.


아담에게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담에게만 하는 말씀이 아니라 후대의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해서 둘이 하나가되라”는 것은 약간 이제는 부부의 정을 위해서 부모의 정이나 형제간의 정이나 그런 정에서 약간 떨어져야 된다는 그 말입니다. 정에서 분리가 되어라는 것입니다.


시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한국의 가정들에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것도 다 부부 교제가 성숙하지 않은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부부 교제가 성숙했다면 얼마든지 지혜롭게 잘 할 수 있습니다. 시부모 관계나 시동생 관계나 친정관계나 다 지혜롭게 잘 할 수 있는데 부부 관계에서 교제가 성숙이 안되므로 이와 같은 문제로 항상 다투게 됩니다. 실제로 교인들의 가정에는 이런 작은 문제들이 크게 대두데가지고 이혼까지도 가는 경우가 있으며 약간은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제속에서 문제는 해결이 되어 집니다. 교제를 이룸으로 가정을 평안하게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이 교제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가정 생활입니다.


(3) 구애 시기에 상대방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생각함으로써 지나치거나 무시해 버렸을지도 모르는 상대방의 결점이나 약점에 적응하는 일.


실제적인 결혼생활이 시작되면 생활하는 가운데 상대방의 부족함이 많이 들어 나게 됩니다. 연애 시절에는 좋은 면만을 서로 많이 보이지만 나쁜 면은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결혼해서 생활하다 보면 하나하나 안좋은 면이 들어 나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서로 이해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가는 신혼기의 교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교제가 필요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신혼기 때에 서로의 단점들을 이해하고 살아야 되는데 적응이 안되고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채 나이가 들어가면 자존심이 굳어집니다. 자존심이 굳어지게되면은 용납하기가 어렵게 되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초기에  나쁜 것 좋은 것들을 서로 적응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교제로 인해 하나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교제가 없이 자녀 때문이나 혹은 다른 교제만 성숙해 가면은 상대방 결점이나 용납이 안되는 정도로 되어집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좋은 것 나쁜 것에 대해서는 교제하지 않고 자녀나 다른 교제로만 이어지다 보면 실제적인 자신들의 문제는 교제하지 못해 나이가 들면 자존심은 굳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성숙을 방해 합니다. 결혼 생활의 성숙을 방해할 뿐 아니라 파경에 까지 몰고 올수 있습니다. 중년 이후에 이혼률이 왜 많이 나타납니까? 바로 이런것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결점이나 약점 그것이 이해가 안된다고 용납도 안되어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서로 용납이 되고 서로 적응을 잘 해나가야 하나가 되는데 하나가 안된체로 둘이 살아 왔습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많아 갈수록 자존심이 굳어지게 되고 체면만을 세우게 되므로 결국은 파경에 까지 몰로 가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그러한 삶을 살기 싫어 새 사람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서구에서는 중년이후의 이혼률이 괭장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교제가 적응이 안되고 교제 생활이 성숙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혼 초기 서로 안좋은 성격이나 결점 이런것들이 하나가 되어야 되고 적응이 잘되고 서로서로 변화가 되고 깍여지고 이해할 수 있어야 되고 서로 조정해 나가야 됩니다. 어떤 면에서 양쪽이다 한걸음씩 양보하면서 조정해 나가면서 하나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죄성이나 자존심 프라이버시에 해당되는 그런 일까지라도 내 놓고 드러날 때에 서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것들을 숨긴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늙어서 들어나면 더 이해가 안되어 집니다. 이런면에서 신앙생활이 괭장히 중요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말씀을 들으면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다 모순덩어리고 죄 덩어리입니다.’ 이런 내용을 공부하면 이해가 훨씬 잘 됩니다. 그래서 ‘나도 하나님 앞에 이보다 더 모순덩어리인데 하나님이 나를 용납해 주었는데 내가 상대방도 이해 해야 되겠다 용납해야 되겠다’ 또 ‘내가 하루 빨리 변화가 되어야 되겠다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불행하게 된다.’ 말씀을 통해서 깨우침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원래 죄인이고 질그릇 같이 약하지만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므로 내 존재가 귀하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방도 예수님 때문에 귀한 존재이고, 예수님이 그 안에 안계시면 똑 같은 존재이고 똑 같은 질그릇 같은 존재고 죄덩어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받아주고 용납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 때문에 다투어도 젊어서 다투어야 됩니다. 늙어서 이런것 가지고 다투는 것은 자녀들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상대방의 결점 때문에 다투는게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한 것은 결혼 초기 아이를 낳기전에 다투고 서로 이해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4) 건강한 결혼 생활을 이루어 나가는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적응하는 일.


왜 이런 것이 필요 할까요? 왜 이런 교제와 노력이 필요할까요? 하루 아침에 좋은 사람이 되고 하루 아침에 하나가 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아침에 하나 될 수 없으므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변화되지 않고는 평생 불만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계획을 세워 의논하여 부부의 공동 목표를 세워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반찬 가지고 짜다 매웁다. 이런 것을 가지고 다투는 일이 많이 있는데 다투지 말고 서로 의논하여 ‘나도 노력하지 만은 잘 안되니까 일단은 싱겁게 만들자 국이든지 무엇이든지 싱겁게 하고 그대신 간장이나 고추장은 상에 따로 갔다 놓자’ 그래서 자기 미각에 맞게 싱거우면 맞추어 먹도록 해서 서로 의논하여 조정해 나가는 것입니다.

집안에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나 힘든 일 그런 일은 다 서로 조정해 가는 것입니다. 우선 방안에서부터 쓰레기 버리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 두 번 손이 가지 않도록 휴지통에 넣고 휴지통은 딱 정한 자리에 놓아서 언제고 휴지통은 어디에 있다는 걸 인식을 하여 버릴 것 있으면 휴지통에 갔다 넣도록 하는 것, 외출하여 집에 �으면 손과 발을 씻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 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집안 청소 깨끗이 해놓았으까 밖에 나갔다오면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손발을 씻고고 방에 들어오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또 양말 같은 것도 두 번 손가지 않도로 벗으면 아예 어디에 갔다 두자는 식으로 서로 조정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의논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는 아이들도 보고 배웁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학교 갔다오면 책가방 제자리 갔다놓고 자기 나름대로 양말 벗으면 제자리에 갔다두게 되어집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시간을 두고 계획을 세우며 그리고 공동 목표까지 세워 시간속에  인내하면서 노력하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6. 가족은 사회의 기본 단위입니다. 이것이 왜 사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회나 국가의 기본단위가 가정입니다. 교회의 기본 단위도 가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을 무시하는 사회나 국가는 결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는, 하나님이 사회를 만들기 전에 가족을 먼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처음 만든 것은 가족입니다. 사회와 교회부터  만드신 것이 아니라 가족을 제일 처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가정에서 영광 받기를 제일로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가정 생활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에 사회부터 만든게 아니고 가정부터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에 제일로 관심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다른데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걸 만드실 때 목적이 있었습니다. 왜 가정을 제일로 먼저 만들었겠습까? 그 목적이 바로 가정에서 하나님이 영광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모든 사회의 기본 요소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모여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가족이 없으면 사회가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회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족입니다. 따라서 가족을 파괴하는 어떤 사회나 민족이나 어떤 국가는 결코 오래 설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정서적인 안정이나 신뢰감, 인간관계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안정이 안되면 결코 사회가 안정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에서 정서적인 안정을 누리지 못한 사람이 사회에 나가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문제가 있는 가족들은 결국 사회에 나가서도 문제를 일으키기 쉽고 인격적으로 빗나가기 쉽습니다. 이러한 가정으로 가득찬다면 건전한 사회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교회에서도 그런걸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정서적으로 안정감 없어 톨아지고 신경질 적인 사람들 의견충돌일으킨 사람들의 가정을 보면 정서와 신뢰심이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안에 서로 불신하며 경쟁의식으로 갖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한국 교회는 나이 많은 홀로된 권사님들이 교회를 잘 받들면서 모범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적인 일도 많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장로나 권사에게 당하고나서는 혼자된 사람은 절대 중직자로 세우면 안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좋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보면 자꾸 불평 불만을 잘하며 교회를 자기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온 사람들은 사회에서나 교회에 나와도 문제를 많이 일으킵니다. 아이들은 특별히 더 그렀습니다. 빗나가는 아이들은 대부분 가정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아이들입니다. 요즘은 대학생들을 비롯해서 중고등부 심지어는 초등학생들까지 사회를 어지럽히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제1의 교육기관이라는 가정의 문제로 인해서 이루어 집니다. 결손 가정들의 아이들이 다 그렇게 빗나가고 탈선되기 쉽습니다. 그 반대로 온전한 가정의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빗나가기 어렵다는 것도 우리가 신뢰 할 수 있습니다.


목회도 그렇습니다. 중직자로 한평생 주님의 일을 같이 하려면 가정을 올바로 세워주지 않으면은 올바른 일꾼이 되지 못합니다. 제자 훈련 목적은 일평생 일꾼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잠시적 즉 1~2년 일하는 일꾼으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가능합니다. 일평생 같이 주님의 일을 하려면 제자훈련이 있어야 하고 그 속에서 가정문제를 바로 지도해 주어야 합니다. 가정 문제가 올바르지 못하면은 결국은 교회에도 쓰임 받지못합니다.


7. 남편과 아내가 어떻게 하면 서로 행복한 관계 가운데 살 수 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하여 에베소서 5:21~33절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부부 교제를 발전시켜 줄 많은 원리들을 이 성경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 그 원리들을 적어 보십시오.


(1) 21절 “그리스도를 경외(敬畏)하므로 피차 복종하라”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피차 복종하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서로 복종하는 마음의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남편은 머리라고 해서 절대 아내말을 외면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면 안됩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자신이 몸의 역할을 해야 되고 순종을 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면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순종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순종하듯 아내 말에 순종 할 줄 알야합니다. 주님을 영화롭게 하려면은 아내 말에도 복종할 수 있어야 됩니다. 물론 아내도 동일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가장 기본적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가정입니다. 이런 믿음이 없는 가정은 남편은 결코 아내 말을 듣지 않을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피차 복종하는 마음을 가질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의 요소입니다. 남편은 항상 굴림하려고만 하고 아내 말은 듣지 않을려고 자존심만 내세우는 면에서 다시 한번 자기를 정리하는 그런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에 내가 피차 복종하고 살려고 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2) 22~24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은 사랑의 리더쉽을 발휘하면서 아내를 보호 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 대해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남편의 역할 중에 하나가 리더쉽입니다. 아내를 이끌어 나가는 아내를 잘 허리에 차고 나가는 그런 리더쉽이 있어야 합니다. 군대 지도자나 공사판의 감독 같은 태도가 아니라 사랑의 지도자, 사랑의 리더쉽으로 해야 합니다. 인체중의 머리가 몸에 대해서 모든걸 지시할 때는 몸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눈을 깜박거리게 하는 신경의 명령, 혹은 눈을 비벼주게 하는 행동 등은 눈 자체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지 손보고 머리가 명령하기를 손아 눈을 때려라는 명령은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자기 눈 때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즉 남편은 아내를 사랑의 리더쉽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3) 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꼐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남편은 아내에 대하여 십자가를 지는 희생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사이처럼 그렇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양보하고 져주고 이러한 희생이 남편은 아내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으로 희생할 때 좋은 결과가 옵니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교제가 있고 여기에는 사랑의 성숙이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져주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 네가 옳다’고 끝까지 싸우는 것은 교제가 못됩니다. 왠만한 것은 남편이 져주는 것이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사랑으로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더 좋은 성숙과 교제가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4) 26~27절 “이는 곧 물로 씨서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남편은 자기 아내에게 최대한 개발해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내에게 있는 소질이나 재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남편은 배려해주고 힘써주어야 합니다. 또한 가정에서 아내가 할 수 있는 기능도 다 하도록 남편이 개발해 도와주려고 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도 아내가 자꾸 더 성숙하도록 배려해주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대부분 결혼하면 남편의 활동 범위는 커지지만 아내의 활동 범위는 좁아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성장하지만 아내는 가정생활을 위주로 하므로 사회적으로나 지능적으로나 범위가 적어져 성장이 멈추게 되어 집니다. 이러한 아내에 대해서 개발을 게을리하고 관심을 갔지않으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수준차이가 나게 됩니다. 대화도 차이가 납니다. 생각하는 면에서도 자꾸 남편은 높아지는데 아내는 느리게 성장합니다. 사회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하고 받지 못한 사람하고 차이중에 하나가 대화의 수준의 차이입니다. 이와같이 남편하고 아내하고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남편은 아내를 무시해 하며 학대하고 속박해 결국은 아내를 버리게 되는 경우까지 가기도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무시하기 보다는 아내의 성숙을 위해서 개발해 주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5) 28~30절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남편은 자기 아내를 제 몸같이 여기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아내는 모든 면에 약합니다. 유혹의 위험에서도 약합니다. 죄책감, 좌절감에서도 약합니다. 감정적으로 약하므로 쉽게 죄책감이나 자절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런 면에서 남편이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 아내가 우울해 있다면 그 우울함면을 풀어 줄줄 하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좀 둔한 남편들은 교제가 성숙이 되지 않아 아내의 한달에 한번하는 생리 기간에 대해 눈치를 못체고 있는 남편들도 있습니다. 이 기간에는 여자들은 몸도 약해지고 아프고 감정적으로 예민해 지게 됩니다. 이 시기를 눈치를 못체고 남편들은 평상시 같이 호되게 질책을 한다거나 무엇을 못한다고 나무란다거나 하게되면 아내들은 쉽게 감정적으로 허물어 지기 쉽습니다.


또 자녀가 경시할 위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 아내를 무시할 위험도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남편이 아내의 보호자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대부분 사모님들하고 같이 공부해보면 그런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가 괭장히 자기를 그러한 면에서 신경을 않써준다는 것입니다. 사모님들은 많이 핍박을 받습니다. 감정적으로 교인들에게 핍박을 많이 받는데 목사가 보호자가 안되어주고 오히려 교인들 편을 들어주고 그런다면 사모님들은 괭장히 그런면에서 낙심될 정도로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6) 31절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부부는 서로 상대방에 대해서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든지 지휘를 떠나서 일반적으로는 자기는 한 아내의 남편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부는 그 이상의 사람이 없어야 됩니다. 내 남편외에 다른 사람이 없어야 되고 내 아내외에 다른 사람이 없어야 됩니다.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모든 사람보다 최고의 사람이다라는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7) 33절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敬畏)하라”


남편은 아내를 자기 같이 사랑해야 하며 아내도 남편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한 몸으로 동일시 하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플 때 느끼는 감정으로 아내의 아픔을 느끼고 내가 기쁠 때 느끼는 감정으로 아내의 기쁨을 나도 동참하는 감정이 있을 때 하나가 되는 수준입니다. 느낌이나 감정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윗이 자기 성으로 언약궤를 가지고 올 때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아내 미갈은 다윗이 옷이 내려가는 줄 모르고 춤추는 것을 보고 좋게 보지 않고 비웃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과 미갈은 감정이 하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일로 가정의 비극을 몰고 왔습니다. 결국 미갈은 하나님 앞에서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정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부부의 감정이 하나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남편이 그렇게 좋아서 기뻐한다면 아내도 좋아 기뻐해야 했어야 합니다. 그게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갈은 기뻐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감정으로 하나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남편이 기쁘면 아내도 기뻐할 때 감정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8. 결혼 초기 당신이 적응할 필요가 있는(있었던) 것을 한 가지 들어 보십시오.


결혼 초기에 서로 적응이 되고 하나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중에 음식문제로 ‘밥이 데다, 질다’ ‘반찬이 짜다, 맵다’ ‘국물이 적다, 많다’ 등으로 다투고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일찍이 적응이 되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교제하지 않고 게을리해서 지금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부모문제입니다. 부모를 어떻게 모시고 섬기는가에 대해서 일찍이 하나가 되어야 있어야 합니다. 매일 부모로 인해 평생 다툰다면 그건 미성숙한 부부인 것입니다. 성격 차이문제도 서로 조절해 가고 서로 양보해야 하며 또 결혼 전의 경험이나 추억등의 문제도 이미 적응되어 있어야 합니다. 친구문제도 남편이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다툼의 요소가 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서 친구가 너무 좋아 아무 때나 밤늦게 데리고 와서 같이 자게 한다거나 아니면 계획도 없는 일에 친구를 대접을 시키도록 한다는 것은 다툼의 요소가 될 수 도 있지만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결혼초기에 적응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남편도 양보하고 아내도 양보해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자꾸 생기는 일이 없도록 빨리 적응이 되어 하나가 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럴 때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9. 당신의 배우자의 긴급한 필요는 무엇이며(무엇이었으며), 그리고 당신은 그 필요를 어떻게 채우 주려고 합니까?(했습니까?)


현재나 과거를 뒤 돌아 보면서 부부간에 이야기 나누는 시간입니다.

부부간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점이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문제가 되었던 점을 어떻게 교제를 통해서 하나로 이루어 나갈 수 있겠습니까?


부부 교제와 가족


결혼은 영구적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기르는 일은 잠시일 뿐입니다. 자기 배우자와 올바른 관계에 있지 않는 사람은 자녀 양육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될 것입니다.


10. 자녀들이 생겼을 때 부부가 서로에 대한 헌신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 헌신에 대한 우선 순위는 둘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소한 일이 하나한 쌓이게 되면은 언젠가는 터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아이들은 아닌 단둘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효합니다.


(2) 감정적인 면에서도 아이들이 있기전에 서로 일치가 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아이들 앞에서 서로 감정을 가지고 다투는 모습을 보이면 안됩니다. 감정적인 면에서 둘이 하나가 되려고 하는 시간을 가지고 교제를 해야 됩니다. 해결할 문제가 있으면 단 둘이 풀려고 하고 기도로 풀어 나가려는 모습으로 변해야 합니다.


(3) 물질 면에서도 아이들에게 보다 남편에게 신경을 더 써주어야 합니다. 결혼 초기에는 남편의 옷과 넥타이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주는데 아이를 낳으면 남편들은 뒷전이고 아이에게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물질을 사용하는데에서도 아이에게만 투자를 합니다. 어린아이에게 비싼 옷, 좋은 옷 사주는데 남편에게는 넥타이 몇 년가도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선 순위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남편에게는 관심도 없고 신경도 써주지 않는 것은 않됩니다. 물질적인 투자에서도 남편에게 여전히 투자 할 수 있어야합니다. 물론 남편도 아내에 대해서 동일 합니다. 아이들에게 광잉투자 안하는게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성장하면 자기들이 다 취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 할 도리만 믿음으로 잘하면 됩니다. 아이를 의지하고 기대를 걸고 과잉투자하는 것은 오히려 가정의 전체 분위기를 흐트리기 쉽습니다.


11. 부모는 왜 자녀에게 “연합전선”을 펴야 합니까?


(1) 올바로 자라지못하고 생각에 혼란을 가져 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잘못했을 때 어머니가 혼내주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혼내주고 책망하고있는데 아버지가 밖에서 들어오면서 아이 가 잘했다는 식으로 아내에게 지나치다는 식으로하면 부부가 다투게 됩니다. 그러면 아이 입장에서는 이것은 내가 잘못해서 꾸지람 받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견해 차이와 주관적인 사고 때문에 내가 희생 당하고 있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연합전선이 중요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잘못대하면서 책망을 해도 일단 남편은 어머니하는 그대로 놔두어야 하고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아이 앞에서 같은 태도를 취해 하고 그 다음에 이야기할 소제가 있으면 뒤에 아내에게 ‘당신 태도가 잘못되었어, 너무 지나쳤어’라고 조용히 대화로서 풀어가야 합니다. 아이 앞에서는 최소한 연합전선을 해야 아이가 바로 자랄 수 있습니다.


(2) 부모들 중에 어느 한쪽만 좋아하는 경향으로 흐리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때 남자아이는 어머니를 좋아하고 여자아이는 아버지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럴 때 부모가 어느 한쪽만 좋아하게 되면은 ‘어머니는 나를 미워하고 아버지만 나를 사랑하는 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어머니는 미워하고 아버지만 사랑하게 되어 집니다. 비툴어진 편애는 아이가 정서적으로 잘못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연합전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3) 신뢰도가 없어집니다. 부모에 대해서 신뢰도가 없어지게 됩니다.  부모가 연합전선을 못하더라도 최소한 어떤 면에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정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이 책망은 못해도 너는 이런 면에서는 잘못했다 그렇게 설명이라도 해주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정반대의 태도를 아이 앞에 보이면 나중에는 어머니 말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뢰도가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앞1번 문장을 참조하십시오).


12. 자녀에게는 과잉투자를 하면서 결혼 생활에는 별로 투자를 하지 않는 부모에게는 어떤 위험이 따릅니까?


부부간에 돈을 쓰고 않고 아이들에게만 돈을 투자하면 좋지 않습니다. 이에 따른 위험은 첫째, 부부가 서로 외로워집니다. 소외감을 가지기 쉽고 외로움 타게 됩니다.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는데 외롭다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아이에게 투자를 많이 해놓으면 아이가 자란뒤에 남편보다 자식에게 더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의지하고 살아야 되는데 자식을 의지하는 경향이 있게 되어집니다. 셋째, 부부 생활의 성숙이 없어집니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이에게만 투자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으로 부부 생활에 침해를 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부부 생활에 침해를 받는 것은 아이쪽에만 관심만 있고 실질적으로 부부의 대화의 시간이 없어 침해 받는 것이며 부부 생활에 성숙이 없는 것입니다.


13. 이것이 자녀에게는 어떤 영향이 미칩니까?


첫째, 독립심이 없어지고 의타심이 생깁니다. 너무 광이투자를 하면은 자녀가 독립심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부모만 의지하고 기댈려고만 하며  스스로 계획을 세우거나 스스로 실행하는 모습은 소침하게 됩니다. 자기 역할도 감당하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이 되어집니다.


둘째, 자기 중심의 사람으로 되어 집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기만 챙겨주므로 그렇습니다. 이러한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이기주의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해주기만을 바라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결혼하면 아내와 행복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이기적으로 자기 생각만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자기에게 잘해주기만을 바라지 아내에게 도와주고 배려하는면은 없게 됩니다. 결국은 행복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너무 광이투자를 하면은 아이게는 이렇게 않좋은  면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부모의 기대감이 정신적인 압박을 주어 정서가 불안해 지게 됩니다. 부모가 너무 자기에게 잘해주고 큰 기대를 하게되면 자녀는 부담이 되어 불안해 지는 것입니다. 요즘 자살하는 학생들도 이러면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 어느날 갑자기 자살하는 일도 있습니다. 왜그렇겠습니까? 부모의 기대가 너무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기에게 큰 기대를 거는데 그 기대에 보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능력이나 자신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녀에게는 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너무 광잉투자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좋지 않습니다. 부부에게도 좋지 않고 자녀에게도 좋지 않은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최소한 배려할 것 배려하고 자기 힘으로 못하는 것은 부모가 도와주고 올바른 지도와 자녀에게 자율적인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14. 당신의 성장기 동안에 당신 부모의 부부 관계에서 받은 인상은 어떠합니까?


대부분 우리가 자라는 성장기 동안에 내 부모에 대한 인상이 상당히 깊이 남아 있습니다. 성장기 동안에 부모에게 느낀 인상으로 자신의  부부 생활을 자우하기 쉬워 집니다. 그러면 내 부모의 부부 생활이 내게 미친 영향이 어떤 것입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싸우며 욕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성장하면서 ‘나는 저런 생활을 하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하며 부모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자녀가 성장해 결혼해서 부부 싸움을 잘한다고 합니다. 또한 엄마가 술집하는 집에서 태어난 자녀도 ‘나는 크면 술파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엄마를 미워하게 됩니다. 이러한 환경을 보고 자란 딸이 결혼해 술집하고 사는 확률이 많다고 합니다. 부모가 술집한다고 미워했는데도 자기도 모르게 커서 살다보면 술집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자신의 부부 생활이 무엇이라는 것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은 부모는 의식해야 됩니다. 우리는 내가 사는 모습을 내 자녀에게 좋은 것을 심어 줄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부터 그런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하면 자녀들은 배울데가 없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나 학교에서나 배울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나 학교는 문란해지고 추악해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부 생활은 ‘이런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면 자녀는 그것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부 생활이 자녀의 인격속에 깊이 심어져 자녀의 부부 생활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건전한 사랑의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사이 좋게 지내는 것 다정하게 지내는 것 사이 좋게 외출하는 것 사이 좋게 사랑을 나누는 것 대화하는 것 등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아들 딸도 결혼해서 그러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모습을 볼 때 자녀는 우리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고 있구나는 것을 확신하며 자녀는 안정감을 가지고 성장하게 됩니다. ‘나는 버림 받지 않는다’는 안정감을 갔습니다. 그러나 만일 부부가 매일 싸우고 이혼하면 자녀들은 ‘나는 버림 받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쪽으로 가야 될까’ 이러한 생각을 하므로 자녀에게 정서적 안정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영향으로 인해 어떤 딸은 자기 아버지를 보고 자기 남편을 흠모하기도하고 존경하기도 하고 혹은 남편을 미워하며 협오하기도 합니다. 부모에게 받은 인상으로 늘 남편과 아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부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자녀에게 어떠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며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야 하겠습니다.


어느 부부의 이야기


여자는 시골에서 자랐는데 자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잘했다는 것입니다. 옛날 시골에는 연탄을 사용하였습니다. 새벽에 연탄 불이 약해 질 즈음에 방이 추어지지 않기 위해 아버지가 새벽 일찍일어나 방마다 불을 갈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밥하고 뜨거운 물 데워놓고 들에 갔다오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해서 자기 남편에게 그런한 것을 바랬다고 합니다. 자주 해달라고 하니까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므로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계속하니까 그런쪽으로 습관이 들어 결국 자기 남편을 자기 아버지처럼 변화를 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15. 그분들의 관계에서 당신은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자신이 어렸을 때 보았던 부모의 결혼 생활을 통해서 잔신이 깨달은 교훈은 무엇이고 배울점은 무엇입니까?


특별히 올바른 결혼 생활의 모범을 우리가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결혼 생활이고, 이런 것이 사랑이다’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사랑을 찾게 되고 그런 사람의 배우자를 찾게 됩니다. 결국은 좋은 사람도 만나게되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의 결혼 생활을 통해서 내 자녀에게 좋은 결혼 생활의 모범을 보여 줄 수 있어야 되고 그런 교훈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4번 15번을 적용해서 성장기때 내 부모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생각해보면서 자신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자기 부모처럼 살고 있을 것입니다. ‘아! 이것은 내가 잘못된 것을 배운거구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변화되려고 하고 ‘나는 자녀들에게 이런걸 보여주면 않되겠다’라고 생각하며 부부 생활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16. 결혼 초기의 3년을 제외하고는 결혼한 지 20년 후가 그 어느 때보다 이혼하는 사례가 많은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무엇이 부부 관계에 금이 가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1) 부부 교제가 발전이 안된 상태도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살다보니 그것이 굳어져 이제는 양보 보다는 포기쪽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부 교제가 생활에서나 생각이나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성숙이어야 되는데 성숙이 안된체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결혼하여 살아가면서 대화하는 것도 자녀 중심으로만 하고 부부간의 대화나 대화의 일치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부모 곁을 떠나게 되는데 떠나게 되면 부모의 기대가 점점 아이들에게 떠나가 됩니다. 그때서야 부부간의 서로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지금까지 자존심이 굳어져 있어서 심들어 지게됩니다. 이러므로 사랑이 식어지고 금이가게 되는 것입니다.


(2) 새로운 삶에 대한 유혹이 커집니다. 부부간의 문제로 인해 이왕 불행할 바에야 다른 사람하고 살아보자는 새로운 삶을 동경하는 마음이 커지게 됩니다. 이제는 락을 즐겨보자 아니면 사업에 몰두하는 쪽으로 기우려보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년 이후에 돈 버는쪽으로 많이 기울어지게 됩니다. 개인의 전공분야에 한번 심취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새 삶에 대한 유혹 때문에 부부사이는 더 멀어지게 되고 금이 가게됩니다. 중년 이후에 사람이 바람이 나거나  변한다는 그런 말을 흔히 많이 하는데 이런 경우에 유혹에 빠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 자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게 됩니다. 자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게 되면 한꺼번에 모든것이 무너지게 됩니다. 나이가 되도록 해결하지 못한 가정 문제, 시부모 문제, 재산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다 한꺼번에 다가오게 됩니다. 이런 중년의 위기가 오기전에 일찍부터 부부 교제로 해결해 나가는 삶으로 서로 부딪히면서 서로 모가 나지 않고 조화있게 꾸준한 성숙되는 삶을 살았더라면 이런 위기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위기가 왔더라도 잘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중년 이후에 이런것들이 다시 대두가 되면 그때는 끝장 내기 수운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년 이후에 부부 생활이 식어지게 되고 오히려 남편이 눌림을 받게되고 아내가 득세하게 되는 모습을 지금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가 있고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17. 아가서 8:7절에 따르면 사랑은 얼마나 견고해야 합니까?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주고 사랑고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어떤 위험이나 반대에도 물질적인 것 그 무엇이 위협해도 갈라설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갈라설수 없는 것이 부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새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살아 가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부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가는 갈라설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새로 사는 기쁨으로 새로 시작하는 것을 평생 계속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 일수록 더 부부 생활을 조화를 이루어 가야 하고 부부 생활이 성숙해야 그 만큼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부부 생활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비전을 제시해 주고 무엇인가 주님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18. 자녀들이 자라 슬하를 떠나는 단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부부는 서로를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두 사람이 시작해서 가다가 한바퀴 돌게 됩니다. 한바퀴 돈다는 것은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짧습니다. 아이가 성장해서 부모를 떠나게 되면 다시 부부가 둘이 남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낳아서 다 키운뒤에 그때 우리 부부가 둘이 남아야 되기 때문에 그때를 대비해서 서로 도울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부부 간의 서로 계획을 세우는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남편이 아내를 도울 수 있는 방법


무엇보다도 사랑이 더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 교제 시간, 함께 하는 시간 등 이런 시간을 배려해 두어야 합니다. 또 영적으로 삶 더 풍서해지도록 기도시간 은혜 받는 시간등을 더 배려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항상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찬송하고 기도하고 이제는 하늘나  나라에 더 구체적인 소망을 두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 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믿음이 내 마음에 풍성해져야 허무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에 허무감이 찾아 옵니다. 허무감이 들면 마지막 남은 토막의 인생을 그릇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허무감이 들지 않도록 소망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2) 아내가 남편을 도울 수 있는 방법


누구 아빠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보다는 실제로 본인의 이름을 부를수 있어야 합니다. 대화를 할 때도 옛날 연애 시절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는 것도 상당이 도움이 됩니다. 자기 남편, 아내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자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 둘이 남아 있기에 누구의 엄마, 아빠가아니라 직접 남편의 이름이나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서 옛날 시절을 돌이키려고 하는 마음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제 2의 제 3의 신혼 여행을 자주 다니며 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필요합니다. 제 2의 제 3의 여행을 자주 계획해서 둘만의 오붓한 시간 즐거운 시간을 자주 가지는 것도 중년기 이후의 노년기의 마음의 허전함이나 공백을 채워줄 수 있고 마음을 풍요롭게 할수 있는 비결입니다.


19. 자녀들이 자라 슬하를 더나 부부둘만 남았을 때 부부가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입니까?


(1) 잠언 17:6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훌륭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녀들로 인해 손주들이 있게 됩니다. 손주들에게 훌륭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유산이나 집이 있으면 그것을 자져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냥 사랑한다고 집도 다 자식들 이름으로 넘겨주면 그 때 부터서는 별볼일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시대입니다. 이런일로 인해 부모들이 많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큰소리도 못치게 됩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다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서 돈을 가지고 손주들이 오면 용돈을 주어 자녀들하고 손주들이 자주오게 해야 합니다. 손주들이 오는데 용돈을 주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자녀들이 자주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집도 너무 큰 것을 가지고 있으면 안되고 적은 것으로 줄려 현금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자주 부부가 쓰고 손주들이오면 용돈도 많이주면 자녀들도 존주들도 자주 오게 됩니다. 이렇게 부모에게 타가도록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 앞으로 재산을 물려주지 말고 부부가 죽은 뒤에는 모르지만은 그렇기 전에 물려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하나의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2) 전도서 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중년 이후에도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사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아내를 사랑하는 삶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젠 아내와 남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결혼하게 되면은 남같이 여겨지게 됩니다. 결국은 둘이 남기에 둘이 더 의지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3) 빌립보서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賞)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계속 주님의 일에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갱년기 때는 더욱 더 주님의 일에 열심히 할려고 해야합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락같은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일에 열심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옛날에 자녀들을 키우는 일에 바빠서 못했던 것 이제는 더욱 소망 가운데 경제적인 면에서도 더욱 주님을 위해서 쓰고 교회에 봉사하는 그런 삶을 열심하는 것이 우리의 즐거움이 되고 락이 되는 것입니다. 전에 못했던 성경 공부도 이제는 할려고 해야 됩니다. 나이 들어 할게 무엇이 있습니까? 옛날에는 바빠서 못했지만은 이제는 성경 공부, 전도, 혹은 교회 봉사, 구제 사업 등 더 전념해주님의 일에 열심히 하는 것이 갱년기 동안 우리가 개발할 수 있는 즐거움의 삶입니다.


20. 당신의 배우자와이 현재의 관계를 살펴볼 때, 중년기의 위기에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 부부 교제에서 보강을 요하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이제는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믿음의 삶이 제일 중요합니다. 피차가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더 사랑하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중년기 이후 노후에 더 삶이 보람 찰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없으면 점점 허무함밖에 생기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허탈하게 되고 맙니다.


요 약


부부 교제는 부모의 역할보다 중요합니다. 자기의 배우자를 어떻게 대우하며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자기 가족에 대한 태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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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과 바람직한 부모상


“둘이 셋이 되었을 때만큼 그 둘이 하나가 되는 적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그들의 첫 아기가 태어날 때 깨닫는 바대로, 이 이상한 말 안에는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비록 자녀 양육이 당신의 결혼 생활에 새로운 책임과 압력을 가져 오지만, 당신이 성경의 교훈을 따르기만 한다면 당신도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 만족스럽고 발전적인 관계 가운데 살고 있는 부부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적인 부모가 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을 한 가지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자녀는 부모를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하는 선물입니다. 따라서 부부가 한 몸이 되는데 자녀가 괭장히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자녀 때문에 부부가 갈등을 겪고 다투는 일도 있지만 그래도 올바른 자녀관을 가지고 살아갈때 오히려 부부가 하나되는 삶을 자녀들이 이루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바람직한 부모상이 오히려 부부 새활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부모에 대한 역할 면을 배우겠습니다.


연구 과제


1. 다음 내용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르다고 생각하십니까? 답하시고 간단히 그 이유를 설명하십시오.


(1) 자녀를 위해 배우자를 결코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옳다, 그르다)


희생할 때는 해야 됩니다. 경건한 자손 영적인 자손을 얻기 위해 서로 희생을 해야 합니다. 현대 젊은 부부는 자기 몸이 상한다면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이를 낳아도 자기가 키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경건한 자손과 영적 자손을 얻기 위해서는 부모가 희생하는 면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이나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일을 넘어서 희생하는 것은 비성경적이지만 그러나 이런 것들을 유지해 가면서 또 정당한 부부 관계나 부부의 사랑을 유지해 가면서 할 수 있는 희생은 자녀를 위해 해야 합니다.


(2) 자녀가 부모의 결혼 생활에서 본 것은 장차 자녀의 결혼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옳다, 그르다)


자녀는 부모의 결혼 생활을 보고 배웁니다. 사회에서는 정반대의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진정한 부부의 삶이 어떤 것인가?는 자기 가정 생활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렇기부모의 부부 생활이 괭장히 영향력이 큰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결정되기 쉽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난폭하게 다루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는 결혼해서 자기 아내를 난폭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 부모 곁에서 보고 배운 것이 그것이기 때문에 자연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녀가 성장하면서 ‘결혼하면 우리 부모와 같이 살지 않아야지’라고 결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해서 초기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결국은 자기 아버지 모습을 보고 자랐으므로 자기도 자기 아내에게 그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마디 설교보다 성경적인 부부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자녀 교육이며 자녀를 행복하게 살게하는 비결입니다. 우리 아들 딸이 앞으로 결혼 생활을 할 때 그들이 진정 행복하기를 바란다면은 부모가 성경적인 부부 생활을 보여주어야 됩니다. 보고 배우는 것이 제일 빠르고  가장 쉽게 배우는 것이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서로 불평하거나 싸우면 안되고 하나님 말씀으로 해결하려고 성경보고 기도하는 모습이 아이들 눈에 보게 해야 합니다. 또한 가정에 어려움이 있고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오히려 가정이 둘러 앉아서 아이들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기도하고 성경 중심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 예배를 평상시에는 드리지 못해도 어려울 때나 기쁜일이 있을 때 슬픈일이 있을 때라도 온 가족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참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 줄때 자녀들이 다음에 커서 그런 어려움이 있으면 서로가 불평하지 않고 기도하여 하나님을 통해 해결 받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생활이 자녀에게 비추어지는 부부 생활이 되어야합니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그때 자녀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남편은 아내를 불평하고 아내는 남편을 불평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생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성경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3) 남편은 많은 책임을 맏고 있기 때문에, 자녀 교육에 대하여는 대부분 아내에게 맡겨야 한다. (옳다, 그르다)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무리 바빠도 가정의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자녀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에게 아버지의 할 일을 하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예를 들면 책망, 교훈, 훈계, 경책 등 이런 것은 아버지가 해야 합니다. 이런한 것을 하지 않으면 아버지라는 권위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아버지가 해야 될 일은 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해야 될 일을 아이들에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아버지들은 노후가 되면 외롭습니다. 왜냐하면 아내에게 맡겨버리고 아버지 노릇을 않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나이가 들면 자녀들은 자연이 어머니쪽으로 기울어져 아버지에게는 관심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버지들이 그렇게 살아 왔으면 이제는 아버지도 반드시 자녀에 대해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 노릇을 해야 관계가 맺어집니다. 용돈도 주고 같이 놀면서도 따끔하게 채크 하기도 하는 것 등 이런 것이 필요하고 이러한 것을 통해 부자 간의 정이들고 관계가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이들어도 여전이 이런 관계가 우지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는 외롭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아내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옳지 못한 생각입니다.


(4) 가정 생활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하나님이 말씀 -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 에 권위를 두어야 한다. (옳다. 그르다)

가정 생활에서 하나님 말씀을 권위를 두는 것은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믿고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고 따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되면 온 가족이 주안에서 순종하게 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할 때 ‘우리 가문은 이렇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했다’ ‘우리 가문의 전통은 이렇다’ ‘아버지의 성격이 이러니까 이렇게 해야 된다’ 이런식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면 자녀의 순종도 오래 가지 못하고 권위도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무서워서 그 순간은 순종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순종하는 것은 못됩니다. ‘우리 집안은 이래야 된다’는 말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을 원한다’는 말로 해야 합니다. 심지어 자녀의 공부를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네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네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네 학생때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다른 것은 하나님과 부모가 책임 질테니까 공부하는 것을 하나님이 네게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라는 식으로 깨달음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으로부터 믿음으로 순복하고 결국은 공부하는 자세로 임하게 되어 집니다. 자녀들이 ‘아! 나는 부모의 극성 때문에 나는 공부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현재의 한국 많은 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의 밑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따라야 된다’ 이런식으로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커서 부모 품을 떠나면 공부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잘못되게 하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의 신앙 생활에 대해서는 자녀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두어야 한다. (옳다, 그르다)


하나님 말씀은 참 진리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가르치고 명해야 합니다. 그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대로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책임을 지고 직접 가르치며 책킹하는 부모가 바람직한 부모입니다. 학교에서 잘 배웠겠지 하는 식으로 끝내면 안됩니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듣고 배운것이 무엇인가’ 등으로 채크해 보아야 합니다. 학교에 보내었다고 방치해 두면 안됩니다. 명하고 가르치고 책임있는 부모가 되어야합니다. ‘너 알아서 해라’는 것은 성인이 된 뒤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된 뒤에도 ‘자식은 평생 자식이라’는 말처럼 관심이 있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성장기 때는 부모가 책임을 져야 되며 ‘너 알서 해라’는 말은 안됩니다. 특별히 영적인 생활은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정답 : (1)×, (2)○, (3)×, (4)○, (5)×


가족 계획


가족 계획은 근복적으로 도덕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성경에는 분명하게 그것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말은 없습니다. 성경에 어떤 특정한 문제에 대해 명확하고 결정적인 언급이 없을 때에는, 성서적인 원리들을 기초로 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부부는 각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루려는 마음을 가지고 이 원리들을 성실하게 적용해 나가야 합니다.


가족 계획이 ‘도덕적이다. 비도덕적이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마는 원리는 어디까지나 성경의 원리을 따라서 가정마다 개개인이 적용하는 것은 자기 믿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원리를 살펴 보겠습니다.


2. 다음의 성경 구절에서 가족 계획에 대한 어떤 지침 및 원리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1)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르시라 하시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은 이 땅에 죄가 들어오기 전입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이므로 더 축복됩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이고 사명이며 명령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는 것이 첫째 우리가 생각해야 할 원리입니다.


(2) 시편 127:3~5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賞給)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箭筒)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자식이 많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시편은 죄가 들어온 이후의 말씀입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에라도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라는 것을 시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변해진 것은 아닙니다.


(3) 디모데전서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부모가 가족을 돌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돌볼 책이이란 자녀를 가르치고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며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일수록 더 책임은 큽니다. 자녀를 많이 낳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부모의 책임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감정적, 사회적, 지적, 영적으로 부모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많이 낳아서 매일 바쁘다고 여러면에서 책임을 못지면 바른 부모관이 못되고 성경의 원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4) 야고보서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가족 계획을 기도해서 지혜롭게 결정해야 될 문제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지혜를 받아서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개인에 따라서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결정해야 될 문제입니다. 많이 낳고 낳지 말라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문제보다 개개인이 하나님 앞에 지혜를 받아서 결정해야 할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5)베드로전서 3: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同居)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귀히여겨야 합니다. 아내의 건강, 개인적인 생활, 정서, 영적인 생활 등을 보호할 것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아내가 몸이 약한데 아이를 많이 낳게 되면은 문제가 생기거나 개인 생활이 없어지고 여러 가지로 너무 피곤하고 정서가 파고되고 영적 생활도 어려워집니다. 이런면을 보면 아이보다도 아내가 더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내를 희생해서라도 자녀를 많이 낳자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아내의 입장을 고려해서 아내가 아이를 많이 낳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이를 많이 낳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나하고 달라 연약한 그릇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로 깨지기 쉽습니다.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연약합니다. 아내의 개인 생활 남편과의 생활 등을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1~2번은 축복을 강조한 것이고 3~5번은 책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종합적으로 생각해서 가정마다 결정할 문제이지 많이 낳는다고해서 체질적으로 축복이고 많이 낳지 못한다고 해서 죄이다라는 도덕적이고 죄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축복과 책임을 동시에 말하고 있기 때문에 개개인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가족 계획을 하려면, 부부는 먼저 태도와 목적에서 합의를 보고, 같은 결론을 얻은 후에, 두 사람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산아제한(産兒制限)을 지혜롭게 하는 것은 좋지만 낙태는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너무 국가 정잭에 의존해도 않되고 개인이 신앙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능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잘 감당할 수 있다면 많이 낳으면 좋습니다. 신성한 선교 사업이되고 지혜로운 영적인 자손이 퍼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단지 무작정 많이 낳는 것만 축복이 아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한의 필요가 있으면 산하제한을 하는 것도 성경적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불림수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러한 수술을 하지않고 임신을 하여 낙태수술을 하면은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합의를 보아 만족스러운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의 역할을 위한 준비


임신에서 출산까지는 단기간의 생물학적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의 인격 형성에는 오랜 기간 동안의 사려 깊은 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녀 양육을 위한 준비에는 단순히 모든 일이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 이상의 것이 요구됩니다. 삶의 여러 다른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신은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지를 활용하여 올바른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감정으로도 목표를 세우고 일을 시작할 수 있지만, 그릇된 길로 나가기 쉽습니다. 성공적인 부모의 역할은 결단과 준비와 계획과 기도, 그리고 수고를 필요로 합니다.


겨기에 몇 가지 기본적인 지침이 있습니다.


3. 고린도전서 11:3절과 에베소서 6:1절에서 하나님께서 가족을 위해 세우신 권위와 복종 관계의 질서를 복습하십시오.


자녀는 부모에게 하나님 앞에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명령의 연쇄 관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 연쇄 관계는? 하나님 → 그리스도, 그리스도 → 부모, 부모 → 자려로 이어 집니다. 즉 부모는 자녀에게 명령하고 그리스도는 부모에게 명령하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한 하나님 안에서도 명령의 연쇄 관계가 있습니다. 똑 같은 하나님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명하신분이고 그리스도는 순종해야 되며, 그리스도는 부모에게 명하는 분이시고 부모는 순종해야 되고, 부모는 자녀에게 명령해야 되고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됩니다. 따라서 자녀는 선생이나 목사나 국가의 지도자나 이런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단지 부모는 이런한 것을 자원으로 사용할 뿐입니다. 부모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온 자녀에게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잘못 배울수 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갔다와도 물어 보아야 합니다. 주일학교 교사가 잘못 가르칠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신앙의 문제에 대해서 원리적인 중요한 것을 잘못가르칠 수 있습니다. 잘못 가르침을 아이들은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주일학교 교사에게 책임 있는 것이 아니고 일차적으로는 부모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학교에서나 교회에서 배우고 있는 것 마져도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물어보아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쳐주고 수정해주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부모의 책임 관계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알아서 인격적으로 하도록 나두지 부모가 명령하는 것은 좋지 않아’라고 이 시대의 부모들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옳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하나님 앞에서 부모가 책임을 져야 되므로 명령하는 위치에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신명기 6:6~7절을 신천하기위하여 필요한 일들을 적오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1) “마음에 새기고”라고 하였습니다. 부모 자신이 먼저 마음에 말씀을 새기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개발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 있더라도 하나님 말씀으로 교훈 할 수 있도록 새겨진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적절한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2) “자녀에게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내 마음에 새기고 살뿐아니라 자녀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가르치는 일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1)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밥 먹으면서 잘못 된 것 있으면 “기쁨과 순전(純全)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사도행전 2장 46절 말씀에 이듯이 이러한 말씀을 인용해서 가르칠때에 그들 마음에 새겨집니다. 밥 먹을 때는 기쁘고 마음으로 먹어야 됩니다. 화가난 마음으로 먹으면 안됩니다. 실제로 화가난 마음으로 먹으면 소화에도 지장이 있으며 건강에도 지장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언제 어느때고 부비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2) 행동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에게 가르치되 행동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모든 생활에서 부딪치는 대로 그때그때 가르쳐야 합니다. 하루에 한 시간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행동한 그때그때 가르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관섭한다 하더라고 그대로 한두 세네번 하게 되면 변화가 있습니다. 변화가 되면 관섭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가정 생활이 성숙해 집니다. 한 두번 부모가 명한 것은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순종이 되면 가정이 풍요로와 집니다. 나쁜 행동을 보는 것하고 한두마디 가르쳐서 그런행동 하지 않게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교훈하실 때 길가면서, 보리 이삭 먹으면서, 병자를 고치면서, 무화과 나무를 보면서 등 그때그때 행동적으로 가리킨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산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5. 가정은 신앙교육과 훈련의 주된 장소입니다.당신은 잠언 22:6절을 어떻게 실천할수 있겠습니까?

가정이 교육과 훈련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1) 본을 보여 주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의 최고의 권위는 본입니다.


1) 신앙적인 면에서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인격적인 면에서도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근대식으로는 하는 것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본을 보여야 합니다.


3) 생활 방식 면에서 본을 보여야 합니다. 생활하다 보면 사고 방식이 우연 중에 들어나게 됩니다.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느냐에 있어서 생활 속에서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생활 방식 면에서 올바른 가치가 나타나도록 본을 보여야 합니다.


(2) 매 주일 성경공부와 매일 아이들과 기도하는 삶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실천해야 할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우선 어느 기간 동안이라도 매일 아이들하고 기도하면서 본을 가르치는 것인데 저녁에 잠잘 때 몇일 동안 엄마 아빠가 같이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기도 해주면서 잠잘 때는 이렇게 꼭 기도해야 된다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가끔 부모가 같이 가서 기도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매 주일에 한번씩 성경공부하는 것도 참 좋은 교육이 됩니다. 아이들을 가르키는 것이 남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가르칠 때 그 시간에 문제 있던 것이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자녀를 가르치다 보면은 지혜가 떠오릅니다. 주일날 낮예배 드리기전에는 T.V를 틀지 못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럴 때 교회 예배 시간에 늦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산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6. 부모들이 자녀 교육이란 문제에 있어서는 아주 “사소한” 일들에 “너무 신경을 쓴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들 합니다.


다른데 힘쓰는 것보다 성격 계발에 힘써야 합니다.

① 자신을 잘 관리하는 사람되게 해야 합니다.

② 사회 생활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③ 주님의 일꾼의 자질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성격에 대해서 목표를 두고 성격 계발에 힘써야 합니다.


(1) 당신 자녀의 성품 가운데 계발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몇가지 들어 보십시오.


1) 순종심


따지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윗 사람이 명하면 따지지 않고 무조건 복종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2) 책임성


자기 것은 자기가 잘 관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책가장 , 옷, 방청소, 신발, 준비물, 세면, 양발 등은 자기 것은 자기가 책임 지는 것을 어려을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엄마가 챙겨 주게되면은 성격이 책임성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3) 적극성


부모가 격려해주고 잘 했다고 칭찬해주고 관심도 가져주고 이렇게 해서 부모가 적극성 있는 아이로 계발 시켜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아이를 키워야 합니다.


4) 감사심


사소한 일도 감사하는 말을 하게 하고 부모에게 형제간에 고마우면 고맙다는 표시하게하며 절대 화난 얼굴로 찡그린 얼굴로 이야기하는 자체를 거부해야 합니다. 식탁에서 밥 먹고 일어설때 부모에게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감사하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입니다.


5) 규칙성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나 그 사람의 인격 그 사람의 평생 행복 등은 어렸을 때 습관에 좌우된 일이 괭장이 많습니다. 규칙적인 규법이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6) 성실성


일을 하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성실하게 일해서 보수를 받는 성실한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부모가 다 해주며 않되고 마땅이 아이에게 시킬 것은 아이에게 시켜야 합니다. 학생은 공부가 먼저해야 되므로 공부를 성실하게 하게하고 공부한 그 이후에 가정에서 무언가 할 일을 찾아서 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아빠 구두를 닥으면 얼마 준다’해서 아빠 구두를 닦게해서 일한 댓가를 받으려고 하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그냥 주는 것하고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7) 화목성


싸움하지 않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싸우지 않고도 평화롭게 대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2) 사실은 덜 중요한 영역인데도 부모들이 지나치게 역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몇 가지 들어 보십시오.

1) 자녀들이 입는 옷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옷버리는 것에 대해서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야단을 심하게 하는 것은 아이를 바로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2) 코흘리거나 용모에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어른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코흘리는 것은 어느 정도 크게되면 코흘리지 않습니다. 자기가 알면은 자기기 잘 닦습니다. 코흘리는 것 침흘리는 것 너무나 야단 치는 것은 아이에게 좋지 않습니다.

3) 실수나 잘못하는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실수도 잘못도 어린아이로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너무나 신경 쓰는 것은 잘못키우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거나 불안하게 만들면 소심하게 자라게되고 여러 가지로 않좋은 점이 많습니다.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해도 안됩니다. 잔소리 많이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열살까지는 잘합니다. 아이에게 부모가 극성스럽게 공부하라 하면 열살까지는 남을 앞장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열살 이후부터는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잔소리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잘 알아서 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여러이 있으면 잘하는 데 혼자서는 잘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 교육의 문제입니다. 소인으로 자라지 않고 대인으로 자라도록 하려면 어떻게 키우면 되겠습니까?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에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것입니다.


성품 계발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기초는 그의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부모로서 반드시 마음에 두고 있어야 할 목표는 자녀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인도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자녀가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기게 될 때 그는 훌륭한 성품을 계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기”까지, 자녀의 기본적인 성품은 가정에서 보고 경험한 가족들과의 관계와 본들에 따라 형성됩니다. 부모로서 성품 계발에 대한 하나님의 교훈을 알고 있으면, 자녀를 진리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격 자체보다는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나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그리스도안에서 주님으로 모시고 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근본이고 기초입니다. 그래야 성품이 변화가 됩니다. 새 성품이 생기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7.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어떤 성품을 원하십니까? 아래에 열거한 성품과 관련되는 참조 구절을 연결해 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성격 계발에 힘써야합니다. 어떤 성품으로 키워야 될것인가를 하나님 말씀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1) 하나님께 순종                  → 카

(2) 부모에게 순종                  → 차

(3) 진 실                          → 자

(4) 하나님께 대한 믿음             → 아

(5) 순 결(거룩함)                   → 바

(6) 온 전                          → 사

(7) 정 직                          → 마

(8) 하나님에 대한 사랑             → 다

(9)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 가

(10) 겸 손                         → 나

(11) 후한 마음                     → 라



가. 요한일서 4:7                  나. 빌립보서 2:3~4 

다. 마태복음 22:37                라. 사도행전 20:35

마. 에베소서 4:25                 바. 데살로니가전서 4:3, 7

사. 고린도후서 8:21               아. 히브리서 11:6

자. 잠언 12:22                    차. 골로새서 3:20

카. 요한복음 14:15


8. 성경에서 확실히 다루고 있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결절은 어떻게 내려야 할까요? 그때는 다음과 같은 성서적 원리들을 적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성서적인 원리들을 설명하십시오.


어떤 것이 최선인가를 생각하고 해동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최선을 생각하고 최선을 찾고 행동하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이것이 ‘옳다 그르다’ ‘죄다 죄가 아니다’라는 것은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죄가 되고 않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것이 최선이냐가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어떤 상항이나 내가 꼭 선택해서 가야할 일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죄다, 죄가 아니다라’는 명사가 안된 것도 있습니다. 그럴때 분명히 성경의 원리를 따라서 적용해야 합니다.


(1) 고린도전서 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制裁)를 받지 아니하리라”


내가 가장 유익한 것을 행동하는 것입니다. 죄가 되지 않는 것 중에서 자신에게 유익이 하지 않은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행하면서 너무 지나치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절제 있게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2절 하반절에 “모든 것이 가하나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이 말은 자신에게 유익하다 해서 너무 푹빠져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죄가 되지 않고 좋은 행동일지라도 자기 컨트롤(Control : 지배, 억제)를 못하게 되면 자기에게는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운동이 좋다고 너무 무리하게 푹빠져 하는 것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선의 삶이 아닙니다.


(2) 고린도전서 8: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失足)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남을 식족하게 하지 않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는가? 주지 않는가? 덕이 되는가? 덕이 되지 않는가?’를 아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자기 자유를 남용해서 타인을 실족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의 일은 좋아도 이것을 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협오감을 준다거나 다른 사람에게는 해가 되고 좋지 않게 생각한다면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3)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 영광 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를 생각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이것이 정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동인가? 이것이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인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4) 사도행전 24: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양심에 거리낌 없이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내 마음에 거리낌이 없어야 됩니다. 거리낌이 있는 것은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가책이 되거나 부담 스러운 것 등을 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제도에 따라 행하는 것보다 원리에 따라서 최선한 것으로 키우는 것이 인격을 키워주는 것이고 신앙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9. 가정 예배는 자녀의 성품 계발을 위한 이상적인 장(場)을 제공해 줍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하나님 앞에 데리고나가 하나님을 뵙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가족이 모여서 주님께 예배드릴 때 반드시 비켜야 할 어떤 형식이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녀가 어릴수록 예배는 짧게 하십시오.

가정 예배시에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당신이 시도해 본 것들에 표시하십시오.


(1) 성경 읽기

(2) 찬 송

(3) 성경 이야기

(4) 성경 암송

(5) 기 도

(6) 기독교 서적이나 전기 읽기

(7) 설교나 찬송 음반 또는 테이프 듣기

(8) 기 타


가정 예배는 가능한 짧은 것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예배 자체를 기쁘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상큼하게 드리면서 좋아하는 식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 예배를 너무 오래드려 지루함을 느껴 지겹게 되면 그것은 별로 좋은 교육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방법이 다양하면 좋습니다. 인도자를 돌아가면서 할 수 있고, 기도도 돌아가면서 하는 변화가 있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Q.T보다 관찰 일기를 가지고 서로 나눈 것이 있는데, 성경 본 것을 말한다거나 집에서 있었던 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등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서두르는 예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시간은 짧게 잡고 내용은 간단하게 해야 합니다.


리챠드 펙스터 목사는 열심히 목회를 했는데도 되는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 앞에 사표를 쓰고 차라리 ‘나를 죽여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기도를 하고 있는 중에 마음 속에 ‘너는 그릇된 장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영감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이 무슨 뜻인가를 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리는데 ‘너는 교회에서 일하지 말고 가정에서 일해보라’는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이 음성을 듣고 각 가정을 찾아가서 가정 예배의 모습을 모여주면서 예배를 드렸더니 결국은 교회가 부흥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리챠드 펙스터 목사의 간증처럼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영적인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를 매일은 못드려도 특별한 날 같은 경우에는 철칙으로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도 없으면 믿는 가정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토요일 날과 주일 날은 빠뜨리지 말고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평상시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수 가 있습니다.


적 용


당신은 자녀에게 올바른 성품이 형성되도록 해주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6:4절은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아비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경건한 성품 계밸을 위해 당신이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성경을 암송토록 하게 합니다. 내 말이나 잔소리 보다 하나님 말씀으로 자녀들을 키워야 합니다. 학교 교육은 암송을 많이 하게 하는데 하나님 말씀은 암송을 시키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은 인격 교육이 안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씨가 마음에 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고 빗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암송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찬송을 즐겨 부르도록 하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찬송을 많이 부르지 않습니다. 많이 부르고 있는 것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가요를 많이 부릅니다. 그것은 부모가 신경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정서 발달이나 영적의 성장에 문제 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혼자 기도하는 시간을 갖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 말씀 읽는 시간을 갖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감독하고 강조해야 합니다. 성경 읽기를 계획 했으면 실천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채킹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먼저 기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훈련이 있으면 성장하면서 영적 생활에 큰 유익과 영향을 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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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과 자녀 교육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 거움이 없도다” <요한삼서 4>


자녀 양육이라는 이 중요학도 힘든 일에 대부분의 부부들은 결혼 생활의 긴 기간을 할애하니다. 부부는 자녀들의 성장과 성숙을 도는 책임과 기쁨을 함께 나눔으로써 새로운 차원에서 함께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모의 목표와 기도는 자녀들이 “지혜와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도록”(누가복음 2:52 참조)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은 누가복음 2장 52절의 목표를 위해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지혜와 키가 자라도록” 이 네가지 전인 적인 성장의 목표를 두고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목표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을 살펴 보겠습니다.


본을 통한 교육


말해 주는 것이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듣는 것이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들은 교훈보다 본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가르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부모의 말고 해동아 드를 대는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1. “교육”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 그 단어를 간단히 정의해 보십시오.


“교육(敎育 : Education)”이란 ‘가르쳐 지능을 기르거나 지식, 교양, 풍성 등을 바르게 갖게 하기 위하여 이끌어서 선량하게 하는 일이며’, ‘교인 또는 특정한 기관이 일정한 이상(理想) 또는 가치를 지향하여 미성숙(未成熟)한 아이나 청년을 지도하여 사회의 유지와 전진을 위하여 하는 의식적인 활동하게하고’ ‘개인의 전체적인 인간 형서의 사회적 과정’을 말합니다. 그러면 자녀 양육에 대한 정의는 가르친 것을 숙달되도록 연습시키는 것입니다. 단순히 지식에 배우는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격화 습관화 기술화 되도록 가르키는 것입니다. 훈련의 의미가 포함된 교육이 자녀교육입니다. 따라서 교육을 잘 시키려면은 부모가  본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교육과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꾸며서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 늦잠자는 부모가  아이들보고 일찍일어나라고 하는 교육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교훈은 할수 있지만 본은 되지 못합니다. 참된 교육은 본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2. 창세기 18:19절을 읽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잘 살펴보십시오. 다음 내용을 읽고 옳은지 그른지 표시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본을 보인 예입니다)


(1) 아브라함은 가족들이 하나님을 따를 것을 제안하기만 하면 되었다. (옳다, 그르다) 


아브라함은 명령을 했던 것이지 제한 한 것은 아닙니다. 받드시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은 집안 사람들에게 의로운 삶의 본을 보여야 했다. (옳다, 그르다)


본문에 보면 “도를 지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의 의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아브라함의 결정에 맡겨 두셨다. (옳다, 그르다) 


하나님은 행하도록 명령을 하셨던 것이지 직접 맡겨 두신 것은 아닙니다.


(4)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대한 자기의 약속을 이루기를 원하셨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순종에 달려 있었다. (옳다, 그르다)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지게 하는 비결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였기에 가족들에게도 순종하라고 명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순종하는 하는 사람이 가족들에게 명령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강한 리더쉽도 순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을 하면 형식적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정답 : (1)×, (2)○, (3)×, (4)○


3. 자녀가 경건한 부모의 본을 따라 행할 때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빌립보서 4:9) (바울의 본입니다)

빌립보서 4장 9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함께함을 확신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를 따르는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자기 행함에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에게도 ‘내가 어떻게 할 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다라’는 간증이 있어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살았더니 나와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더라’ ‘내가 이렇게 이렇게 살았더니 어려움이 있더라’라는 체험의 근거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체험의 근거에서 가르켜야 힘이 됩니다. 전혀 관계가 없는 피상적인 말보다는 살아 왔던 실제적인 체험의 말이 더 효과적입니다.


4. 디모데후서 3:10~11절에 따르면, 디모데가 보고 알게 된, 그의 영적 아버지 바울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디모데가 바울의 삶에 대해서 어떠한 관찰을 해서 배웠는가? 디모데가 관찰한 바울이 삶은 어떠했는가?


첫째, 하나님에 대한 바울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든 핍박에도 하나님께서 건지시고 지키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이 디모데의 눈에 보여던 것입니다. 전도활동에 환란과 핍박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바울은 확신 가운데 나아가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둘째, 바울 개인의 인격이 있었습니다. “오직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은 참고 인내하고 사랑하는  인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의 인격을 보았던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고난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목회를 통해서 개인의 영광이나 권세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많은 고통과 아픔을 당하는 모습이 디모데 눈에 보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얼마든지 개인의 영광을 취할 수 있었지만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던 것입니다.


5. (1)디모데후서 1:5절에 따르면, 디모데가 어렸을 때 누가 그에게 본이 되었습니까? (디모데의 예입니다)


외조모를 통해서 어머니가 배웠고 어머니를 통해서 디모데가 배웠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겠습니까? 학교에서나 혹은 다른 교육기관을 통해서 배운 것보다도 먼저 가정을 통해서 배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 그들은 디모데에게 어떤 본을 보여 주었습니까? (디모데후서 1:5, 3:15)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워 알았습니다. 가정의 모든 삶의 기초가 성경 알고 배우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바울이 인정 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렸을 때 부모에게 배운 것은 버리라 그건 별거 아니다. 너는 네게 다시 배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성경 배운 것을 바울은 인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배움을 인정하고 기초로해서 다시 새롭게 확신한 것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는 것이 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6.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디모데 자신이 본을 보여 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디모데전서 4:12). 이 구절에서 본을 보여야 할 영역들을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영역에서 당신의 자녀에게 본을 보여 줄 구체적인 방법들을 각각 그 옆에 적으십시오.


본을 보여야할 영역은 말, 행실, 사랑, 믿음, 정절 등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는 것이 좋겠습니까? 간략하게 말가지고 말해본다면 말을 너무 큰 소리로 하게되고 부부간의 이야기하는 중에 언성이 높아도 자녀들에게는 싸움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음성을 낮추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토의 하는 면에서도 음성을 높이면 감정으로 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 쉽습니다. 조용하게 말을해도 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두마디 하는 것도 크게 듣고 무겁게 듣고 따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자녀들에게 ‘야 이놈아’라는 말등은 한두번하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멀리 보면은 좋은 말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부간에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면에서 말을 하는데 자기 아내에게는 혈압 올라 언성을 높이며 말하는 것들은 가슴에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갖지마는 그러나 훈련이 되지 않고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남존여비(男尊女卑) 남자 우월사상(優越思想)을 우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행동 면에서도 본을 보여야 할 것은 많이 있습니다. T.V를 볼는 것도 어떠한 태도로 보는가? 문을 닫는 것 등 여러 가지 면들이 있습니다. 사랑 면에서는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데 아버지는 나를 사랑해주는 모습’을 보여 주어여 합니다. 믿음 면에서는 어떤한 때든지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 정절 면에서는 순결하고 청결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 지조 면서에서 아내 만을 사랑하고 남편만을 사랑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 주었는데 자녀가 잘 자라지 못하는 경우는 왜 그렇겠습니까? 첫째는, 사회적인 상황이 자우되어서 그렇습니다. 사회적으로 너무 죄악이 관영하고 치우치게 되면 가정에서 좋은 본을 보여도 잘 자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본만을 보여주고 훈련은 시키지 않았을 때입니다. 본만 보이는 것이 중요하는 것이 아니고 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엘리는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 주었지만 가리키지 않고 고쳐주고 행하게 하는 훈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녀들은 잘못자라게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훈련이 따른 교육이 없을 때 부모를 닮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명령하고 가리키는 것이 부모가 해야합니다. 이 사회가 혼난스러울수록 더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고 훈련시키며 가리쳐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7절에서 성경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거두리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의 삶의 상당한 부분이 자녀의 삶에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좋은 가르침을 주고 동시에 그릇된 본을 보이게 되면 아이들에게는 혼동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당신의 자녀가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돕기 위해서는 당신은 자신이 가르친 대로 살아서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교훈을 통한 교육


부모로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책임은 자녀에게 삶을 잘 설명하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규칙을 줄 때에는 거기에 다른 정보와 원리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무엇을 하도록 가르칠 때에는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가르쳐 줌으로써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이 발전되도록 도와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1:1절과 마태복음 5:19절을 보면은 주님의 가리침의 원리가 나옵니다. 주님의 가르침의 원리는 행하고 가르쳤다고 나옵니다. 보범을 보인 다음에는 교훈해야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7. 신명기 6:4~7절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들을 읽고 다음을 완성하십시오.


(1) 부모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녀를 가리치기 위해서 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반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임으로 순종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순종해야 할 영역입니다.


꼭 해야되고 반드시 해야 됩니다. 진리 과목은 필수과목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맡겨도 안됩니다.


(3)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The first place’가 되어야 합니다. 즉 가장 최 우선 순위가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4)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5) 부모는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8. 잠언 22:6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당신 자신의 말로 써보십시오.

부모가 자녀에게 교훈할 것을 바로 가르친다면 그들이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않도록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시므로 자녀들이 그릇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믿음입니다.


9. 누가보음 2:52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장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 각 성경 구절은 이 네 가지 영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구절의 중심 내용을 적고 어느 영역에 해당하는지 분류하십시오.


구    절

중  심  내  용

영  역

 (1) 마태복음 19:13~14

어린애들은 예수님을 알 수 있다

영적인 면

 (2) 잠언 1:5

어린애들은 학식과 모략을 얻을 수 있다

지적인 면

 (3) 잠언 23:12

어린애들은 훈계에 참식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지적인 면

영적인 면

 (4) 베드로후서 3:18

어린애들은 주님의 은혜와 그를 아는데 자라야 한다.

영적인 면

 (5) 사사기 13:24

어린아이들도 강건하게 자라야 한다.

육체적인 면

 (6) 사무엘상 2:26

어린애들이 잘자라야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

육체적인 면

영적인 면

사회적인 면


어린아이들이 잘자라야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했는데 지체 장애자들 같은 경우에는 육체적으로 잘 자라지 못하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 이것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지체 장애자들은 사람에게 소외도고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것은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비록 사람에게는 소외되고 사랑을 받지 못하지만 영적으로 잘 자라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영적인 성장의 동기력을 심어주는 가리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은 개인적인 지도가 필요합니다.


지체 장애자들이 건강 자체를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지 못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이것은 인류 전체에 연관된 것입니다. 죄 때문에 질병이 온 것입니다. 죄 때문에 후손들이 선천적인 질병을 얻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신체적으로 이렇게 된 것이 내 부모와 내 자신의 죄 때문에 되었다는 가르침보다는 하나님의 앞에서 죄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그 속에서 성결 생활 영적 생활에 헌신하도록 가르쳐 주어 받아드리게 해야합니다.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간접적 원인이든 직접적 원인이든 어떤 병으로든 결국 사람이 죄인이고 죄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고통의 삶을 받는 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믿음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뜻을 이루는 것이 성경적인 삶입니다. 이렇게 지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0. 당신의 배우자와 함께 위의 네 가지 면에 비추어, 당신의 자녀를 평가해 보십시오. 자녀들의 이름을 아래에 적으십시오. 각 아이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영역을 결정한 다음 부모로서 그 아이를 도와 줄 수 있는 방안을 한 가지 적어 보십시오. (적용면 입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면입니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위로 해주는 것, 격려해주는 것, 함께 놀아 주는 것, 같이 대화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주도록 해야 합니다. 육체적인 면에서는 보약을 먹여야 될 경우에는 먹이도록 해야 되고, 병원에 가야 되면 병원에 같이 가는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의 바른 성장을 위해서 실제적으로 부모가 서로 의논하는 것입니다.

필요를 체워주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필요는 나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필요를 알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부모에게 자기의 필요를 부모에게 자유롭게 이야길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혼자 있을 때 무엇을 생각하는 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의년중에 물어 보기도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잠자기 전에는 같이 놀아주고 이야기하고 기도 제목을 물오 보아 기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 일주에 한번씩은 성경 공부를 하면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녀를 최고의 Best timodeos(Τιμοθεοs : 하나님을 공경함), 최고의 하나님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 공부를 대학생때부터 가르친다고 하면 그것은 늦은 시기이다. 이때는 다 자란시기 이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중고등부터 가르치는 것이 열매를 거둘수 있는 좋은 때입니다. 학생들이 입시에 시달릴수록 성경 공부를 가르치면은 좋습니다. 그 이유는 방황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혼란해지기 쉬운 시기이므로 성경 공부를 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스스로 자기 정리가 되어집니다. 이렇게 영적인 가치관이 확립된 학생들은 방황하지 않습니다.


자녀의 이름

필요한 영역

그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랑과 징계를 통한 교육


사랑과 징계는 자녀 교육의 기초입니다. 유아기에서부터 어른으로 성장할 대까지 전기간을 통해서 사랑은 자녀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데 있어 필수 조건입니다. 자녀에게 풍성한 사랑을 주지 않고는 그가 행복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 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도한 징계가 없이는 자녀가 존경받고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성인이 되도록 가르칠 수 없습니다. 상황에 적절한 훈계와 징계를 베푸는 것보다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더 큰 증거는 없습니다. 또한 자녀의 요구를 모두 들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은 아닙니다. 때로는 자녀의 진정한 행복을 위하여 그의 요구를 거절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도 사랑입니다.


위의 내용은 열심히 가르치고 교훈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징계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과 징계를 균형있게 지혜롭게 해나갈 때 좋은 교육이 됩니다. 처벌하고 징계는 다릅니다. 처벌은 잘못에 대한 형벌입니다. 즉 과거에 초점을 두고 벌하는 것입니다. 징계는 미래의 초점을 두고 성숙을 위한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징계가 중요한 교육의 방편이 됩니다.


11. 사무엘상 3:12~13절을 읽으십시오. 왜 엘리는 자기 아들들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습니까?

이것은 부모의 책임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것이 부모의 책임입니까?


첫 번째는, 자녀의 죄를 가장 많이 알고 있기때문입니다. 그래도 부모는 자녀의 죄를 남보다는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엘리의 가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종의 자녀에 대하여 다른 사람이 교훈하거나 징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러므로 엘리는 노후가 좋지 않았고 자녀도 하나님 앞에서 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녀는 부모가 책임을 지고 잘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때 까불까불한다는 것을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제일 문제는 사춘기 때 탈선하거나 빗나간 사고 방식 가치관을 가지는 그 시기에 부모는 자녀에게 더 가까이 해야 합니다.


12. 히브리서 12:5~11절을 읽고 다음 내용 중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표시하십시오.


(1) 주님께서는 결코 아무도 징계하지 않으신다.

(2) 주님의 징계는 그분의 사랑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3) 징계는 징계 받는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4) 징계는 관계된 모든 이에게 즐거운 것이다.

(5) 징계를 하는 목적은 올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있다.


사랑과 징계는 성경적인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에 징계를 해야 합니다.


정답 : (2) (3) (5)


13. 잠언 3:11~12절을 읽으십시오. 자녀를 징계할 때 부모의 마음에 근본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을 들어내는 징계가 되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미워서 때리는 것은 징계가 아니고 처벌이기 쉽습니다. 참 징계는 사랑의 관계가 먼저 이루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그 징계를 받아 드리게 되고 교육의 효과도 있게 됩니다. 사랑의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교육 효과보다는 안좋은 효과가 나타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때리는 관계에 있지만은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을 때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관계에서 때리게 되면 그 사람은 원한을 품기가 쉽고 빗나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에서 징계하면은 다른 감정을 갖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고 빗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전제로 해야 합니다. 


14. 전도서 8:11절에는 징계의 어떤 원리가 나와 있습니까?


악을 제거하기 위한 목표로 징계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징계의 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볼 때 악한 근성이 들러나면 바로 징계를 해야 합니다. 징계를 하지 않을 때 악한 근성은 담대해지기 쉽습니다. 죄의 근성은 감싸주면 안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공부를 잘 못하거나, 미숙한 것, 부족한 것 등 이런 것을 가지고 때리는 것은 좋지 않고 징계도 좋지 않습니다. 그럴때는 격려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격려해주면 더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15. 에베소서 6:4절은 부모들에게 자녀들의 인격 형성을 위한 몇가지 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아버지가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징계보다는 미리 예방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버지가 해야할 것은 징계이지만 징계를 하기전에 먼저 예방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말하면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을 해서 징계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징계는 가르친 것을 가지고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부모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징계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반드시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가르친 것을 못할 때 징계해야 합니다. 그저 자기 자녀가 학교에서 배웠겠지 교회에서 배웠겠지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자녀들을 징계하는 것은 올바른 징계가 아닙니다. 자녀에게 가르치되 자기 이론이나 가문의 전통이나 문학의 수준으로 가르치면 않됩니다. 그렇게 하면 자녀들은 수긍하지 않고 또한 아버지의 권위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 성경을 가지고 가르쳐야 합니다.


(2) 아버지로서 피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자녀들에게 노엽게 징계를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됩니다.


(3) 아버지로서 자녀를 노엽게 하는 세 가지 일을 적어 보십시오. (당신의 자녀들에게 물어 보아도 좋습니다)


1) 가르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징계하는 것.

2) 배우지 못해서 범한 것을 가지고 징계하는 것.

3) 부모의 사고방식이나 스타일로 징계하는 것.

4) 타인 앞에서 징계하는 것,

5) 어쩔수 없이 범한 잘못을 가지고 징계하는 것.

6) 남과 비교해서 꾸짖고 징계하는 것

7) 용서하는 마음없이 싱경질 적으로 징계하는 것

8) 자진 부부 싸움을 하면서 징계하는 것

9) 무조건 때렸놓고 뒤에 이야기하는 것


16. 잠언은 지혜와 교훈을 얻으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잠언 1:2). 다음 성경 구절은 징계에 대하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1) 잠언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부지런히 징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잘 못을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지런히란 말은 그때그때 하라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깨닫기 쉽습니다. 아이가 잘못을 하였을 때 징계하지 않고 ‘너 다음에 혼날줄 알아’라는 말로 남겨 두면 두려움으로 인해 정서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때그때 바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잠언 19:18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었은즉 그를 징계(懲戒)하고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사랑으로 징계를 해야 되지 미움으로 징계를 해서는 안됩니다. 미리 마음으로 용서해 주고 교육을 위해 때리는 징계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직접 손으로 때리는 것은 감정이나 미움을 전달받기가 쉽습니다. 경우에 따라 아이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초리 같은 것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목청을 높여서 하는 것도 좋지가 않습니다. 감정을 절제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3) 잠언 20:11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그의 동작에서 태도를 읽으면서 징계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진심으로 잘못해서 용서를 비는 것과 무서워서 잘못을 비는지 그 아이의 마음과 상태와 태도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속으면 안됩니다.


(4) 잠언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가만히 눈감아주지 말고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모르는척 눈감아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지적해주고 채찍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아주 가벼운 죄나 혹은 그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까지 지적해서 징계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아이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것까지 징계를 받게 되면 아이는 좌절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징계주의로 나가면은 안됩니다.


(5) 잠언 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나중에 평안하려면 자식을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징계는 나중에 자식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없게 해주는 것입니다. 젖먹을때부터 징계해도 그 아이는 안다고 합니다. 징계할 때 부모가 같이 동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징계를 맞고 있는데 한쪽이 반대하게 되면은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잘못된 징계이어도 그 상황에서는 부모가 동의해서 같이 징계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에게는 좋은 징계의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17. 고린도전서 13:4~7, 11절을 읽고 당신과 자녀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 다음 간단히 대답하십시오. (적용면입니다. 개인적으로 말하십시오.)


(1) 당신은 여기서 말하는 종류의 사랑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 당신은 자녀들 각자에게 충분한 관심과 시간을 주고 있습니까? (일주일 단위로 언제 자녀하고 시간을 같이 합니까?)


자녀하고 같이하는 시간이 없으면 혼자서 고민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같이 놀아주면서 게임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공휴일 같은 경우 등산도 같이 하는 시간, 같이 어울리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육체적인 면과 영적인 면에서 같이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3) 당신은 자녀들에게 당신 자신을 주어야 할 것을 “물질적인 것들”로 대체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까?


현대 아버지들의 현상입니다. 이것보다는 같이하는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 돈 가지고 좋은 부모 역할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4) 자녀들에 대한 당신의 기대는 자녀들의 나이에 맞는 것입니까?


자녀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가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부모가 어릴때부터 극성스럽게 큰 기대를 가지고 공부시키는 것은 자녀들에게 정신장애까지 일으킬 수 있는 문제입니다.


(5) 당신의 자녀들은 당신과 즐겁고 만족스런 관계 속에 있습니까?


친밀한 시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남자 아이 같은 경우에는 같이 목욕탕도 갈 수도 있습니다. 좋은 아이 나쁜 아이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안에서 좋은 관계를 이루고 있는냐에 있어서 많은 자우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일에 매여 있어 자녀에게 있어 대화가 필요할 시기에 그냥 보내 버리게 되면 자녀들에게는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정기적인 날을 정해 친교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자신의 자녀에게 손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정기적인 날을 잘 적용해서 하게 되면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의 자녀들은 부모들도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으며 그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부모들도 실수를 한다는 것을 자녀들은 알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노여움이나잘못된 판단 혹은 잘못된 적용으로 자녀를 잘못 징계했다면, 그에게 실수를 솔직히 털어놓고 사과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자녀도 역시 당신과 하나님께 이와같이 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이러한 교육의 원리를 적용하기에 이미 늦었다고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자녀는 이미 컸고 반항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코 실망하지 마십시오. 지금 시작하십시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누가복음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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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과 가정의 분위기


집과 가정은 차이가 있습니다. 집은 사람이 사는 건물입니다. 그러나 가정은 인간 관계, 안정과 안전 및 따뜻한 정과 교제가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소중한 곳입니다. 가정은 가족들이 마음을 붙일 수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쫓기는 삶으로부터의 피난처요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가정의 행복은 물질을 통해서 얻는 만족감과 편안함 보다는 가족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더욱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상호 인간 관계 밀접한 관계가 있고 사랑과 정이 있고 친속감이 있고 안전감이 있는 가정의 분위기가 우리가 사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서 11과에서는 공부하게 됩니다.


기본 단위로서의 가족


가족은 그 구성원이 개인인 동시에 서로 긴밀한 관게를 맺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가족은 사회의 긴본 단위입니다.


1. 다음 구절에서 가족들에 관한 어떤 사실을 볼 수 있습니까? “노아가 그 아들들과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그 가족대로, RSV) 방주에서 나왔더라” (창세기 8:18~19)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때 보존하셨는데 가족단위로 보존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 뿐만아니라 동물들도 그 종류대로 보존함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그 종류대로”라는 말은 “그 가족대로”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사회의 기본 단위가 되고 가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모세와 아론이 행한 인구 조사에 대한 이야기가 민수기 1:17~19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회중은 어떤 단위로 등록되었습니까?


민수기 1:17~18절을 보면 인구조사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가족단위로 등록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키 순서로나 인물순서로 하지 않고 가족단위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회도 가족단위로 호적과 주민등록이 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족과 종족을 중요시 여깁니다. 어느 집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정이 중요합니다.


가정 단합의 방해물


현대인의 삶에서는 여러 가지 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가족들이 “함께 하는 것”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이제 오락이나 교육, 예배, 생산의 중심지가 아닙니다. 다라서 가족 모두에게 관계되는 공동 관심사를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3. 지난 주에 당신의 가족이 함께 보낸 시간(식시 시간을 제외하고)을 간단히 평가해 보고, 요일별로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적어 보십시오.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주로 가족들하고 모이는 시간이 언제입니까? 식사를 하고 30분정도라고 같이 하는 시간이 있습니까? 현재는 이러한 시간으로 관계를 가지는 것들이 사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T.V 문화 때문에 이러한 영향이 많이 있습니다. 이북의 아이들은 부모를 경찰서에 고발하고 서구의 아이들도 부모가 때리게 되면 경찰서에 고발하게 됩니다. 이것은 가능하지만 그러나 이렇게 되는 이유는 함께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기에 친밀감이나 정같은 것이 없으므로 남같이 되어지기 쉽습니다. 한국은 아직 이런일이 크게 이루어지지 않지만은 영향을 받고는 있습니다. 부부도 함께하는 시간이 없게 되어지면 남처럼 여겨시기 쉽습니다. 그리고 해어지기가 쉽습니다.


또한 함께하는 시간이 없으므로 섬김의 관계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옛날 대가족시대에는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이 있어 섬김의 관계가 잘 이루어 졌는데 그러나 현대는 핵가족 시대로 인해 함께하는 시간들이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자녀들이 성장을 하게 되면 부모하고 같이 있지도 않을려고하고 같이 다닐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함께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4. 오늘날은 핵가족 사회이고 자주 이사를 하기 때문에 조부모나 부모, 다른 친척들과 같은 도시에 살거나, 그들과 긴밀한 관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드뭅니다. 당신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당신이나 당신의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십니까?


첫째는, 함께하는 시간을 없게 만듭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해야 되고 친척들하고 만날려고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가족들이 함께 해도 할 말을 없게 만듭니다. 서로 생활이 다르고 관심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대화가 안됩니다. 공동 관심사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공동 관심사를 계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 번째는, 개인주의적인 사람으로 되어 버리게 만듭니다. 서로 연합하려는 마음을 없게 만듭니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이미 마음에서는 가정이 없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생활 편이상 살아가는 것밖에 되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 창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함께 외식을 하는 것, 여행을 하는 것, 등산을 하는 것 등 시간을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한 시간을 가질 때 어떠한 대화를 나눌 것인가를 미리서 계획을 세우고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가족이 저녁을 먹고 산책하는 것도 가족 분위기에도 좋고 소화기관에도 좋습니다. 그리고 자녀들하고 함께할 수 있는 방이 있으면 좋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분위기 조성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말미암아 각종 귀하고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잠언 24:3~4>


5~6번은 분위기 조성입니다. 분위기 조성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연적으로 분위기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5. 수레바퀴의 살들이 축에 가까울수록 서로 가까우지듯이 가족들이 그리스도와 더 가까워질수록 그들 상호간에도 더 가까워집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정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비결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중심의 가정이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1) 여호수아 24:15절에서, 여호수아는 자기 가족을 위하여 어떤 결정을 하였습니까?


여호수아 24:15절에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여호수아는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가정 전체가 주님만 섬김는 가정으로 헌신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더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느냐는 장차 자녀들이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느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요한일서 1:3절은 그 결과에 대해 어떻게 얘기해 주고 있습니까?


요한일서 1:3절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삼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귐이 있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제일 처음하는 것은 사귐입니다. 부모가 먼저 주님과 깊은 교제가 있고나서 자녀와 사귐이 있어야합니다. 이러한 사귐이 결국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만들어 갑니다.


(3) 시편 127:1절에 따르면 가정의 힘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시편 127:1절에서 “여호와께서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警醒)함이 허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처럼 모든 자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가족 전체가 믿고 있어야 합니다.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가족 전체가 믿고 있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돈을 벌지 못해도 ‘아직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니까 돈을 벌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자녀에게 하님께 기도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부모를 통해서 돈을 주시도록, 자녀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고 그 다음에 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원을 공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하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며 믿음이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4) 9과에서 공부한 가정 예배에 대한 내용을 복습하십시오. 가정의 분위기 면에서 가정 예배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가정 예배는 그리스도 중심이 되는 가장 큰 비결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정 예배가 중요한 것은 우리 가정의 주인이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다라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하나님께 의탁하고 의지하는 믿음이 가정 예배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어집니다. 옛날 대가족시대에 때는 아침에 일어나면 웃어른에게 문안드리는게 첫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리스도 중심으로 가정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에서 성경 공부 중심이나 찬송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마음 속에 집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심어주는 것, 가정을 실제적으로 이끌어 가는 분은 하나님이다라는 것을 자녀들에게 심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가정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가정의 분위기를 조정하는 것에 있어서 가정 예배가 가장 좋습니다. 자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가정 예배가 좋습니다. 가정 예배를 못드려도 최소한 특별한 날은 가정에서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가정 예배는 길게보다는 짧게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길게드리면 자녀들이 지루하게 생각하므로 효과가 없습니다.


6. 골로새서 3:12~15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가족들 간의 관계에 있어야 할 10가지 특성은 무엇입니까?


가족 모두가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자라야 됩니다. 어떠한 프로그램이 가족의 분위기를 책임져 주지는 못합니다. 결국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져야 분위기가 하나가 됩니다. 가정만이 아니라 교회나 사회나 어떠한 단체도 그렇습니다. 


(1) 긍 휼  (2) 자 비  (3) 겸 손  (4) 온 유  (5) 오래 참음

(6) 용 서  (7) 용 납  (8) 사 랑  (9) 평 강  (10) 감사


이러한 것들이 가족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성품입니다. 용서(Forgive)는 잘 못을 이해하고 더 묻지 않는 마음입니다. 용납은 용서한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태도를 말합니다. 용서보다 더 높은 태도입니다.


7. 앞에 열거한 각 특성들은 다른 모든 특성들과 상화작용을 합니다. 다음에 나오는 특성들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1) 용서와 평강


용서하는 마음이 없이는 마음에 평강이 있을수가 없고 평강의 분위기에서는 용서가 쉬워집니다. 서로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긍휼과 자비


긍휼이 있을 때 자비를 베풀수 있고 자비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긍휼을 베풀기가 쉬워집니다. 유익을 얻기 위해서 긍휼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긍휼한 마음에서 나오는 자비가 있어야 됩니다.


(3) 온유와 오래참음


온유한 마음이 있을 때 오래참음의 인내가 나올수 있고 인내심이 있을 때 온유를 쉽게 베풀수 있습니다. 인내심이 없이는 관용도 온유도 긍휼도 베풀수 없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인내가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너그럽게 용서할 줄도 알고 도한 용서를 받아들일 줄도 아는 것은 가정 생활에서 좋은 관계를 이루는 데 필수적입니다. 함께 살다보면 의견이 다르기도 하고 성격도 달라서 말다툼을 하고 화를 낼 때도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해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 조건도 붙이지 않고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한다는 것이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가족 모두가 이렇게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8. 실제적인 적용으로, 당신의 가정 생활에서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하여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적어보십시오.


가정에서는 모든 허물이나 약점이 노출되는 곳입니다. 다른 사람앞에서는 약점을 숨길 수 있지만 가정안에서 가족들에게는 모든 허물이 노출이 되기 때문에 관용과 용서가 필요합니다. 실제적으로 이러한 것이 필요합니다. 흑백론리는 가정의 분위기를 파괴하게 합니다. 관용과 이해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살필 때 가정을 올바로 세워갈 수 있고 가정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9. 다음 성경 말씀에 의하면 가정의 분위기는 어떠해야 합니까?


(1) 시편 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아름다우고”


가정의 분위기를 위해서 서로 연합하고 동거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연합은 마음에서 오는 연합을 말합니다. 마음이 하나되는 연합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동거함은 행동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멍에를 함께 지고나가는 행동으로 나타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 연합과 동거는 필요한데, 첫째는, 먼저 하나님과 연합과 동거함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아내와 연합과 동거함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자녀와 연합과 동거함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와 둘째가 없으면 셋째는 유익하지 못하고 없어지게 됩니다. 연합하고 동거함이 있어야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경우에 아름다움은 있지만 선은 없고 또 선은 있는데 아름다움은 없을 수가 있습니다. 이 두가지를 겹비하는 것이 가족의 연합과 동거함인 것입니다.


(2) 잠언 15:17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서로 사랑함이 있어야 합니다. “살찐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가족들이 미워하고 다툼이 있으면 안됩니다. 서로 사랑함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남보다 배불리 먹지 못하지만 사랑이 있을 때는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가정은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분쟁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지 사랑은 없습니다. 그 속에는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3) 잠언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서로 화목함이 있어야 합니다.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4) 잠언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에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심령에 근심이 있으면 뼈가 마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심령에 근심이 있는 사람은 육체까지 빨리 쇄하여 집니다. 가정 안에는 즐거움이 있는 분위기 되어야 합니다.


(5) 잠언 25:24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다투움이 없어야 합니다. “큰 집에서 다투고 사는 것보다는 움막에서 혼자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야기할 때 투정적으로 바가지 긁는 식으로 하는 것은 다투입니다. 이러한 여자가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6) 마가복음 3: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집안에 분쟁이 없어야 합니다. 분쟁이 있는 집은 견고하게 설수 없고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볼 때 잠언의 교훈들은 가정의 행복이 물질이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집이 크고 적음에 있지 않고, 음식이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곳에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잠언과는 반대로 가정의 행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앙인들도 잠언의 말씀을 믿고 있지만 실제의 행위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족하고 하두시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돈 버는 것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고 집이 커야 행복할 줄로 아는 현대인들의 생각입니다. 이것이 필요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행복의 우선 순위는 아닙니다. 더 우선 순위는 사랑과 긍휼과 화목과 서로 즐거워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잠언은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잠언은 오래전에 기록되었지만 그러나 현대에 벗어나지 않는 교훈입니다.


10. 가정의 분위기에는 또한 다음 세 가지 면이 필요합니다.


(1) 가정을 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으로 유지하고 생활하기에 즐거운 곳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가족 개개인이 개성이 있으면서도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람으로성장할 수 있도록 공동체적 정신과 개성(個性)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3) 가족들이 삶을 함께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 생활에는 웃음과 즐거움과 오락 등이 있어야 합니다.


▶ 당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볼 때, 이런 요소들 가우데 어느 것을 당신의 가정 생활에서 볼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일반적으로 지난 날의 행복을 추억해보면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플 때 엎어 주었던 일, 가족들하고 함께 여행 갔다왔던 일들이 추억에 많이 남아 있지만 돈 많고 권세가 많았다는 것들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분위기 가운데 행복을 느낄 때 어린아이들에게는 추억으로 남게 됩니다. 정서적인 안정이나 사랑도 분위기를 만들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들면, 부모가 돌아가실 때 어린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슬퍼하겠습니까? 어떠한 추억이 떠올라야 더 아쉬움과 아픔이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눈물도 나오지 않습니다.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서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비결입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께 의지하고 가족하고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들이 기억에 남고 그들이 효심이 생기게 되는 계기가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부모들이 이러한 시간을 만들어야 됩니다.


가정과 손대접


성경에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개방하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고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가정의 인격의 내면적인 것을 공부하였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외적으로 보이지도록 공부하게됩니다.


11. 다음 성경 말씀을 묵항하면서, 그 구절에서 손대접과 관련된 것들을 적어 보십시오.


(1) 로마서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채워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쓸 것을”이란 말은 “필요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라는 것입니다. 있을 때 함께 나누고 없을 때 받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공동 경제 생활입니다. 손님 접대하는 것을 자기 위선을 세우고 과시하려고 혹은 자기 유익을 구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손님 대접이 실제적인 사랑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2) 히브리서 13:2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을 잘 대접해 주라는 것입니다. 잘 알고 있는 사람만 아니라 길 가는 나그네들도 도움을 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생전 모르는 사람에게 대접을 잘 받았다면 대접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 만난 것과 같이 감사히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해 기도하게 됩니다. 그 기도로 인해 대접한 사람은 축복을 도로 받는 것입니다.


(3) 요한삼서 5~8


여기서는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나그네를 대접할 뿐만아니라 전송까지도 잘해주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에게 신세를 지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4) 마태복음 25:34~45


불쌍한 자를 잘 대접해주라는 것입니다. 주린자, 같힌 자, 헐벗은 자, 병든자 이런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이 하늘나라에서 보상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을 대접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5) 누가복음 5:27~32


주님을 만난 자의 자연스러운 인격이 손님 접대로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켜서 강조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주님을 만난 구원 자의 자연스런 인격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위인은 즉시 예수님을 만나고나서 예수님을 대접함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정의 사역이 손님 접대로 나타나야 합니다. 손님 접대로 선교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교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가정이 교회가 되고 집회소가 되었습니다. 이 속에서 손님 접대하는 아름다운 풍습으로 복음이 더 힘있게 증거 되었고 교회가 더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은 손님 접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식구들의 가정을 개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방을 하려면 가정의 분위기가 또한 좋아야 합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다른 사람이 은혜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방인들도 그러한 모습을 보고 믿는 사람의 집은 역시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해야될 일을 크게 두가지로 말한다면은 첫째는, 선교이며 둘째는, 구제입니다. 이런 면에서 교회도 형편에 따라서 하게 되면 교회도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요 약


당신의 가정이 본래의 사명을 다하려면 단지 먹고 자는 장소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을 받고, 안정되고,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또한 어딘가에 소속하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들을 가장 잘 채워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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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과 돈 - 친구인가, 적인가?


현대 사회에서 돈이 꼭 필요한 요소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돈과 그 사용에 대한 결정은 결혼 생활에서 매일 부딪치는 문제의일부분입니다.


돈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들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돈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진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공이나 권력, 사회적 지위, 혹은 정서적 안정의 척도일 수도 있습니다. 돈 문제를 비롯한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님되심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 부부들은 돈을 사용하는 사람이 더어야지, 돈의 지배를 받는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돈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


우리는 돈에 대하여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청지기는 다른 사람의 재산이나 재정을 맡아서 보호,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원래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그 소유를 잘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돈에 대해서 경제적인 면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돈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청지기로서의 태도입니다. 그러면 청지기로서의 태도는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회수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달라 돌려달라 필요하다’ 이렇게 하실수 있는 권위가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입니다. 이 두 가지를 인정하지 않으면 경제적 생활에서 문제가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태도는 청지기로서의 태도입니다.


1. 신명기 8:17~18절과 역대상 29:12절에 따르면 부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부의 근원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부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8절에 “하나님이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능”이라는 말은 “������������ (코아흐) : Power” 능력, 수단, 생산력이라는 말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생명, 건강, 직장, 사업, 재능 이런 것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원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원을 가지고 우리가 돈을 벌었으므로 근원이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것이다’라는 개념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실제적으로 만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만유의 주제가 하나님 이십니다. 내가 가진 물질도 내가 가진 부도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2. 당신은 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모든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전도서 5:19, 디모데전서 6:17)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얻고 부를 소유하고 있어도 소망은 물질에 두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내게 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됩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을 주신 분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3. 전도서 5:10절을 당신 자신의 말로 써보십시오.


돈이나 부는 사람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내용입니다. 마음을 돈이나 부에 두고 살면 인생이 헛되게 됩니다. 인생의 행복이 돈이나 부에 있지 않습니다. 전도서 5장 10절이 말씀은 전도자가 친히 모든 것을 누려보고 말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마지막에 인생의 허무를 말하면서 결국은 돈도 헛되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내용을 깨닫고  관심을 가질 때 지혜로운 삶을 살수 있습니다. 돈 때문에 한평생을 다 허비하고 마지막에 이와 같은 고백을 하면 안됩니다. 이런 생활은 전도자의 한 사람으로 족해야 합니다.


4. 돈에 대한 가장 강한 충고는 디모데전서 6:6~10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돈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말도 여기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여기서 돈에 대해 어떤 교훈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디모데전서 6:6~10절의 말씀을 살펴보면은 사람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 것처럼 갈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돈에 대한 정당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돈에 대한 정당한 마음은 돈에 대한 타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과 돈을 모으려고만 하는 것은 않된다는 것입니다. 또 돈을 사랑하는 것도 안됩니다. 돈은 나에게 필요한 것이지 사랑하는 것은 안됩니다. 돈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에게 대한 믿음은 끝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필요에 따라서 적절하게 쓸줄알아야 합니다.


5. 누가복음 12:13~21절에서


(1) 왜 예수님께서 탐심에 대하여 경고를 하셨습니까? (15절)


탐심에 대한 경고한 이유는 사람의 생명이 부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이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동안에 부가 마음의 기쁨이나 영혼의 만족 등 우리의 생명에 활력을 주지 못합니다.


(2) 하나님께서 부자를 왜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한 이유는 부를 쌓는데만 관심이 있었기때문입니다. 소득이 풍성할 때 곡간만 더 지을려고 했지 어떻게 잘 쓸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돈만 많으면 마음에 만족되고 행복할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이 어리석은 자는 영혼의 필요까지도 돈으로 해결 될 줄 알았던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그 비유를 어떻게 적용하겼습니까? (21절)


자기에 대해서는 부자겠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가난한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가난한 자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는 아무 쓸 것이 없는 사람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가난한 사람과 마찬가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돈을 쓸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지적한 말입니다. 


6. 히브리서 13:5절은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중요시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라고 말씀하고 잇습니다. 이 구절에서 어떤 경고를 볼 수 있습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고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돈에 대한 탐심과 애착을 버리라는 것인데, 돈을 벌 의욕과 욕망도 없이 게으르게 안일하게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고 탐심과 애착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가치관을 돈에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고 돈보다 하나님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더 의지해야 합니다. 돈을 줄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7. 바울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관계없이 마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는데,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4:11~13)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됩니다. 바울의 삶은 자족함을 아는 삶이었습니다. 비천하게 처할 때는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때는 풍부하게 살줄(돈이 많을 때는 돈을 잘 쓸줄) 아는 삶이었습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둘 중 어느 하나에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천에 처할 줄만 알아 갑자기 돈이 많이 생기게 되면 쓸줄 몰라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가정이 이상하게 되고 자기 자신은 평화가 없어 탈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비천에 처할 줄 아는것보다 풍부에 처할 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비천하게 살 때는 타락하지 않지만 풍부해지면 잘못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풍부에 처할 줄 모르는 것은 쓸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부가 왔을 때 누릴줄도 모르고 관리할 줄도 모르고 헌금할 줄도 몰라 함부로 쓰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사회의 일반적으로 살펴보면 사람들이 부에 처할 줄 몰라 인생을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서 개발지역으로 인해 부동산으로 갑자기 돈이 생기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때 부에 처할 줄 몰라 물질을 마음대로 활용하다보면 자신은 잘못된 길로 걸어가기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소유물 중 무엇을 먼저 바라보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한님을 먼저 바라보고 그 다음 소유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 마음속에 상존하고 있는, 하나님보다 자신이 가진 자원을 더 의뢰하려는 위험한 욕구를 제거해 줄 것입니다.


8. 당신 부부는 경제적인 면에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를 적어 보십시오.


만일에 주님으로(LORD) 인정했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합니까? 로드심을 인정했다면 주님의 원하는 곳에 쓸줄알아야 됩니다. 주님이 원한다면 주님이 내게 원한다면 쓸줄 아는 것이 주님의 로드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돈 씀씀이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항상 내 마음대로 쓸려고 하는 것보다는 주님의 마음대로 쓸려고 주님이 쓰고자 하는 곳에 쓸려고 하는 경향으로 물질을 사용하게 됩니다.


남서울 교회 홍정길 목사는 자기가 개척한 교회에서 사표를 내고 퇴직금 받은 것 가지고 장애인 선교하는데 다 바쳤다고 합니다.


돈을 지혜롭게 사용할 것


가계 운영에는 문제를 방비하기 위한 주의 깊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입과 지출에 대한 몇 가지 기본 원리를 살펴봅시다.


9. 가족을 위한 다부분의 필수품은 어떻게 공급되어야 합니까? (데살로니가후서 3:7~12)


지혜롭게 돈을 사용하는 방법 중에 가족의 일상적인 필요를 공급해주는데 물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즉 살림하는데 써야 합니다. 살림하는데 무관심하고 다른데 쓰면서 살림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타인의 도움을 의지하지 말고 자신이 벌어서 가족의 생활 필수품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규모있는 생활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8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자이고 믿음을 배반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번 돈으로 가족의 필요를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10. 잠언 6:6~8절은 이와 관련하여 어떤 실제적인 예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까?


열심히 일해서 저축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지혜롭게 사용하게 위해서 저축하는 것입니다. 잠언 6:6~8절은 개미에게서 배울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고 저축을 합니다. 신앙인들 중에 ‘저축하는 것이 잘못이고 믿음이 아니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저축하는 것이 불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삶입니다. 돈을 지혜롭게 쓰려고 저축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필요를 위해서 저축하는 것입니다.


요한웨슬레는 그리스도인의 물질관에 대해서 말하기를 첫째는, 열심히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열심히 저축하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라고 하였습니다.


칼빈도 ‘그리스도인이 열심히 일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부를 축재(築堤)하는 것은 신에 대한 의무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검소하게 살면 부를 저축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를 위해서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앞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저축하는 것입니다. 내 자녀를 위해, 아플 수도 있기에, 특별한 경우에 사용할 수 있기에 저축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처럼 쌓아만 두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11. 세금은 오늘날 아주 실제적인 생활의 일부분입니다. 다음 성경 말씀은 세금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1) 로마서 13:6~7


국공세를 받치는데 써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돈이데 나라에 받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2) 마태복음 17:24~27


성전세를 바치라 종교세 영적인 일에소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내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낚시를 해서 취한 돈가지고 내라고 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오해가 없기 하기위해서입니다. 그당시 성전세 종교세는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내라고 하였습니다. 


(3) 마태복음 22:15~22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세금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꼭 내어야 할 국민의 의무입니다.


12. 그리스도인 청지기는 어떤 성품을 나타내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4:1~2)


충성되이 사용해야 합니다. 청지기의 가장 중요하 성품은 충성됨이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충성입니까? 첫째, 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돈을 유익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본 생활의 공급외에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을 위해 물질을  사용해야 합니다. 너무 유흥(遊興)을 위해서 낭비(浪費)하면 안됩니다. 필요(必要)와 유흥(遊興)을 구분해야 합니다.


13. 잠언 22:7절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채무(債務)를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빚을 지면은 안되지만 빚을 지면은 돈을 값는데 물질을 상용해야합니다. 이것은 사회의 기본적인 질서입니다. 빚을 지고 값지 않으면 채무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질서나 사회의 질서가 혼란이 됩니다.


14. 다음 성경 말씀들은 갖고들이 상호간에 가지고 있는 경제적 책임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1) 마태복음 15:1~6


부모 필요를 공급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돈을 벌지 못하거나 직업이 없는 부모를 우리가 섬겨야 됩니다. 교회나 사회나 나라에 맡기면 안됩니다.


(2) 고린도후서 12:14


자녀의 필요를 공급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성인이 아닌 어린 자녀의 모든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3) 미도데전서 5:8


자기 가족의 필요를 공급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1)번과 (2)번과 그리고 자기를 포함해서 지혜롭게 물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15. 예산은 가족의 수입과 지출을 예상하고 계획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가계 운영을 위해서는 예산을 미리 세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당신 부부는 가계를 운영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산을 세워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막연하게 그때그때 사용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물질은 규모있게 경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한 어려워도 한쪽에만 목적을 두고 사용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적절하게 물질을 사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돈이 부족하다 해서 아이들에게 못먹이게 되면 자라나는 아이들은 규형있게 자라지 못합니다.

경제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아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있는 것입니다. 단지 가사의 대한 실무는 아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사의 실무도 부부는 한 몸이므로 남편과 의논해서 하는 것 뿐입니다. 이것도 결국은 남편의 책임지고 남편이 주도해서 이끌어가는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드릴 것인가? (헌금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부부들은 어떤 방법으로 또 어디에 그들의 물질을 드려야 할 것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6. 고린도후서 8:5절은 그리스도인의 헌금하는 사람의 첫 번째 원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을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단순히 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헌금을 통해서 자신을 드리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제일 중요한 것도 헌금입니다. 이 헌금도 헌신의 고백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17. 고린도후서 9:6~12절을 읽고, 헌금에 관한 또 다른 원리들을 찾아 아래 빈 칸에 기록하십시오.


(1) 헌금은 개인의 확신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는 자기 믿음으로 하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2) 헌금은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인색하고 억지로 드리면 안되고 자원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3) 헌금은 하면 할수록 더 은혜가 넘친다는 것을 알야 합니다.


(4) 헌금은 구제하는 마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보상 심리, 계산 심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구제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5) 헌금은 심는다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영원한 미래를 위해서 심는다는 마음으로해야 합니다.


(6) 헌금을 할 때 성도들의 부족이 체워지므로 그리스도 안에 하나의 지체의 몸이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지도록 헌금을 해야합니다. 꼭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다른 형제가 감사가 넘치게 해야 합니다. 몸 전체가 헌금을 통해서 활력을 얻게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18. 마가복음 12:41~44절은 예수님께서 한 과부가 성전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헌금이 되어야 합니다.


(1) 예수님은 왜 과부를 칭찬하셨습니까?


다른 사람보다 많이 하여기 때문입니다. 왜 많다고 생각하였겠습니까? 그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2)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헌금했습니까?


헌금한 액수는 많았지만 자기 손에 남겨진 것이 더 많았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에게는 적게 하는 것이 된것입니다. 이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적으로 하는 것은 최선의 수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최하의 수준에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최선으로 할 줄알아야 합니다.


19. 그릇된 동기를 가지고 드리면 어떤 결과가 초래됩니까? (마태복음 6:1~4)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나타내고 과시하려는 칭찬 받으려는 태도로 해서는 안됩니다. 헌금을 하고 나서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 자신이 주인 노릇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상급이 없고 축복이 없고 하나님의 보상이 없습니다. 이런 헌금은 많이 해도 가난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마음의 동기에서 해야 합니다.


20. 누구를 위해 헌금해야 합니까?


(1) 신명기 15:10~11


가난한 사람에게 해야 합니다.


(2) 갈라디아서 6:6, 고린도전서 9:11, 14


복음 전하고 가르치는 자에게 해야 합니다.


(3) 요한일서 3:17~18


믿음의 형제들에게 해야 합니다. 이런 것 등도 헌금입니다.


이런 헌금에 쓰임에 있어서 원리와 규정이 있으면 좋습니다.

 

합동 최훈 목사님 교회의 헌금을 하나님의 종들에게 1/3을 사용하고 그 다음 1/3 교회 행정, 그리고 1/3은 교회 재반관리하는데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21. 말라기 3:10절과 고린도전서 16:2절을 읽고 맞는 내용에 표시하십시오.


(1)  헌금은 계획을 세워서 해야 합니다.

(2)  헌금은 정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3)  헌금은 수입에 비례하여야 합니다.

(4)  헌금은 하나님께서 보상하십니다.


22. 빌립보서 4:15~19절은 주님의 일을 위하여 헌금하는 사람에게 어떤 약속을 해주고 있습니까?


헌금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인격의 성숙과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헌금은 신앙의 성숙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하고 헌금하고 다르다는 논리는 틀린 것입니다. 웨슬레는 ‘호주머니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회개를 묻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헌금해서 쓸 때 쓰지 못하고 비참하게 곤란하게 되지 않습니다. 쓸 때 되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헌금은 소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하는 것은 하나님께 비축해 두는 것입니다.


23. 당신은 당신의 가족이 현재하고 있는 헌금 방법에 대해 만족하고 있습니까? (적용입니다.)


요 약


부부 중 어느 한 편이 가계의 수입을 담당하든지, 양편이 같이 하든지, 가계 운영은 “우리”라는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돈이 아닌 “우리의”돈인 것입니다. 가계 운영에 관해서는 부부가 함께 의논한 후에 의견의 일치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때에 기억해야 할 것은 다른 모든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영역에 있어서도 최종적으로는 남편이 가정의 머리로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부부가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 같이 의논해서 결정한다면 돈 문제로 인한 갈등을 피할 수 있습니다.


본과에서 공부한 것 이외에 부부는 아래 열거한 영역들에 대해서도서로 대화를 통해 의견의 일치를 보아야 합니다.


이미 상의해 온 것들에 표시를 하십시오.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 수준 설정

외상 구입

오락을 위한 지출

자녀 교육

보험 계획

유언 및 상속

저축과 투자

장기적인 가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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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과 기타 중요한 영역들


“내가 온 것은 양으로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좋든 나쁘든 결혼 생활의 질은 부부의 전체적인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건전한 결혼 생활은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서 지역 사회와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 이바지합니다.


앞에서 공부한 각 과들은 기본적인 우선 순위인 하나님, 배우자, 그리고 가족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 우선 순위는 올바른 관점 가운데서 계속 유지되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다음 네 영역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의 직업과 당신의 고용주(雇用主)


1. 데살로니가후서 3:10, 12절과 창세기 3:19절에는 어떤 공통되는 원리가 들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자기 직업에 충실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주님의 재림장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으니 아무것도 일하지 말고 사모하고만 살아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하나님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일하지 말고 전도만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도인들이 교회 생활이나 복음 전도 생활을 한다고 자기 직업에 실패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 직업에도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자기 직업에 충실할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2. 로마서 13:7절은 통치자들에 대한 개인의 의무에 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고용주(雇用主)에 대한 당신의 의무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습니까?


자기 고용주(雇用主)를 인정하고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즉 고용인(雇傭人)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고용주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사원이면 회사에 공장원이면 공장에 주인에게 자기 할 일을 성실하게 다해야 합니다.


3. 에베소서 6:5~9절은 고용주와 고용인 모두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고, 다음 내용에서 옳고 그른 것을 표시하십시오. (3번에서도 고용주(雇用主)와 고용인(雇傭人)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 나는 직장에서 “주님께 하듯” 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옳다, 그르다)

직장에서 어떤한 일을하든지 주님께 하듯해야 합니다. 주님에게 내가 봉사하고 섬기듯 직장에서 자신의 일을 해야 합니다.


(2) 나는 직장에서 윗사람에게 순종할 책임이 있습니다. (옳다, 그르다)

윗사람에게 순종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윗사람을 자신의 위에 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장 상관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내 책임입니다.


(3) 지장에서 나의 목표는 고용주에게 잘 보이는 것입니다. (옳다, 그르다)

윗 사람에게 좋은 인상 보이려고 열심히 하는 것은 잘못된 삶입니다.


(4) 직장에서 나의 업무 태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옳다, 그르다)

업무(業務) 태도는 그리스도인 다와야 합니다. 주님의 모습을 닮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5)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수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옳다, 그르다)


어느 정도 수준을 가지고 일하는가를 주님은 항상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탁월(卓越)한 수준으로 하려고 하듯이 직장에서도 탁월한 수준으로 하려고 해야 합니다. 


(6) 고용주로서 나는 고용인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옳다, 그르다)


고용주(雇用主)는 주인과 같은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같은 책임을 가지고 고용주로서 밑에 있는 사람들을 잘 다스리고, 지키고, 보호해 주는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고용인(雇傭人)만 아니라 고용주도 이러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정답 : (1)○, (2)○, (3)×, (4)×, (5)×, (6)○


4. 당신은 어떻게 하면 당신의 일을 “주께 하듯” 최선으로 할 수 있습니까? 디도서 2:9~10절에서 적어도 세 가지의 결론을 내려 보십시오.


(1) 범사에 순종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2) 거스려 말하지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3) 떼어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에게 하듯 최선을 다 하는 모습입니다.


5. 당신의 업무를 전심으로 하는 태도는 왜 중요합니까? (고린도전서 10:31)


업무를 전심으로 해야 하는 태도의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내가 어디서 일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은 탁월(卓越 : excellent ; 우수한, 아주 훌륭한, 뛰어난)한 수준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보다 다르다는 말을 들으려면 탁월(卓越)한 수준을 지녀야 됩니다. 성경은 여러 구절에서 직업에 충실할 것, 최선을 다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교회에서는 열심히 봉사하며 인정을 받는데 직장에서는 자기의 업무를 태만(怠慢 : neglect ; 의무․일 등을 게을하다, 소흘히 하다)이 하여 그릇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직장에 다니는 것은 물질에 목적만 두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다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증거하려면 뛰어나고 타고나야 합니다. 이런 삶이 직장에서 성공하는 되고 열매를 맺게 되며 주님을 더 효과적으로 섬길수 있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남에게 인정도 받지 못하고 뒤에 처져 있으면 어떻게 직장에서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의 전도를 누가 받아 주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권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전도를 위해 내가 교회에서나 직장에서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이런 삶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철학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직업에 관하여 한 마디 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한다 할지라도 자기 가족을 소흘히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자입니다. 어떤 남편(아내)들은 가족들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줍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은 주지 않습니다.


당신의 교회


그리스도인 가정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가족 즉 하나님의 가족의 일부분입니다. 교회는 여러 가족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비록 부모들이 자녀의 영적인 양육에 대해 주된 책임을 지고 있긴 하지만 다른 곳으로부터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지역 교회는 이런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부모의 교육과 훈련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6. 많은 부모들이 단지 “자녀를 위하여” 예배에 참석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데 대한 건전한 이유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다음 성경 말씀에서 그 이유들을 찾아 보십시오.


(1) 사도행전 8: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교회는 영적인 가족의 모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베드로나 요한은 사마리아에서 전도를 하다가 항상 모교회인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모교회에 우선 순위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생활에 모체가 교회입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모체가 되어야 합니다.


(2) 사도행전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監督者)를 삼고 하나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영적 보호를 받기 위해입니다. 감독자의 다스림을 받아야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를 나의 감독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독자의 보호를 받고 살아야 됩니다. 교회가 없는 사람은 영적인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이 사람은 버린 자녀와 같은 것입니다.


(3) 고린도전서 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잔은 내 피로 세운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공적인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당시는 만찬예배, 성찬 예배였습니다. 예배를 참석하기 위해서 교회를 다녀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역할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4) 에베소서 4:11~13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分量)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은사를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게 주신 은사를 잘활용하기 위해서 교회 생활이 필요합니다. 은사를 주신 목적은 다른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해이며, 서로 봉사하기 위해서 이고, 그리스도인의 몸을 세워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전체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기 위해서 성역의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이 은사를 활용하므로 전체의 몸이 자라게되고 유익을 주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은사 활용을 못합니다. 나그네처럼 교회 다니는 사람은 헌금은 할 수 있지만 주일학교 봉사, 구역장 봉사 같은 것은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큰 교회 뒤자리에서 예배만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교회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교제가 없는 교회 생활은 온전한 교회 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5) 히브리서 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교제를 통해 격려를 받기 위해입니다. 성도와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 힘을 얻고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교회 생활이 없는 사람은 이러한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한 삶은 지체의 삶이 아닙니다. 개인 플레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개인 플레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한 지체로 존재 하는 것이지 독립해서 존재해 있지 않습니다.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은 생명을 잃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7. “예배”를 사전에서는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또 당신은 예배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경에서 경배(敬拜)라는 어휘는 매우 광범위하지만, 그 본질적인 개념은 ‘섬김’입니다. 히브리어 ‘아보다(ה������וֹב������)’와 헬라어 ‘라트레이아(λατρεία)’는 원래 종이나 고용인의 수고를 의미했습니다. 이 ‘경배(敬拜)’를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 앞에 굴복하여(히셋타하와 ה������������������������������ 또는 프로스퀴네오 προσκυνέω) 경건한 두려움과 흠모의 경외와 경탄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경배하고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내가 내 자신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8. 교회에서 당신은 예배와 연관하여 어떤 활동들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1) 찬    송

(2) 기    도

(3) 헌    금

(4) 신앙고백

위의 네 가지는 실제의 예배의 유형입니다.


9. 사도행전 2:42절은 초대 교회에서 성도들이 함께 모였을 때 하던 네 가지 기본적인 활동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을 적어보십시오.


(1)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2)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떡을 떼며라는 말은 성천을 말하는 것인데 이 말을 다른말로 말하면 주님이 날을 위해 죽으신, 구원에 은혜를 기억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3) 서로 사랑으로 교제하고 지내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유무상통(有無相通)하면서 마음으로 물질이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한집식구처럼 교제하는 것이 있어야합니다.


(4) 열심히 기도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필요를 따라서 머리로부터 공급받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없이는 교회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들입니다.


10. 당신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다음과 같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다음 빈 칸을 채우십시오.


예리미야 3:15절은 “목자들”(영적 지도자들)이           로 양무리를 양육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2~4절은 목자들이 양무리를 치되        으로 하지 말고        으로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목자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양무리에게        이 되어야 합니다.


답 : 지식, 명철, 부득이함, 자원함, 본


11. 히브리서 13:7, 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교회 내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의무를 주십니까?


(1) 일반 교인


교회 지도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하며, 목자의  삶을 잘 관찰해서 영적인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이며, 목자의 믿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2) 인도자들


첫째는, 즐거움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둘째는,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양무리들에게 본을 보여 주어야 변화가 되어집니다. 셋째는, 자기 문제처럼 알고 각성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양들에게 문제가 있을때에 자기 문제처럼 알고 각성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즉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가정과 지역 교회는 서로 긴밀한 유대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 생활을 침해하며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시간도 내지 못할 정도로 교회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개인 사역


교회의 전체적인 일뿐아니라 개인의 삶에서 개인의 사역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공부입니다.


12. 마태복음 5:16절은 당신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한 가지 면을 지적합니다. 이 구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다까?


선을 행하는 삶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선을 행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선행을 베품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도리는 삶이 개인 사역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는 봉사는 잘하는데 개인의 삶에서 선행이 나타나지 않으면 개인의 사역은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첫째는, 우리의 선행을 보고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알수 있게 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둘째는, 우리의 선생으로 다른 사람이 마음 문을 열어 복음 받아 구원받게 됩니다. 나의 선행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 문이 열릴 때 나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이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받아드리게 됩니다. 이래서 예수를 믿게 되어 구원받게 되어 집니다. 이처럼 나의 선생을 통하여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선행 자체도 영광이 되지만은 선행을 통해 다른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되어 집니다.


셋째는, 매일 주님께 인도를 받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넷째는, 3개월 내지 6개월 단위로 성품 개발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러한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성품은 변화가되어야 하므로 개인적으로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잘못된 성품을 고치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항상, 해마다 평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인격과 사역의 두 가지 면을 통해서 자기 평가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할 줄 아는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13. 다음 성경 말씀은 자기 주의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대해 무엇을 애기해 주고 있습니까?


(1) 마가복음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내 생활권 주위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이사가든지 그 생활권에서 전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 지역 하나님께서 그 지역 사람들을 전도하라고 보내셨구나고 생각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이것을 교회에서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전도 기간에 하는 것도 아니라 자신의 생활권 주위에서 자신 스스로가 전도가 있어야 합니다.


(2) 고린도후서 5:18~2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職責)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꼐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史臣)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의무가 있습니다. 복음만 전할 뿐 아니라 실제로 화목시키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내가 복음에 사신이 되어야 합니다. 화목에 사신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그들에게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화목에 사신의 역할을 감당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와 만나게 하든지 그 사람을 하나님과 화해 시키기 위해 만나게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싸움의 대상이 되고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이러한 삶이 아니라 화목의 사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골로새서 1:28~29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가가 사람을 가르침은 가가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役事)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그들을 구원하고 가르쳐서 세워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잘 가르쳐 온전하게 세워주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가르쳐 무장시켜 주어야 합니다. 


(4) 마태복음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속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들을 제자로 삼는 의무가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이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고 헌신하고 살아가는 제자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5) 디모 데후서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제자 삼는 자를 삼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행한 그대로 제자도 행하고 가르쳐서 다른 사람을 배가 시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은 제자 삼는 자를 삼는 내용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제자 삼은 것처럼 해야 합니다. 제자 삼는 다는 말은 그 사람을 성장시키고 가르치는 것을 말하고, 제자 삼는 자를 삼는다는 것을 교회적으로 말하면 목사가 구역장을 가르치면 구역장은 또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을 말합니다. 배가는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제자 만 삶을 때는 배가가 이루어지지 않지만 제자 삼는 자를 삼을 때는 배가가 이루어집니다. 제자만 삼으면 자신에게만 변화만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할 때 여기서 배가가 이루어집니다.


14.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에는 먼저 제자가 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사전에서 “제자(Disciple)”라는 말의 정의를 찾아 적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제자”의 의미를 적으십시오.


제자(disciple)<라틴어로 ‘디시풀루스(discipulus)’ ‘생도, 배우는 사람’에서 나온 것인데 ‘만다노(μανθάνω)’ ‘배우다’에서 유래한 ‘마데테스(μαθητής)’와 상응한다)는 본래 한 선생의 생도입니다. 이에 상응하는 히브리어 용어 ‘림무드(ךוּמּ������)’는 구약에서 다소 드물게 나오나(사 8:16, 50:4, 54:13, 참조 : 레 13:23), 랍비들의 저작들에서는 ‘탈미드’(ךי������������������, 대상 25:8 참조)가 랍비로부터 전통적인 지식을 배우는 한 랍비의 생도를 나타내는 데 낯익은 낱말입니다. 흔히 나오는 헬라 세계의 철학자들이 그들의 생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생도들은 종종 그들 스승의 독특한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에, 생도라는 말은 종교와 철학에 있어서 그 특별한 입장을 지지하는 자들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제자직(Discipleship)은 예수의 부르심에 기초했습니다(막 1:16~20, 2:13이하, 눅 9:59~62, 심지어 눅 9:57이하는 보편적인 용어로 예수의 초청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제자직은 그에 대한 개인적인 충성을 포함하고, 그를 따르고 그에게만 오직 충성을 바치는 것 속에 나타납니다ㅑ막 8:34~38, 눅 14:26~33). 적어도 몇 가지 사례들에 서 그 제자직은 가정, 영업상 관계 그리고 소유를 문자 그대로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막 10:21, 28). 그러나 모든 경우에 있어 어떤 대사를 치르더라도 예수의 요구를 기꺼이 제일로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러나 태도는 보통의 사제 관계를 훨씬 넘어 ‘제자(disciple)’라는 용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제자라는 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배우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자는 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모든 삶을  배우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배우고 따른다’는 말은 그 사람의 인생자체를 배우고 따른 것이 제자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배우는 것이 제자가 아니고 예수님 인생 자체를 배워서 그 삶을 따르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제자의 의미는 이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기술, 학문, 예술, 예능 같은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제자는 예수님의 인생관을 배워서 그분과 같은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제자입니다. 주님이 원하는 것은 제자입니다. 아무리 구원은 받았서도 세상적으로 마귀를 닮아 살고 세상의 종노릇 하고 살면 주님에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에게 주님이 명하는 것은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은 예수를 믿으라와 예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15. 다음 말씀들이 제자의 삶에 관하여 가르치는 바를 찾아 적어 보십시오.


(1) 누가복음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사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사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완전히 로드심이 되어 있어야합니다. 자신을 부인하하고 예수님께서 순종하고 굴복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실제 삶에서는 자기가 주인노릇하고 예수님은 손님 입장에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갑니다. 그러니까 일평생 한번도 주님의 제자가 못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주님의 뜻에 따르기 위해 나를 부인하고 굴복시키는 삶을 살아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제자입니다.


(2) 요한복음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말씀에 거하고 살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말씀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말씀안에서 젖어 사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3) 요한복음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서로 사랑하고 사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다시말하면 자기가 가진 돈이나 시간이나 재능이나 이런 것을 남을 위해서 얼마나 사용하느냐 도와주느냐가 중요합니다. 말로도 남을 기쁘게 하고 격려하고 남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화목시키고 이러한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지식을 많이 배우고 알아도 서로 사랑하는 삶이 없으면 제자가 아닙니다.


(4) 요한복음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열매는  맨즌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열매는 크게  두 가지인데 전도의 열매와 성품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열매가 나타나고 이런 것을 순종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고 이런 열매를 매즌 것이 제자입니다.


(5) 누가복음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실제로 말씀에 중심으로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과정이 말씀의 위에서 역어져가고 있어야합니다. 나의 생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하나 진행되어져 가고 있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입니다.


제자도는 중요한 것을 5가지로 나눕니다. 주님의 제자라고 하면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내가 과연 주님의 제자인가? 내가 주님의 제자의 도에 따르고 살고 있는가? 내가 얼마나 부인하고 주님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말씀안에 살아가고 서로 사랑하고 사는 가?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 제자의 삶에 관한 이 공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적용)


▶ 자신을 한번돌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면이 부족하고 하나님의 나의 어떻게 순종하기를 바라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당신의 개인적인 사역은 당신의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을 고려해서 해야 합니다.


시간의 청지기


현대 가정이 직면하고 있는 하나의 공통적인 문제는 시간에대한 압력입니다. 가족 개개인이 지역사회의 요구를 만족시키면서 서로가에 원활한 의사 소통을 유지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16. 시간 사용에 대한 성서적인 가르침은 에베소서 5:15~17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과 연관해서 다음을 완성시키십시오.


(1)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해야 합니다.


(2) 지혜롭게 행하여야 합니다.


(3)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Redeeming the time이라고 나옵니다. 이 뜻은 시간을 구속하라는 뜻입니다. 구속하라는 말은 값을 지불하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데, 즉 시간을 아끼기 위해 돈을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돈을 투자해서라도 시간을 아껴 사용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4) 때가 악함을 분별해야 합니다.


지금 때가 악함을 아는 것은 시간을 아끼는데 세월을 아끼는데 도움이 됩니다. 긴급사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해야 할 것만 하고 살아갑니다. 긴급사태에서는 이것저것 할 수 없어 중요한 것만 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일상 생활에서 꼭해야 할것만 할 때 시간을 아끼는 삶이 됩니다.  

(5)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데 지름길이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를 일을 하다가 되지 않을 때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더라 생각이 될 때는 시간을 낭비한 것입니다. 시간을 아껴쓰려면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를 확신하고부터 시작하는게 지혜로운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하며 하는 것들이 우리의 생활에는 많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놓았는데 하나님의 뜻이 아니어서 헛되게 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만 행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렇게 할 때 시간을 절약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일을 안할 수 있게 됩니다.


17. 야고보는 사람의 일생은 짧고 불확실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야고보서 4:14). 시편 90:12절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형식으로 자신의 말로 써보십시오.


나의 생활이 짧다는 것을 알고 시간의 청지기가 되게 도아 달라는 기도입니다. 시편 90편 12절에 “우리에게 우리 날을 계수함을” 이라하고 나오는 데 우리의 날을 계산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90: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보통이면 70세로 건강하면 80세로 하여 현재의 나이에서 계산을 해보면 자신의 남은 년수가 몇 년인지를 알 수있습니다(이것은 하나의 예입니다). 계산을 해보면 자신의 남은 년수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수 있고 또한 일 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 T.V보는 시간, 오락하는 시간 등등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봉사하며 일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헛되이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아껴서 주님의 일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살아가는데 우리의 시간은 짧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을 때 시간의 청지기 생활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삶은 계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우선 순위를 계속 올바로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주의 깊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책의 목적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결혼과 가정 생활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완전무결한 겨혼 생활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당시느이 배우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삶 가운데 적용한다면, 하나님께서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말씀 속에서의도하신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 생활이고 가정 새활에